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락원

 

 

나는 때때로 사람들로부터 지옥같은 그 감옥에서 어떻게 모진 고통과 고독을 이겨낼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받군 한다. 그때마다 나는 늘 같은 대답을 반복하군 한다.

비록 절해고도일망정 우리에게는 동지들이 있었기때문이라고…

우리는 평범한 날에는 다 알수 없었던 동지라는 말의 참된 의미를 매일, 매 순간 죽음의 위험이 도사린 적구의 감옥에서 깨달은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감옥을 인간적삶이 끝나는 곳, 악의 세계, 잊혀진자들의 세계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감옥은 결코 삶이 끝나는 곳도 악의 세계도 아니였다. 동지들이 있는 한 설사 그곳이 현실의 지옥이였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죽음을 초월하는 삶이 시작되는 곳이였고 헌신적인 사랑의 세계였다.

1990년 7월은 내가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난 나날이였다.

그때 나는 류행성출혈열로 40℃이상의 고열에 시달리며 생사기로에서 헤매이고있었다. 지난 시기 이 병에 걸린 사람의 80%이상이 사망하였고 겨우 죽음을 면한 사람은 대다수가 정신박약자나 불구로 되였다고 한다.

얼마나 고통이 심하였던지 웬만해서는 아픔을 표현하지 않던 내가 신음소리를 내며 몸부림쳤다고 한다. 생명은 시간을 다투고있었다. 의식을 잃었던 나는 몸이 완쾌된 후에야 사건의 전말을 알수 있었다.

내가 앓기 시작한지 여러날 되도록 교도소측은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고있었다. 더는 참을수 없었던 동지들은 환자를 당장 병원으로 이송시킬것을 요구하였다. 동지들의 투쟁의 결과 적들은 별수없이 나를 교도소지정 병원으로 후송시키였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내 병에 대해 진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증상으로 보아서는 류행성출혈열과 흡사했으나 중부지대에서는 아직 이 병이 발병한 례가 없다는것이였다. 나는 다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여서야 류행성출혈열로 확진받게 되였다.

이 소식이 밖에 전해지자 연구기관들에서 너도나도 달려와 나의 피를 실험용으로 뽑아갔다. 결국 나는 온몸의 피가 완전히 오염된 상태가 되고말았다. 당장 피를 바꾸어넣지 않으면 나의 생명은 끝장이였다. 하지만 그 많은 량의 피를 나의 몸에 넣어줄 병원은 없었다.

병원측에서는 더는 가망이 없는것으로 교도소측과 토의하고 나의 둘째누님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었다. 병원에 온 누님은 피골이 상접한 나의 모습을 보며 그냥 서럽게 울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나의 소식을 전해들은 15사 전체 동지들이 앞을 다투어 자기들의 피를 뽑겠다고 나섰던것이다. 극단한 개인주의가 인간본연의 생활방식으로 사람들의 골수에 사무친 사회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기적이였다. 그 강마른 팔들을 쳐들고 피를 뽑겠다고 나선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혁명동지들사이에만 있을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화폭이였다.

그 소식에 감동된 나의 조카도 피를 뽑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이렇게 되여 나는 일단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였다.

그로부터 며칠후에야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였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몸을 움직일수 없었다. 한팔엔 점적기가 달리고 다른 한팔은 수정으로 철침대에 매여있었던것이다. 그리고 시체나 다름없는 나를 간수 9명이 3명씩 조를 짓고 24시간 감시하고있었다.

입원한지 14일만에 나는 병원에서 퇴원하였다. 병은 급한 고비를 넘기였지만 아직 제발로 걸을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하지만 교도소측은 막무가내였다. 입원비를 물수 없다는것이다. 교도소에서는 나를 의무과로 보내려 하였으나 나는 그것을 거절하고 동지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줄것을 요구하였다.

하여 나는 다시 본래의 감방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몸에서는 시체썩는것과 같은 고약한 냄새가 풍기고있었다. 제손으로 세면조차도 할수 없었다. 이때 나를 헌신적으로 도와나선 동지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을것이다. 방을 깨끗이 청소해놓고 나를 기다리던 그 동지는 내가 돌아오자 물수건으로 나의 몸을 닦아주고 빨아놓았던 옷을 갈아입혀주었다. 그는 매일 큰 늄통에 물을 담아 뙤약볕에 덥혀가지고 나의 몸을 씻어주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해 돌보아주었다.

이런 정성이 있어 나는 단시일내에 건강을 회복하고 일어서게 되였다. 동지를 위한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는 비단 나에게만 한한것이 아니였다.

대전교도소에는 적탄에 뼈가 부서져 량팔을 전혀 쓸수 없게 된 동지가 있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 동지들은 그를 위해 30여년간 몸을 씻어주고 옷도 빨아주면서 혁명적동지애의 미담을 창조하였다.

또 한 동지는 중풍으로 오래동안 한자세로 누워있다보니 온몸에 욕창이 생기고 고열이 나면서 사경에 처하게 되였다. 이때 우리 동지들은 그 욕창을 터치고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내면서 끝내 그를 사경에서 구원해내고말았다.

또 한번은 한 동지가 심한 위병에 신음하고있었다. 이럴 때는 미음이나 죽을 먹이는것이 상식이였지만 놈들은 그런 사람에게조차 꽁보리밥을 주었다.

《뭐, 쌀죽? 난 간수질하면서 이런 일을 더러 겪어봤어. 어차피 죽을 팔자면 천하별식을 먹여도 다 괜한 짓거리야.》

우리의 항의에 간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환자의 기운은 시시각각 쇠약해져갔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런 때 한 동지가 뭔가 생각이 떠올랐던지 급히 꾸둑꾸둑해진 밥덩이를 한입 물고 꼭꼭 씹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자기 사품속에서 깨끗이 빤 양말을 꺼내더니 양말목에 보리밥덩이를 놓고 즙을 짜내기 시작하였다.

《먹지 않으면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 억지로라도 먹고 함께 조국으로 가자.》

그 절절한 한마디에 꼭 감겨졌던 동지의 눈귀로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초들초들 마르고 허옇게 버캐가 인 입술을 적시며 《불사의 령약》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후날 적들은 죽음이 림박한 순간에야 그 동지를 석방시켰지만 그는 죽기는 고사하고 건강을 회복하고 우리와 함께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첫걸음도 동지들과 함께, 마지막걸음도 동지들과 함께 걷는것이 혁명가의 삶이다. 변절이란 다른것이 아니다. 동지들에 대한 배신, 바로 그것이다.

신념이란 또 무엇인가. 그것은 동지에 대한 혁명적의리를 지키는것이기도 하다.

참다운 동지, 그것은 참된 인간이란 뜻이다. 그것을 저버리면 목숨은 살았어도 혁명가의 삶은 끝나는것이며 그들의 기억속에 살 때 죽어도 영생하는것이다.

하기에 한 동지는 출옥하는 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오늘 감옥문을 나선다. 그러면 나의 몸은 자유로워지는것이다. 하지만 앞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감옥에서는 앓아도 동지들의 정성이 있었지만 저 감옥밖의 사회에서 누가 나를 그렇게 진심으로 돌보아주겠는가. 나가는 나의 심정은 무겁기만 하다. 그냥 동지들과 함께 있고싶다.》

일반수인들은 감옥은 지옥이고 그에 비하면 감옥밖은 락원이라고 생각한다. 하여 그들의 지향은 온통 감옥밖으로만 향해져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투쟁속에서 우리가 체득한 진리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것이였다. 육신의 자유가 곧 삶이고 행복이 아니였다. 육체의 자유는 없어도 마음속에 간직된 동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어 절해고도의 감옥에서도 우리는 외로움을 모르고 투쟁을 계속해나갈수 있었다.

결국 사랑이 없는 세계는 궁전도 지옥이지만 사랑과 믿음이 넘치는 세계는 감옥조차 락원이 아니겠는가.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