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례성강도》로 이름을 남긴 리녕

(12세기 전반기)

 

 

우리 민족의 력사에서 첫 통일국가로 등장한 고려는 정치와 경제, 문화가 발전하여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고려가 그처럼 이름을 떨칠수 있게 된것은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횡포무도한 외래침략자들과 맞서 나라를 지켜냈을뿐아니라 발전된 경제와 문화가 세상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기때문이였다.

특히 12세기 전반기 고려에서는 문화가 상당히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우리 선조들은 유럽보다 300년이나 앞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하였고 8만대장경과 질좋은 문방구류(종이, 붓, 먹, 벼루) 그리고 세상사람들이 천하명물, 보배로 여기는 비색상감자기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문화의 발전으로 하여 이 시기 무역상인들이 앞을 다투어 례성강하구로 몰려들었다.

당시 고려의 수도 개경앞을 지나흐르는 례성강하구의 벽란도라는 항구에는 무역하러 오는 송나라상인들과 일본상인들, 심지어 저 멀리 아라비아상인들까지 찾아와 무역활동을 진행하여 항구가 한시도 조용할 사이가 없었다.

바로 이와 같은 고려의 발전된 무역활동을 생동하게 형상한 화가가 12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리녕이였다.

그는 명화로 수많은 사람들을 경탄시키기도 하였다.

리녕은 젊었을 때부터 명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특기는 아름다운 풍경을 잘 형상해낸것이였는데 특히 조선의 자연풍경을 그리는데서는 당시 그를 릉가할 사람이 없었다. 고려왕 인종과 송나라왕 휘종은 그림을 대단히 좋아한 왕들이였다. 하여 두 나라사이에 사신들이 래왕할 때면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반드시 일행에 끼여 많은 역할을 하였으며 장사군들까지도 그림을 가지고 거래하는 일이 많았다. 고려의 소문난 명화가 리녕이 송나라왕 휘종을 감탄시킨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한번은 리녕이 사신을 따라 송나라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리녕과 같은 재능있는 고려의 화가가 자기 나라를 방문한것을 알게 된 휘종은 그에게 좋은 그림 한폭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리녕은 왕의 부탁인지라 그 요청을 쾌히 접수하고 우리 나라의 례성강풍경을 성의껏 그려주었다. 원래 풍경화에 뛰여난 재능을 가지고있던 리녕이 이웃나라 왕의 요구로 그린 그림이니 훌륭한 명화가 될것은 더 말할나위가 없었다.

그림을 좋아하고 특히 명화를 많이 보아온 휘종이였지만 리녕의 그림을 보자 무릎을 탁 치면서 《고려의 화가로서 외교사절을 따라온 사람이 많았지만 리녕과 같이 그림그리는 수법이 절묘한 사람은 처음 본다.》라고 하면서 찬탄하여마지 않았다. 그러면서 리녕을 극진히 환대하였을뿐아니라 자기가 데리고있는 재간있는 벼슬아치들에게 령을 내려 리녕에게서 그림그리는 법을 배우도록 하였다.

신분적으로 보아도 궁중에 있는 벼슬아치들과 그림그리는 화공은 대비조차 안되는 그 시기에 사신을 따라온 다른 나라의 화가에게 자기 나라의 벼슬아치를 붙여 그림공부를 시킨다는것은 당시까지는 외교관례상 있어보지 못한 희한한 일이였다.

이는 그만큼 리녕의 그림이 매우 뛰여나 휘종의 마음을 휘여잡았다는것을 보여준다.

송나라왕을 감탄시킨 명화가 리녕은 어렸을 때 리준이라는 사람에게서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리준이는 그림을 잘 그렸으나 성격이 괴벽하여 남이 잘되는것을 시기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자기 후배들이 아무리 그림재간이 좋아도 칭찬하거나 내세워주지 않았다.

언젠가 한번은 인종이 이 심술궂은 리준이를 초청하여 잘 그린 풍경화 한편을 보여준 일이 있었다.

그때 인종이 내놓은 풍경화는 리녕이 그린 그림이였다.

리준이는 그 그림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동안 말없이 들여다보더니 인종에게 아뢰기를 《이 그림이 만약 다른 나라에 있었다면 신은 천금을 주고서라도 꼭 사겠나이다.》라고 하였다. 후배들의 그림을 좀처럼 좋게 평가하지 않는 심술궂은 리준이라 할지라도 리녕의 명화앞에서는 저절로 찬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던것이다.

리녕의 풍경그림은 그때 여러 나라에서 아주 진귀한 보물로 취급되였는데 그 솜씨가 너무도 신기하여 보는 사람들이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느날 고려왕궁에서는 참으로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송나라상인이 고려왕에게 선물로 바친 명화가 다름아닌 리녕이 그린것이라고 알려졌기때문이였다.

당시 고려의 수도 개경은 전례없이 흥성거렸다. 그것은 송나라사신이 고려에 큰 규모의 사절단을 데리고 왔는데 그를 따라온 장사군들이 무역거래를 하느라고 분주히 돌아치고 구경군들도 많이 떨쳐나섰기때문이였다.

고려왕 인종은 사신일행을 왕궁에 불러들여 만나게 되였는데 이때 같이 따라온 일행은 왕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많은 선물을 바쳤다. 그 선물들중에는 특별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훌륭한 그림 한폭이 있었다.

인종은 그 그림을 보자 눈빛이 달라졌다. 그것은 송나라사신이 그림을 좋아하는 고려왕을 위해 송나라장사군들을 추동하여 특별히 많은 돈을 들여 사가지고온 명화였다.

인종이 대단히 기뻐하는것을 본 사신은 이 그림은 자기 나라에서도 가장 귀중한 보배로 여긴다고 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였다. 인종은 그림수법이 어딘지 모르게 낯익어보였으나 사신의 설명에 끌려들어 좋은 명화를 또 한폭 얻었다고 못내 기뻐하였다. 그는 선물로 받은 이 훌륭한 명화를 자기 혼자 보기가 아쉬워 리녕을 불렀다.

리녕과 함께 명화를 감상도 하고 이런 그림을 얻은것을 자랑도 하고싶었던것이다.

그런데 리녕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모양을 본 인종은 리녕같이 뛰여난 화가도 보기 드문 명화에 크게 감탄한것이라고 제나름으로 해석하면서 만족하여 물었다.

《그대도 이런 명화는 과시 처음 보는것이냐?》

리녕의 대답은 왕을 놀라게 하였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 그림은 신이 그린것인줄로 아뢰옵니다.》

이번에는 인종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대가 잘못 본것이 아니냐? 이 그림은 방금 송나라사신이 그 나라에서 구해다가 바친것이니라. 수천금을 주고 산 그 나라의 제일가는 보물인데…》

《신이 어느 앞이라고 감히 거짓말을 하오리까. 이 그림은 분명 신이 그린것이 틀림없는줄로 아뢰나이다.》

《과연 그러하다면 네 무엇으로 표적을 삼을수 있느냐?》

《그 그림을 신에게 주시면 이 자리에서 표적을 찾겠사오이다.》

인종은 그의 말을 듣고보니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어딘지 모르게 화법이 낯익어보이는 느낌을 받았던 생각이 되살아났다. 그래 반신반의하면서 그림을 리녕에게 내주었다.

리녕은 그림을 받아들고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이름할수 없는 미묘하고 착잡한 빛이 어리였다.

오래전에 자기가 온넋을 다 쏟아부은 창조물을 뜻밖에 다시 보게 된 감회라고 할가, 기쁨이라고 할가, 외국의 보물로 되여버린 미술작품을 보게 된 창작가의 서글픔이랄가.

이윽고 리녕은 그 그림을 살짝 뒤집었다. 그리고 그 그림의 뒤면에 풀로 붙인 자리를 자신만만하게 뜯었다.

인종은 저러다가 귀한 그림을 손상시키지 않을가 하여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좌우에 서있던 고관대작들도 임금에게 올린 외국사람의 값비싼 선물에 함부로 손을 대는 그 무엄한 행동에 간이 콩알만 해졌다.

그러거나말거나 리녕은 그림판뒤에 덧붙인것을 깐깐히 다 뜯어내고나서 그 그림을 왕에게 도로 바치였다. 풀로 봉한것을 뜯은 자리에는 과연 리녕이 그렸다는 글자가 또렷하게 적혀있었다.

인종은 다시한번 크게 놀랐다.

(이 리녕이 이웃나라 사람들도 제 나라의 보배로 여길만큼 훌륭한 그림을 그렸단 말인가. 그러니 이 사람이야말로 세상에 그 누구도 견주지 못할 재능을 지니고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인종에게는 고려땅에 리녕 같은 화가가 있다는것이 더없이 자랑스럽고 기쁘게 느껴졌다.

이처럼 한폭의 명화가 인종을 그토록 경탄시킬수 있었던것은 리녕의 그림솜씨가 훌륭하였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인종은 나라의 귀중한 보물인 리녕의 그림들이 외국으로 거침없이 빠져나가는데 대해서는 가슴아프게 생각할줄 몰랐다.

이렇듯 리녕은 12세기 전반기 고려의 발전된 회화수준을 남김없이 보여줌으로써 국내는 물론 이웃나라들에까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한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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