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제9장 리승만의 《령》

 

성관호는 저녁무렵에 풀색승용차에 올랐다.

리승만이 직접 보내여온 차였다.

승용차에는 성관호를 안내하기 위하여 리승만의 비서까지 타고왔다.

성관호는 이날 저녁에 리승만으로부터 경인지역 사령관으로 임명장을 받게 되였던것이다.

어제 성관호는 리승만의 비서실에 군복무를 시작하겠다는것을 통고하였다.

원래 성관호는 새로 착수한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군사평론가들의 평론집번역을 끝내고 군복무에 착수할 계획이였는데 중도에서 밀어놓고 앞당긴데는 리유가 있었다.

박정희와 만나고온 방억세가 다음날로 구청에 가서 거류수속을 하고 돌아선 길로 서울《검찰청》에 갔는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어찌하든 한번 넘어서야 할 철창이고 받아야 할 심문이였지만 본인이 한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성관호의 집은 란가가 되였다.

성관호와 동요는 물론 김씨도 사색이 되여 빨리 손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고, 그놈들이 생사람을 잡아다가 트집을 걸어 목매달면 어쩌느냐고 모여앉으면 성관호에게 이마전에 비지땀을 돋게 한다.

동료들을 내세워 알아보니 방억세에 대한 심사는 사람잡이에 이골이 났다고 악평을 받고있는 서울《검찰청》 부장검사 서남룡이 담당하고있었다. 방억세건은 《국가적안보문제》라는 리유에서였다.

서남룡은 필요에 따라 죄를 만들어내는 사건조작의 명수라는 말을 듣고있는 악당이다.

방억세도 만나고 서남룡과도 만나자고 요청하였으나 매번 적당한 구실을 내걸고 면회를 거절하군 하였다.

성관호가 장수덕을 통하여 알아본데 의하면 서남룡이 아무리 형량을 떨구어주더라도 20년정도는 콩밥을 먹어야 될것 같다는것이였다.

성관호는 이 말까지 듣고나자 더는 지체할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서울《검찰청》의 대문을 열어제끼는 길은 어서바삐 어깨에 왕별을 얹는 길밖에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은둔생활의 종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고 했던 꿈을 버리고 붓을 꺾고 결연히 골방생활을 털고 나섰던것이다.

이미 이 집으로 리승만을 수행하여왔던 《경무대》 비서실의 의례담당 비서가 자동차에서 내려 마당을 거닐고있다가 성관호가 양복을 정하게 차려입고 나서니 가까이 다가왔다.

《비서선생이 자주 걸음을 하시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성관호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보이며 정중하게 인사말을 건늬였다.

《웬걸요, <대통령>께서도 성관호씨가 군직을 수락한데 대하여 대단히 만족해하십니다. 제갈량이 드디여 류비의 궁성문턱을 넘어서게 됐노라고 합디다. 당신같은 인물을 천거하는 일이라면 난 발이 닳도록 뛰여다닐겁니다.》

비서는 자기의 공로도 있다는것을 은근히 내비치며 웃었다.

《허허… 괜한 치사이고 기대입니다. 내 몸값이 어찌 중국사람들이 저들의 일류명사로 세상에 대고 세월을 넘어오며 자랑하는 제갈량에 비할수 있겠습니까.》

성관호는 비서가 잔뜩 치켜올리는 말에 귀가 솔가운듯 손을 내두르며 웃었다.

그러자 비서는 다소 아첨기가 어린 소리로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제갈량이 별겁니까? 제갈량의 수라는거야 사실에 있어서는 문필가들의 글재주수에 불과한것이지요.

문사들이 력사의 토막에 희미하게 남겨진 실마리를 두루 추려가지고 읽을 맛있게 온갖 재주를 부려 큰사람으로 만들어 세상사람들에게 전해준것이지요.

허지만 성관호씨야 해방후 세해토록 이 70칸 대가집에 은둔해있으면서 <나라>의 <국방>을 위해 로심초사를 거듭하여 얼마나 큰 공을 세웠습니까.

성관호씨가 펴낸 숱한 경험집과 전쟁리론들과 규범집들이 건군의 리론적기초로 되였다는것은 <대통령>께서도 특별히 평가하는 공적입니다. 하지때에도 그런 얘기가 있었지요. 그런즉 그까짓 문인들의 펜끝에서 만들어진 제갈량에 비하겠습니까?》

비서는 이렇게 수다스럽게 대꾸하며 성관호가 먼저 차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하하… 비서님의 그 말솜씨야말로 천하달변이여서 제갈량의 말굴리는 재주를 앞서겠습니다. 저의 공적이라는것은 결국 비서님 같은분들의 혀끝재주로 만들어진것에 불과합니다.》

《하하하-》

두사람은 이렇게 서로 치켜올리며 승용차가 들썩거리게 폭소를 터뜨렸다.

자동차는 대문을 벗어나자 리승만이 자리를 편 《경무대》를 향하여 경쾌히 달렸다.

남산의 남향받이 앞자락에 있는 《경무대》에 도착한 그들은 곧장 청사의 뒤쪽에 있는 후원으로 들어갔다.

리승만은 한창 웃동을 벗고 조끼바람으로 장작을 패고있었다.

제법 도끼질에 힘이 뻗치고 주글주글한 볼편에 땀발이 섰다.

도끼질소리가 여무진데다가 도끼날이 짤막짤막하게 베여놓은 나무통에 박힐 때마다 어김없이 나무가 두쪽으로 갈라져 옆으로 튀여오른다.

리승만의 뒤에는 《경무대》의 안방주인인 프란체스까가 리승만의 하얀 모시양복을 들고 사뭇 경건하게 서있었다. 그뒤로는 리승만의 시중을 드는 측근비서들과 의사, 간호원들 그리고 여러명의 경호원들이 틀지게 서있고 전속사진사들이 《대통령》의 《근로봉사》를 렌즈에 담는 《력사적인 업무》에 여념이 없다.

《아니 어찌된 일이십니까? 년로한 <대통령>각하에게 도끼를 들게 하다니요?!》

성관호는 리승만이 백발의 로구로 도끼질을 하는것이 희한하기도 하고 위태롭기도 하여 핀잔조로 비서를 나무랐다. 《국부》의 체모에 어울리지 않는 망녕든 구경거리같아서 화가 나기도 하고 저렇게 도끼질을 하다가 로구의 몸이 비칠거려 발등을 찍을가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성관호가 리승만에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비서가 옷섶을 잡았다.

그리고는 귀속말로 설명하여주었다.

《가만 계시오. <대통령>각하의 운동시간이요. 일명 스트레스해소중이요.》

《스트레스해소라고요? 그러니 저 일이 운동이라는겁니까?》

비서가 히죽이 웃으며 그쯤으로 알아두라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제야 성관호는 리승만의 짓거리가 무엇을 노리는지 리해되였다.

뭇사람들에게는 《근로의 인간》으로 비쳐지게 되겠으니 좋을것이요, 늙고 쇠진해가는 육체에는 활력을 주고 덧쌓이는 정신적피로를 가셔주어 그것 또한 좋은 일일것이다. 도끼질에는 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집중되여야 하니 신통하게 골라낸 운동종목이다.

운동시간이 끝날 때가 되였는지 사진사들이 리승만의 도끼질을 사진기렌즈에 담아보려고 리승만에게 다가가 팔동작, 몸동작을 해보이며 한쪽으로는 련속 샤타를 누른다.

성관호는 비서와 함께 뒤전에 서서 리승만의 희극적인 운동시간이 끝나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저 성관호씨, 어련하겠습니까만 <대통령>에게 인사하는 궁성례법 알겠지요?》

《예?》

비서가 좀 멋적은 어조로 일깨워주자 성관호는 되물었다.

《궁성례법이라니요?》

그러자 비서는 씩 웃으며 두손을 가슴에 올리고 다리를 멋스럽게 앞으로 꺾으며 큰절을 하는 흉내를 내보였다.

《나야 군인이 아닙니까? 하물며 지금이 어느 세월이라고…》

《아아, 그래도 아직은… 괜한 일로 <대통령>의 미움을 사놓을게 있습니까. 크게 돈먹이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 하시오.》

비서가 정색을 하고 여러 말을 하는 바람에 성관호는 접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리승만은 사진사들이 물러가자 패놓은 장작을 우물정자로 다 가리워놓은 다음에야 손을 툭툭 털고 돌아섰다.

그러자 경호원 한명이 놋대야에 김이 실실 오르는 더운물을 담아가지고 오고 간호원이 들고있던 세면비누를 내밀었다.

리승만은 천천히 손을 씻고 수건으로 얼굴과 목덜미를 꼼꼼히 닦아낸 다음 성관호와 비서에게로 돌아섰다.

《어, 경인지역 사령관이 드디여 우리 리씨궁궐에 들어섰군.》

성관호는 리승만에게 조선절을 하였다.

《<대통령>각하에게 문안드립니다.》

리승만의 두툼한 입술이 떡 벌어졌다.

《허, 그 절하는 법도가 진품일세. 시체사람들은 이국풍조에 물젖어 이젠 조상전래의 인사법도가 무색해지고있는데 정승대가집 장손이 다르군. 인사란 저렇게 품들여 정성껏 해야 하네. 사진사를 불러 저런걸 찍어 신문쟁이들에게 널리 전하게 하라구. <경무대>에 와서 인사하는걸 보면 고작해야 머리통을 말대가리처럼 주억거리는거요. 그다음 손부터 턱 내미는게 례상사거든. 사령관이 인사차리는걸 보라구. 신식문명이 몸에 배인 젊은이이지만 저 인사법도가 얼마나 보기 좋고 인사받는 사람 또한 속이 얼마나 편한가. 큼직하게 한장 찍어 <문교부>에 가져다주게.》

성관호는 리승만이 땅바닥에 코대고 엎디여있는 자기를 놓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바람에 일어나기도 난처하고 그렇다고 그냥 엎디여있자니 화가 나서 견딜수 없었다.

더구나 이제 큰 별을 어깨우에 얹어놓을 사람을 조상전래의 절이나 배워주는 그 무슨 모델 같은것으로 내세우려고 하니 속이 울컥해오르기만 하였다.

(에잇, 령감쟁이 안되겠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하더니 상대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군.)

성관호는 엎드린채 화가 나서 속으로 두덜거렸다.

하지만 리승만이 일어서라는 소리가 없으니 감히 리승만이 자기를 엎드려놓고 훈계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수도 없다. 괜히 비서말 한마디에 거치장스럽고 번거롭기만 한 절을 하느라 생각없이 두꺼비처럼 엎드린 자신에게 비굴하기 짝이 없는 머저리짓했다고 욕을 퍼부었다.

한참후에야 리승만은 성관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받았다.

《자, 이젠 일어나게.》

성관호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가지고 솟아나듯 땅을 차고 일어나 리승만앞에 허우대큰 몸을 쭉 폈다.

뭉툭한 돼지입같은 입술을 내밀고 비죽이 웃고있는 리승만의 상통을 마주하자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그렇게 조상법도를 귀하게 여기면 저도 깍듯한 맞절로 인사법도를 지켜야 될것이 아닌가.

언제인가 장수덕에게서 들어두었던 소리가 생각났다.

어느날 장수덕과 《경무대》 초대비서실장이였던 윤치영이 있는 자리에서 리승만이 여러명의 경찰관들을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들을 돌려보내고나서 이렇게 고아댔다.

《에, 그녀석들 손아귀가 세기로 도깨비들 한가지야. 이제부터 <경무대>에 들어오는 녀석들에게 단단히 궁성례법부터 가르쳐야겠네. 매일처럼 몰려드는 식객들이 너도나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즉 <대통령>의 손바닥이 소발통이라구 성해있겠는가. 거기에 문둥병자나 페병쟁이가 없다고 그래 자네들이 담보할수가 있겠는가. 조상전래의 인사법이 제일일세.》

새삼스럽게 장수덕이 전해준 말을 생각한 성관호는 속이 그냥 불끈거렸다.

《배라먹을 두상태기, 그렇게 찾아온 사람 손잡아줄 기력도 없고 병옮는게 그렇게 무서우면 애당초 <대통령>은 왜 된거야. 망조로군!》

성관호가 이렇게 속으로 두덜거리는데 리승만이 프란체스까에게로 돌아섰다.

《이 사람이 이제부터 서울아근을 지키는 성관호사령관일세. 이사람 성관호장군, 알고지내야지.》

리승만의 소개말에 성관호는 파릿한 눈자위에 노란 동자가 분명 고양이상인 프란체스까에게로 허리를 가볍게 굽혔다. 그리고 영어로 짤막히 인사말을 하였다.

《령부인님, 안녕하십니까? 성관호라고 합니다.》

《프란체스까라고 불러주세요. <대통령>께서 장군에 대하여 여러번 말씀하여주셨답니다. 부디 기대에 보답해주세요.》

프란체스까는 마치도 상이라도 내리듯 자기의 오동보동한 작은 손을 무척 사교성있게 그에게 내밀어주었다.

(이게 이국의 풍조야?…)

성관호는 고양이앞발을 잡는것 같아 께름직한 생각이 들었으나 방금 장광설로 《조상전래법도》를 설교하던 리승만을 그의 면전에서 무시해버리는 일이여서 그 녀자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짤막히 답례를 하였다.

《령부인, 명심하겠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성관호와 프란체스까의 교제는 뒤날 세월의 흐름속에서 여러차례의 격변기를 넘으면서 근근히 이어갔다.

이윽고 프란체스까가 리승만이 옷을 입는것을 거들어준 다음 일행은 리승만을 따라 그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리승만의 뒤에는 부채를 든 프란체스까가 종종걸음으로 따라섰다.

프란체스까가 미국으로부터 때늦게 서울에 도착한이래 리승만의 주변에서 감겨돌아가던 녀인들이 다 쫓겨나 하나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리승만이 녀색을 좋아하여 늘그막에도 임영신이요, 모윤숙이요 일대 녀류명사들의 치마폭에 휘감겨돌아간다는 풍문을 전해들은 프란체스까는 리승만의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어주던 녀인들까지 다 쫓아보내고 자기가 그 일을 맡아보느라고 사실은 곤욕을 치르고있었다.

집무실은 해빛이 잘 드는 남향받이방이였다. 앞서서 틀고앉아있던 미군사령관 하지의 취향에 따라 꾸렸던 서양식의 장식들을 리승만의 분부에 따라 부랴부랴 다 들어내다보니 썰렁하기 그지없다.

측근들이 《대통령》의 집무실답게 구색을 맞추자고 설레발을 치지만 리승만은 응하지 않고있었다.

그까짓 방이나 호사스럽게 꾸리면 뭘하나.

《대통령》이 검소하게 지낸다는 말 한마디가 민심을 끌어안는데는 천금만금맞잡이다. 방이나 꾸려놓고 이미 신문쟁이들이 떠들어놓은 그 귀한 말을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일게 뭐냐 하는 타산된 배포에서이다.

그러나 리승만은 설악산에서 잡아왔다는 호랑이의 가죽만은 안락의자의 등받이에 놓게 하였다. 호랑이가죽을 가져다놓으니 방안이 당장 위엄이 있어보였던것이다.

성관호도 그 얼룩얼룩한 호랑이가죽이 눈에 걸리자 리승만의 의중이 인차 짚이워 속으로 고소를 금할수 없었다. 시라소니의 눈에는 그 위압적인 무게가 실리는 범가죽이 리승만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상징적인것으로 보일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저것이야말로 어지간한 지성의 격이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리승만의 도끼질과 같은 어리석고 저속한 놀음으로 평가인하될것이다.

어쩐지 리승만을 곱게 봐주어야 하는 첫날인데 여러가지 부닥치는 일들마다 눈에 어지럽게 비쳐들기만 해서 저따위를 나라의 룡상에 앉혀놓고 파수군노릇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속이 메슥해왔다.

리승만은 자기 걸상에 가서 앉아 성관호의 듬직한 기골을 한참 대견스럽게 바라보다가 뜨직뜨직 말을 시작하였다.

《자네 과시 장군복까지 입으면 대틀이겠군. 우리 군의 무게가 자네의 임관으로 더 실리겠으니 참 다행일세.》

《그사이 <대통령>각하께 불편한 심기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가 나설 때가 아닌것 같아서 <대통령>께서 루추한 우리 집까지 오시게 했으니 그 죄가 실로 큽니다.》

성관호는 오늘은 리승만으로부터 크게 환심을 사서 덕을 봐야 할 일이 있으므로 깍듯이 례의를 차리고 말씨도 한껏 공경스럽게 하느라고 하였다.

《허, 객적은 소리일세. 자넨 과시 <대통령>을 불러들일만 한 도량이 가는 인재거던.》

리승만의 심술궂은 심사가 내비친 소리에 성관호는 기분이 흐려졌으나 굳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때 비서가 소리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각하, 다 모였습니다.》

《허, 그래.… 장군별을 허술하게 하사할수가 없지.… 다들 가세나.》

리승만의 소리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어느 한 방으로 들어갔다.

리승만이 들어서자 방에 앉아서 한담을 나누고있던 여러명의 장성들이 말뚝쥐처럼 벌떡벌떡 일어나 경례를 붙였다.

성관호는 그들속에서 안경을 낀 길쑴한 얼굴의 인물부터 띄여보고 말없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는 《총리》로서 《국방장관》을 겸직하고있는 리범석이였다. 항일의 의기를 떨치고저 일찍부터 중국관내에서 동분서주했으나 해놓은 일이란 정적에 대한 테로요, 시퍼런 칼날에 묻혀온것은 동족의 피인데 장개석의 군사고문으로 와있던 미군장성 웨드모웨의 눈에 들었던탓으로 리승만의 빈축을 사면서도 리승만《조정》의 큰 감투를 쓰고있었다.

리범석의 좌우에는 체통이 아름이 되게 벌어지고 볼살이 처져내린 《륙군참모차장》 장수덕을 비롯한 륙해공군의 실력자들이 주런이 서있었다.

그들과 자리를 같이한게 기쁘고 다행스러웠으나 리승만을 앞세우고 들어선 자리라 성관호는 그저 눈인사를 주고받았을뿐이였다.

리승만이 앞탁에 자리를 잡자 리범석이 인차 몇걸음 걸어나와 리승만에게 고개를 건성 숙여보이고 정중하게 모임을 사회하였다.

《임관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대통령>각하께서 친히 경인지역 사령관으로 임명된 성관호장군에게 지휘봉과 장군견장을 수여하겠습니다.》

그러자 리승만이 일어서고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서가 탁우에 있던 종이함에서 지휘봉과 견장을 꺼내 리승만에게 넘겨주었다. 성관호는 리승만앞으로 몇걸음 걸어가서 허리를 쭉 펴고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그렇게 욕심을 내본적이 없는 별이였지만 리승만이 들고있는 장성견장을 보니 저도 어쩔새없이 가슴이 울렁거리였다.

《<나라>와 <국민>앞에 충성다하시오.》

리승만은 실팍한 허리통에는 어울리지 않는 가느다란 목소리였으나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장중하게 격려의 말을 하였다.

《<나라>와 <국민>앞에 충성다하겠습니다.》

성관호는 저으기 흥분된 어조로 화답을 하였다.

리승만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는 잔등을 몇번 두드려주었다.

성관호는 《조상전래법도》가 제일이라고 떠들던 리승만이 제 먼저 악수를 청하는것을 보고 실소를 금할수 없었다.

방금전에 제가 했던 주장을 제손으로 뒤집어놓다니…

그러니 악수란것도 저만이 아래사람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이라는걸가.

안팎이 다른 리승만의 몰골을 다시 찾아낸듯싶었다.

성관호가 자리에 돌아와 서자 임관식은 끝났다.

리범석이 다시 앞으로 나가서 고저가 없는 딱딱한 소리로 임관식을 끝내겠다고 선포하였다.

성관호는 임관식이라 해서 다소 신비한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라는게 조촐하기 그지없고 싱겁기 짝이 없었다.

좀더 뜸을 두며 마주쳐야 리승만을 더 사귀고 장차 처남문제도 풀어갈수 있겠는데 말붙여볼 틈새가 없이 끝나고보니 일껏 준비하여온 일이 매듭을 보지 못하고 끝나는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였다.

리승만은 인차 자리를 뜨며 《자, 잠시 쉬고 다시 만납세다.》 하고 문을 나섰다. 성관호는 다시 만나자는 리승만의 소리에 다소 위안이 되여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리범석이 성관호에게 다가서며 틀지게 손을 잡고 흔들었다.

《사령관, 임관을 축하하네. 잘 부탁하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총리>각하!》

《아아, 다 지나간 이야기요. 그리고 그때 장군이 임관을 거절하여온것도 어쩌면 잘된 일이요.

그것으로 자네의 몸값이 배로 껑충 뛰여올랐으니까.》

리범석은 웃지도 않고 이렇게 슬그머니 의미심장하면서도 랭기가 풍기는 어조로 옆구리를 건드려놓고는 수하막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싶은듯 휴계실로 향하였다.

그러자 기다리고있던 3군의 실력자들이 그를 에워쌌다.

세사람은 성관호의 가까운 친구들이였다.

장수덕은 일본륙사시절의 동료고 최병우는 태백산항일죽창대에서 친교를 두터이 한 전우이기도 하다.

《해군참모총장》도 면식이 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인차 리범석을 따라 휴계실로 나가고 방안에는 성관호와 장수덕, 최병우만 남았다.

그들과는 민족주의적경향에 있어서나 경력에 있어서나 공통성이 있었다.

공군실력자 최병우는 성관호처럼 일본군에서 장교로 복무하다가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던중에 항일죽창대의 소문을 듣고 태백산에 오른 사람이였다.

그는 항일죽창대가 해산될 때까지 끝내 민족주의를 고집하였으며 해방직후에는 여전히 좌, 우익의 정치활동에는 관여하지 않고 《국방경비대》를 거쳐 현직을 차지한 인물이였다.

그래 성관호와는 여러가지로 일맥상통하는바가 있어 친분이 매우 두터웠다.

그들은 성관호의 임관을 제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하였다. 미군고문들과 리승만과 리범석에게 성관호를 반드시 군부의 요직에 등용하여야 한다고 제일 성화를 먹인것도 그들이였다.

그들의 건의가 거듭되지 않았으면 리승만은 벌써 오래전에 성관호를 자기의 시야에서 던져버리고말았을것이였다. 리승만에게 있어서 성관호는 오만방자한 사나이였고 뒤날에도 제 손탁으로 다루기 어려운 존재일것이라고 짐작이 갔던것이다.

심술기가 세고 자존심이 강한 리범석의 경우에는 그에 대한 평가가 더욱 날카로왔다.

《그 자식은 집어치워! 미국사람들이 압력을 가해도 할말은 해야 돼. 군대란 상명하복인데 군사의 초보적인 계률도 모르는 고약한 놈이야.》

리범석은 성관호와 두번째로 전화를 하다가 성관호가 의연히 군복무를 사절하자 이렇게 돌아앉아 고함을 질렀었다.

그런데도 최병우는 사흘이 멀다하게 리승만을 찾아다니며 우리 군부에는 성관호처럼 리론적으로 준비되고 3욕(직욕, 물욕, 색욕)이 없는 강직한 군인이 있어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됐네. 성형이 경인지역 사령부를 맡게 되였으니 <대통령>이 마음을 놓을거야. <대통령>이 제일 무서워하는게 뭐인줄 아나?

그건 군대가 <경무대>에 쳐들어와 자기를 옥좌에서 들어내는거네.

그런데 성형은 군대의 엄정중립, 정치개입엄금을 주장하고있는 순수 군인형이거던. 이런 사람을 서울성곽의 수문장으로 세워놓게 되였으니 리승만<대통령>께서 이제는 발편잠을 자게 될거요.》

장수덕이 성관호의 손을 잡아 크게 흔들다가 흡족해서 큰 배를 흔들며 떠들었다. 이 말은 리승만을 찾아가 성관호를 경인지역 사령관자리에 앉힐것을 건의할 때 하였던 그의 주장이기도 하였다.

《다들 고맙네. 신의를 잊지 않겠네. 이 왕별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나도 다 알고있네. 나라를 위해 뼈를 아끼지 않겠네.》

성관호는 자기의 손목을 꽉 잡아주는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하였다.

문득 최병우가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말일세. 성형, 방대장은 어떻게 되였나?》

최병우가 성관호를 만났을 때부터 묻고싶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자 기쁨에 흥성거리던 방안은 졸지에 침중하여졌다.

성관호는 단박에 낯빛이 컴컴해져서 짤막히 대꾸하였다.

《무사치 못할것 같네.》

《나도 몇번 그쪽에 대고 큰소리를 쳐봤는데 이발이 들지 않더구만. 서남룡이 좌익계의 거물급을 곱게 내놓지는 않을걸세.

그 쥐포수같은 자식이 얼마나 떵떵한지 며칠전에는 <법무부>장관 권승렬이까지 나한테 자중하는게 어떠하시오 하고 씨백힌 압력을 해오더구만.》

장수덕이 그 거구의 체통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가느다란 쐐소리로 사태를 간단히 들려주고 말끝에 한숨을 그었다.

《그까짓 왜 내려와. 끝까지 버티여보지.》

《글쎄말이요. 방억세대장이 어떻게 된 일이요. 난 거 성형네 연회장때부터 량민이요, 하산이요 듣기 싫더구만. 그게 다 방대장에게 어울리지 않는 소리들이란 말이요.》

최병우가 장수덕의 증난 어조에 맞장구를 치며 내뱉는 소리였다.

《잘은 놀구계시네… 저들은 큰 별을 따고 고대광실에서 분꽃같은 녀편네들을 끼고 딩굴면서…》

성관호가 두사람을 싸잡아 핀잔하는 바람에 세사람은 친구의 위태로와진 신상을 걱정하다가 흐아-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무슨 수가 없을가? 웃지들 말구 어려운 시절에 사생동고한 옛 대장을 구출할 묘수들을 하나씩 내놓아주게. 부탁이네.

여차직하면 콩밥 20년이라서 난 지금 미칠 지경이네. 여러 부하들이 누런 금줄을 두르고앉아 옛 상관 하나 옥에서 꺼내지 못하다니… 당신들의 어깨가 무거워진게 뉘 덕인지 잊고 사는게 아닌가.》

성관호가 동료들을 둘러보며 간곡한 어조로 호소하였다.

성관호의 질책어린 소리에 다들 가슴이 뜨끔해진듯 입들을 다물었다.

누구도 쉽게 닫아붙인 입을 열지 못하였다.

잠시후 장수덕이 한마디 하였다.

《성형, 말난김에 오늘 불질을 해보게.》

《불질을? …어데다가?…》

《어데겠나. <대통령>에게 해야지. <대통령>에게 이제 연회끝에 청원을 해보는게 어떤가?》

《연회?… 연회가 있는가?…》

《아, 물론. 임관식이야 <대통령>이 부어주는 축배잔 받아드는 멋이 기본이지.》

《옳수다. 역시 <륙군>이 고단수요. 정도 엎음갚음이라는데 성형이 <대통령>의 령을 들어주었으니 <대통령>도 정갚음이 있어야 할게 아닌가.

<대통령>의 덕쌓기라는게 뭐겠소. 한번 해볼만 한 일이요. 밑져야 본전이요.》

《내 생각에도 그게 수라고 생각하오. 방대장 같은 거인을 구출하자면 뒤손도 커야지. 장차장도 물러나는 판인데 송사리들이나 바글거려서는 아무튼 틀려지는 일이요. <대통령>을 내세우는게 으뜸 묘방이요. 난 승산이 있다고 봐지오.

<대통령>은 덕쌓기는 둘째치구라도 한번 여기 모인 <국방>의 중진들에게 허세를 보이고싶어서라도 단판에 서남룡이쯤은 눌러버릴걸세.》

장수덕이 던진 말에 좌중은 일시에 끓어올랐다.

최병우도 그가 튕겨놓은 제안을 다 쌍수를 들고 지지하여나섰다.

성관호도 그들의 말에 인차 공감이 갔다. 당초에 자신이 이런 생각이 없이 제 혼자 속을 썩이며 여기로 들어온게 이상스러워졌다.

《륙군》의 주장에도 《공군》의 주장에도 공감이 간다.

그는 우선 장성별이나 얹어놓고 그 별의 위세로 한번 서남룡과 부딪쳐보자고 승패가 확실치 못한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왔는데 이들의 말을 듣고보니 새까맣던 속에 볕이 드는것 같았다.

《내가 오늘 령감을 푹 삶아놓을터이니 기회를 놓치지 말게.》

노죽이 방치같다는 장수덕이 기세가 나서 흰목을 휘두르자 다른 사람들도 속이 후련해서 장쾌하게 웃었다.

장수덕은 안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 성관호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요?》

《그건 말이요. 내가 리승만<대통령>에게 점수를 따는 요술책이요.

이제 술 몇잔 걸친 후 한구절 마음나는걸로 외워보오. 당장 령감의 큰 입이 대구입처럼 될거요.》

성관호는 수첩을 번지였다. 거기에는 여러편의 시가 적혀져있었다.

불쑥 생각이 났다. 장수덕이 륙군사관학교시절 학교를 찾아간 리승만앞에서 리승만이 지었다는 시 한수를 읊어 그자리에서 리승만의 눈에 쏙 들었다고 한다. 어느 술좌석에서 장수덕이 리승만을 낚아내는 수라며 웃음끝에 들려주던 객담이다.

《그러니 나더러…》

성관호는 성미가 누긋하고 늘어붙는 재주가 있는 장수덕의 취지를 알자 고개를 흔들었다.

《차, 이런! 자기 처남 죽고사는 문제가 이 시 한수에 걸려있는 판인데 그 일 위해서라면 발가벗고 십리 뛰라고 해도 눈 감고 해보는 일 아니야. 외우라구. 어서!》

성관호는 그 소리에 군소리 못하고 수첩을 받아들고 시 한수를 외우기 시작하였다.

그때 비서가 나타나 성관호를 찾더니 복도끝에 있는 방으로 데리고갔다. 커다란 거울이 한면을 채우고있는 그 방에는 두명의 젊은 남자들이 성관호의 누런 군복을 들고 기다리고있었다.

《사령관님, 축하합니다.》

한사람이 이렇게 인사를 하고 성관호에게서 견장을 받아 얼른 군복에 달아 내밀었다.

《입어보시죠.》

두 젊은이는 성관호가 양복을 벗기를 기다리다가 군복을 입혀주고 옷매무시를 봐주었다.

《팔과 다리를 흔들어보십시오.… 불편하지 않습니까?》

《아니, 일없습니다.》

《바쁘게 만들다보니 잘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훈련복과 야전복은 따로 지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성관호가 만족해하자 비서는 그를 데리고 다시 리승만의 집무실로 갔다.

방금전에 침실에서 휴식하고난 리승만은 어깨에 수실까지 달린 호화스러운 장성례복에 휘감긴 성관호가 방에 들어서자 정신이 번쩍 든듯 두터운 눈시울을 걷어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허! 이렇게 장군복까지 떨쳐입으니 선친을 꼭 빼물었거던. 자넨 과시 일국의 수장재목이야. 타고난 군사란 말일세.

좋아. 보기가 좋거던. 자, 이젠 연회장으로 가세.》

옆방에 들어서니 연회장의 대기실인데 언제 왔는지 리범석이하 군장성들과 성관호의 어머니 김씨와 동요까지 쏘파에 앉아있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승만이 그들도 축하연회에 참가하도록 비서를 다시 보내 데려오게 하였던것이다.

두 녀자는 리승만에게 앉은절을 정하게 하였다.

《하, 자당께서 어여쁜 며늘아기 앞세우고 오시였군. 와주시여 고맙습니다. 어서 일어나시우. 아드님께서 이렇게 나라의 파수장으로 단상에 올라 장군복을 입은것을 보니 나도 감개무량하기 그지없소이다.

주인장께서 계시여 아드님의 장한 모습을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겠소. 주인장께서 저 신미년이며 기사년이며 독립성금을 무겁게 마련하여가지고 하늘지경을 넘어 하와이에 몸소 오셨던 일이 어제같소이다.》

리승만은 젊은 시절에 성관호의 아버지와 여러번 어울려지냈던 연고가 있었으므로 못내 감회깊은 어조로 인사를 하였다.

리승만은 옷고름으로 눈굽을 닦는 김씨의 팔을 잡고 자기 옆자리에 앉혔다.

모두 커다란 원탁에 빙 둘러앉자 리승만이 양주잔을 들고 한마디 하였다.

《자, 뭐 차린것은 별치 않아도 달게 들어주시우.

이자리에는 내 사람들인 나라지키는 파수군두령들이 다 모인즉 참말로 뜻깊은 자리웨다. 사령관의 임관을 축하합시다.》

좌석에서 잔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귀맛좋게 쟁강쟁강 울렸다.

식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리승만과 잔을 찧고 성관호하고도 잔을 찧고는 자리에 둘러앉아 축배를 들었다.

뒤에 서있던 남자접대원이 돌아가며 비여있는 잔들을 채웠다.

《자, 나는 개의치 말고 많이 드시오. 어서… 늙은이와 맞대작을 할념은 말구. 부인, 난 참 젊은 사람들과 마주앉는 자리가 좋은데 술자리에서는 이젠 돌려난 몸이라 어울릴수가 없는게 유감스럽거던.

자, 마음껏 드오. 다들 우리 사람들끼리니 외교를 할것도 없구 내우를 할것도 없고 술자리에서 허물잡힐것도 없소.

자, 부인님도 마음놓고 드시오. 이건 락동강상류에서 보내온 자라고기인데 장수에 좋다고 이런 자리에서도 꼭 내앞에만 놔준답니다. 어서 맛을 보시우.》

리승만은 김씨앞으로 접시를 밀어놓으며 좌석의 분위기를 화락하게 유도하느라고 왼심을 썼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취흥이 도도해졌다.

리승만은 언제나 그러했던것처럼 자그마한 보시기에 담긴 잣죽을 비우자 물수건으로 기름이 발린 입가녁을 쓱쓱 닦고나서 기분이 붕 떠서 일장 훈시를 하기 시작하였다.

《내 지나간 객담 하나 하지.

미국어른들이 저 사람 이름을 찍어오는데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았어. 헌데 어느날 저 장장성에게 물어보니 저 사람이 대답은 쉬이 하지 않고 책 한보따리 가져왔네.

그 책인즉 저 성사령관이 집에 돌아앉아 펴낸 군사관계 책들이라나.

그래 내 여러날 업무전페하고 두루 보았네.

마음에 딱 드는게 두세가지야.

글쎄 병법이요, 군사원리요, 각개약진이요, 포병대의 조애사격이요 하는것들은 내가 알탁이 없고 자네들이 선생들일터이니 내 구태여 론할바가 못되네. 뭐가 좋은가. 기상이 좋아. 기백이 좋고 뜻이 좋은거야.

군대의 본연임무란 주권국가의 령토와 국민의 생명과 생존권을 지키는것이라 했는데 천만지당할지고…

군대의 정치적엄정중립에 대한 자네 주장도 과시 무장의 본도를 지키는 옳은 주장일세.

군사가 호국의 방패막이가 될 생각은 없이 고양이 어물노리듯 정치의 노대를 저어볼 기회만 노리다가는 랑패일세.

고금동서의 력사를 뒤져봐도 무사들이 권력의 상좌에 틀고앉아 설친 정권은 언제나 단명으로 끝나군 했네. 우리 력사에도 무신정권이라는게 있었거던. 정사를 전쟁놀이하듯 해서야 망할수밖에…

그다음에는 뭐가 좋은가.

군대의 청렴결백- 과시 성씨가문의 장손다운 결곡한 뜻이요.

원체 저 사람 부친께서 광복대업에 다달이 군자금을 내놓아왔고 뭐 듣자니 이번에 자당께서 <농지개혁>을 앞두고는 충청도에 가지고있던 땅을 다 소작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니 과시 지체있고 도량있는 사람들이 따라야 할 귀감이 틀림없네.

북에서는 벌써 해방 이듬해에 토지개혁을 해서 해마다 풍년이라는데 때늦게라도 뭘 좀 해보자니 매일처럼 전라도요, 경상도요 땅가진 사람들이 똘똘 뭉쳐가지고 진정서요, 항의단이요 뭐요 하며 법석거리는거야. 그래 나도 골치아프기가 이를데 없는데 사령관네가 이런 수범을 보인즉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이런 집안에서 울려나온 주장이기에 그 의미가 참말로 장한거요.

군대의 청렴결백이란 여러가지 뜻이 있어.

정치적으로는 권력을 탐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는 물욕에 빠져들지 않으며 개인생활에서는 녀색과 돈을 멀리한다는 의미라고 저 성사령관이 딱 짚어 강조했거늘 내가 우리 장병들에게 해주고싶은 소리를 다 대신하여준것이네.

미국사람들이나 내가 저 사람을 어여쁘게 봐줄만 한 리유가 또 있네.

뭔가 하니… 내 이런 말을 한다고 3군의 총사들이 과히 나쁘게만 듣지 말게.

뭔고 하니 해방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 사람의 근신을 두고 하는 말일세.

남들은 해방이 되자 저마다 큰 자리 벌어보려고 좌로 우로 발빠르게 왔다갔다하면서 숨이 차게 뛰여다녔지만 저 사람만은 초연하게 돌아앉아 국방의 방향타를 세워놓았네.

이 어찌 범상한 사내들이 엄두나 낼법 한 보짱인가.

내 그래서 저 사람이 <대통령>의 명령에 불복해온 괘씸한 소위에는 눈감아두고 고쳐 생각해서 소란스러운 서울장안을 맡아달라고 부탁한것일세.

지금 38°선에서 북이 맞서있고 제주도와 태백산과 지리산이 흔들거리고있지만 서울파수가 억척보루이면 <대한민국>도 억척이 되는거라. 안그렇소, <총리>?…》

리승만은 제잡담 입에 거품을 물고 잔뜩 궤변을 늘어놓다가 자기 말에 쓰거워난듯 입을 헤벌리고 천정을 흥심없이 멀거니 쳐다보는 《총리》의 길쑴한 상판이 띄여보이자 그에게로 말고삐를 던져주었다.

리범석은 만날 때마다 기회있는껏 늘어빠진 입바람으로 주변사람들을 지지리도 따분하게 만드는 리승만의 수작에 벌써 신물이 나있던지라 얼른 혀삐뚤어진 소리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아, 그러문요. <대통령>각하의 고견이 천만번 지당합지요.

성관호소장을 경인지역 사령관으로 천거한것은 출산하자마자 기력이 진해 꺼벅거리는 <한국>을 위해서는 천운인줄로 압니다.》

성관호는 인차 도수높은 안경속에서 눈알을 굴리고있는 리범석의 말에서 리승만의 잔등을 살짝 긁어서 피가 나게 하는 조롱의 가시를 찾아냈다.

《한국》이자 자기-리승만이라고 줄창 떠들어대는 두상에게 출산하자마자 기력이 진해 꺼벅거린다고 오금을 박아놓았으니 결국 네 옥좌도 위태로와졌다는 말로 해석될수밖에 없는것이다.

사실 지금 리범석은 리승만의 넉두리를 들으며 로망든 두상태기 겁에 질려 달보고 짖고있다고 깨고소해하고있었다.

리승만이 군대를 얼마나 두려워하고있는가를 리승만의 궤변에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던것이다.

리승만이 지금 제일 무서워 전전긍긍하는것은 실은 제주도도 지리산도 아니다. 리승만이 언제나 눈을 밝히고있는것은 군부의 반변이다.

제주도에서도 폭동진압에로 내몬 군대가 폭동군에 합류하였고 지리산도 려수에서 들고일어난 군대가 진을 치고 미군과 리승만에게 총부리를 겨누고있다.

이제 경인지역에서 군대가 총부리를 꺼꾸로 들이대는 날이면 《경무대》가 직격탄에 료정날 판이다.

요즈음 리승만은 꿈자리에서도 38°선에 진을 친 《국방군》이 대포를 끌고 서울로 쳐들어오는 꿈을 꾸다가 프란체스까가 흔들어주는 바람에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셔가지고 깨여날 때가 드문하다.

리승만은 오합지졸의 무리인 서울정치판처럼 군부도 형형색색이라는것을 잘 안다.

일본군출신도 있고 《만주군》출신도 있고 독립군출신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해방전에 반일운동에 관여하다가 해방후 좌익계에서 활약하던 좌경세력도 적지 않다.

그들이 저마끔 군부의 실권자리를 놓고 다투고있는데 그 어느 한 세력이라도 볼이 부어있다가 《경무대》에 쳐들어오면 순식간에 실각은 고사하고 목건사하기도 힘들판이다.

리승만에 대한 《충성》이라는것도 사실은 저들의 리해관계에 따라 외워대는 말공부이지 수틀리면 어느때든지 모반할수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좀 나은데 군부에만은 손때묻고 파악이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 어느 놈 할것없이 미국에서 돌아와서야 비로소 낯을 익힌 인물들이다. 그중에서 꼬리치는 인물들을 용모파기나 해보고 세워놓았으니 그놈들의 엉덩이가 빨간지 꺼먼지 벗겨볼 재간이 없다. 그래 요사이 군부에 대한 동향장악을 목적으로 《륙군정보국》에 있는 특무대장 김창룡에게 권세를 몰아주어 무소불위의 사나이로 둔갑시켜놓았더니 군부에서 정치적반대파를 제거하는데서 큰 덕을 보고있다.

그런데 다른 선에서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원래 이리같이 포악하고 여우같이 간특하다는 악평을 들어온 김창룡이 힘이 막강해지면서 점차 자기의 영향력을 군부의 령내를 벗어나 정치권과 행정권에로 넓혀나가고있다는것이다.

원래 통치자가 손을 들어 귀엽게 등을 다독여주는 인물에게 힘이 모아지기 시작하다가 그것이 팽창됨에 따라 점차 통치자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하며 종당에는 통치자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아예 짓눌러버리는것이 권력의 생리이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권력집단을 만들어 내세울 때 그를 견제할수 있는 잠재적인 새로운 권력집단을 준비해놓았다가 적당한 시기에 권력의 교체를 이루어놓아야 한다. 이것은 리승만이 고금동서로 장수한 군주들의 통치수법을 연구하면서 터득하고 나름으로 정립하여놓은 통치방식이다.

지금이야말로 나는 새도 호령 한마디로 떨군다고 하는 김창룡을 견제할수 있는 제3의 권력의 요체를 전혀 질과 방식이 다른 집단에서 찾아내야 할 때다. 리승만은 김창룡에게 5, 6년정도의 수명을 보장해줄 결심이였다.

수명이 끝난 통치집단을 제거하는 방법은 이미 마련되여있다.

자기가 뒤집어쓰게 된 통치의 허물을 다 넘겨씌워 제껴버릴수도 있고 정치권에 혼란이 조성될 때 위기탈출의 방편으로도 써먹을수 있다. 혹은 자기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을 대신하여 받게 되는 정치의 제물로 만들어버릴수도 있다.

그런 창황에 성관호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여러 사람이 제나름으로 평가해오는데 한줄로 꿰여보면 전형적인 무사라는것이였다. 군부의 탈금권, 탈정치를 주장하는 성관호의 군사론문을 보며 리승만은 무릎을 쳤다. 이놈이야말로 수하가까이에 두고 문지기로 써먹을수 있는 녀석이 확실하다. 이 인물쯤 되면 장차 김창룡세력을 견제할수도 있을것이다.…

총무국장자리에 올라있던 성관호를 경인지역 사령관직으로 옮겨놓은 리승만의 이러루한 암중모색을 불보듯 들여다보고있는 리범석이기에 제빠듬해가지고 두상의 수작질에 랭소를 금할수 없는것이다.

아니나다를가 리범석의 로골적인 조소와 심술궂은 비꼬임에 리승만의 입이 삐죽이 나오고 두눈이 사납게 데굴거렸다.

성관호는 《아차!…》 하고 《총리》가 연회장의 분위기를 흐려놓은것이 랑패스러웠으나 제힘으로는 어쩌는수가 없었다.

변덕많은 리승만이 이제 발끈해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리면 기회를 잃고만다.

그런데 그 찰나에 장수덕이 둔한 몸을 어기적거리며 일어나더니 잘 돌아가지 않는 영어뜯개말로 《존경하는 프란체스까령부인!》 하며 큰소리로 불렀다.

《저… 3군의 통솔자들인 우리 무사들은 령부인님의 피아노연주를 듣게 된다면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몸통이 소같은 장수덕이 노죽좋게 청하자 프란체스까는 얼굴이 빨갛게 익어가지고 교기가 어린 소리로 받아주었다.

《저의 피아노재주라는게 여러 장군들께 보여드릴만 한게 못된답니다.》

《령부인님, 저희들도 다 알고있습니다. 우리 <대통령>각하를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률로 모시였다는 제네바호반의 로맨스를 말입니다.》

장수덕이 여전히 노죽을 부리며 매여달리자 리승만도 인차 기분을 바꾸어 자못 흥취가 나서 껄껄거렸다.

《허허… 우리 <참모차장>이 목이 몇이더라. 나먹은 <대통령>의 후문까지 들춰가지고 령부인을 감히 곤경에 몰아넣다니… 그런데 어떻게 한다?

젊은 무사들의 배짱을 무시하면 양기가 떨어지겠으니 마미가 나서야 할것 같군.》

리승만이 프란체스까를 떠미는 소리에 모두 즐겁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프란체스까는 령감의 령에는 어쩔수 없다는듯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향해 무릎을 살짝 꺾어 례를 표시하고 벽을 마주 향해있는 피아노를 향하여 사뿐히 걸어갔다.

프란체스까는 둥그런 걸상에 앉아 잠시 곡상에 잠기려는듯 속눈섭을 내리깔고있다가 가볍게 들어올린 두손을 피아노건반우로 날렸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작곡가 슈베르트의 실내교향곡이 그의 손부리에서 아름답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프란체스까의 피아노연주는 전문가들 못지 않게 수준이 있었다.

리승만은 프란체스까가 울리는 피아노음악을 듣는것을 좋아하였다.

프란체스까도 리승만이 심기가 불편해하거나 지나친 흥분으로 격해있을 때면 리승만을 피아노곁으로 안내하여 슈베르트의 아늑한 음악으로 늙은 주인의 거친 속을 쓰다듬어주군 하였다.

어쩌면 피아노의 선률속에 시작되여 그 선률속에 이어져오는 부부생활이기도 하다.

리승만은 지금도 부풀어오른 눈시울을 붙인채 옛시절의 노래를 되살리고있었다.

리승만이 처음으로 프란체스까가 울리는 피아노음악을 들은것은 1934년의 어느 여름날이였다.

그때 리승만은 《조선독립》을 구걸하기 위하여 동포들로부터 모아들인 거액의 성금을 하늘에 뿌리며 제네바에 있는 만국평화련맹에 갔다.

이 사람, 저 사람 팔소매에 매달려 약소국을 도와달라고 매달렸건만 그에게 차례진것은 강국이라 거드름을 빼는자들의 잔망스러운 조롱과 싸늘한 랭대뿐이였다.

끝없는 허무감에 휩싸여 제네바의 골목을 방황하던 리승만은 청원놀음마저 집어치우고 재미교포들이 한푼두푼 모아준 성금을 가지고 유흥길에 올랐다.

어느날 발목이 시도록 풍치수려한 호반을 쏘다니며 울적한 심정을 달래던 리승만은 저녁무렵에 호수가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부모와 함께 휴식차로 교외에 나왔던 프란체스까가 식당의 피아노에 앉아 슈베르트의 실내교향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하고있었다.

연주가 끝났을 때 낯설은 이국땅에서 사나이의 고독을 달래여온 리승만은 불쑥 치밀어오르는 욕정에 휩싸여 로구의 《독립운동가》의 체면도 잃은채 그 녀자에게로 다가갔다.

자기는 동양의 나라에서 온 방랑객인데 녀사의 훌륭한 연주에 취했노라고 추파를 던지였다. 이렇게 되여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국의 호반에서 60을 넘긴 동양의 로신사와 30대 중반인 서양녀인과의 밀월이 이루어졌다.

결국 나라독립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거두어들인 피와 땀과 한이 서린 동포들의 귀한 돈이 나라의 독립이 아니라 살갗이 흰 녀인을 낚아내는데 탕진된셈이다.

그런데 녀인의 부모들이 자기들보다 나이가 두세살 우인 동양의 사나이를 사위로 맞을수 없노라고 더 말을 붙이지 못하게 딱 잘라버렸다.

그러나 리승만은 동양의 신비스러운 나라가 겪고있는 망국의 비운과 독립이 가져올 현란한 무지개로 프란체스까의 련정을 사는데 성공하였으며 결국 녀인은 바다를 넘어 리승만이 망명생활을 하던 미국의 하와이로 따라섰다.

이렇게 피아노의 선률로 시작된 결혼생활이였기에 지금도 리승만은 마누라의 피아노연주라면 해종일 들어도 이마살을 찌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귀하게 대접해야 할 내외의 손님들을 끌어들인 가족적인 규모의 유흥이 벌어질 때면 프란체스까의 피아노재주를 선보이는것으로 좌석을 차분하게 하고 손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도록 왼심을 쓰군 하였다.

장수덕이 바로 마누라의 피아노연주를 사교와 외교의 수단으로 자랑하고싶어 하는 리승만의 심중을 찔러든것이다. 첫눈에 우직해보이는 사나이가 머리가 명민하게 회전한다.

프란체스까의 연주는 좌중의 박수갈채로 오래동안 계속 이어져갔다.

리승만도 벙글써해지고 리범석도 미묘한 선률의 유희에 속이 풀리여 어깨를 들썩거리기까지 하였다.

문득 장수덕이 성관호에게 손을 뻗치여 허벅다리를 꼬집었다.

이제는 자네 차례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경종이였다.

성관호는 장수덕의 신호를 고맙게 접수하고 프란체스까의 연주가 끝나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령부인님, 고맙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오늘 저에게 꿈에도 바랄수 없었던 영광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자리에 참석한 저의 어머님과 저의 처의 마음까지 합쳐 각하와 령부인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관호의 자못 격정에 넘친 인사에 좌중에서는 박수소리가 울렸다.

《영광스러운 이자리에서 제 시 한수를 읊어 <대통령>내외분께 보답의 마음을 드리고저 합니다.》

《시 한수… 어, 사령관한테 그런 재주도 있었는가.》

리승만은 흥에 겨워 이렇게 중얼거리며 박수를 쳤다.

성관호는 박수소리에 묻혀 잠시 감정을 잡다가 방금 외워둔 시구절을 헛갈릴세라 조심스럽게 읊기 시작하였다.

 

북풍에 돛다는 새벽

초라한 옷의 길손

밤새도록 숨어있다가

밝아서도 더디 나오니

행색은 중국사람

이름마저 약한아

그 신상 이루 다 말할수 없으니

몇몇이 알아주니 기쁘도다

 

입밖에 내놓아보니 운률도 없고 서정도 없고 고리타분하기 그지없었다. 이런것도 시라고 이름붙여 내놓았는가.

그러나 지금 성관호는 이 시 한수에 처남의 운명이 걸려있다는 비장한 생각을 하면서 또박또박 글귀마다에 힘과 열을 기울여 기운차게 엮어나갔다.

벌써 리승만의 큰 입이 광주리만 해지고 프란체스까마저 조가비 벌어지듯 꼭 다물고있던 입을 해사하게 열고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는것이 눈에 띄였다.

그들에게는 《대통령》이 긁적거려놓은 시까지 외워바치는 이 성관호가 그지없이 대견하고 이뻐보일것이다.

그러나 그옆에 앉아있는 어머니나 동요는 기색이 좋지 않다.

리범석의 길다란 말상도 영문을 알길 없다는듯 어리어리해있더니 성관호의 시가 이어질수록 굳어지고 경멸의 빛이 서리발처럼 돋쳐오르는것 같다.

이 성관호가 졸지에 가련해지고 천진할 정도로 초라해보일것이다.

성관호는 그들의 눈길과 마주칠가 겁이 나서 천정을 쳐다보며 끝까지 읊어나갔다.

 

록수푸르른 내 고장

잊어본 일 없었노라

들리는 북쪽소식

처연히 주고받는

이 늙은이 이 신세 가련하다

 

드디여 성관호는 마지막시행까지 다 외우고나서 서둘러 리승만에게 인사를 하고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와 목덜미를 벅벅 닦았다. 한소리 덧붙였다.

《각하, 제 솜씨가 서툴러서 시의 감정과 의미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였으니 죄송합니다.》

《어, 무슨 소리. 그게 무슨 시라고 할만 한 글이겠소. 내 일구이공년에 <상해림정>에서 날 수석자리에 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와이를 떠나 상해로 갈 때 내 심기가 하도 고달파서 몇마디 읊어본거지. 고맙소! 고맙소!》

리승만은 이렇게 치사를 하며 투덕투덕 박수를 쳤다.

그러자 장수덕이와 최병우도 열정적으로 박수를 쳐서 분위기를 버쩍 돋구느라고 하였다.

그러나 리범석이나 김씨와 동요는 생각밖으로 어느결에 리승만의 시구까지 외워두었다가 개올리는 성관호의 못난 얼굴을 보게 된것이 자못 놀랍고 망신스러워 두세번 손벽을 울리다가 그것마저 그만두었다.

리승만이 땀을 벌벌 흘리는 성관호가 자못 고마와 손을 저었다.

《앉게. 앉게… 자, 술을 한잔 내라구. 배우노릇도 헐한게 아니라네.》

접대원이 기다리고있다가 리승만의 분부가 내리자 얼른 성관호의 곁에 다가와 술을 부으려고 하다가 잔이 아직도 채워져있어서 뒤로 물러섰다.

《어 접대원, 부으라구. 각하께서 하사하시는 술인데 내 들지 않고서야 무슨 놈의 각하의 사람구실할수 있겠는가.》

성관호는 객기를 부리며 가득 채워있는 술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접대원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독한 양주로 담을 휘저어놓아야 리승만의 굳게 잠긴 성문도 열어제낄수 있을것 같다.

그는 다시 채워놓은 술을 쭉 들이켜고 접대원에게 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바빠맞은것은 동요였다.

그 녀자는 남편이 만취가 된것 같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여보-》

그는 접대원이 남편의 잔을 채우는것을 손으로 막으며 애원의 눈으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돌아가서 제자리에 앉소. 난 이제부터 군인이요. <대통령>각하께서 죽으라면 죽어야 되고 마시라면 마셔야 된단 말이요.

그리고 난 술기운을 빌어야 이자리에서 말씀드릴 긴한 얘기가 있어 그러오.》

《이보세요.》

동요가 나직하나 나무람이 어린 다기찬 어조로 부르며 남편의 옷섶을 잡았다. 리승만이 푸접좋은 성관호의 말에 입이 떡 벌어지게 껄껄거리며 한마디 하였다.

《이사람, 놔두게. 대장부 주량이 도량이라는 말도 있는게 아닌가. 그런데 이사람, 성관호… 이 <대통령>에게 술기운 빌어 말할게 있나. 더 취하기 전에 할말이 있으면 어서 꺼내놓게. 난 저 장수덕이 좋아. 안팎이 따로없이 늘어붙는 한모양이거던.…》

《각하… 사실인즉 저 사람의 매부가 지금 철창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이 영광된 자리에 나서니 처남생각이 앞설겁니다.》

《음 처남, 무슨 처남? 제입으로 말해보게.》

리승만은 장수덕의 소리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성관호에게로 어서 말하라고 손을 흔들었다.

성관호는 길게 숨을 내쉬고나서 말을 시작하였다.

《각하, 장장성의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죄송합니다. 저에게는 목숨보다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저의 처남되는이는 일본군에서 복무하던 저를 항일대오에 세워주어 이 나라 백성된 구실을 하게 하고 오늘에로 떠밀어준 저의 인생의 스승이고 벗입니다.

사실 태백산항일죽창대 대장이였던 저의 처남은 여기에 참석한 저의 동지인 최병우장성과도 막역한 친구지간이고 이분들의 은인입니다.

그 사람이 키워낸 태백산항일죽창대의 대원들이 <국군준비대>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지금도 여러명 군부의 중추에서 선각자로 나서고있을진대 우리 처남이야말로 군건설의 첫째가는 공신자로 불러야 할것입니다.》

《허, 그래. 처남의 이름이 뭐이라고?》

《방억세라 합니다.》

《방억세… 거 이름이 기운차구만. 듣던 이름이야. 많이 듣던 이름이야. 군직을 줄 때도 그렇고… 아하, 그렇지. 잘 알고있네. 내 알고있네. 얼마전에는 권승렬<법무장관>이 국무회의 뒤끝에 조용히 한마디 하더군. 성관호의 처남이 서울<검찰청>에 구류당해있는데 빨찌산거물이니 매부되는 성관호의 임관을 보류하는게 어떠냐고. <걱정할게 없다.>, 한마디로 대답을 주었네. 처남은 처남이고 매부는 매부야.

아, 지금 세상천지를 돌아보면 골육상쟁이 어디 한둘이라구. 가깝게 보아도 저 웃마을 장개석의 처 송미령은 국민당의 앞채를 메고있고 그 사람의 언니되는 송경령은 모택동을 도와 공산당을 하고있네. 뭐 여러 걱정할게 없어. 난 자네를 내 사람으로 받아들였네. 그러면 다지. 자, 어서 앉아 잔을 내게.》

리승만은 《대통령》의 큰 자리에 어울리게 성관호의 말을 제잡담으로 받아들여 앉은자리에서 선심을 써서 흔쾌히 매듭을 지어버렸다.

성관호는 리승만이 이렇게 모처럼 꺼낸 이야기를 결속해버리자 무릎마디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때 장수덕이 또 그의 정갱이를 저가락으로 쿡 찔렀다.

주저앉지 말고 내친김에 그냥 들이대서 끝장을 보라는 신호였다.

성관호는 어쩐지 담벽과 마주선 기분이였다. 들리는 말에 령감이 나먹은 값을 치른다고 한다. 노염이 많고 고집불통이고 한번 눈을 흘기면 다시 그 눈이 밝아지지 않는다는것이다.

이제 또 한마디 비쳐보였다가 령감이 크게 격노하여 고함 한마디 내지른다면 처남은 오히려 더 궁지에 몰려들수 있다. 방억세문제와 관련한 리승만의 감정과 립장이 《검찰청》에 전해질것이다. 그러면 《검찰청》놈들은 코웃음을 치며 저들이 하고픈대로 휘둘러댈것이다. 그다음에는 자기 어깨의 별도 그 녀석들앞에서는 무색해질것이다.

그래 장수덕의 부추김을 받고도 성관호는 얼어붙은듯 그자리에 그냥 서있었다.

그러나 성관호는 지금도 《검찰청》의 철창에서 고생하고있을 처남생각에 이대로 물러설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다시금 맞서봐야 한다.

고개를 꺾어질듯 떨구고있던 동요가 아니아니한 심정으로 자기를 바라본다. 그 맑은 눈에 눈물이 자오록하다. 남편이 무엇때문에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시까지 읊어 개올리게 되였는지도 그제야 리해가 되였던 모양이다.

집에서 오빠일때문에 노상 얼굴에 구름장이 끼여있던 녀자였다.

어떻게 손을 써야 되지 않느냐고 아침저녁으로 하소연하던 그 눈빛이 지금도 자기를 쳐다보며 애끓게 보채는듯싶다.

오빠일이 풀리자면 빨리 군복을 입어야 한다고 제일 극성스럽게 꼬드긴것도 동요였다. 안해의 애원과 갈망이 가득 고인 그 눈빛에 힘과 용기를 얻은 성관호는 잠시 숨을 가라앉히다가 크게 기침을 하여 목을 열었다.

《저, 그런게 아닙니다. 저는 각하의 기대와 사랑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의 충의에도 변함이 없을것입니다.

각하께서 이제껏 저에게 해주신 말씀을 금언으로 페부에 새기고 서울을 지켜가겠습니다.

그런데 저의 처남은 애매하게 갇혀있습니다. 그 사람은 <검찰청>의 실적올리기희생물이 되여있습니다. 그러니 처남손에서 다듬어져서 오늘의 은총을 받아안은 제가 처남을 저 꼴로 둬두고서야 어찌 <대통령>께서 하사하신 이 큰 별값을 제대로 감당할수 있겠습니까?! 처남을 교수대에 보낼진대 차라리 이 성관호도 초야에 묻히는 길을 택하렵니다.》

《그건 무슨 소리인고?!》

리승만은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식탁을 치며 성관호를 성난 눈으로 쳐다보았다.

너는 너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이라고 하해같은 도량을 베풀어주었는데 무슨 군소리냐 하는 심술기짙은 눈초리였다.

《그리고 처남이 애매하게 갇혀있다는것도 무슨 짝없는 실언인고? 나라에 법이 있는데 법에는 성역이 따로 있어서는 안된다 그거요. 나라가 공정하게 다스려지자면 인치가 아니라 법치가 돼야 한단 말이요. 임금이 기분이 나는대로 법을 흔들어놓으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고 나라기강은 어떻게 세우겠나. 처남되는 사람이야 벌진 사람이 아닌가. 거물이라고 했던것 같애.

법앞에서는 임금도 하나의 국민이라 이게 민주주의의 근간이야. 임금이 법우에 있어서야 무슨 법치인가. 나라정사는 절대로 인치가 돼서는 안되네.

그러니 어쩌겠나. 없었던 사람으로 치면 될게 아닌가.

사령관쯤 되면야 그만한 배짱꾸러기가 돼야지.

그래서 내가 아까 송경령자매얘길 한걸세. 우린 조상들에게서도 배워야 하네. 옛날 숙종은 나라기강을 세우기 위하여 애첩이였던 장희빈의 목을 쳤구 수양대군은 대궐에 도전해나선 자기 동생에게 귀양살이 시키고 사약까지 내려 명을 끊어버렸네.

장부 한몸 애국에 바쳤은즉 세속에 흔들림이 없어야지.

그리고… 내 이번에 <대통령>옥좌에 앉으면서 옛 성인들의 말 한마디 건사해두었는데 자네들도 들어두는게 과히 나쁘지 않을걸세.

불치불롱이라는 말인즉 머저리거나 귀머거리 아니면 가장노릇 못한다는 말일세. 큰 자리 차지할것 같으면 아래사람일에 너무 간참하거나 남의 허물을 너무 구석구석 채근하는게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는거야.

어떤가. 이사람, 이젠 자네도 큰 별을 무겁게 얹은 나라의 장수거늘 불치불롱하세나.》

리승만은 이렇게 고사까지 풀어가며 준절하게 채찍질을 하고는 그 뭉툭한 입부리를 쭉 내밀었다.

이날 저녁 세번째로 보는 리승만의 툭 삐져나온 입모양에 성관호는 숨이 꺽꺽 막혀왔다.

그러나 성관호는 다소 옹송그리고있던 허리를 쭉 폈다. 자기도 모르게 리승만에 대한 분노가 속 한끝에서 욱 뻗쳐올랐다.

꺼져들었던 눈이 이글거렸다. 그는 주먹을 불끈 틀어잡았다.

이대로는 절대로 물러설수 없다. 이미 시작된 맞불질이니 이겨야 한다는 강심이 그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었다.

그는 불이 이는 눈총으로 리승만의 주글주글한 상통을 쏘아보며 저력있게 말을 계속하였다.

《각하, 이것은 참말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문제입니다.

실은 처남이 산생활이 불편도 하고 또 앞날도 그리 보이지도 않고 해서 오랜 마음속의 진통끝에 제발로 걸어와서 서울시민으로 살겠다고 한것입니다. 서울<검찰청>에도 제발로 걸어갔구요.

그런데 제가 서울<검찰청>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니 과거를 회계하고야 넘어갈수 있다는겁니다.

만약 그렇게 할것 같으면 그도 그렇고 여기에 모여있는 동료들도 그렇고 본의든 타의든 그리고 크든작든 왜왕을 위해 복무했으니 군복을 벗고 쇠고랑을 차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 처남을 담당했다는 서남룡이도, 특무대장 김창룡이도 해방전에 숱한 반일지사들을 잡아먹은 놈들이라 마땅히 형틀에 올려야 할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처남은 그 시절에 항일구국의 창검을 들었던 항일무장대 선각자였습니다.

법치가 되자면 구석구석에 있는 법의 성역들을 들어내야 할것입니다. 더우기 문제로 되는것은 산에서 제발로 걸어내려온 사람을 잡아가두어 형벌을 적용한다면 하산하면 죄를 묻지 않는다는 당국의 선전을 산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저는 이것이 우리 처남문제로만 귀착되는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매우 해독적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산에는 철없는 저의 동생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애도 데려와야 되겠는데 처남문제를 당하고보니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 사람들이 콩밥이나 먹고 족쇄나 차자고 내려오겠습니까.》

성관호는 하고싶은 소리를 다 뱉아놓고 다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는 자리에 무겁게 앉았다.

리승만의 환심이나 사고 그놈을 움직이려고 시작했던 말이 열이 오르니 진담이 되고 속말을 퍼담게 되여 자못 좌석이 숙연해지게 하였다.

방안에는 이윽토록 무거운 침묵이 드리웠다.

리승만도 어두운 기색으로 한동안 두터운 입술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윽고 리승만은 머리를 몇번 힘들게 끄덕이더니 성관호를 넘겨다보며 물었다.

《그래… 하정을 들어보니 여의치 않군. 형장은 어느 정도로 먹이겠다고 하던가?》

《사형이라는 소리도 있고 20년 감옥살이 시킨다는 말도 있고 딱히는 모르겠으나 중범죄취급을 당하고있는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때 그들의 대화를 숨을 죽이며 듣고있던 동요가 치밀어오른 통곡을 끝내 참을길 없어 흑- 하고 소리내여 흐느끼며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사람들은 자못 비감스러운 눈빛으로 녀인이 나간 문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음- 저 새아기의 오랍이겠다?…》

리승만도 동요가 어깨를 떨며 사라진쪽을 보다가 측은해진듯 누구라 없이 물었다.

《예. 그러하옵니다. <나라님>께서 은총을 베푸시여 가문의 걱정거리를 덜어주시였으면 합니다. 어리석은 말이긴 하겠지만 요즈음은 저애 눈물에 살이 내립니다. 저도 그 사람을 잘 아는데 그런 사람을 옥에 처넣는것은 당초에 인륜에 빗나가는 일입니다. 안팎으로 출중해보이는 젊은이올시다.》

성관호의 어머니가 앉은자리에서 리승만을 향하여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하, 그래요. 금새가 비싼 인재야 아껴야 합지요.

그래서 내가 해방후에 서울에 와서 우익이냐 좌익이냐 편가르기 하지 말고 <대동단결>하자고 했습지요.

더구나 나라의 서울을 맡아나선 수비장이 그런 억울한 걱정거리를 안고서야 구실을 못하지… <총리>, 이 사람들을 도와주는게 어떠하오?》

《예, 저도 그 생각이올시다.》

리범석이 리승만의 말에 얼른 동감을 표시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그 사람을 풀어주는게 여러모로 국익에 리로우리라고 보입니다.》

《국익도 국익이지만 자당의 말씀대로 인륜을 지키는 일일세. 성관호사령관의 이야기가 적실해. 하산하라 해놓고는 정작 찾아들면 오라를 지워서야 누가 제발로 걸어들겠나. 사람의 마음이란 조변석개라고 하였는데 그눔들 하는짓이 그 꼴이라면야 민심을 어떻게 낚을수가 있겠나. 지금 남도와 중부의 산간오지에 <공비>가 수십만을 헤아린다고 하는데 다 내려오게 해야지. 우리 사람들이 아직도 민심의 소재를 읽을줄 모르는게 탈이야.

내 지나간 고담 하나 하지.

해방이 되니 치안이 문란하기 그지없어 사처에서 강도질에, 로략질에 별의별 끔찍한 일들이 련일 벌어져 야단법석이야.

<미군정청>도 이 무슨 수가 있어야겠다고 앙앙불락이야.

그런데 경찰이란 다 일본것들밑에서 놀아대던 놈들뿐이라 왜정때 지은 죄에 묶여 숨어지내니 이건 참 도무지 해법이 나오지 않더라구.

어느날 제복쟁이들이 리화장에 찾아와서 대청마루에 엎드려 살려달라 애걸복걸이야.

나라가 독립했는데 그럼 우리는 일본가서 살라느냐고 꽤 여무진 소리도 있더구만. 그래 내 말 한마디로 그녀석들을 다 싸안을 후리그물을 던졌던거야. <좋다. 너희들 대동단결하라는 내 소리 듣지 못했느냐. 너희들 왜정때 버릇을 뚝 떼고 나라치안을 맡아봐라.>

그랬더니 녀석들이 두팔 번쩍 들고 이 우남의 은덕 남산만 하다고 울며불며 노죽들이더라구. 허허… 이러하니 어떻게 되였겠나.

난 그 후리그물로 수십만의 경찰들을 가병처럼 부릴수 있게 되였고 나라치안도 가까스로 지켜낼수 있었던거야.

살 한대 날려 꿩도 잡고 알도 털어내는게 정치야. 정치술수라는거야.

그러한즉 일정시기 그쯔하게 훈련이 되여있는 녀석들이 우리가 주도하는 대동단결의 큰 집안에 들어와 내 팔소매를 물게 된거야.

지금 제주도요, 려수요, 지리산이요 둘러보게. 군대라는건 비틀거리고있지만 경찰녀석들만은 딱 한본새로 버티고있거던.

우린 빨갱이들에 대하여서도 그렇게 <관용>을 베풀어야 나라안정도 회복되고 빨갱이세력도 척결할수 있는거야. 빨갱이때문에 골치아픈게 한두가지인가. 좋아. 여러 말해도 그 소리가 그소리이니 석방하도록 <총리>가 <법무부>에 전하게.》

《예, 분부대로 합지요.》

리범석이 길다란 상을 주억거리자 성관호가 안주머니에서 얼른 한장의 종이를 꺼내들고 리승만앞에 정중하게 내밀었다.

저저이 기염을 토하고 숨을 들이긋던 리승만이 종이장을 여겨보며 물었다.

《뭔고?》

《<검찰청>이라는데 제가 가보니 거기에는 노래기 회쳐먹을 노랑둥이들만 전탕 모여있습니다. 그눔들 <대통령>령을 받고도 무슨 요술을 부릴는지 모르니 여기에 친히 각하의 수표가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아예 돌아가는 길에 그곳에 들려 데리고갔으면 합니다.

오늘같이 좋은 날에 김빠질새없이 처남까지 앞세운다면 저의 걸음에도 날개가 돋칠듯 합니다.》

《하, 사령관이 참 듣던바 그대로 손아귀가 드세.

소뿔은 단김에 뽑으랬다 이거군. 허허허… 좋아! 사령관의 기개 마음싸!》

성관호가 재빨리 내미는 종이와 만년필을 받아든 리승만은 흥겨운 소일거리를 맡아안은듯 시종 흐덕거리며 천천히 글을 써내려갔다.

《서울<검찰청>은 하산한 방억세를 사회적여건과 국가의 대의를 도모하여 특별사면시켜 금일로 석방시킬것이다. <대통령> 리승만.》

리승만은 자기의 수표까지 하고나서 성관호에게 내밀며 넌지시 한마디 하였다.

《자네 배수진을 단단히 쳐놓구 밀어붙이네구려. 자네의 수와 담기에 이 우남도 손을 들었네. 허허… 서울수비도 이렇게 빈틈없이 해주게.》

리승만은 자기딴에도 성관호에게 왕별에다가 큰 덕 하나 얹혀주는 일이 즐거워서 그냥 벙글거렸다.

리승만은 자기의 통치기간에 이러루하게 이른바 《덕퍼주기》를 즐겨하였다. 그것은 자기의 측근세력을 키워내서 자기 주위에 비끄러매놓는 일종의 용인술이기도 하였다.

물론 이것은 리승만이 비로소 찾아낸 통치수법은 아니다.

력대의 임금들이란 누구나 례외없이 구종노복들처럼 부릴 측근세력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그들이 처한 처지에 알맞게 《덕》을 베풀어주고는 이를 《선정》이라고 내돌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돈과 재물을 날리고 죄를 벗겨주고 혹은 처첩도 안겨주며 어울리지 않는 큰 감투도 뎅강뎅강 씌워준다. 임금의 《덕퍼주기》놀음에 녹아나는것은 백성이고 나라이다.

임금이 날리는 돈과 재물이란 곧 백성의 피와 땀이니 국고가 거덜이 날수밖에 없고 임금이 제멋대로 법과 인륜을 흔들어놓으니 법과 민심이 혼란해질수밖에 없다. 게다가 퍼주는 덕을 쳐다보며 궁성에는 거짓웃음과 아첨과 요귀무리가 번성해지고 한편으로는 백성의 원성이 커지고 재부와 권력이 소수의 특권층에 모여져 나중에는 임금의 옥좌마저 그 용인술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고만다.

성관호는 종이장을 무겁게 받아들며 정중하게 답례를 하였다.

《각하, 고맙습니다. 말씀을 명심해서 군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좋네, 좋아. 자네 한번 읽어보고 마음에 차지 않으면 이자리에서 고쳐가도록 하세.》

리승만은 이왕이면 《덕》을 선사하는것이라 성관호가 감지덕지해하는 모습을 보고싶고 아까부터 자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있는 김씨의 환심도 크게 사고싶어 이렇게 뒤말을 달아놓았다.

성관호는 리승만의 글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큰소리로 읽었다.

그러자 가슴을 조이며 두사람의 열띤 이야기의 끝을 기다리고있던 여러 사람들이 속들이 시원해서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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