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삶의 승리를 향하여

 

《준법서약서》반대투쟁

 

 

전주교도소에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집권자가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내들었던 《선거공약》중의 하나가 《정치범》들에 대한 석방이였다.

하지만 《국민을 위한 국민의 새 력사》를 떠들며 출범한 《국민의 정부》도 이전 《정부》와 본질상 다를바가 없었다. 파쑈독재시대의 유물인 《사상전향제도》를 페지하는 대신 《준법서약제도》를 실시하였다. 그에 따라 《정치범》들에게 《전향서》대신 《준법서약서》를 쓸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면서 남에 거주하여 살면서 《법》을 준수하는것은 응당한것이라고 자기들의 요구를 정당화해나섰다.

전주교도소에도 그 실행을 위해 검사들이 파견되여왔다.

어느날 담당간수는 나에게 검사와의 면담에 응할것을 요구하였다. 나는 그 요구를 즉석에서 거절하였다.

《준법서약서》는 《전향서》하고는 다르지 않은가고 설명하려들던 간수는 내가 아무 대답도 없이 돌아서버리자 측은한 목소리로 간청하기 시작하였다.

《서약을 해도 좋고 안해도 좋아요. 그렇지만 내 체면을 좀 봐줘요. 검사와 만나기라도 할수 있지 않는가 말이예요.》

내가 더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간수는 어깨를 축 처뜨리고 돌아가버리였다.

내가 면담을 거절한데는 리유가 있었다. 간수가 말한것처럼 검사와 면담이나 하는데는 별문제가 없는것 같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검사와의 면담을 거절한 첫째 리유는 《준법서약서》란 본질에 있어서 《전향서》의 변종일뿐이라는것이였다. 남조선의 《법》자체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싸우는 인민들의 투쟁을 탄압하는 《법》이였다.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는것은 우리가 오늘까지 벌려온 성스러운 조국통일투쟁의 길에서 물러선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였다.

둘째 리유는 《정치범》들에게만 이 《법》을 적용한다는것은 이것이 명백히 전향강요라는것을 반증해주고있었기때문이였다.

다음으로 우리가 면담을 거절한 리유는 적들에게 사소한 약점도 보이지 않으려는데 있었다. 우리가 일단 면담을 승인하기만 하면 적들은 그것을 빌미로 악선전을 벌려 우리를 매장시킬수 있었다. 이미 옥사한 사람도 《전향자》로 만들어내기 위해 비렬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자들이니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남조선감옥에서 그러한 실례는 허다하였다.

그런자들과 법과 정의에 대하여 론리를 따진다는것은 무의미한 일이였다. 그때 나뿐아니라 전주교도소의 다른 동지들도 일체 면담을 거절하였다.

우리는 교도소뿐만아니라 남조선인민들에게도 《준법서약서》정체의 본질을 알려주어 그들을 각성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형태의 활동을 벌려나갔다.

특히 《준법서약서》제도는 개혁이 아니라 사람들을 파멸에로 몰아넣는 은페된 함정이라는데 대하여 폭로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준법서약서》에 서명한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는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평시에 그는 초혁명적언사를 쓰기 좋아하고 박식을 자랑하며 우쭐거리기 좋아하던 사람이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심장속에 깊이 뿌리박은 마음의 기둥이 없었다. 신념을 버린 인간은 설사 목숨이 붙어있다 해도 그것은 한갖 산 주검일뿐인것이다.

그날 이 《투철한 혁명가》가 머리를 푹 떨군채 사동으로 들어오던 가련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것으로서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였다. 그때 누구인가가 읊었던 떨어진 잎새에 대한 시의 한 대목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 너를 해서 무엇하리

더러운 황엽 어찌 내 신선한 아들들의 짝이랴

네 본것이 많다 해도 그것을 내 무엇에 쓰랴

극락새들의 노래에도 내 이미 지쳐버린지 오래거늘

오, 방랑자여 갈데로 가라 내 너를 알바 아니니

 

우리는 그때 한사람의 산 주검을 보며 심각한 교훈을 새기게 되였다. 아무리 투쟁경력이 오래고 리론에 밝은 사람이라 해도 혁명적신념이 확고하지 못하고 동지들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은 혁명을 끝까지 할수 없다는것이였다. 나는 그런자가 감옥에서 전향한것은 혁명의 견지에서 볼 때 차라리 리익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자가 다시 대오에 선다면 또 얼마나 큰 해독을 끼치게 되겠는가.

적들은 그자의 《준법서약서》서명을 기회로 또다시 우리를 회유하며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이때 나는 적들의 사촉을 받고 우리를 찾아왔던 한 녀인과 만난적이 있었다. 꽤 리지적으로 보이는 녀인이였다. 이제 분명 불쌍한 이 녀인이 한바탕 유치한 설교를 할거라고 생각한 나는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남조선《법》의 반동성과 우리가 《준법서약》을 거절하는 리유를 설명하였다. 한동안 나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그는 불쑥 엉뚱한 질문부터 하는것이였다.

《아버님도 전쟁때 인민군대였습니까?》

왜 그러느냐고 하자 그는 말없이 나를 살펴보는것이였다. 어떤 사람들이 자기를 들여보내면서 《빨갱이》령감들에게 괜한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잘 설복해보라고 하더라는것이였다. 하지만 자기가 여기로 들어온 기본목적은 다른데 있다고 하는것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시기 누군가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는데 후날 마을에 왔던 경찰들이 아버지는 인민군대가 즉석에서 재판을 벌리고 죽였다고 하더라는것이였다.

그 녀자로서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말이였다. 진보적인 지식인으로서 사회주의리념에 대하여 열렬히 공감해왔으며 남조선에서도 북과 같은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며 투쟁에도 나섰던 아버지가 인민군대의 심판을 받았다는것이 리해되지 않았던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오랜 세월 풀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있게 되였다.

그래서 감옥에 와서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직접 보고싶었다는것이였다. 그런데 나의 말을 들으니 의문이 풀리게 되였다고 하는것이였다.

그 녀인의 말을 듣느라니 진실이 외곡당해온 남녘사회의 력사가 다시금 되새겨지며 격해지는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오래전에 들은 한 소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소녀도 전쟁시기 아버지를 잃었다고 한다. 당시 9살이던 소녀는 미군병사들이 아버지와 마을장정들을 어느 산골짜기에 끌고가 일을 시키고는 몰살시켰다고 로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날 순진한 소녀는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경찰들에게 《고소》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소녀의 눈물젖은 연약한 뺨에 돌덩이같은 주먹이 날아들었다.

《아가리를 찢어죽일테다.》

이것이 이른바 《법》을 지킨다는 경찰의 대답이였다.

《인민군대가 너의 아버지를 죽였단 말이다. 알겠어?》

그리고 알았다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행패질을 그치지 않았다.

모든 민간인학살의 진실이 《법》의 주먹밑에서 이렇게 은페되고있었다. 아니, 겨레의 삶을 유린하는 강점군의 모든 비인간적만행이 이렇게 그 충실한 하수인들의 《법》적보호를 받고있었다. 《법》이 곧 범죄였다.

나는 녀인에게 나도 인민군대였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우리 인민군대는 언제나 인민을 위한 군대라는데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나의 말을 주의깊이 듣고있던 그는 자기도 그렇게 믿고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직접 만나보니 절대로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진다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그에게 그러니 정의와 불의를 외곡하고 민족의 삶의 진실을 외곡하여온 《법》을 우리가 어떻게 인정하겠는가고 되묻고나서 나는 오히려 그것을 반대하여 끝까지 싸울것이라고 말하였다.

녀인은 지금 온 남녘땅에서 미군만행의 진상을 파헤치고 량민학살의 진범인들을 찾아내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있으며 자기도 민족과 자기 삶의 진실을 반드시 밝히고 옳바른 삶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다짐하였다.

이 시기 나는 일부 외부인사들과의 서신을 통하여 《준법서약서》문제와 현실의 정치적문제들을 론의하고 서로 고무가 되는 이야기로 우정과 뜻을 두터이하였다. 그중 진보적인 한 사회단체 인사와 나눈 편지는 매우 인상적이고 유익한것이였다.

《김선생에게… 만일 정의와 진리의 편에 선 선각자들이 력사의 흐름을 바로 보고 좀더 과감하게 나섰다면 그 반대편에 선자들이 그처럼 권력일변도로 나갈수 없을것이고 백성들을 몽매하게 만들수도 없었을것입니다. 전 시대의 유물인 <사상전향제도>를 페지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늦게나마 옳게 결심한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동안 권력의 핵심부에서 부귀영화를 향유한자들이 또다시 <색갈론>을 들고나와 민족을 리간시키고 <정부>와 백성들을 위협공갈하고있습니다. 새 <정부>도 종래의 <정부>와 크게 다를바 없기때문에 남의 눈치만 보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도 바로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준법서약제도>란 본질에 있어서 <사상전향제도>의 변종일뿐입니다. 내노라는 시대의 선각자, 정의와 평화의 사도들이 이 준엄한 시기에 정당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있으니 반개혁세력, 반통일세력이 더욱 기세등등해 날뛰는것이 이 땅의 현실입니다. 량심수, 비전향장기수들의 전면석방은 <정부>만 아니라 백성들의 정의의 목소리와 단결된 힘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손성모선생께… 선생은 지금 19년간 옥살이하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19> 하니 옛날 중국의 진한시대 사람인 소무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왕명으로 흉노땅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된 소무는 온갖 협박과 회유를 물리치고 나라에 대한 충절을 지켰습니다. 소무의 고통은 혹독했습니다. 무서운 북방의 추위속에서 류배살며 이슬과 눈으로 목을 추기고 들쥐와 나무열매로 허기를 달래야 했습니다. 한나라와 흉노가 화친을 맺은 뒤 한나라는 소무의 송환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흉노는 그가 죽었다고 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소무가 기러기다리에 매여보낸 편지가 증거가 되여 흉노는 그를 돌려보내게 되였습니다. 억류된지 19년만의 일입니다. 이때 리릉은 송별연을 베풉니다. 소무와 리릉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며 헤여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절개를 지켜 굳세게 산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과 자기 조국을 배반하고 일신의 안일이나 누리다 파멸한자의 추악한 몰골을 보게 됩니다.

…손성모선생, 밖은 봄비에 촉촉히 젖어듭니다. 목련, 매화도 활짝 피고 나무가지에도 파릇파릇 여린 잎이 돋아납니다. 이 비가 걷히면 봄은 더욱 무르익을것입니다.》

나는 이 의미심장한 편지를 받고 너무 기뻐 온종일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나는 서신거래를 하는 과정에 그가 진보적경향을 가진 사회의 선각자들중의 한사람이라고나 보았지 이처럼 뜨거운 조국애를 지닌 인간이라는것은 미처 모르고있었던것이다.

그의 편지는 조국에 대한 신념을 지켜 싸워온 우리의 삶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으며 앞으로의 투쟁에 커다란 고무가 되여주었다.

나는 설사 감옥에서 한방울 이슬로 사라진대도 한이 없을것 같았다. 감옥안에도, 감옥밖에도 뜻을 나눈 벗들이 있고 나의 죽음이 그들의 신념을 더 굳게 해줄수 있다면 내 무엇을 슬퍼하겠는가.

밤새들도 어느새 울음을 그쳐버렸건만 나는 잠들줄 몰랐다. 아무리 새워도 즐거운 밤이였다.

창밖에 갑오년의 유명한 격전지 완산 칠봉이며 산정에서 흘러내린 물이 호남의 넓은 벌을 적신다는 모악산(母岳山)이 어렴풋이 안겨왔다. 일찌기 《후천개벽》사상의 본산이 되였던 모악산이였다. 또 《전주화의》를 믿고 무기를 땅에 묻은채 집으로 돌아가던 농민군의 어리석은 하산과 우금치에서의 처절한 패배와 같은 뼈아픈 교훈도 자자손손 새겨주는 모악산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그때 내 눈앞에 자못 엄엄하게 비껴들고있었다.

모악산은 과거에 대한 현대인들의 구구한 론의를 누르며 력사의 진실을 전해주고있었다.

《누가 농민군이 죽었다고 하는가? 누가 농민전쟁을 실패라고 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런듯 전봉준이 최후에 읊은것으로 전하여오는 시를 한수 읊어보았다.

 

국화의 릉상고절(절개) 오늘따라 어여뻐라

만번을 죽는대도 절개야 굽힐소냐

내 또한 만목상조(눈앞의 서리)를 비웃으며 가노라

 

만자천홍(온갖 꽃) 이운 후에 국화만 남았도다

이 몸 죽은 후에 백년이 흐르도록

척왜척양 이 웨침은 그냥 남아있으리

 

대하는 그 앞길에 어떤 장애가 가로놓여도 끝끝내 바다를 향해 흐르고마는것이다. 《준법서약서》의 본질은 만천하에 드러나고 적들의 음흉한 기도는 실패하고말았다.

적들은 《준법서약서》를 통하여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삶을 타락의 길로 이끌어보려 하였지만 그것은 오히려 감옥안의 혁명가들과 남조선사회의 진보적력량을 각성시키고 투쟁의지를 더 굳게 하였을뿐이였다. 우리 심장속에는 이미 투쟁의 길에 나서던 그 시절 신념으로 새겨넣은 조국과 혁명을 위한 서약외에 그 어떤 다른 《서약》이 새겨질 자리가 있을수 없었다.

그 어떤 책동도 결코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주통일의 참다운 삶을 찾아나가는 겨레의 신념을 꺾을수 없다. 이것은 예언이 아니며 우리가 오랜 기간의 투쟁속에서 확신한 력사의 진리이다. 신념을 지닌 삶은 언제나 승리한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