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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김홍도의 화풍을 그대로 따른 김득신
(1754∼1822)
우리 나라 봉건사회말기에 인물화의 내용과 형식에서 신통히도 김홍도와 비슷한 화풍의 화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도화서 화원이였던 김득신이다. 김득신은 대대로 화원생활을 한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김응리, 큰아버지 김응환, 외할아버지 한중흥은 모두가 도화서의 화원이였으며 동생들인 김석신, 김량신, 아들 김건종, 김하종에 이르기까지도 화원출신들이였다. 그의 집안이 얼마나 많은 화원들을 배출하였는가 하는것은 형제들은 물론이고 자식들과 지어는 사돈집까지 거의가 화원들이였다는데서 잘 알수 있다. 김득신은 1754년에 태여났고 자는 현보, 호를 긍재 혹은 홍월원이라고 하였으며 첨사벼슬을 지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외켠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화원으로 있던 유리한 가정환경속에서 그림그리기에 온갖 정력을 다 바쳤다. 선조들의 재능을 넘겨받은 그는 그림을 잘 그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화서 화원으로 되였으며 특히 인물화를 잘 그리는 화가로 명성을 떨치였다. 김득신의 인물화는 내용과 형식에서 김홍도를 계승한것으로 하여 그림에 이름이 찍혀있지 않은것은 누구의 그림인지 잘 알수 없었다고 한다. 하기에 김득신의 그림을 본 식견있는 사람들은 《김홍도와 견줄만 하다.》고 그의 솜씨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의 그림그리기솜씨를 보여주는 한가지 일화가 전해지고있다. 1783년 29살에 김득신은 조정에서 실시한 화원선발시험에 참가하게 되였다. 당시 도화서는 례조에 소속된 관청으로서 화원 30명과 수십명의 견습생을 두고있었다. 도화서 화원은 례조에서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된 사람들이 아니면 생도청에서 일정한 기간 그림그리기를 련마한 사람이여야 하였다. 그러나 김득신은 화원으로 되기 위한 시험에 곧바로 나섰다. 시험에서는 인물화, 산수화, 화조령모화 등 여러 방면의 그림제목이 제시되였는데 누가 빨리 더 생동하게 그려내는가 하는데 따라 승부를 갈랐다. 여기에서 김득신은 화조령모화그림을 그렸는데 얼마나 잘 그렸던지 시험에 함께 참가하였던 훈련생 리인문이나 다른 사람들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아 일약 화원으로 뽑혔다고 한다. 김득신의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8폭병풍》과 《인물화첩》, 《농가인물도》를 비롯하여 민간에 흘러들어간 화첩그림들이 있다. 특히 《량반과 농민》, 《소모는 아이》, 《장에서 돌아오다》, 《신부의 행차》, 《범》, 《매》 등 여러점이 가장 우수한것이였다. 《량반과 농민》은 김득신의 작품에서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림에는 하늘소를 탄 거만한 량반과 고삐를 잡은 하인 그리고 보따리를 지고 따라나선 심부름군을 한켠에 묘사하고 량반행차를 만나 가던 걸음을 멈추고 허리굽혀 절하는 농민부부를 반대켠에 묘사하였다. 화가는 비록 크지 않은 화면이지만 각이한 인물들의 성격을 매우 섬세하게 밝혀내였다. 량반은 하늘소우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점잔을 빼지만 한쪽눈길은 절을 하려고 허리를 굽히는 젊은 녀인을 내려다보고있다. 그의 얼굴에 어린 음욕은 가늘게 뜬 실눈에서 잘 나타나고있다. 화가는 량반의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이른바 《도덕적청렴성》을 뇌이면서 온갖 추한짓을 다하는 량반관리들의 위선적인 면모를 드러내보이고있다. 량반의 모습과 함께 그 턱밑에 붙어살면서 사람들앞에서 을러메기를 잘하는 두 하인 역시 성격적인 인물로 그려져있다. 량반을 등에 업은지라 제법 으시대는 길잡이의 형상도 가관이지만 보따리를 짊어지고 따라나선 하인의 웃음어린 얼굴 또한 작품의 주제를 밝히는데서 자못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먼길을 가는 농민부부의 모습은 량반행차와는 달리 어질고 착하게 형상되였다. 작품의 설득력있는 구성과 능숙한 선묘에 의한 간결한 묘사, 정확한 필치로 그려낸 환경 등은 형상의 예술적수준을 담보하고있다. 이것은 김득신이 근로하는 인민들의 다양한 생활을 사실에 기초하여 진실하게 그리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김득신의 화풍은 이와 함께 화면의 구도와 생활적계기들을 재치있게 설정하고 섬세하고 개성적이며 해학적인 수법으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는데서도 그 특성이 나타나고있다. 김득신의 인물화들이 거의다 그러하지만 《량반과 농민》, 《고양이를 쫓다》는 구도와 계기설정, 인물의 성격형상에서 원숙한 기량을 보여주고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고양이를 쫓다》는 농촌생활에서의 희극적인 소재를 재치있게 형상한 독특한 작품이다. 그림에는 목침을 베고 잠을 청하던 상투쟁이가 병아리를 노리고 다가드는 고양이로 하여 놀라는 암닭의 소리를 듣고 토방우에서 곰방대로 고양이를 쫓고있는데 얼마나 덤볐는지 한발이 토방을 밟지 못하여 몸균형을 잃고있다. 한편 남편이 급한 동작을 하다가 토방우에서 떨어지는것을 본 안해가 그를 붙들려고 덤벼치는 형상을 해학적으로 실감있게 묘사하고있다. 그는 풍속화가였지만 동물화도 잘 그리였다. 그가 그린 그림가운데는 《범》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소나무옆에서 대상을 노리는 호랑이의 모습이 얼마나 생동하였던지 그림을 본 어떤 사람이 화폭밑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놓았다. 《머리를 드니 성새와 같고 꼬리를 세우니 기발과 같도다. 밤이 다가와 그림을 길목에 버티여 세워놓으니 뭇짐승들이 소리를 못 내누나.》 이렇듯 훌륭한 그림을 그려냈지만 그의 작품들에는 내용의 폭과 묘사령역에 있어서 참신한 맛이 부족하고 옛 그림들을 재현하려는 요소도 있었다. 하지만 진지한 생활탐구, 뛰여난 재치와 인물성격형상에서의 예리성, 묘사의 섬세성으로 하여 김득신의 그림은 19세기초 우리 민족의 화단을 장식하고 이후시기 인물풍속화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