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제4장 인생의 희비극

 

세사람은 다 방억세의 예상을 뒤집어놓았다.

그들은 누구나 항일죽창대의 엄격한 규률과 어려운 생활에 재빨리 적응되여갔다.

죽창대의 신입대원들이 제일 힘겨워하는 극한훈련도 잘 이겨냈다.

성관호는 원체 일본사관학교와 전선생활에서 체험하고 익숙되여있는 생활이라 쉽게 구대원들을 따라잡았다.

한정상도 못지 않았다. 방억세가 잘 훈련된 한정상의 솜씨에 탄복하니 도꾜제국대학에서 군사훈련을 거의 한해동안이나 받았노라며 어깨를 으쓱거려보였다.

성란희가 제일 힘들어하였지만 그도 산속생활의 고달픔을 잘 이겨나갔다.

방억세는 그 녀자를 자기 동생이 소대장으로 있는 녀성소대에 보내놓고 동생더러 잘 보살펴주라고 여러 말로 부탁하였다. 한주일의 집중교육을 마치고 동요가 찾아왔다.

《보통이 아니야요. 이악하구 눈썰미 있구… 한마디로 괜찮아요.》

동요는 볕에 가무잡잡하게 탄 얼굴에 이상야릇한 미소를 빼물고 이렇게 후하게 평정해놓고는 오빠를 쳐다보았다.

어데서 저런 처녀를 꼬여왔는가 하는 지꿎은 눈길이였다.

《네가 불통이라고 했더라면 당장 쫓아보내라고 했겠는데… 손을 들어주니 다행이구나.》

방억세가 동생의 얄궂은 눈초리를 무심하게 받아들이고 씩둑거려보이자 동요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흥, 오빠는 그러지 못할거야.》

《그건 무슨 소리야? 떡잎이 될건 애초에 떼버려야지. 례외가 없다.》

《지금 오빠눈은 다른 소리를 하고있어.》

《내 눈이 어떻다는거야?》

오빠가 그냥 제 말뜻을 가려듣지 못하고 데퉁스럽게 묻자 동요는 오빠가 일부러 미욱을 부리는듯싶어 《됐어요.》 하고 골이 나서 달아나고말았다.

세사람은 나름대로 죽창대에서 그들 고유의 일감을 찾아냄으로써 점차 없어서는 안되는 죽창대의 보배들이 되였다.

성관호는 군사교관으로 정식 임명되였다.

대원들에게 일본과 서유럽의 군사조법들을 비롯한 현대적인 군사리론과 전법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성관호는 군사분야에서 깊고 넓은 일가견을 소유한데다가 뛰여난 웅변술을 겸비하고있어 첫 강의때부터 대원들의 절찬을 받았다.

그는 대원들에게 프랑스의 나뽈레옹과 로씨야의 꾸뚜조브의 전법의 본질과 그 차이에 대하여서도 여러 시간 뜬금으로 구수하게 엮었다.

그의 입에서는 청일, 로일전쟁의 경험과 교훈이며 손자병법이며 씨저의 전술의 묘기들이며 고주몽으로부터 전봉준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력사의 명인들의 군사적예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샘물처럼 좔좔 뿜어져나왔다.

그는 이러한 예비적지식을 준 다음에는 제나름대로의 민족군대창설의 방향과 그 실무적방도들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하여 대원들을 강의에 끌어들이고 론쟁과 토론을 활발히 벌리도록 하여 죽창대의 군사수준을 여러 계단 비약시켜놓았다.

방억세도 성관호가 출연하는 때에는 만사를 전페하고 강의실로 꾸린 제일 큰 귀틀집의 맨 앞줄에 가서 연사의 말을 한마디라도 흘릴세라 귀를 강구어 들었다.

성관호는 그밖에도 김옥균의 개화사상이며 일본의 《명치유신》이며 중국의 명인 손문이 창시한 삼민주의며 일신의 부귀와 권력에 환장이 되여 나라의 대문에 빗장을 질러 쇄국으로 나라를 후진국으로 되게 한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대하여서도 구수하게 들려주어 대원들의 사회적견문을 넓히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한정상은 연탁에 세워놓고보니 한다하는 리론가들을 찜쪄먹을 《맑스주의대가》였다.

그는 벌써 도꾜에서 적색독서회에 참가하여 맑스주의서적을 많이 탐독하였는데 맑스가 저술한 《자본론》만 하여도 세번이나 읽으면서 그 난해하고 오묘한 리치를 끝내 다 소화하였다고 한다.

맑스와 엥겔스, 레닌이며 공산주의리론의 창시자들의 심오한 주의주장과 그들의 경력에 대하여 뜬금으로 외워갈 때 그의 작은 눈에서는 불꽃이 일고 길게 기른 머리칼이 기폭처럼 날렸다.

그가 입산하기 전까지 혁명리론에 대한 강의시간에는 대체로 방억세가 출연하군 하였다.

그러나 대장사업으로 늘 분망하게 뛰여다녀야 하는데다가 강의가 심화될수록 점차 대원들앞에서 혁명리론을 깊이있게 파고드는것이 끔찍하여졌다. 더우기는 대원들이 뭐라고 질문을 할 때면 머리칼이 주빗이 일어서군 하였다.

공산주의사상에 대한 전면적인 연구를 해보지 못한데다가 그의 사상적깊이라는것도 보잘것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어느 훈련의 쉴참에 방억세는 한정상이 빠리콤뮨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것을 보고 그 다음날로 그를 연탁에 떠밀어 내세웠다.

그의 강의는 대번에 대원들을 매혹시켜놓았다.

이렇게 되여 《공산주의리론》과목을 따로 내오고 그를 강사로 임명하였던것이다. 그를 중심으로 하루에 한시간씩 정치토론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죽창대에서는 그때까지 하루에 4시간을 군사훈련에, 2시간을 문맹퇴치와 정치학습에 배당하였다.

그러나 한정상이 강의에 출연하면서부터 훈련시간비률을 3:3으로 하여 대원들의 사회정치의식을 높이도록 하였다.

제일 흥미있게 벌어지는것이 정치토론시간이였다.

이 시간에는 대원들에게 번호를 붙여놓고 번호를 부르면 의무적으로 나와서 자기의 견해를 내놓는다.

정치토론에서는 대체로 앞으로 세워지게 될 정권형태와 정치방향, 사회의 생김새와 의식구조 그리고 생산수단의 소유문제 등 새 사회건설과 관련한 광범한 문제들이 론의되였다.

각이한 계층의 대원들은 서로 기탄없이 자기의 주장을 내세웠다. 토론에 대한 질문은 있었으나 비난이나 공격은 허용되지 않았다.

각자는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는바를 이야기하였고 청중은 거기에서 옳고그름을 자기식으로 받아들이였다.

가장 폭풍같은 박수를 받는것은 한정상이였다.

《미래는 로동계급의 세상입니다. 전세계 프로레타리아트들은 일치단결하여 착취계급, 자본세력을 청산하고 기어코 온 세상을 로동계급의 붉은 기발로 휘감고야말것입니다. 그러나 이자리에 앉아있는 유산계급출신의 대원들은 걱정할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사물과 현상에도 례외가 있으며 특례가 있습니다.

공산주의리론의 창시자에 속하는 맑스나 엥겔스, 레닌도 저 중국의 모택동도 꼭 망치나 호미자루를 쥐고있던분들은 아니니깐요.

그러한즉 우리 죽창대원들은 모두가 붉은기아래 뭉쳐야 합니다.》

한정상이 이렇게 그 가느다란 눈을 번쩍거리며 긴 머리를 휘갈길 때에는 청중은 격동되여 열렬한 박수로 호응하여나섰다.

그럴 때면 방억세도 손바닥이 얼얼하게 박수를 치면서 저렇듯 열렬한 맑스의 《수제자》가 어찌되여 그 운명적인 저녁에는 왜놈망나니들에게 따귀 한대 붙여보지 못하고 뺑소니를 쳤을가 하고 고소를 금치 못하군 하였다.

그러나 하여간 한정상이 죽창대의 대원들의 의식수준을 높이는데서 더없이 귀중한 존재라는 사실만은 감사의 정을 안고 인정하군 하였다.

성란희는 또 제나름으로 집단의 사랑받는 인물로 되였다.

그 녀자의 고운 목청과 아릿다운 춤가락 그리고 맑고 깨끗한 자태와 신식례법이 무겁고 어둡고 구태의연하던 죽창대의 분위기를 일신시키고 죽창대의 생활의 구석구석에 활기와 랑만을 가져왔다.

죽창대에서 문맹자들에게 우리 나라 글을 가르쳐주고 대원들에게 노래를 배워주는 일은 스무나문 되는 녀인들을 데리고 죽창대의 세간살이를 맡아보던 동요가 담당하고있었다.

그런데 동요는 소대장일로 해서 그 일에 품을 크게 들일수 없어 늘 걱정이 컸다.

어느날 같은 초막에서 생활하던 동요가 노래시간에 적당히 구실을 대고 자기를 대신하여 성란희가 나서도록 하였다.

대원들이 처녀의 아릿다운 용모와 고운 목청에 홀딱 반하고말았다.

아예 동요의 짐을 넘겨받고야말았다.

처녀는 자기가 사는 병실도 밝고 환하게 꾸려놓아 같은 녀대원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죽창대의 생활의 선률에 말려들고 때젖어드는것이 결코 이 량반집 귀동녀에게는 떡먹듯 쉽게 이루어지는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자기의 인생을 뒤바꾸는 일로서 한점의 바람결도 모르고 피여오던 온실의 꽃나무를 비바람 사나운 황량한 벌에 옮겨심고 가꾸는 끈질기고도 자심하고 눈물겨운 고뇌이기도 하였다.

동생이 남몰래 날리는 한숨과 눈물을 소리없이 지켜보던 성관호는 여러번 그를 조용히 불러내여 이제라도 돌아가는것이 어떠냐고 권하기도 하였다.

벌써 산생활이 시작되여 한주일 넘기지 못하고 성란희는 외양부터 얼크러져 동글납작하던 두볼이 가맣게 꺼져들고 빨간 연지마저 무색케 하던 입술이 부르트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눈앞에서 별찌가 아물거리고 제 한몸 가누기도 힘들어 비칠거렸다.

다행으로 나이는 띠동갑이여도 죽창대의 생활에서는 언니고 스승인 동요가 곁에 붙어다니며 늘 다듬어주고 부축여주고 보호하여주고 고무해주어 성란희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되는 거친 세파를 가까스로 이겨내고있었다.

《아무 일에서나 고비라는게 있거든요. 이 고비만 넘기면 돼요. 나도 그랬어요. 열흘, 아니 한달까지는 베차더군요. 그래도 성동무는 그 시절의 나에 비하면 룡인걸요. 그다음에는… 일없어요.》

동요는 저녁이면 모포를 뒤집어쓰고 끙끙 앓음소리를 내는 성란희의 몸을 꽁꽁 주물러주며 이렇게 다심하게 위로하였다.

그리고 자기와 동무들의 체험담으로 성란희를 웃기기도 하고 신심을 북돋아주기도 하였다.

성란희가 자신을 이겨내게 하는데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힘이 뻗치고있었으니 그것은 방억세의 말없는 눈길이였다.

성란희는 자기를 지켜보는 그의 눈길이 놀라움과 실망 혹은 환멸과 경탄으로 자주 바뀌우는것을 처녀의 예민한 직감으로 느끼군 하였다.

그리고 그밑으로 굽이치는 동정과 련민을 애써 찾아내면서 자신의 헝클어진 안팎모습를 새롭게 가다듬었고 불쑥불쑥 쳐드는 복만 넘실거리던 어제날에 대한 향수와 마음속동요를 가차없이 차던지군 하였다.

이렇게 달이 흐르고 해들이 흘러갔다.

항일죽창대의 활동이 본격화되여갔다.

서울과 곳곳의 반일조직에서 찾아왔다. 그들은 죽창대의 활동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지원기금을 내놓았다.

죽창대는 반일조직들의 요구에 따라 악질적인 왜놈들과 주구배들을 처단하였으며 적의 군수창고를 공격하고 악질지주들의 식량을 털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면급경찰서를 습격하여 애국자들을 구출하고 싸움을 점차 도시에로 확대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어나갔다.

대오도 계속 늘어나 1945년도에 이르러서는 100명을 훨씬 넘어섰다.

드디여 조국해방의 날은 오고야말았다.

일본《천황》 히로히또가 항복을 선언하고 려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해방된 서울의 정사를 맡아본다는 소식이 죽창대에도 전해졌다.

이미 련계를 가지고있던 주경남이 편지를 보내여왔다.

한시바삐 죽창대전원이 하산하여 려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조직된 《국군준비대》에 들어가라는것이였다.

주경남의 편지를 받은 날 저녁에 방억세는 100여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태백산마루에 올라갔다.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에 호응하여 한바탕 왜적과 정면으로 맞붙어볼 꿈을 꾸며 여러해를 산중에서 시련속에 힘을 키워온 죽창대원들은 서울복판에 폭탄 한발 터뜨려보지 못하고 해방의 날을 맞이한 허탈감이 컸지만 그래도 조국해방소식은 그 모든것을 열백배로 초월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방억세는 태백산마루에서 창공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앞에서 두주먹을 불끈 쳐들고 웨쳤다.

《태백산항일죽창대는 이제 이 태백의 련봉에서 닻을 올리고 건국의 망망대해에로 나아간다!

사랑하는 동지들!

건국은 우리 태백산항일죽창대의 목표였고 리상이였다. 따라서 우리 다시 태백의 령봉에서 내 나라의 땅과 하늘에 맹세하자. 죽창대는 이제부터 <건국청년회>로 이름을 바꾸고저 한다. 우리는 건국의 초석이 될것이다!》

방억세가 힘껏 웨치자 100여명의 대원들이 일제히 총과 죽창을 높이 들고 우렁차게 복창하였다.

《우리는 건국의 초석이 될것이다!》

《우리 죽창대는 건국의 초석이 될것이다!》

《우리 <건청>은 건국의 망망대해로 닻을 올린다!》

《항일승리 만세!》

《만세!》

총창과 죽창들이 맞부딪치며 우등불빛을 받아 번뜩이였다. 만세의 드높은 함성이 어둠을 헤치고 태백의 높고낮은 봉우리들에 우렁차게 울려갔다. 비록 민족사에 남을만 한 항일대전을 벌려보지는 못하였으나 모진 시련과 곤경을 이겨내고 끝까지 항일기치를 고수하였다는것으로 하여 그들은 한없이 자랑스러웠고 행복하였다.

그들은 이날 밤 우등불앞에서 죽창대의 마지막결정을 내렸다.

태백산항일죽창대를 《건국청년회》로 그 이름과 사명을 바꾼다는 방억세대장의 발기에 대한 문제였다.

아무런 반대도 없이 결정되였다.

회장으로는 방억세가 선출되고 부회장으로는 성관호와 또 한명이 선출되였으나 성관호가 자기는 적임자가 못된다고 사양하였으므로 한정상이 그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두명의 간사가 선출되였는데 그 한자리를 성란희가 맡게 되였다.

다음문제가 발표되자 죽창대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웃고 떠들썩거렸다.

그것은 여러명의 남자대원들이 그동안 함께 생활하여온 처녀대원들과 더불어 사랑을 고백하려고 한다는것이였다. 여러해 생사고락을 같이하여온 전우들이니 마땅히 전우들앞에서 공개되고 전우들의 축복을 받는것이 도리라고 한 당자들의 이야기도 소개되자 대원들은 즐겁게 박수를 쳤다.

원래 죽창대의 생활규범에는 남녀대원들의 이성적인 교제는 대오의 풍기를 문란시키고 죽창대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며 가족주의를 조성하여 대오의 단합을 해치는 행위로 철저히 금지되여왔다.

그런데 나라가 해방되고 죽창대의 해산과 하산이 눈앞에 다가들자 여러명의 남자대원들이 찾아와 죽창대가 마지막으로 녀대원들과의 결합을 축복하여달라는것을 정식으로 방억세에게 제기하여왔던것이다.

그중에는 성관호도 있었다.

그가 찍은것은 뜻밖에도 동요였다.

《내게 누이동생을 주게.》

성관호가 며칠전에 이렇게 어색한 어조로 말했을 때 방억세는 한순간 어리벙벙해졌다.

평소에 그가 자기의 누이동생을 가까이 하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지만 그가 이렇게 정식으로 제기하여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던것이다.

방억세는 당황해져 처음에는 도리질부터 하였다.

웬 일인지 그의 눈앞에는 그 으리으리한 솟을대문부터 생각났다.

그 대문으로 동요가 들어선다?…

그것은 마치도 룡궁에 오소리가 뛰여드는것처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결합인것만 같았다. 어울리지 않는 남녀의 결합은 불행을 낳기마련이다.

《왜서인가? 내가 당치않은 욕심을 낸다는건가?》

성관호가 상대의 어정쩡한 태도와 도리질에 화가 동해서 거칠게 물었다.

《아니, 그 반대일세.》

방억세는 무뚝뚝하게 대답하였다.

그는 자기 동생이 성관호와 마주서면 그들의 재산정도나 뒤배경은 제쳐놓고서라도 인격에 있어서나 지성에 있어서나 너무 기울어진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던것이다.

그런데 성관호가 일시적인 감정의 충동에 서뿌른 청혼을 해온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방억세는 청춘시절을 그 누구보다도 드바쁘게 지내온탓에 아직도 동생이나 자신의 사생활, 더구나 혼담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한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는 굳어져온 타성이 있었다.

적당한 대상자-좋기는 자기네보다 이모저모로 모자라는 대상. 괜히 따지 못할 천상의 계수나무열매를 탐내다가 인생을 헛되게 탕진하고 자기에 대한 허무와 환멸의 쓰디쓴 고배를 맛보는것은 황당하고 어리석기 짝없는짓이다.

그런데 서울일경에서 손꼽히는 명문대가의 자손이 자기의 매부가 되겠다고 나서니 눈섭이 곤두서는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럼 대장동문 자기 동생이 박색이라고 말하자는건가?》

《아니, 내 동생은 착하고 대바르고 깨끗한 처녀일세.》

《그렇다면?… 거절리유를 알고싶소. 내라는 사내가 쭉정이로 보이나?… 그렇다면 할수 없는 일이지.》

《뭘 따져묻는가? 성동문 내앞에서 둔한것처럼 미욱을 부리는데 정히 내가 까밝혀서 대답해야겠나. 정말 내게서 구차스러운 대답을 들어야겠나.》

방억세는 신경이 살아나서 두눈에 불을 켜달고 화를 냈다.

그러나 성관호도 방억세의 립장을 미리 예상하고 혀를 빼물고 달려든듯 상대의 뒤발질에 억척보루같이 버티고서서 한걸음도 비켜서지 않았다.

그는 지금 방억세가 자기의 청혼을 마다하는 리유를 짐작하고있었다. 그 리유란 부당하다.

이 사람은 사랑이라는 의미를 너무도 복잡하게 리해하고있는것이 틀림없다.

무엇때문에 나라가 드디여 해방되고 시대가 분명코 달라지게 될 지금에 와서도 이 사람은 존비귀천부터 따지고드느냐. 사랑이란 숭고한 개념이다. 그리고 사랑이란 단순한 개념이다.

두 이성이 서로가 좋아하면 사랑이다. 사랑의 의미에 다른 이여의 문제들은 다 시시껄렁하고 보잘것없는것으로서 사랑이라는 숭고한 개념에 끼여들 가치가 없다.

이러루한 인식과 배심으로 하여 성관호는 대장의 흥분에 주접이 들지 않고 배포유하게 달라붙을수 있었다.

《흥, 알만 하네. 그래 죽창대에서 대장동무가 세해동안이나 날 가르친건 거짓이였나? 아니면 말장난이였나? 일본놈을 몰아내고 빈부의 격차가 없고 사람들모두가 자유롭고 공평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 난 아직도 공산주의리론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아 접수하지는 않았으나 우리 죽창대의 이 기본리념에는 찬성을 했네.

하물며 이제 무산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되겠는데 이제야말로 존비귀천이 꺼꾸로 바뀔 때가 아닌가.

난 동요와도 합의를 보았네.》

성관호는 더 구접스러운 대답을 듣지 않겠다는듯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방억세는 인차 련락병을 불러 동요소대장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다.

동요가 고개를 떨구고 수심에 잠겨 들어섰다.

방억세는 자기앞에 와서 죄인꼴을 해가지고 발끝으로 방바닥을 허비는 동생을 곱지 않은 눈으로 흘겨보았다.

볕과 골바람에 가무스름하게 타든 볼에서 살짝 패운 볼우물이 유표나게 눈을 찌르자 방억세는 속주머니가 흔들거렸다.

(그 사람이 저기에 반했을가?)

동요의 탐스러운 볼우물은 보면 볼수록 초롱초롱한 눈빛과 외씨같이 희고 잔잔한 앞이와 그리고 낯빛에 늘 재물거리는 미소에 어여쁘게 어울려 뭇사내들의 눈부리를 뺄만 하다.

어릴 때에도 동요는 그 볼우물때문에 귀여움도 받았고 난처한 일도 자주 겪어야 했다. 소녀의 보조개가 너무도 인상적이여서 그와 처음 마주선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씩은 만져보고 튀겨주군 해서 그 볼우물이 노상 성해있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이내 방억세는 왕청같이 동생의 볼우물에로 가지쳐가는 제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어 《음-》 하고 한바탕 욕을 퍼부으려고 거세게 목구멍을 틔워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 성란희가 방글거리며 따라들어오는것이였다. 동요가 대장의 방에 불리워가고 대장의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소리까지 오빠에게서 들었던것이다.

동생이 들어서면 인륜대사를 신중하게 결심해야 한다고, 너는 명문량반종가집 맏며느리로는 적임자가 못된다고 단단히 오금을 박자고 벼르고있었는데 성란희까지 묻어들어오니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성란희를 세워놓고서는 꺼내지 못할 화제거리여서 미안한대로 량해를 구하는수밖에 없었다.

《성동무, 난 지금 우리 동생과 중대사를 론의할게 있소. 그러니 잠간만 자리를 피해주지 않겠소?》

이 문제에는 네가 참여할바가 안되니 물러가라는 소리였다.

그러자 성란희가 코살을 쫑깃거려보이고는 선듯 대답하였다.

《우리 소대장동무의 중대사라면 저도 참가해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방동요소대장은 이제는 성씨집 문턱을 넘어선 성씨가문사람이니깐요.》

《차,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방억세는 동생을 쏘아보았다.

동요는 너무 바빠 성란희의 허리를 손부리로 쿡 찌르고 성란희는 《형님, 왜 그래?》 하면서 방억세에게 어느새 동요의 시누이가 되여 한걸음 더 다가서기까지 하였다.

《대장동지에게 한가지 물을수 있어요?》

《…》

《대장동지도 앞으로 색시감을 구할 때 꼭 웃분의 허락을 받아야 하겠나요?》

《그건 왜?… 허 참…》

《웃분이 도리질하면 좋아하던 처녀를 너 갈데로 가라고 차버리겠나요?》

《엉?… 허 참…》

방억세는 자기도 어쩔새없이 처녀가 뿌려던진 마술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꼼짝달싹 못하고 그가 끄는대로 끌려가면서 연방 혀밭은 소리만 싱겁게 내질렀다.

《왜 대답을 못하세요?… 그런 사내들 보고 뭐라고 하더라. 형님, 뭐라고 했다더라.… 오라, 생각나. 치마두른 사내, 물감자같은 사나이…》

《허허허…》

방억세는 마치도 바지끈을 죄이듯 그냥 한금두금 조여대는 처녀의 다기차고 재기있는 역설에 대답이 궁해서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대장동지생각에도 그런 사내 웃기는 사내가 분명하죠?… 자 형님, 가자요. 하마트면 찰떡 서말을 놓칠번 했네.》

끝내 성란희는 동요를 끌고 청청한 웃음을 꽃보라처럼 날리며 방에서 나가버렸다. 그들이 나가버리자 방억세는 그 무슨 여우귀신에게 홀린듯싶어 제잡담 혼자서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이렇게 되여 성관호와 동요가 대렬앞에 걸어나가 전우들의 충심으로 되는 축복을 받았던것이다.

죽창대의 전우들은 열렬한 박수로 그들의 결합을 지지하였다.

녀성소대대렬이 허물어지고말자 방억세는 그 어떤 밀물과도 같은 감개가 가슴에 뿌듯이 차들고 속이 후련해왔다.

이팔이 청춘이라고 하는 시절이고보니 산속에서 다 혼기를 놓쳐버리는것만 같아 이따금 녀성소대를 둘러볼 때면 미안쩍은 마음도 슬그머니 속구석에 자리잡아 머리가 무거워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해방과 더불어 그들이 끌끌하게 자기 짝을 다 맞춰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였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마지막무렵에 한정상이 나서고 그가 반려라고 제기하였던 성란희가 호명되였다. 그런데 처녀가 나서지 않았다.

《성란희동무.》

방억세가 큰소리로 부르며 대렬을 둘러보았으나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즐거운 폭소와 환희와 박수소리로 흥성거리던 대렬에 일시에 정숙이 깃들었다. 방억세가 다시 불렀으나 성란희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한정상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처녀의 무언의 대답이였다.

그러면 당자들사이에 약속도 없이 한정상이 무례하게 처녀를 자기의 짝으로 사람들앞에 선언하려 하였는가.

방억세는 쓰겁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속에 한정상이 우등불가에 혼자 나와 서있다가 어색해서 터벌터벌 걸어 자기 자리에 들어갔다.

이날 저녁 방억세가 밤늦게까지 산속의 마지막밤을 뜬눈으로 밝히고있는 전우들과 회포를 나누다가 자기 방에 들어서니 어데서 나타났는지 성관호가 뒤따라 들어섰다.

방억세는 즐거운 기분으로 손을 내밀었다.

《늦었지만 축하를 받아주오. 부족한게 여러모로 많은 애니 잘 돌봐주오. 난 정말 걱정이 크오.》

《고맙소. 부실한것으로 보면 내가 더 많지요.

내 좋은 남편, 좋은 매부가 되겠다는걸 약속하오. 믿어주오.》

《고맙소!》

그들은 두손을 덥석 잡고 처남매부지간이라는 후더운 혈육지정에 감개무량해서 오래동안 놓지 못하였다.

성관호가 불쑥 방을 둘러보다가 한구석에서 잠에 취해있는 련락병이 눈에 띄우자 나직이 찾아온 사유를 밝히였다.

《내 할말이 있어 왔소. 여기는 무덥구만. 피곤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갔으면 하오.》

《그렇게 하세. 이런 밤을 잠자리에서 보내는것이 싫었는데…》

귀틀집에서 멀지 않게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시내물이 흐르고있었다.

왕가물에도 마르지 않고 대원들에게 생명수로 되여준 시내였다.

말복계절이기는 했어도 심산유곡의 밤은 서늘한감을 주었다.

싸리꽃향기가 밤바람에 실려와 가슴에 향긋이 젖어들고 어데선가 밤새가 산촌의 고요를 깨치며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조약돌우를 굴러가는 물소리가 조잘조잘 정겹게 들려오는 내가에서 성관호는 발을 세웠다.

두사람은 한동안 시내물의 조잘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하많은 사연을 전해주는듯 쉴새없이 조잘거리는 시내물소리가 이밤따라 그들에게는 환희에 넘치는 노래가락처럼 정답게 들려왔다.

《대장은 어째서 우리 동생을 울리나?》

밑도 끝도 없이 조용히 내뱉는 성관호의 소리였다.

그러지 않아도 한정상의 온당치 못한 처사를 두고 마음이 찌뿌드드해있던 방억세는 그 소리가 불꼬치가 되여 명치를 욱질러대는듯싶었다.

《내가?… 란희동무를?…》

방억세가 이렇게 성관호보다 한음계 높은 소리를 내질렀으나 실상 기가 눌려있는 어조였다.

《난 다시한번 권고하네. 이 문제를 놓고서는 대장답지 않네.…

뭣때문에 우리 동생을 난처하게 만드나. 그것도 사람들앞에서… 그래 란희가 누구를 마음에 두고있는지 모른단 말인가.》

《성형…》

《매부라고 불러주게…》

《젠장… 벌써부터 매부재새인가.… 좋네. 매부, 나도 그렇게 부르는게 훨씬 입에 맞는구만.… 내가 또 원점으로 돌아가 공회전하는 이야기를 꺼내야 되겠나?》

《흥… 우리 동생이 빠리식련애를 한다는 소리… 얼뜨기같은 소리를 다시는 하지 말게. 리광수가 곧잘 청년들을 간지럽히던 빠리식삼각련정이란 도대체 뭔지 알기나 하고 지금도 고담같은 소릴 그냥 고집하는가?

그건 말일세, 한 인간이 여러 대상에게 정을 주고 그들사이에 다 애정관계를 가지는것을 의미하네. 하지만 한 인간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사모하는것은 흔히 볼수 있는 우리의 생활일세. 모름지기 우리 녀성소대의 적지 않은 처녀들이 처남을 사모하고있을걸세. 그렇다고 그것이 지탄을 받아야 하나?

옛날 춘향이 리도령과 인연을 맺었는데 변학도가 수청들라고 옥에까지 처넣었지. 이것도 빠리식의 삼각련정이라는건가? 하, 처남도 웃는구려. 황당한 궤변일테지.

한정상, 그 친구가 우리 동생을 마음에 두고 따라다닌것은 사실일세. 하지만 우리 동생은 소녀시절에도 정을 주어본적이 없네.… 그러나 그것마저 벌써 썩 오래전에 끝난 이야기일세. 거야 대장이 잘 알지 않나. 여기에 무슨 이색적이고 추한 딱지를 붙일게 있는가?

우리 란희가 대장동무를 마음에 두고있다는걸 처남이 몰라서 한정상의 엉큼한 계교에 넘어가 오늘 두번세번 대렬앞에서 동생을 찾으며 소란을 피웠나?

도대체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란희앞에서 얼뜨기행세를 할 셈인가?》

성관호는 이제는 한지붕밑에 들어선 밭은 인연의 정을 가지고 무랍없이 따지고 몰아세웠다.

성관호가 방억세에게 동생말을 비친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바로 해방이 선포되던 그날 성관호가 방억세에게 처음으로 정식 그 문제를 까밝혀놓았던것이다.

그때 방억세는 롱으로 대답하였다.

《날더러 빠리식삼각련애에 동참하라는거요?》

그때 성관호는 골을 내며 그런게 아니라고, 자기 동생은 벌써 오래전부터 대장만을 생각하여왔다고 중언부언하였다.

그런데 이날 저녁에 한정상의 비렬하기 짝이 없는 계책에 빠져들어 두번세번 동생의 이름을 불러대는것을 보자 성관호는 부아가 치밀어 견딜수 없었다.

(저 사람이 왜 저 꼴이야. 한번쯤 불러놓고 넘어갈게지 왜 집요하게 그냥 부르나.)

그래 모임이 끝나고 산마루에서 내리기 바쁘게 대장초막근처에서 그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방억세는 잠시 자기 생각에 잠겨있다가 그리 시답잖은 투로 대답을 주었다.

《그래도… 한정상동무는 까놓고 말한다면 란희동무를 따라 입산을 했소.》

《모를 일이요. 난 그것부터 리해가 안되오. 우리 동생을 망나니들에게 팽개치고 도망쳐온 녀석이 동생때문에 이 고난스러운 산중생활을 선택한게… 그건 그렇고 우리 동생은 대장을 따라 입산을 했소. 이건 명백하오.》

《한정상은 우리의 전우, 내가 대장으로 있는 죽창대의 대원이요.》

《흥… 과시 대자대비하시군.》

성관호는 쓰거운 미소를 지으며 빈정거렸다.

그는 자기의 말이 오늘도 이 대쪽같은 인간에게 도무지 씨가 먹지 않고있다는것을 알자 더럭 증이 났다.

《만나보게. 난 모르겠네.》

성관호는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턱질로 앞쪽을 가리켰다. 그는 방억세를 시내가에 남겨놓고 초막을 향하여 경사진 숲길을 걸어갔다.

방억세가 사방을 둘러보니 맞은편 너럭바위우에 오도카니 앉아있던 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고있었다.

(성란희가 나와있었구나.)

방억세는 그쪽을 향해 무겁게 발을 옮겼다.

그는 징검돌을 밟으며 시내를 건너 처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세해전에 70칸 대궐에서부터 자기를 보는 처녀의 눈길이 례사롭지 않다는것을 매양 느껴왔다.

아름다운 녀인의 따스한 정이 어린 눈길을 받는것은 무릇 남성들에게는 행복이기도 하다. 녀성의 따스한 눈길에는 데설궂은 성미도 옥으로 다듬어주고 맺힌 한도 봄눈처럼 녹여주고 시들던 기력도 싱싱하게 돋구어주고 헤여날길 없는 고독도 달래여주는 신비한 힘과 빛과 열이 있다고 한다.

성란희는 대원들이 하나처럼 선망하고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죽창대의 꽃이다.

그러나 방억세는 그와 상종해오면서 처녀의 따스한 눈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기안하여 대원들의 일치가결을 받은 죽창대의 륜리를 절대로 어길수 없다는것이였다.

남녀대원들 호상간에 이성관계는 대오에서 절대로 용납할수 없다고 내부규률의 한 조항으로 못박아놓았던것이다.

성관호가 동생문제를 처음으로 슬쩍 롱조로 내비쳤을 때 방억세도 롱조로 바로 이 조항을 내들었다.

《대장이 대원들에게 불륜죄로 탄핵되는걸 보자고 그러오?》

다음으로 아직도 그의 머리속에 쿡 박혀있는 성란희와 70칸대궐에 대한 첫인상이다.

고색이 짙은 70칸 청기와집, 호화찬란한 무리등밑에서 번쩍거리는 피아노건반을 두드리는 처녀… 풀떡거리는 풀무가 맥빠진 소리를 내지르는 서해바다가마을의 작은 야장간과 도꾜의 에도강변에서 학비를 버느라고 정신없이 자갈을 치던 고학생…

어울려들수 없는 너무도 판이한 두 생활의 간격을 무엇으로 메꾸어주랴.

두번째로 성관호가 동생이야기를 좀더 진지하게 꺼내놓았을 때 방억세는 바로 이 둘째 조항을 거들었다.

그렇다면 자기는 동요를 기어이 데려가야 되겠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쩔셈이냐고 넌지시 제 욕심을 챙기며 몰아대자 이렇게 대답하여주었다.

《부자집에 가난뱅이딸이 들어가 살았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소. 하지만 가난뱅이한테 부자집 귀한 딸이 찾아들었다는 례는 나는 들어본적이 없소. 글쎄 온달이를 찾아 평강공주가 궁궐을 버렸다는 옛말은 있었지만… 그것도 너무 기이한 얘기여서 전설까지 돼서 전해오는게 아니겠소.》

보다 방억세의 발목을 비끄러매는 리유가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처녀에게로 향하는 방억세의 한걸음의 접근을 불허하는 기본리유이기도 하였다.

성란희에게는 분명 그 녀자를 사모하고있는 한정상이라는 사나이가 있다는것이다. 방억세는 그들의 사이를 그렇게만 보아왔는데 자기가 그들사이에 끼여드는것은 어떻게 설명하든지 대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아름답지 못한 추문을 남길것이라고 지금까지 자신을 다잡아왔던것이다.

비록 세해전의 일로 해서 그들사이가 뻐그러지고 그 수습이 투명하지 못한것은 사실 같지만 그건 언제인가 시간이 지나면 세월의 망각속에 지워지게 될것이다.

남남끼리던 남자, 녀자가 한몸으로 결합되는것이 어찌 순풍에 돛올리듯 쉽게만 되랴.

더구나 한정상은 고락을 함께 하고있는 전우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상관이다. 상관은 마땅히 이런 문제에서도 결백하고 수범이 되여야 하며 어지러운 추문을 달고다니지 말아야 한다.

이런 소리를 들었을 때 성관호는 코웃음을 쳤다.

《과시 성인군자였구만!》

《아니, 륜리요. 인간과 인간 그리고 부하와 상급간의 륜리란 말이요.》

《됐소. 삼강오륜을 풀자면 내가 더 멋있게 엮을수 있소. 공산주의자 방억세대장이 고리타분한 공자의 신봉자가 될줄은 몰랐지.》

《삼강오륜이라고 다 어리석은거야 아니지. 내가 대장이라는걸 리해하여주오.》

방억세는 이렇게 자기를 옹호하고 달팽이처럼 굳고 단단한 갑속에 쑥 움츠러들었다.

그도 가끔 처녀의 모습을 떠올려놓고 싱숭생숭한 상념에 파묻힐 때도 있었다.

성란희의 모든것이 마음에 들었다. 자기가 죽창대대장만 아니였더라도 그리고 성란희가 대를 물려오는 대가집 규수가 아니였더라도 따라다니면서라도 기어이 그 녀자의 사랑을 쟁취하였을것이다.

그러나 방억세는 부지불식간에 뇌리에 감겨드는 유혹과 애모의 감정을 썩둑 잘라버리군 하였다.

지금도 방억세는 자기의 부담거리를 청산해야 한다고 속을 다잡으며 걸어가고있었다. 그리고 뒤헝클어져있을 처녀의 속도 위로해주고싶었다.

《란희동무.》

그는 자기도 어색하리만치 이 고요한 밤에는 어울리지 않게 엄하게 불렀다.

시내물을 굽어보며 시름에 잠겨있던 처녀가 방억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처녀는 푸릿한 달빛까지 서려 더욱 엄숙해보이는 상대방의 얼굴을 겁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고 재빨리 나직하게 말을 걸었다.

《지난 세해동안 전 대장동지한테 의지하여왔어요. 이 말 하고파서 감히 찾아왔습니다.》

방억세는 한숨을 내쉬였다. 두부모 베듯 잘라버리려고 단단히 마음을 도사려먹고 왔는데 처녀의 애끓는 하소연앞에서 금시 속생각이 마구 뒤엉켜버렸다.

《고맙소, 란희동무. 내같이 여러가지로 부족한 남자가 란희와 같은 훌륭한 녀성의 따뜻한 정을 받고 살아온건 행운이지요.

정말 고맙소. 그런데 이것 보오, 란희…》

《됐어요!》

순간 처녀는 방억세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이야기가 넌덜머리가 난듯 다소곳이 떨구고있던 고개를 쳐들고 상대방의 말허리를 꺾으며 오연하게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빠르고도 명료한 말씨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가 사귄 사람들중에서 저의 흉칙한 꼴을 본 유일한 남성이예요. 난 당신에게 나의 모든것을 의지하려고 벌써 그날 밤에 결심했어요.》

성란희는 이 말을 꺼내놓고 숨이 차서 잠시 할딱거리였다.

《대장동지, 당신이 정말 사나이라면 앞으로 저에게서 이보다 더 괴롭고 비참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저의 인격을 지켜주기 바랍니다. 지금 당신앞에는 녀성으로서의 자존심이라는 마지막허울까지 다 벗어버린 바보스런 녀인이 서있습니다.》 하고 처녀는 두손으로 입을 싸쥐더니 홱 돌아서서 비탈진 오솔길을 따라 달려갔다.

방억세는 처녀한테서 따귀라도 한대 후려맞은듯 두볼이 얼얼하여 오래동안 너럭바위에 주저앉아있었다.

만사람이 기쁨의 무아경에 취해 잠들지 못하는 해방연에 어찌하여 자기라는 인간은 이렇듯 앞뒤가 꽉 막힌 지겨운 부담에 짓눌리워 한숨을 쉬고있는지 어이없는노릇이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성란희의 괴로운 속이 리해되고 그 옥맺힌 속을 사나이답게 시원히 풀어줄수 있는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자기의 인격을 지켜달라고 열렬히 부르짖고 호소하는데 어떻게 하는것이 처녀의 인격을 지켜주는것으로 될가.

처녀의 괴롭고 번거로운 머리를 거뜬하도록 도와주는것은 한정상과의 혼담이 하루속히 결속이 되도록 옆에서 부채질하는 일 같기도 하다.

그런데 성란희의 속이 저 정도로 달아오른것을 보면 그 일이 쉽게 될 일 같지도 않다.

방억세는 끝내 이렇다할 해답을 찾지 못한채 도로 시내물의 징검돌을 넘어 자기의 초막으로 스적스적 돌아왔다.

초막의 문을 열려고 하는데 등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문을 열다말고 돌아서니 한정상이 그 가늘게 질러간 눈으로 자기를 보고있었다. 다소 긴장되여있는 모습이였다.

《무슨 일이요?》

방억세는 자기도 모르게 거친 어조로 물었다.

《할말이 있어 왔습니다.》

《긴 이야기요?》

방억세는 또다시 시끄럽기 그지없는 화제거리에 빠져들어 이 경사스러운 밤시간을 보내게 될가봐 시푸녕스럽게 물었다.

《5분이면 됩니다.》

한정상의 말투는 반지럽고도 깔끔해서 더 마주서고싶은 생각이 없게 하였다.

《좋소. 여기서 말하시오.》

방억세는 상대를 초막안이나 다른 호젓한 자리에 끌고가고싶지 않아 그자리에 다리를 박은채 서둘렀다.

《다른건 아니구… 날 좀 도와주시오.》

《도와달라구?… 무엇을?… 어떻게?…》

방억세는 까닭없이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떠밀려 성급하게 다그쳐물었다.

방억세는 이래서는 안된다고, 부드럽게 응대하려고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몰라서 묻소?》

한정상의 눈이 아예 녹아붙은듯 실금만 남고 그 말투가 퇴매해서 방억세는 신경질적으로 홱 돌아섰다.

그래, 이게 너 한정상이지. 란희가 뱀처럼 차고 매끄러운 너같은 인간을 마음 차할리가 없지. 방억세는 도와달라고 하면서도 얼음덩이같은 랭기를 물고 접어드는 상대를 차던지고싶었으나 자신을 자제하고 랭담하게 타일렀다.

《이것 보우, 한동무. 사나이라면 말이요. 그런 일에서야 남의 손을 빌릴 생각을 말아야지.》

《좋소. 그럼 부탁 하나 들어주오. 란희가 헛눈을 팔지 않도록 처신을 바로해줄것을 바라오. 이것뿐이요.》

《처신?… 처신을 바로해달라고?…》

방억세는 또 밸이 뒤집혀지고 눈에서 불이 일었다.

도무지 셈판이 없이 달려드는구나. 내가 도대체 이녀석한테서 지저분한 궤변을 들을만 한 죄라도 지었다는건가.

얼마나 집요하고 파렴치한 작자인가.

어떻게 성란희쪽에서는 완강하게 부정하는 문제를 두고 자기입에 서슴없이 올릴수 있는가. 그것도 여러해 고락을 같이해온 전우들앞에서…

이것은 그자신뿐아니라 처녀의 순결에 오욕을 남기는 너무도 부도덕한 패륜행위이다.

련애는 소경이라더니 이 작자야말로 짝사랑에 리성의 눈이 곯아빠진게 아닌가.

그의 뇌리에 문득 어제날의 한토막이 떠올랐다.

성란희가 처음으로 방억세를 만나 그에게 자기의 피아노솜씨를 보여주고났을 때의 일이였다.

벌써 그 시절에도 한정상은 자기야말로 처녀의 영원한 보호자인양 수선을 떨었고 성란희는 한정상의 얄궂은 심사에 분노를 터뜨렸다.

그날의 그 불미스럽던 광경이 오늘에 다시 재현된것이다.

사랑이란 인간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고상한 세계이다.

사랑이란 인간들을 아름답게 다듬어주며 인간을 고결하게 완성시켜준다. 하거늘 인간의 즙과 향기와 같은것을 함부로 모욕하고 자기의 리기심을 만족시키려는 한정상의 소위가 더없이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까지 거들어대며 어지러운 수작을 붙여오다니.

방억세는 또 하나의 타격을 뒤통수에 느끼며 밸머리가 살아나 따지고들었다.

《알쑹달쑹하게 안개발을 치지 말고 명백히 말하오. 가령 그 처신이라는게 어떻게 해야 당신을 도와주는거겠소?》

《오늘 저녁 같은 일이 없었으면 하오. 밤늦게 처녀를 불러내는 일 같은것 말이요.》

《그래?… 헛… 허허허…》

방억세는 너무도 엄청난 오해에 얼굴에 불기운이 확 몰려드는감을 느끼며 어이없어 하늘로 고개를 들고 김빠진 웃음을 터쳐놓았다.

그리고는 초막에 쑥 들어가 벌렁 드러누웠다.

해방의 환희와 앞날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올랐던 방억세는 머리가 무거워졌다.

이제는 한정상의 경망스러운 처사에 숨어있는 엉큼하고도 시커먼 저의가 석연하게 느껴졌다.

결국 한정상은 사람들과 나, 방억세앞에서 성란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기의 《사랑》을 공개하여버림으로써 처녀에게 다가설수 있는 뭇사내들의 접근을 차단해버리려는것이다.

어쩌면 적절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매우 정확히 타산된 너절한 공세이다. 그는 한정상의 인격이 더없이 초라해지고 그 인간의 모든것에 의심이 갔다. 도대체 몇해동안 우리 죽창대에서 쌓아온 인간수련이 그게 다란 말인가.

어찌하여 저 인간은 인간의 추악한것과 고결한것에 대한 판단의식이 꼬물만치도 없이 자기를 위함이라면 사기와 모략을 내키는대로 할수 있을가.

인간의 체질평가는 한생에 걸쳐서도 똑바로 내릴수 없다고도 하지만 반면에 한순간에 가장 정확한 답을 내릴수도 있다.

분명 오늘의 일은 한정상의 인간됨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임에 틀림없다. 그럴진대 저 인간의 앞날이 과연 어떻게 될가.

그는 부지불식간에 한정상이 자기를 마치도 사랑의 적수와 같은 위치에 세워놓고 도전장을 던져왔다는 생각이 들자 속에서 역기가 치밀어올랐다.

《허 참, 맹랑한 자식인데… 맹랑한 자식이야. 나는… 그래 옳게 처신한것 같다.… 참, 맹랑해…》

그는 어지럽게 몰려드는 잡귀신을 쫓아버리듯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어찌할수없이 말려든 번거로운 생각에 뒤치락거리던 방억세는 새벽녘에야 가까스로 잠에 취해들었다.

며칠후 방억세는 태백산항일죽창대 대원들을 거느리고 시가지를 향해 보무당당히 행진하여갔다.

총창과 죽창을 둘러메고 누런 군복에 하얀 행전을 치고 오각별이 달린 군모까지 눌러쓴 끌끌한 젊은이들이 독립군노래를 우렁차게 부르며 시가지중심에 있는 시청을 향하여 씩씩하게 행진하자 거리를 오가던 시민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환영을 하였다.

려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가 자리잡은 서울시청앞 마당에 대렬을 정렬시킨 방억세는 려운형을 찾아가 간략보고를 하였다.

항일죽창대가 태백산에서 왔다는 소식에 려운형은 기뻐서 어쩔줄 모르며 방억세를 끌어안고 돌아갔다.

려운형은 마당에 정렬한 대원들을 사열하듯이 일일이 돌아다니며 악수를 하고나서 매우 흡족한 기색으로 그들앞에 나섰다.

그는 나비수염을 쓸어내리고 잘 울리는 언변으로 짤막하게 연설하였다.

《어, 태백산항일죽창대 여러분, 여러분들과 이렇게 해방된 서울에서 만나고보니 실로 감개무량하오. 나는 <건국준비위원회>를 대표하여 항일구국의 기치를 고수한 여러분들을 열렬히 축하하며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목하정세는 여러분들과 같이 조국해방을 위해 일로매진하면서 군사와 정치를 겸비한 청년선각자들을 부르고있습니다.

건국의 초행길을 우리 함께 열어나갑시다.

나는 여러분들이 바란다면 항일죽창대 전체 성원들을 <건국준비위원회>의 <국군준비대>에 초청합니다.》

방억세는 절대다수의 남자대원들과 함께 장수덕이 대장으로 있는 《국군준비대》에 들어가 그 역원으로 활약하게 되였다.

성란희는 려운형의 서기로 들어갔다가 려운형이 피살된 다음에는 좌익신문인 《해방일보》 기자로 옮겨앉았다.

이렇게 되여 태백산항일죽창대는 해방의 환희가 소용돌이치고있는 서울땅에서 건국의 힘찬 대오에 합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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