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제5장 성관호의 은둔

 

방금 프랑스의 군사전문가가 집필한 《프랑스는 왜 패망했는가》라는 장편실화에 대한 번역을 끝마친 성관호는 두툼하게 쌓인 원고를 대견한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미닫이문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동요가 한달전에 돌을 보낸 아들인 진이를 안고 한손에는 차잔을 올려놓은 다반을 들고 서재를 넘어서고있었다.

《좀 휴식하세요.》

동요는 부드러운 어조로 권하였다.

성관호는 안해를 미소로 맞았다.

꼬리치마에 진곤색저고리를 입고 머리를 쪽져올린게 이제는 대가집 안방주인의 체취가 완연하다.

가무잡잡하던 얼굴이 쭉 때를 벗어 멀쑥해지고 반짝거리던 눈빛에도 챙챙 바스러지는듯싶던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도 은근한 멋이 보인다.

성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받아들었다.

성관호는 깨드득거리는 아들을 들여다보다가 《에, 우리 진이한테 줄 선물을 또 하나 마련했다.》 하며 둥개둥개 안고 돌아갔다.

동요가 차잔에 차를 따라 그에게 내밀며 아들을 받아안았다.

그는 흥에 겨워하는 남편을 보며 《또 끝냈나요?》 하고 기쁨에 젖어 물었다.

《응, 또 한놈 큰 돼지를 엎어뜨렸지.… 이건 말이요, 우리의 군사전문가들에게 매우 유익한 경험과 교훈을 주는 교과서적인 가치를 가질거요. 왜 프랑스의 철벽의 마지노선이 하루새에 허물어지고 빠리가 수치스럽게도 항복을 하였는가?

히틀러가 무적령장이 되여서인가?…

아니요. 바로 그에 대한 대답이 여기에 있소. 나라의 존망은 대포와 땅크가 결정하는것이 아니라 그 나라 주인들의 정신력이 결정한다.…

래일 또 <국방>에 투고해주오.》

성관호는 창조의 희열에 들떠 정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차를 단숨에 마셔버리고는 팔을 들어올려 기지개를 크게 하며 껄껄 웃었다.

또 하나의 두툼한 책을 내놓게 되였다는, 독자들의 인기를 모을수 있는 실용적가치가 큰 지적재부를 마련했다는것으로 하여 성관호는 평소에는 잘 열리지 않는 성문같은 두툼한 입술을 다물지 못하였다.

《축하해요. 그러지 않아도 <국방>편집부에서 기다리고있다는 전화가 왔댔어요. 제가 래일 오전에 가져다주고 오겠어요.…》

동요는 남편의 기쁨을 자기것으로 받아들여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였다.

《기다릴거요. 그 친구들이 내가 넘겨주는 책이라면 언제나 푸른등만 켜주거던.》

《참, <경무대> 비서실에서 또 전화가 왔어요.》

동요가 성관호가 다 마셔버린 차잔을 받아 다반에 올려놓으며 전하였다.

《<경무대>?… 시끄럽군. 뭐라고 하오?》

성관호는 안해가 전해준 소리에 이번에는 골살을 찌프리며 결이 올라 씨근덕거렸다.

《중대의논이 있다구 하면서 대기시켜달라고 하더군요.》

《중대의논은 무슨 중대의논… 대문에 단단히 빗장을 지르라구 하오.》

성관호는 신경질이 나서 두덜거렸다.

요즈음 여기저기서 전화질이다. 대문에 불청객들이 뻗닿게 줄지어 북나들듯 한다. 리승만이 틀고앉아있는 《경무대》에서도 오고 《국방부》에서도 온다. 빨리 임명된 직무수행에 진입하라는것이다.

남들은 그런 자리는 고사하고 《국방부》의 바스락별자리라도 따내느라고 오금이 재리게 들볶구있는데 군부의 노란자위같은 자리를 손가락 한번 튀기지 않고 꿀꺽했는데 무슨 놈의 게트림질이야 하는 투다.

리승만도 직접 전화를 걸어왔고 성관호를 총무국장으로 내세운 《총리》 겸 《국방장관》 리범석이도 하루건너로 성화다.

《륙군참모차장》으로 임명된 장수덕이 제일 안달복달이다. 성관호를 리승만에게까지 천거한것은 장수덕이였다.

장수덕은 비록 려운형의 밑에서 한달남짓이 성관호와 함께 있었지만 그의 몸무게를 충분히 파악하고있었던것이다.

《뭘 꺼리는거요. 일본놈치하에서 기지창창장을 해먹던 나까지 나선 판인데 자네야 항일죽창대경력까지 가지고있는데 뭘 주저하는가.》

전화할 때마다 장수덕은 이렇게 진심으로 고무하며 손을 잡아끈다.

괜히 수염을 쓸며 점잔을 빼다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경종을 넌지시 울려놓기도 한다.

《태가락도 지나치면 얄미워진다는걸 알라구!》

총무국장이라면 귀맛이 쌈빡하지 못한 별찮은 한직 같게 들려도 《국방부》의 대소사를 주관하는 중핵적인 요진통자리이다.

여기서 《국방부》의 수많은 부서들과 소속기관들의 모든 활동이 종합되고 설계되며 평가된다.

그렇기때문에 이자리는 군부의 넓은 인맥을 거머쥐는 자리이며 《경무대》와 《총리》실에 직결되는 요진통자리로서 장차 군부의 수뇌자리를 넘보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 머리가 트고 야심이 있는 작자들은 군침을 삼키며 쳐다본다.

하지만 임무의 복잡성과 중요성으로부터 욕심을 부린다고 아무나 앉혀놓는 자리도 아니다. 학식이 있고 경험도 있고 손탁도 드세고 머리회전도 빨라야 한다.

리승만의 총애를 받아 《륙군참모차장》으로 된 장수덕이 숱한 사람을 내리훑고 치훑고 하다가 마침내 미군고문관들을 쑤셔서 따놓은 자리이다.

그자리를 은근히 넘보며 뒤공작을 벌려오던 작자들이 성관호가 물망에 올랐다는 소리에는 군소리없이 물러났다고 한다.

부딪쳐봐야 흠자리만 남지 성관호의 적수로 나서는게 무모하다는것이였다.

그런데 당자가 여적 두문불출이니 장수덕으로서도 오금에 불날 지경이 될수밖에 없었다.

《이보게, 아낙군수노릇 언제까지 할셈인가. 창군위업에서 자네도 공신자가 아닌가. 뭘 성군답지 않게 오물쪼물인가.》

장수덕은 여러가지로 성관호를 끌어내느라고 애를 썼다.

성관호의 《아낙군수》노릇에는 그로서의 량심과 지론이 한발 앞지르고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건군준비사업에 나섰던 성관호는 어느날 《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한 《친일행위조사그루빠》의 호출을 받았다.

《친일행위조사그루빠》란 일제시기의 친일세력들의 반민족적죄행을 건별로 심의하고 청산하기 위하여 조직한 기관이였다.

성관호는 여러날에 걸쳐 여러 사람들앞에서 일본륙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부친의 령을 어기고 실전지휘경험을 쌓는다며 남방전선에 자원하여 일제를 위해 복무한 행적을 솔직히 시인하고 심심히 반성을 하였다.

성관호가 불리워간 후 인차 방억세가 이 사실을 려운형에게 보고하고 그를 앞세우고 가서 항일죽창대의 활동정형을 보증하고 풀어놓게 하였다.

이 일을 겪은 후 성관호는 지금은 자기가 나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일체 외부출입을 금하고 집에 들어박혔다.

해방후의 서울정세는 장마철 하늘같이 변화무쌍하기 그지없었다.

새 사회를 지향하여 급류처럼 사품쳐흐르던 정세는 미군의 강점으로 급전직하로 바뀌여지면서 다시금 력사의 시계는 꺼꾸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좌우익의 돌출로 새 조국건설열기로 부풀어올랐던 민심은 두쪽으로 갈라지고 《미군정》의 통치는 일본의 총독정치를 뺨칠 정도로 식민지예속화에로 줄달음쳤다. 그런가 하면 북녘의 소식은 들을수록 희한하다.

해방전에 태백산에서 민족을 재생시킬 백두산의 영웅으로 흠모하여마지 않던 김일성장군님의 정사가 날을 따라 그의 마음에 후덥게 비쳐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북녘도 두고봐야 한다.

대세를 주의깊게 관망하여가던 성관호는 나라정국이 평정될 때까지 은거하여있겠다고 선언하였다.

김씨녀인과 여러 동생들도 지지하였다.

그러나 《해방일보》의 기자로 취직한 성란희는 오빠의 은둔은 《오빠의 체통과 인격에 어울리지 않는 현실기피이고 눈치보기》라고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동요도 시누이의 편에서 남편의 은둔을 은근히 질책하였다. 조직의 지시에 따라 《국방경비대》사령부 상황실장의 자리를 차지한 방억세도 매부의 은둔을 일종의 기회주의라고 좋지 않게 여기였다.

그러나 성관호는 여전히 자기 립장을 완강히 고집하였다.

성관호는 집안에 들어박혀 맨 처음에는 소일거리로 외국의 군사경험자료들을 번역하였다. 글쓰는데 재미를 붙인 성관호는 점차 군대창설에 필요한 론문들도 집필하여 군사관계 잡지에 련속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군대창설의 방략을 시사하는 그의 글들은 군사관계 인물들은 물론, 서울안의 정치인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하였다.

점차 그의 집으로 죽창대시절의 동료들과 일본륙군사관학교시절의 친구들이며 고등학교의 동창친구들도 뻔질나게 찾아들었다.

효자동에 있는 성관호의 70칸 집은 매일같이 군부의 중진이라 자처하는 인물들이 찾아들어 시국을 론하고 군대의 창건방향을 놓고 열띤 론쟁을 벌려가는 마당으로 되였다.

지어 그들의 화제에는 군부계통의 인사사업까지 거론되였는데 대체로 그대로 실현되군 하였다. 그래서 군부지망생들중에서 성관호에게 선을 보이려고 조심스럽게 술병을 차고와 이름석자 남기고가는 사람들이 날을 따라 늘어났다.

리승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였을 때에도 《국방부》와 참모계통의 요진통자리에 들여앉힐 인물명단도 이 집에서 구술되여 미국의 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와 리승만의 결재를 받군 하였다.

이러한 모임들에는 방억세도 자주 참가하였다.

방억세는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한쪽에서는 마작놀이에 열을 올리는 속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행사하고있는것은 성관호라고 판단하였다.

마치도 그의 조종에 따라 그의 동료들이 움직이는듯싶었던것이다.

동료들중에는 좌익도 있었고 우익도 있었고 중간파인물들도 있었다.

성관호는 자신을 뻘건쪽을 좋아하는 노란색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의 편가르기놀음이 격렬해지고 그 계선이 명백해졌을 때에도 성관호는 여전히 자기의 울타리속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방억세가 이따금 중간위치에서 줄타기를 위태롭게 하는 매부의 모양이 눈꼴이 시여 《매부, 정 박쥐노릇 해야겠소?》 하고 몰풍스럽게 다불리며 자기가 관할하고있는 군부의 좌익권에 참여할것을 간곡하게 호소할 때에도 그는 반석같았다.

《왜, 처남?… 공산당하기가 나때문에 불편한가?

까짓거 좌익권이 필요를 느낀다면 이 성관호의 목을 쳐서 삼각산에 걸어놓고 북을 울리게. 나 방억세는 이렇게 골수 좌익이라고.》

성관호는 이렇게 얼레발을 치며 껄껄거렸다.

성관호의 군사적예지와 군부인물들속에서 차지하는 커다란 영향력은 미국고문들과 리승만에게도 알려졌다. 흔치 않은 거목이라는것을 확인한 리승만은 어떻게 하든지 수하심복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감언리설을 다하였다.

성관호의 동향에 주목하여온 미국고문들도 쌍수를 들어 환영하였다. 군부에 무게를 실어주자면 그런 인물들이 드문드문 섞여있어야 한다는것이다.

리승만은 어느날 성관호의 어머니 김씨까지 《경무대》에 불러놓고 아들의 뒤를 잘 봐주겠으니 성관호를 대문밖으로 내보내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하였다.

리승만의 청을 받고 김씨는 결곡한 어조로 분명하게 대답을 주었다.

《나라어르신께서 저의 불미한 자식을 거두어주시겠다니 이보다 더 영광될 일이 어데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자식들의 선택에 대해서는 일정때부터 일체 함구무언이올시다.

하물며 관호는 성씨집안의 종가집 장손이라 저도 삼종지도를 가훈으로 받들어 이제는 자식의 뜻을 따를가 하옵니다.》

리승만은 녀자로 태여나면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을 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을 잃으면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김씨녀인의 사리분명하고 례의바른 소리에 더 권해볼 여지가 없어 하품질만 하였다.

리승만이 여러명의 호위병들과 비서로 무어진 조촐한 일행을 앞세우고 성관호의 집에 들어선것은 중낮무렵이였다.

솟을대문앞에서 리승만보다 한발 앞서 내린 비서가 행랑방에 선통을 하자 문지기노릇을 하며 잡일을 맡아보는 중년의 사나이가 대문빗장을 그냥 걸어둔채 김씨녀인에게로 뛰여갔다.

리승만이 왔다는 소리에 김씨는 황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문을 열어드렸나?》

《마님의 분부가 아직 계시지 않아서…》

《그래… 아직은 빗장을 풀지 말거라.》

김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크게 서두름이 없이 방에 들어가 진회색치마저고리를 갈아입고 그우에 양털로 짠 마고자를 입고 나왔다.

김씨의 뒤로는 동요가 돗자리를 안고 총총히 따라섰다.

김씨는 솟을대문에 이르러 그앞에 돗자리를 펴게 하고 문지기에게 분부하였다.

《대문을 열어드려라.》

솟을대문이 찌꾸덩- 야단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열렸다.

리승만은 자동차에 뭉툭한 입부리를 삐죽이 내밀고 앉아 자기의 앞에 대문을 잠그고 감히 《대통령》의 행차를 막아 걸음을 지체시킨 김씨와 문지기를 노려보다가 대문안에 돗자리가 펴지고 그우에 녀인이 버선발로 서있는것을 보자 하는수없이 자동차에서 내렸다.

김씨녀인은 벌써 속구구가 되여있었다.

조상전래로 이 집의 솟을대문은 절대로 가마를 타거나 자동차를 타고 넘어서지 못하게 엄격하게 가법을 지켜왔다.

일제시기 《총독》이 두세번 찾아왔는데 이 집안의 엄격한 계률에 따라 솟을대문에서는 차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와야 하였다.

성관호가 태백산항일죽창대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일본《총독부》의 정무총감과 경무국장이 헌병들을 몰고 드문히 이 집 출입을 하면서 이 집안 사람들을 들볶아댔지만 그 어느 놈도 이 70칸 기와집 대문을 자동차를 타고 넘어서지는 못하였다.

김씨도 리승만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 이 생각부터 하였던것이다.

《<나라님>께서 어이하시여 저의 루추한 집까지 수고로이 왕림하시였습니까?》

김씨는 돗자리에서 앉은절을 깍듯이 하면서 례를 차려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리승만도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답례를 하고는 검버섯이 돋은 얼굴에 비주름히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초면이 아니였다. 그리고 리승만이 이 대가집 대문턱을 넘어선것도 처음 있은 일이 아니였다.

리승만이 이 집에 드나든것은 벌써 전세기말부터였다.

그 시기 구한국정부를 반대하는 활동에 참가하여 한성감옥에 갇혀있다가 주변인물들의 탄원으로 석방되였던 리승만은 당시 정부의 대신자리에 앉아있던 성관호의 조부로부터 위로금을 받아가지고 떠나갔다.

해방직후에 서울에 온 리승만은 이른바 평생에 덕을 본 은인들을 찾는다는 구실을 만들어 찾아왔는데 그때도 김씨로부터 돈봉투를 큼직하게 챙겨가지고 물러갔다.

《어쩌겠습니까? 부인께서도 나라분부를 거역하시니 이 우남(리승만의 호)이 걸음을 할수밖에, 허허…

삼고초려라 옛날 촉한의 류비는 양양 남양촌의 선비 제갈량을 수하에 두고저 세번이나 시골길을 다녀갔다는데 손자벌 되는 사람이기는 해도 지인용을 겸비한 나라재목감을 구하는 길이라 과히 고달픈 길은 아니외다. 일년지계는 곡식을 심는거요, 십년지계는 나무를 심는거요, 종신지계는 인재를 심는것이라 했거늘 뭐 그러루하게 생각해주시오. 지금 서울장안에서 자제분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줄 부인께서도 아시는지요.》

리승만은 김씨의 인사를 웃음으로 받아넘기면서도 심술기가 엿보이는 제 말에 씨를 박아 엉너리를 쳤다.

리승만의 의미심장한 횡설수설이 우연한게 아니였다.

리승만이 《대한민국》이라는 미국의 식민지공국을 미국의 지령에 따라 미국의 힘에 의거하여 만들어놓고 그 정상에 틀고 앉고보니 코코에 걸려드는게 인재난이였다.

자기를 써달라고 이러저러한 연줄을 타고 어중이떠중이들이 벌떼처럼 《경무대》에 몰려들기는 하나 튀겨보면 전탕 쭉정이다.

미국의 고문들의 주장대로 주위를 충정일변도로 채친 가신들로 꾸려놓으니 두루 속도 편하고 신변에도 좋을듯싶고 제 말 한마디로 세상만사를 얼음장에 박밀듯 해갈것 같지만 그래도 개중에는 제 주장 펼줄 알고 두뇌회전이 좋은것들도 끼워있어야 《국가》의 체모도 잡히고 《정부》라는 물건짝의 금새도 커지고 《정책》이라는게 심도도 깊고 착오도 덜하겠는데 그런 인재가 걸려들지 않는다.

좀 경험이 있고 경륜도 있다 해서 써볼만 하면 뻘건 인물이요 혹은 친일이요, 전향이요, 뒤가 시큰둥해서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게 분명한즉 도무지 써먹을 놈이 몇 안된다.

더구나 군대를 당장 꾸려야 하겠는데 고작해서 중국관내에서 일본놈들에게 돌팔매질이라도 해봤던 《림정》계와 《의용군》출신들이다. 하지만 그것도 안될 일이다. 그들에게 병권을 맡겼다가는 앙앙불락인 김구나 리범석에게 날개까지 돋쳐주는 셈이 되겠는데 조만간에 《대통령》벙거지까지 벗어놔야 될것이다.

그래 미국것들이 손짓하는대로 눈을 꾹 감고 강아지처럼 발꿈치에 감겨드는 백선엽형제와 리응준이며 장수덕이며 일본군 출신들을 가까이 끌어들여 한자리씩 주고나니 명색이라도 항일운동에 나섰던 《대통령》이 친일을 싸고돈다는 후문이 잇닿아 찜찜하기 그지없다.

그러던차에 성관호라는 인물을 미국것들이 어떻게 알고 수하에 두라고 해서 두루 알아보니 구미가 바싹 동하였다.

뭐니뭐니해도 경력이 마음에 들었다. 일본군대대장으로 일선지휘관경력이 있는데다가 항일죽창대에서 해방을 맞이했다니 친일행적도 상쇄되는셈이다. 가문 역시 친일에 반일이 덮씌운데다가 자기자신도 젊은 시절에 덕을 본바도 있어 은혜갚음도 되려니 이제 덕을 주면 그게 도로 자기에게로 미상불 서너배로 품앗이가 되여 돌아올것은 자명한 리치다.

구미가 동해 인물됨을 파고드니 성관호는 장차 군부의 수장으로 내세울만 한 격을 가진게 틀림없었다. 과시 미국사람들이 눈독을 들일만 한 인걸이다.

리승만은 성관호가 집구석에 들어박혀 세상에 속속 발표한 군사리론글들과 군사경험글들을 여러 시간 품을 놓아 들여다보았는데 필자의 군사적안목에 크게 탄복하였다.

성관호에 대한 리승만의 례외적인 관심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그런데 천만뜻밖이였다.

성관호가 자신의 각별한 호의가 전달되기만 하여도 감지덕지해서 뻗쳐온 줄을 놓칠세라 바지가랭이에 매달릴줄 알았는데 이건 처음부터 오만무례하게도 게걸음질이다.

두번세번 사람을 보내고 전화로 자기의 뜻이 전달되도록 했는데 아직도 고색이 짙은 담장에 들어박혀있다.

주변에서 미지배층의 지휘봉에 따라 감놓아라 배놓아라 코코에 훈시질하는 미국고문들은 그깐 놈 하나 휘여내지 못하느냐고 입맛을 다신다.

리승만이 잠시 대궐을 휘휘 돌아보는데 성관호가 정장을 차려입고 틀진 걸음새로 서두름없이 마당으로 걸어나왔다. 리승만은 자기앞을 막아서서 내려다보는 성관호의 거쿨진 몸과 준수한 용모에 기가 눌린듯 잠시 입만 헤- 벌리고 상대를 쳐다보았다.

《각하, 각하를 이렇게 저희 집에 모시게 되여 영광입니다.》

성관호는 리승만에게 허리를 깊이 꺾어보이였다.

성관호의 첫인사말에 리승만의 입이 또 삐쭉해졌다.

첫인사라는게 고약하기를 이를데없다. 인사가 제대로 되자면 죄송하다는 말부터 나와야 될것이 아닌가. 《대통령》의 의사를 감히 거역했으니 죄송하고 이렇게 《대통령》이 제 둥지에 찾아들게 만들었으니 그것 또한 죄송하기 이를데없는 일이다.

산골고을의 군수자리 하나 따보겠노라 노복들의 등이 휘여지게 봉물짝을 지워가지고 《경무대》의 문턱을 들락날락하는데 이녀석은 군부의 노란자위를 주겠다고 하여도 배를 퉁기고 냠냠해하는 기색이다.

이렇게도 방자하다구야…

심술 같아서는 당장 이놈에게 《왕명을 어긴 대역죄》로 오라를 지우라고 불호령을 내리고싶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행보를 한걸음도 놓칠세라 딱딱 점검하고있는 미국의 신임대사 무쵸나 군사고문단장 로버트의 뒤수작질이 걱정스러워 빈손으로 돌아설수도 없었다.

《들리는 말에 자네 요즘 아낙군수가 됐다는데 뭘하고있지?》

리승만의 인사라는것이 처음부터 심술기어린 비양조였으나 성관호는 눈길을 내리깐채 꿋꿋하게 대답하였다.

《두루… 소일거리에 묻혀 지냅니다.》

《자네가 만들어낸 <륙군교범>이며 그리고 거 뭐더라, 그래 미국의 <독립전쟁사>며 중국의 <손자병법>이며 <나뽈레옹전기>며 나도 두루 읽어봤네. 그게 다 <건군>의 리론적기초로 될진대 과히 기뻐할 일일세.

그리고 자네의 이 대궐이 뭐 신생<국방>의 산실이라는 객담도 듣구…

실전경험도 있겠다, 군사리론에서는 쌍벽이 없는 권위자이겠다, 군부인맥도 두텁겠다… 이런 재사가 문벌좋은 성씨가문에서 돋아난즉 실로 나라 위해 이 아니 복인가. 그러하니 이 우남을 불러들일만도 하지.》

리승만은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구의 사나이와 마주선것이 불편스러운듯 마주보이는 성관호의 양복단추에 눈길을 박으며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성관호는 자기를 잔뜩 추켜올리다가 대바람에 둘러메치는 두상의 비양스러운 궤변에 입맛이 쓰거웠으나 례의를 지켰다.

《각하, 과찬에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라는 소인의 몸무게란 아직은 저울에 달아볼 여지가 없을줄로 압니다. 헌데 이렇게 각하를 모시게 되여 영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다.》

성관호는 이 집에 찾아오게 된 불편한 심기를 일부러 내비치는 리승만의 심술궂은 수작에 오히려 한수 더 떠서 모시게 되여 영광스럽다는 대꾸로 짐짓 례절을 차려 도전하였다.

리승만은 그냥 어리숙한체 늘어지게 붙어가지고 자기의 비위를 슬쩍 건드려놓는 상대방을 곱지 않게 흘끔 쳐다보고는 손자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늙은이다운 아량을 보여 히죽이 웃었다.

《뭐 집안으로 들어갈게 있나. 후원구경이나 시켜주게.》

리승만이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후원의 루각에서 용무를 보겠다는 소리인듯싶어 성관호는 더 권하지 않고 집뒤에 있는 후원으로 리승만일행을 안내하였다.

대나무가 무성한 후원에는 자그마한 련못이 있고 련못가운데 고색창연한 루각이 대리석기둥에 받들려 서있었다.

《흠… 과시 전통이 있는 고명한 명문세족의 훌륭한 취미로다.…》

리승만은 부들부채를 휘휘 내저으며 정갈하면서도 수려하게 꾸려놓은 후원의 풍치를 돌아보며 연신 탄사를 내질렀다.

《루각에 올라가볼가?》

리승만은 이렇게 누구라 없이 말하고는 제가 앞에 서서 루각으로 향하였다.

계단을 밟자 가벼운 진동에 루각의 합각지붕의 처마끝에 매달린 풍경소리가 신비로운 음향을 은은히 울리기 시작하였다.

루각의 대나무걸상에 앉아 땀을 들이던 리승만은 불룩하게 부어오른 눈시울을 잔조롬히 붙여가지고 눈아래에 펼쳐진 고색짙은 풍치에 어울리는 풍경소리에 취해있었다.

이윽고 풍경소리가 멎은 후에야 눈을 뜨고 루각의 란간에 서서 사뭇 정중하게 자기를 옹위하고있는 수원들과 성관호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시늉을 해보였다.

그때 동요가 다반에 커피를 타가지고와서 대리석탁우에 소리없이 올려놓고는 리승만에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였다.

《저의 처입니다.》

성관호가 이렇게 소개를 하자 리승만의 입이 그제야 열렸다.

《어, 과시 이 대가집에 걸맞는 꽃다운 색시이군. 장인은 무슨 일을 보는고?》

《아산에서 농사를 짓고있습니다.》

《하, 그래?… 농사일이란 세상일중에서 근본의 근본이 되는 일이라 농사군을 허술히 봐서는 안되네. 대궐집안에 농사군의 딸이라… 참말로 세상이 변했거던. 시체말로 자네도 무산자를 중히 여긴다는거겠지…》

리승만은 그 어떤 격세지감에 감개무량해진듯 아직은 칭찬인지 나무람인지 딱히 가늠이 안되는 수작을 그냥 늘어놓았다.

동요가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자 다시 그 녀자의 단아한 뒤모습이 불러낸듯 은은한 풍경소리가 울리였다.

리승만은 은근하면서도 멋스러운 그 소리에 다시 취해든듯 눈시울을 붙이고 잠시 부들부채만 흔들었다.

《풍경소리가 울리니 거문고소리가 그리워지는군.》 하며 리승만은 커피잔을 입술에 올리다말고 문득 생각이 난듯 질책기 어린 어조로 넌지시 물었다,

《자네 동생되는 아가씨가 기녀 못지 않은 소리군이라 하던데 지금 산에 가있다면서? 저 사람 나세겠다?…》

《죄송합니다, 각하!》

리승만의 엉큼한 말장난같은 질책에 짤막히 대답한 성관호는 속이 뜨끔해지기는 했으나 인차 태연자약하게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을뿐이였다.

리승만은 성란희가 지난봄에 태룡산에 들어간것을 걸어가지고 자기앞에서 감히 아직도 목대가 꿋꿋한 이 방약무인에게 겁을 주어 허리 꺾게 하고싶었는데 눈섭 한오리 흔들림을 보이지 않자 은연중에 골이 났다. 그래 이번에는 로골적인 질책조로 훈계를 하기 시작하였다.

《오래비는 신생<한국>의 초석이 되고저 골방에 은둔하면서도 로심초사인데 동생되는 녀인은 거기에 불질을 하니 이게 어디 대를 이어 충신가문으로 전해오는 이 성씨대궐에 가당한 일인가. 자고로 아녀자나이 이팔을 쳐다볼 때부터는 대처바람을 쐬지 말게 하라구 했다네. 하물며 명문대가의 고명딸로서 역모군들에게 가붙어 흉기를 들고있다니 개탄할 일일세.

불러들이게. 저 자네 색시 모양새가 작히 보기 좋은가.

사상이요, 리념이요, 거 뭐 분주스러운 개념은 머리우에 있는거야. 녀인에게는 자기가 거접해야 할 안방이 있는게고 섬겨야 할 서방이 있는거요, 후손의 씨를 넘겨줘야 할 녀자의 구실이 있는거야. 저게 바로 녀인의 방정한 모양새야. 불러들이게. 총을 잡는다고 누구나 오를레앙의 목동처녀 쟝느 다르크가 되는건 아니거던.

사나이객기는 호걸영웅의 멋이지만 녀자의 객기는 바보스러운 짓거리야. 현모량처라는 말 자네도 알고있겠지. 그게 정바른 녀인의 모양새야.

하기야 대대로 충의를 자랑해온 성씨가문에서 <조정>에 반역하는 빨찌산녀걸이 나온다면야 거 록두장군 전봉준과 나란히 명인록에 올릴만 한 기상천외라…》

리승만이 이렇게 횡설수설하다가 제풀에 신명이 난듯 좌우를 둘러보며 너털거리자 사뭇 경건한듯 한 표정을 짓느라고 안면근육에 힘을 주고있던 수행원들이 따라웃었다.

리승만이 프랑스의 민족적영웅으로 세상에 명성높은 목동출신의 처녀장군까지 거들면서 자기 동생과 처까지 조롱하자 성관호는 주접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아기뚱한 반발심만이 시퍼렇게 살아올랐다.

자기 주위에 이른바 녀걸이라 바람을 몰고다니는 임영신이며 모윤숙이며 당대의 녀색들을 두루 모아 안고 지내는 주제에 현모량처라는 말 입에 올리기가 낯가렵지 않느냐.

정말 이 두억시니같은 령감한테 총구를 들이대는 빨찌산에 들어가 붉은 장수가 되는게 력사에 이름을 올리는 의로운 일이 아닐가.

제까짓게 송장내 풍기는 주제에 우리 란희가 객기를 부린다구?…

란희의 그 객기가 바보스러운것으로 된다구?…

리승만이 늘어놓은 넉두리가 그 어느 한 구절도 빠짐없이 자기와 자기 가문의 의기를 꺾어보려고 미리 준비되고 타산된 말이 틀림없는듯싶어 성관호는 속깊은 곳에서 서서히 꿈틀거리는 격노의 갈기를 누르느라고 이를 사려물었다.

그는 불현듯 성란희가 두번째로 태백산줄기에 오르던 그 어느 봄날의 저녁이 떠올랐다.

애국세력에 대한 미국강점자들과 리승만일파의 총공세가 시작되자 좌익에서는 력량보존과 보다 효률적인 대결을 벌리기 위하여 지하에 잠적하여 지명수배를 당하고있는 핵심조직원들을 빨찌산으로 들여보냈다.

그래 그동안 《미군정》에 의하여 좌익신문인 《해방일보》가 페간된 후 도꾜에서 돌아와 서울좌익계의 부녀부에서 사업하던 성란희도 태룡산빨찌산 지휘부로 소환되였던것이다.

성관호는 정세를 관망해보면서 좌익이 더는 우익의 공세에 밀리우지만 않을것이며 기필코 힘으로 대항하여나설것이라고 그동안 자기나름으로 생각을 하고있었지만 성란희까지 입산의사를 밝히였을 때는 숨이 가빠지기까지 하였다.

란희 같은 녀인까지 총을 들 정도로 좌익이 분노하였는가.

좌익을 지하에로 몰아넣고 미구하여 입산의 대문을 열어놓은것은 《미군정》과 리승만일파였다고 분석하여온 성관호도 분노할수밖에 없었다.

《미군정》과 리승만일파는 저들에 대한 그 어떤 자그마한 정치적비난도 반대운동의 자그마한 움직임도 불허하고 무자비한 힘의 행사를 공공연하게 주장하였고 실지로 그렇게 하였다. 권력의 절제가 없는 정치란 이미 민주주의의 초보적인 기틀을 유린하고 사회의 불안정과 혼란, 반대세력들의 폭력적인 진출을 초래하는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성관호는 제주도와 지리산과 태백산을 비롯한 남부산악의 오지에서 울리는 빨찌산의 총성을 들으며 드디여 올것이 왔다는 격동된 심리를 안고있었으므로 성란희의 입산에 대하여서도 두말없이 지지하였다.

다만 또다시 처녀의 몸으로 태룡산에 올라야 하는 동생의 처지가 가엾어지고 그가 겪을 고행에 가슴이 저려들었을뿐이였다.

《언제면 내려오게 될가?》

성관호는 동생의 두손을 꼭 잡아쥐고 어리석은 소리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이렇게 물었다.

그 소리에 란희는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물기가 촉촉한 발깃한 입술만 안타까이 감빨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래 그도 예측하지 못할것이다. 좌익에 대한 《미군정》과 리승만일파의 핍박이 종식되고 이 땅에 민주주의의 기틀이 굳건히 마련되기 전까지는 그리고 이 땅에 성숙된 정치가 자리잡을 때까지는 좌익은 힘에 의거한 자기식의 운동을 멈추지 않을것이다.

주의주장의 정의로움이나 개개 인물들의 됨됨으로 보나 민심으로 보나 확실히 좌익은 우익에 비할바없이 우세하다.

언제나 력사는 좌익을 진보로, 우익은 보수로 전해온다.

더구나 이 땅의 우익이란 결국은 외세가 부식하고 외세에 기생하는 무리들뿐이다.

그것은 일본놈치하에서도 그러하였고 양놈들의 치하에서도 다를바 없다.

그래 성관호는 좌익권에 들어선 동생의 입산을 감히 막아나설수 없었으며 마땅히 자기가 나서야 할 자리에 그 연약한 녀인을 대신하여 세우는듯싶어 죄스러웠고 가슴이 쓰리기만 하였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온몸에 장대처럼 뻗쳐오르는 분노와 환멸을 금할수 없는것이였다.

《바로 네놈들탓이다. 그들이 서울땅에서 머리 들고 살지 못하게 한것이 네놈들이 아니였단 말인가. 그러니 그들이 산에 오를수밖에 없지 않는가. 네놈들이 진보를 지향하는 정치적운동에 총칼을 휘두르니 그들이 폭력으로 자기의 정치적구호를 관철하려는것이 아닌가.》

성관호는 이렇게 리승만에게 대답을 주고싶었으나 권위주의의 수렁창에 빠져있는 두상태기에게는 그 소리가 마이동풍에 불과할것이라는 생각에 입을 꾹 닫아붙인채 고개를 들고 루각의 천정만을 우두커니 쳐다볼뿐이였다.

리승만은 상대의 덤덤한 표정이 짜증이 난듯 또다시 심술궂게 말을 계속하였다.

《듣건대 자네의 처남되는이도 빨찌산에서 지대장으로 있다면서…》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그 사람은 사실 해방전에는 항일죽창대에서 숱한 애국지사들을 키워냈고 해방후에는 <국방경비대>의 상황실장으로 건군의 공신자로 활약하였는데 그 무슨 엄청난 오해가 생겨 숨어다닌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성관호는 그냥 입다물고있는것이 재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있는 어조로 확실하게 버티였다.

《음… 자네가 모를수도 있겠지. 그 사람이 그릇이 큰 인물이라는 소리를 나도 종종 듣군 했는데… 그래서 크게 써먹을 생각도 했구.… 헌데 미국사람들이 그 사람은 딱 짤라버리거던. 쓸만 한 동량감들이 뻘건 물이 들어 랑패야. 쯔쯔쯔…》

리승만은 자못 랑패스럽다는듯 혀를 끌끌 찼다.

방억세가 한달전에 입산하였고 빨찌산지휘관으로 활약하고있다는것은 성관호도 잘 알고있었다.

방억세가 입산할데 대한 조직의 지시를 받고 찾아왔을 때 성관호는 새삼스럽게 가슴을 쳤다. 나라의 해방을 위하여 일로매진하여온 사람들이 해방덕을 보지 못하고 또다시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혈전장에 나서게 되였으니 이 얼마나 비극인가.

성관호의 눈에 비쳐있는 처남은 참으로 지인용이 다 겸비된 건국의 대들보가 될 인물이다. 그래서 동생을 떠나보내던 때와는 류다른 감회와 비탄을 안고 그를 바래워주었다.

《처남, 이왕 나선 길이니 골이 터지더라도 해보게. 서울정사란 벌써 허리 펴보기 전에 잦아들고있는게 틀림없어.…

음… 음… 난 모르겠소. 그래 승산있는 싸움인가?… 우리 동생을 만나거든 고리눈으로 보지 말라구.… 에, 이게 무슨 꼴인가. 나라에도 집안에도 재미붙이구 살아야 할 사람들이 해방덕을 보지 못한채 쇠붙이를 또 잡아야 하다니…》

성관호는 커다란 충격에 이렇게 탄식도 하고 걱정도 하고 빈정거려보기도 하다가 처남잔등을 주먹으로 때려주고 동생과 헤여질 때와는 달리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성관호가 지금까지 리승만이 《하사》한 큰 직무를 받아놓고 여기저기서 불같은 독촉을 받으면서도 나서지 않은 리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자기 동생과 처남이 몸을 담고있는 좌익과 총부리를 겨누어야 하는 집안싸움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고민도 있었다.

성관호는 지금 자기의 아픈 속만 헤집어드는 리승만의 내흉스러운 속내가 인차 짚이지 않아 속이 울컥해올랐다.

두상이 결코 한가히 이런 수작질이나 붙이자고 일부러 대문턱을 넘어서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는 리승만이 또 넉두리를 늘어놓으려고 컹컹 밭은기침을 하자 더는 리승만의 지청구를 듣고만 있을수 없어 곱지 않은 말투로 대답을 주었다.

《각하, 나라가 갈라지고 민심도 갈라지고 집안도 좌우로 갈라져 골받이를 하는 판에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되겠습니까?》

성관호는 말에 분명한 그루를 박아 그 책임을 바로 령감이 져야 한다는것을 슬쩍 비쳐놓았다.

그러나 리승만은 나이탓인지 성관호의 그 배배꼬인 속심은 가려듣지 못하고 또다시 비주름히 웃었다. 리승만은 이제야 비로소 성관호가 겁을 집어먹고 자기 안위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판단이 섰던것이다.

《허, 됐네, 됐어. 자네에게 그 책임을 지울가봐 지레 배수진을 칠건 없네. 관호 이사람, 그런 소리는 접어둬도 좋네. 그런데 말일세. 이사람 관호, 자네는 내가 벼슬자리를 권해도 한사코 입을 다물고있더니 그새 이북에 줄을 놓고있다면서?》

리승만은 메기입같은 입을 비죽해보이며 눈시울을 거의 맞붙도록 해가지고 그 새짬으로 성관호를 넌지시 건너다보았다.

성관호는 리승만에게서 예상밖의 소리가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며 허리를 폈다.

《그건?!…》

이것은 로골적인 위협이고 도발이다. 이북에 줄을 놓고있다니… 그는 화가 돋친 리승만의 상통을 도전적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리승만의 그런 비난에는 얼마든지 모가 난 대답을 줄수 있을것이라는 배포가 있었지만 그래도 가슴 한구석으로는 딱히 이름지을수 없는 불안이 괴여올랐다.

성관호는 가녁에서 빙글빙글 돌지만 말고 진상을 밝혀놓으라는듯 리승만에게로 곧추 날아간 눈길을 지꿎게 거두지 않았다.

《이보게 비서, 그걸 꺼내놓으라구.》

리승만은 그냥 울기가 서린 성관호의 범상치 않은 얼굴을 지켜보다가 그에게 눈총을 박은채 비서에게 지시하였다.

비서가 겨드랑이에 끼고있던 가방을 헤쳐 거기서 미농지에 싼 두툼한 봉투를 꺼내 리승만과 성관호사이에 있는 둥근 대리석탁우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헤쳐보이라구.》

리승만의 소리에 비서가 미농지를 풀고 봉투안에서 돈묶음을 여러개 꺼내놓았다.

성관호는 그것이 자기 집에서 나간것이라는것을 인차 짐작하였다.

아마도 어머니가 란희한테로 보내주었을것이다.

어머니는 이런 일에는 그 누구도 꺼들이지 않는다. 자기 손에서 시작하고 매듭을 짓는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일절 돈소리를 꺼내지 않는다.

어머니는 해방전에 자기들이 죽창대에 가있을 때에는 드문히 돈을 마련하여 보내오군 하였다.

의병대나 독립군에 군자금을 보내준것은 할아버지때부터 이어져오는 집안의 전통이기도 하다.

리조 말엽의 대신으로 있었던 할아버지는 《합방》이 선포된 후에 일본《천황》으로부터 귀족의 작위에 해당한 록봉을 받았다.

간특한 왜놈들은 봉건조정에서 명망이 높고 항간에서도 영향력이 있던 성관호의 할아버지를 저들 품에 끌어당기기 위하여 왕족에 속하는 대신에 대한 례우라고 하면서 귀족의 작위를 봉작한다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끝내 받아들이지 않자 다달이 그에 해당한 록봉을 보내왔던것이다.

그 돈이 매달 150원이였는데 그 돈이면 당시에 옥백미 25가마니를 살수 있는 약차한 돈이였다.

할아버지는 그 돈을 한푼도 갉아내지 않고 늘 그 당시에도 태백산줄기를 비롯한 삼남오지에서 출몰하던 류린석의병대에 남몰래 보내주군 하였다.

일본이 친일에 대한 보상과 기대로 보내오는 돈을 반일의 기치를 든 의병대에 속속 보내준것은 해괴한 처사였으나 이 성씨집안의 특유한 기질이고 가풍이기도 하였다.

그 일은 집안의 누구도 모르게 할아버지손에서 깨끗하게 끝내군 하였다.

할아버지가 사망한 후 성관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귀족작위에 해당한 거액의 돈마저 거절하였다. 이것때문에 일제《총독부》는 그의 집안에 요시찰딱지를 붙여놓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에 와서도 독립군과 반일조직들에 대한 지원금은 끊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성관호를 일찌기 일본륙군사관학교에 보낸것도 반일운동에 대한 그의 지원의 표시이기도 하였다.

성관호의 아버지는 생전에 늘 자기 가문의 선대를 비롯한 리조의 봉건통치배들이 갓쓰고 하늘소 타고 기생 차고 음풍영월만 외우면서 밖으로는 문을 닫아매고 안으로는 공자 왈 맹자 왈 한탓으로 남들은 대포를 쏘고 비행기를 띄울적에 고작해야 창과 칼과 화승총이나 메고다니다가 나라를 망쳐놓았다고 맹렬하게 비난하고 통탄하군 하였다.

그래서 자기 아들들은 무위도식하는 량반집 울타리를 넘어 다 현대문명을 익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맏이는 군사를, 둘째는 공과를, 셋째는 의학을, 고명딸인 란희는 현대음악을 배우도록 내세웠던것이다.

성관호가 일본놈들의 등쌀과 현대전의 실전지휘경험도 쌓아보려는 야심도 있어 남방전선에 나가 일본을 위해 피를 흘릴 때에도 일본을 반대하는 금전지원은 계속되였다.

아버지가 해방의 날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자 어머니가 그 일을 맡아 변함없이 이어갔다.

애국과 정의에 대한 사심없는 지원은 이렇듯 성씨가문의 대를 이어온 자랑이였다.

하기에 지금 성관호는 리승만이 선친들의 애국가풍을 하치 않은 일로 밀어붙이는 수작에 격분하였고 그것을 모독하는데 대하여서는 혼신을 다해 꿋꿋이 맞설수 있었다.

《아직도 시치미를 뗄셈인가?》

《하, 글쎄요.》

《안되겠네. 비서, 이 사람에게 전말을 간추려 들려주게.》

성관호가 꿋꿋이 버티자 리승만도 분기가 지절지절 끓는 소리로 분부하였다.

비서가 낑낑 갑자르며 들려주는 이야기인즉 이러하였다.

며칠전에 태룡산에서 내려온 빨찌산모금공작원이 체포되였다.

그의 몸에서는 거액의 돈이 나왔다. 끝내 자금원천을 대지 않기에 은행을 통하여 조사한데 의하면 성씨집에서 나온 돈이라는것이 확증되였다.

엄연한 사실앞에서도 성관호는 절벽같았다. 그는 태연하게 비서의 말을 받아넘겼다.

《아마도 우리 어머님이 딸의 부탁을 받고 보내주었을겁니다. 귀한 딸을 그쪽에서 맡아주고있으니 식비정도라도 보내주는게 어머니된 도리라고 생각했을겁니다.》

《아직도 허튼수작인가? 자네 자당이 해방전에 거 뭐라고 불렀다고 하더라? 오라, 거 무슨 죽창무리들에게 꼬바기 돈을 보냈다는것을 내가 모르는줄 아는가?》

《각하, 태백산항일죽창대의 이름을 정하게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놈의 눈이 무서워 나라지경 멀리밖에 숨어서 일본에 돌팔매 한번 씨원히 해보지 못하고 빈소리만 지르다가 왔지만 우리 항일죽창대는 큰 싸움을 비록 벌리지 못했으나 왜놈의 소굴에서 왜놈을 반대하는 실력전을 펴왔습니다.

죽창대의 이름은 태백산항일죽창대입니다. 되짚어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죽창대는 명실공히 항일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해방된 내 나라에서 칭송되여야지 지탄의 대상으로 되거나 비하되여서는 안될줄로 압니다. 어머님은 바로 그곳에 독립의연금을 보내주신것입니다. 그들의 령수증이 아직도 집안의 가보로 전해지고있습니다.》

《음… 음…》

리승만은 제놈이 상대를 깔보고 대수롭지 않게 던진 소리에 걸려들어 궁지에 몰려 두툼한 입술새로 연신 신음소리 같은것을 내질렀다.

왜놈들의 눈이 무서워 나라지경 멀리밖에 숨어서 일본에 돌팔매 한번 씨원히 해보지 못하고 빈소리만 지르다가 온건 다름아닌 리승만과 그 일파들이다. 그래 리승만은 뜻하지 않은 홍두깨에 뒤통수를 얻어맞은듯싶어 입술을 닫아붙이고 상대를 노려볼뿐이였다.

《과시 애국자의 가문이군. 과시 임자는 무관이야. 무관답거던. 그래 자네는 이 일에 책임이 없다는건가?》

리승만은 자기의 실언에 무색해졌으나 인차 수습하고 위엄을 차리며 돈묶음 하나를 쳐들었다.

그러나 성관호는 끝내 허리를 굽히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동생은 동생입니다. 아까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나라가 갈라져 민심도 갈라졌는데 가정인들 어찌 무심하겠습니까. 한즉 그 책임을 어찌 집안에 들어박힌 제따위가 걸머질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자넨 남과 북에 량다리 걸쳐놓은셈이 아닌가.》

《남과 북에 량다리를 걸쳐놓았다구요?》

《그렇네. 북에는 동생을 내세워 한다리 걸치고 남에는 책을 펴내서 또 한다리 걸쳐놓고…》

《각하, 해방전의 태백산항일죽창대에 평양사람들이 없었듯이 태룡산빨찌산도 북과는 무관한것입니다.

그리고 장부일언 중천금이라고 다시한번 마지막으로 대답드립니다. 동생은 동생입니다.》

《좋네. 그 말을 내 깊이 새겨두려네.… 그러한즉… 이제는 아낙군수노릇 페할 때가 되지 않았나?》

리승만은 동생과 처남, 모친의 돈봉투를 걸고 성관호로 하여금 자기의 팔에 매달리게 하려고 했던노릇이 예상밖으로 오히려 상대방의 드세찬 분노만 격발시켜놓자 하는수없이 찾아온 용건을 서둘러 꺼내놓는수밖에 없었다.

《오늘부터 자네는 경인지역 사령관일세. <대통령>의 목도 자네 손에 맡겨두겠다는거야. 이건 자네에게 주는 이 우남의 마지막호의일세. 물론 미국사람들도 같은 립장이구. 며칠 말미를 줄테니 대답을 주게.》

며칠간의 말미라는 소리에 성관호는 조심스럽게 리승만의 말을 가로챘다.

《한달을 기다려주셔야겠습니다.》

《안돼. 며칠… 정확히 사흘…》

《사흘은 안되겠습니다.》

《왜?… 그 리유는 뭔고?》

《저는 새로운 집필에 착수하였습니다. 우리 군의 군사리론과 책략수립에 커다란 도움으로 되는 글입니다.》

《그래?… 그렇다면야… 그다음에는 더 기다려주지 않겠네. 나는 자네와 자네의 가문이 남과 북에 량다리치기하지 않는다는걸 자네의 대답에서 확인할테네. 그리고 자당께 내 말이라고 여쭈어주게.

산에 있는 란동분자들의 표적에는 이 량반대가집도 있는즉 이 돈은 그쪽에 군자금으로 섬기지 말고 자당분의 불로장생에 쓰는게 어떠냐고.》

리승만은 들고있던 돈묶음을 탁우에 밀어던지였다.

그리고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낯이 시뻘개서 앉아있는 성관호를 잠시 노려보다가 그와의 설전에 기진한듯 코방귀를 날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올리추고 내리깎아 단근질을 하여도 반석같이 꺼떡하지 않는 성관호가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였다.

(이쯤 돼야 <국방>의 수장노릇 할수 있지.)

자기를 에워싸고있는 무리들인, 나라의 충신은 자기노라고 자처하는 노복들과는 다른 신선하고도 굳세고 흔들림이 없는 의연한 자세가 불쾌하면서도 은근히 믿음이 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간신무리들이 씨글거리는 정계와 군부안에 그래도 제 목소리 낼수 있게 지략이 능하고 속대가 굳건한 성관호 같은 인물들도 기둥처럼 드문드문 세워놓아야 《조정》이 근실하다는 세평을 받을수 있다는 생각이 리승만의 명치를 후벼내고있었다.

중뿔나게 가지치는 생각에 자못 속이 답답해난 리승만은 성관호의 인사에 건성 대답하고는 계단을 내렸다.

다시금 풍경소리가 멋스럽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소리가 어딘가 장송가 비슷한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삐 계단을 내려 참대나무가 쫙 들어선 후원을 벗어났다.

성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리승만을 눈길로 바래워주다가 앞뜨락에서 자기 어머니가 나타나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침울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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