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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아직도 잠을 자고있는 <소몰이군>》을 그려낸
김두량
(1696∼176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김두량이 그린 〈소몰이군〉도 필치가 생동하고 형상이 진실합니다. 소를 놓아둔채 나무밑에서 배를 드러내놓고 코를 골며 자는 소몰이군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깊습니다.》 오늘도 조선미술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있는 그림 《소몰이군》은 18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화가 김두량의 창작품이다. 김두량은 자는 도경, 호는 남리, 예천이라고 불렀다. 김두량은 어려서부터 도화서 화원이였던 아버지 김효강과 외할아버지 함제건에게서 그림그리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김두량은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여러 분야에서 실사구시의 사조가 대두하던 시기에 창작활동을 진행하였다. 그는 당시 봉건사대부들이 천시하던 농민들의 생활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거기에서 보람과 긍지를 찾은 화가였다. 그의 개성적인 화풍이 얼마나 뛰여났던지 그의 이름은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그가 화원으로서 별제라는 관직에 이른것과 왕이 직접 남리라는 호를 달아준 사실만 보아도 당시 화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의 호가 남리로 되게 된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리조 제21대왕인 영조(재위 1725∼1776)는 그림을 몹시 좋아한 인물이였다. 외국에서 보내온 그림을 감상하던 영조는 지금 화공으로서 누가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례조판서가 《현재 도화서에 있는 화원으로서는 김두량이 제일 잘 그릴줄로 아나이다.》라고 말하는것이였다. 《음, 그러면 그 화공을 불러 그림을 한번 그려보도록 하라.》 례조판서는 《예, 알겠나이다.》라고 대답하고는 곧 사람을 시켜 김두량을 입궐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김두량은 영조앞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였다. 한 선비가 꿈을 꾸면서 룡이 되여 하늘로 날아오르는 상상화였다. 소재는 비록 환상적인것이기는 하지만 선비의 모습은 현실에서 볼수 있는 모습 그대로이며 룡의 모습도 마치 살아있는듯 장쾌하였다. 그림을 보고난 영조는 김두량을 대견하게 바라보면서 호를 어떻게 부르는가고 물었다. 당시 문인들속에서는 본이름보다도 호를 부르는것이 일반적인 관례로 되여있었다. 김두량이 대답하자 영조는 잠시 생각하더니 남리라고 부르도록 하자고 일렀다. 좌우에 서있던 관리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나라의 최고권력자인 왕으로부터 직접 호를 받는 사람도 드물었을뿐아니라 화공에 불과한 사람에게 직접 호를 하사하는것이 너무 기이하고 뜻밖이였기때문이였다. 이것은 김두량이 그만큼 그림을 잘 그려 영조왕을 크게 감탄시켰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였다. 그만큼 김두량은 그림에서 뛰여난 묘기를 보여준 화가였다. 그림 《소몰이군》은 그가 지닌 근로인민에 대한 사랑과 향토애를 그대로 함축한 대표적인 그림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림에는 하루종일 일을 하다가 곤해서 소를 나무에 매여놓고 그늘밑에서 코를 골며 자는 농민의 모습이 생동하게 묘사되여있다. 당시 우리 나라 농촌생활의 일단을 감명깊게 펼쳐낸 이 그림은 화면의 한가운데에 커다란 황소가 그려져있고 그 오른쪽 한켠에는 풀밭에 누워 잠든 농민이 그려져있다. 여름철의 그늘밑에서 낮잠에 든 농민의 형상은 소박하면서도 꾸밈이 없이 형상되였다. 고된 일에 지치고 거뭇거뭇하게 탄 얼굴, 옷깃을 풀어헤쳐 드러낸 배꼽, 더부룩한 머리는 당시 봉건사회에서 천대받고 억압받던 최하층농민의 모습 그대로이다. 소몰이군의 이러한 형상은 달구경이나 하면서 음풍영월로 세월을 보내는 기생충같은 량반선비들과는 대조되는것으로서 고된 로동속에서도 랑만적으로 살며 부지런히 일하는 농민들의 성격과 생활을 해학적으로 잘 펼쳐보여주고있다. 또한 힘겨운 일에서 벗어나 한가로이 풀을 뜯고있는 소의 모습 역시 온순하고 힘이 센 우리 나라 부림소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있다. 구수한 흙냄새가 풍기는듯 한 주위환경묘사는 주인공과 소의 형상을 잘 안받침해주고있어 마치도 곤하게 자고있는 농민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는듯싶다. 화가는 이 작품에서 연한 담채묘사로 화면을 부드럽게 통일시키면서 조선화의 표현수법을 살리는데 깊은 주의를 돌렸다. 작품은 구도가 째여져있으며 묘사령역에서도 뛰여나게 우수한 작품이다. 18세기 전반기에 창작된 이 그림은 지금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뜻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하고있다. 잠을 자고있는 《소몰이군》의 형상이 얼마나 인상깊었던지 어느해인가 우리 나라에 와있던 한 외국인이 조선미술박물관을 참관하여 《소몰이군》을 보고는 제 나라로 돌아간 몇해후에 자기 나라에 온 우리 대표단의 한 성원에게 지금도 《소몰이군》이 잠을 자고있는가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김두량의 그림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인상이 깊었으면 그 외국인이 그런 말을 하였겠는가. 김두량은 이에만 그치지 않고 당시 우리 나라 농촌풍경을 생동하게 형상해내였다. 특히 그림 《사계절》은 우리 나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실감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김두량이 형태를 그리고 아들이 채색한 이 그림은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의 사계절을 가로 긴 두루말이형식에 담아 지평선은 대담하게 잘라 함축하고 내용을 전개하도록 구도를 설정하였다. 또한 그림은 다양한 채색으로 조선화적인 특징과 민족적인 정서를 더욱 풍부히 하고있다. 이 그림의 진보적측면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농촌전경속에 지주와 머슴군의 판이한 생활을 대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작품의 인식교양적가치를 높인것이다. 그중 《가을》부분은 타작장면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는데 사계절중에서도 제일 잘된 부분이다. 화면에는 지주집 마당에서 낟알털기하는 농민들의 바쁜 일손과 그것을 지켜보는 지주가 묘사되여있다. 농민들이 힘차게 내리치는 도리깨소리는 가을의 정적을 깨뜨리며 률동적으로 울려퍼지는듯싶은데 그곁에서 바람에 검부레기를 날리는 농민의 모습이 오른쪽으로 보이고 그뒤로 마당건너채에서 발방아를 찧는 사람의 모습도 안겨온다. 이 마당질광경을 바라보는 늙은 지주의 거만한 모습과 술상을 들고 마당질하는쪽으로 재게 발을 놀리는 어린 머슴의 형상에는 당대의 사회계급관계를 보여주려는 화가의 의도가 반영되여있다. 마당주변의 여기저기 쌓여있는 곡식낟가리들과 근면하고 소박한 농민들의 형상, 외통집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포착된 건물과 마당에 흩어져있는 낯익은 연장들은 당시 우리 나라 농촌의 실정과 풍속을 생동하게 반영하고있다. 화가는 그림에서 가로 길게 퍼진 화면의 모양에 맞게 그 폭과 깊이를 충분히 나타내였다. 특히 높이가 낮은 화면의 특성으로 하여 생길수 있는 옹색한감을 피하기 위해 인물과 마당을 제외한 기타 대상들, 즉 건물, 나무, 낟가리들은 모두 일부분만을 보여주었다. 그림은 화면중심에 력점을 두고 생활의 이모저모를 다양한 인물들의 설정과 그들의 리해관계, 계급관계에 기초하여 구체화하였으며 담채의 은은한 효과로 조형적인 직관성을 뚜렷이 살리였다. 《봄》에서는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봄향기가 그윽한 속에 량반이 심부름군아이에게 술단지를 들리워가지고 놀러 가는 모습을 형상하였다. 《여름》에서는 더위를 피해 량반들은 그늘밑에서 한담을 하며 쉬고 농민들은 논밭에서 힘겹게 일하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그리였다. 《겨울》은 고래등같은 기와집에서 량반들이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있는 반면에 머슴은 눈덮인 산에서 나무를 해가지고 오는 판이한 모습으로, 또 전야에서 농민들이 꿩사냥을 하는 장면으로 형상되여있다. 꿩사냥은 당시 봉건량반사대부들이 흔히 산골에서 유희로 하는 사냥이 아니라 우리 나라 어디에 가나 볼수 있는 야산골짜기에서 농민들이 벌리는 사냥으로 묘사되여있다. 그림에서는 여기저기 관목들이 드물게 서있을뿐 큰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는 보통 야산과 그너머로 멀리 숲속이 펼쳐져있다. 서너명의 짚신을 신은 농민들이 바지가랭이를 동여매고 손에 활과 괭이, 몽둥이 기타 농쟁기를 들고 달아나는 토끼, 노루, 꿩들을 뒤쫓고있다. 인물들과 짐승들의 움직임은 생동하고 긴장감을 주고있으며 농민들의 성격은 소박하게 형상되여있다. 《사계절》은 이처럼 농민들과 량반의 생활을 대비시켜 그린 새로운 내용의 인물주제화로서 사회적모순에 대한 화가의 비판정신이 강하게 반영되여있다. 여기서 화가는 놀고먹는자들의 무의미한 생활에 예리한 비판의 붓끝을 돌리였고 반대로 지배계급에게 착취를 받는 농민들, 머슴군들에 대한 깊은 동정을 표시하였다. 《사계절》은 절기에 따르는 농촌생활을 통하여 불평등한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과 근로하는 인민들에 대한 동정의 감정을 사실주의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농민생활도(경직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생활주제창작을 사실주의적으로 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소몰이군》 한 작품만 가지고도 당시 김두량의 인물화수준과 사실주의적화법에 대하여 잘 알수 있다. 그리고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당시 농민들과 량반지주간의 대조되는 생활을 정확히 자기 화폭에 반영할수 있었던것은 현실에 대한 화가의 새로운 견해의 표현이라고 볼수 있다. 이와 같이 김두량은 18세기 전반기 우리 나라 사실주의인물화가의 한사람으로서 우리 나라 회화예술의 주제령역을 확대하고 민족미술을 빛내이는데 기여한 이름있는 미술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