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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충연은 한낮이 기울어서도 병원에 가보지 못했다. 오전에 서기한테서 두 젊은이는 인차 의식을 회복했지만 명구라는 돌격대원은 기술부원장과 유능한 의사들이 달라붙어 여러시간 긴장한 치료전투를 벌려서야 살려냈다는 말을 듣고는 그저 안도의 숨을 내그었을뿐이였다. 병원에 가볼 틈을 내기도 어려웠다. 제방을 복구하고 원료기지를 살려내기 위한 비상협의회를 열고 긴급대책을 세우느나 너무도 경황이 없은것이였다. 강추위가 몰아치던 겨울처럼 온 함흥시내 공장, 기업소들과 시민들을 동원시켜야 했다. 농촌에서 수십대의 양수기들을 빌려오고 제방 바깥쪽에 입힐 방대한 량의 장석을 채취하여 자동차로 실어와야 했다. 부래산에서 세멘트를 기차방통에 실어다가 모자라는 장석대신 블로크를 찍는 문제도 포치해야 했다. 제방복구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문제는 어느 한가지도 절박하지 않은것이 없었고 그의 손을 거쳐야만 해결될수 있는것이였다. 라충연은 협의회에서 목이 쉬도록 소리치고 암팍진 사업조직을 했으나 뚝이 터진데 실망하고 신심을 잃은 일군들인지라 그렇게 다급해서 뛰여다니는것 같지 않았다. 원료기지의 금년농사는 페농된것 같으니 갈수기인 가을에나 가서 제방을 복구했으면 하는것이 그들의 심정인것 같았다. 라충연은 고열이 내리지 않은데다가 하루종일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하고 편도가 부어 목이 꽉 쉬여서 광포에 나갔다. 불어날대로 불어난 물이 숨가삐 일렁이는 광포호반에는 짙은 안개가 슬픔에 떠돌고 하늘을 엷게 가리운 비구름은 무슨 죄나 지은듯 창황히 서쪽으로 물러갔다. 그 하늘중천에서는 먼바다쪽에서 불어온 폭풍의 잔줄기가 흐느끼듯 간간이 울었다. 라충연은 물에 잠긴 상광포의 아득한 논벌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제방복구준비를 불같이 다그치고 나왔지만 정작 상광포는 벌을 마주서니 숨막히게 아름찼다. 공사를 시작할 때보다 더 힘겨울것 같은 두려움이 옥죄여든 가슴밑바닥에서 서려올랐다. 만회하기 어려운 엄청난 사고가 저질러진것이였다. 이제와서 그것을 자연의 광란에 빙자하고 손실을 줄이기에는 너무나 큰 가책이 덮씌워 들었다. 게다가 인명피해까지 낼번 했으니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그는 서병만의 말대로 터지는 제방뚝에서 사람들을 모조리 대피시키지 못한것을 뼈아프게 후회했다. 설마 제방이 터지랴 하는 배심이 없지 않았지만 아들과 돌격대원들의 불같은 의지를 꺾을수 없었고 거기에 자신의 동요하는 불안스런 마음을 의탁한것은 사실이였다. 아들이 어떻게 해서나 제방을 지키겠다고 나서지만 않았어도 그는 그 순간에 동요하지 않고 가차없이 돌격대원들을 떼말렸을것이다. 명구가 자기의 아들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천평대에 오르는 그 불꽃튀는 시각에 아들을 위험한 고비에 밀어넣지 않으려 하는것 같은 량심의 가책을 받은것이였다. 라충연은 시돌격대가설막이 자리잡고있는 버드나무들이 우거진 둔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호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였지만 비물을 흠씬 먹은 오솔길은 발이 짚이는대로 걸죽한 진탕이 묻어나 걷기 힘들었다. 큰 버드나무줄기뒤에서 손에 보퉁이를 든 송옥화가 나타났다. 처녀는 그를 보자 약간 당황해서 웃몸을 움츠리며 인사를 했다. 전과 같은 명랑한 기색은 자취도 없었다. 《어데 가느냐?》 라충연의 나직한 물음에 처녀는 조용히 대답했다. 《함흥에 갑니다.》 《집에 갔다 오려구?》 《아니예요. 소대장동무랑 토론했는데… 병원에 가서 명구동무를 돌보려구 합니다.》 《그렇다면 돌아서거라. 명구는 의식을 차렸다. 의사선생들이 극진히 보살피고있다.》 《정말이나요?! 책임비서동지는 병원에 가보셨나요?!》 처녀는 반가와하면서도 어딘가 미심쩍은듯 물었다. 《아니… 광포에 떠나올 때 전화로 알아봤다. 위험한 고비를 넘긴것 같더라.》 《그래도 전 병원에 가겠어요. 명구동무는 제가 간호해야 합니다.》 옥화는 고집을 부렸다. 라충연은 아들이 이렇게 예쁘고 성실한 처녀의 후더운 관심속에 있다는것이 기뻤다. 《정 그러면… 있다가 내 차로 같이 가자. 돌격대가설막에 소대장이 있느냐?》 《제방뚝에 있을거예요. 아까 후보원사선생과 같이 거기 갔습니다.》 《그래…》 라충연은 제방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옥화는 그한테서 떨어지지 않고 바투 따라왔다. 처녀는 뭔가 묻고싶은듯 바재이는 기색이더니 호반의 넓은 길에 나서자 끝내 속을 터쳤다. 《저… 책임비서동지… 한가지 물어두 됩니까?》 《그러려무나.》 《명구동무가… 아들이지요?》 《?!》 라충연은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대뜸 부정하려고 했으나 처녀의 순진한 티없이 맑은 눈동자를 보고는 입이 얼어붙었다. 어쩐지 가슴속에 늘 매달고있던 묵직한 짐을 털어버린것 같았다. 《내 말이 맞지요?》 처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데서 알았니?》 《왜 숨겼나요?… 어쩜 그렇게들 모질수 있습니까!》 옥화는 원망의 눈물이 가득찬 눈으로 그를 치떠보았다. 《명구가… 말하…더냐?》 라충연은 처녀에게 공연한 질문을 던졌음을 깨닫고 시름겨운 웃음을 지었다. 《그 애가… 날 원망했지?》 《아니예요.… 부모를 탓하는 자식이 어데 있겠습니까.》 호수쪽에서 새파란 물새 한마리가 우짖으며 날아와 길옆의 휘친거리는 버드나무실가지를 붙잡고 매달렸다. 《옥화야, 넌 이걸 다른 사람한테 말했느냐?》 《안했습니다.》 《부탁한다. 명구가 내 아들이란걸 너의 아버지나 사람들한테 말하지 말아다구.》 《책임비서동지, 왜 그러시나요?!… 명구동문 성품이 바르고… 일을 잘했습니다. 돌격대의 모범이였어요.》 《그게 무슨 자랑거리겠니. 일을 잘하고 제방이 위험할 때 나서는건 응당한거지. 그런건 우리 청년들의 본분이다. 책임비서인 이 아버지가 사람들앞에서 거북해지지 않게 그냥 숨겨다구.》 처녀는 응낙하기 힘든듯 머리를 저었다. 《옥화야, 보니까 넌 내 아들의 성품을 잘 아는것 같은데… 우리 명구는 아버지의 덕이 아니라 제힘으로 인생을 개척하려고 맘먹은 애다. 자존심이 턱없이 세지.…》 《책임비서동지, 그럼 말 안할게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겠어요?》 옥화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뭔데?》 《명구동무를 함흥에 데려오자요. 어머니랑 같이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외롭지 않구. 그 동문 광포원료기지공사를 희생적으로 도운 지원자가 아닙니까. 함흥에서 살 자격이 있습니다.》 라충연은 처녀의 오돌찬 주장이 고마왔다. 《옥화가 보증을 서는셈이구나. 아마 네 말대로 해야 할것 같다.》 돌격대소대장이 반달음쳐왔다. 충연은 소대장에게 물이 찌기를 기다리지 말고 제방복구에 필요한 막돌과 토량을 확보해놓으라고 지시했다. 도당사무실에서 토론한데 그치지 않고 공사지휘부성원들과 해당 일군들을 광포에 불러내여 여기 제방뚝에서 협의회를 하고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과업을 줄 결심을 굳혔다. 서병만후보원사는 허리가 잘리운 제방뚝에서 떠나지 않고있었다. 타래붓꽃과 왜싸리가 자라는 뚝경사면에 상심해서 앉아있는 그의 체소한 모습은 보기 딱할 지경이였다. 라충연이 가까이 다가가서야 서병만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은 오래 앓고난 사람처럼 해쓱하니 질려있었고 여윈 손에는 물에 잠긴 원료기지논에서 뽑은것인듯 푸른 벼포기 몇대가 들려있었다. 《선생을 만나려고 했는데 여기 있었군요.》 《책임비서동지,… 면목이 없습니다. 함흥사람들이 어떻게 고생하며 막은 제방인데… 이꼴로 만들어놨으니 내가 무슨 수리공학자겠습니까. 난 호수물에 빠져 죽고싶은 생각뿐입니다.》 서병만은 고통스러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어디 선생 잘못입니까. 선생이 압출식공법을 내놓아 우리가 감탕우에 제방을 쌓지 않았습니까. 저 터진 곳을 내놓고 나머지 제방이 이렇게 굳건한것을 보아도 선생의 공법이 옳았다는것을 말해줍니다. 회상구역사람들이 선생이 하라는대로 하지 않고… 토량이 모자라니 봄에 언 흙덩이를 더러 넣고 쌓았다고 실토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제방을 막고 물을 뽑아야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벼가 썩을수 있습니다.》 《물이 찔 때를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야지요.》 라충연은 후보원사와 같이 차를 타고 함흥으로 오면서 제방복구와 관련한 기술적인 문제들을 의논하였다. 도당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몸상태가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빴다. 감기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고 눈뿌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며칠 드러누워 푹 앓았으면 좋으련만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되였다. 도당책임비서도 사람이니 앓을수 있는것이지만 이런 시각에 자리에 눕는다는것은 단순한 병세로 인정되는것이 아니라 제방이 터진데서 온 심화병으로, 나아가서는 드디여 책임비서가 손을 들었다는 패배의식이 퍼뜨려질수 있는것이였다. 당책임일군인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쓰러지지 말아야 했다. 그래서 서병만과 같은 수리공학자를 위로하고 믿음을 주어야 했고 신심이 없어하는 일군들과 시민들을 불러일으켜야만 하는것이였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낮에 제기된 몇가지 일을 처리하고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는데 누군가 불쑥 사무실에 들어왔다. 라충연은 열에 뜬 초점잃은 흐릿한 눈으로 여겨보아서야 그가 송건식임을 앓았다. 《동문 어데가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소?》 《책임비서동지는… 몰라서 묻습니까?》 송건식의 말투는 거칠었다. 빗질하지 않은 머리는 대충 이마를 덮었는데 쏘아보는듯이 우묵하게 들어간 두눈과 입주위에 내리패인 주름은 반발심이 돋은 그의 표정을 더 굳혀주고있었다. 《무슨 일이요?》 《그러니 모른단 말이지요.…》 송건식은 맥없이 걸상에 주저앉으며 울분을 쏟았다. 《저는 오늘 회상구역행정위원장과 같이 법무국에 불려가서 추궁받았습니다. 사고조서를 쓰구 손도장을 찍었습니다.》 라충연은 열적은감을 느꼈다. 제방이 터진 뒤수습에 돌아치다보니 후과와 책임문제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한것이였다. 《그래, 어떤 처벌을 받았소?》 《이제 주겠지요.…》 《걱정하지 마오. 동무한테야 잘못이 없지. 공사발기를 한것도 아니고… 압출식공법을 불안해하고 홍수나면 제방이 위험할거라고 늘 근심한것도 동무가 아니요. 금년에 벼를 심지 말자고 한 사람도 행정위원장이지.》 《책임비서동지,… 난 처벌이 두려운게 아니라 법무위원회사람들이 괘씸해서 그럽니다. 그들은 함흥사람이 아닙니까? 뚝이 터지면 처벌하고 안 터지면 원료기지덕을 같이 본다는건가요?!》 《됐소. 행정위원장동무, 책임추궁이야 받아야지. 넓게 생각하오. 아직은 누가 잘못했고 누굴 처벌하고 하는데 신경을 쓰지 맙시다. 그럴 겨를이 없고 지금 당장은 터진 제방을 막고 물을 퍼내야 하오. 시내에서 어물거리니 법무국에 불려다니지 않소. 래일 아침부터 광포에 나가 제방복구전투를 지휘하오.》 《그야 그래야지요. 한데 책임비서동지는… 아무것도 모르는것 같구만요.》 《뭘 말이요?》 《지도사업차로 도에 내려와있는 당중앙위원회 일군한테 책임비서동지문제가 상정된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쨌단 말이요?! 도의 간부들이 당중앙위원회검열을 받는건 정상적인 일입니다.》 《시내에… 책임비서동지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돌고있습니다. 제방뚝이 허물어지고 사람들까지 상하게 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할거랍니다. 시비중상이 많은것 같습니다.》 《그걸 시비중상이라고 할수 없지.… 제방이 터진건 사실이니까… 당일군은 자기가 조직한 사업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오. 난 각오하고있습니다.》 라충연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줄기침을 해댔다. 목안에서 가르릉소리가 울리고 가슴이 답답해났다. 그는 송건식이 자기의 아픈 구석을 찔러대지 말고 어서 가주었으면 했으나 상대는 걸상에서 일어날념을 하지 않았다. 《책임비서동지는… 자신에 대해 태연스레 말하는데… 난 내가 법무국에 가서 조서를 쓴것보다도 책임비서동지가 잘못될가봐 더 걱정입니다.》 《허, 날 걱정한단 말이지요.》 《광포원료기지공사를 함께 맡아했는데… 책임비서동지신상에 무슨 일이 닥치면 나한테도 좋을게 없으니까요.》 《사람두 원… 솔직해서 좋구만.》 라충연은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여느때없이 송건식이 미덥게 여겨져 물었다. 《적지 않은 일군들이 압출식공법이 믿을게 못된다고 말들 한다지요?》 《예.… 광포강흐름과 지질상태를 잘 알고있는 수리대학의 일부 박사들까지 거기에 편승하고있습니다. 날개뚝을 형성하는 압출식공법이 실패한거나 같다는 여론입니다.》 《송동무는 어떻게 생각하오? 동문 애당초 물이 불어나고 해일이 밀려오면 제방이 터질수 있다고 우려했지. 래년쯤에 가서 제방이 든든해진 다음에 벼를 심자고… 그래서 내한테 욕까지 먹었구.》 《그건 어떻게 하는 말입니까. 저를 떠보는겁니까?》 송건식은 저으기 못마땅한 기색이였다. 《아니, 진심에서 하는 말이요. 송동무한테 여러모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라충연이 속마음을 터놓자 송건식은 성난듯 벌떡 일어나 집행위원들이 앉는 걸상을 소리나게 당겨앉았다. 《그때는 책임비서동지가 의지박약한 동요분자인 저를 옳게 보았지만 지금은 잘못보고있습니다. 난 압출식공법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간 터진 곳을 내놓고는 제방의 나머지부분은 끄떡없지 않습니까. 봄에 언 흙덩이와 감탕덩이를 쓸어넣고 잘 다지지 못해 제방이 터졌지 공법상으로는 원만했습니다. 다 시공을 옳게 이끌지 못한 저의 잘못입니다.》 라충연은 송건식의 전에 없이 결바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원료기지를 완공해야 할 그의 배짱을 가늠해보고싶어 물었다. 《송동무,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것처럼 제방을 복구했댔자 큰물이 나면 수압에 못 견뎌 또 터지지 않을가?》 《이거 책임비서동지가 그렇게 맘 약한 소리를 하면 어떡합니까?! 제방이 터지면 뭐랍니까. 난 함흥시민들을 휘동해가지구 또 막겠습니다. 우리가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공격정신, 창조정신으로 무장했는데 무얼 겁내겠습니까. 제방은 비록 터졌지만 내 마음속 의지의 제방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고맙소, 행정위원장동무.》 라충연은 사무탁을 에돌아 송건식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그는 송건식이 사무실을 나간 다음에도 열이 떨어지지 않고 뼈마디가 온통 쑤시는것을 참으며 끈기있게 일을 보았다. 성천강계단식발전소들에 쓸 발전기제작과 관련해서 룡성기계공장지배인에게 기일을 늦잡지 말라고 당부를 했고, 광물생산을 현저히 올리고있는 검덕광산광부들의 후방사업정형을 그곳 당비서로부터 보고받았다. 그다음에도 도당의 여러 부서 일군들이 문건을 들고와서 더운물 한고뿌 온전히 마실 여가가 없었다. 저녁 늦어서야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몹시 아픈데다가 하루종일 제방복구문제로 다니고 숱한 사람들을 상대하여 포치사업을 하고 목소리를 높여 주장을 내밀고 욕설을 퍼붓고 가책과 번민에 시달리고나니 다 탄 초처럼 몸에는 아무 기운도 없고 공허한 연기가락만이 끄물거릴뿐이였다. 《광포에 갔댔어요?》 창희의 긴장하고 근심어린 낯빛을 보니 아들의 일을 모르는것이 분명했다. 집에 한마리 사다놓은 염소를 뒤등성이에서 풀뜯기는것 외에는 어데 나다니지도 않는 사람이니 알수도 없을것이다. 《갔댔소.…》 《명구는 뭘하고있어요?》 《그 앤… 허물어진 가설막… 지붕을 수리하더군.》 《듣자니 제방이 터지면서 떠내려간 사람중에 한 젊은이는 딴데서 온 사람이라지요? 부모도 없구…》 《누가 그따위소리를 합디까?! 그 돌격대청년은 부모가 있소.》 라충연은 공연히 우락부락하며 방안에 들어서자 부산스레 실내옷을 갈아입었다. 《하마트면 죽을번 했다지요?》 안해는 못내 걱정이였다. 《해병들이 제때에 구원해줘서 병원에 실어갔소. 이젠 의식을 차리고 많이 나아졌소.》 라충연은 명구의 일을 감추고싶어 될수록 범상히 뇌이고는 서재로 갔다. 안해가 아들이 물에 빠진걸 알면 무섭게 야단을 칠것 같아 두려웠다. 시일이 지나 명구가 병원에서 건강이 회복된 다음에는 알게 돼도 무방하리라싶었다. 《저녁을 잡숫지 않겠어요?》 창희가 소리없이 문지방에 다가와 그는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으나 인차 례사로운 웃음을 지었다. 《광포돌격대식당에서 먹고 왔소. 뚝이 터지는 바람에 물고기를 많이 잡았더군. 풋고추를 썰어넣은 잉어국을 한식기 얻어먹었소.》 라충연은 가방에서 서류들을 끄집어내였다. 잠시 문건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드니 창희는 두손을 마주잡은채 문지방에 그냥 서있는것이였다. 무언가 의혹에 찬 눈길이였다. 《저녁을 먹었다니까.》 그는 대수롭지 않은듯 말을 던지고 문건에 시선을 박았으나 저으기 긴장이 오면서 곁눈초리가 안해쪽으로 향해졌다. 창희가 륙감에서인지, 아니면 그의 수다스런 행동거지에서 무슨 눈치를 챘는지 알수 없었다. 《방해하지 말아주오. 난 오늘 밤 봐야 할 문건이 많소. 쓸것도 있구.》 라충연은 안해에게 우정 매몰스레 말했으나 창희는 듣지 못한듯 여전히 문지방에 붙어있었다. 그는 저으기 신경이 씌였으나 량심가책으로 하여 안해를 더 탓하지 못하고 잠자코 문건만 훑어보았다. 탁상시계의 초침이 재깍거리며 고요를 한치한치 불안스레 더듬어 갔다. 창희는 발소리를 죽여 다가오더니 손으로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열이 높군요. 웬일이예요?》 《청풍덕에서 걸린 감기가 떨어지지 않누만.》 《약을 잡숫고 땀을 내야겠어요.》 《그러겠소. 자기 전에.》 라충연은 몸이 아픈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