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노비로부터 명화가로 된 리상좌

(1465∼?)
 

 

15세기 후반기에 와서 우리 나라 화가들중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사람은 리상좌라고 보아야 마땅할것이다.

그만큼 리상좌는 그림그리기에 뛰여난 재간을 보여주어 당대 풍경화그림과 인물화분야에서는 으뜸이라고 할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하였다.

그의 자는 공우, 호는 학포였다.

리상좌의 집안은 대대로 량반의 집에서 머슴살이하는 가문이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할아버지는 물론 아버지도 노비라는 불우한 신분적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러한 멍에는 리상좌가 또 걸머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러한 리상좌가 노비로부터 명화가로 된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어느날 량반집 머슴인 상좌는 지게와 낫을 가지고 골안으로 깊숙이 들어갔건만 생각은 항상 그림에만 가있었다. 대대로 종의 자식이니 어려서부터 그에게 맡겨진 일은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가지고 오는것이였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나무하러 산으로 올랐다.

나무를 하다가도 그는 절벽에 올라 벼랑밑을 내려다보는것이 암만해도 싫지 않았다. 피로에 몰려 눈을 감아도 묘하게 생긴 바위들의 모습이 뚜렷이 안겨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조금만 그려보고 나무를 해도 한지게는 채우겠지.》

상좌는 나무꼬챙이로 오솔길이며 흐르는 개울이며 묘하게 생긴 너럭바위들을 정신없이 그려나갔다. 그리고 또 그렸으나 또 그리고만싶어졌다.

어린 나이에 나무를 하면서부터 굳어진 버릇이였다.

아침에 산에 올라 삭정이를 조금 긁어놓고 나무꼬챙이를 주어 그림을 그리느라면 해가 질 때도 있었다.

《아니, 벌써 저녁이 되였구나. 나무를 못했으니 이를 어쩐담.》

급해난 상좌는 하지 못한 나무를 보충하려고 허겁지겁 낫을 휘둘러댔지만 한짐을 채운다는것이 그리 쉬운것은 아니였다. 이런 날이면 보리밥 한덩이도 차례지지 않았다.

주인은 해종일 놀기만 했다느니, 낮잠만 잤다느니 하면서 눈알을 부라리며 온갖 행패를 다 해댔다.

리상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림마저 편안히 그릴수 없는 자기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무를 조금 해놓고 벼랑끝에 홀로 선 아름다운 소나무를 그려나가는데 웬 어른이 불쑥 나타나더니 그가 그린 소나무를 한참이나 의미있게 바라보는것이였다.

《얘야, 너의 이름이 무어냐?》

당황해진 상좌는 그저 저 아래마을 량반댁 종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래 생원댁 종이란 말이냐? 녀석두, 허허…》

어른은 얼굴에 미소를 띠우더니 이번에는 통에서 참지를 꺼내여 돌로 지질러놓는것이였다. 그리고 먹물이 담긴 연적을 그앞에 밀어놓으면서 그의 손을 잡아당기였다.

《이자 그리던 로송을 여기에 그려보아라.》

상좌는 어찌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래도 어른이 련속 재촉을 하자 상좌는 붓을 들고 늙은 소나무를 재빨리 그려놓았다.

어린 나무군이 그린 늙은 소나무는 과연 신통했다. 절벽의 소나무와 그림을 번갈아 보던 량반은 상좌에게 이름을 물어보고나서 목책에 적어넣더니 그날 하지 못한 나무값을 물어주는것이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주인이 갑자기 상좌를 사랑방으로 불러들이였다.

주인은 상좌가 방안에 들어오자 《자, 내 화상을 그려보아라.》 하고 말하는것이였다.

상좌는 어리둥절했으나 마음을 다잡고 군말없이 주인의 화상을 그려나갔다.

한참후 완성된 그림을 보는 주인의 얼굴은 금시 밝아지는것이였다.

그림에 그려진 화상이 자기의 모습과 신통히도 같았던것이였다. 기분이 몹시 좋아진 주인은 손주며 아들들을 차례로 불러들이여 참지에 그들의 화상을 그리도록 하였다. 어느 하나도 흠이 없었다.
주인은 자기 집 머슴애가 이런 재간둥이인줄을 모르다가 며칠전에 다른 사람의 귀띔으로 알게 된것이였다.

그날 주인은 리상좌에게 무명옷 한벌을 주고 밥상을 차려주었다.

종의 자식으로 태여나 언제 한번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고 천대와 멸시속에서 살아온 그였지만 음식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집에서 앓고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던것이다.

이 눈치를 알아챈 행랑어멈이 주인 몰래 제꺽 바가지에 음식을 담아주었다. 상좌가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음식을 대접하려고 집으로 달려오니 이미 아버지는 숨을 거둔 뒤였다. 아버지를 목메여 찾고찾았지만 굳어진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어찌다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가져온 음식이 그만 제상에 놓일줄이야!

그후 리상좌의 이름이 항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여 당시 왕이였던 중종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다.

그가 비천한 노비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봉건국가의 전문적인 미술창작기관인 도화서의 화원으로 들어간데 대하여 어숙권의 《패관잡기》를 비롯한 옛 문헌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리상좌는 량반선비인 모의 종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여났는데 그의 풍경그림과 인물그림은 한때 세상에서 으뜸으로 여겼다.》

계속하여 기록에서는 리상좌가 그림을 하도 잘 그린 덕에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도화서 화원으로 된데 대하여 전하고있다.

이상에서 알수 있는것처럼 리상좌가 노비출신으로서는 감히 생각할수도 없는 도화서의 화원으로 되고 그의 노비신분도 량인으로 바뀌였다고 볼 때 그의 그림재주가 얼마나 뛰여났는가 하는것을 가히 짐작할수가 있다.

도화서에 들어간 리상좌는 수많은 풍경화와 인물화를 그렸는데 그 수법과 기량에서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경지에 올라섰다.

그가 더욱 이름을 떨치게 된것은 《성난 범(맹호도)》을 그려 성공을 거둔 때부터였다고 한다.

도화서의 화원으로 있던 어느날 리상좌는 당시 리조봉건정부에서 례조참판벼슬을 하고있던 인물로부터 성난 호랑이를 그려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쉬이 대답하고 붓을 들었으나 정작 성난 호랑이의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아 그는 붓을 들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있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아버지의 제사날이 되여 어머니가 마련한 간소한 제상에 마주앉고보니 남의 집 종으로 온갖 고생을 다하다가 돌아간 아버지의 애절한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채찍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자기를 사정없이 내리치며 구박하던 주인의 모습이 되새겨졌다.

순간 주인의 얼굴은 무서운 호랑이가 되여 눈에 불꽃을 날리며 으르렁대는것이였다.

드디여 며칠간 모색하던 맹호의 모습이 떠오르자 제상에서 물러난 그는 붓을 들었다. 쭉쭉 선이 그어지고 붓이 달리였다.

금시 살아서 꿈틀거리는 성난 호랑이의 형상이 나타났다.

번개가 번뜩이고 천둥이 울부짖는 속에 금시 달려나올듯 으르렁거리는 호랑이는 억센 다리로 땅을 꽉 눌러디디고 서있는데 날카로운 발톱이 번뜩인다. 범은 아가리를 한껏 벌리고 뢰성벽력같은 소리를 내지르는듯싶다.

맹호의 모습이 제대로 나타난것이다.

리상좌는 례조참판의 집으로 찾아가 그림을 내놓았다.

완성된 그림을 펼쳐들자 례조참판은 그림을 보는 순간 흠칫 굳어져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였다.

그림속의 호랑이가 불을 토하는 눈망울로 자기를 노려보는것이 아닌가! 금시라도 날카로운 발톱과 억센 이발로 덮쳐들것만 같은 환각이 일어났던것이다.

그림은 성공적이였다.

하기에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감탄을 터치며 그자리에서 떠날줄 몰라했다.

도화서의 화원이 된 후 리상좌는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그렸는데 오늘까지 전해져오는것은 몇점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 대표적인것이 《달밤에 소나무밑을 거닐며(송하보월도)》이다.

그림은 힘있는 필치와 강한 기백, 날카로운 극성을 띤 형상으로 불합리한 당대 현실에 대한 항거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있다.

이 그림을 그릴 때의 일이다.

어느날 그는 산수화의 구도를 잡기 위해 옛날 나무를 하던 절벽의 소나무밑으로 갔다. 오래간만에 오니 종노릇하던 옛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저앉아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림을 보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경사진 대각선구도속에 배치한 깎아지른듯 한 가파로운 벼랑우에 모진 비바람에 시달려 우불구불 자란 해묵은 소나무가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거연히 서있고 그밑으로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낮은 야산과 벼랑아래길우로 한 늙은이가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고있다. 그리고 소나무 웃쪽 저 멀리 밤하늘에는 구름에 가리워진 달이 어슴푸레 보인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려온 소나무는 마디마디 구불었으나 휘몰아치는 역풍을 맞받아 꿋꿋이 서있으며 그아래 인물들도 세찬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면서 허공에 뜬 달을 올려다보며 걸음을 다그치고있다.

그림은 모진 풍상을 이겨내고 억센 자세로 솟은 늙은 소나무의 형상을 통하여 화가자신뿐아니라 당시 우리 인민의 강의한 의지와 억센 기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있다.

그림에서는 당시 량반사대부들이 추구하던 안일하고 평온한 정서, 생활분위기와는 달리 벅찬 현실과 우리 인민의 굳센 기개가 강하게 안겨오고있다.

그림은 노비출신의 화가가 그린것으로 하여 당시 인민들의 기백이 넘쳐흘렀고 당대의 안온한 그림들과 대조되였다.

리상좌의 작품들은 그 누구의 그림보다 현실에 대한 비판과 인민들의 항거정신이 그대로 표현되고있으며 주되는 대상을 정면에 배치하고 거기에 모든 세부들을 집중시킨 구도조직과 격동적인 형태묘사, 긴장한 분위기를 강조한 독특한 형상으로 하여 리조미술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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