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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날씨는 청명하고 따스하였다. 여름내껏 무더기비와 폭풍, 장마로 하여 개인날이 별반없이 모질게 들볶이우며 피해를 입은 산지밭들과 들판의 농작물에 그대로 풋열매가 맺혔다. 드넓은 광포원료기지 감탕논은 물에 잠겨 실한 벼가 한동안 질소과다증에 걸려있었으나 이제는 나날이 알속이 드는 이삭무게에 눌려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라충연은 완공을 앞둔 청풍덕염소목장에 올라가 살다싶이 하면서 바쁜 날을 보내다가 오늘 짬을 내여 최인섭이와 같이 함흥애육원으로 떠났다. 최인섭박사는 청풍덕풀판조성이 끝나가자 그한테 자기가 추성리로 돌아갈 때 용철이를 데리고가게 해달라고 몇번이나 부탁한것이였다. 애육원에 나가본지 오래되여 원아들이 무척 보고싶었다. 그리고 애육원에서 갓 시작된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지 걱정되기도 하였다. 유치원아이들은 방학기간에 할머니네 집이나 친척집에 자유롭게 놀러다니겠지만 부모가 없는 애육원아이들은 그런 즐거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우울해있는것이였다. 그러나 라충연이 탄 승용차가 애육원정문앞에 이르자 뜻밖에도 아이들의 명랑한 노래소리가 들렸다. 애육원마당에서는 원아들의 써클공연이 한창이였다. 교실에서 내온 작은 걸상들에 전체 원아들이 나란히 앉았고 그 옆에는 교양원들과 보육원, 직원들이 앉았다. 학부형이라고는 있을수 없을터이지만 원아들의 둘레와 담장주위에는 구경군들이 빼곡이 모여서서 사람숲을 이루었다. 고선화원장은 라충연이 나타난것을 보자 너무 기뻐서 그와 제낀 양복을 그쯘히 차려입고 앞가슴에 로력영웅메달을 단 최인섭박사를 원아들의 뒤쪽에 있는 걸상자리에 안내하였다. 원장은 여름방학기간에 원아들이 준비한 노래와 춤종목을 가지고 시내공장과 농촌들에 나가 공연활동을 벌리려 한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부모없는 아이들의 생기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원아들도 여러곳을 견학하면서 많은것을 배우고 즐겁게 지낼수 있다는것이였다. 《원장이 대단히 궁리가 텄소.》 라충연은 한마디 칭찬하고는 잇달아 가볍게 책망했다. 《그런데 이런 시연회에 날 찾지 않다니… 섭섭하구만. 하마트면 못 볼번 했어.》 하늘빛격자직여름사쯔를 입고 반바지혁띠를 졸라맨 사내애들이 중창을 하러 씩씩하게 걸어나와 인사를 하자 라충연은 선참 박수를 쳐주었다. 그는 중창조의 두번째에 선 용철이를 알아보고 곁에 앉은 최인섭에게 대주었다. 야외무대는 석비레를 다져 약간 두둑지게 만들었고 배경에 아무런 장치도 없었지만 어린 배우들의 뒤에는 아이들자신이 가꾼 글라디올라스와 다리야가 활짝 핀 꽃밭이 펼쳐져있었고 머리우 구름한점 없는 푸른 하늘에서는 눈부신 태양이 빛나고있었다. 그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무대를 상상할수 있을것 같지 않았다.
꽃물레 빙빙 원아들 탈 때에 아버지장군님 어데 가셨나
예쁘게 생긴 어린 소녀애의 서투른 손풍금반주에 맞춰 부르는 아이들의 정다운 노래소리는 첫 소절부터 라충연의 심금을 울리였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천리 또 천리 장군님 가신 곳은 최전연고지
라충연은 눈굽이 저려들었다. 당중앙위원회청사의 집무실에서 함경남도에 부모없는 아이들이 많다고 잠을 이룰수 없다고 걱정하시던 장군님의 모습이 눈앞에 우렸이 안겨오는것이였다. 시련은 계속되고있었지만 강추위가 몰아치던 그때는 얼마나 어려웠던가. 사람들이 제집 자식도 강냉이죽을 온전히 먹이지 못하니 남의 애들을 살필 겨를이나 있었던가.
요람에 콜콜 원아들 잘 때에 아버지장군님 어데 가셨나
쌀도 물도 불도 없는 피눈물의 력사갈피가 번져지던 그 나날… 사람들은 가슴이 아파 고아들을 집에 데려오고 정권기관들에서는 림시합숙을 차려놓고 응급대책을 취했지만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낼수 있었던가.
비바람 눈바람 다 맞으시며 장군님 가신 곳은 공장과 농장마을
동터오는 집무실에서 나라의 중대사들을 밀어놓고 부모없는 아이들문제부터 협의하신 장군님.… 혁명이 위기에 처하고 조국이 중첩되는 시련을 겪는다 해도 부모없는 애들을 당과 국가가 책임지고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그 애들을 혁명의 미래로 튼튼히 자래우고 교육해야 한다고 준절하게 말씀하시던 장군님의 신심과 락관에 넘치던 모습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낮이나 밤이나 그 언제나 아버지장군님 가고가셔요 꽃봉오리 우리 행복 지켜주시려 장군님 전선길 가고가셔요 …
너희들이 어찌 한편의 노래에 조국과 인민의 불행을 한몸에 걸머지고 고난의 폭풍우를 헤쳐가시는 장군님의 로고를 다 담을수 있겠느냐. 하지만 목메이면서도 울면서도 힘껏 불러라. 그래서 너희들의 아름다운 노래, 희망찬 노래가 푸른 하늘 저 멀리 온 세상에 울려퍼지게 해라. 너희들은 장군님의 품속에서 두번다시 태여난 행복동이들이다. 너희들은 쓰러지지 않고 붉은기 날리며 억척같이 전진해가는 우리 사회주의제도의 얼굴이다.… 라충연은 줄곧 눈물에 젖어 심장에서 용암처럼 뿜어나오는 정의와 신념과 사랑의 승리의 웨침을 듣고있었다. 그는 감동에 겨워 원아들이 부르는 《세상에 부럼없어라》 노래며 시와 이야기, 합창곡목들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원아들의 노래소리를 듣고 더욱더 많이 모여든 군중은 종목이 바뀔 때마다 누구나 손이 터지게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렸다. 원아들의 야외공연이 끝난 다음에야 라충연은 최인섭이와 같이 원장방에 올라갔다. 고선화가 인차 용철이를 데려왔다. 관객의 절찬을 받은데서 오는 흥분을 가시지 못한 소년은 얼굴이 사과알처럼 불그레해가지고 원장의 뒤를 따라 방안에 들어섰다. 《용철아, 이리 오너라.》 라충연이 손짓하자 소년은 함뿍 웃음을 지었다. 《큰아버지!》 용철이는 단숨에 라충연에게 뛰여왔으나 그전처럼 무작정 안기지는 못하였다. 곁에 있는 최인섭을 흘끔 쳐다보며 어딘가 서먹서먹해하는것이였다. 《제법 어른스러워졌구나.》 라충연은 용철의 팔을 잡아 가까이 끌어당기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노래하는걸 봤다. 잘 부르더라. 네가 이렇게 크고 의젓해져서 장군님노래를 부르니… 난 눈물이 나서 견딜수 없었다.》 《나도 큰아버지가 우는걸 봤어요.》 《녀석두… 그래 인제는 애육원담장을 넘어 거리에 나가지 않느냐?》 《안 그러는게 언제게요.》 《용철아, 넌 저번때 왜 엄마를 가슴아프게 해보냈니?》 라충연이 묻자 소년은 가책이 되는듯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널 찾아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한줄 아느냐. 그러다가 글쎄 장군님을 만나뵈왔단다.》 《아버지장군님을요?!》 《그럼, 장군님께서는 잃어버린 널 걱정하시고 애육원에 꼭 있을거라고 찾아가보라고 하셨지.》 《그게 정말이나요?! 그런데 엄마는…》 소년은 울음을 터쳤다.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고 꺽꺽 삼켰다. 《네가 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말도 못했지.》 《난… 애육원이… 진짜 좋아서 그랬어요.… 교양원선생님이랑 헤여… 지기도 싫구요.》 소년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떠듬거렸다. 《그렇지만 엄마 있는 아이는 애육원에 있지 못한다.》 라충연은 우정 엄하게 오금을 박고서 고선화에게 슬쩍 눈짓하며 큰소리로 따졌다. 《원장선생, 용철이는 부모 있는 앤데 왜 여직껏 애육원에 두는거요?》 《이제 곧 내보내겠습니다.》 고선화가 짐짓 정색해서 대답하자 소년은 울상이 되였다. 라충연은 소년을 최인섭이쪽에 돌려세웠다. 《용철아, 네 아버지다. 이 아저씨는 최인섭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식물학박사이구 로력영웅이다. 장군님께서는 이 아저씨와 너의 어머니가 추성리에서 함께 잘살라고 큰 기와집을 지어주셨다. 너랑 와서 함께 살 집이 여러칸이란다.》 용철이는 저으기 놀라서 주춤 물러섰다. 그러는것을 최인섭이 몸을 일으켜 소년을 살뜰히 품어안았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갖다대고 부볐다. 《용철아, 널 보고싶었다. 엄마는 나더러 이번에 너를 꼭 데리고 오라고 당부했단다. 내 너를 친아들처럼 귀히 여기마. 응, 승낙하지?》 용철이는 최인섭의 애무에서 조심스레 벗어나 입속말처럼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소영이는… 어떡하구요? 걘 날 오빠라구 해요. 나보담두 자모표를 먼저 외웠어요.》 《책임비서 큰아버지네 집에 있던 소녀애 말이지?》 최인섭은 주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애가 널 따른다면 함께 데리구 가자. 엄마두 좋아할게다. 내 소영이를 친딸루 키우겠다. 원장선생님, 그래도 되지요?》 《되잖구요.》 고선화는 감동에 겨워 머리를 끄덕였다. 기쁨에 취한 소년이였지만 아직도 뭔가 안심치 않아했다. 《아저씨 그게 정말이나요?》 《정말이잖구. 어서 소영이한테 가서 아버지가 왔다구… 오라구 해라.》 최인섭이 소년의 등을 떠밀자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새처럼 가볍게 방을 뛰쳐나갔다. 라충연과 원장은 시름이 놓여 마주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