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제13장 역풍에 감겨든 사나이

 

《용달사》는 효자동의 맨 끝에 자리잡고있었다.

그들은 《용달사》라고 우리 말과 영어로 쓴 커다란 간판을 붙인 대문앞에서 잠시 주변을 살피였다. 크지 않은 건물이였는데 가운데 있는 방에 환하게 불이 켜져있었다.

《정동무가 데리고 나오세요. 나는 아까 우리가 앉아있던 수양버드나무밑에 가서 기다리겠어요. 내가 와서 기다린다고만 전하여주세요.》

성란희는 짤막하게 지시하였다.

원래 쌍매골을 떠날 때 확정한 행동방안에는 성란희가 방억세를 유인하여 효자동입구에까지 끌어내게 되여있었다.

그러면 거기에 대기하고있던 정수철이 빨찌산지휘부의 결정을 알려주고 형을 집행하게 되여있었다.

《그건?…》

《그렇게 하세요.》

성란희는 그가 두말을 못하게 두부모베듯 썩둑 잘라버리고는 정수철에게 어서 들어가라고 고개짓을 해보이고는 돌아섰다.

성란희는 지금 이 순간 방억세에 대한 가슴밑굽에서 끓어오르는 련민의 정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그 아릿아릿한 기분을 가지고 이제 방억세와 밝은 불빛밑에서 마주섰다가는 유인은 고사하고 끌어안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놓을것만 같았다. 방억세가 앉아있을 방앞에 다가선 이 순간 벌써 그의 가슴은 형언할수 없는 그리움과 감격으로 끓어번지고있었다. 그걸 누르자니 가슴팍이 금시 뻐그러지기라도 할듯 저려왔다.

성란희는 두세걸음 옮기다가 돌아서서 정수철을 나직이 불러세웠다.

그는 정수철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빠른 말씨로 일깨워주었다.

《그가 만약 눈치를 알아채고 반항한다면… 아니… 그럴수 없어요. 하지만… 동무의 결심으로 현장에서 형을 집행해요.》

그 녀자는 가슴복판으로 그냥 안타깝게 치미는 정나미를 털어버릴수 없어 안깐힘을 다하여 야멸차게 명령하였다.

정수철은 시푸녕스러운 상을 해가지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걸음이 내키지 않아 보였으나 성란희는 돌아서서 도망치듯 대문가에서 물러섰다.

성란희는 《용달사》의 수위에게 정수철이 뭐라고 횡설수설하는 소리를 들으며 버들방천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정수철은 《사장실》이라고 문패를 달아놓은 방문앞에 가서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두런두런 울리던 말소리가 끊어지고 이어 《들어오시오.》 하는 굵은 저음이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정수철은 몸에 힘을 가하여 온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 문을 열었다.

와이샤쯔바람에 넥타이를 두르고 조끼를 받쳐입은 신사가 큼직한 둥글걸상에 앉아 장교와 마주하고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정수철은 방안에 들어서며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정수철을 바라보던 방억세의 얼굴에 순간 번쩍 놀라운 빛이 서리다가 이내 반가움으로 바뀌여졌다.

《아, 정군이군!》

그러나 방억세는 침착하게 자신을 자제하며 《잠간… 거기 앉아 기다려주게.》 하고는 마주앉아있는 장교에게 하던 말을 그 무엇에 쫓기듯 급하게 이어갔다.

《아무래도 3사 군품명세는 래일 다시한번 토론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 <용달사>가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실정을 고려하여주시오. 제기한 품종이 너무 다양합니다.

래일 10시경에 실무자들과 토론한 문제를 가지고 다시 마주앉읍시다.》

《알았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당장은 여름철사병신발이 제일 문제입니다.》

장교는 사정하듯이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능한껏 풀어보도록 합시다. 사단장님께 인사를 전해주십시오. 기회를 봐서 내가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래일 아침 사단장님께 오늘 협의정형을 보고드리게 되여있습니다.》

방억세는 인사를 절도있게 하고 떠나가는 장교를 문가에까지 바래워주고는 천천히 문을 안으로 채우고 창가림막까지 드리워놓았다.

방억세는 정수철에게로 바삐 걸어가 다짜고짜로 와락 끌어안았다.

《정동무! 살아있었구만!》

방억세는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목메인 어조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

정수철은 자기의 허리를 꽉 그러안고 뜨거운 열기를 확- 확- 내뿜는 옛 상관의 감격스러운 포옹에 어리둥절하여졌다. 그도 어쩔수없이 옛 상관의 허리를 부둥켜안았다.

(이 무슨 노죽인가?)

그는 눈을 흡뜨고 이렇게 속으로 뇌여보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방억세는 사랑하던 부하를 끌어안고 잠시 굳어져있다가 그의 얼굴을 한손으로 쓰다듬었다. 이곳저곳에 아직도 고문으로 생긴 흉터가 남아있었다.

《이보게 정수철이, 동무가 이렇게 살아나왔기에망정이지… 그 철대문안에서 꺼졌더라면 어찌될번 하였는가.

난 또 내나름으로 정동무생각에 가슴이 쓰려왔지…》

《제 생각이라구요? …》

정수철은 속에서 찬바람이 태질을 하였다. 자기에게 방아쇠를 당기던 때가 언제라고 고양이 쥐생각이야, 뻔뻔스러운 놈…

그러나 방억세는 상대의 감정따위는 너무도 큰 반가움에 가리워 꿈에도 생각할수 없었다. 그저 정수철이 살아나왔으니 그게 기쁠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일생의 한으로 명치에 박혀 자기를 괴롭히게 될 그 뼈저린 한이 정수철의 출현으로 봄눈 녹듯 일시에 사라졌으니 속이 시원해지고 감개무량할뿐이였다.

《글쎄… 이보라구 소대장, 뭐니뭐니 하여도 난 말일세. 옛 부하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야 했던 아픔을 일생토록 지우지 못했을걸세.… 정동무가 나를 쏘아보던게 잊혀 안지네. 그때 날보고 하던 말이 다 내게는 총탄처럼 가슴에 팍팍 박혀있었다네.

그런데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다니… 아, 참 기뻐!… 기쁘기만 하겠나.… 자, 저리 가서 앉자구.》

방억세는 이렇게 그의 허리를 한팔로 그러안은채 긴 쏘파에 가서 앉았다.

《어떻게 나올수 있었나?… 도망쳤겠지… 영웅이야!… 암, 그속에서 썩고말 정수철이야?! 그래서야 안되지. 할일이 얼마나 많고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데 그 철창안에서 요절한단 말이야… 언제 나왔나?… 지금 어데 가있구… 쌍매골에 다시 갔겠지. 인천에는 가보지 못했을거구.…

허허… 요즈음 자주 꿈자리에 나타나더니 이렇게 기별없이 뛰여들었군. 자,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게, 인차 퇴근하려고 했지. 이제 가다가 보신탕집에 들려 축배도 들구 배나 채우세.》

방억세는 너무도 큰 기쁨과 반가움에 어쩔줄 몰라 전에없이 수선을 떨면서 이렇게 가슴에 넘치는 감회와 정을 푹푹 퍼내여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재빨리 책상우에 잔뜩 널려있는 문서장들을 걷어모아 책상안에 집어넣구 자물쇠를 채웠다.

정수철은 거두매를 하느라고 바삐 돌아치는 옛 상관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대장동지!》 하는 부름말이 그냥 목구멍을 타고넘어 혀끝에 그냥 묻어가지고 뱅뱅 돌고있는데 입술만은 철문같이 꾹 닫겨져 열리지 않는다.

이렇게 예나제나 가식이 없는 정깊은 포옹에 휩싸여 그 후더운 목소리를 들으니 명치에 옭맺혀있던 의혹과 한이 일시에 풀려나는듯싶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 지휘부의 결정을 생각하며 신경을 도사리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려고 마음에 강짜를 부렸다.

저럴수 있는가?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던 일은 분명 잊어버린것 같지 않다. 헌데 사람의 낯가죽을 쓰고 저렇게 설레발을 칠수 있는가?

내가 여기 나타난걸 무서워하지도 않구 서로 마주설 때 한쪽은 사형수요, 한쪽은 살인자로 되여있었는데 처지가 뒤바뀌여질수 있다는 우려가 정말 없어서일가?

참말로 연극이라면 너무 진실하고 배짱이라면 여전히 소힘줄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인정이 뚝뚝 떨어지는 저 소리는 예나제나 다름없는 대장의 소리가 아닌가? 정수철은 한순간에 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여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방억세는 책상정돈을 하고나서 옷걸이에 걸어놓은 양복저고리와 진회색봄외투까지 걸치고 조끼주머니에서 금줄이 달린 회중시계를 꺼내 들여다보았다.

《일없소. 아직은 음식점들이 붐비고있을 때이니 천천히 가도 일없어. 자, 가세.》 하며 방억세는 정수철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미륵보살처럼 쏘파에 굳어져 엉뎅이를 쉬이 뗄념을 하지 않는 정수철을 보자 의아해서 물었다.

《정동무, 몹시 아픈 모양이구만. 하긴 감옥어혈이 풀리자면 한달은 걸릴거요. 난 그안에서 매 한번 맞지 않았는데도 말그대로 피골상접이 돼서 나왔었네. 그래 지금 산에서 오는 길인가? 구류장에서 곧바로 찾아온 길이요?》

그제야 방억세는 옛 부하의 거동에서 이상한 기미를 띄여보았다.

그는 잠시 정수철을 내려다보며 자기가 반가움부터 앞서 여러가지 문제를 놓쳤다는것을 늦게야 깨달았다. 구류장에서 곧바로 온것은 아닌것 같다. 행색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얻어맞고 터져있던 상이 아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왔다면 그는 마땅히 상면암호부터 대야 한다.

주경남이 보낼 때에는 반드시 그가 1회용이라고 못박아두며 말해준 암호를 주어서 보낼것이다. 그것은 엄격한 규률이고 질서다.

어찌된 일이야? 앉아있는 거동도 수상하다. 원래 과묵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경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옛 상관을 만났는데 이렇게 무감각일수 있느냐.

《말해보오. 정동무, 어데서 오는 길인가?》

방억세는 침착하게 그러나 반가움은 지워버리고 물었다.

그제야 정수철도 결심이 선듯 다져눌린 소리로 가까스로 대답하였다.

《산에서 오는 길입니다.》

《그래?… 자금문제겠지.… 그건 풀어야지. 내가 <용달사>를 차려놓은게 벌써 산에 전해졌구만. 아직 자리잡고 자금을 뽑자면 멀었지만 성란희동무네 집에서 구할수 있으니 나와 함께 가기요. 성관호가 경인지역 사령관을 하는걸 산에서 아는가?》

《알지요.》

《가만, 잠간… 봉인을 해야 되겠군. 여기도 질서가 있거던.》

방억세는 그에게서 물러나서 옆벽에 붙어있는 벽장에로 다가가 자라잔등만 한 자물쇠를 떨꺽 채워놓고 거기에 봉인먹을 붙여놓았다.

그리고는 뒤주머니에서 열쇠묶음에 달려있는 도장을 꺼내 꾹꾹 찍어놓았다.

그것을 보는 정수철의 가슴에 또 폭풍이 일었다. 옛 대장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보게 되는 모습이였다. 실망을 자아내고 의혹을 짙게 하는 옛 대장의 달라진 모습이였다.

《배신…》

그는 속깊이 되뇌여보았다.

어찌되여 저 인간은 옛 부하의 앞에서 장사군의 모양을 보여주면서도 사소한 량심의 가책은 느끼지 못하고있을가? …

한정상이 렬거하여주던 그 경악할만 한 죄악과 자기가 직접 목격하였고 그로부터 생겨났던 더러운 련상들을 확인시켜주는 그 짤막한 행동에 정수철의 감정은 또 한번 비약하여 환멸과 격노의 극단으로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러고보니 고급양복에 진회색봄외투에 금줄까지 두른 회중시계가 우연하지 않다. 안팎으로 고린내가 난다. 어떻게 되여 태백산을 떨치던 대장이 이렇게 썩어문드러질수가 있느냐.

(배신자! 제 한몸의 부귀와 안락을 찾아서 우리모두에게 짧지 않은 세월 새겨주던 붉은기를 짓밟아버렸구나. 그렇게도 열을 올려 심어주던 량심을 버렸구나.… 그래 용서할수 없다. 이런자에게는 철추를 내려야 한다.)

정수철은 이렇게 모닥불처럼 타오른 울분을 금할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짤막하게 이야기하였다.

《성란희동지가 기다리고있습니다.》

《성란희참모가?!… 어디서?》

《저 동입구에 있는 버들방천에 있습니다.》

《그래?!… 가자구. 어서 가자구! 어, 함께 올노릇이지. 아직 개업초기라 여기까지는 개들의 눈이 미치지 않거던… 하긴 또 몰라.》

방억세는 가슴가득히 차드는 기쁨을 금치 못해하며 서둘러 방을 나섰다.

비록 곁을 떠나온지 여러달이 지나갔고 아무리 마음속에서 더이상은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고 강심을 먹었지만 매양 매시 때없이 비껴드는 그리운 사람이다. 그들은 인차 《용달사》를 떠났다.

어둠속에서도 우렷한 모습을 드러내는 버드나무들이 보이자 방억세는 달음박질치듯 걸음을 재우쳤다.

아름이 될듯 한 버드나무밑둥에 기대여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별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깊어가는 비감에 젖어있던 성란희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시커먼 그림자를 보자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다.

발걸음소리며 몸을 휘두르는 걸음새며 숨소리까지 다 귀에 익고 눈에 익다.

《란희! … 어데 있소?!》

방억세가 수양버들밑둥에서 솟아오르는 녀인의 모습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가 나직이 불렀다.

《여기 있어요!》

성란희의 대답을 들은 방억세가 그에게로 달려가 두손을 내밀었다.

성란희는 그 손을 마주잡으려고 손을 내밀다가 도로 내리우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 녀자는 별빛이 어린 얼굴과 숨소리에서 사나이의 격한 마음속을 들여다보자 부지불식간에 애모의 정이 치밀어올랐다. 그것을 참아내느라고 성란희는 혀몸을 어금이로 지그시 눌러 물고있다가 홱 돌아섰다.

그는 자기들을 예리하게 살피는듯 한 정수철에게 성급하게 명령하였다.

《정동무, 방억세씨에게 결정서를 넘겨주세요. 본인이 자기 눈으로 확인하게 합시다. 그리고 그쪽에서 뒤를 봐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성란희의 목소리가 떨리고있었다.

《알았습니다.》

정수철은 안주머니에서 차곡차곡 접어놓은 빨찌산지휘부의 결정서를 꺼내 방억세에게 내밀고는 권총을 꺼내들고 방축뒤에로 넘어갔다.

《이건 무슨 장난이요?!… 방억세씨?… 도대체 어디서 배워둔 말본새요?》

방억세는 자기앞에서 앙큼한 고양이처럼 잔뜩 도사리고 매운 독을 날리는 성란희와 정수철의 거동에서 그 어떤 불길한 징조를 륙감으로 넘겨짚고 성이 나서 나직하게 따지고들었다. 례의가 바르고 삽삽하고 언제나 감정보다 리지가 앞서던 성란희가 어찌 이렇게도 인사불성이고 얼어든 차돌처럼 랭정한가.

자기 손을 잡고 퐁퐁 뛰여오를 그리운 처녀의 모습을 그리며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이럴수 있는가.

그러나 성란희는 상대의 나무람과 노여움이 뒤섞인 말에는 개의치 않고 전지를 그에게 내밀며 성급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소리치지 말아요. 불을 켜고 읽어봐요.》

방억세는 성란희를 마주 노려보다가 그에게서 신경질적으로 전지를 나꿔챘다.

재빨리 지휘부의 결정서를 더듬은 방억세의 눈이 홱 돌아갔다.

이것은 사형선고다! 그는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몸을 비척거리다가 버드나무의 가지를 감아쥐고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였다.

눈앞에서 색이 바랜 별들이 바글거리는 하늘이 빙그르르 돌아갔다.

《이럴수 있는가!》

방억세는 저도 모르게 절통하게 소리질렀다.

순간 성란희가 급소를 찔리운듯 충동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방억세의 두눈에서 마치도 불화살이 처녀의 면상에 곧바로 날아드는듯싶어 성란희는 그 세찬 불꽃을 피하며 충동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성란희를 노려보며 물었다.

《란희! 동무도 여기에 손을 들었소?》

처녀는 그 소리에 명치가 찌르르 울리여 몸을 흠칫 떨었으나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는 고개를 꺾어질듯 푹 떨구고 입술만 안타깝게 감빨았다.

방억세는 사형선고장을 성란희의 눈앞에 흔들며 재차 고함을 내질렀다.

《대답해! 이 허튼수작에 박수를 쳤나 말이요?》

그러나 그것은 고함이라기보다 맹수에게 쫓기다가 천길벼랑턱에 몰려 하늘을 쳐다보며 울부짖는 사슴의 비명처럼 가련하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하였다.

성란희의 고개가 밑바닥으로 떨어져내릴듯 더 수그러들었다.

방억세는 와락 그에게 달려들어 두손으로 처녀의 연한 두볼을 움켜쥐고 건듯 쳐들었다.

그러자 고통에 일그러진 두 눈빛이 허공에서 소리라도 낼듯 세차게 부딪쳤다.

성란희는 지금까지 방억세에게서 이렇듯 무섭게 격노하는가 하면 그 어떤 간절한 희망을 걸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성란희는 방억세의 눈빛에서 자기만은 제발 믿음을 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애끓는 한가닥의 희망을 찾아보자 터져나올듯 한 통곡을 삼키느라고 입술을 자리나게 옥물었다.

성란희는 눈물어린 고뇌를 짓씹으며 큰 몸을 와들와들 떨고있는 방억세를 마주보다가 눈을 감아버렸다.

《난 믿고싶지 않아요! 이건 다 허위예요! 그렇지요?!》

성란희는 이렇게 속삭이며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그의 동가슴을 두드리고싶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말은 입속에서 맴돌뿐이다.

그러자 방억세는 그의 얼굴을 던져버리듯 뒤로 밀쳐버리고는 그자리에 무너져내렸다.

《그래?!… 동무까지?!… 에잇!!》

방억세는 갑자기 얼혼이 빠져 달아나고 맥살이 풀려 하늘을 쳐다보며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그것은 눈앞에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산이 허물어져버리는 참담한 비극이였다. 이 세상의 전부가 자기에게 등을 돌려버린 허탈과 좌절과 실망에 방억세는 그냥 몸을 떨고 턱을 떨고 주먹을 떨었다.

무서운 공포와 수치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휩쓰는 전률이 찌르르 뻗쳐내렸다.

성란희는 더는 방억세와 마주 서있을수 없어 그를 나무밑에 남겨둔채 방축을 넘어 정수철에게로 쫓겨가듯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는 마주 달려오는 정수철을 보자 잠시 실신한 사람처럼 그를 우두커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간신히 말하였다.

《방억세에게 지휘부의 결정내용을 확인하세요.… 그다음에…》

《알았습니다.》

정수철이 넘어가자 성란희는 방축의 풀숲에 몸을 던지였다.

성란희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느라고 주먹으로 입을 막고 손등을 꽉 물었다. 피같은 눈물이 그 손등에 뚝뚝 떨어졌다.

정수철이 다시 방억세와 마주섰다.

정수철은 기운을 짜내고 용기를 내여 목에 힘을 주며 거칠게 물었다.

《빨찌산지대장으로 있다가 직무기피로 검토를 받고 근거지를 탈출한것을 인정하지요?》

그것은 심문조였다.

방억세는 옛 부하의 이러한 심문투부터 화가 났다. 그리고 주경남대장이 자기가 만들어준 하나의 위장리유를 죄상에 올려놓은것도 화가 났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그걸 밝히기 싫어 울뚝거리듯 대답하였다.

《인정하오!》

《산에서 내리자 호적청원을 한것도 사실이지요?》

《사실이요!》

《검찰의 보증을 받기 위하여 빨찌산과 지하조직비밀을 적들에게 제공한것도 사실이지요?》

《뭐라구?… 내가 비밀을 넘겨주었다구?… 난 그런 일이 없어!》

방억세는 성이 독같이 올라 선언하듯 딱 잘라버렸다.

《없다구요?… 좋아요. 그럼 그에 대하여 내가 상기시키지요. <검찰청>의 <보증서>에 당신이 좌경세력척결에 공로를 세웠다고 돼있었지요.》

《공로를 세웠다구?… 음- 그렇게 됐던것 같아. 그런데 어쨌다는거야?》

방억세는 상대를 불이 활활 타번지는 눈으로 쏘아보며 거칠게 대답하였다.

《어쨌던거라니요? 당신은 내앞에서 어리숙한 흉내를 내보는건가요? 그래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당신 손에 우리 동지들의 피가 발리워있다는게 아니고 뭐입니까?

쌍매골근거지가 당신이 하산한 얼마후에 적들의 대규모<토벌>을 받았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독립지대도 절반 가까운 손실을 보고 해산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난날 지도하던 군사부문의 조직들이 수많이 파괴되였습니다. 그 역시 당신이 하산한 이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아, 그건… 그건 다 조작이요. 엉터리요. 왜냐하면…》

방억세는 혀바닥이 자꾸 탈려들었다. 목구멍에 겨불내가 일고 입안이 말라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이것은 전부가 완전한 억측이다. 아니, 모함이다. 억지다. 내가 어찌 근거지의 비밀을 적에게 넘겨줄수 있으랴.

방억세는 너무도 황당무계한 심판에 온몸으로 소름이 끼쳤다.

물러설 여력도 없고 그렇다고 빠져나갈 구멍도, 변명할 말거리도 없다. 너무도 론리적이고 틈새가 없는 분석이고 판단이고 형벌이다.

그런데 이걸 주경남이 조직했다는게 리해가 되지 않는다. 주경남대장이야 세상에 나에 대한 풍설이 백천가지로 돌아간다고 해도 혁명가 방억세의 량심을 믿어야 할게 아닌가. 도대체 주경남대장은 그만한 배짱도 없구 믿음도 없이 나를 적구에 던져버렸는가.… 조국통일성전을 책임졌다는 높은 사명감을 안고 나를 서슴없이 붉은기앞에 내세워 선서를 시킨 그가 아닌가.

그러나 방억세의 그 마음의 기둥마저 허물어버리는 또 하나의 강타가 그의 면상에 가해졌다.

《또 하나… 당신이 혹 벌써 잊어버리지 않았는지요. 당신은 한 전우를 향하여 교형리가 쥐여준 총부리를 겨누었고 서슴없이 방아쇠를 당겼지요. 당신의 안락을 담보해주게 될 <검찰청>의 <보증>을 받기 위해 <검찰청>의 형리로 되여 <검찰청>의 총살형을 집행하였지요.

이것도 빨찌산지휘부가 조작해낸 이야기라는겁니까? 어디 그것도 부인해보지요.》

《그건 말이요… 이렇게 된 일이요… 난 그 권총에…》

《닥쳐요!》

정수철은 눈앞에 서있는 배신자가 총구앞에서 피해보려고 오그랑수를 쓰고 버둥질하는것 같아 격분해서 소리쳤다.

《당신 눈앞에 서있는 놈이 정수철이라구요. 정수철의 귀신이 아니라구요! 그때 당신이 잡은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권총이였구 당신은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구요. 이걸 다름아닌 내앞에서 변명할수 있습니까?!》

《그래서?!… 어떻다는거요?!… 동문 살아나지 않았소! 방아쇠는 당겼는데 동무는 이렇게 숨이 붙어있지 않는가? 그래 그때문에 날 복수하러 왔다는거야? 이놈! 네가 감히 네 상급을!… 눈깔이 곯아도 더럽게는 곯아빠졌구나!》

방억세는 드디여 인내력을 잃고 그에게 한걸음 다가서면서 분노에 치를 떨며 울화를 터뜨렸다.

그러나 정수철은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며 맞받아 한걸음 다가섰다.

《흥!》

정수철은 격노한 방억세의 질책을 단말마적인 비명으로 들으며 코웃음을 뿌렸다.

《당신은 반역자의 말로가 어떻게 된다는데 대해서 우리에게 열번백번 이야기하여주었소.

자, 받으시오. 이 권총의 탄창에도 총탄이 만장탄되여있소. 난 당신처럼 전우였던 사람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는짓은 못하겠소. 지금은 비록 배신자이기는 하여도, 그러니 당신자신이 빨찌산의 판결을 집행하시오.》

정수철은 바지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그의 발부리에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바지괴춤에서 또 한정의 권총을 꺼내들고 자리를 떴다.

정수철이 사라지고 홀로 남게 된 방억세는 온몸의 기력이 발밑에 잦아들어 더는 서있을수 없었다. 그는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자기 발치에 던져진 권총을 더듬어잡았다.

시커먼 총구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니 으시시 오한이 났다.

그 어떤 리성도, 설복도, 사정도 이 총구앞에서는 통할수 없다. 내가 이 총구에 나서게 되다니? 기가 막혔다. 너무도 원통해서 눈굽에 피눈물이 찔끔찔끔 돋쳐올랐다.

나라와 겨레앞에 충정을 고이고저 맹세하고 살아온 생을 이렇게 더럽게 끝내야 하는가. 이제는 자기 운명을 결박해버린 포승에서 벗어날수 없게 되였다.

정말 이것으로 생을 마감짓게 되는가? 이제는 좌익도 우익도 나를 받아들일수 없게 되여있다. 가까스로 풀려나기는 했어도 우익은 여차직하면 올가미를 죄일 차비를 하고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벌감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부산《검찰청》 검사로 좌천되여갔던 서남룡이 리승만의 칙령을 받고 다시 서울《검찰청》 부장검사로 원상복귀되였다고 한다.

그놈은 문서고에 들어가버린 자기의 심문철을 다시 꺼내가지고 책상우에 펴놓고있다고 한다.

이것은 시《검찰청》 청장이 얼마전에 《용달사》를 찾아와 점심 한그릇 얻어먹다가 술에 취한김에 하던 소리다.

그놈이 그 문건철을 펴놓고 어떤 생각을 할는지는 뻔하다.

어차피 나의 삶은 우익과의 대결이니 우익의 총구앞에 서있는 표적이나 다름이 없지만 그것은 두렵지 않다. 죽음도 웃으며 받아들일수 있다. 그런데 이젠 좌익까지 사형선고를 보내왔다. 거짓말같은 사실이 이제는 더는 드틸수도 없는 엄연한 눈앞의 현실이다. 원통하지만 어찌하랴.

죽음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지금 자기에게도 산악같은 파도가 되여 달려들고있다.

무슨 힘으로, 무슨 수로 벌써 눈앞에까지 덤벼든 노도를 멈춰세우거나 거기서 솟구칠수 있는가.

이럴수 있느냐?

방억세가 배신자로 심판되다니… 방억세가 변절자라니…

하늘이 열두번 무너지고 땅이 천만번 꺼진다 해도 이 방억세의 붉은 심장이야 어이 변하랴!

주경남! 당신이 이럴수 있는가?!

작별의 그밤, 나라의 통일을 이룩한 다음 김일성장군님을 찾아 평양으로 함께 가자고 하던 당신의 약속이 지금도 나에게 인생의 표대로 되여있거늘 당신이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

당신은 도대체 나를 믿지 못할진대 왜 특별결정이요, 선서요 야단스러운 연극을 만들어냈소?

이렇게 주경남의 얼굴을 눈앞에 떠올려놓고 소리없는 항변을 마구 퍼붓고난 방억세는 불시에 심장을 찔러드는 아픔에 흠칫 몸을 떨었다.

내가 지금 누구를 타매하고있느냐. 내가 지금 죽음이라는 타격앞에서 리성을 잃은게 아닐가.

주경남을 믿지 않다니… 그가 어떤 사람이냐.

나에게 생의 참된 의미를 깨우쳐준 그 의로운 사람을 의심하다니… 그것은 내 삶의 가장 고귀한것을 스스로 포기하는짓이다. 내가 지금 흥분하고있구나. 이래서는 안된다. 주경남은 절대로 그럴수 없다. 동요는 내가 하고있구나. 내가 죽음앞에서 분별을 잃고있구나.

그럴수 없다.

절대로 그럴수 없다!

인간을 믿지 않으면 혁명은 어떻게 하느냐!

인간을 믿지 않으면 통일위업에 누가 나서겠느냐!…

아무리 울부짖고 탄식하여도 그것은 어둠속 허공에서 메아리도 없이 사라질뿐이다. 소리칠수도 없고 소리친다고 누가 들어줄이도, 받아줄이도 없다. 이 쇠붙이에서 시누런 탄알들이 면상을 향하여 당장 튀여오를듯 노리고있을뿐이다.

그럴바에는… 그럴바에는… 제손으로 명을 끝내는것도 속이 편한 일이다.

방억세는 가슴을 토막토막 저며내는 비애와 억울함에 떠밀려 총을 꺼꾸로 잡았다. 탄창을 뽑아보니 정말 시누런 권총탄이 별빛을 받아 살기를 뿜었다.

그는 탄창을 절컥 소리나게 권총에 들이밀었다.

그는 격발기를 당겨놓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총부리를 관자노리에 올려다가 붙이였다. 차고 서늘한 쇠붙이가 얼굴에 닿자 등골로 얼음꼬챙이가 꽂혀드는듯 진저리를 쳤다.

이발이 마구 덜걱덜걱거리고 두눈이 황황 타올랐다.

그러나 그 순간 방억세는 뒤통수에 가해지는 둔하고 세찬 일격을 느끼며 권총을 홱 던져버렸다.

《네가 정말 붉은기를 버렸느냐. 붉은기앞에 다진 선서는 어찌했느냐?!》

하늘땅에서 우뢰같은것이 울려왔다.

《정말 너는 선서를 버린 배신자가 될터이냐?!

방억세! 너에게는 임무가 있다. 애국의 이름으로, 겨레의 이름으로 받은 임무가 있다. 그 임무를 위해 두번째 인생을 살아가겠노라 선서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조국앞에, 민족앞에, 동지들앞에 다진 너, 방억세의 선서다. 운명이다.…》

방억세는 자기 인생의 새로운 길이 시작되던 분기점이 똑똑히 되살아졌다.

자기의 허리를 끌어안고 더운 김을 뿌려주던 정치위원이 생각났다.

담배불을 붙여주며 함께 속을 썩이다가 모포를 끌어올리며 철썩 등을 후려치던 주경남대장의 푸수한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그들을 잊을수 있는가. 그들이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겠다며 오직 그들의 붉은 심장들에만 새긴 빨찌산의 결정, 혁명의 명령을 잊을수 있는가. 죽음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수 없다.

(그래, 난 죽어서는 안된다. 죽을수 없다. 난 선서한 병사다. 선서는 목숨으로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걸 남겨놓은채 내가 죽을수 있느냐.

그것은 선서에 대한 배신이다.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다. 통일위업에 대한 배신이다. 영원한 치욕을 안게 될것이다.… 주경남을 찾아가자. 이것은 주경남대장만이 리해할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에게 적들의 첩보선이 뻗쳐있다는것도 알려야 한다.

서남룡은 《설봉》이라는 첩자에 대하여 의도적이였던지 혹은 얼결에서인지 명백히 내뱉았다. 아니, 얼결이 아니라 나를 영원히 매장해버릴수 있다는 자신감에 도취되여 극비에 해당되는 기밀을 지껄인것 같다. 지금 벌어지고있는 일들도 뒤에서 《설봉》이 조종하고있는것이 틀림없다. 그놈은 지금 제놈이 쑤셔놓은 일로부터 정체를 가리우기 위하여 나를 제껴버리는것으로써 빠져나가려 하고있다.

그놈의 정체를 주경남대장에게 알려주기 위하여서도 나는 지금은 살아나야 하며 지휘부로 가야 한다. 정수철에게 전한다면… 아니… 정수철… 그도 모른다. 정수철이 도대체 어떻게 되여 살아서 여기까지 나타났는가.

여기에는 찜찜한게 있다. 조간이 있다.…)

방억세는 이렇게 자기의 정신력을 집중하여 제기된 사태의 요인을 찾아내고 전후사연을 랭철한 리성의 자막대기로 재고 그려나갔다.

그에게는 시간도 없었다. 더 머뭇거리다가는 어둠속에서 정수철이나 성란희의 총탄이 날아들수 있었다.

방억세는 이제는 확고하게 주견을 세울수 있었다.

여기에는 반드시 원쑤의 모략이 있다.

《<설봉>?…》

그놈이 두더지처럼 빨찌산대오의 어느 구석에 들어박혀 이 엄청난 연극을 벌려놓았을것이다.

《설봉》… 이렇게 되뇌여보니 한정상의 그 뱁새눈부터 떠오른다.

가느다란 실눈에 살살 웃음이 돌고있는 인간… 남의 살갗에 에여드는듯 한 그 눈빛이 방억세에게는 언제나 보기 싫었다.

제 속은 주지 않으면서 남의 속씀에 뱁새의 눈알같은 작은 눈알을 돌돌 굴리는 약아빠진 인간.

난 살아야 한다. 살아서 흑백을 가르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며 빨찌산에 들어박힌 적의 밀정을 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장차 빨찌산의 흥망에도 치명적인것으로 될수 있다.

보이는 적 천만과도 비할수 없는 보이지 않는 원쑤를 저대로 놔둔다면 오늘은 내가 억울하게 숨질수 있지만 래일은 태룡산빨찌산이 존재를 마칠수도 있다.

이렇게 결심한 방억세가 쌍매골로 가기 위하여 던져버린 권총을 찾느라고 엉거주춤하고 풀숲을 더듬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고개를 돌리니 등뒤에 성란희가 서있었다.

《총을 찾아요? 그 총은 여기 있어요.》

그의 손에 권총이 들려있었다. 어느새에 던져버린 권총을 그가 주어들었던 모양이다.

《총을 주오.》

《자기를 끝내자고요?》

성란희의 차디찬 목소리가 귀전을 맵짜지게 때렸다.

방억세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결연하고도 억센 어조로 저력있게 대답하였다.

《아니! 난 죽지 않을테요. 난 살아야겠소. 내가 왜 죽어?!》

《이제야 대장같군요. 하지만 당신은 죽어야 해요. 여기에는 객기가 통하지 않아요.》

《아니, 이건 객기가 아니요. 다시 말하오. 나를 죽여서는 안되오. 첫째는 죽어야 할 리유가 없고 둘째로는 죽어서는 안되는 리유가 있소.》

《당신의 목숨은 백해무익한것으로 판결되였어요. 당신은 이제는 한푼의 가치도 상실한 존재가 됐어요.》

《성란희, 그따위 말장난은 걷어치워. 난 이 땅에서 미국놈을 몰아내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수 없소! 남녘땅도 북녘과 같은 인민의 세상으로 되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수 없소! 이건 누구도 막을수 없는 내 인생의 목적이요. 동무가 정말로 혁명가라면, 동무가 정말로 빨찌산전사라면 나를 죽여서는 안돼. 날 빨찌산지휘부에 안내하오. 빨찌산의 운명, 그렇소. 운명과 관련한 문제요. 난 그걸 통보해야겠소. 그리고…》

《좋아요. 당신이 정말로 배신자가 아니라면 그 통보할 문제라는걸 나에게 말하세요. 난 정동무와 함께 그걸 론의하고 결심해야겠어요.》

《아니! 난 동무들에게 밝힐수 없소. 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분석해보면서 내가 통보해야 할 문제는 태룡산빨찌산의 운명을 결정할수 있는 문제이며 따라서 동무나 정수철에게 밝혀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가지게 되였소. 지금 형편에서 난 동무들을 신뢰할수가 없소.》

방억세는 거리낌없이 자기의 립장을 선언하고 옹호하였다.

순간 성란희는 무릎을 꿇고앉으며 방억세의 목을 두팔로 와락 끌어안았다. 믿어마지 않던 귀중한 사람의 굳센 심장의 박동을 드디여 확인한 성란희는 북받치는 오열을 참으며 잠시 그의 어깨에 눈물만 쏟아놓았다.

《좋아요! 산으로 가자요! 난, 난 믿어요. 그래서 기꺼이 이길에 올랐어요.》

귀속말을 나직이 속삭이고난 성란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동무!》

어둠속에서 정수철이 뛰여왔다.

《빨찌산지휘부로 호송합시다.》

《예? … 그런데? … 명령이 있지 않았습니까. 현지에서 …》

정수철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듯 펄쩍 뛰자 방억세가 그에게 팔을 내밀었다.

《자, 묶으시오.

정수철동무에게도 말하고 넘어가기요.

당신들이 애국자라면, 당신들이 빨찌산대원들이라면, 당신들이 조국의 통일위업의 승리를 바란다면 나를 죽여서는 안되오.

그 리유에 대하여서는 동무에게도 성란희동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겠소.

나는 빨찌산지휘부에 가서 그 리유를 재확인할것이요.

그러니 나를 지휘부로 호송하시오. 팔을 든든히 묶어가지고…》

간곡하고도 확신에 넘치는 그리고 투사의 굳센 담력과 량심이 우러나오는 방억세의 호소에 정수철은 신음소리를 냈다.

정수철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성란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성란희는 정수철의 묻는듯 한 눈길에 나직이 대답하였다.

《본인의 희망대로 하는게 좋을것 같아요.》 하고는 제 먼저 걸음을 옮겼다.

성란희가 신작로를 따라 총총히 걸어가는것을 본 정수철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거저 그대로 갑시다.》

그러자 방억세는 그에게 목에 두르고있던 넥타이를 풀어 내밀었다.

《포승이 없다면 이걸루 묶소. 난 손이 묶이워도 동무들만큼은 걸을수 있소.》

《왜 이러십니까. 이대로 가자는데두요.》

《정동무, 그러지 말구… 자…》

《대장동지!》

이것은 이날 저녁 정수철이 처음으로 정을 담아 불러보는 옛 호칭이다.

《왜 자꾸 이러십니까?! 내가 어떻게 대장동지의 팔을 묶는다고 이러십니까. 그럴바에는 내 손목을 꺾어버리겠습니다.》

정수철은 방억세를 와락 끌어안으며 속에 차드는 물기를 금할수 없어 목메여 흐느꼈다.

방억세는 자기 품에 안긴 그의 어깨를 쓸어주며 침착하게 타일렀다.

《정동무, 다르게 생각하지 마오. 동무들자신에 대하여서도 생각해야 하오. 나에겐 내가 할바가 있고 동무들에겐 동무들이 해야 할바가 있거던.》

《에잇 참, 대장동지! 옛 부하를 뭘로 만들자는겁니까?!》

정수철은 얼결에 받아들었던 넥타이를 던져버리며 그만 울상이 되여 소리쳤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습니까. 배라먹을! 무슨 놈의 개판인지 알겠나!》

정수철은 그를 떠밀쳐버리고는 앞으로 휑하니 달아났다.

《원 참, 사람두… 저렇다니…》

방억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들을 따라 처량한 별빛이 내리는 밤길을 걸어갔다.

정수철이 끝내 자기 속을 헤쳐놓는것을 보자 쓰라리던 마음 한구석이 개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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