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제7장 야망의 철새

 

며칠후 방억세는 성관호와 함께 한강상류의 울창한 수림속에 있는 《동백꽃》이라는 화려한 간판을 걸고있는 술집으로 갔다.

어제 저녁에는 성관호가 서울장안에 있는 동료들을 불러들여 푸짐한 연회를 차렸다. 처남의 하산을 축하한다는 명분을 세운 연회였다.

연회참가자들속에는 죽창대시절의 동료들이 과반수였다. 거기에 방억세가 《국방경비대》시절에 사귀였던 동료들과 성관호의 군부계통 동료들도 초대를 받고 모여왔다.

모두가 방억세의 하산을 의아해하면서도 축하하고 미래를 축복하였다.

연회에는 장수덕이도 잠간 얼굴을 비쳤다가 방억세의 두손을 꽉 잡아주고는 바쁜 일이 있어 실례한다며 인차 자리를 떴다.

성관호가 그를 바래워주다가 박정희를 만날 일이 있으니 그 사람을 불러내달라고 부탁하였다.

오늘 새벽에 장수덕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점심무렵에 《동백꽃》술집에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두사람은 효자동으로 택시를 불러가지고 강변도로를 따라 이곳에 점심시간을 맞추어 왔던것이다.

술집어귀에서 차에서 내린 그들은 《여기서 다리쉼을 하고 들어가는게 어떨가?》 하는 성관호의 소리에 길가의 잔디우에 앉았다.

성관호는 동백꽃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술집모양이며 그에 어울리도록 동백나무를 기본으로 갖가지 나무와 꽃으로 아름답게 단장한 술집의 화사한 풍치에 눈을 주다가 넌지시 물었다.

《박정희를 다른데서 만나는게 어떨려는지?… 이런 곳에는 눈과 귀가 너무 밝은데…》

《글쎄-》

방억세는 성관호의 념려가 이내 가량이 되여 자신없는 어조로 대꾸하였다.

술집에는 벽에도 식탁에도 도청기가 붙어있고 접대원들도 특무대나 경찰의 끄나불들이 적지 않다는 소리다. 그런 곳에서 연금상태에 묶이워있는 사람을 불러내 만나게 되므로 감시를 예견해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그러나 방억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걸음을 옮기며 결연히 자기 립장을 밝혔다.

《아니, 만나러 갑시다. 어제 저녁에 동료들에게 나를 공개했는데 이젠 공개적으로 법과 맞서야 하지 않겠소. 이왕 불질을 시작하였으니 밀고나가야지.

어쨌든 오라는 져야겠는데 미룰게 있소. 모든걸 당기는게 좋소.》

방억세의 배심있는 말에 성관호는 하는수 없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자기 처남의 거동에서 비장하고도 처절한 빛을 찾아보자 코잔등이 쩡하게 저려왔다.

처남은 모든것을 각오하고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였다.

누구도 예측할수 없는 싸움이다. 이제 당장 끌려가 형틀에 오를수도 있고 아차실수하면 고문장에서, 사형장에서 피를 뿌리고 산화할수도 있다.

아! 아!… 처남의 고행길은 언제면 끝날가? 정말 저 사람은 이 서울땅에서 미국놈들을 들부셔버리고야 이 싸움에서 물러서게 될가?

성관호는 일변 가슴에 서려드는 한을 뿜어올리며 비분강개한 어조로 탄식해마지 않았다.

《에, 다들 모진 사람들이야. 죽음을 향해 부나비처럼 뛰여든다니까. 좋네!

처남을 위해서 당장 오늘중으로 경인지역 사령부에 나가야 되겠군. 아니 <경무대>부터 가야지. 거기서 사령관지휘봉부터 따가져야지. 현역장성의 처남한테 올가미를 씌우겠나. 그렇다면야 함께 목을 내대야지.》

성관호는 가슴을 내밀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가는 처남의 거연한 모습에 저으기 감동되여 따라일어서며 비분이 서린 어조로 기세를 올렸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방억세를 따라잡자 신중하게 물었다.

《처남은 박정희를 어느 정도 알고있나?》

《거야… 군부안의 동지였다고 할가… 군사조직에서 큰 간부는 아니였어도 요진통길목에서 조직확대를 도와주었소.》

《좀 무식하기는 해도 군인다운 패기와 절도가 마음에 들더구만. 살집이 없는 메마른 얼굴과 철장같이 단단한 입술이며 날카로운 매눈이 장차 일을 칠 화상이였소. 무척 성미가 급하고 조폭해보이는데 지내보면 그렇지 않은것 같기도 하구.》

방억세는 성관호의 인물평에 히죽이 웃었다. 매부가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바로하는것 같다. 방억세는 상종할 때마다 메마른 얼굴과 거기서 날카롭게 번뜩이는 매눈이 어떤 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고 매섭고 인정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어 기분이 잡칠 때가 여러번 있었다.

그런데 이따금 보면 그렇지 않은 면도 있는것 같아 그 인간의 질이 아리숭하다.

《아마도 매부가 옳게 말한것 같소.

그 사람의 형은 대구항쟁에 관여한 사람이였소. 그 사람은 일정시기부터 남도에서 강단이 있고 손탁이 드세고 박식한 사회주의자로 소문났댔소. 항쟁에서 제일 가렬했던 싸움이 지휘부로 정한 대구경찰서에서 벌어졌는데 미군과의 총격전을 지휘하다가 희생되였소. 이를테면 이남에서 벌어진 첫 반미항전의 주요인물의 한사람이였지.

피줄이야 어데 가겠소.… 난 박정희에 대한 총적견해가 나쁘지는 않았소.》

《그 사람 형에 대한 말은 나도 들었소. 헌데 그 사람 아버지라는 위인은 구한국 말기에 의병들을 밀고한 일본놈의 주구였다는 말도 있더구만.》

《아마 그래서 박정희가 해방후에 더 열심히 좌익권에서 뛰여다녔는지 모르지. 그자신도 만주에서 군관학교를 다닐 때 <천황>의 상까지 받았으니 그 죄를 벗는 길이야 좌익말고 어데가 적당하겠소. 사실 해방후에 우익집단은 민족주의세력을 내놓고서는 전탕 친일세력이 옷을 갈아입은데 불과했거던. 그러니 그 사람도 어차피 묵은때를 벗자니 좌로 인생의 노를 저었을거요.》

《그래, 그렇게 보는게 옳을것 같구만. 어찌 보면 기회주의인데… 그러나 리해는 되오. 사람의 변신이란 천태만상이니까.

하지만 그 사람한테 처남을 다 드러내지 마오. 정수철이 보오.

박정희도 지금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있는 때라 짚오래기라도 집어야 할 때가 아닌가. 사람이 한번 배반하면 두번세번 배신한다고도 하오.》

성관호는 아무튼 박정희라는 인간은 손때묻혀 키운 인간이 아니여서 아직도 썩 내키는 기분이 아니였다.

방억세의 말까지 듣고보니 일본군중위가 해방열에 무슨 큰 변고도 없이 좌익회오리에 몸을 실은것이 꼭 철새같은 기질로 짐작이 갔다.

지금은 좌익이 압도적이였던 해방직후의 정세가 바뀌여 우익의 소리가 커지고 좌익이 몰리고있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를 몰아온것은 물론 미강점군이다. 미군이 발통을 박고있는 한 조만간에 대세가 역전되지는 않을것이다.

철새들은 대기의 변화에 민감하다. 철새같은 인간들 역시 대세의 추이에 민감하며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고 변화된 기류에 재빨리 깃을 편다.

박정희가 바로 이러한 인간이 아닐가. 우에서 좌로, 좌에서 다시 우에로…

성관호가 이렇게 종작없는 생각에 잠겨드는데 방억세가 짤막히 대꾸하였다.

《설마 그 사람이 사꾸라야 되였겠소. 그리고 나까지 물어메칠 위인은 아니요. 해방후 이태동안 사생동고하여왔는데… 그 사람이 우에서 좌로 돌아선것은 변신이 아니라 잘못된 인생을 바로잡은 의로운 혁신이라고 생각하오.》

방억세는 자기 수하에 있었던 사람에 대한 매부의 미적지근한 의심에 다소 불쾌해져서 말에 그루를 박아 그를 옹호하였다.

《에, 처남!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지 않소.

처남은 너무 깨끗하고 모질지 못한게 탈이요. 이게 흔히 좌쪽 사람들의 일반적인 우점이기도 하지만 그게 약점이기도 하단 말이요.

하기는 그래서 나도 좌익을 좋아하고 동요도 안방에 앉히고 동생도 그쪽으로 쾌히 떠밀었는지 모르지.…》

《허허, 내 명심하리다.》

방억세는 성관호의 진심으로 되는 충고를 선선히 받아들이며 미소를 지었다.

술집앞에서는 류행을 따라 짧은 치마를 깡뚱하게 차려입고 분화장을 말쑥하게 한 요염하게 생긴 젊은 녀자가 정오의 뙤약볕을 피하여 처마밑에 서있다가 얼른 달려나와 마중하였다.

《저희 <동백꽃>을 찾아주어 고맙습니다.》

녀인은 이마가 발에 닿도록 허리를 숙이고 아양을 떨었다.

《허허, 그러다간 허리가 부러지겠다. 여기 <륙군본부>에서 소령이 오시지 않았나?》

성관호가 애교가 재글재글 끓고있는 녀인의 주먹만 한 얼굴에 눈을 주며 물었다.

《예, 소령님은 6호실에 계십니다.》

안내원은 무릎을 살짝 꺾으며 대답하였다.

젊은 녀인이 앞서는것을 성관호가 무뚝뚝하게 뿌리쳤다.

《됐어. 수고할게 없어. 우리도 눈이 있으니 찾아가면 되는거야.》

《알았사와요.》

안내원은 또다시 무릎을 살짝 꺾으며 살살 녹아내리는 말씨로 대답하고 길을 비켜주었다.

《흥, 서울장안의 구석구석에 양놈노린내가 지독도 하군.》

성관호는 안내원이 서양녀자들처럼 허벅다리가 드러나보이는 짧은 치마를 입고 미국녀인들의 흉내까지 내며 인사하자 처음에는 그런대로 봐두었는데 재차 인사를 받고나니 그게 꼴불견이여서 자못 처량하게 탄식하였다.

방억세가 성관호를 돌아보며 껄껄 웃었다.

《술집에 와서 애매한 아가씨를 흉볼게 있나.

이제 매부가 섬겨야 할 <국부>께서도 서양녀인과 배꼽을 맞추고 양인들을 하내비처럼 섬기는 판인데 뭘 저쯤 가지고 흉보게 됐나.

웃물이 맑아야 아래물이 맑은 법일세. 이런데 와서 군자연하다가는 아가씨들한테 조리돌림을 당하네.》

방억세가 이렇게 빈정거리자 성관호도 오만상을 풀고 쓰겁게 웃었다.

6호실이라는 패쪽을 찾아 방문을 여니 방안을 가로질러간 음식상부터 눈에 띄였다. 술병까지 세워놓은 잘 차린 상이다.

그뒤로 몸이 체소하고 바싹 여윈 사나이가 벽에 허리를 붙이고 눈을 감고있다가 문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반나마 감겨있던 눈시울이 들리더니 거기서 매눈같이 표독스러운 눈에 생기가 반짝거리고 원숭이상이 분명한 칼칼한 얼굴에 반가움이 함씬 젖어올랐다.

사나이는 절도있게 일어나 문턱을 넘어선 그들을 향해 몇걸음 걸어나오다가 한무릎을 꺾고 앉는다.

《선배님들, 박정희 문안드립니다. 찾아주시여 고맙습니다.》

박정희는 두사람앞에 넙적 엎드리더니 이마를 구름노전우에 박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 멋스러운 인사차림이 장중하면서도 진정이 뚝뚝 떨어지는 진국이라 두사람은 얼떠름하여지기까지 하였다.

《성선배님, 선배님들의 은덕을 제 구천에 잦아든들 잊으오리까.》

금시 눈물을 한바가지 쏟아놓을듯 온몸을 떨며 목메여하는 인사에 두사람은 다 가슴이 알알하고 저도 모르게 눈귀에 물기가 핑하니 돌았다.

박정희는 자기가 저승문턱을 넘기 전에 구원된것이 일본군출신장성들이 나서준데 있고 그들이 나서도록 휘동한것이 성관호며 성관호를 움직이도록 부추긴것이 방억세이였을것이라고 속셈을 하여왔던것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특무대에서도 귀띔이 있었고 오늘 아침 장수덕이도 전화로 퉁겨주었다.

《하, 이거 참 일어나라구. 사람 살다가 좋은 일 한번 해준걸 가지고 뭐 이렇게도 극성인가. 난 그저 우리 처남부탁이 하도 각별해서 조금 움직였을따름일세.》

천성이 워낙 솔직한 성관호는 처남을 내세워야 할 자리라 자기는 뒤전에 물러섰다.

《박동무, 일어나오. 우리가 인사받으러 온게 아니요. 박동무는 마땅한 도움을 받았는데 이렇게 하면 피차에 옹색하지 않는가.

살아나왔으니 참 다행이요. 큰 시름이 놓이오.》

성관호와 방억세는 이렇게 말하며 넙적 엎드려 그대로 굳어져버린것 같은 박정희의 팔을 하나씩 잡고 일으켜세웠다.

《그게 어찌 마땅한 일이고 례사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까.》

박정희는 불깃해진 눈언저리를 수건으로 찍어내며 갈린 소리를 냈다.

가뜩이나 여위고 메마른 체질인 박정희의 얼굴이 죽음을 각오한 인간의 처절한 심리적압박감과 고문에 졸아들어 한줌만 해진것이 두사람을 가슴아프게 하였다.

《음, 지독히도 고문을 당했구만. 김창룡의 특무대가 왜정시기 특고(특별고등계형사)보다 더 악착하다고 하더니 헛말이 아니였군.》

방억세는 해방후에 알고지낸 박정희의 처참한 몰골을 가슴아프게 지켜보며 안색을 흐렸다.

《예, 김창룡이 원체 일정때도 만주에서 숱한 항일지사들을 붙잡아 <천황>의 적자로 만든다고 죽이고 병신으로 만들고 갖은 못된짓을 다했지요. 김창룡, 서남룡 이놈! 찢어발가도 씨원치 않을 백정놈!

다 계산해두었습니다. 어느 놈이 몇대, 어느 놈이 고함질 몇번…

그놈들이 웃고 조롱하는 모양까지 다 기억해놓았습니다.

언젠가는 회계를 치를 때가 있을겁니다. 꼭 때가 올겁니다.》

박정희는 카랑카랑한 어조로 씹어뱉듯 저주를 퍼붓는데 그 매눈에 살기가 번뜩거리고 그 졸아든 얼굴이 금시 먹이를 노리는 독사처럼 표변해서 두사람을 소름끼치게 하였다.

김창룡은 《륙군정보국》의 특무대장이고 서남룡은 서울《검찰청》의 부장검사이다.

다들 일본놈들의 턱찌끼를 주어먹으며 애국지사들을 지독하게 고문하고 학살하던 친일매국노들이다.

이런자들이 해방이 되자 재빨리 상전을 바꾸어업고 미국놈들의 식민지통치와 리승만의 《조정》을 지키는 심복포졸들이 되여 피를 물고 날뛰고있는것이다.

방억세도 부지불식간에 이미 이 땅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한자들을 끼고 애국자들을 탄압하는 피비린 놀음을 벌리고있는 리승만일파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수 없었다.

그리고 그놈들의 마수에 걸려들어 피골이 상접해지고 악만이 남아 돌아온 박정희에 대한 련민의 정을 가슴아프게 느끼였다.

얼마나 원한에 사무쳤으면 저렇게 두눈이 숯불처럼 이글거릴가.

방억세가 알고있는 박정희는 좀체로 감정의 희롱에 말려들지 않으며 자기를 좀체로 표현하지도 않는 랭혈의 기질을 가진 쇠붙이같은 인간이였다.

박정희는 소리내여 웃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노염을 쓰는 일도 없었다.

언제나 그 매눈같은것을 차겁게 반들거리며 매사에 생각이 앞서고 언행이 빈틈이 없어 조직활동에서도 믿음이 가군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박정희는 악만 남고 악에 지쳐 리성의 자대가 헝클어져있는 매서운 모습이다.

《이사람, 어서 앉으세… 이거 인사가 거꾸로 되였군. 우리가 사실 상을 차려 고생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을 위로해야 되는건데.

한발 늦게 오다나니 인사불성이 되고말았군.》

성관호가 박정희를 부축하여 상앞에 앉히며 진심으로 미안쩍어하였다.

방억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잘 차려놓은 식탁을 보며 동감이라는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 참, 선배님들, 그러지 마십시오. 옥살이에서 풀려났어두 어느 놈 하나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살이라도 베줄듯 감겨돌던 친구들도 저들에게 죄가 나누어질가봐 오금이 저리는지 머리빡 잠시 들이미는 놈도 없구요.

그래도 절 찾아주신분은 두 선배님들뿐입지요. 이모저모로 기울여주신 선배님들의 큰 덕에 이거 무슨 성의라고 말붙일게 있겠습니까?》

이윽고 박정희가 설설 끓어오르던 한을 자제하고 성관호와 방억세에게 무릎을 꿇고 따끈하게 덥힌 술을 따랐다.

《어, 박동무도 한잔 같이 들자구.》

방억세가 박정희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들은 말없이 술잔을 찧고 마셨다.

박정희가 다시 술주전자를 드는데 미닫이문이 소리없이 열리더니 두볼에 마마자국이 숭숭 나있는 젊은 사내얼굴이 피끗 나타났다가 다시 문이 스르르 닫겼다.

방억세는 그 얽둑배기가 자기들을 힐끗 바라보는 눈길이 불량해보여 자기도 모르게 얼음덩이를 삼킨듯 속이 서늘해왔다.

그런데 박정희가 문밖을 향하여 크게 소리쳤다.

《여 강중위, 이리 온… 싸게싸게(빨리빨리) 들어오라구. 어서!》

박정희는 얼결에 남도의 사투리를 써가며 불렀다.

그 소리가 막내동생을 밥상에 불러들이는 소리처럼 정겨웁고 구수한 멋이 있었다. 마치도 박정희의 또 다른 얼굴이 비껴있는듯싶다.

이어 문이 다시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머리칼이 밤송이처럼 부드드한 얽둑배기가 어색한 미소를 피워물고 들어섰다.

《이리 와서 술 한잔씩 올려야지. 우리 선배님들이야. 그리고 선배님들의 잔도 받구…

인사받으십시오. 저 사람인즉 김창룡이가 내 바지가랭이를 물고있으라고 붙여놓은 사냥개올시다.》

박정희가 방안에 들어선 사복쟁이특무를 소개하자 얽둑배기는 그들을 향해 굽석굽석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박정희를 향해 눈을 흘기며 터수없이 불평을 늘어놓는다.

《에, 소령님, <대한민국> 특무대중위를 그렇게 불러도 되능기라? 그것도 가택에 묶이워있는 소령님신세에…》

그러면서도 성관호와 방억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방억세로부터 한잔 받아들고는 황송스럽게 팔을 떨었다.

《하하, 뭘 그래. 강중위, 너희들 특무대야 사냥개처럼 싸다니며 사냥개처럼 먹이감을 찾아내서 사냥개처럼 물어메치는게 업이 안야?

그러게 사냥개라는 말 듣지 않겠으면 제 사람 물어먹는 특무대똥별을 뜯어치워. 전장터에 나가 죽는게 화랑도고 용사야.》

《그게 다 제 마음대로 되능기라?

그런데 소령님, 이자 한 말 워쩌노? 그 말 한마디면 더 보태지 않아도 우리 대장님 보쌈에 영낙없이 들게 될거라.》

《하하… 그러니 싸게싸게 이 소령님 물어넣어. 그래야 강중위도 똥별 하나 더 달아 대위님소리 듣지. 그 바스락별 두알 말이야, 체통값도 안돼.》

《두어마디만 더 해주소. 참 이자 방금 한 말 딱 부러지게 적어놓아야 하능기라.》

《에, 시끄럽다. 멀찌감치 비켜있어. 우리 선배님들 늬들같은 사냥개족속은 좋아 안하신다. 너 이분이 누구신지 알아? 경인지역 사령관이시다. 장차 군통수 되실분이구. 너 방금 받은 술잔이 사실인즉 영광스러운 잔이다.》

《예? 경인지역 사령관?…》

순간 허리를 꺼꺼부정해가지고 술잔을 입술에 갖다붙이던 얽둑배기가 덴겁을 한듯 화닥닥 놀라 허리를 쭉 펴고 마른명태처럼 꼿꼿해졌다.

덤벼치는통에 입에 올라갔던 술잔이 꺼꾸로 서면서 그 《영광스러운 술》이 바지가랭이에 쏟아지고말았다. 중위는 두눈이 골통에 들어박힌듯 우멍해져서 사뭇 공경스럽게 성관호를 바라보았다.

《허허, 술판에서 뭘 그래? 맞잔을 하면 같고같은 술친구가 되는거야. 자, 잔을 내밀라구. 자, 중위, 이리 가까이 오게.》

성관호가 얼이 단박에 빠져버린 얽둑배기를 다독여주듯 곰상스럽게 불러주자 중위는 그제야 생각난듯 술잔을 움켜쥔 오른손을 얼른 귀바퀴에 올려붙이며 방안이 떠나갈듯 소리질렀다.

《사령관님께 축하!》

박정희는 얽둑배기를 보며 미소를 보내다가 방억세도 소개하였다.

《이분은 말이야. 사령관님의 대장하시던분이야. 태백산호랑이라고들 하지.》

《태백산호랑이?… 아니 그럼… 빨치라는 소리라능기요?》

중위는 또다시 와뜰 놀라며 소리치는데 이번에는 그 소리가 폭탄튀는 소리처럼 크다가 뒤끝은 목구멍에 기여들어가는듯싶었다.

《저런, 태백산호랑이가 빨치에만 있나. 강중위도 태백산항일죽창대라는 말 들어봤나. 거기 대장하셨지.》

《태백산항일죽창대?… 들은것 같기도 하구 듣지 못한것 같기두 하구 알쏭달쏭하네요.》

얼쳐버린 얽둑배기의 어리어리한 대답이다.

《거기서 총대장 했단 말이다. 나같은건 왜놈들밑에서 중위노릇이나 할 때 이분은 태백산을 주름잡으며 왜병들과 전쟁을 치른 독립지사란 말이다. 이제는 뭐가 알듯 해?》

박정희는 자기 경력에서 치욕의 얼룩점으로 되여있는 일본군시절까지 시원스럽게 밝히면서 상대를 개올린다.

《저런! 대단하시네. 두분께 다시 축하!》

얽둑배기가 또다시 잽싸게 귀전에 손을 들어올리는데 아첨기와 노죽이 묘하게 얽혀들어 보기가 딱하지 않고 스스럽다.

《됐어. 싸게싸게.》

박정희가 개를 쫓듯 손을 밖으로 내저었다.

《그러면 사냥개는 섭섭한대로 싸게싸게 돌아간다능기라.》

얽둑배기는 숫저운데가 없이 마구 갈겨대는 박정희의 회초리와 너스레에 나 잡아가소 하는 꼴로 서있다가 《각하님들, 그럼 마음편히 드십쇼.》 하고 또다시 철썩 손을 들어올리고는 돌아서서 미닫이문쪽을 향해 걸어갔다.

《어, 강중위, 잠간…》

박정희가 강중위를 돌려세우고 그에게 식탁에 있는 소주병 하나와 오징어봉지를 던져주었다.

얽둑배기가 날아오는 소주병과 오징어봉지를 훈련된 동작으로 멋스럽게 받아든다.

《고맙다능기요.》

강중위는 히쭉거리고는 소주병과 오징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두사람이 주고받는 수작질을 희한해서 지켜보던 방억세와 성관호는 그가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닫아주고 사라지자 한바탕 배를 그러쥐고 웃었다.

《아니, 이건 누가 죄인이고 누가 포졸인지 헛갈리게 되는군. 엉, 하하…》

방억세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너무도 기이할만치 놀랍고 희극적인데가 있어 탄복해마지 않았다.

《하하, 그 친구 반죽좋아. 술친구로는 그저그만이겠는걸.》

성관호는 머리를 흔들며 키득거렸다.

《저런치들과는 이렇게 해야 기맥이 통합니다. 저 곰보가 새빠진 놈처럼 얼치기시늉을 해도 사실은 고단수짜리 흉물이랍니다.

난 뒤날에 장군별을 따면 부관으로 가까이에 두겠다고 약속까지 해놓았습니다. 저 중위는 륙사8기생인데 며칠동안에 뿌다귀 뽑아내고 푹 우려냈습니다. 저눔은 갈데없는 내 사람이니 마음을 놓아두 됩니다.》

《하하… 정말 놀랍소. 포졸을 아예 노복으로 길들인셈인즉 그게 보통수로 될 일이요?!》

《박소령의 솜씨가 과시 일품이요, 하하…》

방억세와 성관호가 다시 웃몸을 흔들며 벌어진 일이 통쾌해서 호탕하게 웃었다.

박정희의 술수와 지모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엇구수한 화폭이였다.

당자는 그게 무슨 재주냐 하는 보짱으로 한번 엷은 미소를 지었을뿐 여전히 차거운 빛을 띠운채 술을 따르고 피맺힌 한을 그냥 꺼내놓았다.

그러나 지금 방억세는 그의 심경이 대단히 팽배해지고 예리해졌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느끼고있었다.

어제날의 상급이였으며 지금은 빨찌산지대장으로 있는 방억세의 뜻밖의 출현이 그에게 커다란 충격과 경계심을 불러내고있는것 같았다.

《박동무, 이렇게 만나자고 한것은 몇가지 알고싶은게 있어서요.

체포된 후의 심문과정과 보석방받을 때까지의 절차상문제들을 말해주오.》

방억세는 상대방의 흥분과 긴장이 쉽게 풀리지 않을것으로 판단하고 서둘러 찾아온 용건을 내놓았다.

《이건 검토입니까?》

박정희가 그 매눈을 잔조롬히 하고 쏘아보며 깔깃깔깃하게 물었다.

도전적인 어조였으나 박정희는 나직이 그리고 자기를 억제하며 차분하게 들이댔다.

방억세가 박정희의 반발에 당황해서 얼른 설명하였다.

《아, 아니… 그건 완전한 오해요. 리유는 박동무의 대답을 다 듣고 이야기하여주겠소.》

성관호가 좌석의 분위기를 고려하여 자기가 빠지는것이 나을듯싶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박정희가 담통이 드세다고 하여도 자기의 직함이 이자리에서는 위압감을 주며 허심한 이야기가 나오지 못하게 할것만은 번연하였다.

그가 자리를 뜨자 한동안 방안에는 무거운 장막이 드리운듯 침중한 분위기가 서렸다.

박정희가 다시 술주전자를 들며 물었다.

《몇잔 더하지 않겠습니까?》

방억세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주전자를 넘겨받아가지고 그의 잔에다가 술을 채웠다. 박정희의 말주머니를 터치게 하자면 목구멍이 뜨끔해져야 될것 같다.

박정희는 연거퍼 석잔을 받아마시고는 사기잔을 식탁에 소리나게 놓았다.

《그놈들! 그 나쁜 놈들!…》

박정희는 취기가 오르자 오히려 낯빛은 더 창백해지고 목소리는 더욱 카랑카랑해졌다.

그는 자기를 취조하던 인간들을 눈앞에 한놈한놈 세워놓고 정수리에 벼락을 내리듯 무지하게 욕설을 들부었다.

《내 언젠가는 그눔들의 사등뼈를 분질러놓고말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지 살아야지요. 그래서 살아온겁니다. 선배님, 날 리해하여주십시오. 박정희 교수대에서 풀려났다고 날 가르써 볼줄 압니다. 그런데 내 그놈들 사등뼈 뚝뚝 분질러놓기 전에는 죽을수 없어 살아온겁니다.

하, 그놈들이 두드려패는게 어찌도 포악스럽던지… 에,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내 대구에서 사범전문 졸업하고 문경에서 훈장노릇 할 때인데 한번은 순시내려온 도청 장학관과 술판에서 대거리한적 있었지요.

그랬다고 군경찰서장놈이 잡아다가 아래도리를 벗겨놓고 어찌도 못되게 노는지… 눈에서 불이 나서 내 언젠가는 내가 맞은 열배를 패주마 하고 별렀습니다.

그래서 경찰서를 나서자마자 사표를 써서 교장에게 던져주고 무작정 만주로 달아뺐지요. 거기서 군관학교 졸업하고 긴칼 차고 문경에 돌아왔지요.

내 그때 그 경찰서장놈을 불러내가지고 그놈의 녀편네앞에서 아래도리를 벗기고 그놈이 하던 식으로 볼기를 치고 따귀를 치고 딱 열배를 패주고 도로 만주에 갔지요.

내 이번에도 꼭 그렇게 하고야말테요.

이걸 보십시오. 손톱눈마다 참대꼬챙이를 꽂아주지 않나, x끝에 전기봉을 들이대지 않나, 매 한대 때려도 신통히도 자리나지 않게 혼을 쭉 뽑아놓는데 에에…

심문이라고 했지요. 왜 일본군중위까지 해먹은 놈이 뻘겋게 사는가 하는거지요. 그리고는 아래우를 다 대라는겁니다.

좀 대주었지요. 안 대주고 견딜수 있나요. 이미 잡혀간 사람들의 이름을 쭉 불렀지요. 그러니 그다음에는 신통히 체포한 사람들만 내놓는다고, 특무대를 우습게 안다고 또 패다가 사형! 합디다.

죽는것 그까짓거 일없는데 못된 놈들을 징벌하지 못하고 너부러진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힙디다. 이를 뿌등뿌등 갈고있는데 하루는 김창룡이 나타나 히물거리면서 뭐 <대통령의 은총으로 보석방이다.> 하더군요.

이게 답니다.… 내 나오면서 다시 맹세했지요. 우선 살자, 그리고는 두고보자! 했지요. 두고보자는겁니다.》

박정희는 돌처럼 속에 옹쳐진 뼈저린 복수의 앙심을 그냥 격렬한 어조에 담으며 교형리들을 타매하였다.

박정희는 또 숨소리를 가라앉히고싶은듯 제손으로 술주전자를 들고 술잔에 채워 연거퍼 석잔을 안주도 집지 않고 마시였다.

그리고나서 안주대신 찬물 한고뿌 쭉 들이켜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에는 흥분을 가셔낸 싸늘한 어조로 자기가 끌려가던 때로부터 나올 때까지 있었던 일들을 비교적 자상하게 들려주었다.

끌려간 동기에 대하여서는 아직도 명확한 단서를 쥐지 못했다고 하였다.

《음… 정말 무지하게 당했구려.》

방억세는 아직도 고문의 흔적이 력력히 남아있는 박정희를 측은한 눈으로 지켜보며 가슴아파하였다.

《진술서는 썼소? 전향을 하면 보도련맹에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던데…》

《진술서요?… 썼지요. 안 쓰고 나오지 못해요. 아무리 뒤에서 큰 힘이 움직였다 하여도 고 이리새끼처럼 포악하고 간특한 김창룡을 돌려세우는게 쉽습니까. 아무리 리승만의 <령>이 내렸다 하여도 김창룡이 그놈인즉 여사여사한 놈이니 풀어놓을수 없다고 장계를 올리면 리승만인들 별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 어떤 정도로 써주었소? 그래도 명예라는것도 있지 않소.》

《물론이지요. 그러나 전 한걸음 물러서기로 결심하였습지요.

<한국>민으로서 <한국>에 충실한다. … 이 말이 문구를 따져봐야 잘못이랄게 없지요. 나 박정희로 말하면 왜나라나 만주국민이 아니라 이 나라 백성임에 틀림없구 또 이 나라를 위해 충실하게 산다는게 전향이랄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깐놈들이 제 운명 두고 어쩌구저쩌구하는건 기분잡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까짓 명예쯤은 죽음의 올가미앞에서는 너무 호사스러운 말입니다.

난 두렵지 않습니다. 그 말 한마디로 목숨만 건져낸다면 그 목숨 가지고 이 나라를 위하여 백곱으로 일할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게 아닙니까. 문제는 <한국>을 위하여 사는것이 어떤것인가, 어떻게 사는가, 이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복수도 그다음 차제의 소리구요.

내 석방되는 날 김창룡에게 한마디 훈시하고 왔습니다.

<당신 지금 이 나라에서 리승만 버금가는 권력자가 되였는데 지금처럼 살지 말라. 아이들이 울다가 김창룡이 온다면 뚝 그친다는 소리를 자랑으로 듣지 말아라.

정적이 많을수록 권력자의 명이 짧아진다는것은 고금동서 정치학의 첫번째 정의이다. 내 말 생각날 때가 있을거다.>

그러니 그녀석이 씩- 웃으며 개방귀같은걸 불어던지고맙디다.

이제 두고보시오. 김창룡이 제가 죄이는 올가미에 목을 들이댈 때가 있을겁니다.》

방억세는 먼 뒤날에 가서 이날에 박정희가 하던 말을 종종 생각하군 하였다. 그리고 참 그녀석이 신통력이 있는것 같다고 제 홀로 혀를 차기도 하였다. 사실 이때로부터 몇해가 지나 김창룡은 자기의 반대파세력에 의하여 구차스러운 심복자의 명을 끝내게 되였던것이다.

방억세는 박정희의 이야기에서 아직은 딱히 줌에 잡히지 않는 상서롭지 않은것을 실감하게 되였다.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것이였다.

《그러니 박동무는 이제부터 조직선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였겠구만.》

《그건?… 아, 물론입지요. 지금의 형편에서 내가 달리 말할수가 없지요.

제목이 진술서지 사실은 자수서나 다름없는것을 쓴 내가 우리 조직의 규률에 용납되지 않을것도 사실이구요. 그렇다고 리승만의 충견으로는 되고싶지도 않구요. 그러니 이 박정희의 출구가 어데 있습니까.

내 나라를 위하여 백의종군하렵니다. 미안합니다. 올챙이같은 주제에 감히 거창한 룡꿈을 꿔서…》

《백의종군이라… 음… 백의종군…》

순간 방억세의 뇌리에 번개치듯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단병접전이라… 오라 그거야.)

그것은 빨찌산대장 주경남의 소리였다. 선서를 마치고난 뒤 주경남이 담배연기를 풀썩풀썩 피워올리며 의미심장하게 속삭이던 일깨움이다.

그러니 이 사람도… 특수임무이니 복선을 칠수도 있지 않을가? 아니 여러 갈래에서 시도할수도 있다.…

아니, 그럴수 없다. 이 사람, 저 사람을 상대로 특별결정을 람발할수는 없다.

그건 무모한짓이며 조직규률위반이다. 우리의 투쟁에 혼선만을 빚어낼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어온 오랜 투사인 주경남이 그걸 모를수 없다.

아니다. 그럴수 없다. 이 사람은 확실히 달라졌다.

방억세는 복수의 갈망으로 번뜩이는 상대방의 매눈을 보면서 이제는 이 사람이 신성한 애국의 대오에서 떨어져나갔다는것을 통절하게 확인하고있었다.

취중에 해보는 화풀이고 고문에 짓이겨지고 교수대라는 삶의 벼랑끝에서 가드라들고만 넋의 처절한 방황이라고 하여도 그가 방금전에 토해놓은 이 소리, 저 소리를 한줄에 꿰여놓으면 이 사람이 당초에 좌익권에는 왜 발을 들여놓았는가 하는 심각한 의문부호가 떠오르게 한다.

진리의 길을 가까스로 따라나섰던 박정희는 이미 사라졌다. 고상한 리념은 이미 그의 체내에서 부식되였다. 앙심깊은 복수의 갈망만이 부서진 얼음장처럼 차겁게 번뜩거린다.

그러나 방억세는 인간의 체질평가를 한자리에서 내리는것이 경솔한짓이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좀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지금 박정희도 그 매눈을 올롱히 해가지고 방억세의 그늘진 얼굴을 매섭게 핥고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나를 왜 여기로 불러냈을가? 빨찌산의 심판을 하려고 파견되여왔을가? 그 심판을 위한 검토를 하러 왔을가?

보석방의 리면을 파헤치려고 나타난것이 틀림없다.

박정희는 점점 방억세가 괴춤에서 권총을 꺼내들것만 같아 순간순간이 아슬아슬해졌다.

박정희가 조직앞에 큰죄를 짓고 감방에서 나온것은 김창룡이밖에 모른다.

그의 입에서 적어도 수백명을 헤아리는 조직성원들의 정체가 김창룡에게 넘어간것이다. 가택연금도 실은 박정희의 요구에 의한 김창룡의 선사품이다.

박정희는 석방과 관련한 주위세계의 따가운 눈초리가 두려웠던것이다.

박정희의 목에 감긴 올가미를 풀어놓아준것은 사실은 일본군출신장교들의 련명탄원서가 아니라 박정희의 투항과 변절이였다.

세상에서 가장 체질이 강하게 다져졌다고, 《철의 인간》이노라 제법 호기를 부리던 사나이가 명줄을 조여드는 올가미를 벗으려고 종시 자기의 밸속까지 뒤집어 바닥채로 교형리들에게 내맡기고만것이다.

뒤날에 박정희와 그의 주변인물들은 수백명의 자기의 동지들을 팔아먹은 비겁한 인간의 추악한 몰골과 패륜의 죄상을 오도하여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진상은 당시 남조선괴뢰군부의 미군고문관으로 근무한 하우스맨이 1990년 11월에 발표한 《하우스맨 회고록》에서 박정희가 군부내부에 있던 적색조직들을 전부 밀고함으로써 사형을 면하고 미군의 제의에 따라 예편되였다고 밝힘으로써 박정희측근세력들의 필사적인 시도는 실패하고말았다.

그러나 지금 박정희는 언제나처럼 표독스러운 눈빛과 활줄처럼 팽팽해진 신경을 삵의 웃음같은 엷은 미소로 가리우고 방억세의 일거일동을 살필뿐이였다.

박정희는 취김에 해보는 분풀이 같은 수작으로 상대의 심리를 묘하게 자극하고 정확히 타산된 흥분과 엄밀하게 조작된 고백으로 자기의 배신과 인간적인 타락에 짙은 연막을 치고있었다.

아니, 원체 박정희는 타고날 때부터 강인하고 정의감이 풍기는듯 한 체질로 권력지향적인 처세와 절기를 따라 움직이는 철새와 같은 배신자의 진속을 가리워가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세상에 짝없을 특종의 괴물이였다.

오가는 바람세에 따라 쉽게 흥분하고 동네집 과부의 설분에도 헤프게 눈물을 날려 인정에 무른 사나이라는 말도 듣군 하던 박정희지만 자기를 지켜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는 보기 드문 집념을 보이고 죽음의 공포앞에서도 그 묘하고 서늘한 삵의 웃음을 잃지 않아 사람들의 구설속에서도 강직한 군인이라는 후한 평가도 받는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건가?)

오기가 뻗친 박정희는 《이제부터는 와신상담할터입니다.》하는 말을 던지고싶어 뒤잔등이 서물서물거렸으나 철장같이 벼려진 얇은 입술을 꽉 감쳐물고 참아냈다.

(때는 오리라. 그때까지… 그때까지 와신상담이다.)

이것은 초불처럼 꺼질번 했던 자기의 생명을 동지 수백명의 목숨과 바꿀 때 박정희가 열번백번 흉벽에 새기고 또 덧새긴 서약이였다.

그는 요즈음 집안에 들어박혀 강중위를 도서실에 보내여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며 중국의 진수가 만들어낸 《삼국지》며 성관호가 번역한 력사에 이름을 쪼아박은 명장들의 전기를 탐독하면서 자기식의 《국가》건설의 경륜을 익혀가고있었다.

그는 벌써 오래전부터 리승만을 《조정》에서 들어내야 할 리유를 여러가지로 묶어 새로운 《정권》건설의 대의명분을 세워놓았다.

제몸 하나도 제대로 가늠 못하는 리승만.

양놈들 없으면 한시간도 《조정》을 견지 못할 리승만.

백성은 안중에 없이 제 하나의 부귀영달만 꿈꾸는 리승만.

김창룡이나 백인엽과 같은 인간백정들을 세워놓고 그 울타리에 싸여 간신히 숨을 쉬는 리승만.

온 남녘땅을 당파와 리념들의 각축전으로 뚜져놓은 리승만.

이밖에도 리승만을 들어내야 할 리유는 많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하여도 리승만의 짓거리에 천에 하나도 마음찰게 없다. 실망과 환멸, 분노만이 덧쌓여갈뿐이다.

《나쁜 놈! 나쁜 놈!》

어리석은 국민, 정치무지렁이인 국민… 박정희는 감방에 들어앉아 리승만의 생각을 할 때면 이렇게 두덜거리기도 하였다.

에, 싸지 싸. 저런 두상은 애초에 권좌에서 들어내야 한다. 무지렁이 백성놈들, 싸지 싸. 굶어죽고 얼어죽고 귀구멍, 눈구멍에 말뚝을 처넣어도 뻐꾹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는 백성놈들, 들구일어날 생각도 못하구… 《지리산》만 가지고 되나. 와짝 들고일어나야지.

썩어빠진 리승만의 《조정》은 솟아나기 바쁘게 사상루각이 되여 흔들리고있어 저대로 둬두어서는 안된다. 처던져야 한다.

헌데… 좌익을 가지고서는 안되겠다. 힘은 세나 그 힘을 쓸줄 모른다. 집안단속이 제대로 되여있지 않고 웃대가리가 좌로 우로 휘청거리는게 도무지 믿음이 안 간다.

그러니… 이 박정희를 시대가 요망하는게 아닐가?

스스로 만들어낸 《시대의 요청》에 박정희는 크게 흥분되여있었다.

아직은 적수공권인 이 박정희가?… 아니… 한점의 불꽃에서 대지를 휩쓰는 불바다가 시작된다. 거대한 권력의 탑은 한알의 모래알같은 인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상등병이였던 히틀러의 제국도, 신문기자나부랭이였던 무쏠리니의 제국도 그때는 허황하기 그지없었던 야망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때가 오리라… 그때까지는 우선은 살아남자… 그다음에는 와신상담이다. 쓸개를 빨며 기다리느라면 권력의 봄은 오리라.

박정희가 감방에서 설계한 인생은 이러하였다.

그런데 그 인생설계가 한방의 총성으로 끝날수도 있다.

우익의 올가미는 투항으로 벗어났지만 투항에 대한 좌익의 총탄세례는 어떻게 피해서야 될가?

지금도 박정희는 인생의 줄타기를 어떻게 하면 다시는 단 한번의 추락도 없이 선택한 목표를 향해 줄기차게 이어나가겠는가 하는 하나의 집념에 골몰하고있었다.

방억세는 박정희의 원숭이같은 상판을 가리우고있는 차가운 미소를 벗겨보려고 했으나 그가 지금 이렇게도 내흉스럽고도 어마어마한 인생의 거대한 천궁을 짓고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수 없었다.

그 권력의 천궁은 흔들림없이 주추돌들이 박히고 벌써 그 우에 기둥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얽둑배기도 바로 그중의 하나로 박정희의 눈에 걸려들어 다듬어지고있는것이다.

방억세는 지금 박정희의 이 엄청난 꿈을 바로 리해할수 없었다.

그는 자제력을 잃은듯싶은 박정희의 분노와 교형리들에 대한 보복의 앙심을 본연의 자세를 벗어난 개인적인 복수의 열로만 생각하였다.

그것이 바로 박정희의 평생의 뿌리로 되여버린 권력에 대한 탐욕의 분풀이라고는 판단하지 못하였다.

야망의 철새가 되여 우에서 좌로, 좌에서 우로 오락가락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다만 그는 백의종군이라는 말의 의미를 좇으면서 그래도 이 사람이 무엇인가 유익한 린접이 되여줄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늠하고있었다.

백의종군이라는 의미는 이쪽저쪽의 구속을 받지 않고 홀로 뜻을 세워 그 뜻을 따르겠다는것인데 그 뜻이란 무얼가?

이제 연금까지 풀리면 혹 새로운 조직체를 만들어보려나?

방억세는 끝내 박정희의 속궁냥을 명확히 가려내지 못한채 단병접전과 백의종군에는 기맥이 통하는데가 있고 그가 만약 조직권에서 물러난다고 하여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래서 은근한 정을 담아 말을 이어갔다.

《박동무, 어쩐지 나하고 비슷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려.》

《비슷한 운명이라니요?》

《난 좌익계에서의 활동을 청산했소.》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박정희의 눈에서 새파란 불꽃이 팡끗 튀여났다. 의혹과 안도의 빛이 얼른거렸다.

그는 방억세가 꺼내놓은 말의 진의를 찾아내고싶어 방억세의 다소 서글픈 빛이 사무쳐오른 얼굴을 유심히 살피였다.

《선배님이 그래서야 안되지요.》

박정희는 처연한 어조로 나직이 웨쳤다.

《선배님은 출신으로 보나 초지일관한 경력으로 보나 그래서는 안됩니다.

<천황>의 감사패까지 받은 주제에 들썩거리는 좌익바람에 잠시잠간 심혼을 던져본 이 박정희와는 달라야지요.》

제법 훈계질이다. 그 매눈에 한껏 진정을 담고있다. 사리분명한 론조가 너무도 절절한데가 있어 하마트면 방억세는 가리우고있는 리면을 실토정할번 하였다.

부지불식간에 방억세는 박정희의 훈계가 자신의 이른바 《백의종군》에 대한 합리화에 불과하다는것을 느꼈다.

결국 나는 좌에서 돌아설수 있지만 너는 돌아서서는 안된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것은 나는 좌에서 돌아설수도 있는 인물이니 량해하여달라는 철면피한 궤변이다. 그리고 그 말의 음조에서 방억세는 자기가 던진 말의 진의를 파헤쳐보려는 간사한 흉심도 엿보았다.

《여보 박동무, 자기에 대하여서는 관대하면서 상대방에 대하여서는 너무 원론적이구만.

나도 이제는 인생궤도를 다시 세우고싶단 말이요.

그래서 오늘 당신의 말을 듣고싶어 찾아온거요. 난 어제 저녁에 옛시절의 동료들앞에서 나의 소신을 밝혔고 도와줄것을 부탁했소.》

《그러니?… 그게 정말이라는겁니까?!》

《난 빨찌산에서 제명되였소. 조직권에서도 물러났소.

물론 이것은 애초에 내가 바란것은 아니였소. 난 다만 일제시기 산에서 다친 부상자리가 도져서 지대장으로서의 활동을 정지시켜달라고 제기하였을뿐이였는데… 이게 동지들에게 무장투쟁에 대한 회피로, 상급의 지시에 대한 도전으로 와전되였던거요.

문제는 내가 그러루한 동지적심판에 흥분되였던데 있었소.

결국 나는 대오에서 추방되였던거요.

그러니 난 어차피 박동무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였소.

헌데 이제 내가 새로운 생활을 접수하기까지는 부득불 서울사찰계의 심문대를 거쳐야 할거요.

나의 진술을 믿어준다면 나 역시 백의종군하게 될것이고 과거행적을 가지고 계산을 하면 나도 감방살이를 해야 될거요.》

《음, 그렇게 됐군요. 선배님의 고충에 동정이 갑니다.》

박정희의 안색이 풀리였으나 그의 눈초리에는 여전히 의혹의 빛이 서려있었다. 방억세의 인생전환이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것이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다소 활기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차라리 군에 복귀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국방경비대>시절에도 고위직제를 차지하고있었는데 사회에 나서야 잡소리가 많을겁니다. 군사라는 방패에 가리우면 여러모로 편리할겁니다.》

《아니, 그렇게는 되지 않을거요. 그리고 난 비록 좌익에서 떠나오기는 했어도 좌익에 총부리를 돌려대는 일은 하지 않을거요.》

《제가 도와드릴수 없는것이 유감이군요.》

《아니, 난 박동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가지 도움을 받았소. 돕는다는게 별거겠소.》

《정상적인 주민생활에 들어가자면 어쨌든 시<검찰청>에서 <보증서>를 받아야 할것입니다. 그러자면… 그눔들과 한번은 마주쳐야 하겠는데…

저눔들이 지독하게 들이대는게 조직관계지요.

선배님의 활동이 쟈들에게 다 일일이 매겨져있겠는데 그게 문제입지요. 쟈들은 반드시 맞바꿈질을 하려고 할겁니다.》

《맞바꿈질? 무슨 바꿈질이요?》

《<보증서>를 주는 대가를 치르라고 할겁니다.》

《<보증서>대가라…》

《그렇습니다. 아마 조직관계를 어느 정도 털어놓는가를 가지고 그 가치를 평가하고 꼭 그만큼 되는 대가를 지불할것입니다.》

《음, 그렇겠구만.》

방억세는 어쩐지 고저가 없이 랭담하게 늘여가는 박정희의 말이 무형의 그물이 되여 가슴을 꽁꽁 조여드는것만 같았다.

산에서 내려올 때부터 예견하지 못하였던 일은 아니였다. 경찰이나 검찰이나 바로 그것부터 받아내려고 덤벼들것은 뻔하다.

그런데 박정희로부터 그에 대한 경종을 무겁게 접하고나니 더욱 골머리가 쑤셔나고 속이 착잡해졌다.

방억세는 마치도 박정희가 심문관이기나 한듯 분통을 터뜨려놓았다.
《내가 서울을 떠난지가 한달이 되였고 군부안의 조직들이 거의다 파괴되였는데 내가 뭘 불어먹을게 있소?!

말도 되지 않는 소리요. 유격대의 비밀이라 해야 저들이 근거지를 모르나 대장을 모르고있나. 난 들어가자마자 지대장자리를 내놓았고 그때부터 검토를 받다가 추방되였는데 그쪽 일도 아는게 없단 말이요!

그러니 박동무도 맞바꿈을 하고야 나왔겠소?…》

방억세가 내지르는 소리에 박정희가 가슴노리를 찔리우기라도 한듯 흠칫 몸을 떨었다.

박정희는 성난듯 한 방억세의 표정에 잠시 얼어붙어있다가 인차 자신을 회복하고 카랑카랑한 소리로 받아넘겼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렸던것 같은데요.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습니다.》

불쾌감과 반발심을 분명히 강조하는 박정희의 대답에 방억세는 오히려 미안해졌다. 이 사람에게 우둘렁거릴 멋이야 없지 않는가.

그래 이내 너누룩해져서 사죄하듯 말을 계속하였다.

《난 박동무를 다르게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요.》

《너무 속썩일게 없습니다. 선배님의 인맥쯤 되면야 김창룡의 몽둥이를 막아줄수도 있겠지요. 아무렴 좁쌀같은 박정희인생과 같을수야 있겠습니까.》

박정희는 방억세를 위로하듯 이렇게 말하고는 천정을 쳐다보며 그 매눈을 뱅글뱅글 굴리였다. 깊은 생각에 잠길 때면 그가 항용 하는 눈버릇이였다.

잠시후 박정희는 깔쭉거리던 말투를 버리고 소탈하게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동종의 련대의식이 발동되여 어려움과 경계심을 덮어두었던것이다.

《시작해보십시오. 다시 말씀드리건대 쟈들이 선배님 같은 중량급인물을 나처럼 송사리취급하듯이야 하겠습니까.

경인지역 사령관이 뒤에 버티고있겠다, 장수덕을 비롯하여 굵직한 거인들이 줄지어 서있겠다 걱정할게 뭐 있습니까.

두고보십시오. 서남룡이 이제 선배님의 머리칼 하나라도 건드릴것 같습니까.》

이제는 자리를 파하자는 그 기세등등한 소리에 방억세는 속이 가벼워지는듯싶었다.

박정희는 접대원을 불러들여 상우에 차려놓은 음식들을 거두도록 하고 접대원을 앞세우고 방을 나섰다.

술집마당의 정자나무밑에 있는 바깥식탁에서는 성관호가 강중위와 마주앉아 술자리를 펴놓고 한담을 나누고있었다.

그들은 벌써 거나해가지고 시시덕거리다가 방억세와 박정희가 접대원을 앞세우고 나오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성을 올렸다.

《하, 이 친구 완전히 박소령의 심복자가 됐구려. 이게 공산당의 용인술인가, 박소령 여기 와서 앉았다 갑세.》

《예, 그래서 이렇게 접대양까지 모시고 나오는 길입니다. 접대양, 어서 상을 차려. 술도 치구.》

박정희가 속이 트인 어조로 대꾸하였다. 박정희는 방억세가 결코 자기를 심판하려는 조직원도 아니고 자기의 운명과 흡사한 처지에 빠져있다는것이 확인되여 더할나위없이 기뻤다.

《하, 박소령의 수가 대단하오. 이 강중위가 말이요. 뭐라는지 아오?》

성관호는 어지간히 주기가 올라 얽둑배기의 실팍한 잔등을 두드려주며 물었다.

그러자 얽둑배기가 설되게 웃어보이며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주절거렸다.

《뭘 박소령수가 대단하다는겁니까. 물을 따라 고기가 모이고 인물을 따라 군자들이 모이는거라. 나 박소령님 이거랑께로, 이거!…》

《짜식, 뉘들앞에서 함부로 박소령 추켜올려. 야, 임마! 이 박소령은 두분들앞에서는 호랑이앞에 나선 너구리꼴이야.》

박정희가 자기를 개올리는 강중위의 엉너리에 점직한듯 그 매눈을 엄하게 굴리였다.

《하, 너구리라니요. 그렇다면 이 강중위는 뭐랑께로? 이 강중위는 너구리앞에 기여다니는 소똥벌레라는갑쇼. 어랍쇼. 그러지 말라는께로.

이 강중위는 사팔뜨기고 얼금뱅이곰보라 해도 볼건 다 보구있다 이거라.

아 박소령님, 뭘 또 모밀눈이요? 내 못할 말 했능기?

이제 한마디 할랑께로 들어보소. 박소령 고향이 경상도 선산이라 신라의 맥이 박소령의 그 모밀눈에 팔팔 뛴다는께로.》

《에라 이 문둥아, 코 다칠라. 늬 벌써 취했군. 취하면 입다무는게 재주라.

야 임마, 박소령 감시하라 김창룡이 붙여놨는데 늬 술고래니 똥별 하나 따기는 고사하고 떼우지 않는가 봐라.》

박정희 소리에 상을 차리고있던 접대원의 눈이 떼꾼해지고 그게 가관이라고 네사람은 흐아-흐아- 웃었다.

방억세는 함께 웃으면서도 박정희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되였다.

눈이 새매눈같고 얼굴생김새가 꼭 원숭이상에다가 살점없이 바싹 여위여 코끝이 앙상하게 삐여오른 박정희가 도대체 무슨 귀신조화를 부려 특무대가 특별히 선발하여 붙여놓았을 감시자를 며칠내에 자기의 심복으로 만들어놓았을가?! 참으로 기기묘묘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는 자기자신마저 메마르기 그지없으면서도 유화적인것 같고 랭담하기 그지없으면서도 친화력이 있는것 같은 박정희의 처세술에 끌려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또 얽둑배기의 반죽좋은 너스레가 텁텁한 막걸리처럼 구수하게 들렸다.

《에라, 난 똥별걱정 하나도 없다는께로. 김창룡이 떼버리면 박소령이 붙여주겠지. 떼운 값에 곱게 고리까지 붙여 두쪽씩 뎅강뎅강 붙여줄지 뉘 안다구… 안그렁기로 박소령님?》

《에, 너 말재주 하나만은 참 아깝구나. 그래, 늬 금새 크게 봐줄 때가 있겠는지 기다려봐. 늬 인생 나한테 투자했으니 나와 함께 흥망을 함께 해보자. 어때 이 문둥아…》

《오케! 박정희 만세라- 자 접대, 술을 쳐라. 이 어르신네가 누구신지 아느냐. 건국의 3총사 예 있노라. 건배!》

얽둑배기는 접대원의 팔을 잡고 번쩍 추켜올리다가 그의 허리를 붙잡은채 쭈르르 미끄러져내렸다. 그리고는 잔디우에 넘어져버렸다.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사냥개를 길들이느라고 또 한번 실례를 했습니다.

자, 가까이 나앉으십시오.》

박정희는 곰상스럽게 두사람에게 고개를 숙여보이며 너부러진 얽둑배기를 발꿈치로 밀어놓고 식탁앞으로 그들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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