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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의병투쟁에 참가한 리성길
(1562∼?)
민족사에 유명무명의 많은 미술가들이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의병투쟁에 참가하였고 왜적들을 쳐부시는 우리 인민의 영용한 모습을 생동하게 그려낸 화가는 드물다. 수세기가 지났어도 눈앞에 보는듯이 실재한 전투장면을 생동하게 펼쳐보인 화가! 그는 다름아닌 리성길이였다. 리성길은 1562년에 출생하였다. 그는 자를 덕재, 호를 창주 또는 창포라고 불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령리하고 재주가 뛰여났으며 무슨 일에서나 남에게 뒤져본적이 없었다. 청년기에 들어서면서 뒤늦게 글공부를 시작하였지만 매우 박식하였으며 글짓기재간이 뛰여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27살에 문과시험에 급제하여 병조참판이라는 높은 벼슬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청렴결백하였던 리성길은 봉건통치배들의 당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였다. 그러한 때인 1592년 4월 왜놈들은 조선에 대한 침략전쟁을 도발하였다. 놈들은 근 20만명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여러 방향에서 서울을 향해 침략해들어왔다. 적장 고니시 유끼나가(소서행장)는 림진강을 건너 평양으로 기여들었고 가또 기요마사(가등청정)는 함경도로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 당시 일신의 안락과 영달만을 추구하던 봉건통치배들은 제 한목숨이 두려워 다 피해갔지만 애국적인 인민들과 유생들은 도처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왜적들을 족치는 싸움에 떨쳐나섰다. 벌써 전쟁초기에 경상도에서는 곽재우, 전라도에서는 고경명, 충청도에서는 조헌, 령규, 함경도에서는 정문부의병대가 맹활동을 벌리였다.
특히 정문부는 함경도에서 가또 기요마사의 2만대군을 반대하는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승리한 쌍포전》은 지난 시기 일본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정문부의병대가 벌린 전투장면을 선묘를 위주로 돋을새김한 전쟁주제의 수인판화이다. 정문부의병대는 경성을 들이쳐 왜적들과 반역자들을 처단한 다음 길주, 단천지방으로 진격하였다. 의병대는 길주지방에 있는 림명천과 쌍포천을 건너 향고산의 림명진성을 탈환하기 위한 대담한 작전을 진행하였다. 이 전투에서 함경도의병대는 일본사무라이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안기고 성을 또다시 탈환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판화 《승리한 쌍포전》은 바로 림명진성을 탈환하는 의병들의 투쟁모습을 실재한 력사적화폭에 담아 우리 인민들의 영용한 기상을 보여준 애국적주제의 작품이다. 멸적의 화살을 날리면서 쏜살같이 진격해나가는 의병들의 용감한 투쟁모습을 부감구도형식으로 펼쳐보이면서 이 지대의 주요지형지물과 그 이름을 하나하나 밝혀넣었다. 화면의 오른쪽에는 원경으로 처리된 높은 산줄기로부터 림명천이 사선을 지으며 바다가에 흘러들고 그보다 좀 가까운 산줄기로는 쌍포천이 림명천과 평행선을 지으며 흐르고있다. 이미 림명관을 탈환한 우리의 용감한 의병들은 너부러진 왜놈들의 주검을 뛰여넘으며 파죽지세로 진격하는데 쌍포천건너편의 동령골짜기에는 한패의 왜놈들이 통나무로 쌓은 성안에서 독안에 든 쥐처럼 갈팡질팡하고있으며 또 다른 한패의 왜놈들은 바다가에 반달형으로 된 통나무말뚝성안에서 도망칠 차비를 서두르며 헤덤비고있다. 벙거지를 쓰고 활로 무장한 우리 의병들은 말을 탔는데 그 수는 38명이며 붉은 장방형기를 세우고 창과 활, 총으로 무장한 왜놈들은 살아남아있는 놈과 죽은 놈이 44명이다. 화가는 이 그림에서 수적으로나 무장장비에서 우세한 왜놈들을 쳐물리친 우리 의병들의 용감성과 기개를 강조하는 한편 침략자들에게 차례질것이란 오직 비참한 죽음뿐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승리한 쌍포전》은 리조시기 전투에 직접 참가한 화가에 의하여 창작된것으로 하여 전투분위기를 실감있게 잘 펼쳐보였을뿐아니라 우리 인민들을 새로운 승리와 위훈에로 고무한 전투적인 화폭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다. 또한 임진조국전쟁에서 애국심과 용맹성을 남김없이 떨친 우리 인민의 전투모습을 진실하게 반영한것으로 하여 력사기록적인 귀중한 사료로 된다는데 그 가치가 있는것이다. 리성길은 일반회화도 잘 그렸다고 전해지고있으나 현재 남아있는것이 없어 그 면모는 볼수 없지만 《승리한 쌍포전》 한점만으로도 그가 높은 애국심을 지닌 능력있는 미술가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이렇듯 왜적들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우리 인민들의 애국적투쟁모습을 사실그대로 형상해낸 리성길은 오늘도 우리 민족의 미술사에 빛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