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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부장검사 서남룡
이날 방억세는 아침시간부터 저녁늦게까지 서울《검찰청》 부장검사인 서남룡과 또다시 마주앉아 아슬아슬한 심리전을 벌리고있었다. 훤칠하게 뻗어오른 키꼴에다가 이목구비가 번듯한 서남룡은 첫인상에는 호감부터 들게 하는 사나이였다. 구태여 허물을 잡는다면 이마가 밭고 눈찌가 너무 도끼날이여서 번듯한 이목구비에 끌려든 첫인상이 가뭇없이 사라지게 하는것이라 하겠다. 서남룡은 강원도 린제의 산골지주의 자식으로 태여나 강원도에서 검사노릇을 하던자였다. 검사노릇을 얼마나 악착스럽게 했던지 해방날에는 감옥에서 풀려나온 반일운동가들에게 붙잡혀 반주검이 되게 얻어맞았다. 그래 서울로 줄행랑을 놓아 처가집에 골을 틀어박고 숨어살았다. 그러다가 《미군정청》이 들어서자 법률고문에게 금품과 제 녀편네까지 들이밀어 다시 법조계에 나서게 되였다. 서남룡은 강원도 지방《검찰청》의 검사로 임명장을 받기는 했으나 고향사람들이 무서워 끝내 강원도에는 내려가지 못하고 서울의 말단검찰소의 검사보로 일을 시작하였다. 력사의 악순환을 따라 재빨리 제도권에 몸을 담은 서남룡은 해방전보다 더 악착스럽게 좌익권인물들을 잡아들여 고약하게 물어메쳤다. 해방되던 그날에 받았던 주먹과 회초리에 대한 야멸찬 분풀이였다. 그리고 좌익계와는 피를 물고 혈투를 벌려 이겨야 자기가 살아남을수 있다는 리념적인 방위전이기도 하였다. 우익과 좌익의 일대 공방전이 남조선 곳곳에서 치렬하게 벌어지고있는 최근의 정치상황을 보면서 서남룡은 자기야말로 이제 더는 좌익권에 밀려서는 이 땅 어디에도 발붙일데가 없으리라는것을 더욱 통절하게 인식하고있었다. 그래서 리승만계렬의 철저한 심복으로 《반공》의 기발을 추켜든 우익의 가장 악질적인 포졸로 둔갑하여 좌익계라면 이를 사려물고 달려들었다. 숱한 사람들이 서남룡의 손에 걸려들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무기도형수가 되여 감옥으로 끌려갔다. 설사 시위대에 한번 나섰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서남룡의 손에 넘어가면 거물급빨갱이로 둔갑이 되여 중형을 받았다. 서남룡은 수완과 실적이 인정을 받아 지난 세해 남짓한 사이에 말단검찰소의 검사보로부터 서울《검찰청》의 핵심자리라고 볼수 있는 부장검사로까지 껑충껑충 뛰여올랐다. 이즈막에 와서 서남룡의 이름은 리승만에게까지 전해져 김창룡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우익계의 포도대장으로 서울은 물론 남조선전역에서 악명을 떨치고있었다. 서남룡은 지금 방억세의 심문을 맡아가지고 또다시 리승만에게 자기의 이름을 떨칠수 있다는 야릇한 희열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는 하산리유에 대한 방억세의 진술이 허위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고있었다. 서남룡은 해방전부터 태백산항일죽창대에 대한 이야기를 커다란 공포속에 들어왔다. 항일죽창대가 장악하고있는 친일분자명단에는 자기 이름도 올라있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해방되기 전 어느 봄날에는 실제로 두명의 사나이가 태백산항일죽창대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자기를 처단하려고 야밤중에 집에까지 들이닥친 일이 있었다. 다행으로 그날 밤 눈독을 들여온 동료검사의 일본족속녀편네를 꼬여 려관방에서 오입질로 시간을 보냈기에 목숨은 건졌다. 그날의 공포는 해방이 될 때까지 늘 악몽처럼 밤마다 그의 잠자리에 기여들어 소름끼치게 하였다. 그런데 운명은 바로 자기의 명줄을 끊어놓으려고 자객을 파견하였던 그 죽창대의 대장을 죄인석에 앉혀놓게 한것이였다. 이거야말로 운명의 롱간일가? 아니, 이건 운명의 필연이다. 이 서남룡은 언제나 어느 놈에게나 먼저 넘어지지는 않을것이다. 그래서 서남룡은 성관호를 비롯하여 방억세와 친구사이인 군부의 실력자들이 겨끔내기로 자기 방문을 두드리고있으나 조금만 기다리라고 빈소리만 해가면서 시간을 끌어가고있었다. 그 리유가 있었다. 자기의 륙감으로 볼 때 방억세 같은 사람들은 절대로 좌익에서 스스로 물러나 자기 인격을 더럽히지 않는다. 그네들은 전향이나 변절이라는 언사를 면상에 찍히는 치욕의 락인으로, 자기의 량심에 들씌우는 죽음의 선고로 접수한다. 방억세는 자기의 발언에서 전향이요, 자수요 하는 자기 낯짝에 침뱉는 말을 한마디도 쓰지 않으며 눈빛이 여전히 빛나고있다. 눈빛이란 내재하고있는 정신력의 빛이며 향기이다. 인생의 지조를 바꾸는 인간이라면 그 빛이 이토록 유정할수는 없다. 그는 다만 자기는 일제시기 입은 부상으로 더는 산생활을 할수 없는데다가 좌, 우익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결투에 흥미가 없어 이제부터 일개 시민으로 조용히 살아가겠다는것이다. 그다음은 방억세가 탈출하여온 태룡산빨찌산에 잠입하여있는 미군첩보대첩자로부터 보내온 한장의 밀서였다. 이 밀서는 지금 미고문관으로 있는 하우스맨으로부터 직접 받은것이였다. 밀서에는 방억세의 하산은 철저히 타산된 위장하산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는 분명 그 어떤 임무를 받고 내려갔는데 임무의 내용에 대하여서는 누구도 모른다는것이다. 서남룡은 첩자에 대하여서는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다만 그의 대호가 《설봉》이라는것만을 하우스맨과의 대화에서 우연히 얻어들었을뿐이였다. 서남룡은 《설봉》의 밀서를 받은 때로부터 자기가 다루어온 다른 《범인》들은 다 부하들에게 넘겨주고 방억세에게서 한시도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방억세를 털어내면 숱한 잔뿌리가 달려나올것 같았다. 그 잔뿌리에 그의 매부되는 사람이나 그에게 직접 방문을 두드리거나 위압조의 전화로 방억세를 두둔해주는 군부안의 실력자들이 있을수 있다. 그걸 들춰내면 그야말로 리승만앞에서 큰 공으로 될것이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될것은 뻔하다. 서남룡은 검찰계통의 실권자리를 향하여 사닥다리를 세워놓고 한단한단 끈질기게 톺아오르고있었다. 이제는 바야흐로 마지막단이 가까와지고있다. 이제 크게 발을 구르면 두세개단을 상승하여 명예의 절정에 오를수 있다. 서남룡은 며칠동안 심문이라는것은 겉치레로 하면서 그를 정점으로 하는 거대한 정보조직체를 그려놓았다. 물론 그 끈은 이북의 특수기관과 련결시켜놓았다. 아직은 그림도해가 완성되지 않았다. 래일까지면 그림도해가 다 끝나고 그 세부를 살지우는 작업에 들어갈것 같다. 그 작업을 한주일정도 하면 각본을 다 만들어놓을수 있다. 자료의 신빙성이든지 본인의 고백에 구애될것은 없다. 오랜 나날에 사냥개와 같은 비상한 후각을 가지고 좌익권을 사냥해온 경험과 환상력이면 된다. 그다음에는 매 인물들에게 필요에 따라 만들어놓은 대사를 외우게 하면 된다. 지금 가장 굳세보이는 이 사나이도 한달후이면 열물을 토하며 불러주는대로 써내고 원하는대로 말하게 될것이다. 문제는 방억세를 리승만에게로 될수록 가까이 밀어가는것이다. 이번 도박에서 최종점수는 리승만의 안위를 지켜냈다는것으로 되여야 만점을 받을수 있다. 멀지 않아 벌어지게 될 무지막지한 란타와 그속에서 부서지고 찢겨지고 피투성이가 되여 딩굴게 될 방억세를 그려보느라니 서남룡은 피에 주린 맹수가 먹이감을 놓고 즐기는 포식에 대한 갈망과 환희가 그들먹하게 차오르는것이였다. 오늘은 방억세와 숨박곡질을 벌려볼 재미있는 놀이를 가지고왔다. 그러나 서남룡은 아직은 그 놀이는 뒤주머니에 건사해놓고 안경너머로 상대를 매섭게 쏘아보다가 이발새로 내뱉듯 물었다. 《뭘 더 생각해낸게 있습니까. 왜 이 종이장은 그대로 들고왔습니까? 이건 휴지로 쓰라고 준것이 아닙니다.》 《뭘 더 생각하고 뭘 더 쓴다는거요? 난 더 생각할것도 없고 쓰고싶지도 않소.…》 방억세는 말꼬리를 붙잡기 바쁘게 새라새로이 문제거리를 만들어 물어뜯는 상대방의 체질을 며칠내에 알아내고 자기의 말에 바늘구멍만 한 틈새라도 있을세라 신경을 도사려 한본새로 응수하였다. 대답의 내용은 물론 그 음조도 색갈도 그리고 낯빛과 호흡까지 일치시키느라고 하였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순간의 실수가 만회할수 없는 후과를 빚어낼수 있다. 《솔직히!… 여기서는 그것만이 통한다는것을 아시겠지요?》 《그건 내가 하고픈 소리요. 여기서는 진실-그것만 가지고 론의해야 하오. 덜지도, 보태지도 않은 진실말이요.》 《흥,…진실성의 여부는 당신이 아니라 내가 판단하게 됩니다.》 서남룡은 메마른 어조로 말하며 문건철을 뒤적거리더니 꼬깃꼬깃한 한장의 종이를 꺼내놓았다. 《이건 당신네쪽에서 보내온 우리측 인물의 보고입니다. 이건 내가 꾸며낸 자료가 아닙니다. 나도 이 인물을 모릅니다. 다만 <설봉>이라는 대호로 우리 일을 하며 중요기관과 련계를 가지고있다는것밖에 알지 못합니다. 내가 우리측의 비밀까지 당신에게 밝히는것은 자료의 신빙성을 확인시키기 위한데 있습니다. 내 한번 읽어드리겠는데 들어보십시오… <얼마전에 태룡산빨찌산에서 실종된 빨찌산독립지대장 방억세의 하산은 위장하산이다. 그 어떤 임무를 받고 내려간것이 틀림없다.> 몇문장은 생략하겠습니다.… <그의 직무가 독립지대장이라고 할 때 임무의 크기가 가늠이 될것이다. 그를 반드시 외계와 격페시켜놓는것이 바람직하다.> 그 내용… 당신이 받았고 당신이 수행해야 할 그 임무에 대하여 내놓으시오. 당신이 이미 제출한 자료란 한푼어치 가치도 없습니다. 이미 들장이 나서 사라져버린 조직에 대한 자료는 우리 문서고에 다 들어가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으로 <검찰청>의 검토를 통과하려고 하는데 당신은 상대를 너무 허술히 보고있습니다. 우리의 인내력에도 한계가 있다는것을 명백히 해둡시다.》 서남룡은 안경안에서 음험한 빛을 뿜고있는 까만 동자를 뱅그르 굴리며 혀바닥에 독기를 발라가지고 뇌까렸다. 방억세는 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직도 이놈의 속궁냥을 다 알아내지 못하였다. 어떻게 할려는가?… 지금 방억세는 덤덤한 표정을 짓느라고 안깐힘을 다하고있었다. 서남룡이 이날 처음으로 토설한 《설봉》의 존재와 그 미지의 첩자가 보내왔다는 밀서가 머리칼을 곤두서게 했던것이다. 어느 놈일가? 어느 정도로 나의 하산리유를 알고있을가? 이게 사실일가?… 방억세는 다시금 서남룡이 주절거린 말들을 되살려보며 사태를 분석하여보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는것은 그 《설봉》도 자기의 임무를 모르며 알수도 없다는것이였다. 《설봉》이 보내온 자료는 억측과 가설에 불과할뿐이다. 하산리유는 주경남대장과 정치위원의 마음속에 단단히 봉합되여있을것이다. 그들의 입이 열리지 않는 한 그것은 영원한 비밀로 남아있을것이다. 그들을 믿어야 한다. 절대로 이 문제에서는 동요하지 말아야 한다. 방억세는 이렇게 진정이 되자 여전한 기색으로 상대의 독이 서린 눈초리를 태연하게 받았다. 《하, 이거 정말 딱하구만. 설봉인지 매봉인지 그따위들의 문서장이라면 당신네는 손바닥뒤집기겠으니 내 개의할 여지가 없소. 나도 당신에게 명백히 말하겠소. 난 임무를 받은게 없소. 그건 허튼수작이요. 당신네의 그 <설봉>이라는 작자가 미물인지 아니면 당신이 꾸며낸 허상인지 난 알고싶지 않소. 난 지금 당신을 보면서 서울일각에서 전해지던 당신에 대한 평가가 생각나는구만.》 《나에 대한 평가?… 흥미있는데요. 들어봅시다.》 《당신더러 뭐 필요에 따라 사건을 만들어내는 사건조작의 명수라고 하더구만.》 《그래요?… 하하하…》 서남룡은 방억세의 대답에 나오지도 않은 배를 앞으로 내밀어 들먹거리며 바스라지는듯 한 소리로 웃어댔다. 방억세는 서남룡과 대상하면서 그가 웃는것을 처음 보았다. 서남룡은 그렇게 혼자서 실컷 웃고나서 다시 도끼눈을 세워가지고 방억세를 쏘아보았다. 《허… 좋은 평가해주어 고맙소. 일리가 있는 소립지요. 하지만 방억세씨, 내가 오늘 뱉아놓은 이야기에는 내가 보탠것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당신들도 집안단속을 잘하지 못합니다. 내가 오늘 당신에게 보여줄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설봉>의 밀서를 받고 체포하였습니다. 혹시 예감이라도 없습니까?》 《<설봉>이라.… 흠… 난 모르겠소. 내가 빨찌산에 들어가서 한달정도 지냈다는걸 당신도 알지 않소. 난 가자마자 신병관계로 지대장사업을 내놓으려고 제기하였고 이것때문에 검토를 받다가 나왔단 말이요. 그러니 난 그쪽사람들과 사귈 사이도 없었소.》 방억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정말 《설봉》이라는 인물은 허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설봉》에 대한 설명과 그가 보내온 밀서는 거짓이 아닌것 같다. 어느 놈일가? 어느 놈이 구렁이처럼 틀고앉아 그 못된짓을 하고있을가? 부지불식간에 그의 눈앞에 해반주그레한 얼굴이 피끗 떠올랐다. 한정상이다. 한정상의 얼굴이다. 어쩐지 벌써 해방전 그때부터 미덥지 않던 인물이다. (혹시 그가 《설봉》?) 불시에 떠오른 의문에 방억세는 진저리를 쳤다. 그는 강하게 뇌리를 후려때리는 생각을 지우려고 마음속으로 도리질을 하였으나 여전히 뱁새눈의 그 해사한 상판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서남룡의 말이 정말이라면 빨찌산지휘부에 적의 밀정이 박혀있는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휘부의 인물들은 방억세가 다 파악이 있는 전우들이다. 아무리 내리훑고 올리훑어야 걸려드는 인물이 따로 없다. 채를 쳐봐야 걸려드는것은 그냥 한정상이다. 처녀로 태여났으면 뭇남자들을 후려내기 좋을 곱살한 얼굴, 뱁새눈에 언제나 살살 그려지는 웃음발이 간지럽다. 그게 그 무슨 허물될게 있고 탓할바 되련만 마주설 때마다 간특한 여우와 마주선듯 한 느낌이 든다. 그래 해를 넘기며 지나왔지만 속을 터놓은적은 한번도 없었던것 같다. (한정상이?… 그가 정말 그럴수야 있는가?) 방억세는 그를 의심하는것이 죄스럽기도 했으나 머리에 그냥 박혀드는 해반주그레한 상판과 자기에게로 향하던 끈적지근한 눈길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는 지꿎게 달라붙는 여름철의 모기를 쫓아버리듯 고개를 저도 모르게 홱 가로저었다. 그래도 그냥 달라붙는 모기마냥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그를 괴롭혔다. 《설봉》의 존재는 태룡산빨찌산에 있어서 운명적인 중대사다. 빨찌산지휘부에 이 사실을 통보해야 되겠는데 몸이 갇혀있으니 어쩐단 말인가.
서남룡이 방억세의 복잡하게 서려드는 속내를 알아차리고 득의만면해서 턱밑에 바싹 기여들었다. 그리고 나는 좌익조직에 대하여 더 아는게 없소. 당신도 알겠는데, 반드시 조직마다 자기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밖은 모르게 돼있단 말이요. 더구나 당신도 숙군바람에 5천이나 잡혀갔다는걸 알고있겠는데 뭘 더 내놓을게 있겠소. <국방경비대> 상황실장시절의 동료들속에서 성해남은 사람을 나는 한사람도 보지 못했소. 당신은 강짜로 마른나무에서 물을 짜보려고 덤비는데 경우가 된 일이요? 개도 나갈 구멍을 열어주고 쫓으라는 말이 있소. 생억질 부려도 류만부동이지 뭘 검사라는 량반이 죄보따리 크게 만들어보겠노라 치졸스레 전전긍긍인가. 그렇게도 사람피를 보는게 재미나오?》 방억세는 고집스럽게 반박하고 엄하게 질책하였다. 서남룡은 오히려 제가 죄인취급을 당하는듯싶어 약이 올랐다. 《좋습니다. 할수 없지요. 우리는 <정권>에 충실한 한 국민의 요청을 받아주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20년은 외부세계와 단절시켜놓게 됩니다. 설사 당신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하여도 <국가보안>을 위한 예방조치로 그러한 결과가 차례질것입니다. 그때에 가서 우리를 나쁘게 생각할건 없습니다. 당신을 그 정도로 살려두는것은 당신의 동료들의 부탁을 고려한 우리의 최대한의 성의로 됩니다.》 방억세는 서남룡의 위협에 단호하게 자기의 립장을 밝혔다. 《좋소.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난 <경무대>에 무죄로 풀리는 날까지 항소청원을 할것이요. 강제구인도 아니요, 스스로 <검찰청>의 문턱을 넘어온 사람을 그렇게 처리한다면 <대통령>의 <대동단결>주장에 정면도전하는것으로밖에 되지 않을거요. 난 당신에게 경고하오.》 《경고한다구?… 하, 멋진 생각이요. 당신은 역시 거물이요. 청원도 하시오. 그거야 민주국가국민의 자유권에 속하니깐.》 서남룡은 가시박힌 조롱조로 뇌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문건철을 앞상에 대고 툭툭 털었다. 그때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상고머리를 한자가 들어와 허리를 굽석거렸다. 《부장검사님, 경인지역 사령관이 찾아왔습니다.》 《경인지역 사령관?… 무슨 일로?…》 서남룡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물었다. 《상고머리》가 가까이 다가와 귀에 바투 대고 《저… 저 사람때문이지요… 몇번 오지 않았습니까.》 하고 조심스레 말했다. 《몇번 왔다고?… 사령관이?… 난 금시초문이요.》 서남룡은 귀가 간지러워난듯 새끼손가락으로 귀구멍을 우벼내며 의아쩍어하였다. 아직까지는 경인지역 사령관이라는 인물이 방억세건으로 찾아왔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였던것이다. 《저… 성관호라고…》 《뭣이! 성관호가?… 그자가 사령관이 되였대?…》 그제야 서남룡은 와뜰 놀라며 눈이 휑해졌다. 그는 방억세쪽을 흘끔 돌아보고는 꽥 소리쳤다. 《없다고 그래!》 그러자 《상고머리》는 제사 송구스러운 시늉을 하면서 다시금 귀에 닿일듯 입을 대고 귀속말로 설명하였다. 《제가 계신다고 했는뎁쇼. 그 어른이 <대통령>의 령까지 가지고오셨다기에 귀빈방에 모시기까지 했는뎁쇼.》 《<대통령>령?…》 서남룡은 안경을 벗어들고 겁질린 어조로 비명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매운 기운을 뿜고있던 도끼눈이 금시 거적눈처럼 멍청해지고 팽팽하던 좁은 이마가 막 꾸겨놓은 종이장처럼 주름이 얼기설기 지나가 답답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내 서남룡은 안경을 다시 눈에 걸고 랭담하게 뒤말을 이었다. 《흥… 그 말버릇 고쳐. 임자도 법관이지? 어른은 무슨 어른! <검찰청>문턱을 넘어서는자들은 죄인이거나 죄인사촌들이야.》 《예, 말버릇 고치겠습니다.》 《상고머리》는 공손하게 대답하며 허리를 또 굽석거렸다. 서남룡은 방억세를 넘겨보며 눈치부터 살피였다. 그러나 방억세는 그들의 대화에 무관한듯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서남룡은 일이 맹랑해진다고 속으로는 두덜거리면서 《방에 가서 기다리시오.》 하고 앞장에 서서 나갔다. 방억세는 그들이 나누는 짤막짤막한 대화를 통해 매부가 드디여 경인지역 사령관직에 나섰으며 무엇인가 《대통령》의 명령서를 가지고 나타났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사태가 바뀌여지고있다는것을 예측하였다. 자기 방에 들려 두툼하게 늘어난 문건철을 쇠로 만든 서류함에 넣고 자물쇠를 채운 서남룡은 면담실을 향하여 스적스적 걸어가면서 머리를 굴리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성관호가 경인지역 사령관이라니?… 《국방부》 총무국장으로 발탁되였는데도 집안에 들어박혀 얼씬거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군의 노란자위를 꿀꺽 했군그래… 일이 더럽게 되여가는것 같았다. 그까짓 《국방부》의 총무국장쯤이면 눈섭 한오리도 흔들리지 않을 자리지만 서울지역의 무력집단을 한손아귀에 거머쥔 경인지역 사령관자리는 세도자리이다. 《대통령》령까지 받아왔다니 은근히 뒤가 켕기여왔다. 어떤 령일가? 숱한 사람들이 금품을 들고 메고 찾아들지만 《대통령》령까지 앞세우고 찾아온 손님은 처음이다. 경인지역 사령관의 위세가 벌써 눈앞에 산처럼 다가들어 자기따위를 굽어보는듯싶어 저도 모르게 걸음이 허둥거려졌다. 면담실앞에 이른 서남룡은 잠시 속을 진정하느라고 머리빗을 꺼내 동백기름까지 발라 윤기가 반질거리는 머리를 빗었다. 면담실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나오는것을 보니 여러 사람이 있는듯싶었다. 면담실나들문의 손잡이를 쥔 서남룡은 당장 방안에서 총탄이 날아올듯싶어 흠칫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가만, 내가 와 이래?… 적어도 <검찰청> 부장검사가 그까짓 똥별에 기가 눌리다니. <검찰청>문턱을 넘어서는자들은 죄인이거나 죄인사촌이야… 방억세가 어떤자야?) 속으로 이렇게 뇌까리니 다소 기운이 뻗쳤다. 법관의 피가 설설 끓어올랐다. 그는 면담실문을 자신만만하게 열고 발끝에 힘을 주어 성큼 들어섰다. 그는 맞은편 쏘파에 곰처럼 웅크리고앉아 담배연기를 실실 올리고있는 낯설은 장성을 보자 그자리에 우뚝 굳어졌다. 수실이 드리운 금빛견장부터 그의 눈을 휘딱하게 하였다. 거기에 《대통령》이 친히 하사한것이 틀림없는 역시 시누런 금빛지휘봉을 들고 앉아있다가 자기에게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있는 상대의 위엄이 크지 않은 방안을 무겁게 짓누르고있는것 같았다. 먹물을 찍어낸 왕붓같은 시커먼 눈섭이 날아오를듯 쭈빗이 머리를 쳐드는데 그밑에서는 불덩이같이 이글거리는 눈에서 금시 나무판대기도 맞구멍을 낼듯 한 시퍼런 불줄기가 쭉 뻗쳐왔다. 그 불줄기를 피하여 눈길을 드니 그 사람의 뒤에는 부관인듯 젊은 장교가 부동자세를 한채 너는 웬 놈이냐는듯 쏘아보고있다. 옆자리에는 칼치라는 별명을 듣고있는 《검찰청》 청장이 자못 경건한 자세로 앉아있는데 벌써 무슨 말이 오갔는지 바짝 여윈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담고 어깨를 실그러뜨리고있는걸 보니 초절임을 당한 꼴이다. 《이 사람이 담당입니다. 부장검사 서남룡이라고 합니다. 이사람 인사하게. 경인지역 사령관 성관호장군이시네. <대통령>의 령을 전달하려고 오셨네.》 청장이 개올리는 말투로 소개를 하자 서남룡은 자기 상관의 아첨기어린 거동에 울화가 버쩍 치밀어올랐다. (젠장, 저렇게도 간덩이가 가벼워서야 청장노릇을 어떻게 하나.) 그러나 서남룡의 첫 인사말도 저으기 상대의 반석같은 위엄앞에 위압되여있었다. 《장군각하, 이렇게 만나뵈여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앉으시오.》 성관호는 이 한마디로 주객을 뒤바꾸어놓고 잠시 불빛같은 눈초리로 상대의 이마빼기에 구멍이라도 낼듯 노려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관호는 서두르지 않고 뒤에 서있는 부관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부관과는 방금전에 《경무대》에서 처음으로 통성을 하였다. 리승만은 《경무대》마당에 나와서 그를 바래워주었는데 거기에는 비서가 불러들인 경인지역 사령관의 부관과 운전사가 자동차를 몰고와서 대기하고있었던것이다. 부관으로부터 가방을 받아든 성관호는 그안에서 리승만이 써준 종이를 정중히 꺼내들었다. 《<대통령>각하의 령을 전달하겠소.》 그러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관호는 그들을 휘둘러보고는 큰소리로 명령서를 랑독하기 시작하였다. 《서울<검찰청>, 서울<검찰청>은 하산한 방억세를 사회적여건과 국가의 대의를 도모하여 특별사면시켜 금일로 석방시킬것이다.…》 한자한자에 천근무게를 실어 장중하게 《대통령》의 령을 전한 성관호는 청장에게 문건을 넘겨주었다. 문건을 눈으로 훑은 청장은 자못 경건한 자세로 그것을 서남룡에게 넘겨주었다. 문건을 받아든 서남룡은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여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아래입술을 사려물고 리승만의 필적을 두번세번 훑어보다가 앞상우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다시 좁은 이마에 막 꾸겨놓은듯 주름살이 일어서고 도끼눈이 거칠게 번뜩거렸다. 서남룡은 로골적으로 리승만의 령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놓으며 단호하게 자기 립장을 밝혔다. 《난 방억세를 석방시킬수 없습니다.》 《무엇이?! 방자하기 그지없다-》 성관호의 호령이 방안을 쩌렁 흔들었다. 《<국가안보>상 문제가 달려있는 범인입니다.》 《<대통령>의 령이 내렸는데도?…》 《난 <대통령>께 따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팔삭둥이야. 당신은 상명하복도 몰라?》 《난 그런건 모르오! 여긴 <검찰청>이요!》 《이건 공공연한 항명이다! 누구의 령이라구 감히 고을아전 나부랭이가 까불어. 어이 부관, 이놈을 잡아서 자동차에 실엇!》 성관호의 노기등등한 고함이 벽력같이 면담실을 흔들었다. 그는 항간에 악평이 파다한 서남룡이 이렇게 나오리라는것을 예측하고왔던지라 대바람에 그놈의 어기를 꾹 눌러버렸다. 성관호의 뒤에 서있던 부관이 처음으로 맞다든 자기 상관이 서울장안에서 악명을 떨치고있는 승냥이의 얼을 혀바닥위엄으로 순간에 쭉 뽑아내고있는것을 사뭇 경탄에 찬 눈으로 지켜보다가 그놈을 아예 요정내라는 명령에 접하자 성수가 나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서남룡이 부관을 밀쳐버리며 악을 쓰듯 대들었다. 《비켜라! …나는 법관이다. 사령관님, 난 법관으로서의 의무를 리행하고있을뿐입니다. 법의 수호자인 <대통령>께서는 마땅히 법집행에서 귀감으로 되여야 할줄로 압니다. 법에서는 성역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네놈이 도대체 어데를 견주어 함부로 혀바닥질이야?!》 그때 청장이 서남룡이의 잔등을 움켜잡고 버럭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백치같은 서씨! 입다물지 못해! 세치 혀가 사람잡는줄 몰라? 교만도 분수가 넘으면 반역으로 되는거야.》 그리고는 성관호앞에 나서며 그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령관님, 한번만 저희들을 용서하여주십시오. 이 사람이 젊은 혈기 하나 믿고 술덤벙물덤벙하고있는데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그리고 <대통령>과 나라를 지켜 주야분투하느라고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서 지내는 저희들을 곱게 봐주십시오.》 《서남룡, 네놈에게는 법관의 의무만 있구 <대통령>을 받드는 의무는 없다는거야? 네놈의 혀뿌리가 어떤 재주를 부렸는가를 이제 우리 헌병대에 가서 알아봐라. <대통령>의 령을 지키라구 <검찰청>도 있구 경찰이 있구 군부도 있는거야! 왜놈사타구니에 붙어다니던 송사리부터 쳐갈겨야 이 나라의 독립이 끝난다는 소리 무슨 소린가 했더니… 너따위가 감히… 부관, 명령대로 해.》 성관호는 당장에 군대를 풀어 사람잡이에 이골난 이 죄악의 복마전을 짓뭉개버릴 기세로 눈을 부라리며 발을 옮겼다. 그제야 서남룡은 혼비백산해서 턱을 우들거리며 성관호를 막아나섰다. 지모가 출중한 군부의 실세인물이라고 서울장안에 명성이 높은 인물앞에서 괜히 객기를 부린 때늦은 후회가 그의 자존심을 후려치며 얼을 뽑아놓고야말았던것이다. 《아, 사령관님!… 용서하여주십시오. 지금까지 없던 일이여서 제가 그만 실성했나 봅니다. 명령을 거두어주십시오. 사령관님의 령을 따르겠습니다.》 《사령관의 령이 아니라 <대통령>의 령이야. 팔삭둥이같은 자식, 아직도 대갈꽁지 가려보지 못하는군. 골통이 그렇게 아둔해가지고 검사노릇을 어떻게 해? 그러니 네놈들 보고 백성들이 삽살개요, 악귀요, 여우요, 망종이요 세상 못된 소리를 다 붙여놓지.》 《사령관님, 제 사령관님의 욕질을 아니, 죄송합니다. 그 고견을 평생지론으로 세워놓을랍니다.》 서남룡이 금방 눈물 한동이라도 쏟아놓을듯 숨이 꺼지는 소리를 지르자 성관호는 다우쳐 따지고들었다.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내 차에 이제 네놈이 오르겠느냐 아니면 방억세를 태우겠느냐?…》 《인차 석방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인차… 언제?》 《한주일안으로 내보내겠습니다.》 《뭘? 한주일?… 네놈이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구나. <대통령>의 명령서를 다시 읽어봐…》 《예, 예… 그런데… 저, 아시겠지만 범인, 아니 처남되는분의 석방에는 필요한 실무적절차가 있습니다.》 《실무적절차?》 《예예, 서로 맞도장을 찍어야 할 일도 있고 그리구… 구청에 보내야 할 문건도 만들어야 되고… 거기에 아, 그분도 참석해야 문서를 만들수 있습니다. 래일 점심전으로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래일 점심전으로?… 좋다. 오늘 밤중으로 만들어내라. 래일 아침 일곱시에 여기에 차를 보내겠다. 그때 가서도 요술을 부리면 고의적인 항명으로 인정하고 해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법도 무섭지만 총알도 무섭다는걸 명심해!》 성관호는 금시 요절해버릴것처럼 사지를 떨고있는 서남룡을 그냥 숨이 차게 죄여놓고는 길을 비키라고 턱짓을 하였다. 서남룡은 허리를 연신 조아리며 그에게서 황황히 물러나서 꺼꺼부정해서 서있는 청장의 뒤에 가서 쏘파를 짚고 무너져내리는 허리를 간신히 지탱하였다. 대문밖에 따라나가 허리아프게 여러번 절을 하고 다시 면담실에 엉금엉금 들어선 서남룡과 청장은 쏘파에 몸을 맡기자 어지러운 꿈자리에서 깨여난듯 진저리를 쳤다. 《서남룡! 이 무슨 개코망신이야. 내 뭐라던가. 주변을 둘러보며 살라고 했지. 그렇게 혼구멍이 나서 설설 길걸 뭣때문에 애당초 목대가 뻣뻣해가지고 삿대질이야. 그 꼴 보기가 역스럽다. 일을 끝내고 벌감에 한달 처박혀있어!》 청장이 얼이 빠져있는 부하를 당장 씹어삼킬듯 험상궂게 노려보며 징계처분을 내렸다. 벌감이란 《검찰청》에서 죄지은 검사들을 몰아넣어 혼을 뽑는 구류장이다. 《사회적물의》를 크게 빚어 《검찰청》의 위신을 떨구거나 그 무슨 《검찰청》의 질서를 심히 문란시켰을 때 벌감에 들어가는 내부징계가 떨어진다. 저들끼리 벌주고 잡아넣는짓거리기는 해도 한달동안 벌감을 지고 나오면 볼이 푹 꺼지고 기가 한절반은 죽어버리고 만다. 때에 따라서 직위도 한자리 떨어지고 한해동안은 승진도 못하고 사건도 맡겨주지 않는다. 천하 무서울게 없이 세상 못된 지랄을 다 부려온 서남룡은 청장의 징계소리에 또 한번 후닥닥 몸을 뒤채기며 식혜먹고 체한 도적고양이상이 되였다. 《아아… 청장님, 전 자기 의무를 다했을뿐입니다. 난 항의합니다!》 《뭐야, 서남룡! 너야말로 백치로구나. 아직도 밸통은 살아있다는거야. 상명하복 몰라. 통 아래웃마디 가려볼줄 모르는 밥통이군!》 청장은 자기마저 고양이앞에 쥐꼴로 만들어버린 서남룡의 푼수없는 골받이질에 화가 천둥같이 나있던차라 이렇게 다시한번 성관호의 말을 빌어 욕설을 퍼붓고는 면담실의 문을 발길로 걷어차며 나가버렸다. 청장에게서 서남룡은 벌써 오래전부터 주는게 없이 미워지는 밉상이고 어느때든지 구실을 만들어 수하에서 쳐내고싶은 우환거리다. 지금 서울《검찰청》이 숱한 적수를 가지고 사면팔방으로 지탄과 압을 받고있는데 태반이 이 서남룡이 만들어놓은 적수들이다. 그런데 몰아내자니 언제부터인지 《경무대》의 후광이 서남룡을 감싸고있어 괜히 건드려놓아야 호랑이수염이다. 잘한다고 리승만이 전화까지 드문히 걸어오니 이제는 쑥대우에 오른 민충이처럼 우쭐해서 안하무인이 되여가고있다. 점점 서남룡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지어는 《대검찰청》것들까지 서남룡의 면전에서 앞날의 법조계는 서남룡의 산하라고 추파를 던져온다. 그러니 청장자리는 명색이고 서울《검찰청》의 실세는 서남룡이노라고 세간여론이 눈을 빨고있다. 하기는 권세라는게 생기고 인물이 솟아오르는데 복잡한 리치가 없다. 권력자란 제등가려운데를 긁어주는 부하를 어여쁘게 생각하기마련이다. 그래서 눈에 드는 부하의 이마를 몇번 쓰다듬어주면 그의 주위엔 엿종이에 개미새끼 모여들듯 인총이 바글거리기 시작한다.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을 들어오는 청장은 벌써부터 권력의 끈을 붙잡으려고 줄타기놀음을 시작한 서남룡을 아니꼽게 보아왔었는데 이날은 마음껏 휘둘러댈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 여러해 묵어온 체증을 다 가셔낸것이다. 서남룡은 청장이 사라지자 골통을 싸쥐고 끙끙 신음소리를 지르다가 밤시간이 이슥해서야 3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엉기적엉기적 큰 궁둥이를 조심스럽게 흔들며 들어섰다. 그는 문을 안으로 걷어매고 술병부터 꺼내들었다. 그는 병나발을 불어 밸부터 얼근하게 달구어놓은 다음 철서류함에서 방억세의 심문자료철을 찾아냈다. 책상우에 펴놓고 생각없이 뒤적거리던 서남룡은 한동안 방억세의 반신사진을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운두가 높고 큼직한 코중방부터 유표나게 눈에 걸려들었다. 사나이의 멋은 코라고 한다는데 드세보이면서도 여유작작해보이고 좀체로 휘여들지 않을것 같은 코중방이 다시 들여다보니 인상적이다. 그우로는 포도알같은 눈망울이 번쩍거리며 자기를 향해 비웃음을 머금고 쳐다본다. 마치도 (내가 누군지 아느냐. 네가 나하고 어깨를 겨루자고 주제넘게 헛기운을 뽑지 마.) 하고 조롱하는것만 같다. 서남룡은 일순간 오장륙부가 뒤집어지는듯싶은 아픔을 느끼며 충동적으로 얼른 문건철을 덮어버렸다. 자신에 대한 쓰디쓴 환멸이 수치에 겨운 장면들과 함께 가슴을 갈기갈기 찢고있었다. (패하였구나!) 뇌리에 감겨드는 탄식을 되씹고있던 서남룡은 책상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머리를 그냥 압박하는 패배의식을 털어내고싶은듯 자그마한 방을 급하게 오가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패배하였다! 그러나!… 다시 패배할수는 없다!) 마침내 서남룡은 이렇게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당장은 방억세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것이다. 석방하여 버리자니 애써 그물속에 몰아넣은 금잉어를 놓아주는것만 같아 여간 아깝지 않다. 너무도 큰 희망의 꿈을 방억세의 목에 걸어놓지 않았던가. 헌데 스스로의 결심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놓아주게 된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굴욕과 패배감에 미칠것만 같았다. 그럴수록 기어이 이놈의 등뼈를 분질러 자기에게 함부로 삿대질을 하고 미구에 벌감에로 몰아넣게 한 성관호에게 복수하고싶은 얄궂은 심술이 속깊이에서 꿈틀거렸다. 《좋다. 우리가 오라를 풀어놓으면 너의 동지들이 교수대에 매달게 할테다.》 서남룡은 이런 생각을 하자 환성을 지르듯 소리쳤다. 미친개는 죽어가면서도 물어메칠 궁리만 한다. 원체 서남룡은 만약의 경우를 타산하여 방억세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한 도박을 벌려왔다. 이것은 하우스맨의 첩자인 그 《설봉》이라는 작자의 밀서에서 환기된 모략이였다.방억세를 인간세계에서 격페시키라… 두가지로 그 대책이 나온다. 한가지는 아예 철창에 처넣어 평생을 세상을 등지고 살다가 죽게 하는것이다. 가장 단순하고 합리적인 방안이지만 여기에는 사회적여론과 주변의 압력이 변수로 작용할수 있으므로 철저한 담보는 없다. 실제로 일도 꾸미기 전에 최고권력자의 령까지 내렸으니 이제는 첫째 안은 시작도 못하고 무산되고말았다. 둘째 방안으로 선택된것은 다시는 방억세가 좌익의 운동에 발을 붙일수 없도록 그의 인격과 사회적존재를 아예 원천적으로 시궁창에 처박아 말살하는것이다. 이를 위하여 몇가지로 일을 벌려왔는데 거기서 기본은 방억세가 좌익권에 죄를 짓도록 하는것이다. 서남룡의 시야에는 하산한 방억세가 자택연금상태에 있던 박정희와 만났다는 자료가 걸려들었다. 그래 방억세의 좌익활동자료를 뒤져보니 박정희와도 련결되여있었다. 그래서 사람물어먹는 일에서 동업자로 어깨다툼을 하고있는 《륙군정보국》 특무대장 김창룡을 부추겨 다시 감옥에 들어가있는 박정희를 한주일 넘겨받아가지고 자료를 장악하였다. 박정희는 방억세와 만난 후 좌익권의 있을수 있는 징벌이 두려워 김창룡에게 자기를 다시 감옥에 밀어넣어줄것을 요청하였던것이다. 박정희는 이미 수백명이나 되는 좌익성향을 가진 군부안의 인물자료를 내놓았다. 물론 이것은 철저한 비밀봉쇄를 담보로 김창룡에게 넘겨주었고 바로 그로 하여 군부안의 좌익은 커다란 피해를 보게 되였다. 박정희가 실토한데 의하면 그 인물들은 대체로 방억세와도 이렇게저렇게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였다. 바로 박정희의 밀고자료를 방억세가 제출한것으로 하면 방억세가 아무리 수를 써도 혐의를 벗을수 없으며 빨찌산의 표적으로 될것이다. 그와 함께 그의 배신을 확인해줄수 있는 모종의 연극을 꾸며내는것이였다. 이 연극까지 그럴듯하게 연출되면 틀림없이 방억세는 빨찌산의 징벌을 받게 될것이다. 이것은 《설봉》이 요구하여온것인데 서남룡은 애초에 방억세를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만들어볼 생각에 처음에는 코방귀를 뀌면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예비안으로 설정하고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아왔다. 그런데 성관호에게서 죽탕이 되고보니 그리고 이제 곧 벌감으로 들어가게 되니 분풀이나 실컷 해보는수밖에 없고 그러자니 어차피 예비안이 신통한 묘책이여서 서남룡은 온밤을 자기 방에서 제 홀로 앙앙불락하다가 새벽무렵에 《놀음》을 벌려놓았다. 서남룡은 구류장에 가서 방억세를 끌어내가지고 심문장으로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서남룡은 《방억세씨, 당신은 석방되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석방이요?… 그러면 내가 청구했던 <검찰청보증서>는 해결되였습니까? 난 그게 있어야 정상적으로 시민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걸 받은 다음에 나가겠습니다.》 방억세는 어제 저녁에 매부가 드디여 경인지역 사령관으로 발탁되여가지고 《검찰청》에 나타난것을 알아채고 이런 일이 있을줄을 예상하였다. 시달린 이상 그저 물러날수는 없다고 단단히 마음을 굳히고있었다. 방억세의 말에 서남룡은 쓰거운 랭소를 지었다. 이제는 방억세앞에서도 말투를 바꾸어야 하고 표정관리까지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이없었고 분통이 터지는 억한 심정을 누를길 없었다. 《물론이지요. 문건이 다 만들어지고 청장의 결재도 받았습니다. 이걸 가지고 구청으로 가시오. 그러면 주민호적계에 등록해줄겁니다.》 서남룡은 책상우에 놓여있는 시뻘건 공인이 여러곳에 꾹꾹 찍혀져있는 종이장을 내보였다. 방억세가 받으려고 손을 내밀자 서남룡은 도끼눈에 야즐야즐한 미소를 담고 문건을 도로 자기앞으로 가져다놓았다. 《당신의 보증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게 될 일거리가 하나 남아있습니다. 자, 갑시다.》 서남룡이 앞서고 방억세가 따라섰다. 서남룡은 계단을 내려 지하층으로 그를 데리고갔다. 문을 여니 촉수낮은 전등이 켜져있는 썰렁하고 널직한 방이였다. 여기저기에 쥐새끼들이 뛰여다니며 찍찍거리고있었다. 두명의 형리들이 웃동을 벗은채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다. 《나가시오.》 형리들은 서남룡의 명령에 웃옷을 걷어안고 바삐 방에서 나가버렸다. 서남룡은 돌아서며 한쪽벽을 향하여 손을 쳐들며 소리쳤다. 《조명!》 방안을 희미하게 비치던 전등불이 꺼지고 그쪽 벽에서 눈부신 조명불빛이 새까만 어둠속에 쭉 뻗어나와 맞은편 벽을 비치였다. 그러자 맞은편 벽쪽에 두팔을 걸상에 묶이워 앉아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불빛에 자기 모습을 드러내놓고있는 그 사나이를 지켜보던 방억세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앗-》 하는 비명소리가 튀여나왔다. 그 사나이는 태룡산독립지대 소대장인 정수철이였다. 하산하여 성관호의 집에 들어선 첫날에 모금공작을 나온 정수철이가 체포되고 그 돈이 《경무대》까지 돌아서 도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컸다. 그런데 여기서 만나다니… 방억세는 서남룡이 곁에 붙어있었으나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듯 그에게로 다가갔다. 자기를 형처럼 따르고 자기 또한 아우처럼 아껴온 전우였다. 《정동무, 이게 어찌된 일이요?!》 방억세는 무릎을 꿇고앉아 온통 매를 맞고 별의별 고문에 험하게 상한 정수철을 끌어안으며 격한 어조로 물었다. 그를 알아본 정수철이 자기 지대장을 이런 곳에서 만난것이 기가 막힌듯 그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나직이 반문하였다.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대장동지는 언제 잡혀왔습니까?》 《나말이요?…》 방억세는 어쩐지 매 한대 맞지 않고 석방까지 된 몸으로 그와 마주선것이 죄스러워서 대답이 얼른 나가지 않았다. 이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서로 마음이 편할수가 있을가. 그런데 정수철이 그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부어오른 낯에 쓰디쓴 비웃음을 담으며 쓸쓸한 어조로 말하였다. 《왜 대답을 못합니까? 소문이 헛소리가 아니였군요. 감방에서 여러 사람이 쉬쉬합디다. 내가 지대장동지를… 아니… 아니지요. 당신이 원하고 저것들이 부르는대로 불러야 되겠지요? 정말 옛 련락병 정수철이 자기가 목숨처럼 여겨온 옛 상관을 어떻게 불러야 할가요?!》 정수철의 말은 처량하게 시작되였다가 나중에는 경멸과 분노로 처절하게 방안을 울리며 방억세의 심장을 세차게 때렸다. 방억세는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고 그를 끌어안은 두팔에 힘을 주었다. 그때 서남룡이 그들에게로 바삐 걸어오며 멱따는듯 한 악청으로 꽥 고함쳤다. 《됐시다. 비켜서라구요. 개자식 무슨 타령이야. 너도 살고싶으면 옛 상관을 따라 <보증>을 받으란 말이야. 이게 바로 이 사람이 영광스럽게 오늘 받게 된 <보증서>야. 너도 한번 들여다봐. 마음에 들면 이자리에서 제꺽 신청해. <보증서 성명:방억세(태룡산빨찌산 독립지대장) 방억세는 좌경세력척결에 공로를 세웠으므로 서울주민호적에 입적할수 있다는것을 보증한다. 서울검찰청> 방억세씨, 다른 의견이 없습니까?…》 《내가 좌경세력척결에 공로를 세웠다는거요?》 《그러면 거기다가 어떤 내용을 써야 되겠습니까. 다시 원점에서 시작할가요?》 《아니, 아니, 됐습니다.》 방억세는 석방된 지금에 와서 서남룡과 다시 말씨름을 벌려놓는게 지겨워서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홱 내저었다. 《좋습니다. 자 받으시오. 아까도 말했는데 이걸 구청에 제출하면 호적등본을 인차 해줄겁니다.》 서남룡은 방억세에게 깍듯이 례의를 표시하며 《보증서》를 내밀었다. 그때였다. 윽- 하고 정수철이 온몸에 기운을 주어 걸상을 등에 진채로 일어나며 울분에 넘쳐 부르짖었다. 《개자식! 배신자가 되였군. 빨찌산에서 도주했다고 해도 난 믿지 않았는데 뭐 좌경세력척결에 도움을 주었다구?! 네놈이 애국에 대하여 말한건 다 잠꼬대였느냐?! 더러운 놈! 내가 네놈의 매부놈집에 갔다가 잡힌것도 네놈의 작간이였구나!》 정수철이 목갈린 소리로 옛 상관에게 저주를 퍼붓자 서남룡이 씽하니 달려가서 그의 정갱이를 걷어차서 쓰러뜨렸다. 《일어섯!》 서남룡이 걸상과 함께 옆으로 쓰러진 정수철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버둥거리며 제힘으로 일어나지 못했다. 방억세가 그에게로 달려가 부축하여주었다. 《정동무, 진정해!》 《비켜라!》 정수철은 방억세의 손을 발길로 차던지고 넘어진 자리에서 버둥거리다가 자기 힘으로 끝내 도로 일어나 걸상을 지고 앉았다. 서남룡이 심한 굴욕감에 입술을 푸들푸들 떨고있는 방억세에게로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자식, 어찌할수 없는 놈이군. 살겠으면 옛 상관을 따라서는게 좋을걸.》 서남룡은 야료를 부리듯 뇌까리며 방억세에게 권총을 내밀었다. 방억세는 자기에게 넘겨주려고 쳐든 권총을 보자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건 뭐요?!》 《사실 당신을 무죄로 풀어주는 일이 쉽지 않지요. 당신은 응당히 우리의 보증에 대한 약간의 대가는 지불해야 합니다. 자, 이 총을 받으시오. 이 권총의 탄창에는 총탄이 만장탄되여있습니다. <검찰청>은 빨찌산소대장인 정수철이 임무수행현장에서 체포된 현행범임을 고려하여 재판없이 총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검찰청>은 당신에게 처형집행을 위임하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검찰청>의 보증에 대한 당신의 응분의 대가지불로 될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검찰청>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이 <보증서>는 효력을 잃을것이며 <검찰청>의 철문도 열리지 않게 됩니다. 자, 받으시오. 쏘시오. 당신의 명예를 위하여 옛 부하에 대한 처형은 극비에 붙여진다는것을 담보합니다. 그래서 나는 아까 이 방의 형리들마저 내쫓은겁니다. 저놈은 어쨌든 죽게 될 놈이니 당신이 손을 떨 리유는 없습니다.》 방억세는 눈앞이 아뜩해왔다. 서남룡의 골통에서 고안되였을 악착스럽고 잔인무도한짓에 온몸에 식은땀이 쫙- 돋았다. 눈으로 매운 바람이 일고 심장이 찌릇찌릇해왔다. 심장에서 시작된 전률이 머리끝으로, 발끝으로 쭈욱 뻗치였다. 이거야말로 간악무쌍한 패륜이다. 그리고 더는 헤여날수 없는 함정이다. 차라리 이 총으로 이놈을 제껴버리고 정수철을 풀어가지고 도망을 쳐볼가, 순간에 그의 뇌리에 떠오른 생각이였다. 서남룡의 뾰족한 입부리와 도끼눈에 잔인하고도 조롱기어린 실웃음이 살살 발리워 꺼질듯말듯 깜빡깜빡거린다. 총부리가 눈앞에서 흔들렸다. 방억세는 하는수없이 총을 받아들었다. 더는 헤여날수 없는 함정에 빠졌구나. 여기서 도망칠수는 없다. 도망쳐서는 안된다. 임무가 있다. 내 하나의 체면이나 량심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애국의 이름으로 걸머진 임무는 절대로 포기할수 없다. 그렇다고 동지의 가슴에 총탄을 박을수도 없다. 어쩌면 좋담… 이마전으로 비지땀이 뿌질뿌질 내돋았다. 피가 얼어붙고 이발이 덜덜 맞쫏고있었다. 그런데 지금 서남룡은 인간이라는 의미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패륜패덕의 극치를 연출하고 그것이 풍기는 피비린 악취와 야생적인 쾌락을 달콤하게 즐기며 그 도끼눈이 야지럽게 웃고있다. 한방이면 저 흉물을 끝장낼수 있으련만!… 량심을 지켜 임무를 버리느냐! 임무를 지켜 인간말세를 접수하느냐! 그 어느 하나도 선뜻 선택할수 없다. 타협이 되지 않는 극에서 극으로 방억세의 심장은 미칠듯이 뛰고있었으나 생각은 그냥 미궁에 빠져 허우적거릴뿐이였다. 《결심하시오. 뭘 주저하오.》 인간의 리성을 짓이기는 악행에로 부추기는 서남룡의 비웃는듯 한 소리가 피를 즐기는 야수의 울부짖음처럼 다시금 그의 가슴을 마구 짓이겨놓았다. 그는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권총을 쳐들고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콜트권총이다. 명중률이 높다. 서남룡이 알고 일부러 준것일가? 방억세는 해방전에도 해방후에도 늘 콜트권총을 차고다녔다. 매일 저녁 닦고 기름칠을 하고 총탄을 날리기도 하면서 콜트권총과 함께 세월을 넘어왔다. 손에 묵직이 잡히는 차거운 쇠붙이, 쇠붙이의 무게가 얼마더라?… 1 103g, 총탄 한발은 21. 2g… 그래, 그렇지. 만탄이라면 148g일테지. 그렇지… 네놈이 수를 쓰는구나. 내가 당황하였구나. 이것부터 진작 알아차려야지. 이놈들이 체포한지 한달밖에 안되는 빨찌산소대장을 나에 대한 검토에다 써먹으려고 없애치우겠는가, 법의 칼날을 가지고 휘두르는 《검찰청》에서 결코 이러루한 무법불법의 살인행위를 그 어떤 중대한 명분이 없이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자행할수는 없을것이다. 그리고 만장탄한 권총을 함부로 수인에게 맡길수 없다. 원래 혀바닥을 날름거려 세상에 저만이 제일 강하다고 으시대는 놈들은 너나없이 자기 목숨을 놓고 도박놀이를 할수 없는 겁쟁이들이다. 여차직하면 제놈의 이마빼기에 직사로 총탄이 날아들판인데 실탄이 있는 총을 원쑤사이인 상대에게 선뜻 내줄수는 없다. 헝, 네놈이 엉큼하기로 구렁이같다고 하더니 허깨비였구나. 방억세는 속으로 쓰겁게 웃었다. 익숙된 솜씨로 방억세는 권총을 눈앞에 가까이 올려 지켜보다가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격발기를 천천히 우로 제껴놓았다. 그리고는 정수철을 향하여 권총을 쳐들었다. 조명을 받아 한결 처절하여보이는 정수철의 시커멓게 죽어든 얼굴이 크게 확대되여왔다. 태룡산빨찌산에서 얼마 되지 않는 죽창대동료들가운데서도 가장 정이 들고 가까이 지내온 전우다. 자기가 와서 입산하였을 때 허리를 부둥켜안고 대장동지가 왔다며 그리도 기뻐하면서 지휘부의 경비중대 소대장으로 있는 자기를 뽑아달라고 떼를 쓰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떼질을 마다할수 없어 주경남대장에게 제기하여 끝내 독립지대 소대장으로 옮겨놓기까지 하였다. 《개자식! 쏘라! 왜 쏘지 못해. 속이 떨리는가? 그래도 죽창대장이야?! 왜 쏘지 못해!》 방억세는 정수철의 고함소리를 짓눌러버릴듯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야 수철아, 그러지 말아. 자기의 믿어마지 않는 부하에게 총부리를 겨누고있는 이 방억세의 속이 새까매지고있다는것도 생각하여주렴아. 내가 열백번을 죽는다고 해도 아무렴 내 살점같은 전우에게 총탄을 날릴 패륜의 사나일가. 이놈들은 연극을 하고있다. 나도 연극을 놀아야 한다.)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격침떨어지는 소리가 마치도 폭탄터지는 소리처럼 그의 귀전을 멍멍하게 하였다. 그는 잠시 굳어진듯 그자리에 서있다가 서남룡에게로 홱 돌아섰다. 그리고는 권총을 그놈의 허벅에 던지며 소리쳤다. 《더러운 놈! 왜 이따위 놀음을 벌려놓는거야?! 애들 숨박곡질이야?!》 그러자 《도끼눈》이 휘번쩍 놀라더니 이어 흡사 개짖는 소리같은 짧은 웃음소리가 느닷없이 폭발적으로 터지다가 뚝 멎었다. 서남룡은 제딴에도 으스스한 생각이 들었던지 두어걸음 뒤걸음쳤다.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여 그자리에 까무러쳐버린 정수철을 겁질린 눈으로 보다가 도망치듯 지하실에서 빠져나갔다. 인차 형리들이 들어와 정수철을 들것에 실어 감방으로 날라갔다. 방억세는 그들이 나간 다음에도 잠시도록 정수철이 앉아있던 걸상에 앉아 후두둑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느라고 눈을 감고있었다. 이놈들이 왜 이런 모략을 벌렸을가? 나에 대한 검토?… 지금 형편에서 그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 그건 저놈에게서 하등의 리유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억세는 종시 그 대답을 찾지 못한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다란 흥분과 충격으로 하여 머리속이 온통 헝클어져있었던것이다. 그는 뒤날에야 서남룡의 이 놀음이 자기 운명에 얼마나 위험천만한 모략이였는가를 알고 치를 떨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