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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계적인 걸작 봉덕사종제작에 기여한 박한미
(8세기)
언제인가 어느 한 나라 방송국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종소리를 록음하여 방송으로 내보내면서 인기투표를 진행하였다. 여기에서는 우리 나라의 봉덕사종과 함께 다른 나라의 종들이 최종결승경연에 출품되였다. 어느 종이 음색이 더 맑고 우아하며 여운이 클것인가? 세계각국의 통신보도수단들의 이목이 여기에 집중되였다. 드디여 종이 울렸다. 금구슬을 굴리는듯 하면서도 아득한 석굴에서 메아리치는듯 은은하고 우아하며 여운이 깊은 종소리! 맑고 긴 여운을 이루며 한없이 퍼져나가는 봉덕사종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한결같이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종은 이 경연에서 단연 1위를 하였고 세계는 조선의 봉덕사종에 대하여 알게 되였다. 최종결승경연에 출품된 다른 나라의 종들에 비해 근 천년이나 앞서 만든 봉덕사종은 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이 깃든 창조물이다. 하기에 봉덕사종소리를 감상한 도이췰란드 국립박물관 동양미술부장 크이므에르는 봉덕사종에 대하여 《이것은 조선에서 제일이라기보다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종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박물관이 될것이다.》라고 하면서 부러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을 주조한 기술자들중의 한사람인 박한미는 후기신라시기에 활동한 재능있는 공예가, 주조기술자였다. 8세기 후반기 후기신라에서는 불교가 그 어느때보다도 크게 장려되고있었다. 이 시기 봉건통치배들은 전국도처에 절들을 대대적으로 건설하였을뿐아니라 거기에 필요한 기물들도 《최상》의 수준에서 제작하도록 강요하였다. 특히 종을 주조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돌렸다. 종은 원래 절에서 불교행사를 진행할 때 시간을 알려주는 신호용으로 제작되였다. 그러다가 불교의 지위가 점차 높아지게 되자 종도 불교행사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기물의 하나로 되였다. 즉 이 시기에 종소리는 《부처》의 목소리로 간주되였던것이다.
그리하여 봉건국가는 종주조기술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고 크고 화려한 종들을 주조하도록 하였다. 봉덕사종의 제작과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770년 후기신라의 혜공왕(재위 765∼780)은 봉덕사에 종을 안치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날째 문무백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그러한 때 한 관리가 혜공왕에게 박한미를 비롯한 4명의 기술자들이 힘과 지혜를 합치면 능히 훌륭한 종을 만들수 있다고 여쭈었다. 혜공왕은 그 말을 듣고 드디여 결심을 내려 왕명으로 종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박한미는 여러 기술자들과 힘을 합쳐 종을 주조하는데 달라붙었다. 날과 달이 바뀌여 어느덧 종을 만들기 시작한 때로부터 여러달이 되여왔지만 종은 쉬이 완성되지 못하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현대의 과학기술상식으로 상상하여보아도 12만근의 끓는 동을 거푸집에 일시에 부을 때 그 압력은 대단한것이다. 또한 쇠물이 쏟아질 때에는 거품이 일어나는데 이때 공기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면 기포가 생기는것은 피할수 없는것이다. 하다면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이러한 난문제들을 1 300여년전의 우리의 조상들은 어떻게 해결하였을가? 생각할수록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에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치지 않을수 없다. 아무튼 771년 12월에 드디여 종이 성과적으로 주조되여 봉덕사에 설치되였으며 신라31대왕인 성덕왕(재위 702∼737)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 종을 일명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종이 완성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봉덕사를 찾은 혜공왕은 너무도 황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감탄만 하였다고 한다. 종의 명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신종이 만들어지니 그 모습은 산처럼 우뚝하고 그 소리는 룡의 읊조림같아 지상의 끝까지 다하고,
밑으로는 땅속까지 스며들어 보는자는 신기함을 느낄것이요, 소리를 듣는자는 복을 받으리라.》 종의 허리부분에는 제작경위와 담당자, 주조년대 등을 적은 1 000자가 넘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물론 봉덕사종은 봉건통치배들이 인민들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목적밑에 만들어졌으며 《에밀레종》전설에서 알수 있듯이 거기에는 당대 인민들의 설음과 원한이 깃들어있다. 박한미를 비롯한 후기신라기술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봉덕사종은 우리 선조들이 제작하여 전해오는 종들가운데서 오래된 종의 하나이다.
종은 소리를 내는 몸통과 종을 걸기 위한 고리로 되여있다. 소리를 내는 몸통은 풍만한 느낌을 주도록
조형적으로 처리되였다. 어깨부분과 아구리부분에는 띠형식을 두르고 보상화무늬를 새겼다. 어깨부분의 장식아래에는 유곽이 도드라져있고 그
유곽안에 다른 장식으로 돋을새김하였다. 넓은 공간에는 비천을 부각시켰으며 종의 제작과 관련한 글자들이 새겨져있고 몸통좌우에 2개의
당좌가 있다. 종은 아무리 거대하여도 그 크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태양처럼 조형미의 우아함과 섬세성, 화려함으로 하여 그 모양이 하나의 작은 세공품을 보는듯싶다. 무게가 12만근이나 되는 봉덕사종은 높이가 3. 33m, 아구리직경이 2. 47m, 아구리부분의 두께가 26cm로서 현재 남아있는 종가운데서 제일 큰 종이다. 봉덕사종의 특징은 룡의 형상과 몸통의 조화관계가 매우 잘 처리된것이며 표현성있는 장식무늬들이 째인 구도로서 조화된것이다. 또한 모든 요소들에 조선종의 특성과 품위가 반영되여 그 우수성이 남김없이 과시되여있는것이다. 더우기 봉덕사종은 그 방대한 규모와 조형미, 높은 주조기술도 자랑할만 하지만 아름답고 은은하며 우아하고 선명한 종소리 또한 더욱 유명하다. 봉덕사종이 그 명성을 떨치게 된것은 그 특이한 종소리때문이기도 하다. 종의 음질은 종의 재료와 주조방법, 열처리조건, 치는 방법에 관계된다. 맑게 개인 날에는 100리밖에서도 그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봉덕사종은 박한미를 비롯한 공예가들과 주조기술자들 그리고 인민들의 슬기와 재능이 그대로 집약되여있는것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귀중한 유산의 하나로 되고있다. 하기에 력사에서는 상원사종, 연복사종 등과 함께 봉덕사종을 우리 나라 5대명종의 하나로 전해내려오고있는것이다. 세계적인 걸작 봉덕사종의 제작에 자기의 재능과 온넋을 바친것으로 하여 박한미는 재능있는 공예가, 주조기술자로 우리 민족사에 전해지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