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지조와 량심을 귀중히 여긴 최북

(1720∼1770)


 

최북은 어느 한 시골에서 가난한 농가의 맏아들로 출생하였다.

최북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어머니의 일손을 도우면서 짬짬이 그림공부를 하였다. 남달리 영특하였던 최북은 점차 자라면서 스스로 그림묘리들을 체득하였다.

최북은 부자집 아이들처럼 미술공부를 체계적으로 받지는 못하였으나 자기식의 화법을 창조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최북은 자를 성기, 칠칠, 호를 거기재, 삼기재, 호생관 등 여러가지로 불렀다.

여기서 최북은 《칠칠》이라는 자를 제일 사랑하였는데 그것은 자기의 이름자인 북(北-북녘 북)자를 분리해보면 겹칠자 즉 칠칠로 되기때문이였다.

옛 기록에서는 최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최칠칠이란 사람은 세상에서 그의 족보나 본적을 알지 못하였다. 그는 <호생관>이라는 호를 가지고있었는데 이것은 붓으로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살아간다는 뜻에서 쓴것이였다. 그는 자기의 빈궁한 생활을 스스로 위안하면서 그림창작에만 전심하였다. 한눈이 멀어 항상 한쪽만 있는 안경알을 가지고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군 하였는데 명승지로 유람하기를 좋아하였다.》

우의 기록은 최북이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화가의 지조를 꿋꿋이 지키고 깨끗한 량심을 가지고 살았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그가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는가 하는것은 자기의 어려운 생활을 노래한 자작시에서 그대로 표현되고있다.
 

최북이 서울에서 그림팔지만

신세는 초가집의 뚫어진 네 벽

문을 닫고 종일토록 산수그리니

유리안경 나무필통 나의 벗이여라
 

아침에 한폭 팔아 아침끼니 때우고

저녁에 한폭 팔아 저녁끼니 때우네

서늘한 방안에 객이 춥게 앉아있고

문전의 다리에는 눈이 세치로구나
 

그림을 팔지 않고서는 살아갈수 없는 조건에서도 최북은 자기의 그림값을 높게 부르지 않고 헐값으로 그려주었다. 가령 그림을 산 사람이 최북의 생활을 동정하면서 돈을 많이 주면 그것을 자기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였다.

최북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면 기꺼이 그려주었지만 권세있고 돈많은 부자들이 그림을 요구하면 이런 구실, 저런 구실을 붙이며 잘 그려주지 않았으며 권세앞에서 굽어들줄 몰랐다.

최북의 이러한 성품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최북의 집으로 아전이 찾아왔다. 리유인즉 어떤 권세있는 량반이 급히 찾는다는것이였다.

아전을 따라 세도량반의 집으로 가니 량반은 그를 사랑방으로 불러들여 한상 잘 차렸다. 영문을 알수 없었던 최북은 량반에게 무슨 일로 불렀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량반은 최북에게 자기의 기호와 취미에 맞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였다. 순간 최북은 량반의 얼굴을 쏘아보면서 자기는 그런 그림을 그려보지 못했기때문에 그릴수 없다고 잘라버렸다.

최북이 자기의 요구를 거절하자 량반은 《여기가 어딘지 아는가.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소리치면서 최북을 위협하였다.

이에 분격한 그는 벌떡 일어서면서 《네가 나를 이길수는 없다.》라고 하면서 자기 한쪽눈을 칼로 찔러버렸다. 순간 량반은 물론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너무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이 새까매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최북이 권세있는자들앞에서 아부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을 지닌 화가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최북은 비록 옷을 허름하게 입고 밥을 배불리 못 먹어도 사랑하는 조국의 산천풍경을 화폭에 담아 빛내이는것을 생활의 락으로 간주하였다.

그의 그림들에는 울창한 수림, 장쾌한 폭포들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묘사한것이 많은데 대표적인 작품으로서는 《금강산전도》, 《여름풍경》, 《한여름》, 《매와 토끼》, 《산수도》, 《석담구곡》(병풍) 등을 들수 있다.

그리 크지 않은 화폭에 금강산이 한눈에 안겨오도록 형상한 작품 《금강산전도》는 통이 큰 화가의 성품과 회화적기질을 잘 보여주고있다. 그림은 지리도해적형식을 띠고있으나 세련된 필치로 금강산의 변화무쌍한 산봉우리들을 재치있게 형상하였다.

그가 미술가로서 금강산을 얼마나 사랑하였는가 하는데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있다.

최북이 천하명승 금강산을 찾아갔을 때였다.

금강산에 있는 구룡폭포에 올라간 최북은 천길아래로 떨어지는 구룡폭포의 장쾌함에 매혹되여 넋이 나간 사람처럼 굳어지고말았다. 보고 보아도 싫지 않고 또 보고싶어 최북은 구룡폭포가까이에 접근하였다. 점점 더 접근한 최북은 발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폭포속으로 몸의 균형이 쏠렸다. 그 찰나 뒤에서 구경하던 어떤 사람이 붙잡아주어 다행히도 폭포속으로 빠져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때 최북은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대신 《천하의 명인 최북은 명산에서 명폭포에 안겨 죽어야 함이 마땅하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 하나의 사실을 통해서도 그가 금강산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얼마나 사랑하였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

작품 《한여름》은 산좋고 물맑은 우리 나라 산천계곡의 풍치를 그린것인데 그 아름다움을 생동하게 사실주의적으로 반영한 대표적인 그림이다.

그림은 우뚝우뚝 장엄하게 솟은 산봉우리들과 계곡의 폭포, 각이한 모양의 나무들이 잘 결합되여 수려한 풍치를 보여주고있다. 그림에는 넓다란 노전우에 편안히 앉아 한담하는 로인들, 뒤짐을 지고 산천을 구경하는 구부정한 로인이 있는가 하면 아담한 초가집앞에서 마당을 쓸고있는 소년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결 돋구고있는 인물들도 있다.

섬세한 붓질로 바위와 산의 립체감과 솔잎 그리고 각이한 활엽수도 실체와 같이 표현하고 산과 산사이, 나무사이의 공기의 흐름을 여백으로 처리한 화가의 개성적인 구도와 필치는 웅장한 자연미와 섬세한 조형미를 잘 결합해줌으로써 작품의 예술적경지를 훌륭히 보장하였다.

그는 봉건통치배들의 부패무능한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자연을 벗삼아 조국의 아름다움을 반영한 많은 그림들을 그리였다. 최북이 당시 얼마나 많은 풍경화들을 그려냈던지 전국각지에 그의 그림들이 나돌아 최산수화라고까지 하였다.

그는 늘 봉건통치배들에 대한 불만에 가득차있었으며 그것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19세기 화가 조희룡은 금강산과 평양, 해주와 서울 등지에서 한눈에만 안경을 끼고 초라한 모습으로 화첩우에 붓대를 놀리거나 그림을 펴놓고 구매자를 기다린 최북의 모습을 두고 《호산외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최북은 북풍처럼 맵짜다. 내 생각에는 세력있는 귀족고관들의 사환군으로 되지 않았던것만으로도 만족하거늘 어찌 이렇게까지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었는가.》

최북은 그 어떤 인물화보다도 금강산을 그린 풍경화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어느해인가 어떤 사람이 비단천을 가지고와서 최북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면서 풍경화보다 자기의 초상이나 안해의 초상과 같은 인물화를 그려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최북은 아무 말도 없이 붓을 들고 조선8경의 하나인 금강산전경을 그려주었다.

그러자 천을 가지고왔던 사람은 대번에 성을 내면서 어디서 이따위 그림을 그리는가고 하면서 최북을 《환쟁이》(그림그리는 사람을 얕잡아보고 하는 말)라고 욕질하였다.

그러자 최북은 천에 그린 그림을 다시 물에 빨아 지워버리고 말린 다음 또다시 그림을 그렸는데 거기에는 폭포와 흐르는 물은 하나도 없고 빈 절벽과 바위덩어리만을 그리였다. 옆에서 그것을 보고있던 사람이 이게 무슨 그림이냐고 또 성을 내자 《당신이 폭포와 계곡을 그려넣소.》하고는 그자리를 떴다.

이것은 그가 금강산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라고 해야 할것이다.

하기에 사람들은 하나와 같이 구도가 째이고 실물을 보는것만 같은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세상사람들이 부러워마지 않는 삼천리금수강산에서 사는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느꼈다고 한다.

물론 그의 그림들에는 정서적흐름이 통일되지 못한 결함도 있다.

그렇지만 최북의 그림들은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대상을 선택하여 조형미를 보장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린것으로서 리조회화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였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대한 끝없는 애착과 봉건통치배들에게 아부하지 않는 굳센 의지, 깨끗한 량심을 지닌 최북의 그림들은 18세기 우리 나라 사실주의풍경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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