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전우들

 

전쟁은 준엄한 시련이였다. 포화에 부서지고 뒤번져진것은 다만 이 땅만이 아니였다. 너무도 극적인 사변들이 나를 향해 육박해왔고 잔잔하던 나의 가슴에 폭풍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명예와 수치, 우정과 배반…

전투에서 전투에로 이어지는 전화의 나날 생명을 위협하는 탄우속에서 한걸음한걸음에 목숨을 걸어야 할 때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처럼 조국의 운명을 지켜 죽음마저 피하지 않았던 수많은 자욱들이 조국의 산야마다에 찍혀졌다.

전쟁은 땅은 파괴할수 있었어도 결코 인간의 넋은 파괴할수 없었으며 마지막포성이 멎은 그날 가셔지는 포연속에서 우리가 본것은 몇세기의 세월을 한순간에 살아낸것만 같은 거룩한 인간들의 군상이였다.

나는 지금도 자주 나의 한걸음한걸음이 조국과 민족앞에 자기의 신념을 검증받는 걸음이 된다는것을 미처 의식조차 못한채 파헤쳐진 흙무지들우에 고무냄새 물씬 나는 병사의 군화자국을 찍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군 한다.

나의 첫 전우들은 모두 12명이였다. 그중 11명은 마포형무소와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한 동지들이였고 오동무는 동국대학 1학년 재학중에 입대한 동무였다.

나에게는 그때 오동무가 나이는 제일 어려도 인격적으로 몹시 돋보이였다. 다른 동지들은 오래전부터 혁명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로서 경력으로 보나 계급적으로 보나 우리 대오에 선것이 응당한것이였지만 그는 좀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5대 만석군의 아들이였지만 선진사상에 공감하여 1948년 공화국의 창건전야에 입북하였다고 한다. 이 거사도 놀라운 일이였지만 오늘은 또 그 아들이 아버지가 찾아간 그 조국을 지켜 손에 총을 잡고 나선것은 실로 감동적이였다.

나는 인생행로에서 진리를 위해서는 일신의 부귀영화도 단호히 거부하는 존경할만 한 사나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 오씨부자에 대하여 되새겨보군 한다. 누구나 그들처럼 개인과 당파의 리익앞에 민족공동의 리익을 놓고 진리를 선택할줄 아는 신념을 간직할 때 통일조국의 새 력사가 시작되는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우리가 지휘관의 구령에 발을 맞추며 전선을 향하여 떠나가던 그 첫 행군로를 잊을수 없다. 그것은 무한한 헌신으로 이어가는 열렬한 조국애의 행군길이였다.

우리 분대원들은 대체로 나보다 나이가 훨씬 우였지만 분대장직무를 맡고있던 나의 명령에 무조건적이였다.

 흡연금지를 요구하면 지독한 애연가라도 물부리를 코끝에 가져다대고 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달래던 순박한 모습들, 해방지구들을 지나면서 인민들의 생명재산에 티끌만 한 손해라도 줄세라 마음쓰던 모습들, 동지들의 그 어떤 비판도 대범하게 받아들이던 그 모습들은 행군의 그 시절뿐아니라 내 인생의 전행로에서 언제나 나를 고무해왔다.

그들은 학식도 대단했다. 하루행군이 끝나면 열띤 론쟁이 벌어지군 하였는데 력사문제도 있고 혁명리론에 대한것도 있었다.

그들이 력사를 론할 때 그것은 다만 지식의 한계에 머무르는것이 아니였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력사의 흐름을 종적으로, 횡적으로 투시해보고 나름으로 분석도 하며 매 력사적시기마다에 성격을 부여하기도 하였는데 현대사를 언급할 때 화제는 자연히 김일성장군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에로 이어지군 하였다. 그들은 김일성장군님의 항일혁명투쟁은 우리 민족의 가장 긍지롭고 영광스러운 새시대의 개척이였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였다. 민족의 새 력사가 그이의 행로를 따라 전진하고있으며 자신들이 바로 그 대오의 전사들이라는 자부심들이 얼굴들마다에 어려있었다.

혁명의 전도와 미래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군 하였다. 그런 때면 30대, 40대의 청장년들이 아니라 꼭 천진란만한 어린애들을 방불케 하였다.

그들은 저마다 승벽내기로 고도로 발전된 사회의 면모에 대한 자기식의 가설들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자기의 그 환상에 취해 벙글써해진 입들을 다물줄 몰랐다.

어떤 락천가는 주먹을 흔들며 이제 제주도까지 나간 다음엔 세계혁명을 해야 한다고 흥분하여 말하였다. 어려웠어도 즐거운 시절이였다.

매 사람들의 가슴은 그렇듯 미래에 대한 환희로운 꿈에 부풀어있었다.

그 꿈을 안고 그 리상을 향하여 우리는 남으로, 남으로 힘차게 전진해나갔다.

밤에는 행군을 하고 낮에는 적패잔병들과 전투도 하고 부근의 인민위원회조직사업을 방조해주기도 하였다.

충청남도의 어느 마을에서는 왜서인지 인민들이 우리에게 곁을 잘 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아끼고 보살펴주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부터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알고본즉 적들이 퇴각하면서 우리에 대하여 별의별 악선전을 다하였다고 한다.

서천군 량화리를 거쳐 금강을 도하한 우리는 인민들의 신고를 받고 괴뢰충청남도경찰국 사찰계의 형사 한놈을 체포하였다.

해방전에는 일제의 주구로, 해방후에는 미제의 노복이 되여 수많은 애국자들을 체포하고 고문학살해온 놈이라는것이였다.

그놈은 애국자들과 무고한 인민들을 50여명이나 손바닥을 철사로 줄줄이 꿰여서는 총살한 후 백마강에 처넣었다고 한다.

인민들은 비렬하게도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그자를 보자 치를 떨며 자기들의 손으로 처단하게 해달라고 하는것이였다. 우리는 즉석에서 재판을 하고 놈들의 손에 원통하게 죽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의 이름으로 그자를 단호히 처단하였다.

우리 부대가 리리에 들어섰을 때 그곳 인민들은 우리를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그들은 어려운 생활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온갖 성의를 다해 여러가지 별식을 만들어주고 잠자리도 마련해주었다.

조직의 핵심들에 의해 인민위원회도 이미 조직되여있었으며 모든것이 정연한 체계를 갖추고있어 우리는 오랜만에 마음편히 휴식하게 되였다.

온 마을이 떨쳐나 우리가 든 집들을 찾아다니며 금방 딴 참외, 수박 등 과일들을 가득 안겨주었다. 어떤 로인은 집에서 기르던 살진 통닭을 잡아왔다.

우리의 거듭되는 사양에도 불구하고 로인은 굳이 그것을 우리 손에 들려주고야말았다. 알고보니 로인에게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며칠전 로인은 적패잔병들에게 외동딸을 빼앗겼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을을 지나던 한 인민군군인이 적들에게서 딸을 구원해냈다는것이다. 딸은 구원되였으나 그 군인은 총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되여있었다.

하지만 그 군인은 로인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만류했으나 인차 떠나갔다고 한다.

《자네들을 보니 그 사람 생각이 나서 그러네.》

로인은 눈물이 글썽하여 말하였다. 그 말은 이 전쟁속에서 우리 인민군대가 인민의 마음속에 어떻게 새겨지고있는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또 인민의 군대가 지닌 사명감을 다시금 새겨주는듯싶었다.

동무들은 로인을 그냥 보내려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닭주인이 우리에게 사양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끝내 로인과 식사를 함께 하였다.

비록 닭 한마리가 큰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정신적량식이 되여주었다. 군민의 관계는 이처럼 피로써 맺어지는것이였다.

우리는 싸움의 길에서 인민에게 사랑을 바쳐야 한다는것을, 그것이 또 군대에 대한 인민의 사랑을 낳는 원천이 되며 전쟁을 이기는 힘이 된다는것을 깊이 깨달을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을에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닭 한마리값이 본래의 절반도 안되게 내려간것이였다. 어려운 세월이건만 후해만지는 인심이였다.

대오가 리리시 목천포에 이르렀을 때 나는 리동지의 처가집에 잠시 들리였다. 만일 그곳에 가거든 자기 안부를 전해달라던 리동지의 부탁이 있었던것이다.

내가 집에 들어서니 리동지의 장모와 처제가 있었다. 마침 점심때였는데 그들은 내가 왔다고 닭을 잡는다, 무엇을 한다 하며 부산을 피웠다.

식사할 때 처제는 내옆에 앉아 부채질까지 해주며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는것이였다. 열심히 부채질을 해주었건만 나는 그냥 진땀을 철철 흘리였다.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언젠가 리동지는 사범학교 5학년에 다니는 자기 둘째처제가 인물도 곱고 마음도 착하다며 나와 인연을 맺어주고싶은데 어떤가고 묻는것이였다. 너무나 끈덕진 물음에 나는 별수없이 사람을 보고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었다.

사실 그자리를 모면하려고 그런것인데 그는 마치 내게서 승낙을 받은것처럼 좋아하였다.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그런데 가만 눈치를 보니 이들이 그 말을 전해들은것이 분명했다. 결국 나는 생각밖의 《사위취재》를 받는셈이였다.

나는 더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그들모녀는 둘째가 곧 올테니 좀더 기다리라고 하며

옷소매를 붙잡았다. 나는 더 바빠맞아 황황히 그 집을 나와버렸다.

리동지의 장모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배낭속에 수박과 참외를 가득 넣어주었다. 처제는 멀리까지 따라나오며 잘 싸우고 몸성히 돌아오라고 몇번이고 곱씹는것이였다.

나는 그냥 《예, 예.》 하며 서둘러 걸음을 옮기였다.

중대에 돌아와 잘 익은 수박과 참외를 내놓으며 그 집에서 있은 일을 이야기하였더니 모두 배를 그러쥐고 웃어댔다.

《그 처녀가 있었다면 더 볼만 했겠는걸. 숫총각이라더니…》

나도 웃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정말 그 처녀가 그렇게 곱게 생겼을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며 마음이 좀 별스러워지는것이였다.

《손동무, 사랑이란 그렇게 시작되는거요. 고향에 대한 사랑, 처자들에 대한 사랑이 곧 조국에 대한 사랑이 아닐가. 바로 그래서 우리는 이 싸움에 나선거지.》

한 대원이 내 등을 툭 치며 한마디 하였다.

《그 말이 옳아.》

동무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간직된 자기들의 사랑을 그려보는것 같았다.

그렇다.

사랑을 위하여 우리는 이 싸움길에 들어섰고 그 사랑의 완성을 위하여 멀고 험난한 길을 웃으며 걷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때 출발구령소리가 울리였다.

일시에 장구류들이 덜커덕거리는 소리들이 울리였다. 대오는 또다시 전선을 향하여 떠났다. 사선을 헤치며 생사고락을 함께 한 잊지 못할 나의 첫 전우들, 포연속에서도 미래를 공상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던 그 락천가들을 나는 전쟁이 끝난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까지 단 한명도 만나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도 나의 기억속에 첫 시련을 함께 이겨내며 참된 삶을 깨우쳐주던 전우로, 스승으로 영원히 살아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리상하던 조국의 오늘속에…

나는 때때로 환각에 사로잡히군 한다. 환각속에서 그들을 만난다. 그리고 또다시 승리의 행군을 시작한다.

그러면 그 시절이 나의 눈앞에 펼쳐진다.

부서지고 뒤집혀진 대지, 타래치는 화염속에서 피빛으로 타오르는 태양, 그 붉은 해살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반짝이는 철갑모와 총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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