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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결연》을 반대한 리유
혁명가에게 있어서 신념은 생명과 같은것이다. 따라서 전향은 곧 죽음이며 죽음을 거부하는 우리의 투쟁은 삶을 위한 끊임없고 줄기차고 강인한 노력의 연장이였다.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육체적고통이, 때로는 참기 어려운 고독이, 때로는 달콤한 유혹이 삶이냐 죽음이냐 선택을 강요하며 우리를 괴롭혔다. 지금도 나에게는 1980년대말에 있었던 한가지 사실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대전교도소 수인들속에서는 전에 없던 《자매결연》바람이 일고있었다. 《자매결연》이란 감방안의 수인이 감옥밖에 있는 임의의 종교인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다는것이였다. 그렇게 되면 수인에게는 많은 《혜택》이 차례지게 되여있었다. 우선 매주 한번씩 《결연》한 사람과 만나 맛좋은 음식을 대접받으며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고 가끔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갈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서신교환도 하고 그들이 보내오는 차입물로 고달픈 감방생활에서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질수도 있었다. 이런데로부터 감옥내에는 종교적신앙은 없으면서도 종교단체들에서 들어오는 음식을 받아먹으려고 여러 종교단체에 이름을 등록하는 가짜신자들이 수많이 생겨나고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리스도교도가 되고 4월 초파일(음력 4월 8일)이 오면 불교신도가 되는이들을 《떡신자》, 《종합신자》라고 불렀다. 종교집회를 하는 날이면 떡봉지를 받아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먹어야 복인께, 살아야 명인께.》 하는 모양이 참 가관이였다. 겉보기에 《자매결연》은 종교인들이 벌리는 종교적이며 《인도주의》적인 문제이며 수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들과 결연관계를 맺고 자기 마음에 드는 종교를 선택하게 되는 신앙상의 문제같아 보였다. 하여 처음에는 우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차츰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어느날 한 동지는 종교를 알아야 종교인들과 대화할수 있다고 하면서 매주 한번씩 종교강의를 받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고 하는것이였다. 얼핏 보면 별다른것이 없을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동지들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말하였다. 며칠후 우리는 몇몇 동지들과 토론해보았는데 모두 《자매결연》은 단순히 《인도주의》적인 문제, 종교상의 문제가 아니며 본질적으로는 교도소가 일부 종교인들을 리용하여 우리의 눈길을 감옥밖의 세계에로 돌려 신념을 흔들며 동지들사이의 단결을 허물어보려는 일종의 심리전이라는데로 의견이 모아졌다. 《자매결연》은 종교의 보자기에 가리워진 위험한 독소였다. 그 당시 교화를 담당한 교무과는 선심이나 쓰듯이 목사, 신부, 대학교수들을 초청하여 우리와 상담하도록 들이밀며 《자매결연》을 부추겼다. 《자매결연》의 방법으로 우리를 회유해보려는 놈들의 책동은 참으로 집요한것이였다. 교무과 직원들은 나에게도 《자매결연》을 권고하군 하였다. 대구교도소 교무과의 한 직원은 내가 대전교도소의 신인영동지 앞으로 쓴 편지를 직접 그쪽 교무과와 교섭하여 보내주기도 하고 서울에 있는 누님과 전화도 할수 있게 《방조》도 해주며 나를 《자매결연》에 끌어넣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런 실례는 허다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종교인들과의 사업을 목적으로 편지교환이나 면회는 수락하였으나 《자매결연》 같은것은 끝까지 반대하였다. 놈들의 이런 식의 회유는 가족을 통해서도 진행되였다. 놈들은 나의 누님과 조카가 면회를 오면 이들모녀에게서 모종의 약속을 받아내군 하였다. 그럴 때면 나의 누님은 《우리 성모는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기로 소문이 났는데 그러다가 무슨 <결연>은 고사하고 형제간 의마저 상한다.》고 하며 단마디로 거절하였다. 문제는 나의 조카였다. 독실한 카톨릭교신자인 그는 나를 만나자 《외삼촌, 종교를 믿어요. 그러면 마음의 안정도 얻고 외로움도 달랠수 있어요.》 하면서 애절히 호소하는것이였다. 나는 그에게 삼촌을 생각하는 너의 그 마음만은 고맙게 생각한다만 종교문제는 리념상의 문제이니 더이상 말하지 말라고 점잖게 타일렀다. 《무엇을 믿는가는 신념에 관한 문제이다. 너는 이 삼촌이 리익을 좇아서 신념마저 바꾸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그애는 종교와 사상은 별개의 문제라고 하면서 종교의 《유익성》에 대하여 장황하게 늘어놓더니 나중에는 내가 신자가 될것을 강력히 요구하는것이였다. 나는 격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자제하였다. 물론 나도 남조선에서 종교인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기네 교를 선전하고 다니는것을 많이 보아왔으므로 그의 행동을 전혀 리해못하는바는 아니였다. 하지만 삼촌으로서 정견이나 신앙에 대한 견해를 바로잡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편지를 써보내였다. 《… 남에게 자기의 사상을 강요하는 어떤 시도도 본질적으로는 폭력이다. 나는 사회주의자이지만 너에게 나의 사상을 강요하지도 않고 억지로 권하지도 않는다. 물론 네가 나를 리해하고 사회주의사상을 신봉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사상에 대한 문제는 본인자신의 문제로 보고 간섭하려고 들지 않는다. 과연 누가 감히 타인에게 사상의 선택을 지시할 권리를 가졌단 말이냐? 리성을 지닌 인간은 오직 진리만을 사랑하고 스스로 그것을 추구하고 선택하는 세계의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다. 사상의 선택은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중에 가장 신성한 권리이다. 사랑을 설교하는 종교를 믿는다는 네가 어찌 인간의 선택권을 무시하려드는거냐. 이것은 종교의 리념에 비추어봐도 심각한 모순이라고 본다. 다시말하건대 사회주의는 내가 인생의 체험속에서 진리로 받아들인 리념이다. 네가 다시 이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생각이면 먼저 나와 모든 관계를 끊는것이 좋을것 같다.》 얼마후 조카가 인편을 통해 회답을 보내왔다. 자책에 젖은 편지였다. 《… 삼촌, 미안합니다. 사과드려요. 사실 그것은 삼촌을 자유롭게 해드리고싶은 제 마음이였어요. 창살과 두터운 유리를 가운데 두고 잠간의 만남을 위한 몇시간의 준비와 설레임 그리고 돌아섬의 쓸쓸함, 공허감, 안타까움, 이 모든 거리감이 빨리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였지요. 너그러운분이시니 용서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삼촌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제 마음은 몇배나 더 아파요. 내가 그렇게 경망하고 례의없는 애인줄 몰랐는데 다시 돌아볼수 있게 해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얼마 뵙진 못했지만 실로 삼촌에 대한 애정이 많아요. 저의 가정이야기를 하고싶은데 문장력이 부족해요. 나중에 만나 이야기해요. 평화로운 마음으로 부디 건강하세요.》 교도소측에서 일으킨 《자매결연》바람을 타고 일어난 이 문제로 결별로 이어질것 같던 나와 조카사이의 관계는 보다 더 가까워졌고 그애는 수십년을 자기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였다. 《자매결연》을 순수 종교적인 문제나 인륜적인 문제로가 아니라 사상과 신념과 관련된 문제로 보았던 우리의 견해가 옳았다는것은 후날 여실히 증명되였다. 우리는 《자매결연》의 본질을 까밝히고 이를 반대하는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려나갔다. 적들은 우리를 기만적인 《자매결연》으로 롱락할수 없었으며 동지들사이의 관계는 그 어떤 신앙적뉴대도 무색케 하는 사상의지적단결로 더욱 강화되였을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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