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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풍경화에 시대상을 담은 리인문
(1745∼182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풍경화가 유명하다고 하시면서 그 실례로 전통적인 조선화기법에 의해 창작된 산수화들을 들수 있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산수화란 주로 산과 물, 나무 등 자연풍경을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산수화들로서는 리조시기의 안견, 리인문, 정선, 김홍도 등이 그린 그림들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리인문은 리조 전반기 풍경화가들인 안견, 강희안 그리고 후반기의 정선에 이어 18세기 후반기 19세기 초엽 화단에서 풍경화로 두각을 나타낸 이름있는 화가였다. 리조시기 많은 풍경화가들이 배출되였지만 자기의 화폭에 시대상을 담아낸 화가로는 리인문을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것이다. 그만큼 그는 우리 인민의 감정과 정서, 아름다운 조국의 산천과 근로하는 인민들의 생활정서를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였다. 리인문은 서울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났고 자를 문욱, 호는 유춘, 고송류수관도인이라 하였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관찰력이 높았던 그는 그림그리기에서 뛰여난 재능을 보여 도화서 화원으로 되였으며 첨사벼슬까지 지냈다. 리인문의 어머니 김씨는 김홍도와 친척관계에 있었는데 이것은 김홍도와 함께 창작활동을 벌려나가는데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었다. 그가 도화서에서 창작활동을 진행한 시기는 우리 나라에서 봉건사회가 붕괴되고있던 때였다. 그는 진보적인 실학사상과 김홍도 등의 영향밑에 창작활동을 벌리면서 사대주의적이며 모방주의적인 창작태도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적인 풍경화를 창작하는데서 특기를 발휘하였다. 그는 자기가 보고 대하는 조국의 자연에서 풍경화의 소재를 찾고 그것을 사람들의 생활과의 밀접한 관계속에서 훌륭히 그려내였다. 그의 크고작은 모든 그림들은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반영이였다. 때문에 당시 유명한 문필가이며 오랜 친구인 남공철과 실학자로서 유명하였던 박제가 등 여러 사람들이 리인문의 그림재주와 인품을 두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리인문은 풍경화, 인물화, 화조화 등 다양한 그림들을 남기였는데 특히 풍경화창작에서 안견, 정선이후 가장 뛰여난 화가로 인정되였다. 지금까지 약 20여점의 작품들이 전해지고있는데 그의 그림가운데서 《강산은 끝이 없다(강산무진도)》, 《소나무밑에서 물소리 듣다》, 《포도》 등은 국보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있다. 그의 화풍에서 독특한것은 옛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한것이 아니라 현실속에서 그림창작의 새로운 묘리를 체득한것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들에서는 낡은 틀에 박힌 풍경은 찾아볼수 없고 모두가 우리 나라 자연의 특징이 생동하게 안겨오고있다. 특히 산과 물, 돌과 나무 등 모든것은 보는 사람들에게 친근감과 현실감을 주고있을뿐아니라 사람들에게 고향의 향취를 한껏 느끼게 하고있다. 리인문의 화풍에서 새로운것은 묘사대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 당대 시대적지향을 반영한것이다. 이 시기에도 적지 않은 화가들은 풍경화에서 인간과 그 생활을 보여주려고 노력은 하였으나 그들의 그림에는 자연속에 있는 인간들을 신선풍의 인물이거나 무위도식하는 인간들로 묘사하고 그들의 생활도 외롭게 혹은 한가하게 묘사한것이 대부분이였다. 이들의 풍경그림들에서는 사회현실문제들을 시대의 지향과 밀접히 결부시켜 보여주지 못하고있었다. 지어 풍경화를 사실주의적으로 잘 그렸다는 정선조차도 자기의 그림에서 당시의 사회현실문제를 보여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리인문은 풍경그림에서 전시기 화가들의 창작성과와 경험에 토대하면서도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 시대적지향을 체현시킨 풍경화를 새롭게 창조하였다. 대표적인 그림으로서는 《강산은 끝이 없다》이다. 그림은 가로 길게 퍼진 화면의 비단바탕에 계절에 따르는 웅장한 강산의 풍경을 폭넓게 펼친 조선화이다. 강줄기를 따라 내려오면서 좌우에 펼쳐진 거대한 자연을 서사시적으로 펼친 이 그림은 이 시기 우리 나라 회화유산에서 가장 우수한 걸작품으로 인정되고있다. 그림은 수백리에 달하는 대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폭넓게 보여주면서도 당시 농업과 수산업, 해상운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제활동에 대하여서도 반영하고있다. 이 시기는 사회경제적측면에서 《대동법》의 실시와 금속화페의 전국적류통으로 상품화페관계가 발전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러한 사정은 농민들을 상품화페관계의 소용돌이속에 밀어넣고 봉건관료들은 그들에 대한 고리대착취를 강화하여 농민들의 생활을 령락시켰다. 화가는 이러한 사회적모순을 그림에 옮겨놓음으로써 당시 우리 나라의 사회경제적면모를 그대로 알수 있게 하였다. 그림에는 우마차와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장마당, 행길로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바다처럼 넓어진 강하구의 군데군데 보이는 행인들과 강어구로 쉬임없이 나드는 고기배, 짐배들, 고기잡이에 열중하는 어부들과 포구에 닻을 내린 배들, 거기에서 짐을 부리는 일군들 등 당시의 생활이 묘사되여있다. 이와 함께 깎아세운듯 한 가파로운 산들이 련련히 솟아있고 그사이를 누비면서 강물이 흘러내리고있으며 강기슭을 따라 다양한 생활이 펼쳐지고있다. 강상류로 올라감에 따라 산세가 험한 두메산골이지만 골짜기에는 뙈기밭과 성곽, 살림집과 오솔길, 폭포와 기암, 울창한 나무숲이 있고 강의 흐름을 따라 내려오면서 강 량옆으로 넓은 벌과 큰 마을들이 펼쳐져있다. 여기에 형상된 깨알처럼 작게 그려진 인물들과 짐승들, 올망졸망한 집들과 많은 배들은 그 어느 하나 생동하지 않은것이 없다. 9m 되는 긴 화폭에 고도로 함축되고 빈틈없이 째인 화면구성과 장소와 계절의 특성을 살리면서 전체를 통일시킨 고상한 색채 등 아름다운 대자연의 풍경과 그속에서 펼쳐지는 인민들의 다양한 생활에 대한 형상은 화가의 풍부한 구성력과 높은 묘사력을 남김없이 보여주고있다. 이 거대한 화폭의 끝에는 추사 김정희의 《자자손손지보》라고 쓴 커다란 인장이 찍혀져있어 그림의 가치를 한층 돋구어주고있다. 리인문의 화풍에서 찾아볼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점은 독특하고 능란한 묘사기법으로 풍경화를 새로운 단계에로 끌어올린것이다. 이것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파악에 기초한것으로서 함축과 생략, 집중과 강조의 수법을 능숙하게 리용하고 여러가지 기법에 의한 정확한 자연묘사와 간략한 필치로 화면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있는것과 관련되여있다. 그림 《김매기》, 《사공》, 《짙은 록음아래서》에서 그것을 찾아볼수 있다. 그림 《짙은 록음아래서》에서 보여주는것처럼 붓에 먹을 진하게 묻혀 세로 살짝살짝 쳐서 먼곳의 거리감을 나타낸 늙은 나무와 많은 점들로 무성한 관목들, 갈필로 가로세로 툭툭 쳐서 소나무가지의 특징을 살려낸것이라든가, 늙은 나무와 관목들사이로 뾰족뾰족한 잎사귀들을 내밀고있는 애어린 소나무의 형상, 숲사이를 숨박곡질하듯 흘러내리는 맑은 물, 길쭉길쭉한 나무잎의 특징에 따라 아기자기한 붓자리를 낸것 등 특색있는 필치는 간결하면서도 선명하여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은근히 끌어당긴다. 그림에서는 풀벌레소리, 산새소리가 정답게 울리고 갖가지 나무들이 설레이는 여름의 록음 우거진 풍경을 보여주고있다. 리인문은 이와 함께 전시기 정선의 《인왕산》, 《만폭동》, 《구룡폭포》와 같은 힘찬 기백과 높은 시적정서를 보여주는 화법을 창조하였다. 또한 대상의 원근감, 채색의 농담과 이채로운 담채들로 묘사대상을 생동하게 표현함으로써 풍경화기법들을 새로운 높이에로 끌어올렸다. 《김매기》는 7∼8월의 삼복더위속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과 함께 구수한 흙냄새 풍기는 농촌의 모습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큰 나무그늘밑에서 농민들의 일손을 감시하는 늙은 지주의 형상은 당시 농촌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반영하고있다. 작품은 다양한 색채와 간결하고 함축된 선들로써 화면을 밝고 깨끗하게 처리할줄 아는 화가의 높은 예술적기량을 보여주고있다. 그림 《사공》도 당시 우리 인민들의 로동생활의 일면을 생동하게 반영한 인상깊은 작품이다. 그림에는 달뜨는 초저녁 강변의 분위기와 더불어 하루로동에서 오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여 갈대 우거진 강기슭에 쪽배를 대여놓고 노를 베개삼아 잠든 사공의 형상이 실감있게 묘사되여있다. 쟁반같은 달이 비쳐주는 속에 시원한 강바람을 쏘이며 배꼽까지 드러내고 흔들거리는 배우에서 달콤하게 잠든 호방한 성격을 가진 사공의 형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고있어 작품은 명화로 널리 알려져있다. 하기에 리인문의 생동한 화풍에 대하여 당시 기록에는 《갈필로 산을 그리고 습필로 나무를 그렸는데 명암과 원근처리에서 묘리를 얻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또 어떤 기록에는 《선왕에게 복무한 화사가운데서 뛰여난 사람은 그와 단원(김홍도)이였으나 뜬 구름처럼 단원은 이미 없고 그만이 이 세상에 남았다.》고 전하였다. 이상의 사실만을 보아도 리인문은 당시 김홍도와 함께 우리 나라 화단을 빛나게 장식한 미술가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리인문은 자기의 작품들에 당대의 사회현실을 진실하게 반영해보려고 적지 않게 노력하였으나 사회현실의 본질을 밝히지 못한 시대적제한성도 있었다. 그러나 리인문은 다양한 구도형식과 섬세하고 간결한 필치, 다채로운 색채로 리조 말기의 채색화발전에 이바지하고 이후 화가들의 근대적화법창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