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지 못할 흥남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지 얼마 안되여 나는 한통의 편지를 받게 되였다. 나는 편지겉봉에 씌여진 발신인의 이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림용수, 몇번이나 그 이름을 입속으로 불러보았지만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귀환을 축하하는 장문의 편지를 읽어나가던 나의 눈에 《사포공업대학》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안겨왔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사포공업대학 화학과에서 공부하던 동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는 내가 흥남공업대학에서 사포공업대학으로 옮긴 후에 가르친적있는 제자였다. 나의 눈앞에는 총명하고 탐구심이 강했던 한 청년의 모습이 우렷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그 시절 정들었던 동무들의 모습이며 교사와 공장의 전경이 가슴쩌릿이 안겨오는것이였다. 흥남은 나의 인생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남긴 추억의 고장이였고 나에게 당과 수령에 대한 로동계급의 충실성, 순결한 량심, 집단주의정신을 알게 해주고 그들처럼 자신보다 조국을 위한 투쟁의 길을 걷도록 떠밀어준 혁명대학이였다. 나는 그날 밤이 새도록 안해와 함께 흥남시절을 즐겁게 추억하였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나는 공장대학인 흥남공업대학 교원으로 배치되였다. 흥남공업대학에서 내가 맡은 과목은 전공과목이 아닌 철학이였다. 뜻밖인것은 강좌장선생의 태도였다. 한동안 대학실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나서 강좌장선생은 나에게 생각해볼 여유도 주지 않고 《잘해봅시다.》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순간 당황해졌다. 대학실정은 리해되지만 전공이 아닌 과목을 어떻게 강의하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선생은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이지요.》 강좌장선생의 이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비상한 용기로 되였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방에서 나온 후에도 나의 귀전에서는 《잘해봅시다.》 하던 강좌장선생의 말이 오래도록 사라질줄 몰랐다. 그 한마디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들에 대한 조국의 믿음이 실려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철학교과서들과 참고서들을 펼쳐놓고 밤새워 강의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강좌선생들앞에서 시험강의를 해보기도 하였다. 이제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된 나는 첫 강의에 들어가게 되였다. 강의를 준비하는 나의 눈앞에 배움의 희망을 안고 몸부림치던 지난날들이 어려왔다. 희망은 인생의 미래를 아름답게 가꾸어보려는 욕망이 낳는것이다. 하지만 나의 지난날들은 그 희망으로 하여 무참히 짓밟혀온 나날이였다. 방랑, 추위, 굶주림, 억울한 매… 운명을 거역해보려던 나에게 가혹한 현실이 안겨준 보상이였다. 그러던 내가 오늘은 대학교단에 서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위대한 수령님과 당에 대한 고마움에 가슴이 뜨겁게 젖어들었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의 눈길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리였다. 20대청년들로부터 40대, 50대, 각이한 년령의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들중에는 로동자들과 함께 작업반장도 있고 직장장, 공장장도 있었다. 나는 잠시 로동계급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그들을 둘러보며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무들은 학비라는 말도 모르고 생활에 대한 근심도 없이 공부하게 되였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나의 지식을 깡그리 동무들에게 바치겠다. 동무들은 로동계급의 혁명정신을 나에게 배워달라. 우리에게 참된 삶을 안겨주신 당과 조국의 기대에 꼭 보답하자… 그날은 얼마나 긴장했던지 옷이 땀에 흠뻑 젖었었다. 강의를 마친 나는 강의가 잘되였는지, 학생들이 나의 강의를 얼마나 리해하였는지 짐작할수 없었다. 하여 당조직에 나의 강의에 대한 참관을 조직해줄것을 제기하였다. 당조직에서는 좋은 제기를 하였다고 하면서 경험있는 철학교원들로 교수참관을 조직해주었다. 나는 로동자대학생들을 강당에서만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카바이드공장 가열로에 나가 일도 함께 하면서 현장에서 학습지도를 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일이였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로 받아들이였다. 나는 스승으로서뿐아니라 동지로서 그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애썼다. 사람의 품성이나 인격에는 그가 지닌 사상의 높이가 반영된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가르치는 자신이 먼저 수령님의 사상을 체질화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학생들을 훌륭한 혁명가로 키울수 있겠는가. 나는 나의 모습이 학생들의 눈에 교원이라기보다 훌륭한 혁명전우로, 인생의 모범으로 비끼게 되기를 바랐다. 이 과정에 나는 당과 혁명에 대한 로동계급의 충실성과 헌신성, 집단주의정신을 배우며 혁명적수양을 쌓아나가게 되였다. 보람도 있고 긍지도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행복하였다. 그런데 차츰 안착이 되고 행복이 커갈수록 두고온 남녘의 고향이 그리워졌다. 변산반도, 잊지 못할 그 해변가마을… 가난과 눈물의 땅이였지만 그때문에 더욱 그리워지는 고향이였다. 나의 부모형제들, 나의 어린시절 동무들이며 이웃들과 이 행복을 함께 누리고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새로운 욕망이 자라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어디라 정한 곳없이 거닐고 또 거닐군 하였다. 역시 인생의 스승은 생활이였다. 나는 흥남의 로동계급속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어느덧 조국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으로 자라고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흥남시절에 대하여 다 이야기하자면 한권의 책이라도 묶어낼수 있을것 같다. 나는 어제날의 제자였던 림용수의 편지를 보며 그 시절의 자신을 되새겨보았고 제자들에 대한 스승으로서의 긍지를 느끼게 되였다. 그 편지의 몇구절을 아래에 적는다. 《…선생님은 그 엄격성과 성실성으로 우리에게 인생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혁명력사를 돌이켜보면 동상이몽, 양봉음위한자들은 혁명의 저조기에는 례외없이 배신자, 역적이 되였다. 따라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오직 변심없는 고지식성이며 당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보답은 말이 아니라 실천행동뿐이다.> 선생님, 선생님의 제자들은 늘 선생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한생을 살았고 또 살고있습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중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아시는 일군들도 적지 않다는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력사적사실들은 전향이란 적의 감옥에서만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고급주택이나 승용차안에서도 비행기안에서도 있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의 나날은 인간이 자신을 증명하는 나날이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국경지대에서 사업차로 만났던 외국인은 자기를 따라가기만 하면 재부도 명예도 담보된 그런 생활을 할수 있을것이라고 하며 국경을 넘자고 꾀이는것이였습니다. <림선생, 기술에야 이편저편이 있습니까?> 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그에게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림용수에게는 그것이 있소. 나는 오늘도 래일도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편이며 조국의 편이요. 왜 그런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는것이 내가 한생을 통하여 얻은 진리이기때문이요.> 선생님, 참으로 우리 흥남사람들 아니, 우리 인민전체가 모두 비전향한 위대한 공민이며 당의 충신들입니다. 이러한 인민, 충신들에 의해 우리 당은 결사옹위되고 조국은 강성대국으로 일떠서고있는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제자를 가진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이러한 제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과 또 그들중에 우리 장군님께서 아시는 일군들도 있다는 사실앞에서 인생의 가장 큰 만족을 느낀다. 스승으로서 이상의 영예가 또 어디 있겠는가. 실천행동으로 당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고 가르치던 나의 모습을 맑은 눈동자에 담아두었던 그들이 인생의 최우등생으로 내앞에 다시 다가서고있었다. 인생은 어찌 보면 산마루를 향해 쉼없이 오르는 등산과도 같은것이라 할수 있다. 그 산마루란 높은 정점이며 등산의 목표인 동시에 등산길이 끝나는 곳이며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자기가 걸어온 길들을 흐뭇하게 돌이켜보는 휴식터이기도 하다. 하다면 나의 인생도 이제 끝나는것인가. 남은것은 과거에 대한 추억뿐인가. 아니다. 나에게는 추억보다도 뜻밖의 영광이 먼저 찾아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주체96(2007)년 8월 흥남땅을 찾아주신것이였다. 그날 2.8비날론련합기업소를 찾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장의 연혁소개실을 돌아보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여기에 이 기업소출신의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내용도 있다고 말씀하시며 환히 웃음을 지으시였다고 한다. 한 일군으로부터 그날의 감격적인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격정으로 목이 메였다.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뜨거우시였으면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그렇게 정겹게 불러주시였겠는가. 한 일이 있다면 조국을 위해 신념을 지켜 싸운것뿐이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시며 언제나 우리들을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내세워주신다. 내 나이 이제 여든고개를 바라본다. 하지만 나의 인생에 끝은 없다. 도달해야 할 높이만이 있을뿐이다. 나의 생명에 영원한 삶을 주시고 나의 삶에 찬란한 앞길을 열어주시는분이 계신다. 나를 위대한 공민들의 대오에, 참된 당원들의 대오에 세워주신 그이를 나는 조국이라고, 어버이라고, 스승이라고 부른다. 그이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태양 김정일장군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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