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영원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세월의 풍상을 다 맞으면서도 의연 하늘 우러러 쳐든 머리를 숙일줄 모르고 세상을 굽어보는 거연한 자태로 높이 솟아있는 산악의 모습은 영원의 상징인듯싶다. 하지만 제아무리 거대한 산악도 그속에 억센 바위가 없다면 어찌 무궁토록 높이 솟아 그 위용을 자랑할수 있으랴.

발밑의 들판과 나지막한 언덕들이 철따라 세월따라 자기 모습을 바꾸어가며 온갖 허물을 이름모를 잡풀들과 들꽃따위들로 치장하느라 여념이 없을 때 높은 산악이 그 당당한 체모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음은 만년세월 그 의지가 되여주는 바위가 있기때문인지도 모른다. 지심깊이 뿌리내린 억센 바위가 있어 장엄한 산악이 그처럼 장쾌한 모습을 빛내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남조선의 감옥에 있을 때 자주 철창너머 멀리의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인생을 그에 비겨보며 자주 자신에게 느닷없이 묻군 하였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만들었던가.

조국이였다!

세상이 모두 변한대도 자기의 사상, 자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전진해가는 조국의 모습은 우리 마음속에 억척같은 신념의 기둥으로 자리잡았다. 그 기둥이 있어 우리는 언제나 승리하였으며 가혹한 시련의 세월을 이기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나의 옥중생활에서 아니, 나의 한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 시절은 우리가 민족최대의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며 다시 일어서던 나날이였다. 나는 자주 그 시절을 추억하며 절망으로 끝나버렸을지도 모를 그 시련을 우리가 무엇으로 이겨내고 또다시 승리를 이룩할수 있었는가를 생각해보군 한다.

1990년대는 우리앞에 사나운 광풍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무너지자 적들은 명절이나 맞은것처럼 들떠있었다. 숱한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사회주의의 《종말》과 우리 사회주의제도의 《붕괴》를 떠들기 시작했다.

한푼의 가치도 없는 그 떠벌임에 그리 마음이 상할것까지는 없었지만 감히 우리 공화국을 고장난 비행기에 비유하며 추락은 시간문제라고 하던 김영삼역도의 망발에 우리는 분노를 금할수 없었다.

나는 이런자는 민족의 족보에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놈들은 우리에게 《북에서도 붉은기를 내리게 될것이다. 늦기 전에 전향하여 살길을 찾으라.》고 입을 모아 떠들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 황당무계한 망언을 단호히 일축해버렸다.

《우리의 사회주의는 위대한 수령님의 주체사상을 리념으로 하는 참다운 사회주의이다. 너희들은 그 무슨 <종말>이 아니라 우리 조국이 붉은기를 더 높이 들고 온 인류를 위대한 미래를 향하여 이끌어가는 새시대의 시작을 보게 될것이다.》

그후 력사가 이 진리를 증명해주었다.

평양의 하늘가에 날리는 붉은기는 더 힘차게 휘날렸다. 우리는 자랑찬 조국의 모습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크나큰 긍지와 함께 조국은 영원히 불패이라는 신념을 다시금 새겨안았다.

그런데 보다 큰 시련이 우리앞에 다가왔다. 꿈에도 생각해본적 없는 슬픔의 날이 왔다.

옥중투쟁의 그 시절 우리에게 시련이 아니고 고난이 아닌 해가 언제 있었으랴만 1994년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긴 엄혹한 시련의 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곧 서울에 오신다는 소식에 환희와 격정으로 설레이던 그해 7월, 갑자기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가 전해졌다.

그 순간 나는 의식을 잃고 감방바닥에 쓰러졌다. 동지들의 방조속에 간신히 눈을 떴을 때 나는 완강히 머리를 저었다. 그것을 믿는다는것은 삶의 절망을 의미하는것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은 세상밖에 버려진 씨앗처럼 눈물속에 방황하던 이 소년을 한품에 안아 참된 삶의 길로 이끌어주신 삶의 은인이시고 인생의 스승이시였다. 하기에 나는 수령님의 념원을 실현하는것을 삶과 투쟁의 목표로 삼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길에 나섰던것이다.

내 삶의 시작도 그 품속에 있고 희망도 보람도 그 품속에 있었다.

어찌나 하나만이랴. 우리 동지들모두가 그러했다. 그러한 우리였기에 비보가 안겨준 충격은 누구보다 큰것이였다.

나는 한순간 이것이 적들의 모략이 아닐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언젠가 적들이 그런 모략을 꾸민적이 있었던것이다.

비통한 곡성이 낮이고 밤이고 온 사동안에 꽉 차있었다.

어느날 울다 지쳐 쪽잠에 들었던 나는 희한한 꿈을 꾸었다.

룡남산마루에 높이 서계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나를 향해 환히 웃으시며 어서 오라고 손저어 부르시는것이였다.

나는 건장하신 수령님의 모습을 뵙는 순간 너무 기뻐 목청껏 수령님을 부르며 달려갔다.

잠이 깨고 이 모든것이 꿈이였음을 알게 되자 나는 또다시 슬피 울기 시작하였다. 정녕 다시는 뵈올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기둥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듯 한 허탈감이 엄습해왔다.

우리는 7월 9일부터 9일간의 단식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비단 대구교도소에서 있은 일만이 아니였다.

7월 10일 남조선의 신문, 방송들은 대전, 전주, 광주 등 남조선전역의 교도소들에 수감되여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이 일제히 단식에 들어간 소식을 보도하였다.

적들은 일반 재소자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는것이 두려웠던지 철저히 격리시키고 온 겨레가 상제가 되여 슬피 우는 그 나날에도 우리의 신념을 흔들어보려고 온갖 비렬한짓을 다하였다.

이제는 드디여 우리가 모든것을 포기할 때라고 타산했던것이다.

우리가 단식을 시작하자 놈들은 즉시 비상을 걸고 24시간 감시를 조직하였다. 그때의 낮과 밤을 잊을수 없다.

감히 우리 삶의 의의에 대하여 떠벌이는 놈들의 말 한마디한마디는 우리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히였다.

감옥밖에서도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되고있었다. 김영삼역도는 《전군비상경계령》을 내리고 동족의 아픈 가슴에 칼질을 해대고있었다.

남조선의 각계각층 사회단체들과 민주인사들은 이 반민족적죄행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섰다.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는 성명을 발표하여 일찌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피어린 혈전을 벌리시고 생전에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하시던 수령님을 북녘동포들과 같이 애도해야 한다고 하며 당국에 조문단파견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강희남의장 등 5명은 조문단을 무어 판문점을 향해 가던중 괴뢰경찰에 체포되였다.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등 20여개의 계층별사회단체를 망라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련합》도 당국의 처사를 비난하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해 더 힘껏 투쟁할것을 결의하였다.

《통일맞이 7천만겨레모임》 리사장 박용길 등 여러 인사들이 북으로 조전을 보내였으며 야당인사들속에서는 당국의 처사를 《극한적반공주의》로 규탄하는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서총련》을 비롯한 경향각지의 청년학생들은 어버이수령님을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하신 절세의 애국자로 칭송하며 분향소를 설치하여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담은 유인물을 살포하는 동시에 추도행사를 막아나서는 당국자들을 반대하는 각종 형태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때 대구에서는 살인적인 무더위가 계속되고있었다. 교도소의 감방들은 폭양에 가마속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빈사상태에 이르러 의식을 잃는 동지들이 생겨났다. 그것은 단순히 육체적고통때문만이 아니였다.

나도 정신적허탈감을 털어버리기가 어려웠다.

과연 우리의 삶이 여기서 끝나는것인가. 그럴수는 없었다. 하다면 이 난국을 무엇으로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가.

어느날 밤 우리가 있던 사동에서는 어버이수령님의 태양상을 모시고 추도모임이 열리였다.

모임에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라는 추도사가 랑독되였으며 수령님을 받들어 혁명의 먼길을 변심없이 걸어온것처럼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끝까지 혁명의 한길을 걸어갈 비장한 맹세를 다지였다.

일이 이렇게 번져지자 놈들은 드디여 《인권존중》이니, 《민주주의》니 하는따위의 온갖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성을 드러냈다.

 그 《너그러운 사나이》들은 전향의사가 전혀 없는 《정치범》들의 서신거래나 면회를 전부 차단시키고 끈질긴 심리전을 벌리기 시작하였다.

《지조니, 의리니 할것이 없다. 이제 당신들이 할 일은 다 끝났다. 지조도 지키고, 의리도 지킬만큼 지켰으니 속절없이 감방에서 죽음을 기다릴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놈들의 그 어떤 폭력도 회유도 우리를 굴복시킬수 없었다. 우리는 오히려 단식투쟁, 함성투쟁, 입방거부투쟁 등 활동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벌려나갔다.

가슴 에이는 슬픔을 꿋꿋이 이겨나가는 동지들의 모습을 보느라니 눈굽이 뜨겁게 젖어들었다.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던 나의 눈에 높이 솟은 산악이 비껴들었다.

산악이 만년세월을 천연바위에 의지해오듯이 사람에게는 언제나 신념의 기둥이 있어야 한다.

이런 때 우리에게 남조선사회의 각계각층속에서 우리 장군님의 위대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파다하게 퍼져가고있는데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남조선뿐이 아니였다. 전세계의 이목이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이어 사회주의조선을 이끌어가시게 될 경애하는 장군님께로 쏠리고있었다.

세계의 주되는 관심은 이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어떻게 이어나가실것인가 하는데 모아지고있었다.

수령에 의해 개척된 혁명의 전도문제는 후계자가 수령의 뜻을 어떻게 받들어나가는가 하는데 달려있다는것은 력사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맑스, 엥겔스의 지위를 계승했던 베른슈타인이나 레닌과 쓰딸린의 지위를 계승했던 흐루쑈브의 경우는 후세의 혁명가들에게 수령의 후계자는 그 지위가 아니라 수령의 뜻을 드팀없이 계승하며 그 뜻에 무한히 충실한 혁명가의 귀감이여야 한다는 교훈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온 세계가 관심을 가지는것은 응당한 일이였다.

이 시대적흐름을 포착한 내외의 보도매체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풍모와 령도적자질에 대한 객관적자료들을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무한한 충실성, 그이께서 사상리론분야와 사회주의건설에서 이룩하신 업적을 칭송하는 자료들이였다.

거기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한 탄생과 혁명가로서의 성장과정, 불멸의 혁명활동의 시작과 혁명과 건설을 령도해오시면서 보여주신 특출한 실력과 관련된 내용들이 상세히 언급되여있었다.

지어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의 보도매체들도 이런 보도를 하고있었다.

어떻게 다른 말이 나올수 있겠는가.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활동과정은 철두철미 수령님의 뜻을 받들고 수령님의 념원을 실현하기 위해 바쳐진 나날이였다.

그이는 령도자이시기 전에 참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존경하고 따르는 절세의 위인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하여 알고싶어 하는 열의는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감옥안에서도 뜨겁게 타올랐다.

나는 오랜 세월 적구에서 투쟁해온 동지들에게 우리 당이 혁명의 수령의 대를 이을 후계자문제를 빛나게 해결한데 대하여 해설해주었다.

그리고 적들의 반사회주의책동이 극도에 달하고있는 조건에서도 우리 조국이 혁명의 붉은기를 변함없이 들고 나가는것은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기때문이라는데 대하여 확신에 넘쳐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김일성종합대학시절에 그이를 직접 뵈웠다는것을 알게 된 그들은 몹시 기뻐하며 나에게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줄것을 요구했다.

나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조국해방전쟁시기 어버이수령님의 안녕을 축복하여 지으신 노래 《축복의 노래》에 깃든 사연을 들려주는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다니던 나날 체험한 일들과 졸업한 후에 들은 전설적인 이야기들도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중에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선행한 로동계급의 혁명운동력사의 교훈에 대하여 분석하시며 당의 통일단결을 고수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우리 혁명의 최고뇌수, 당의 최고령도자,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의 중심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옹호보위해야 한다고 대학생들을 일깨워주시던 이야기도 있었다. 그때 그이께서는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하고 당의 두리에 하나로 뭉쳐 당의 통일단결을 목숨으로 지키자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지들의 모습에는 기쁨의 미소가 피여올랐다.

나는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을 벌리시여 현대수정주의자들의 《리성적제국주의론》의 반동성을 까밝히시고 현대제국주의본성에 대하여 명철하게 밝혀주신 이야기와 력사문제에서 김유신을 명장이 아니라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킨 사대주의적인 인물로 재평가하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고계시는 해박한 군사지식과 뛰여난 명장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도 화제에 올랐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미제가 남조선괴뢰도당을 부추겨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도발을 매일과 같이 감행하던 시기 어은동군사야영소에로 혁명활동의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그 시기 장군님께서 현대의 정치가는 문무를 겸비해야 한다고 하시며 제2차 세계대전시기 파쑈도배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준 쓰딸린그라드격전, 세계 최대규모의 요새선이라고 하던 《마지노선》과 《만네르하임선》 등 전쟁사의 기록들에 대하여 하신 예리한 분석은 학생들은 물론 군사전문가들속에서도 경탄을 자아내였었다.

나는 동지들에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천품으로 지니고계시는 숭고한 인민적풍모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그때로서는 나도 대학 후배들에게서 전해들은 평양시 련못동-룡성도로확장공사때 있은 이야기였다. 그때 집에 탄이 없어서가 아니라 귀한 탄이 묻히는게 아까와 옛 집터자리에서 탄을 모는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공사에 지장이 있더라도 불도젤로 흙을 몽땅 밀어내고 탄을 안전한 곳에 옮겨놓아 인민들이 마음놓고 퍼가게 하도록 하시고 할머니를 도와 손수 석탄바께쯔를 집까지 날라다주기까지 하시였다는것이였다.

늦게야 그이가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라는것을 알고 황황히 인사를 드리는 할머니에게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도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이라고 하시며 인민을 위해 일하는것보다 더 훌륭한 일은 없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되새겨볼수록 사상리론의 높이도 명장의 자질도 인민적풍모도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상에 접하는 동지들의 눈동자마다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따라 한생을 다 바쳐갈 새로운 결의가 어리여있었다.

《손동무, 이제는 우리도 알았소. 힘이 생기오.》

눈물에 젖어 번쩍이는 그 모습들을 보는 나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나는 동지들과 함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룡남산마루에서 다지신 맹세를 담은 노래 《조선아 너를 빛내리》를 부르고불렀다.

 

위대한 수령님 높이 모시고

주체의 한길로 억세게 나아가리

사나운 풍랑도 폭풍도 헤쳐

조선을 이끌고 미래로 가리

아 조선아 너를 떨치리

 

잊을수 없다. 철창으로 흘러드는 감홍색 저녁노을속에 평양의 하늘을 그려보던 그 모습들, 노을속에 울려퍼지던 그 석쉼한 목소리들…

그 나날 슬픔을 용기로 바꾸며 일어선 우리는 적들과의 투쟁을 계속해나갔다. 그때 우리가 투쟁에서 거둔 첫 성과는 그 어느때보다 큰 의의를 가지는것이였다.

발단은 놈들이 나를 찾아온 한 청년을 교도소 문밖에서 돌려보낸것이였다. 그 청년은 나와 이미전부터 알고 지내던 청년이였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비보에 접하자 우리와 함께 슬픔을 나누고저 수백리길을 달려왔던것이였다. 나는 도저히 참을수 없어 또다시 단식투쟁을 시작하였다. 다른 동지들도 나의 단식투쟁에 합세하여 동조단식에 들어갔다.

단식 3일째 되는 날 공안부장이라는자가 찾아와 회유도 하고 위협도 하였으나 우리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자가 돌아간 후 나를 보안과로 불러들인 보안계장은 그 청년이 다시 오면 면회를 시키겠으니 단식을 중단해달라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우리의 조건은 지금 당장 만나는것이라고 잘라말하였다. 그자는 아래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재차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 사동전체가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갈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내가 감방에 돌아온 후 놈들은 별수없이 그 청년의 행처를 찾는다, 그 청년이 가있는 서울에 련계를 취한다 하며 바삐 돌아갔다. 다음날 그 청년이 수백리길을 단숨에 달려왔다. 그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를 만날수 있었다.

이미 서신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터였지만 직접 만나니 첫눈에 정이 드는 청년이였다. 순박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니 이런 청년도 있었는가 하고 신기하게 여겨졌다. 단식까지 하며 만난 소득이 있었다.

그날 나는 공안계장에게 단호히 말하였다.

《그는 비전향장기수들을 친할아버지처럼 존경하는 청년이였다. 민족의 가장 위대한분을 잃은 오늘 슬픔을 못이겨 우리를 불원천리 찾아온것이였다. 인간으로서 너무도 순수한 이 상봉을 어찌 불허할수 있는가. 앞으로 당신의 행동을 지켜보겠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가 대답을 망설이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잠시후 그는 의외의 말을 하는것이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당신네는 여전하구만. 우린 당신들이 이제는 모든것을 포기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댔소. 고통을 주고 얼리고 하면서 이젠 감옥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할 날을 기다렸소. 솔직히 그건 우리에게도 리득이 큰일이니까. 한등급씩 오르고 명예도 얻고 대우도 좋아질게고…》

그의 숨결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런데 당신들은 뭘 바라고 그러는거요? 한생에 남은것이라고는 그따위 한겹 수의와 때묻은 모포 한장이 고작인 당신들, 영원히 벗어 못날 이 벽속의 인간인 당신들이 말이요. 혹 고집때문이요? 아니면 사나이의 자존심? 그것때문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소?》

《당신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알수 없을거요. 당신같은 사람과 우리 인생사이의 영원히 메울수 없는 차이가 거기에 있는거요. 새겨듣소. 우리에게는 우리가 인생을 영원히 아름답게 살도록 가르쳐주는 그런것이 있단 말이요.》

그자의 얼굴엔 짙은 의혹이 비끼고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사회계인물들과의 접촉이 다시 시작되게 되였다.

이것은 결코 상봉 그자체에 의의가 있는것이 아니였다.

민족이 상실의 쓰라림을 안고 몸부림치던 그 나날 슬픔을 딛고 일어선 우리가 이룩한 첫 승리였으며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경애하는 장군님을 받들어나가려는 우리의 투철한 신념의 과시였다.

우리에게서 드디여 변화가 있을것이라는 기대가 허물어지자 적들은 절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눅거리관복을 걸치고 지꿎은 허영을 쫓아 기만당한 생을 살아온 부랑아들이 오직 진리에 몸을 맡기고 한생을 바쳐가는 사나이들앞에서 부지중 느끼게 된것은 자기 정신의 무지와 빈궁, 그것이였다. 사실 이런자들이야말로 불행한 인간들인것이였다.

통쾌한 만담 하나가 옥뜰을 넘어왔다. 어느 한 단체가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앞으로 인류가 사람으로 복제해서는 안될 인물의 첫 순서로 김영삼이 뽑혔다는것이였다. 민심을 잃은 그자는 벌써 인간의 가치를 잃고있었다.

어느덧 봄, 여름이 다 가고 그해의 마가을에 접어들던 어느날이였다. 복도로 나가던 나는 작은 창문으로 날아드는 꽃잎 하나를 보았다. 바싹 말라 누렇게 색이 바랜 꽃잎이였다. 무심결에 집어들려는데 자꾸만 부스러져 볼품없이 되여버렸다. 부스러진것들을 손바닥에 놓고 맞추어보니 뭇꽃들속에서 요염한 자태를 뽐내던 멋쟁이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날아온것일가 하고 창 멀리로 내다보니 초라한 야산 하나가 눈에 띄웠다. 한때는 뭇새들이 지저귀며 흥성이던 산이였었다.

그러니 그 야산의 미는 사실 높은 산정에는 오를수 없어 낮은 산언덕에서나마 한시절을 즐기던 잡풀들의것이였다. 락엽이 지고보니 야산들이란 부끄러운 흙더미일뿐이였다. 그뒤에 희푸름하니 바라보이는 높은 산악이 있었다. 하늘맑은 가을이 오니 웅장한 자태가 더 뚜렷해져 의젓하고 기품이 당당한 사나이를 련상시켰다. 온통 벗기운 몸을 옹송그리고 잡풀들이 치장해줄 한시절을 기다릴수밖에 없는 초라한 언덕이며 등성이, 야산들과는 달리 사시장철 그 높이와 웅장함을 미로 삼는 산악이였다.

그 억센 산악은 영원의 상징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떠받들고있는 굳은 바위들을 떠나 어찌 높은 산악을 생각할수 있으랴.

지심깊이 뿌리박은 억센 바위가 있어 높은 산악이 있다.

우리가 민족최대의 슬픔을 이기고 혁명가로서의 삶을 변함없이 이어올수 있은것은 우리의 심장속에 영원한 우리의 조국,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기때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우리 운명의 끝이란 없다. 장군님은 영원한 우리 삶의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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