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장 배는 뭍을 떠난다
방억세가 성관호의 《성지》에 들어선것은 리승만이 담장안의 고요한 공기를 휘저어놓고 사라진 얼마후였다. 방억세가 나타나자 김씨녀인은 마치도 사지판에서 살아돌아온 사람을 맞은듯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녀인은 방억세를 앉혀놓고 사돈집 문안이며 그동안 숨어다닌데 대한 걱정 등 길게 인사를 차리다가 요사이에는 왜 얼씬하지 않았느냐고 살갑게 물었다. 녀인에게서 방억세는 며느리의 오빠되는 밭은 인척만이 아니였다. 자기 딸의 은인이기도 하다. 자기네 아들딸을 어려운 시기에 맡아준 미더운 사람이다. 더구나 어찌 보면 자기 딸의 운명을 맡아줄지도 모르는 아들 버금가는 사내이기도 하다. 방억세는 산에서 내렸다는 이야기는 할수 없어 그저 히쭉 웃어보였다. 《참, 내 이 정신 봐. 점심전이겠지?》 방억세는 산판에서 내려오며 련 사흘 굶다싶이 하여온지라 사실은 허기져서 로인의 인사말에 일일이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그래 목덜미에 손을 올리며 솔직하게 토설하였다. 《예, 먼길을 다녀오느라고 아침을 번지였습니다.》 《저런!… 언제면 시국이 좋아지겠는지… 우리 란희는 제대로 먹으면서 지내는지…》 김씨는 가슴이 꺼질듯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훌쭉해진 방억세를 마주하고 아침마저 번지였다는 소식을 들으니 불시에 딸의 모습이 앞을 가리워 눈굽을 지지는것이였다. 아직도 김씨에게는 두번째로 산에 오르던 날 자기 품에 감겨들던 딸의 모습이 선하다. 해방전에 란희가 산에 오를 때는 그 무슨 산놀이가는 소녀적기분이여서 떠나보내는 어미된 심정도 홀가분했는데 그때와는 달리 가슴이 쓰려나고 품에서 쉬이 놓아주게 되지 않았다. 그래 김씨는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딸을 그냥 끌어안고 애바른 설분을 그냥 늘어놓다가 공연한 소리인줄 알면서도 이렇게 물었다. 《얘, 꼭 네가 떠나야 하니?》 그 소리에 딸은 애원이 어린 소리로 대답하였다. 《어머니, 이젠 날 놔줘요. 왜놈들은 쫓겨갔으나 미국놈들이 또 타고앉지 않았나요. 그래서 너두나두 이 길에 나서야 하는거예요. 이런 리유, 저런 걱정으로 몸을 사리면 이 땅은 영영 병들고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없어지지 않을거예요. 어머니, 부디 앓지 마시고 이 딸이 미국놈과 싸워이기고 돌아오는걸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떠나갔는데 어언 한해라는 세월이 꿈속에서처럼 흘러갔다. 어떻게 지낼가. 상하지는 않았을가?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지… 창가에 눈꽃이 날리면 추위에 떠는 딸의 모습이 떠오르고 창가에 비발이 치면 비에 젖은 딸의 얼굴이 아프게 떠오른다. 날과 달이 바뀔수록 웃음이 남실거리던 모습은 지워지고 시름겹고 가긍한 모습만이 그냥 눈앞에서 맴돈다. 김씨는 지금도 그냥 뇌리를 아프게 하는 딸의 얼굴을 그려보다가 아침까지 건늬고 온 사람을 앉혀놓고 이 무슨 망녕된 일이냐 하는 생각이 펀뜻 들어 딸랑방울을 흔들었다. 그러자 집에서 심부름을 맡아주며 얹혀사는 사내아이가 뛰여들어왔다. 《얘, 진이 엄마더러 어서 오빠의 점심상을 차리라고 일러라.》 《예.》 심부름군아이가 나가자마자 이내 동요가 들어왔다. 동요는 아까 대문가에서 오빠를 맞아들여 시어머니에게 안내해주고는 인차 부엌에서 오빠의 점심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던것이다. 《빨리 오빠에게 점심을 대접해라. 관호를 찾을게 없이 빨리 상부터 올려라. 원, 해가 중천에 올랐는데 조반도 번지고 왔다니 될말이냐. 어서… 임자네 일은 언제면 끝나려는지…》 김씨는 밥상을 차리라고 서둘러대다가 길게 탄식하였다. 방억세는 김씨에게서 물러나자 동요를 따라 식당으로 갔다. 방에 들어서니 구수한 고기국냄새가 텅 빈 창자를 흔들어놓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자꾸 나서 동생앞이여도 민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오래간만에 차례진 푸짐한 밥상을 받아드니 방억세는 금시 떠나온 산중생활이 떠올라 목이 꺽 메여올랐다. 《어서 드세요. 국이 식겠어요. 바삐 차리느라고 변변치 못해요.》 동요가 쉬이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오빠의 심중을 넘겨짚고 그에게 숟가락을 쥐여주며 각근하게 권하였다. 방억세가 숟가락을 들자 동요는 상옆에 턱을 고이고 앉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오빠가 걸탐스럽게 밥을 드는것을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지나가는 어조로 물었다. 《누이는 어떻게 지내요?》 《내가 너의 누이소식을 어떻게 안단 말이야?》 방억세는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를 하였다. 사실 방억세의 입산은 이 집에서 성관호밖에 모르는 일이였다. 성관호는 처남의 입산을 일체 비밀에 붙이겠다고 약속을 하였던것이다. 《피, 내가 골방에 들어앉았다고 숫보는게 아니예요. 내가 뭐 오빠가 산에 들어가 지대장으로 싸우고있다는걸 모르는줄 아나봐.》 《헝, 지대장노릇 한다는것두… 그것 참 정말 대단하구나. 대가집 작은 마님이 세월과는 담을 쌓고있는가 했더니.》 방억세는 볼이 미여지게 떠넣은 밥을 꿀떡 삼키고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동생을 여겨보았다. 동요가 그새 몰라보게 달라졌다. 산에서는 할끔하게 패웠던 두볼이 통통 살져오르고 가냘프던 목대도 실해졌다.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몸이 나기 시작하여 날씬하던 허리가 굵어지고 어깨팍도 뭉긋해져서 보기가 좋다. 그리고 까르르 웃던 모습과 몸가짐새도 품위있고 침착해서 한결 의젓해보였다. 예나제나 다름없는것은 오른쪽볼에 살짝 패워있는 볼우물이다. 그 볼우물에 살이 오르니 더욱 보기가 탐스럽고 예쁘다. 마음씀씀이 여유작작하고 재물에 궁색하지 않은 부호집 안사람의 체취가 물씬 풍겨나는 동생의 부한 모습에 불시에 또 하나의 모습이 겹쳐들어 그의 가슴을 아릿하게 해주었다. 성란희의 모습이였다. 적들의 여러차례의 《토벌》을 당하여 지금 빨찌산은 여러가지로 곤경에 빠져있다. 죽창대시절은 지금의 빨찌산에 비하면 호시절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적들이 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차단하고있어 무엇보다도 식량부족으로 모두 주림에 시달려있다. 태룡산의 자연이 하도 풍성해서 그럭저럭 허기진 구복을 달래이는데는 더할나위없이 덕을 보기는 하지만 산열매나 풀잎을 장창 먹고서는 한창시절 장정들이 견뎌내기 힘들다. 초보적인 의료설비도 갖추어있지 못하여 부상자들을 제대로 치료할수가 없고 무시로 덮쳐드는 병마에 신음한다. 그속에서 비록 죽창대시절에 산생활의 의미와 살아가는 묘리를 터득하고 단련도 된 성란희였으나 열배로 고난스러운 투쟁과 생활은 처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때일찍 고행의 자국을 남기고있다. 산을 떠나오면서도 한번이라도 처녀를 만나고싶었는데 이렇게 처녀의 집에 와서 푸짐한 밥상을 받고보니 더욱 눈앞에 아프게 떠올랐다. 《오빠, 어서 드세요. 뭘 생각하세요?》 《됐다. 잘 먹었다.》 끝내 방억세는 밥사발에 아직도 밥을 절반정도 남긴채 숟가락을 놓고말았다. 동요는 아침도 번지고 왔다는 오빠가 사발밑굽을 내지 못하고 밥상을 밀어놓자 눈이 뎅그래졌다. 《좀더 들어요. 식찬이 입에 맞지 않아요?…》 동요는 속상해서 바질거렸다. 《원, 무슨 소리. 너도 산중생활을 해보지 않았느냐. 사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어렵다.》 《그런데요…》 동요는 오빠의 침울한 기분이 짐작되여 살틀하게 다가들었다. 《뭐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산사람들 생각을 하니 밥이 넘어가지 않는구나.》 방억세는 동요가 내미는 숭늉그릇을 받아들며 이렇게 솔직히 대답하고는 단숨에 물 한사발을 다 마셔버렸다. 《오빠!》 동요는 오빠의 험한 손을 부여잡으며 갈린 소리를 냈다. 《누이생각을 했겠지요?…》 동요는 오빠의 흐려진 기색을 더듬으며 그리움에 사무쳐 물었다. 시누이를 생각할 때마다 꼭 자기가 들어앉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듯 시누이를 고행살이에 떠민것만 같은 죄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녀인이였다. 지금도 동요는 시누이만 돌아와도 이 집안에 걱정거리가 더는 없을것이라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음, 네 누이생각도 했지… 만나보지 못하구 왔다. 그렇게 됐다.》 《오빠… 언제 돌아가요?》 《이제는 돌아가지 않게 됐다. 서울에서 일을 하게 됐다.》 그 소리에 동요의 찌프려있던 미간이 반듯이 펴지고 낯빛이 활짝 밝아졌다. 《그래요?… 잘됐군요. 그렇다면 이제는 누이도 데려오는게 어때요. 그만큼 고생살이 시켜요. 우리 형님으로 앉혀놓고 모여살자요, 예?! 시어머님도 이따금 오빠생각을 해요. 두사람이 분명 하늘이 점지한 연분을 타고났다면서요.… 진이 아버지도 여전해요. 네? 그렇게 하자요.》 동요가 방억세의 손목을 안타깝게 흔들며 권하였다. 《이 70칸 기와집에 방이 없나 먹을게 없나. 나 홀로 청소하기에도 지쳐있는데 모여살면 오죽 좋을가.》 《허허… 너 이 대가집 안주인이 되더니 생각도 그 모양 닮아가는구나. 너만도 량반집 며느리로 들여앉힌게 찐덥기 그지 없는데 나마저 이 대가집 사위행세를 하라는거야? 명심해라. 난 네가 항일죽창대의 소대장이였다는것을 잊지 않기 바란다. 누구인들 뜨뜻한 아래목에 누워살기를 원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저마다 복을 찾아 고생을 피해가고 죽기를 겁낸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느냐. 저 북쪽을 바라보군 해라. 보며 부러워만 해서야 되겠느냐.》 방억세는 동생의 살틀한 정과 청을 너무도 몰인정하게 차던지는, 좌석에도 어울리지 않는 객적은 잔소리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으나 이렇게 일부러 엄하게 못박아놓았다. 《얘 동요야, 내 너에게 귀아픈 소리 한마디 할가?》 《예.》 《음- 다른게 아니구… 하루에 한번씩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해봐. <나는 대장쟁이의 딸이다.> 하구 말이다.》 동요는 오빠의 의미심장한 깨우침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가에 방그레 미소를 담았다. 동요에게 벌써 이 비슷한 소리를 한두번만 해오는게 아니다. 그는 동요가 이 풍요한 집안에 뿌리내리고 량반마님행세를 할가봐 걱정이였다. 그래 늘 고생하는 사람들을 잊지 말며 미국놈들때문에 갈라진 나라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타이른다. 이번에 산을 내리면서 방억세는 성관호와의 사업이 잘되자면 동생과도 잘 사업해야 한다는것을 깊이 생각하여왔다. 중요한것은 동요가 한시도 근본을 잃지 않도록 일상적으로 깨우쳐주는것이다. 《오빠, 걱정마세요. 내 마음은 언제나 산에 가있어요.》 동요는 오빠의 엄한 요구가 리해는 되면서도 억울하다는듯 다소 시뜻한 어조로 들이댔다. 《허허, 됐다 됐다.… 원, 겉모양을 보면 대가집 며느리가 다되였는데 그 뾰족한 입만은 과시 야장쟁이의 딸이 분명하구나.》 방억세는 동생의 금시 토라진 속을 풀어주고싶어 즐겁게 엉너리를 쳤다. 《뭐라구요?!》 동요가 종주먹을 해가지고 오빠의 등판을 때리는 바람에 그들은 즐겁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 너의 서방님은 어느 방에 있니? 지금도 서재에 박혀있니?》 《그럼요. 지금은 후원에 앉아있을거예요. 아까 리승만이 왔다갔어요. 그 늙은이가 글쎄 진이 아빠보고 아낙군수라고 하더군요.》 《아낙군수? 허허허… 거느리고있는 아낙이 몇 된다고…》 《호호…》 《그런데 리승만이 이 집에 왜 왔다더냐?》 《글쎄요, 임명장을 받고도 나오지 않으니깐 볼기를 치자고 찾아왔겠지요.》 동요는 《대통령》의 행차쯤은 관심밖이라는듯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였다. 《그래?! 헝, 그거 대단한걸!…》 방억세는 순간 뇌리를 때리는것이 있어 환성을 올렸다. 《그래 너희 그 은둔자는 어떤 결심이래?》 《몰라요. 그 사람 속궁냥이야 귀신이나 알겠는지. 아예 부처님될려는지…》 《쩌쩌쩌… 저 말버릇 봐… 얘, 난 후원에 간다.》 방억세는 식당을 총총히 나서자 뒤마당을 가로질러 후원으로 갔다. 배를 푸짐하게 채워놓으니 사뭇 기운이 뻗쳐 걸음발이 기운찼다. 《함께 가요.》 동요가 총총히 따라섰다. 성관호는 여전히 루각에 홀로 앉아 멀리 마주보이는 삼각산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매부, 여기서 무슨 생각하시오?》 방억세가 루각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성관호가 남매의 유쾌한 모습을 띄여보고 《아니 이게 누구야?!》 하고 반색을 지으며 층계를 껑충껑충 뛰여내렸다. 《아, 웬 일이요?! 어떻게 되여 태룡산의 호랑이가 백주에 서울 한복판의 대궐에 쳐들어왔나?!》 성관호는 리승만이 떨구어놓고 간 어지러운 생각에서 헤여난것이 무엇보다 다행스러운듯 팔을 쩍 벌리고 소리치며 달려왔다. 두사람은 반갑게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새 잘 있었소? 리승만이 방금 왔다갔다면서?》 《에, 한바탕 으름장을 놓고가더구만.》 《무슨 으름장이요?》 《지저분한거지. 자, 올라가기요. 여보, 오늘은 이 빨찌산지대장과 시간을 보내겠으니 일체 식객들을 들여놓지 말라고 대문간에 전하오.》 《예.》 오빠와 남편이 끌어안고 볼을 비비는것을 속눈섭이 함초롬히 젖어 지켜보던 동요는 걸음도 가볍게 마당으로 갔다. 두 사나이는 련인들처럼 다정히 팔을 끼고 루각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성관호가 탁우에 널려있는 돈묶음을 봉투안에 급히 쓸어넣다가 방억세가 자리에 앉는것을 보자 손을 내저었다. 《이쪽에 앉소. 그자리는 방금전에 두상이 앉았던 자리요. 진이 엄마더러 비누로 박박 닦아내라고 해야지… 늙은이가 제 냄새도 싫은지 양놈의 향수내만 잔뜩 몰고다닌다니깐…》 방억세가 성관호의 수틀린 소리에 씨익- 웃다가 돈묶음을 보며 롱담으로 물었다. 《이건 무슨 돈이요? 큰 감투 받았다고 신문에 크게 광고까지 났다더니 벌써부터 <대통령>의 금일봉을 하사받은게 아니요?》 《금일봉? 하하… 이게 어떤 금일봉인고 하니 우리 모친이 당신네 빨찌산에 보냈던건데 이렇게 리승만의 금일봉이 되여 돌아왔구만. 어머님의 불로장생에 쓰라나, 하하… 어여쁘기도 하시지…》 성관호가 상대의 눈이 커지는것을 보며 몸을 들썩거리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목청을 돋구기 시작하였다. 《이보게 지대장동무! 어째 그쪽에서는 물볼기 몇대 건사하고서는 열물까지 토해놓는 시라소니들을 모금공작에 내보내는지 모르겠소.》 성관호는 자기 어머니를 곤경에로 몰아넣은 방억세에게 은근히 골이 나서 몰밀어 나무람을 하였다. 방억세는 만나자바람으로 열을 올리는 매부의 말이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보름전에 수하에 있는 소대장을 여기에 모금공작으로 파견했는데 체포되였다는 소식은 받지 못하고 떠나왔다. 《이건 우리 모친이 란희의 부탁을 받고온 모금공작원에게 주었던 성금이요. 그 사람이 아마 체포된것 같소. 그런데 돈의 출처를 다 털어놓았는지 리승만이 이 돈을 들고 수고로이 행차를 했더라구.》 하며 성관호는 쓰거운듯 입을 다시였다. 《음, 모를 소리다. 모금공작은 정수철이라고… 아, 매부도 알지 않소. 내 련락병을 하던…》 《아, 생각나오. 그 사람이라면…》 《음, 사달이 났구만. 헌데 정수철은 그렇게 맹물이 아닌데… 돌아오지 않길래 걱정을 하다가 왔는데 일이 틀어졌구만… 정동무는 어려운 모금공작을 수십번 하면서도 등탈없던 동무인데… 어데서 구멍이 났을가?》 방억세는 새로운 근심에 잠겨 중얼거렸다. 정수철이란 서울태생인데 해방전에 인천에서 부두로동자로 일하다가 왜놈들의 《징병》장을 받고 죽창대에 들어섰던 사람이였다. 그는 매우 강직하면서도 민첩하고 성실해서 죽창대에 있는 전기간 방억세가 자기의 련락병으로 가까이에 두고 지내왔다. 모금공작과 같은 책임적인 개별공작을 여러번 수행하기도 하였다. 해방후에도 방억세는 그를 자기가 실장으로 있는 상황실에 데려다가 부관으로 두었는데 좌익숙청회오리에 말려들어 즉시에 태룡산으로 올라가 소대장으로 복무하였다. 정수철은 해방이 된 후 산에서 내려와 녀성소대의 똑똑한 녀동무와 인차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그만 《5. 10단독선거》반대투쟁이 고조되고있을 때 그의 처가 두살 된 아들애를 남겨두고 애석하게도 경찰들에게 잡혀 학살되였다. 정수철은 태룡산으로 들어갈 때 떨어지지 않겠노라 발버둥질하며 매달리는 애를 처형집에 맡기고왔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정수철은 한번의 실수도 없이 싸워왔는데 어떻게 되여 적들에게 체포까지 되였을가? 자금출처란 모금공작에서 최대의 비밀인데 그것까지 털어놓다니… 모를 소리다.… 《자, 어머님의 뜻대로 다시 이 돈을 돌려보내니 건사하오. 하지만 다시는 이렇게 소리를 내며 되돌아오지 않도록 집안단속을 잘해주기 바라오.》 성관호는 돈을 다시 미농지에 싸서 봉투에 넣어 방억세에게 내밀며 성이 돋친 어조로 당부하였다. 그러나 방억세는 그 돈봉투를 받아들었다가 다시 매부에게 되돌려주었다. 《나도 이 돈을 처리하기가 힘들게 됐소. 당분간은 건사해두오.》 《그건 무슨 소리요? 이건 어머니의 뜻이고 성의란 말이요. 이제 돌아갈 때 가지고가면 되는 일 아니요. 뭐 내 말에 노염이 생겼소?》 《허허허… 노염은 뭘… 할소릴 했는데. 사실은 내가 전달할 형편이 못돼서 그러오.》 《전달할 형편 못되다니. 하여튼 언제든지 돌아갈게 아닌가.》 《아니, 돌아가지 않겠소. 그리고 그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없겠고.》 《무슨 소리인지 알겠소. 그럼 다시 이 서울에서 지하로 들어간다는거요?》 《허허허… 설명하자면 좀 긴 이야기인데… 자, 이 돈은 우선 거두어두고 리승만이 왔다간 이야기부터 해주오.》 성관호는 처남의 말이 이상스러워 고개를 설레설레 내두르다가 더 따져묻지 않고 돈봉투를 옆으로 밀어놓고 리승만이 왔다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도중에 리승만과 서로 심술스럽게 심리전을 벌리던 일을 놓고 두사람은 연해연방 웃음을 터치였다. 방억세는 성관호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가며 이것저것 묻기도 하였다. 성관호에게 리승만이 새로운 임명장을 들고온 소식에 방억세는 입이 귀밑까지 째졌다. 《경인지역 사령관이라… 좋구만! 령감이 제 목건사를 시키는 자리를 준다는거지. 대단한걸, 하하… 매부님의 금새가 정말 천정부지로 올라가는군. 좋구만!》 수하에 병졸이 없고 작전지휘권이 없는 총무국장에 비하면 경인지역 사령관자리는 실권자리이다. 그것도 서울에 있는 무력을 한손에 거머쥐게 될 자리이니 장차 군부안에서 통일애국세력을 묶어세우는데 안성맞춤인셈이다. 임무를 받은이래 방억세의 머리속에는 앞으로의 행동방향이 륜곽으로나마 자리잡혀있었다. 성관호를 지휘권요직에 움직이게 한 다음 그를 정점으로 군부안의 옛친구들을 세워주고 여기에 장차 《륙군참모차장》 장수덕을 인입한다면 적지 않은 세력권을 무어낼수 있다. 이들을 통일애국의 길로 이끌어준다면 남조선에서 미국놈들을 몰아내며 반통일세력을 짓부시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성업에 크게 힘을 보탤수 있을것이다. 그런데 성관호가 경인지역 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였다니 일은 벌써 소리없이 방억세가 그어놓은 주로를 따라 한걸음 전진한셈이다. 방억세는 일시에 눈앞이 휘연하게 트이는것 같아 속도 후련하여졌다. 《좋구만! 사령관자리야 한턱을 낼만 한 자리지.》 성관호는 시뿌득해서 생각을 굴리고있던 일을 놓고 처남이 제사 좋아서 벌쭉거리는게 의아쩍기도 하고 기분이 잡치기도 해서 데설궂게 한마디 내질렀다. 《뭐가 좋다는거요?》 《리승만이 들고온 자리가 좋다는거요. 태백산죽창대가 과시 명물들을 끌어안고있었군. 그 시절의 친구들이 큰 별들을 따내지 않았소.》 《그 이름덕을 본셈이지. 태백산항일죽창대라는 이름은 정말 멋지고 뜻이 깊단 말이요. 내가 동생과 함께 처남따라 태백에 오를 때 하시던 우리 모친의 말씀이 생각나는구만. 태백은 자고로 백두대간의 가운데토막을 이루는 이 나라의 등마루요, 죽창은 이 나라의 슬기와 용맹을 떨쳐온 사나이들의 보검과도 같은 신령스러운 무장이라고 했지. 거기에 항일이라는 기개 드높은 뜻까지 합쳐놓았으니 이 얼마나 장한가. 참 멋진 이름이였소. 이름뿐이겠소. 거기서 건군의 굵은 재목들이 두루 솟아나지 않았소.》 성관호의 감회깊은 말이 일리가 있었다. 태백산항일죽창대출신으로 이번에 군대의 중추에 오른 사람들은 여러모로 군부에서 내세울만 한 인물들이다. 뭐니뭐니하여도 항일죽창대의 항일이라는 이름이 미국놈들과 인사권관계자들의 구미를 돋구게 했다. 자리를 주고난 후에 흔히 뒤따르는 어지러운 추문이 생겨날수 없기때문이다. 태백산항일죽창대의 화려한 그 이름에 벌써 뭇사람들은 경건해지는것이다. 그곳에서 무예를 익히고 신식군사병법을 익히고 정치와 군사의 안목을 넓힌것도 누구나의 인정을 어렵지 않게 끌어낼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해방직후 《국군준비대》에 소속되여 비록 해놓은 일은 없고 기간은 짧았지만 군건설의 기초를 닦는 일에 참여하였고 미군이 진주한 다음에는 대부분이 미군이 설립한 《태릉영어군사강습소》를 나왔으므로 강점군의 관계인물들과의 인맥까지 갖추어졌다. 이쯤 되고보면 누가 튕겨도 흠잡을수 없는 경력을 갖추게 된셈이다. 미국놈들이 눈독을 들일만 하다. 물론 이렇게 된데는 자기 수하의 옛 대원들을 정세변화에 상응하게 제때에 움직이도록 뒤에 틀고앉아 조종을 한 방억세의 수고가 깃들어있었다. 방억세자신도 이러한 로정을 거쳐 《국방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서 참모부의 핵심적인 자리인 작전상황실장으로까지 등용되여 군부안에 장차 조직적기반을 굳건히 다져나갈 준비사업을 하여왔던것이다. 그런데 맹랑하게도 려수군인폭동이후에 벌어진 군부안의 《좌경숙청》바람에 휘말려들어 지하에 잠복해들어가게 되고 나중에는 빨찌산으로 소환되였던것이다. 당시 방억세와 함께 군부에서 숙청된 좌익적인 인물들은 1차숙청에서 벌써 수천명에 달하였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죽창대시절의 옛 부하들중에서 그 시절에도 좌익에는 흥미가 없어하던 성관호를 비롯한 몇명의 인물들은 그대로 남게 되고 이렇게 한자리씩 차지하게 된것이다. 방억세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배심도 생기고 무엇인가 거창한 미래가 움씰거리는것 같았다. 그는 더 기다릴것 없이 성관호에게 속을 터놓기로 결심하였다. 《매부, 이젠 나도 자기소개를 온전히 해야 되겠소.》 《그건 무슨 소리요?》 성관호가 처남의 새삼스러운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서 물었다. 《난 지금 빨찌산이 아니요. 조직성원도 아니고…》 《엉?! 뭐라구?… 그럼 처남은 대체 뭐라는거요?!》 성관호는 깜짝 놀라 루각이 쩌렁하도록 고함을 질렀다. 그는 시커먼 눈섭머리를 곤두세우고 그 큰 눈에 불을 담으며 방억세를 쏘아보다가 회초리같은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대장부 한번 나선 길에 초지를 꺾어서야 될법인가? 처남이야 우리 란희나 정수철이하고야 어방이 되는 인물인가. 누굴 따라나선 길도 아니요,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요, 처남이야말로 자기가 찾아낸 사상과 리념을 따라 그 길에 나선게 아닌가. 숱한 사람들이 처남을 쳐다보고있는데 이 무슨 노죽인가. 아니, 이건 동지들에 대한 반역이고 리념에 대한 모반이야. 난 지지할수 없네. 돌아서게. 머리통이 열백번 박살이 나도 끝장을 보고야 산에서 내리겠다고 한게 한해전도 아니요, 꼭 한달전이 아닌가. 우리 란희가 처남을 어떻게 생각하겠나. 기가 막힌 일이군. 그래 솔직히 말해주게. 요새 빨찌산이 밀린다고 하더니 도피행인가?》 성관호의 목소리는 사뭇 준엄하였다. 주먹을 후들후들 떠는것이 당장 목덜미라도 움켜잡을듯 험악해졌다. 용렬한 인간을 경멸하고 용납하지 않으려는 그 의기가 하늘을 찌를듯싶다. 예나제나 변하지 않은 매부의 그 굳센 기질과 정의로움에 방억세는 가슴이 뿌듯해왔다. 이게 성관호다. 인간 성관호의 참모습이다. 다만 성란희 말을 그의 입에서 듣고나니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여린 생각에 발목이 잡혀있을 때가 아니다. 어쩌면 이자리가 자기 인생의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전망할수 있는 운명적인 기점이 될수도 있다. 방억세는 분기를 풀지 않고 거칠게 숨을 내쉬며 자기를 노려보는 성관호에게로 한걸음 다가섰다. 그는 후들거리는 매부의 주먹을 슬그머니 틀어잡았다. 《매부, 사실인즉 도피가 아니라… 음… 축출되였다고 할가… 좌익의 전렬에서…》 《뭘?… 좌익에서 축출돼? 무슨 리유로?》 여전히 성관호의 눈길은 비수같고 목소리가 짱짱 서슬이 등등하다. 《리유야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지.》 이 말을 할 때 방억세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구슬프게 울렸다. 성관호가 오만상을 풀고 다시 측은한 눈으로 상대를 유심히 살피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껄껄거리기 시작하였다. 《모를 소리, 무슨 조간이 있구만! 헝, 방억세대장이 좌익전렬에서 축출되였다는걸 누가 믿어준대?… 허허, 하늘이 웃네. 빨찌산지대장이, 그것도 경력도 뜨르르한 조직원이 축출이라, 소가 웃다 꾸레미 터질 일일세. 하하, 그러면 그럴테지!》 성관호는 이렇게 굵은 소리로 퉁퉁 선소리를 하다가 다시 큰 몸을 들썩거리며 제멋에 겨워 호탕하게 웃었다. 처남이 결코 도피분자가 될수 없다는 확신과 기대감이 불시에 속을 메운 경멸의 감정을 일시에 밀어던졌던것이다. 방억세도 속이 흠썩해져서 덩달아 웃다가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매부, 웃지 말구 날 도와주게. 내 손으로 돈을 벌고 내 손으로 살아가는 근실한 <국민>이 되려네. 두가지 도움이 필요하네.》 《허허… 거 역시 웃기는 일이지. 무산계급은 어찌하고 혁명가 방억세가 자산계급이 되려는가. 부친이 야장간 차려 모은 돈을 한번 굴려 거부가 돼볼 욕심인가.》 《젠장, 빈정거리기는… 첫째는 나의 이마에 붙어있는 붉은 표딱지를 떼도록 지원하여주게. 난 이제부터 매부가 재정적으로 도와준다면 <군복무용달사>나 만들어 돈벌이나 해보려네.》 《군복무용달사》란 방억세가 산에서 내려오면서 설계한 위장업체였다. 현단계에서는 아무리 애를 쓰고 곁에서 도와준다고 하여도 다시 군부에 복귀할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군부인물들과의 사업을 원활하게 하자면 어떻게 하든지 군부계통에 뚫고들어가야 하였다. 그래서 찾아낸것이 군부에 물자조달을 맡아하는 《용달사》를 차려놓는것이였다. 그렇게 되면 비록 군복은 입지 못해도 군부인물들과 물자주문과 보장사업을 구실로 자유롭게 접촉할수 있을것이다. 오히려 엄격한 규률과 임무에 묶이워있는 현역위치보다도 훨씬 자유분방하게 사업할수 있다. 성관호는 처남이 내놓은 문제를 놓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벙긋 웃기부터 하였다. 자기나름으로 처남의 의도를 짐작하였던것이다. 《흠… 그러면 그렇지… 알만 하네. 도와주지. 힘들거 없네. 그런데 처남이 장사군될 생각은 당초에 없을거구. 그러니 처남은 빨찌산투쟁을 이를테면 적진에서 후원하는 사업을 책임진 모양이구려. 필요하겠지. 헌데 뭐 그런 정도야 내가 대리임무를 맡아주면 되지 않나. 처남이 구태여 부르죠아냄새를 풍기며 주산알을 튀길 멋이야 있나.》 성관호는 이렇게 씨물씨물거리며 시까슬렀다. 어쩌면 그의 진속이기도 하였다. 무슨 일을 하든지 처남에게는 장사노릇이 어울리지 않으며 그때문에 당당한 처남이름이 덞어지는것도 싫었던것이다. 《허허허… 매부님의 명석한 두뇌가 이번에는 헛짚었네. 장사일은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일세. 두번째 부탁까지 듣고서 결론을 내리게. 두번째 부탁은 말일세. 매부가 리승만의 그 마지막호의라는걸 받아들이는것이라네. 리승만의 눈밖에 나지 말고 부디 리승만의 총아가 되여주게. 군부의 정상에 오르면 더욱 좋구. 이게 다네.》 《그래?… 음… 그건 처남의 개인적인 부탁인가? 내가 군부의 정상에 오르면 거기서 처남이 덕볼게 무엇인가? 나를 노리는 빨찌산의 과녁이 더 커지기만 하겠는데, 대답해보게.》 《물론 개인적이지. 매부가 지위가 높을수록 덕볼것도 커질거구. 나 역시 내 재량껏 매부의 승진에 지원포를 쏴주겠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수 있네. 이건 민족의 사활, 나라의 흥망성쇠와 관련되는 문제이네. 여기에는 우리 태백산항일죽창대의 실현하지 못한 리상과 최종목표도 있네.》 방억세의 의미심장하면서도 천근무게가 실린 진중한 대답에 성관호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사나이의 가슴에도 폭풍전야의 바다같은것이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방억세는 바다를 안고왔다. 아직은 고요속에 움씰움씰하는 바다, 이제 그는 이 바다에 구름을 몰아오고 천둥번개를 불러오고 사나운 파도를 일떠세우려고 할것이다. 성관호는 다시금 뚜걱뚜걱 구두발소리를 무겁게 내며 루각을 거닐었다. 방억세의 말속에 깔려있는 보다 심오한 의미를 찾아내느라고 그는 짧은 순간에 정신력을 집중하였다. 짚이는바가 있다. 그는 고개를 쳐들어 새파랗게 들린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늦가을바람에 설레이는 대숲을 내려다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방억세의 눈길과 마주치면 얼른 눈길을 피하며 잠시도록 루각안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오고갔다. 분명코 지금 처남은 매우 엄청난 과제를 안고 서울장안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도 중대한 결단을 요구하고있다. 민족의 사활?… 나라의 흥망성쇠?… 례사스럽지 않은 그 거창한 말들이 천근만근의 무게로 자기의 어깨에 실리는것 같았다. 잠시 속에서 일고잦는 심각한 번뇌에 사로잡혀있던 성관호는 마침내 자기의 립장이 정리된듯 방억세의 앞에 와서 두다리를 무겁게 뻗딛고서서 처남의 긴장한 얼굴을 주의깊게 응시하였다. 《나를 중심으로, 아니면 나를 내세워 그 무슨 큰일이라도 해보자는건데…》 성관호가 뼈짬에서 꺼내놓듯 한마디한마디를 힘들게 꺼내놓자 방억세는 주저없이 고개를 힘있게 꺾었다. 자기 속을 다 넘겨짚고있는 매부앞에서 구태여 눈 감고 아웅하는것이 야시껍고 비렬한 일 같았던것이다. 통이 크고 성벽이 굳세고 정의라는 판단이 선 다음에는 벽창호가 돼서 휘여들지 않는 성관호에게는 약빠른 계교나 분칠한 요설은 통하지 않는다. 이 호방한 사나이를 움직일수 있는것은 진실이다. 진실만이 이 인간을 감동시킬수 있고 돌려세울수도 있다. 《그러니 이를테면 쿠데탄가?》 《천만에, 난 그런건 바라지 않네. 다만 군부안에서 량심적이며 애국적인 세력을 찾아 묶어세워 민족의 통일위업에 힘을 보태달라는걸세.》 《같고같은 소리지.》 성관호는 고집스럽게 내뱉고는 루각을 거닐었다. 《왜 같고같단 말인가? 쿠데타란 권력찬탈을 노리는 군사반란에 불과하단 말이요. 내 매부님께 묻기요. 그래 미국것들이 서울땅에서 주인노릇 하는걸 더 용납할수 있는가?》 《허허…》 성관호는 어처구니없는 물음이라는듯 턱을 쳐들고 웃었다. 《한조상의 땅이 두쪽으로 갈라지는걸 용인할수 있는가?》 《에에, 됐네 됐어. 말도 되지 않을 소리…》 《그러하니… 우린 이 문제를 걸고 자기 립장을 명백히 해야 할걸세. 통일운동을 놓고 중간이란 있을수 없네. 애국과 매국이란 말일세. 중립이란 있을수 없단 말일세. 군복쟁이라 해서 외면할수가 있는가. 통일된 조국이 우리의 미래이구 후손만대의 행복의 터전임이 분명한즉 결국 통일운동은 당파와 소속과 사상과 계급을 초월하는 범민족적인 위업일세. 다시 명백히 찍고 넘어가겠네. 난 매부와 나의 지인들이 조국통일운동에 힘을 보태줄것을 바라네.》 방억세의 분명한 지적에 성관호는 발을 우뚝 세우더니 여전히 같은 음조로 고집을 부렸다. 《같고같은 소리요.》 그리고는 다시 흥분된듯 루각을 거닐었다. 루각에는 한동안 성관호의 구두발소리만이 이상야릇한 여운을 남기며 외롭게 울렸다. 방억세는 눈길을 성관호에게서 련못으로 옮기고 저으기 온몸을 옥죄여드는 긴장을 느끼며 매부의 대답을 기다렸다. 생각은 늘 무겁게 하고 일단 내린 결심을 위해서는 땀과 피와 열을 아끼지 않는 성관호의 결곡한 기질을 잘 알고있는 방억세는 기다리는 순간순간이 1년 맞잡이로 길고도 엄숙하게 생각되였다. 이제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떤 대답을 주려나. 내 운명의 승부가 걸려있는 대답이다. 긍정적이라면 빨찌산지휘부의 결정은 일사천리로 내밀어갈수 있다. 부정적이라면… 이 순간 그의 뇌리에는 바로 선서를 다지던 그밤이 생각났다. 붉은기… 선서… 주경남의 담배불… 그의 방에 남기고온 글발- 통일 만세!… 해내야 한다. 해내야 한다. 방억세는 주먹에 불끈 힘을 주었다. 성관호의 대답이 부정적이라 하여도 해내야 한다. 스스로 맡아안은 임무요, 스스로 만들어다진 선서의 구절구절들이다. 그러나 아마도 성관호가 외면한다면 나는 멀리로 에돌지 않으면 안된다. 먼길… 승부가 묘연한 먼길… 보다 가파로운 비탈과 낭떠러지, 많은 길을 헤쳐야 한다. 그는 틀어쥔 주먹안에 비지땀이 잡히는것 같았다. 《우리의 리상은 변함이 없네. 첫째, 미국놈들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는것! 둘째, 이 땅을 북녘과 같은 인민의 세상으로 되게 하는것! 셋째,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것!》 방억세는 간곡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그는 성관호가 그냥 입을 다문채 발자국소리만 무겁게 울리자 더욱 열차게 소리쳤다. 《지금 이 남쪽의 군부는 이 성스러운 민족적인 운동에 총칼로 도전하고있네. 지리산이 불타고있고 제주도가 재더미가 되여가네. 그네들이 추켜든 구호가 무엇인지 매부도 잘 알지 않소! 반미! 통일!… 난 군부안의 진보적인 인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군부가 우리의 정의로운 통일운동을 총칼로 가로막지 말며 최소한 중립이라도 지켜주도록 할것을 매부에게 부탁하네.》 이윽고 성관호가 방억세의 앞에 와서 다시 구두발을 세운다. 《처남, 난 처남의 개인적인 부탁을 죽창대전우들이 나에게 안겨준 부탁으로 받아주겠네. 군의 정치개입 불허-이건 나의 립장일세. 내 힘껏 뛰여보리다. 앞에서 나를 끌어주게.》 《매부!》 방억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매부의 두손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으며 목이 쉰 소리로 웨쳤다. 성관호는 그의 억센 손아귀에서 슬그머니 자기 손을 뽑으며 《그러나…》 하고 무겁게 뒤말을 달았다. 방억세는 루각을 엄숙히 울리는 그 말의 음조에 어쩐지 확 달아오른 흉곽이 서늘해져왔다. 《그러나…》 이렇게 얼른 받아무는 그의 말소리는 곱지 않았다. 뭘 또 꼬리를 달자는건가? 돌이킬수 없는, 그러면서도 치명적인 결단이 떨어질것 같았던것이다. 성관호도 뒤말을 인차 꺼내기가 쉽지 않은듯 상대의 거동에 마음을 쓰며 잠시 입을 닫아붙였다. 그쯤되면 걷잡기 힘들고 돌려세울수 없는것이 성관호다. 려운형의 《국군준비대》가 해산된 직후였다. 그때 방억세는 대부분의 죽창대원출신동료들을 좌익조직들에 밀어주었고 그들의 보증자로 되여주었다. 그 시기까지만 하여도 남조선의 전역에서 좌익이 우익을 압도하고있었다. 원체 태백산에서 좌익적인 교양을 많이 받은데다가 해방된 나라의 정치기류가 좌익으로 흐르고있었으므로 대체로 방억세의 옛 부하들은 대장의 의사를 따르고있었다. 그러나 성관호만은 례외였다. 여러번 무릎을 마주하고 해방직후 좌익에로 물곬을 탄 정세의 추이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고 시대의 관망자가 되지 말고 새 력사의 첨병이 되여야 한다고 손을 내밀었으나 성관호는 요지부동이였다. 성관호는 자기가 터득한 자기식의 진리를 고집하였고 그 길에서 한걸음도 비켜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주장과 자기나름으로 찾은 진로를 다음과 같이 완고하게 력설하였다. 《세상이 열백번 바뀌여져도 난 삼민주의신봉자로 남아있을걸세. 내게는 삼민주의리념과 일맥상통하는 김구의 좀 무지스러운 민족주의가 구미가 당기네. 모든 주의주장우에 민족이 있어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백범의 리념, 이게 훨씬 매혹적이라는 말일세. 그건 마치도 된장시래기국에 조밥을 말아먹는것처럼 구수하다 이걸세. 나같은 인간은 절대로 공산주의자는 되지 못해. 설사 목을 매서 잡아끈다고 하여도 난 공산주의문턱을 넘어서지 못할걸세. 그건 흘레브에 빠다를 발라 커피를 곁들여먹는것처럼 너무 쌈박하거던. 더구나 지금은 정계가 구름장처럼 매일매시 모양이 바뀌여지니 어느 갈래가 명이 길겠는지 통 가늠이 안되네. 새 나라가 일떠서고 새 제도가 밝아오는 과도기에 흔히 있을수 있는 혼란이니 난 좀 소란스러운 먼지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겠네.》 성란희와 동요까지 동원하여 련합전선을 폈다. 그들의 공세도 굳게 닫겨진 성관호의 성문을 열지 못하였다. 방억세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이제 뱉아놓을 매부의 말이 은근히 두려워났다. 좀더 뜸을 들이고 이런 자리를 펴놓았을걸 하고 후회막급하여지기도 하였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를 시키지 못하였으니 시기상조인것 같다. 더더구나 리승만이 이곳까지 행차하여 갖은 감언리설을 다 늘어놓았을것이고 누구나 탐내는 권세자리까지 넌떡 안겨주고 돌아선 뒤끝이니 상대의 앙양된 감정을 계산하지 못한채 서뿌르게 다쳐놓은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물러설수 없게 되였다. 어차피 맞다들었으니 망망대해를 향하여 올린 돛을 내릴수 없다. 《자, 앉자구… 그리고 그 입아귀에서 맥도 뽑구. 누가 보면 매부처남이 한바탕 몸싸움이라도 벌리는줄 알겠소, 허허…》 방억세는 이렇게 한걸음 비켜서며 자기도 긴장을 풀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성관호는 처남의 소리에 선웃음을 치며 돌아섰다. 그들은 다시 대리석탁을 가운데에 놓고 마주앉았다. 때마침 동요가 다반에 과일을 담아가지고 나타났다. 그 녀자가 계단을 살금살금 오르자 환영음악처럼 풍경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그 소리가 때없이 루각에 무겁게 서려있는 공기를 가벼이 휘저어놓았다.
그 녀자는 탁우에 과일이 담긴 자그마한 대나무광주리를 내려놓더니 그들사이에 끼여들었다. 두사람의 눈치가 첫눈에 이상스럽게 걸려들었던것이다. 그래 쉬이 물러갈념을 보이지 않고 이쪽저쪽에 껍질을 벗긴 사과쪽을 참대꼬챙이에 끼여 내밀고는 깔깔거리였다. 《하늘은 청청 맑고 꽃바람이 솔솔 부는데 루각에는 비풍이 치려나.》 그 발랄하고 살뜰한 동요의 재기발랄한 말과 웃음이 두사람을 무겁던 화제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에에… 넌 어쨌든 명문대가 종가며느리로는 부족이다. 시누이를 따라배워라.》 《시누이?… 시누이야 인테리겐찌야가 아니나요. 리화녀자전문학교에서는 숙녀노릇하는 방법도 다 배워준다나요. 발끝으로 사근사근 걸어가는 방법이며 서방님 홀리는 요술이며, 호호… 그러나 어쨌든 우리 집 랑군님은 막돼먹은 촌계집모양이 제일 좋다고 하니 시누이를 따라배웠다간 쫓겨날판인걸 어떻게 하나요.》 말끝에 동요가 청맑은 웃음을 터놓자 뚝해서 앉아있던 두사람도 배허벅을 들먹거리며 웃고말았다. 동생의 티없이 맑고도 희열에 넘치는 밝고 다감한 모습을 보니 환경이 인간의 모습을 바꾸게 한다는 말이 실감이 갔다. 원래 동요는 아이적부터 말수가 적고 생각이 깊었다. 생각하는바도 입으로가 아니라 눈으로 표현하는 녀인이였다. 죽창대시절에 한번은 성관호가 녀성소대에 가서 첫 강의에 출연하고와서 무척 기분이 나빠 방억세앞에 와서 투덜거렸다. 《난 다시는 녀성소대에는 가지 않겠소.》 《그건 왜?》 《그 소대장이라는 아가씨가 어찌도 매운 눈총인지 이마에 구멍이 뚫리는것 같았소. 아예 딱총이더구만. 게다가 벙어리사촌쯤 되는지 묻는 말에 마지못해 하는 대답이 <예, 아니요.> 이게 다요.》 《하하, 그 딱총인즉 내 동생이라오. 좀더 욕을 해보오.》 《대장의 동생인줄 모르는줄 아오?》 《차, 이런 걸작이라구야. 알고도 대장앞에 와서 함부로 소대장험담이요? 그래 무슨 일때문에 찾아갔댔소?》 《찾아가긴… 강의초대를 받았지요. 세상에 이름을 날린 녀류명사들의 얘기를 해달라고 우리 란희까지 곁묻어나서서 팔을 잡아끄는 바람에 갔드랬는데 하, 참…》 다음날 방억세는 동생을 불러놓고 다불러대니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였다. 《아니 글쎄 그 사람과 마주서니 가슴부터 후두둑해지지 않나요. 그런데 강의중에 물어보기도 하는데 꼭 소대장인 나만 일어서게 하지 않나요. 물어보는 말도 여러 말인데 뭐 길게 대답할수 있더라구요.》 《잘은 한다. 소대장이라는게 신입대원앞에서 후두둑해졌다는건 무슨 소리야. 어떻게 된 일이야. 첫눈에 홀딱 반한게 아니야?!》 방억세는 화가 나서 한바탕 꾸중을 하였다. 《어마나 오빠두, 반한게 뭐나요. 얼어붙어있었는데. 나야 뭐 말주변이 있나요. 그런데 자꾸 일쿼세우니 어떻게 해요. 그래서 수를 썼지요. 다시 물어보지 못하게 눈을 바로 뜨고 땀을 뽑아놨지요 뭘. 그래 뭐라고 고소질해요? 처녀의 어깨너머로 송사다니는게 무슨 사내람.》 그러던 동생이 남들이 부러워할만 한 남편을 맞아 말솜씨도 제법이고 행동거지도 활발해졌다. 그런데 성란희는 그 반대로 달라졌다. 첫인상에 쾌활하고 명랑하고 그늘진데가 없던 처녀가 엄혹한 산중생활과 간고한 지하투쟁속에서 언행이 무거워지고 감정보다 리성이 앞서고 웃음도 말수도 조절할줄 아는 리지적인 인간이 되였다. 방억세에게는 처녀에게서 찾아보는 그러한 변화들이 어쩐지 서글프게 느껴지군 하였다. 부호집 귀동녀가 굳센 용사로 변한것은 대견한 일이였으나 처녀의 아름답고도 숫저운 웃음과 발랄하고 매혹적인 모습에 다른 색갈이 채색되는것은 싫었다. 동요가 시치미를 뚝 떼고 그냥 두사람새에서 쉬이 일어설 낌새를 보이지 않자 성관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여보, 우린 사실 무척 중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소.》 《알겠어요. 저도 두분이 또 한바탕 닭싸움을 벌려놓을거라고 생각하였어요.》 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반에서 쪽을 낸 과일을 담은 접시를 탁우에 올려놓으며 웃었다. 《닭싸움?… 허허…》 《계속하세요. 속이 후련하게. 그러나 아무리 쪼아대야 남을건 허물자리밖에 없어요.》 두사람은 동요의 말에 소리내여 웃었다. 성관호와 방억세는 그전에도 만날 때마다 그 무슨 론쟁거리를 꺼내가지고 티각거리군 하였다. 그게 자주 동요의 눈에 띄워 그들의 론쟁에 《닭싸움》이라는 유모아적인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동요는 이내 두사람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풍경소리를 날리며 계단을 사뿐사뿐 내려갔다. 녀인이 밝은 웃음을 거두어가지고 사라지자 루각에 다시 무거운 구름장이 몰려든듯싶었다. 두사람은 휴전을 약속이나 한듯 대꼬챙이로 사과쪽을 꿰들고 우적우적 씹으며 한동안 말없이 자기 생각을 좇고있었다. 성관호는 토막난 이야기와 감정을 어떻게 다시 련결할수 있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더듬었고 방억세는 성관호가 이제 어떤 폭탄선언을 터뜨리겠는지, 그에 어떻게 대처해야 되겠는지 초긴장속에 사색을 집중하고있었다. 《음-》 성관호가 마침내 대꼬챙이에 찔리운 사과속을 던져놓고 립장이 정리된듯 길게 코소리를 냈다. 《내가 말일세. 아까 처남이 부탁한 두가지 문제는 다 접수한다고 했지.》 《난 고맙다고 하였지.》 《그랬었지. 그런데 이것 보게. 날 자네의 공산혁명에 리용할 생각은 그이상은 하지 말게.》 성관호의 이야기를 방억세는 침착하게 받아넘겼다. 《자네의 공산혁명?… 말이 참 이상하네그려. 빨찌산이 무엇때문에 산에서 간난신고 겪고있는지 다른 사람도 아닌 매부가 모른단 말인가. 미국놈들때문일세. 그놈들이 영영 이 나라를 깔고앉자는 속심이 헨둥한데 우리가 그 짓거리를 보고만 있을수 있는가. 내 아무래도 금방 토해놓은 말을 다시 설명해야겠군. 생각해보게. 미국놈들이 우리가 청해서 들어왔나? 이 땅에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고 들어온 주제에 <해방자>라고 거들먹거리면서 5천년력사국에서 감히 주인행세를 하고있네. 강점군사령관이 렴치없이 <총독>관저를 차지하고 <군정청>을 만들어놓고는 이남땅을 다스리고있네. 그놈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인민들이 제손으로 만들어낸 인민위원회를 다 쓸어버리고 숨어지내던 친일매국노들을 부활시켜 진보세력에 대한 대살륙전을 시작하게 하였네. 이남주민을 기아와 굶주림속에 몰아넣고 남녘땅을 통채로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렸네. 그런데 미국놈들이 조만간에 제 소굴로 물러갈 기미도 보이지 않아. 깔고앉은김에 영원한 제놈들의 속국으로 만들어 장차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만들자는걸세. 그런데 우리가 그놈들에게 기가 눌리워 노예살이에 만족한다면 우리 후손들이 장차 우리더러 뭐라고 하겠나? 두고보게. 이제 매부가 몸담은 그 군대라는것도 불원간에 미국놈들의 총알받이로, 고용병으로 되여 동족상쟁의 불바다에 말려들게 될거네.》 《아니, 그럴수 없어. 그래서는 안되지.》 《천만에! 미국놈들이 있는 한 그것은 피할길 없을걸세. 그래서 바로 이 땅의 가장 의로운 열혈용사들이 무기를 잡은걸세. 미국놈들을 몰아낸 다음에는 어떻게 할것인가. 그다음은 나라의 통일일세. 나라의 안정, 독립, 백성이 주인된 사회일세. 매부도 눈을 감고있지 않겠지. 저 북녘땅을 올려다보게. 인민이 대를 이어 꿈꾸어왔던 숙원이 다 풀려가고있지 않나.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되여 남쪽의 낟알을 가져가던 북쪽사람들이 이제는 해마다 풍년낟가리를 쌓아놓고 배부르게 살아간다고 하네. 쇠물이 쏟아지고 비료가 쏟아지고 기차가 제대로 돌아가고 아이들이 신바람이 나서 공부를 하고… 착취도 없고 압박도 없고 외세도 없이 인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세상! 바로 이걸 위하여 빨찌산이 생겨났고 피흘리며 쓰러지면서도 싸우는거요. 이게 어찌 나의 공산혁명에 한정되는 리상인가. 공산혁명은 그자체가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개념으로부터 출발되는것이라는걸 알아야 하네.》 《민족이라는 성스러운 이름을 공산혁명에 도용하지 말게. 백범이 주장했듯이 민족이란 모든 주의주장우에 솟아있는 신성한 개념일세. 헌데 당신들의 공산혁명은 프로레타리아트의 지배를 목표로 한것이 아닌가. 이보게, 난 맑스의 공산당선언을 읽어보지 못했는줄 아나? 그에 비하면 손문이 제창한 민족, 민권, 민생은 얼마나 내용이 풍부하고 인간적이며 유혹적인가. 민족을 하늘처럼 섬기며 민족의 단합과 권리와 번영을 모든 주의주장의 시작과 끝으로 내세운 백범의 민족주의가 얼마나 아름다우며 진실하며 도의적인가. 당신들의 공산혁명은 이 남쪽땅도 크레믈리의 붉은기로 휘감아버리자는건데 난 절대로 동조할수 없단 말일세. 그리고 난 말일세. 두 임금을 섬기고싶지 않네. 예로부터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두 임금?… 그래 매부가 섬기려는 임금은 누구인가?》 《어쩌겠나. 나도 서울땅에서 군복무를 시작한다면 어차피 다른 임금을 섬길수야 없지 않는가.》 《아니, 그럼 리승만을 제놈이 자화자찬해서 떠드는 국부로 섬기겠다는건가?》 《어쩌겠나. 리승만이 구접스러운 정치행보를 밟아온 령감쟁이고 양놈들앞에서 설설 기여다니는 무골충이며 한생에 권력싸움으로 이골이 나서 누렇게 황이 진 로망든 두상태기라는건 나도 모르지 않네. 그렇다고 이미 옥좌에 들어앉은 령감을 제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제껴버릴수 있는가? 난 리승만이 아니라 대세를 따를 결심일세. 일단 대통령이 옥좌에 앉으면 나라의 상징이고 대표로 되는즉 그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는 곱든 밉든 군대도 복종하고 국민도 그를 중심으로 단합되여야 하는거요. 글쎄 그게 미국놈들이 뒤에서 꾸미고 총칼로 밀어준 일이기는 해도 말일세. 이른바 민주정치의 모델이라고 자찬하는 미국을 보라구. 언제나 대통령선거에서는 가까스로 과반수의 지지표를 모은자가 대통령자리를 차지하는거요. 그러니 절반 가까운 반대파를 가지고있는셈일세. 그렇다고 대통령을 선거에서 지지한 세력만이 대통령을 따르고 복종하는게 아니거던. 정 못나게 정사를 할것 같으면 국회에서 명분을 세워 탄핵을 해서 들어내든지 다음기 선거에서 옥좌에서 끌어내면 되는거야. 이건 정치에서 하나의 도의요. 난 혁명도 도의를 떠나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싶소. 그래서 난 당초에 분명히 밝히는바이네. 내게 기대를 걸지 말게. 난 다만 군에 취임하면 군대를 정치에서 엄정중립을 지켜 강토와 국민을 보호하는 군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민족군으로 만드는데 내 심혼을 다 바쳐갈 결심이네. 군대란 절대로 정치의 옳고그름을 따지며 옳으면 보호하여주고 그르면 제껴버리는 정치의 수단으로 되여서는 안되네. 자, 내 하고픈 소리는 이게 전부일세. 이건 처남부탁과도 일맥상통하는바가 있으니 다행일세. 지루한 강변을 인내성있게 들어주어 고맙네.》 방억세는 성관호의 장광설에 아연하여졌다. 성관호가 담담하게 엮어놓은 이야기가 얼핏 들으면 론리정연하고 도량이 크고 우국충정이 번쩍거리는것만 같지만 뒤집어보면 그것은 일종의 기회주의요, 개량주의에 불과한 궤변이다. 물론 방억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바는 아니였다. 산에서도 성관호는 손문의 삼민주의와 백범의 민족주의의 열렬한 숭배자가 되여 그에 대하여 신명이 나서 내리엮군 하였다. 그리고 공산주의학설이 론의점에 오르면 슬그머니 꼬리를 사리거나 입을 봉하군 하였다. 방억세는 그때마다 비위가 상했으나 70칸 대궐에 서울시안에도 방직공장과 백화점을 비롯한 여러 업체들에서 거액의 주권을 가지고있던 부호의 어쩔수 없는 제한성이라고 서너발 물러서주군 하였다. 그가 떠드는 도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삼복더위에 가마타고 부들부채로 바람을 날리면서 숱한 소작인들의 구슬땀을 빨며 영근 옥백미와 주지육림에 묻혀살아온 량반가문의 장손으로서 감히 도의를 떠들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시절에 방억세는 죽창대가 신분이나 주의주장을 묻어두고 항일에 뜻을 둔 사람들로 무어진 초당파적인 집단이라는 리유로부터 그리고 성관호오누이의 입산후 죽창대의 존립에 필요한 거액의 자금이 이 70칸 대궐에서 흘러나오고있다는것으로 하여 구태여 계산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녀동생이 자기의 계급적울타리를 단연코 뛰여넘어 무산혁명의 기발을 자기의 표대로 받아들였다는 사정이 성관호의 민족주의며 도의에 대하여 눈을 감아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죽창대에서의 훈련과 생활이 성관호에게서 좌익에 대한 동경과 호의를 크게 불러일으킨것도 사실이였다. 그는 죽창대에서 공산주의의 동정자로 자기의 리념을 교정하여나갔다. 해방후 어느 한 자리에서 방억세는 성관호를 조직에 인입하려고 설득하다가 끝내 민족주의의 벽에 부딪쳐 좌절되고말자 신경질이 나서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그럼 대체 매부는 어느쪽 사람인가. 동생도, 처남도 그리고 녀편네까지 편으로 말하면 적색일진대 그래 자기는 공산주의동정자가 아니란 말이요?! 립장을 명백히 하오. 해방된 서울땅에서 단언컨대 좌익은 진보요, 우익은 반동이요! 그 중간자리란 존재하지 않소!》 처남의 격렬한 비난에 성관호는 늘어지게 하품질을 하고는 여유작작하게 대꾸하였다. 《하, 처남이 내라는 인간규정을 정하게 해주었네. 내가 공산주의동정자라는건 지당한 평가요. 공산주의는 19세기가 20세기에 물려준 인류사적가치를 가진 보편적인 진보사상임에 틀림없소. 인류력사를 거슬러보면 언제나 훌륭한 인간들, 뜻높은 인간들이야말로 시대를 앞지른 진보사상의 신봉자들이고 실천가들이였다는것도 틀림없소. 인류력사는 그들이 흘린 고결한 피로써 한걸음두걸음 진보의 고행길을 헤쳐 오늘의 문명경지에 이르렀소. 한마디로 공산주의는 진보의 신선한 바람이고 공산주의신봉자들 역시 정치와 도덕과 인격에서 시대를 뛰여넘어온 새시대의 선각자들이요. 난 죽창대의 생활속에서, 죽창대의 훌륭한 규률과 륜리에 접하면서 그리고 공산주의신봉자인 처남을 보면서 이러한 자기의 판단이 옳다는것을 실감하군 하였네. 그러니 내가 손끝이 뾰족한 내 동생을 다시 빨찌산에 올려보낸것도 그래, 좌익권의 거물급인물인 죽창대대장님을 가까운 지기로 받아들인것도 그래 그리고 백년해로해야 할 반려자를 좌익권에서 선택한것도 그래 다 우연한 일이라고 볼수 없을거네. 하지만 이보게, 난 나대로 생각하고 나대로 살고싶네. 내 이름으로 되는 리념을 갖고싶고 나자신의 세계를 갖고싶단 말일세.》 《또 도의인가? 도의! 도의!… 그 고리타분한 유교의 공리공담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난 매부처럼 박식하고 개명한 사람이 도의에 대하여 떠들 때면 꼭 사랑방에서 버선발에 바지저고리 입고 올방자를 틀고앉아 장죽에 연기를 피워올리며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시골유생을 보는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 방억세는 매부의 완고하고 진지하기도 한 궤변에 넌덜머리가 나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성관호는 처남이 진저리치는것이 보기 좋은듯 여전히 느물거리며 골려주듯 또 열을 올려 도의를 도도히 엮어갔다. 《하, 나의 민족관이나 도의설을 장죽을 문 시골유생의 공자 왈 맹자 왈로 비하하니 좀 슬프구만. 적어도 처남 같이 개명한 신사는 리해를 표시할줄 알았는데. 그러면 이 공자왈의 주장을 곰팡내 한번 맡아보는셈 치고 한번만 들어주게. 도의가 없는 주의주장은 정의감과 도덕성을 배제한 한갖 권력과 치부를 위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걸세. 내가 공산주의를 우리 시대의 진리로, 진보로 동정하는것은 거기에 도의가 깔려있기때문일세.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실로 인류의 세기적숙망과 리상의 극치일세. 땀흘린자에게 마땅한 치부의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것, 권력의 세습과 지위의 세습, 재부의 세습을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는것… 사람은 평등하며 다같이 일하고 다같이 배우며 다같이 잘살아야 한다는것… 얼마나 훌륭한 도의인가. 이것은 분명코 인류의 개화를 바라보게 하는 고결한 도의일세. 그 도의의 빛나는 절정일세. 헌데… 헌데 말이요. 그 어떤 착취도 없고 압박도 없는 공산주의라는 훌륭한 목적을 위한 방법과 수단에는 문제가 있네. 한마디로 도의가 결여되여있다 그것이네. 온갖 권력을 청산하라-이것까지는 좋네. 훌륭한 구호일세. 그다음이 문제지. 착취자들을 수탈하라, 프로독재 만세, 프로정권수립… 그래 전복된 유산계급은 어데로 도망칠텐가. 고결한 리상과 목적을 지향하더라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정당한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야 할것이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소리는 파렴치의 극치야. 권력을 탐하여 인간의 도의, 민족의 도의, 국가의 도의, 정치의 도의, 경제의 도의마저 파괴하고 유린한다면 거기에 어찌 정의가 있고 진보가 있겠는가. 로씨야를 보게. 레닌이 지펴올린 10월의 불길은 국내공민전쟁이라는 로씨야사상초유의 대혼란을 빚어냈지. 거기에 무자비한 정적숙청놀음에 일설에 의하면 수많은 무고한 인생이 짓밟혔다고 하네. 그게 적실하다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자가 수천만이라 하는데 바로 로씨야의 공산혁명은 권력을 지키느라고 그만한 정적을 무지막지하게 쓰러눕힌걸로 되지. 자네도 우리 조선의병대의 마지막기치였던 홍범도대장이 연해주로, 연해주에서 다시 중앙아시아로 떠돌아 다니다가 말년을 끝내였다는것을 알고있겠지. 계급의 페절을 노래처럼 외우던 로씨야의 공산혁명은 수없는 계급분화를 가져와 사회를 천층만층으로 갈라놓았다고 하네. 그리고 새로운 보다 치밀하게 조직화된 권력기구에 군림하는 군주와 군주의 측근들로 이루어진 특권계급이 만들어졌다고 하네. 현대판로씨야의 귀족계급의 부활이지. 물론 이건 내가 우익계가 꼬집는 소리를 그대로 외운것이니 거기에는 과장과 허위도 있겠지. 내가 로씨야공산주의의 악성적인 병페를 꼬집어든다고 처남이 이마살을 찌프릴것 없네. 공산주의가 도의라는 시큰둥한 세계에 물젖어있는 나를 용납하지 않을것이며 나 또한 도의를 저버린 주의주장의 잔혹성을 용납할수 없기때문에 피해서는걸세. 나를 리해하라구.》 《아니, 난 리해할수 없네. 그렇다면 저 38°선 이북을 올려다보게. 김일성장군님의 정사가 어떤것인지 매부는 정말 눈을 감고있는가?》 《처남, 나를 제발 벼랑턱으로 몰아가지 말아주게. 내가 항일의 영웅 김일성장군의 숭배자라는걸 몰라서 그러나. 뭐 처남이 내게 그분 얘기를 적게 들려주었다구. 확실히 북은 지금 천지개벽이 되여가고있네. 처남 말마따나 내가 뭐 눈을 감고있는건 아닐세. 김일성장군의 정사가 어떻다는걸 보여주는 쾌거일세. 하지만 난 더 지켜보려네. 김일성장군의 정치의 리상이 어떠한것인지, 북에서는 정치의 도의를 어떻게 펼쳐가려는지 더 지켜보자는걸세. 아직까지는 북에도 쏘련군대가 있지 않나. 물론 력사의 과도기인즉 불가피하겠지. 그러니 난 더 지켜보는걸세. 정말 미국것들이 이 땅을 깔고앉으려나. 요즈음 미군철수설도 돌지 않나. 리승만이도 좀더 두고보자고 했는데 이젠 처남부탁이 있고 하니 일떠설수밖에 없게 되였네. 정말 리승만이 미국의 개노릇 할려는가? <국부>노릇을 어떻게 하려나, 정치의 도의는 어떻게 지켜가려나, 이쪽저쪽 지켜보느라면 이 성관호도 깨도가 되겠지. 그러니 나의 은둔을 그저 달팽이같은 흉내로만 보지 말아주게. 날 리해하여달라구.》 성관호는 그의 팔섶에 매달려 사정하듯이 자못 심각하고 절절하게 부탁하였다. 《좋네. 난 더는 건드리지 않겠네. 이에 대한 론의는 뒤날로 미루세. 그러면 도의를 이 혼탁된 사회에 접목시키기 위한 매부의 지론은 무언가?》 《나의 지론?… 나에겐 그 무슨 지론이라 이름붙일만 한 신성한것은 없네. 난 말일세. 할아버지로부터 우리 후손들은 절대로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유언을 받았네. <을사5조약>을 둘러싸고 모대기던 할아버지의 복잡한 심중이 리해되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는 국권을 되찾고 되찾은 국권을 지켜가는 군인이 되라는 유언을 받았네. 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관학교에 갔구 태평양전쟁에 묶이웠다가 처남덕으로 제 곬에 가까스로 들어섰네. 선친들앞에 이제야 비로소 머리들고 나서게 되였는데 이게 다 처남덕이야. 나는 지금이야말로 국민과 강토를 지켜가는 민족군건설의 초지를 펼칠 때라고 보네. 정치와 권력의 시녀가 아닌 순수한 국방건설! 난 지금 그쪽으로 운명의 돛을 올리였네. 그리고 국방에 몸을 담으려는 인간들도 그쪽으로 몰아가기 위하여 내나름으로 군계몽을 펴나가고있네.》 방억세는 매부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른바 순수한 국방의 방략을 위해 서재에 파묻혀 서방세계의 군건설과 전쟁경험을 쉬임없이 연구하고 국방관계 출판물에 실어가는 성관호의 저의를 깨닫고 은근히 탄복되는바도 컸다. 사실 해방직후부터 대가집의 높은 담장안에 들이박힌 성관호는 줄기찬 집필활동으로 민족군대창설의 청사진을 만들어 정계와 군관계자들에게 충격을 크게 주고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은 후로 방억세는 더는 매부를 좌익권에 끌어들이느라고 품을 들이지 않았다. 정치와 리념에 대한 나름으로의 일가견을 가지고 도의니 민족관이니 하는 두터운 성벽안에 웅크리고있는 그를 도저히 자기의 수완과 지성을 가지고서는 지금 당장은 끌어낼수 없다고 단념하여버렸던것이다. 그러나 방억세는 도의라는 몽상의 세계에서 헤매는 성관호가 때없이 허황하고 가련하게까지 생각되군 하였다. 언제면 저 인간은 현실을 랭정하게 재여볼 자대를 가지게 될가. 호화스러운 터전과 혼탁된 교육에 뿌리박고 줄기뻗은 저 인간에게 세계와 자기 인생을 꿰뚫어볼수 있는 눈과 리성을 주자면 참으로 오랜 세월과 공력이 있어야 할것 같다. 방억세는 또다시 그때의 지겹던 론쟁이 다시 재현되고있다는것을 통감하였다. 그래 속으로는 《닭알로 바위치기》라고 뇌이며 허거프게 웃었다. 아무리 든장질을 해봐야 이야기가 더 전진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가 갈래없이 흘러가다가는 다시 원점으로 팽이돌듯 돌아가는것이다. 방억세는 현시점에서는 이 정도로 매듭을 짓기로 결심하였다. 나사못도 너무 죄이면 부러진다. 지나친 욕심으로 괜히 덧나게 하다가는 모든것을 놓칠수 있다. 그러나 이미 부탁한 두가지 문제에 대하여 매부가 쾌히 접수한것만도 커다란 성과라고 자신을 위로하였다. 그가 지금까지 굳이 도리질을 하였고 리승만앞에서도 대답하지 않았던 군복무를 자기의 부탁으로 접수한것만 하여도 고마운 일이였다. 이제 세월이 그에게 새로운 립장과 태도를 가지게 할수도 있다. 아직 성관호는 무엇이 도의인가 하는 굳어진 타성에서 물러서려고 하지 않지만 생활은 그 개념을 반드시 바꾸게 할것이다. 방억세는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밝은 어조로 화제를 바꾸었다. 《이젠 열변을 그만 토하고 좀 쉬게. 다음문제에로 넘어갑세.》 《왜 어찌된 일인가. 그렇게 쉽게 물러서다니? 난 좀 오늘은 땀깨나 뽑게 되였다구 생각하구있었는데 좀 되게 쳐갈겨보지.》 《쳐갈겨봐야 내 손바닥만 흠집이 생길걸. 아까 동요가 뭐라고 했나, 허허…》 《허허… 처남과는 말할 재미가 있어. 난 사실 아까 태룡산에서 축출됐다고 하기에 속이 덜컥해지더라니깐. 처남이야 나와는 다른 사람이지.》 《왜?… 차라리 잘코사니야지. 수하에 밀어넣고 구종처럼 써먹을 욕심부터 생겼겠는데…》 《에-에, 무슨 소리… 처남의 근량이 얼마 되는지 방금전에 리승만까지 여기 와서 외우더구만.》 《리승만이? 저런…》 《뭐 크게 써먹을 동량감으로 눌러놓고있었는데 뻘건 물이 들었다며 아쉬워하더구만. 미국것들이 대바람에 도리질이라더구만. 그놈들이 처남속이 새빨간줄을 어떻게 알고있을가.》 《허, 뭘 새삼스러워할게 있나. 이 나라 정치가 미국놈들의 손끝에서 흔들거리는거야 세상이 다 아는건데. 미국놈들 비밀문서고엔 내가 <새빨갛다>는것뿐아니라 매부속이 뿌옇다는 소리도 다 있을걸세. 리승만이 1차<국무회의>에서 했다는 소릴 못 들었나. 나, 리승만은 곧 미국이요, 미국은 곧 리승만이라. 그러니 미국이 도리질이니 두상도 도리질할수밖에…》 《두상태기, 에에, 골치아픈 일이야… 헌데 어쩔수 있나. 미국이 깔고앉아있는 판에… 그래서 좀 말미를 주고 두고보세나. 과도기가 아닌가.》 《응, 또… 또…》 《허허… 눈을 빨지 말게. 내가 리승만에게 한번 건의해볼가. 그 두상이 들어줄수도 있겠더라구.》 《미국이 도리질한다는데두?… 하긴 참모부의 수석자리라면 기웃거려보겠는데… 그렇게 되면야 내가 이렇게 매부님팔소매에 매달려 도의학강론을 듣지 않아도 되는건데… 에- 하여간 아쉽다.》 《허허… 허지만 내 처남을 위한 일이라면 징검다리가 되여주리라는것을 약속할수 있네. 내 처남께 빚진거 많으니 그런걸루 회계를 치러야지. 내 어깨를 밟고 대공에 솟으라구. 그까짓 참모부의 수석자리겠나, 옥황상제쯤 견주어 열심히 뛰라구.》 《어, 난 하늘나라 신선노릇 할 생각은 없소. 차라리 인간세상의 하바닥에서 딩구는 막돌같은 인생살이가 낫지. 하하하…》 두사람은 공방전에서 풀려나와 마주보며 장쾌하게 웃었다. 처남매부지간의 론쟁은 언제나 이러루하게 벌어지고 타협으로 끝나버린다. 문득 시작된 이야기가 서로 합의점없는 론쟁으로 불꽃을 맹렬히 튕기다가 사나이들답게 호탕하게 막을 내리는것이다. 그들은 사과 반쪽씩 더 요정을 내고서는 닭싸움을 벌렸던게 언제였더냐싶게 방억세의 서울정착과 관련한 실무적인 문제들을 놓고 오손도손 의견을 나누었다. 거기에도 신중한 난문제들이 있어 해결방도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지금 방억세에게는 수배령이 내려있다. 리승만이까지 알고있는 주요감시인물이고 《검찰청》과 경찰서들에 빨찌산대장으로 등록되여있는 인물이므로 이대로 붙잡히면 어차피 재판정에 끌려가게 되고 그 결과는 사형이 례상사요, 잘되여야 무기형으로 철창에서 일생을 마치기 십상이다. 그러니 서울에서 일을 펴나가자면 수배령을 해제하도록 하는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사업은 고사하고 서울땅에 발을 붙이기도 어렵다. 그리고 성관호에게도 직접적인 루가 끼쳐 장차를 어둡게 할수 있다. 첫 돌파구이면서도 앞날의 사업의 승패가 걸려있는 매우 중대한 돌파구였다.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해를 머리에 이고 시작된 론의가 해가 대가집 룡마루뒤로 넘어갈 때까지 그냥 이어져 땅거미가 질무렵에야 끝났다. 장시간에 걸치는 론의끝에 그들은 이렇게 합의를 보았다. 당장 래일중으로 성관호가 태백산항일죽창대출신으로 서울 장안에 남아있는 동료들을 불러들여 대장의 하산을 환영하는 연회를 차린다. 여기서 방억세가 해방전에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산생활을 하기 힘들어졌는데 이것이 빨찌산투쟁에 대한 기피로 분석되여 빨찌산과 조직에서 추방되였으며 이를 계기로 금후 일체 좌익이나 우익의 정치활동에서 벗어날것을 결심하였다고 자기의 하산리유를 공개한다. 그다음에는 서울《검찰청》을 찾아가서 하산정형을 통보하며 구청에 시민등록증발급을 신청한다. 《검찰청》의 조사가 끝나고 시민등록증을 받으면 《용달사》설립에 착수한다. 《용달사》는 그 품목을 많이 하지 말고 군모와 신발따위 몇가지를 독점적으로 주문받아 보장함으로써 군부의 모든 단위들을 대상할수 있게 하며 점차적으로 각 도와 관계공장들에 분사를 조직하여 이남전체 지역적판도에서 활동할수 있는 거점들을 확보한다. 서울《검찰청》에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면서 재판소에 송치하려고 할 때에는 군부동료들이 련명으로 석방탄원서를 《경무대》 비서실에 제출한다. … 방억세의 서울정착과 관련한 당면한 문제해결방안이 이렇게 서자 성관호는 자기 동료들이 모여들어 한주일전에 사형선고를 받은 《정보국》 소령 박정희를 가석방시킨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정보국》 소령인 박정희는 일본군장교경력자로서 해방이 되자 군부안에 조직된 좌익조직에서 활동하고있었다. 박정희는 려수항쟁에 관여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되여 군사재판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지하에 잠적하고있던 방억세는 그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도록 성관호를 즉시 움직이였다. 성관호도 박정희가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대경실색하였다. 해방직후부터 인차 조직권에서 활동한 박정희는 방억세와도 련결되여있던지라 성관호하고도 자연히 상종하면서 사귀게 되였던것이다. 방억세는 산에 오를 때에도 성관호에게 박정희의 구명운동을 벌려줄것을 신신당부하고 떠나갔다. 성관호는 일본군장교출신들을 내세웠다. 해방이 되자 정계나 다름없이 군부도 일본군출신, 《림정》계의 《광복군》출신, 《만주군》출신 등으로 제가끔 패를 나누어 뭉쳐다니며 서로 지지하고 밀어주고 감싸주면서 미국놈들앞에서 자기 계렬세력의 지위와 영향력을 경쟁적으로 과시하여나갔는데 성관호는 바로 이자들의 련대의식에 호소하였던것이다. 성관호의 제의를 받은 일본군출신의 장교들속에는 미군에 붙어돌아가는 한편 해방직후의 예측할수 없는 대혼란속에서 재빨리 리승만의 정치적무게를 확인하고 그에게 주패장을 던지고 일약 리승만의 심복자로 둔갑한 백선엽형제와 정일권, 장도영, 장수덕 등이 있었다. 군부에서 가장 강한 인맥을 가지고있는 세력이였다. 이들은 《경무대》에 박정희에 대한 련명보증서를 제출하였다. 자기세력의 위세를 한바탕 뽐내고싶어 하던 이자들은 성관호의 호소를 쾌히 받아들여 자기 파벌의 명예를 걸고 뛰였다. 얼마후에 박정희는 가석방되였다. 박정희가 가석방되였다는 소리에 방억세는 크게 기뻐하였다. 그가 체포되였다는 소식을 받았고 심문을 당하고있다는 말도 들었는데 그가 석방되였다는 소식은 금시초문이였다. 박정희는 륙군사관학교에서 중대장으로 복무할 때부터 조직활동에 참가하였는데 군부안의 조직들을 적지 않게 알고있었다. 그가 륙군사관학교에서 선발하여 군부안의 여러 단위에 보낸 조직성원만 하여도 수백명이였던것이다. 그래 방억세는 박정희가 체포되였다는 소식에 접하자 그의 신변과 함께 금후 군부안의 조직들의 운명을 놓고 크게 걱정하였었다. 그의 입이 터지면 좌익권의 군사조직이 크게 흔들릴수 있었던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당시 군부안의 좌익세력에 대한 1차숙청이 끝난 후에 2차숙청이 벌어진다는 풍설이 돌고있었다. 그런데 박정희가 무죄로 풀려나왔다니 우선 크게 마음이 놓이였다. 《하, 매부님이 큰일을 했소. 시간을 지체했더라면 그 사람은 영낙없이 목없는 귀신이 될번 하였는데 고맙소.》 방억세는 제일처럼 기뻐하며 성관호의 수고를 치하하였다. 《아직 마음을 놓을건 못되오. 감방에서 풀려나기는 했으나 자택연금으로 되여있으니 그냥 감시받고있는 몸이요. 최종판결도 내리지 않았고… 그 사람을 한번 만나볼가? <검찰청>에 검속되는 경우도 있을수 있으니 실무적인 문제들을 알아보고 경험과 교훈도 들어보는것이 좋을듯싶소.》 《그게 좋겠구만. 나도 그 사람을 보고싶구만. 사람이 체소해보여도 근엄한데가 있고 매사에 무척 절제가 있었는데 용케 견디여냈구만.》 방억세는 이렇게 선뜻 성관호의 말에 지지해나섰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박정희는 사실… 김창룡쪽에서 물었으면 보증서 하나로 풀리기 힘든 인물인데…》 무엇인가 박정희의 석방에 께름직한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처남이 미타하면…》 성관호가 귀밝게 방억세의 혼자소리를 가려듣고 말하였다. 《박정희를 만나지 맙시다. 그까짓 <검찰청>에야 아무튼 부닥쳐봐야 할건데. 박정희가 빠져나오는 판에 처남이 나오지 못할리야 있겠소.》 《아니, 가봅시다. 그 사람이 특무대에 연줄을 이어놓고 나왔더라도 만나서 밑질건 없소. 오히려 그 사람 선으로도 나의 하산이 공개될수도 있으니깐…》 《처남 좋도록 하시오. 자, 찾기 전에 들어가세. 저녁시간이네.》 성관호가 이제는 해야 할 이야기가 끝났다는듯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방억세도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섰다. 그들은 루각에서 내려 본채에 있는 식당을 향하여 나란히 걸어갔다. 방억세는 성관호가 지금은 주되는 문제에서는 물러서려고 하지만 승리의 그날까지 자기의 미더운 조력자로, 충실한 전우로 나란히 걸어가리라는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후원에서 벗어나 앞마당으로 나서게 될 때 문득 성관호가 걸음을 멈추고 밑도 끝도 없이 툭한 어조로 물었다. 《이보게 처남, 란희는 어쩔셈인가?》 성관호의 돌발적인 물음에 방억세는 속이 철렁하였다. 성란희에 대한 이야기가 성관호에게서 반드시 나올것이라고 은근히 조마조마하였는데 성관호도 말떼기가 난처해서 기회를 찾던 모양이였다. 아까 동요에게서 몇마디 들었을 때는 얼버무려 넘기였지만 매부하고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눌수는 없었다. 기실 지금 성관호의 표정은 엄하였다. 불을 켜단듯 이글거리는 눈이 진속을 끄집어내서 결판을 내려는듯 광채를 번뜩거리며 방억세의 얼굴을 세차게 더듬고있었다. 그 눈빛이 벌써 방억세의 가슴을 얼어들게 하였다. 《음-》 저도 다잡을새없이 방억세의 입새로 길게 숨소리가 새여나갔다. 《듣기가 싫구만, 그 맥빠진 한숨소리! 대가집 규수의 여린 속을 든장질해놓은건 누군데 아직도 제편에서 한숨인가. 자넨 공산주의자가 아닌가. 투사가 아닌가. 왜 이 문제만은 그리도 소심한가. 그래 또 배우지도 않은 청교도의 교리를 외워볼텐가. 내가 또 빠리식삼각련애의 의미를 가지고 강의를 해야 되겠나.》 성관호는 자기 말에 날을 세워가지고 연방 따지고 닦아세웠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녀동생문제가 아직도 결속을 보지 못하고 해를 넘기는게 방억세에게 걸려있는것이라고 판단하고있었으며 그것때문에 처남이 미워질 때가 많았다. 어머니가 딸의 신상을 놓고 한숨을 지을 때도, 빨찌산이 몰리고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도 성관호는 속으로 방억세에게 주먹질을 하여왔다. 그러나 방억세로서는 이 문제에서는 더 할소리가 없었다. 자기로서는 란희의 문제를 놓고 다 설명하였던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방억세는 성란희가 손끝으로 물을 튕기며 살아온 량반집 귀동녀로서 무산자와 함께 운명을 끝까지 할수 있을가 하는 의혹은 말끔히 털어버리고있었다. 성란희는 죽창대에 이어 해방후의 간고한 지하투쟁과 무장투쟁에서 녀성투사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당당하게 갖추었다. 그는 자기의 평생을 가난한 인간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투쟁에 바치겠다는것을 붉은기앞에서 맹세하였고 그렇게 살고있다. 지금은 독립지대의 녀성참모로서 자기 몫을 맡아하고있다. 성란희의 달라진 모습은 방억세에게도 너무도 뜻밖이였으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였고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그 녀자의 도고한 아름다움이고 지성과 의지의 고결한 응결체와도 같은것이였다. 그러나 지금도 한정상이 빨찌산대오에서 성란희와 나란히 서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성란희가 가는 곳에는 한정상이 뒤따라 나타나군 한다. 성란희가 해방직후 《해방일보》의 특파원자격으로 도꾜에 가서 사업하게 되였을 때 한정상은 조직의 파견으로 일본공산당과의 사업을 위하여 도꾜에 가있었다. 성란희가 서울에 소환되여 지하투쟁을 하다가 태백산으로 들어갔을 때에도 그곳에는 한발 먼저 한정상이 가있었다. 방억세는 한정상이 그 녀자에게 드문히 결혼의향을 비치고있다는것도 알고있다. 뿐더러 그들의 혼담은 벌써 죽창대에서는 물론 지금의 빨찌산대오에서도 소문이 나있는 화제거리다. 방억세는 아마도 한정상이 란희를 잃게 되면 혁명도 포기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해방전에도 한정상은 분명 처녀를 잃지 않으려고 산에 올랐고 해방후에도 처녀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어려운 길을 따라서고있는것 같다. 세상에는 사랑을 찾아 혁명의 길에 나선 녀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중에는 애인과 더불어 끝까지 곡절많은 투쟁의 길을 걸으며 자신을 혁명가로 완성시킨 녀인들도 많다. 사랑을 찾아 혁명의 길에 나선 사나이들도 있을것이다. 한정상이 그렇게 된다면 나쁠게 없다. 그런데 내가 그들의 사이에 끼여들수 있는가. 그것은 애써 혁명의 길에 들어선 한 인간을 버리는것으로 될수 있다. 더구나 나는 한정상의 상급이였고 지금도 동지이다. 성관호도 자기 처남의 이러루한 심정에 대하여 알고있었다. 그러나 성관호는 처남의 고충이 리해가 되지 않았고 답답하기가 그지없어만 보였다. 《속씨원히 말해보구려. 우리 동생이 그렇게도 눈에 차지 않소?》 성관호는 골이 나서 그냥 따지고들었다. 성관호의 소리에 방억세는 턱을 들고 《허허허…》 하고 허거프게 웃었다. 《한정상, 그 친구때문이겠지. 우리 동생이 처남을 만났을 때가 열일곱 나이였소. 한정상과 사귀였을 때는 열여섯살이구. 하지만 그거야 한시절의 바람결에 불과했지. 시체 도회지물 먹은 처녀들이라면 그까짓 련애담 두세가지는 다 지고다니오. 뭐 아이적 소꿉놀이 가지고 어쩌고저쩌고한단 말이요. 이 성관호도 정붙일건 크게 없어도 따라다니던 처녀가 서울과 도꾜에 한둘이였는줄 아오? 어쨌단 말이요. 그랬다고 흠이 될건 없지 않소. 우리 동생나이가 이제는 스물넷에 잡히오. 처녀나이 스물넷이면 지금 서울에서 할머니소리 듣소. 금새 매기면 금값은 고사하고 동값도 안된다는거요. 처남은 또 어떤가. 나보다 한살아래니 서른을 쳐다볼 때가 아닌가. 에, 처남은 이 문제에서는 천치요! 숙맥이요! 말해보오. 어데 봐둔 짝이 있는게 아니요?!》 《허허… 서울장안에 상사병에 걸려있는 로처녀가 겨울명태만큼 있다는데 로총각이라고 짝이 없을가.》 방억세는 이렇게 상대가 이미 마련해두었던 그물로 단단히 죄여들자 거기서 빠져나가려고 롱조로 너털거리며 웃었다. 성관호는 김빠진 웃음소리에 방억세를 쏘아보다가 종시 그 자신도 한숨을 내쉬고말았다. 지금 성관호의 집에서는 방억세가 사위감으로 약정되여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혼담이 이 대가집의 풀지 못한 숙제로 세월을 넘기며 누구나의 관심사요,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성관호의 어머니도 이 일을 두고 가끔 념려스럽게 물어보군 한다. 《그애들이 어찌되느냐?》 성관호가 어느 기회에 방억세의 고집에 역증이 나서 어머니더러 방억세를 거두도록 하기 위하여 동요를 며느리로 맞아들였는데 그의 오빠를 사위감으로 맞아들이는것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꼬리를 달아놓은적이 있었다. 한데 김씨는 놀랍게도 단마디로 흔쾌하게 매듭을 지어놓았다. 《겹사돈이라는것도 있다.》 김씨에게는 딸에게서 그 불미스러운 일이 있은 후로 한정상은 이미 뒤전에 밀려나고 방억세의 사내다움이 날과 달이 흐르고 상종이 잦아질수록 커다란 산처럼 앞을 가리우고있었던것이다. 김씨가 한정상을 멀리하는것은 꼭 방억세가 자기 딸을 불행에서 건져준 귀인이 되여 나타났다는 리유만도 아니였다. 김씨는 이미전에 한정상이 열두살 어린 나이에 저보다 5살 우인 시골녀인과 혼인을 맺고 뒤날에 아들까지 생겼는데 나이 들면서 그 녀자를 멀리하다가 아예 시골로 내쫓았다는 말을 들었던것이다. 그 리유가 자기들의 혼인은 봉건의 희생물로서 녀인이 박색이고 촌티가 나서 장차 법의를 두르게 될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김씨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는 한정상의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다. 부부간의 인연이란 하늘이 점지하여준것이거늘 그 무슨 구실이 서든지 이미 아이까지 만들어낸 연약한 녀인을 박대하고 내쫓는것은 불륜이요, 그 불륜을 낳은 남자는 두말할 여지없는 악인이라는것이다. 그런 사내에게 손끝으로 키워 옥처럼 다듬어온 제 딸을 절대로 맡길수 없다는것이다. 언젠가 란희를 불러놓고 네 무슨 흠될게 있어서 그 망종스러운 사내를 꼬여 햇물딸기같은 네 몸을 맡기자고 하느냐고 고추알같이 매운 소리로 닥달을 했더니 다행히도 딸은 자기는 한번도 그 사람을 이성의 상대로 사귀여본적은 없노라고 야멸차게 딱 잡아떼는것이였다. 성관호도 모녀의 생각을 따랐고 한정상을 우연히 사귄 친구로 대하여왔는데 방억세가 이 문제를 놓고 세월을 넘어오며 뒤걸음질하는게 리해가 되지 않고 부아가 나기만 하였다. 《아… 난 정말… 처남의 그 우유부단에는 진저리가 나네. 만사를 결패있게 맺고 짜르는 처남이 왜 이 일에서만은 샌님행세인가. 재는것도 한두해고 한시절이지 이럴수야 있는가. 모든것을 뒤집어엎는다는 공산주의자가 어찌 사랑에서는 이다지도 봉건의 케케묵은 냄새를 풍기는가. 에잇!…》 성관호는 신경질이 와짝 돋아 씽하니 본채문을 향하여 걸음을 옮겨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