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8

 

라충연은 령산역에서 렬차에 올랐다. 공장에서 급히 떠나오다나니 미리 약하지도 못해 침대차칸에는 지 않았다. 려객이 많은걸 번연히 알면서 책임비서신분을 내대고 편안한 좌석을 달라고 할수는 없었다.

그는 전압이 떨어져 더디게 달리는 렬차의 승강대어방 자리잡은것으로 만족했다.

서평양역을 지나서야 통로가 여 차칸으로 들어갔다.

충연은 불룩한 낟알배낭들과 따리들이 천정에 닿게 덧쌓인 당반 한켠에 가방을 얹어놓았다.

아, 거기다 놓지 말아야겠는데, 깨질게 있어서…》

창문 안쪽자리에 편안히 들어앉은 중년나이손님이 턱을 쳐들고 불안스레 당반을 올려다보았다.

《닭알꾸레미가 있는거구만. 안됐습니다.》

연이 미안해하며 가방을 도로 내리우려 하자 중년나이손님은 그의 겸손에 자극을 받았는지 타협조로 웅얼거렸다.

《그냥 놔두시오. 제상에 놓을것들이라는데… 짓눌린대로 가야지.》

《가방이 무겁지는 않습니다.》

충연은 손님을 안심시켰다.

가방은 겉보기에도 훌쭉하거니와 안에도 담배 몇갑과 속옷, 세면도구와 두어끼분의 도중식사밖에 더 들어있는것이 없었다.

그는 도당합숙에 림시 거처할 생활소비품들만 가지고 떠났다.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은 그더러 령산에서 뒤일을 마무리하고 이사짐 싸는것도 보아주다가 며칠후에 같이 함경남도당에 부임인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라충연은 당중앙위원회청사에서 나와 령산에 도착하자 그 밤중으로 인계를 하고 아침무렵에는 이 완행렬차에 몸을 실었다.

한시바삐 함경남도당에 가서 실정을 료해하고 일에 착수하고싶은것이였다.

반년사이에 그한테 정이 든 로동자들이 당비서가 떠난다는 소리를 듣고 역에 달려왔을 때는 이미 렬차가 출발한 뒤였다.

렬차가 산굽이를 때 라충연은 역홈에서 손저어 바래주는 공장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루라도 남아있으면서 그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지 못한 후회와 아쉬움이 그를 휩쌌다. 새 직무를 맡은 절박감에 사업인계를 너무 서두르면서 뒤처리를 온전히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집이 없어 공장합숙방에서 부부생활을 하는 가공직장의 제대군인선반공에게 인차 집을 주겠다고 했었는데 만나지조차 못했다. 당일군으로서 빚진 일들이 어디 한두가진가, 마무리하지 못한 상하수도공사, 부족되는 자재, 생산문제, 로동자들의 어려운 생활형편… 하많은 일들을 공장일군들에게 종이장인계와 당부를 한것으로 끝내고보니 마음이 개운치 못해 잠을 못 이루었다.

아마도 그래서 온 식구를 데리고 갈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아들은 공장에 남겨두었는지 모른다.

밤에 그는 안해 창희더러 딸 금순이만 데리고 뒤따라 함흥에 오라고 했다. 펄쩍 놀라는 안해에게 그는 조용히 다짐을 두었다.

《명구는 떨궈드오.》

《그 앨 여기다 혼자 둔단 말이예요?! 그것도 말이라구 하시우?》

《합숙생활을 하게 하오. 집에 만날 끼고있지 말구 고생을 좀 시켜서 사람을 만들어야겠소.》

라충연은 아들을 남겨두어 공장사람들에게 량심의 명분을 세우려는 속마음은 내비치지 않았다. 정말이지 아들에게는 고생과 단련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것이였다.

《아니, 뭐 부모가 끼구있는 아들들은 다 사람질을 못한답디까?!》

창희는 아들의 운명문제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쉽사리 물러설 차비가 아니였다.

《그 애가 지금 어디 사람이 안되고 고생을 못했는가요? 우리가 장천에서 살 때 당신은 중학교를 졸업한 명구를 막장에 넣었지요. 그것두 모자라서 다음엔 유리공장 가열로에서 불을 때게 만들었구, 여기 령산에 와서는 아들애가 더는 로앞에서 일 못하겠다는걸 한사코 열동력직장에 보냈지요.》

라충연은 사회생활의 첫시작부터 힘든 일에 부대껴온 아들의 짧은 경력을 새삼스레 돌이켜보았다. 한순간 아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마음이 흔들렸지만 결심을 달리할 정도로 심장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을 가지고 괜히 생색을 마오.》

《당신은… 간데마다 나와 아들애를 남들이 보란듯이 제일 힘든 직종에 넣군 했지요.… 》

안해의 노여움에 갈린 목소리는 서글프게 들렸다. 속에 오래동안 꿍쳐둔 불만을 깨치는 항변이였다.

《아마 령산사람들도 가정적인 리익을 추구하지 않는 청렴결백한 당비서에 대해 감동했을거예요. 그거면 되잖아요? 이제는 공장을 아주 뜨는데도 명구를 남겨두어 체면을 세워야겠어요?》

《뭐라구?! 안된다면 안되는줄 아오!》

라충연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식을 모르고 때없이 진속을 찔러대는 안해의 부족되는 아량에 화가 치밀었다.

안해앞에서 당일군으로서의 위신과 풍격을 지켜내기가 어렵고 그래서 늘상 가정에 들어와서는 아예 그런 권위적인 관념을 떼던지고 푸수한 남편으로 살아오는 그였지만 이번에는 지나치기 힘들었다.

그러나 웃방에서 잠들었던 딸과 아들이 내려와 묵묵히 방구석에 앉고 머리가 때이르게 희끗이 센 안해의 겉늙은 얼굴에서 자기가 한 말에 대한 후회와 용서를 바라는것 같은 걷잡을수 없는 눈물이 주름잡힌 불언저리로 흐르는것을 보자 그는 련민의 감정에 속이 뭉클했다. 가책이 컸다.

당의 크나큰 신임을 받고 새 부임지로 떠나는 마당에서 집안의 분위기를 어둡게 하다니.

《됐소, 눈물을 거두오. 내가 지나친것 같구만. 당신이 30년나마 날 따라다니며 고생을 했지. 주물공, 사락공, 자재운반공… 못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힘든 로동생활에 젖었지. 사실말이지 당신덕에 간부로서 내 체면을 수월히 세웠다고 봐야지. 그렇지만 이제 와서 그걸 가지구 재세를 할것같지는 없지 않소. 할 일을 했는데 평가를 바라오?! 그 일들도 당신이 아니면 어느 다른 녀자가 해야만 하는거요. 기업소간부네 집사람들이 땀흘리지 않는 헐하고 깨끗한 일만 골라한다면 로동자들이 진심으로 존경하겠소?》

라충연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아들에게 낯을 돌렸다.

《명구야, 넌 공장에 남아있어라. 열동력직장장이랑 부문당비서가 괞찮은 사람들이다. 넌 보이라기능도 있구 인젠 그 직장에 발을 든든히 붙였지. 뭐 어린애라구 부모를 따라다니겠니.》

못마땅해하고 불만을 억지로 누르고있던 아들의 얼굴이 아프게 떠오른다. 너무도 박정스레 아들을 떨궈두는것이 아닌가. 후회될 일을 밤에는 어떻게 그리도 랭정히 처리했던가.

라충연은 좌석의 팔걸이에 겨우 몸을 기대고 두눈을 감았다. 새 직무에 대한 뿌듯한 긍지감, 원만히 해낼수 있을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 걱정, 흥분 휩싸여 그는 새벽녘에야 눈을 조금 붙였다. 지금도 그 흥분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선지 피곤한데도 졸리지는 않고 정신은 날카롭고 맑았다.

렬차칸 손님들의 어수선한 말소리와 차바퀴 굴러가는 규칙적인 소리가 끊임없이 울린다.

렬차가 차츰 속력을 늦추더니 간리역에 멈춰섰다. 분기점역인데다가 렬차가 연착되여서 홈에 기다리던 숱한 사람들이 승강대출입문마다 가득 몰켜들었다.

토끼털모자를 눌러쓴 청년이 묵직한 마대를 어깨에 메고 차칸통로의 사람들을 비집으며 기운차게 들어왔다. 두루 살피던 청년은 공기갈이를 하려고 창문을 열어놓고서 태평스레 바깥구경을 하는 중년손님의 발치에 마대를 메꼰졌다.

《이크!》

중년손님은 덴겁을 하며 뒤로 물러앉았다.

《아이됐소.》

토끼털모자청년은 억양 센 함남도 사투리를 던지고는 다시 승강대쪽으로 달음쳐갔다. 마대 하나를 더 메고와서 덧쌓아놓은 다음에야 청년은 숨이 나가는지 시큼한 땀내가 나는 털모자를 벗어 부채질했다.

중년손님은 눈살을 찌프리고 마대에서 묻어난 먼지를 털었다.

《여〈함흥내기〉, 마대를 이렇게 쌓아놓으면 난 어떻게 발을 펴라나?》

그래 아이됐다지 않소. 불편한대로 같이 가기요.

《이런 쌀마대야 수화물로 부쳐야지 렬차칸에 가지고 오르면 되나?! 》

《사정이 영 딱해 그랬습니다.》

《장사질을 해도 렬차규정이야 지켜야지.》

《장사질? 거 말 조심하기요. 사람을 어떻게 보구… 내 굶어두 장사질 다니지 않소.》

《그럼 이건 무슨 쌀마대요?》

《심문이요? 검찰소에 있소? 너무 그러지 마오. 렬차 타믄 다 같은 손님이요. 보오. 그게 어디 쌀인가.》

청년의 입은 시퍼렇게 얼어있었다.

중년손님은 쓰거운듯 좌석등받이에 몸을 제쳤으나 라충연은 서슬같은것이 내돋아 죽이 꽛꽛한 마대자루를 만져보았다. 소금마대가 분명했다.

《손짐규정을 어긴 젊은이가 더 으르는구만.》

충연이 넌지시 웃으며 시까스르자 청년은 무안한듯 웅얼거렸다.

《이틀씩이나 차를 놓치다나니…》

《그렇다 해두 나이 우인 손님에게 그러면 못쓰지.》

《아이됐습니다.》

청년은 한결 누그럽게 미안쩍음을 나타내고는 솜옷주머니에서 이런 때 쓰려고 건사해두었던듯 좋은 려과담배를 꺼내 중년손님에게 권했다.

중년손님은 담배를 거절했지만 화해하고싶은 생각이 드는지 너그럽게 물었다.

《함흥에 가오?》

《그렇지 않구요. 〈함흥내기〉가 어데로 가겠습니까.》

《모욕을 느꼈으면 그 말을 철회하기요.》

《〈함흥내기〉가 모욕적인 말은 아니지요. 우리 함흥사람들의 성미가 세찬걸 바람에 비유한건데 나쁘지 않지요.》

《괴짜구만.》

《이른봄철에 부전령산줄기를 따라 해안쪽으로 내리부는 보라풍을〈함흥내기〉라구 합니다. 장진에선 보라풍이 황소뿔 빼지만 성천강을 따라 함흥에 내려와서는 황소를 달구지채 렁 내던집니다.》

라충연은 손세를 써가며 설명하는 청년의 어깨를 툭 쳤다.

《이보 〈함흥내기〉, 소금마대를 깔구앉아도 되겠소?》

《물어볼거나 있어요.》

《함흥내기》는 소금마대 한개를 번쩍 들어 그가 앉기 편리하게 놓아주고 자기는 에 서있던 다른 손님과 나머지 소금마대를 나눠 깔고 앉았다.

충연은 청년이 때묻은 손으로 라이타를 켜서 담배불을 붙이는것을 기다려 물었다.

《이 겨울에 소금을 어데서 가져오오?》

《온천군에 있는 제염소에 갔댔습니다.》

《함흥에 소금이 그렇게 바르오?》

《바르다는건 형편이 말이 아니다. 서해소금밭들에서 나는 소금을 동쪽으로 날라다 먹자니 량은 적은데 수요는 많지요. 그래 김장철에는 함남도 산골마을들에서 소금값이 강냉이값과 거의 맞먹습니다.》

《동무는 소금전문가구만.》

《내 별명이〈소금쟁이〉입니다. 난 시상업관리소 인수원인데 1년내내 소금을 전문 담당하고있는데 제대로 보장하지 못합니다. 함흥사람들이 장을 만들고 물고기를 절이고… 가정과 식료공장들에 쓸 소금량이 굉장하거든요.》

《가을에 제염소에 가서 지령받은 계획분소금을 인수해오면 되지 않소?》

《계획분지령이라구요?! 손님은 실정을 통 모르는군요. 함흥사람들 소금 먹이는게 그렇게 경제관리책대로 쉽게 되는줄 압니까. 난 벌써 5월쯤해서 날씨가 더워나면 집을 떠나 김장철까지 온천군 소금밭에서 살아야 합니다. 제염소로동자들과 같이 염판을 차지하고 가을에 실어갈 소금을 걸러야 하거든요. 여름한철 몸이 새까맣게 타면서 염판일을 도와야 지령서분배몫이 어느 정도 차례지지요. 그다음엔 동해안의 다른 고장들에서 온 인수원들과 소금몫을 놓고 싱갱이를 해야 합니다. 제염소간부들을 찾아다니면서 분주탕을 피워도 함흥사람들을 먹일 충분한 소금량을 받지 못합니다. 소금을 받아 염판에 모아놓으면 되는줄 압니까. 그걸 역에 날라가고 화차방통을 얻어 싣자면 한달은 전투를 벌려야 합니다. 소금더우에서 찬서리를 맞으며 화차를 타고 함흥에 당도하고나면 영 주이 없지요.》

라충연은 볕에 타고 얼어서 살갗이 퍼렇게 거무잡잡한 청년의 얼굴에서 줄곧 눈길을 떼지 못했다. 자기 생활을 솔직하게 터놓는 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소금은 어데 쓸거요?》

《역전식당에 가져가는겁니다. 식당책임자가 날 붙들고 소금을 두어마대 구해달라고 하두 사정해서 떠났습니다. 겸해서 집에서도 좀 쓰구요. 우리 집에서는 〈소금쟁이〉아들을 뒀지만 언제나 소금이 모자랍니다. 인민반장인 어머니가 인심후해서 동네사람들한테 줄 소금을 퍼주군 하지요.》

《겨울에야 염전에 소금이 없겠는데.》

《염판에서는 안나옵니다. 그렇지만 여름내 같이 소금물을 걸러낸 제염공친구들이 소금얻으러 온 저를 동정해서 몇되박씩 주었습니다. 그들이 염판뚝에 맺힌 소금꽃들을 따서 모아둔건데 염도가 높진 못해도 맛이 달작지근한게 식량용으로는 제격입니다.》

《동문 이름을 어떻게 부르오?》

《예, 그까짓 이름을 알아서 뭘하겠습니까. 내 기차를 많이 타봤는데 이렇게 앉아 친해서 세상돌아가는 공담 펼치다가 해여지믄 답디다.》

《그래두 이름을 알구싶구만. 나도 함흥에 가서 발을 붙이려고 하는데 동무를 만날 일이 있을지 알겠소. 〈함흥내기〉, 〈소금쟁이〉하고 찾으려나?》

《류승빈입니다.》

《장가는 갔소?》

《장가가 다 뭡니까. 처녀들이〈소금쟁이〉란 별명을 듣고도 꽁무니를 사리는데요.》

《그래두 하나 후려내야지.》

《초봄에 함흥을 떠나 온천소금밭에서 해를 보내다나면 언제 련애할 짬도 없습니다.》

승강대쪽통로에서 구럭지를 든 손님이 《길을 냅시다.》, 《좀 지나갑시다.》하고 연방 량해를 구해가며 이쪽으로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왔다.

객석통로에 들어앉은 손님들이 비좁은데 뭣하러 다니냐는듯 마지못해 길을 내주었지만 더러는 아예 려로에 지쳐 그냥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어깨죽지와 잔등을 타고넘겠으면 넘으라는 배심인것 같았다. 앞으로 나갈 길이 떡 막히자 그 손님은 골살을 찌프리고 나무그루터기처럼 끄떡않고있는 길손들을 내려다보았다.

라충연은 어쩐지 이마가 좁고 머리숱이 많은 그 사람이 낯익은것처럼 생각되였다. 어데서 보았더라?… 서둘러 추억의 갈피를 헤집었으나 떠오르는것은 없었다.

《안됐수다. 좀 지나갈가요?》

그 손님은 어쩔수 없는지 왁새 논물 건느듯이 발을 뻗쳐 길손들의 틈사리에 박아넣으면서 빠져나왔다.

손님은 소금마대를 깔고앉은 충연의 앞에 이르자 뜻밖에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였는지 퍼그나 놀라와하면서도 한동안 눈여겨 보기만 하였다. 오래되여 삭막해진 기억력은 손님쪽이 더 좋은것 같았다.

《충연이… 라충연이가 아니요?》

《?!…》

《옳구만! 날 모르겠소?》

손님은 주위사람들의 눈길이 쏠리는것을 보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라충연은 미안쩍어했다. 종시 생각나지 않는것이였다.

손님은 섭섭한듯 손으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고향친구를 몰라보다니. 성하리… 내 송건식이네.》

충연은 이마빡을 한대 얻어맞은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그는 기뻐서 송건식의 손을 부둥켜잡았다.

《송동무는 지금 어디 있소?》

《함흥에 있지. 고향을 떠나서 함흥사람이 된지도 스무해가 넘었다구. 내 동생도 함흥에서 사네.》

《봉숙이도?!》

《그럼, 도상업국 부국장이지.》

송건식은 회포를 나누지 않고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참, 학성탄광기계공장에 갔다는 말을 들은것 같은데… 그 학성탄광기계공장에서 뭘 했나?》

《난 거기서 주물공도 하고… 직장장도 하다가 자리를 떴소.》

라충연은 차칸에서 신분을 밝히기 멋적어서 굼때넘기려 했으나 송건식은 가만있지 않았다.

《그래 어데 가는 길이요?》

《함흥에 가서 발붙이구 일해볼가 하오.》

《전에는 어데 있었게?》

《령산이요.》

《동문 령산에 그냥 있을걸 그랬네.… 함흥이 요즘 말이 아니야.》

송건식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렇다고들 하더구만.… 원래 함흥사람들이 드센데 왜 곤난을 더 겪는가?》

《나라사정이 어려운판에 별수 있나.》

《허, 나라형편에 빙자하는건 옳은 처사가 못되지 않을가.》

《이거… 보통이 아니다.》

송건식은 저으기 뜨아한 기색이더니 인차 아량있게 말을 이었다.

《함흥에 발붙이겠다니… 시행정위원회에 와서 날 찾으라구. 직업하나쯤은 알선해줄수 있네. 그럼 또 만나세.》

그는 친절히 손을 흔들고 차칸통로 저쪽으로 멀어져갔다.

제서야 라충연은 고향친구에게 자기 신분을 밝히지 못한것을 미안쩍게 생각했다. 말해줄 틈이 없는것을 기화로 지어낸 겸손을 부리면서 상대를 떠보는것은 례의바른 일이 못되였다.

에서 류승빈이 옷자락을 조심스레 잡아당겨서야 그는 소금마대에 주저앉았다.

《손님은… 함흥에 세력이 든든한 친구를 가지고있구만요.》

승빈이 건늬는 말에는 약간 비양조의 부러움이 담겨있었다.

《승빈동무는 저 사람을 아나?》

《알다마다요. 함흥사람이 자기네 시행정위원장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렇나?!… 허, 단단히 도움을 받게 됐군.》

충연은 놀랍고 반가왔다. 그는 슬쩍 물었다.

《어떤가? 내 고향친구가… 사람들한테 신망이 있나?》

《글쎄요.…》

류승빈은 대답을 피했다.

《말해보라구.》

《입을 잘못 놀리다간 손님의 친구를 헐뜯는걸로 될텐데요.》

《괜찮아, 들어보자구. 나쁜 소리면 내가 송동무에게 참고가 되게 말해주겠소. 그럼 친구를 돕는걸로 되지 않겠나.》

《항간에서는 시행정위원장동지를 〈우국지사〉라고 합니다. 시민들을 먹여살리자고 발벗고 나서서 일을 제껴야 할 사람이 그러지는 못하고 만날 걱정을 앞세우고 우는소리만 한다는거지요. 식량난이 극심해지니 함흥사람들은 요즘 시행정위원장을 갈아치워야 한다고 비난을 로골적으로 합니다.》

《동무도 그렇게 생각하나?》

《생활이 어려워지니 간부들이 욕 안 먹을수 있는가요. 그렇지만 쌀창고가 텅 비였는데 시행정위원장인들 무슨 용빼는 재간이 있습니까.》

《두둔하는거구만.…》

충연은 입심 센 《함흥내기》젊은이에게 웃음을 지어보였으나 마음속은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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