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한 조국의 고지우에서

 

 

나는 때때로 산길을 걸을 때마다 조국의 푸른 산발들을 바라보며 류달리 깊은 생각에 잠기군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조국의 자연인가. 하건만 푸른 숲 우거지고 온갖 새들이 우짖는 평화의 나날에 그 산발들을 바라보며 섬광과 폭음과 포연에 대하여 생각한다고 하면 전쟁을 모르고 자란 젊은이들은 아마 이 늙은이를 이상하게 여길것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그것이 우리 로병들의 영원한 《숙명》인것을…

휴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크고작은 산 하나하나를 목숨으로 지키기 위해 산길을 오르고 또 올라야 했던 우리 로병들이 어찌 인생의 그 준엄한 시절을 쉬이 잊어버릴수가 있겠는가.

한자욱 또 한자욱 추억의 자욱을 옮겨가느라면 금시 무수한 옛 자취들이 세월의 안개를 헤치며 나를 향해 다가온다. 귀중한 청춘시절의 자취들이…

1951년 4월 전선에 도착한 우리는 첫 전투를 신흥사 부근에서 진행하였다. 4월 6일 우리 소대는 중대장의 지휘밑에 남강원도 양양군 설악산기슭으로 진출하였다.

목적은 그 부근에 주둔한 적 한개 련대를 소멸하는것이였다. 우리는 어느 한 령밑에 은밀히 잠복하였다. 한참만에 꼴망태를 지고 농민으로 가장한 두놈의 적 정찰을 포로하였다. 심문결과 그들이 신흥사에서 10리밖에 주둔하고있는 괴뢰군 12사소속 사병들이라는것과 인민군대의 진출계선을 탐지하기 위해 나왔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정오가 지날무렵 우리는 뜻밖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잠복초주변의 눈이 스르르 녹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뭔가 벌깃벌깃 솟아오르는것이 있었다. 사람들의 손이였다.

급히 눈을 헤치니 수많은 인민들의 시체가 눈밑에 쌓여있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화전촌사람들 같았다. 거기에는 20여호의 농가가 있었는데 적들이 인민들을 강압적으로 짐운반에 내몰았다가 학살한것이였다.

우리는 분노로 치를 떨며 복수를 다짐하였다.

령을 넘은 우리는 다시 개활지대 입구에 잠복하였다.

거기서 또 한놈을 포로하여 적부대의 배치상태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냈다. 그날 밤 6명의 습격조가 적들의 주둔지로 가서 자동총을 한바탕 란사하고 돌아왔다.

이것은 유인전술이였다. 우리 분대는 신흥사주변도로에서 매복전을 준비하고있었다. 모든것이 계획대로 되여갔다. 그런데 그만 한 대원의 불찰로 적들이 눈치를 채고 급기야 퇴각하는 바람에 전투는 실패하였다.

그날 무엇인가 잠시 생각에 골몰해있던 중대장은 갑자기 벌씬 웃으며 이번엔 다른 수를 써보자고 하는것이였다.

다음날 아침 우리 소대는 일부러 령밑의 한 민가에 들어가 식사를 하였다.

그다음 대오를 세개로 나누어 각기 작전지역을 향해 떠나갔다.

우리 분대는 신흥사 뒤산에 배치되였다.

얼마후 적의 척후가 나타났다. 예견했던대로 놈들은 곧장 우리가 식사를 한 그 집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적들은 집주인에게 《빨갱이들이 어디 갔어?》 하고 묻더라고 한다. 그래서 주인은 자기가 본대로 인민군대는 아침밥을 먹고 령넘어갔노라고 대답해주었다.

그 집에서 나온 적척후대는 대기하고있던 기본부대에 안전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즉시 수백명의 적들이 비극의 골짜기를 향하여 우글우글 몰려들었다. 적들이 좁은 공간에 꽉 들어찰즈음에 공격신호를 알리는 총성이 울리였다.

다음순간 세개 방면에서 일시에 사격이 시작되였다. 골짜기는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여버렸다.

총소리, 폭음, 비명소리…

적들은 머리도 못 쳐들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이날 우리는 단 한명의 부상자도 내지 않고 120여명의 적을 살상포로하였으며 100여정의 무기를 로획하였다.

나는 령밑의 눈속에 묻혀있던 그 무고한 인민들의 복수를 해주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후련해졌다. 우리는 승리의 기분에 들떠 떠들썩 웃으며 귀로에 올랐다. 우리가 넘었던 그 령우에 다시 올랐을 때 나는 령밑을 굽어보며 생각하였다.

이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령을 넘어야 하며 이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오를 마지막령은 또 어디일것인가 하고…

그때로부터 얼마 안있어 양구일대에서 전투를 진행하게 되였다.

나는 중대척후로 적종심깊이 들어가 놈들의 전화를 도청하였다.

그런데 빠른 영어투성이여서 다만 《환영한다》는 소리만 듣고 중대장에게 보고하였다. 중대장은 곧 공격개시명령을 내리였다.

고지를 점령했을 때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고지 아래를 내려다보니 푸릿한 려명속에 30여대의 적땅크가 쭉 늘어선것이 바라보이였다. 반땅크총소대에서 사격을 시작하였다. 탄환이 명중되면 땅크에서 펑끗 불길이 치솟군 하였다.

이날 전투는 몹시 치렬하였다. 잠시후 중대장은 철수명령을 내리였다. 나는 분대를 이끌고 중대장을 따라 달리였다.

머리우에서 적의 직승기가 떠돌며 포를 지휘하고있었다.

삽시에 온 대대가 적들의 사격권에 들게 되였다. 위기일발의 순간이였다.

이쪽 릉선에서 저쪽 릉선으로 가자면 100m정도의 개활지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곳은 적의 맹폭격으로 온통 불바다천지였다.

중대장은 잠시도 주저함이 없이 앞장서서 그 불바다속을 뚫고나갔다. 실로 불사신과도 같은 모습이였다.

중대장이 개척한 통로를 따라 온 대대가 달려갔다.

이날 나는 또 한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게 되였다.

위험구역을 벗어난 우리가 산릉선에 올라 전호를 파고있는데 신작로를 따라 전진하던 적땅크대렬에서 총포탄이 날아왔다. 나는 순간 전호속에 엎드렸다.

잠시후 몸을 일으키고보니 자동총총탁 한모서리가 뭉청 떨어져나갔고 배낭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배낭을 헤치니 수건이며 수첩에 온통 《M-1》총탄구멍이 나있었다. 바로 그뒤에 부상당한 분대장이 후송되여가면서 넣어주었던 자동총 총탄묶음이 있었는데 그 속에 《M-1》탄환 두개가 끝이 약간 구부러진 상태로 박혀있었다. 그 탄환은 신기한 보물처럼 이 대원의 손에서 저 대원의 손으로 옮겨졌다.

《이놈의 탄알도 차마 날 죽일수가 없었던 모양이지.》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긴것인지 나로서도 알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조국이 있는 한 우리의 삶도 영원하다고 믿었다. 나는 그 영원한 삶을 위하여 죽음도 두려움없이 싸움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는 그후 645. 1고지전투, 설악산전투, 748. 9고지전투, 까칠봉전투 등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였다.

까칠봉습격전투는 참으로 힘겨운 전투였다.

그때 나는 2명의 대원과 함께 중대척후로 진출하게 되였다.

나는 전화수였던 서울출신의 한 친구에게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고향의 어머니에게 손성모가 여기서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주소를 적어주었었다.

그날 저녁 우리 척후일행은 진출로정을 따라 가던중 적의 초소를 발견하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적병이 없었다.

두번째 초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긴장하여 전방을 살피며 전진하던 우리는 잠복한 적들을 발견하였다. 이 순간 나는 발밑에서 《씩-》 하는 소리를 들었다. 위장된 지뢰의 인발선을 다친것이였다. 나는 즉시 한발 앞으로 내딛으며 몸을 날리였다. 그 찰나 손에 든 수류탄을 적잠복초를 향해 힘껏 뿌려던지였다. 잠시후 몸을 일으키고보니 앞에는 기관총을 뻗쳐놓은채 졸고있던 적병이 쓰러져있고 뒤에는 지뢰가 터질 때 생긴 구뎅이가 꺼멓게 입을 벌리고있었다.

우리 척후의 성공적인 활동이 있은 후 중대는 까칠봉을 성과적으로 점령하고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이 전투에서의 공로로 나에게 군공메달이 수여되였다.

그후 1951년 9월 나는 또다시 부상당하여 후송되였는데 그해말에 퇴원하면서 포병으로 병종이 바뀌였다.

나는 1952년 3월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다.

당에 입당한 그날 나는 적의 포격이 집중되는 쏘구역을 단숨에 달리며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나의 운명을 맡기고 이 세상 끝까지 수령님의 영원한 전사로 살리라 맹세다지였다.

그후 나는 대대직속 정찰분대장으로서 대대초급당위원, 민청위원장을 겸임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포나 땅크를 《전쟁의 신》으로 여기면서 전쟁의 운명은 무장장비의 위력이 결정한다는 견해를 절대의 법칙으로 생각하고있다.

하지만 나는 전쟁의 포화속에서 전쟁의 운명은 무기를 다루는 군인들의 정치사상적위력에 크게 달려있다는것을 실천으로 체험하였다.

우리 정찰분대는 항상 900고지에 있는 관측소에 나가있었다.

1953년 6월 811. 7고지가 위험에 처하게 되였을 때 우리 분대의 유능한 정찰수동무가 그 고지로 파견되였다. 원래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은 811. 7고지는 적들이 《철벽의 요새》라고 장담하던 고지였다. 그런데 얼마전 아군의 불의의 공격에 적들은 고지를 순식간에 빼앗기고말았던것이다. 악에 받친 적들은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총공세로 나오고있었다.

고지의 운명은 시간을 다투는 문제였다. 적병 수백명이 7∼8명의 대원들만이 남은 고지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여오르고있었다.

병사 한사람한사람이 고지의 운명, 더 나아가서 조국의 운명을 걸머져야 하는 그런 순간이였다.

그때의 형편에서 고지에 접근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필사적으로 고지에 오른 그가 불러주는 좌표를 향해 포들의 일제사격이 시작되였다. 전투가 끝나고 고지우에 올라선 후에야 우리는 고지의 병사들이 바로 자기들을 향해 포사격을 요구한 사실을 알게 되였다.

우리는 900고지에서 전승의 날을 맞이하였다.

나는 동무들과 함께 고지우에 뛰여올라 만세를 불렀다. 조국의 산발마다에 공화국기발이 휘날리고있었다. 불에 그을리고 피에 절은 그 기발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앞에는 간고했던 전쟁의 나날들이 눈물겹게 어려왔다.

청소한 우리 공화국이 강대한 제국주의련합세력과 맞서싸운 조국해방전쟁은 우리 조국력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련이였으며 민족사에 당당히 기록될 장엄한 영웅시대였다. 나는 그날 오래도록 조국의 산발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전쟁의 첫 나날부터 이날까지 나와 전우들이 그 산발마다에 찍어온 자욱들에 대하여 생각하니 눈가에 고였던 눈물이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화염에 그을은 메마른 땅을 축축히 적시며 스며들었다.

나는 무릎꿇고 앉아 전쟁의 상처에 신음하던 이 땅의 흙 한줌을 떨리는 손으로 쓸어안았다. 무심히만 여겨왔던 조국의 그 붉은 흙 한줌이 눈물겹도록 소중하게 안겨왔다. 어느 젊은 병사의 뜨거운 선혈이 스며 이렇듯 붉었으리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후두둑 뛰기 시작했다.

력사의 물음앞에 정의를 선택했던 내가 조국을 위해 처음으로 바친것은 나의 청춘이였고 붉은 피였다. 그리고 처음 깨달은것은 조국은 우리 청춘들의 피가 스민 땅이며 자자손손 지켜가야 할 귀중한 땅이라는것이였다.

이것은 내가 진정한 삶의 첫걸음을 떼던 시절 승리한 조국의 고지우에서 새겨안은 참된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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