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렬차는 주변의 낮은 산들이 온통 눈에 얼어붙은 중부구릉지대를 달리고있었다. 소금마대를 깔고앉은 《함흥내기》젊은이는 피곤한지 충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졸기 시작했다. 라충연은 졸음이 오지 않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레루장우를 다급하게 굴러가는 단조로운 차바퀴소리는 마치 그를 머나먼 옛시절로, 고향땅으로 실어가는것 같았다. 쇠가마에서 강냉이타개죽이 끓어 벌럭벌럭 넘어나는 소리, 솔가리 타는 내와 마당에서 두엄썩는 김냄새가 엇구수하게 풍기는 고향집, 묵은 새초이영이 처마밑에 낮추 드리우고 바람벽의 흙미장이 군데군데 떨어진 농가, 삭은 울바자밑에 오줌받는 반나마 깨진 독이 있고 그옆의 돌배나무그늘밑에서는 강아지들이 여윈 엄지개의 배가죽에 달라붙어 메말라 늘어진 젖꼭지를 물어당긴다. 참혹한 전쟁의 피해가 가시지 않은 농촌, 군에서도 그중 궁벽한 고장인 성하리에도 협동조합이 조직되였다. 뜨락의 찌그러진 허청간에 농쟁기 하나 변변한것이 없이 궁핍속에 쪼들려 살던 어머니는 가솔을 데리고 맨 선참으로 협동조합에 들어갔다. 역축과 종곡, 비료와 같은 영농자체의 혜택이 미치는 협동조합은 남편을 조국보위성전에 바친 농촌녀인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의지할수 있는 삶의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아직 넉넉치 못한 조합살림이다보니 녀인 혼자로력으로 받은 분배를 가지고 어린 다섯자식을 공부시키고 입히고 먹여살리기는 수월치 않았다. 녀인은 낮에는 조합일을 하고 어뚝해서 집에 들어오기 바쁘게 터밭김을 몇고랑 매고 돼지물 끓이고 아이들의 때묻은 베잠뱅이옷들을 빨았다. 밤늦어서 대충 저녁밥을 지어먹고 설겆이를 끝내면 잠에 곯아떨어진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고콜불을 켜놓고 물레질을 했다. 무명실을 뽑아 다문 한필이라도 광목천을 짜서 아이들에게 온전한 옷을 지어 입혀야 했다. 라충연은 맏이였지만 병약한 어머니일손을 크게 도와주지 못했다. 향학열에 불타던 그는 왕복 30리 넘는 중학교를 다니며 길가에서 그리고 집에 오면 광솔불연기에 코구멍이 새까매지도록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수학문제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홀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늘 잊지 않고있어 학교 가서 먹어야 할 점심나물밥을 조합일나가는 어머니의 싸리광주리속에 슬그머니 넣어주거나 동생들에게 남겨주군 하였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다른 애들과 같이 신작로를 따라오지 않고 혼자서 최뚝길이나 방천기슭으로 오면서 헌 자루에 돼지먹이풀을 뜯어넣었다. 어느날 점심밥을 못 싸온 충연은 학교 실습포전의 풀숲에 홀로 앉아 책을 읽고있었다. 책에만 정신이 팔려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니 한마을에서 사는 봉숙이가 종이꾸레미를 곁에 놓고 달아가는것이였다. 종이를 헤치니 큼직한 밀가루만두가 나졌다. 다섯개였다. 충연은 고마움에 속이 뭉클해서 선뜻 만두에 손이 가지 못했다. 봉숙이가 학교모퉁이로 사라졌을 때에야 그는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하얗고 말큰한 만두를 한개 집어들었으나 인차 도로 놓고 종이로 쌌다. 어머니와 동생들 생각이 난것이다. 다섯개니 네동생과 어머니에게 한개씩 차례질수 있는것이였다. 충연은 같은 졸업반녀학생의 사려깊은 동정에 눈물이 나왔으나 그후부터는 봉숙이가 주는 만두나 공책같은것을 다시는 받지 않았다. 그는 부풀고 하얀 고기소만두를 받아든 어머니가 사연을 묻지는 못하고 자기를 주의깊이 쳐다보기만 하던 그 서늘한 눈빛을 잊을수가 없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남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연약한 녀인의 등뼈와 과부의 아귀손으로 생활을 지탱해나가는 어머니였다. 처녀의 후더운 진정이 담긴것으로 고맙게만 생각했던 충연은 무언가 괴로워하는것 같은 어머니의 눈초리에 여기가 질렸다. 그는 어머니가 아무말도 안했건만 아들한테서 원하는것이 사내의 존엄과 자립성같은 인격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남자의 그 신성한 표정은 충연에게서 아버지없는 궁핍한 생활로 하여 위축되고 억눌렸을뿐 선천적인 배짱속에 깊숙이 잠재해있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충연은 어머니가 빨아준 베옷을 밤새 아궁불에 말려 숯다리미로 깨끗이 다려입었고 통강냉이밥이나 나물밥이라도 점심은 꼭 싸가지고 학교에 다녔다. 처녀에게 어려운 처지를 엿보이지 않고 동등한 자격속에 사귀니 훨씬 마음편했다. 다만 괴롭고 가슴에 걸리는것은 매일 봉숙이와 같이 학교에서 돌아오느라니 돼지풀을 뜯어가지고 오려고 책보자기속에 베자루를 넣고 떠났지만 정작 저녁무렵에 돌아올 때는 두봉천기슭에서 봉숙이를 만나 그저 걸어오군 했다. 허줄한 차림새에 바닥이 다슬은 고무신을 신었지만 돼지풀을 뜯어넣은 베자루를 걸머지고 처녀와 같이 갈수는 없었다. 어머니를 도와주지 못하는 걱정은 속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지만 생활의 궁핍을 잊고 처녀와의 순결한 우정에 취하였다. 중학교졸업식을 마친 날 저녁에도 그는 봉숙이와 방뚝길을 걸어오며 오랜 시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들은 노전깐 웃목에 헌이불을 덮고 누워 달게 자고있었다. 가마목에는 그의 밥과 국이 베보자기에 덮여있었다. 찌그러져가는 헛간에서 천짜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충연은 헛간의 거적문을 소리없이 들치고 들어섰다. 매캐한 광솔불연기에 숨이 막혔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물려준 낡은 베틀에 앉아 끊어진 실을 잇고있었다. 광솔불에 비친 어머니의 등이 굽은 모습은 충연에게 처량한감을 자아냈다. 자식들을 키우고 가정에 바치는 어머니의 말없는 정성과 수고를 여직껏 너무나 몰라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왔냐.》 어머니는 눈이 어두워 종시 끊어진 실을 찾지 못하고 아들쪽에 고개를 돌렸다. 충연은 눈확이 푹 꺼지고 기름기없는 살갗에 잔주름이 짙은 어머니의 얼굴을 처음 쳐다보았다. 광솔불에 비쳐선지 어머니의 얼굴은 여느때보다도 퍽 상해보였다. 《졸업식을 했니?》 《예.》 충연은 광목천우에 드리운 나무뿌리같은 어머니의 손에서 실오리를 잡아 이었다. 《학교졸업하기 전에 네게 새옷 한벌 해입히려고 했는데 늦었구나.…》 가책섞인 어머니의 말에 충연은 목이 메여 베틀우에 고개를 숙이고 발이 곧고 부드러운 천을 쓸어만졌다. 《목화솜이 좋아서 천이 탐탁하다. 속옷감은 따로 짰다.》 충연은 끝내 머리를 들어 어머니의 쉬임없는 노력의 열매를 함께 기뻐해줄수 없었다. 이렇게 혼자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지 못하고 돼지풀조차 면구해서 뜯지 않고 학교에서 빈손으로 돌아오군 한 자기가 돌이켜졌고 무등 죄스러웠다. 가슴이 쩌릿하더니 눈귀에서 무거워진 눈물방울이 흰 광목천우에 떨어졌다. 《왜 그러느냐? 맏이야, 보통이라도 했니?》 저으기 실망해하는 어머니에게 그는 성적증을 내밀었다. 《어이쿠, 우리 맏이가 최우등을 했구나.》 어머니는 기뻐서 북을 놓고 아들의 잔등을 어린시절처럼 두드려주었다. 《어머니, 내 좀 짤게요.》 《그만둬라. 기쁜 날인데 쉬자꾸나.》 어머니는 성적증을 쥔 거친 손으로 아들을 껴안다싶이하고 헛간에서 나왔다. 깨진 거울쪼각같은 달이 유난스레 밝았다. 《이젠 뭘하겠니?》 《…》 《맏이야. 전문학교에 가거라.》 《어머니, 난 중학교졸업이믄 돼요. 조합에서 일하겠어요. 우리 집에도 남정노력이 있어야잖나요. 어머니 혼자 집안일까지 다 맡아 하다나면 병날거예요.》 《네가 철이 다들었구나》 달빛이 어린 어머니의 눈에는 물기가 번쩍거렸다. 《그래도 넌 상급학교에 가야 한다. 내 걱정은 말아. 자식들을 키우느라 병나면 어떻고 죽는다고 겁내겠냐. 누에도 더 치구 돼지도 몇마리 더 기르겠다. 애오라지 어머니소원은 네가 큰사람이 되는거다.》 충연은 조합농사를 한해 짓고는 어머니의 당부대로 기계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젊음이 일찍 서리맞았으나 오로지 자식들의 앞날을 바라고 억척같이 살아가는 어머니의 진정을 마다할수 없는것이였다. 어느덧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북방의 학성탄광기계공장에 배치받은 날 저녁이였다. 충연은 마을앞 방천길에서 송건식이와 맞다들었다.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지? 잘됐구나.》 읍에 나가 사는 송건식은 어쩌다 만나선지 별로 반가와하며 자전거를 멈췄다. 충연은 송건식이와 한살차이로 너나들이하는 사이였지만 별로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그는 어렸을 때 마을애들끼리 강에서 미역을 감거나 무슨 놀음놀이를 할 때면 우쭐대면서 다른 애들을 깔보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송건식을 덜 좋아했다. 한번은 다래따러 산에 갔다오다가 건식이와 싱갱이끝에 쌈한적도 있었다. 잊혀지기도 하고 맺히기도 하는 소년시절의 례사로운 일들이였지만 어째서인지 둘사이는 자라서도 어성버성했다. 《저녁에 집에 오렴. 마을친구들도 모이는데.》 충연은 진심으로 청했다. 《갈게. 그런데 공장엔 언제 가니?》 《며칠후에 인차 가야 돼.》 《좀 미루려무나. 요다음 일요일에 우리 봉숙이 잔치를 한다.》 《그래?!》 충연은 저으기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올수 있지?》 충연은 시무룩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구나. 그때까지 기다릴것 같지 못해. 함께 떠나자고 약속한 동무들이 있어서…》 사흘후에 충연은 봉숙이를 축복해주지 못하고 머나먼 배치지로 떠나갔다. 그리고 몇해후 가을에는 어머니의 권고로 고향마을에서 봉숙이의 동창생인 팔목이 굵고 노래 잘 부르는 처녀인 박창희를 안해로 맞았다. 중키에 그닥 곱게 생기진 못했어도 산야의 이슬머금은 함박꽃처럼 싱싱히 핀 처녀였다. 농사일과 동자질은 말할것 없고 광목천을 짜서 옷바느질도 곱게 하는 무던한 처녀였다. … 라충연은 깔고앉았던 소금마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질없는 옛추억을 털어버리려는듯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