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인물주제화로 화단을 빛내인 김홍도

(1745∼?)
 

 

우리 나라 력사에서 김홍도라고 하면 그림을 잘 그린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만큼 김홍도는 우리 나라 리조시기 미술을 대표할만큼 널리 알려진 유명한 화가였다.

사실주의그림의 거장 김홍도는 18세기 후반기 우리 나라 사실주의화단의 대표적인물로서 이름을 날린 화가의 한사람이였다.

김홍도는 1745년에 출생하였다. 그는 자를 사능, 호는 단원, 단구, 서호, 고면거사, 취화사 등으로 불렀으며 도화서 화원으로 있다가 그림을 잘 그려 그에 대한 표창으로 현감벼슬까지 받았다.

김홍도는 사회계급적모순이 그 어느때보다 격화되던 시기에 창작활동을 진행하였다.

당시로 말하면 실학의 영향이 미술분야에도 미쳐 새로운 형식의 그림들이 많이 나오고있었다. 이 시기에 창작활동을 벌린 김홍도는 그 누구보다도 실학사상에 기초한 사실주의적그림창작의 앞장에 섰다.

어렸을 때부터 뛰여난 그림재능을 보여준 김홍도는 당시 진보적인 화가였던 김응환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윤두서, 조영석의 인물화와 정선의 사실주의적풍경화에서 눈을 틔우고 김두량, 변상벽을 비롯한 선배화가들의 사실주의적기법과 심사정, 리린상, 강세황 등 화가들의 화풍을 받아들이면서 자기식의 개성적인 기량을 끊임없이 련마하였다.

특히 그는 화가이며 미술평론가인 강세황의 집에 드나들면서 화법과 화평(그림에 대한 평가)을 배웠으며 20년간 화단활동을 함께 하면서 이전시기 화단의 형편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서 묘사력도 빨리 높일수 있었다.

원래 인물이 환하고 성격이 너그러웠으며 겸손하고 소박했던 김홍도는 언제나 친구가 많았으며 사람들에게서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화원생활을 통하여 사실주의적인물화와 력사화, 풍경화, 화조령모화, 신선그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배웠으며 그 과정에 자기 능력도 높이게 되였다.

그의 뛰여난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분야는 인물화였다.

당시 봉건량반들은 그림을 그려도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산천과 인민들의 생활모습을 그린것이 아니라 화려한 궁중생활이나 인물들, 다른 나라의 풍경이나 인물들을 그려내고있었다.

또한 옛것을 숭상하였으며 현실에서 숨쉬는 인간보다도 케케묵은 풍경화나 그리였다.

김홍도는 1781년에는 왕의 령을 받고 왕궁으로 뽑혀들어가 정조의 초상을 그리기도 했으며 화가로서는 보기 드문 연풍현감을 지냈다. 이러한 높은 벼슬을 가지고있었으나 그는 언제나 밭에서 일하는 인민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의 감정을 가지고 그들의 근면한 로동생활과 락천적이며 소박한 성품을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하여 사실주의회화발전에 기여하였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근로하는 인민들의 산 모습이였다. 김홍도는 봉건정부의 도화서에 근무하는 몸이였지만 언제나 자기식의 인물을 그렸다.

그는 소박한 필치로 근로하는 인민들의 생활을 반영한 많은 인물주제화들을 그렸는데 같은 시대 인물화가들과는 달리 인민들의 풍부한 정서와 생활을 담기에 노력하였다. 그는 량반관료들의 부패타락한 생활을 증오하였으며 농쟁기를 들고 일하는 농민들의 생활과 감정에 애착을 느끼였다. 때문에 김홍도의 공적은 소박하고 근면한 인민들의 현실적인 생활을 생동하게 묘사한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는 인물성격창조에서 진실성과 심리묘사의 예리성, 표현적인 구도와 독특하고 힘있는 선에 의한 형태의 정확성 등으로 하여 개성적인 특징이 뚜렷하였다. 그는 종래의 낡은 틀을 마스고 새로운 형상수법을 창조하였는데 그림의 중심에 언제나 인물을 배치하고 정황과 년령심리적성격에 맞는 얼굴표정, 특징적인 자세와 운동표정을 포착하여 그려냄으로써 형상을 한층 돋구었다. 특히 활달하면서도 섬세한 필치, 탄력있는 선에 의한 대상의 묘사는 화가의 능숙한 필치를 잘 보여주고있다.

김홍도의 그림들로는 《집짓기》, 《대장간》, 《서당》, 《씨름》, 《춤》, 《논갈이》 등이 남아있다.

김홍도의 대표적성과작의 하나인 《씨름》에는 승부를 겨루고있는 씨름군들과 구경군들의 다양하고도 개성적인 형상을 통하여 우리 인민들이 쉬는날이나 명절날 또는 쉴참의 한때에도 즐겨하던 민속놀이의 한 장면이 생동하게 묘사되여있다.

그림은 구경군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 가운데 이를 악물고 상대방을 들어넘기려는 씨름군의 모습과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쓰는 상대방씨름군의 모습을 긴장된 극적정황속에서 형상하였다.

누가 이길가 하는 조바심으로 하여 두눈을 부릅뜨고 씨름군 못지 않게 긴장되여 구경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몸을 뒤로 제끼고 통쾌하게 웃어대는 인물도 있으며 손을 들어 이렇게 또는 저렇게 훈수를 하다가 자기 말을 듣지 않으니 이제는 맥이 나서 벌렁 나가 넘어지는 인물도 그리였다. 그런가 하면 얼굴을 부채로 가리우고 슬며시 바라보는 인물도 있고 긴장한 씨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듯 픽 돌아서서 먼 하늘만 쳐다보며 엿팔기에만 정신이 팔린 더벅머리 엿장사군총각의 형상도 있다. 이와 함께 벗어놓은 씨름군들의 신발 또한 시선을 끄는 세부이다. 이처럼 김홍도의 《씨름》은 원형구도로서 선묘, 담채의 수법을 조화롭게 리용하여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좁은 장소에 많은 인물들을 배치하였지만 안정감과 여유를 주는 여백으로 화면의 폭을 넓혀주고있다.

조선화 《씨름》은 그 당시 우리 나라 인물주제화에서 명화로 손꼽히고있다.

김홍도의 작품에서는 자기 특유의 묘사기법이 나타나고있는데 선의 다양한 효과를 능숙하게 활용하여 인물의 심리세계를 그려내고있다.

그러면서도 화면의 조형예술적품격을 높이고있다.

단원 김홍도의 능란한 회화술에 대하여 당시 한사람은 자기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어느날 김홍도는 벽에다 <해상군선도>를 그리게 되였는데 시중군에게 먹을 갈게 한 다음 갓을 벗고 옷깃을 여미고 서서 벽면을 오래동안 바라보며 구상에 잠기다가 이윽고 붓을 들자 폭우같이 순식간에 작품을 완성하니 물과 구름의 움직임과 인물들의 모습이 생동하게 벽면우에서 가득히 피여났다고 한다.》

그림 《집짓기》는 근로인민들의 생활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의 로동생활을 진실하게 형상하려는 화가의 의도가 가장 뚜렷이 발현된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화가는 화면우에 농촌마을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집짓는 장면을 형상하였다. 화면좌측에 배치된 집은 벌써 골격이 다되고 기와와 흙을 올려 완성단계에 이르렀는데 한옆에서 대패질에 여념이 없는 목수 등 모두가 자기의 뚜렷한 모습을 가진 인물들이다. 올려던지는 기와를 받아놓기에 열중한 나머지 옷고름이 다 풀어진것도 모르고있는 인물이며 일군들이 흥이 나서 일하는 모습을 재미나게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는 령감의 모습도 개성적이다. 화가는 집짓기에서 가장 절정에 이른 장면을 선택하여 화면에 옮김으로써 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불러일으키고있다.

그림에는 근면하고 소박한 농민들에 대한 화가의 친근한 감정이 그대로 반영되여있다. 이것은 화가자신이 그 생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법은 조선화 《대장간》에서도 볼수 있다. 작품은 대장간에서 벼림질하는것을 묘사하고있는데 둥근 쇠모루가 한가운데 배치되고 늙은이가 집게로 쇠쪼박을 쇠모루우에 올려놓으면 동시에 젊은이들이 메를 들어 휘둘러치는 장면으로 형상되였다. 메를 휘두르는 두 인물의 중심중력이 정확하게 설정되고 률동의 섬세한 묘사를 주었다. 그리고 저편 뒤쪽에서 열심히 풀무질을 하는 젊은 청년과 숫돌에 대고 칼을 썩썩 갈고있는 총각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여기에서는 인물배치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자기들의 성격을 나타내고있으며 쇠를 벼리는 긴장한 한순간을 해부학적으로 세부에 이르기까지 묘사하였다.

김홍도의 그림 《춤》에서도 역시 인민들의 락천적인 생활을 꾸밈새없이 보여주고있다.

작품은 장구를 치고 북을 두드리며 피리, 저대, 새납을 불어대는 등 흥성거리는 춤판을 그린것이다. 여기서는 춤추는 주인공과 함께 어깨를 으쓱대는 풍악쟁이들의 세련된 동작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림 《마당질》에서도 화가는 농민들의 힘겨운 낟알털기작업을 중심에 주면서 반면에 좋은 삿자리를 깔고앉아 담배대를 물고 늘어져 감시하는 지주의 몰골을 대조시킴으로써 그들사이의 모순을 명백하게 드러내고있다.

이와 함께 김홍도는 《고기잡이》, 《구룡폭》, 《만폭동》, 《달밤》 등 풍경화들과 《범》, 《꿩》, 《매미》 등 화조령모화들, 화상그림, 판화, 종교화를 비롯하여 실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김홍도의 화풍에서 진보적인 측면은 우선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에 근로하는 인민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생활을 사회계급관계속에서 진실하고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는것이다. 그의 인물화에는 순박하고 겸손하며 락천적이고 근면한 인민들의 생활이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그림 《대장간》, 《마당질》, 《베짜기》 등에는 고된 로동속에서 단련되고 로동생활을 귀중히 여기는 근로하는 인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들의 성격과 생활을 그대로 재현하고있다.

그리고 《우물가》, 《빨래터》 등에서도 봉건적인 구속에서 버림받고 천대받는 녀인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생활을 잘 보여주고있다. 《춤》, 《씨름》 등 여러 그림들에서는 활쏘기, 씨름, 춤 등으로 민속명절을 즐기는 각계층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생활과 세태풍속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이밖에도 《량반과 승려》, 《량반들의 투전놀이》, 《승려와 량반부녀의 비밀》 등과 같이 량반계급의 부화방탕한 생활과 위선적인 리면을 드러내여 신랄하게 조소야유한 작품도 있다.

이처럼 김홍도는 근로하는 인민, 천대받고 억압받는 인민들에 대한 끝없는 동정심을 반영한 그림들, 불합리한 당대 현실과 량반사대부들의 부패타락한 생활과 전횡, 무위도식을 비판하고 조소하는 그림들을 많이 창작함으로써 시대가 제기하는 문제에 생동한 형상으로 대답하였다.

김홍도의 화풍에서 진보적인 측면은 다음으로 시대의 지향을 사실그대로 보여주고있는것이다.

인물주제화에서 매 그림들에 반영된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학이 있는 조형적형상으로 묘사함으로써 진실성과 생동성을 높이고있다.

《집짓기》에서 줄을 드리우고 벽체가 기울지 않는가를 보려고 한눈을 감은 목수의 표정, 《새참》에서 술병을 기울이는것을 보면서 술이 좀 남기를 기다리는듯 한 아이와 새참드는 사람들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보는 개, 《마당질》에서 담배대를 문채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누워 일군을 감시하는 량반지주와 이그러진 표정으로 벼단을 내리치는 더벅머리총각 등의 형상들은 화가가 생활속에서 찾아낸 형상들로서 그가 주인공들의 성격과 심리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심하였는가를 잘 보여준다.

《구룡폭》, 《만폭동》 등과 같이 현실답사에 기초하여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풍경화들과 《달밤》, 《홍류동》과 같이 평범한 자연속에 인간생활상을 담아 진실하게 그린 풍경화들은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산천을 펼쳐보임으로써 민족적향취가 짙게 풍기고 풍만한 서정과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키고있다.

특히 《구룡폭》은 구룡폭포를 근경으로 처리하여 화면 왼쪽에 가득 채우고 오른쪽을 툭 틔워주면서 그 위용을 강조하는 한편 독특한 준처리로 바위산의 질량감을 잘 전달하고있을뿐아니라 짙은 먹색을 자유분방하게 찍어 화면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억양과 변화를 주는 등 개성적인 필법을 잘 살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미술작품 《구룡폭》을 보시고 붓으로 죽죽 그렸는데 잘 그렸다고 평가해주시였다.

김홍도는 이밖에도 화조령모화나 화상, 지어 신선도나 불화 등에 이르기까지 묘사대상의 본질을 파악한 다음 그것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림의 진실성과 생동성을 보장하였다.

김홍도의 화풍에서 진보적인 측면은 또한 힘있고 아름다운 필치뿐아니라 높은 기량이 안받침된 개성적인 화법을 창조하고있는것이다.

김홍도는 인물주제화에서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장면과 등장인물들의 성격묘사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그 생활을 풍부하면서도 독특한 기법으로 그렸다.

실례로 화면리용에서 약간 우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표현한 원형 및 사선식구도의 리용, 사람들의 눈길을 화면중심으로 끌어들이고 다른 장면으로 이동시키는 동적인 째임새, 인물묘사에서 성별, 나이, 계층, 직업에 알맞는 복장과 자세, 표정을 생동하게 표현하는 독특한 필치를 보여주고있다. 여기에 둥그스름한 우리 인민의 얼굴형에 적절한 얼굴 옆모습의 특징을 살린 인물형상, 힘이 있으면서도 유연하게 흐른 선묘에 의한 옷처리, 얼굴과 옷의 묘사에서 담채를 리용한 효과 등 개성적인 기법을 살린것이다.

또한 인물주제화에서 볼수 있는 평범한 언덕길, 들판, 나무, 풀 등의 묘사도 두드러지게 하였다.

이와 함께 풍경화에서도 민족적정서가 짙은 독특한 자기식화법을 창조하였다. 특히 바위나 산의 립체묘사에서 사용한 굵은 선에 의한 면처리, 농담과 강약조절에 의한 파도와 물, 바위와 산, 언덕의 방불한 묘사는 그 대표적실례로 된다. 농담의 변화와 투명하고 시원한 담채에 의한 정서적인 분위기표현과 계절의 변화, 운동감을 주는 대각선구도 등도 그의 풍경화를 이채롭게 한다. 이처럼 김홍도는 풍경화에서도 우리 나라 산천의 기이한 자연미와 아름다운 정서를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느낄수 있게 집약화하여 표현하였다.

한마디로 김홍도의 그림들은 당시 그 누구와도 견줄수 없는 뛰여난 회화적경지에 이른 새로운것이라는데 귀중한 가치가 있다. 그가 그려낸 인물들은 모두가 소박하고 락천적이며 굳센 의지의 소유자들로서 한결같이 로동속에서 형상되였다.

물론 그는 자기의 그림들에서 해당 시대가 요구하는 계급적모순을 예리하게 분석하지는 못하였으나 근로하는 인민을 자기 작품의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그들의 생활을 깊이 반영하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할수 있다.

김홍도는 먹으로 그림을 그리던 리조시기 회화의 제한성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지만 형상기법에서 사실주의창작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놓음으로써 우리 민족의 회화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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