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금니화로 화단을 빛내인 리징

(1581∼?)

 

 

금니화란 금을 가루내고 그것을 갖풀에 개여 여기에 채색을 섞어 장식적효과를 나타내도록 하는 조선화의 한 갈래이다.

리징이 중세회화사에 이바지한 가장 큰 공적은 금니화로 화단을 아름답게 장식한것이다.

리징은 1581년에 도화서 화원으로 있던 리경윤의 서자로 태여났으며 자를 자함, 호를 허주라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도화서에서 동물과 산수화를 잘 그려 이름을 남긴 사람이였다.

그는 아버지의 그림들을 보면서 자기도 언제면 저렇게 그림을 잘 그릴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있었다.

그리하여 리징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 극성스럽게 그림그리는 재간을 련마하였다.

그가 어릴 때 얼마나 그림그리기에 열중하였는가 하는것은 박지원이 쓴 《공작관집》이라는 력사책에서 찾아볼수 있다.

그에 의하면 어느날 리징은 주변에 있는 산천경개를 그려보려고 시도하였다고 한다.

뒤에는 아름다운 산이 있어 봄이 오면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찾아드는 아름다운 풍경이였다.

리징은 산천경개를 한눈에 볼수 있는 장소를 골라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좀처럼 마땅한 장소를 찾아낼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점심밥을 먹고 마당에 나섰던 리징은 피뜩 자기 집뒤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에 올라가면 그 광경을 한눈에 볼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꼭대기에 올라갔는데 거기에서 둘러보니 과연 아름다운 고향마을과 주변의 산천경개가 한눈에 안겨왔다.

리징은 그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에 담으려고 밤낮을 잊고 사흘동안이나 꼬박 나무우에 올라가 앉아있었다.

한편 리징이 집에 사흘이나 지나도록 들어오지 않자 집안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분명 어디에 갈 곳은 없겠는데 며칠씩이나 들어오지 않으니 야단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 형들을 비롯한 온 집안식구들이 떨쳐나서 그를 찾으려고 마을과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 집안식구들이 너무 속이 상하여 맥을 놓고 주저앉아있는데 누이가 뒤뜨락의 느티나무에 올라가 앉아있는 리징을 발견하였다.

집안식구들은 너무 어이없어 리징더러 빨리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나무에서 내려온 리징을 보는 순간 아버지는 그만 성이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회초리로 사정없이 때리였다.

아버지에게서 매를 맞은 리징은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했다는 소리 한마디없이 계속 땅바닥만 내려다보고있었다.

매질하던 아버지가 이상하여 리징이 눈길을 쏟고있는 땅바닥을 여겨보니 아니 글쎄 떨어지는 눈물로 날아가는 새를 그려놓은것이 아닌가.

눈물로 그린 새를 보면서 아버지는 아들이 앞으로 훌륭한 화가가 되리라는것을 예감하게 되였다. 그래서 그림공부에 필요한 지식을 배워주고 화구들을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은 《형언도필첩》 서문에서 《비록 조그만 기교라도 모든것을 잊고 덤벼야 성공할수 있다.》고 전제하고 리징의 이 일화를 례로 들면서 꾸준한 탐구와 피타는 노력을 가할 때만이 기교를 련마할수 있으며 미술가로서 크게 성공할수 있다는것을 론증하였다.

이렇게 되여 리징은 그림그리기에 뛰여난 솜씨를 발휘할수 있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화서의 화원으로 될수 있었으며 얼마후에는 당시 우리 나라 풍경화에서 그 누구도 당해낼수 없는 명화가로 소문나게 되였다.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는 그의 대표작은 《여름풍경》, 《사슴》, 《거부기》, 《산수도》 등이다.

리징이 그린 《여름풍경》은 금니화로서 오늘도 국보로 인정되고있다.

그림은 높은 산과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경치를 금분으로 그린것이다. 《여름풍경》은 산형태와 기복을 부드럽게 묘사하고 벼랑우에 자리잡은 사찰과 그아래 떨기떨기 진한 나무들을 구륵법으로 묘사한 형상이 매우 간결하고 선명한 그림이다.

화가는 원경과 중경을 부감구도식으로 그려 깊은 산골의 사찰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종소리의 여운이 흐르는상싶게 정서적으로 형상하였다.

또한 《산수도》도 잘된 작품이다.

《산수도》는 산수가 수려하고 초목이 청신한 아름다운 자연이 손바닥크기의 화면에 집중되여있는 그림이다.

올려다보면 높고 푸른 련봉들이 련련하고 골마다 흘러내리는 물은 구슬처럼 아름답다. 금니의 미묘한 변화로 섬세하게 그린 이 작품은 조선화의 다양한 표현형식과 풍부한 묘사력을 과시하고있다.

짙은 곤색바탕에 광채나는 금분으로 자연풍경을 배경으로 여러가지 동물들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 작품들은 중세 우리 나라 미술에서 이채를 띠고있다.

리징의 이러한 새로운 화법은 그림에 여간만 능숙하지 않고서는 해낼수 없는것이였다.

하기에 어느 한 력사책에서는 리징의 이러한 화법에 대하여 이렇게 찬양하고있다.

《리징은 학림(리경윤)의 서자로 화가의 집에서 출생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아버지의 업을 계승하여 가문을 빛내였고 화법의 여러 기법들에 능숙하였으니 실로 대가라고 할만 하다.

그러나 일정한 법식에 구애되였으므로 비록 넓게 알고는 있었으나 그 필치가 웅건하지 못하였고 섬세하기는 하였으나 묘하지는 못하였고 능하기는 하였으나 변화발전할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러한 결함은 누구나 있을수 있는 평범한것일따름이다.》

리징의 그림이 얼마나 감동적이였던지 당시 어느 한 사람은 그림을 보고 감탄하여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리징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비록 창작한 화폭에는 현실을 외면한 제한성은 있으나 그는 전통적인 금니화형식의 조선화를 계승발전시킨것으로 하여 리조시기의 회화유산을 풍부히 하고 우리 민족의 미술사에 무시할수 없는 공적을 쌓은 이름있는 미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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