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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포에 남은 30명가량의 시돌격대원들은 초저녁부터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속에서 결사적으로 제방보강작업에 달라붙었다. 개목동기슭에서 흙을 퍼담은 묵직한 마대를 지고 제방길을 1 000메터나 와서 우무러든 곳에 쏟군 했는데 두번만 왕복해도 맥이 쭉 빠졌다. 그러나 돌격대원들은 잠시 기운을 회복하고는 또 일어나 흙마대를 지고 달리다싶이 했다. 그래서 제방중간부위의 패운 곳이 어느 정도 흙으로 차고 다져지자 비에 씻기지 않게 거기에 비닐박막을 가져다가 덮었다. 이제 당장 거기에 억새나 타래붓꽃을 심을수는 없었다. 잔디를 떠다 입힐 시간도 없었다. 비닐박막이 모자라 드러난 제방흙우에는 자기들의 비옷과 침실의 모포들을 가져다가 씌웠다. 《어떨가? 제방이 견뎌낼가?》 기진맥진해서 제방우에 주저앉은 라명구는 비에 홈빡 젖어가지고 몸을 옹크리고있는 송옥화에게 말을 건넸다. 제방 바깥쪽면에 연방 들이닥치는 하광포의 파도를 점도록 지켜보던 처녀는 고개를 쳐들고 얼굴의 비물을 훔쳤다. 《제방이 못 견디다니?! 어쩜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해요.》 처녀는 명구자신이 못 견디여 물러나기라도 한듯 오돌찬 힐난을 했다. 그러나 명구는 탓하지 않고 귀에 손바닥을 오그려대고 하광포에서 불어오는 바람속도를 가늠해보았다. 《옥화, 우리가 나약하든 굳센 마음을 가지든 상관없어. 지난날 량심을 가지고 어느만큼 제방을 견고하게 쌓았는가에 달려있는거야. 지금처럼 무더기비가 계속 내리고 다호천과 흑다리천물이 불어나면…》 《제방이 못 견딘다는거예요?!》 《보라구. 귀전에서 휘파람소리가 나는거. 태풍이야. 더 세질것 같애. 이제 바다쪽에서 해일이 밀려들면 하광포물이 빠지지 못하고 막중한 수압으로 제방을 올리칠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앉은 여기가 위험해. 제방의 중간부위인데다가 우무러들었으니 그중 약한 고리지. 터질수 있어.》 《방정맞은 소리 말아요. 제방이 터진다는게 말이 돼요?!》 옥화는 명구에게 싸움이라도 걸 태세로 다가앉았다. 《벼가 얼마나 잘 됐다구… 저 원료기지가 다 물에 잠긴단 말이예요?! 그걸 상상이나 할수 있어요? 우리가 겨우내 봄내 얼마나 고생하며 제방을 막았어요. 손발이 얼구 굶으면서… 수초떡을 먹으면서 제방을 쌓고 감탕논을 개간했지요. 명구동무도 얼음같이 찬 물에서 매생이를 밀며 돌을 나르지 않았어요.…》 처녀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점점 무섭게 파도를 일구며 불어나는 호수물에 원망스런 눈길을 던졌다. 《옥화, 됐어. 내가 공연한 말을 했어. 난 그저 무더기비와 태풍이…》 《또 그 소리예요?! 자연의 광란이 아무리 심해도 사람들이 간고한 노력으로 피땀을 바친 창조물은 절대로 파괴할수 없어요. 유감이예요. 그런 의지와 신념이 명구동무한테 없는게.》 《내한테 없다구?》 《동무한테 그런 신심이 왜 없는지 알아요?》 《몰라.》 《우리 함흥사람이 아니기때문이예요. 타고장사람이니까 이 광포제방에 진정한 애착이 없는거예요.》 《말이면 다 하는줄 알아?!》 라명구는 쓰겁게 내뱉고 벌떡 일어나 제방웃쪽으로 걸어갔다. 호수를 가로질러 거침없이 불어오는 바다바람이 그의 얼굴과 온몸에 비줄기를 사정없이 뿌려댔다. 명구는 어둠속으로 얼마간 걷다가 옥화가 보이지 앉자 젖은 잔디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괴로움에 차서 얼굴의 비물을 훔치고 허공에서 울부짖는 바람소리와 비소리, 물결소리만 들리는 캄캄한 호수를 건너다보았다. 어쩐지 제방공사와 내부망개간이 끝나고 모내기를 다했을 때 조용히 령산에 가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공사에 동원되였던 함흥사람들이 광포에서 철수하고 시돌격대인원도 줄일 때 왜 떠나가지 못했는가? 송옥화가 돌격대에 그냥 남아있었기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옥화는 얼마나 살뜰하고 명랑하고 정겨운 처녀인가. 부지중 초봄에 돌을 실은 매생이를 밀면서 차디찬 호수물로 헤염쳐가던 일이 생각키웠다. 흰구름이 피고 바다새들이 날아예던 봄하늘… 그때 매생이에 앉았던 옥화는 배가 뒤집혀질가봐 겁나하면서도 손으로 호수물이 튀는 그의 얼굴을 닦아주군 했다. 물에 젖은 손인데도 부드럽고 따스했다. 처녀는 늘쌍 감탕이 묻은 그의 작업복을 빨아주었고 자기몫의 수초떡을 남겨두었다가 주군 했다. 명구는 처녀와의 각별한 우정에 얽매인 자신을 놀랍게 돌이켜보았다. 그러나 그는 어떤 우정보다도 자기의 땀과 고난과 기쁨을 묻은 제방, 거창한 창조물인 원료기지에 더 큰 애착을 품고있음을 느끼고있었다. 령산의 합숙에서 외로움과 배고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모를 찾아왔던 그는 이 대자연개조공사장에서 나약한 자신을 이겨내였다. 함흥의 어린 아이들까지 먼 광포로 걸어와 감탕과 싸우던 그 결사전의 나날들에 그는 사람이 아무리 고난과 시련이 겹쳐도 주저앉지 않고 일떠서면 사람다와지고 자기 손으로 기어이 훌륭한 창조물을 이룩해놓을수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명구동무…》 사품치는 비바람속에 옥화의 부름소리는 가늘게 들렸다. 《성났어요?…》 처녀는 그의 등뒤에 가까이 다가왔다. 《옥화, 앉아. 바람에 날려가겠어.》 명구는 덜퉁스레 말했으나 처녀가 찾아와준것이 사뭇 고마왔다. 옥화는 주저앉지 않고 그의 곁에 살그머니 붙어앉았다. 《내가 너무했어요.》 처녀는 어둠속에서 속삭이듯 뇌이고는 뚝해있는 명구의 얼굴을 바투 들여다보았다. 《어마, 끔직이 성났군요. 어떻게 달랠가…》 옥화는 명구가 손아래동생이기나 한것처럼 뿌루퉁해진 그의 얼굴에 흐르는 비물을 멍알진 손으로 닦아주었다. 《옥화.》 《응?》 《난 우리 돌격대가 광포에서 철수하게 되면 령산에 가겠어.》 《함흥에… 그냥 있으면 안되나요?》 《되지 뭐. 그렇지만… 본래있던 공장에 가서… 집생각이랑 하지 않고 일을 잘하겠어. 새 출발하려고 해.》 《명구동무가 무슨 집이 있기나 한가요. 함흥에 떨어지라요.》 처녀는 사뭇 간절히 말했다. 《옥화… 난 사실 이 광포대자연개조공사에서 많은걸 배웠어. 가책이 커. 공장에서 일을 썩 잘하지 못한걸 부끄럽게 생각해. 일은 적게 하고서도 많이 받아가지는 생활에 습관되였댔거던. 부모들이 나라에 이룩한 재부를 공짜로 축내기만 하고 여기 광포에서처럼 피땀바쳐 쌓을 각오가 서지 못했지.》 《어쩜… 머리속에 훌륭한 생각만 꼬뚝 찼군요. 명구동무가 가면 난 섭섭해서 어떡할가?…》 처녀는 롱인지 진담인지 알수 없는 말을 서럽게 터놓았다. 바람은 소낙비를 채찍처럼 뿌려치고 깜깜한 하늘벽을 통채로 무너뜨린것 같은 무서운 소리를 질러대며 맹렬히 돌진해왔다. 뒤설레는 호수물은 점점 파도마루가 높아져 제방을 들이치고 물갈기를 일으켰다. 태풍에 날려갈가봐 명구의 팔을 꽉 잡고있던 옥화가 질겁해서 소리쳤다. 《어마, 이것봐요. 우리 앉은데가 또 우묵 들어갔어요.》 《에크, 그렇구나! 호수물결이 제방밑을 자꾸 파내는것 같애. 빨리 가자.》 제방이 뻗은 어둠속 멀리 개목동쪽에서 수많은 홰불뭉치들이 달려오고있었다. 귀뿌리가 아츠럽게 붙어치는 비바람속에서 그들을 찾는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라충연이와 서병만은 홰불뭉치를 든 사람들의 앞장에서 숨이 턱에 닿아 달려왔다. 송건식은 흙마대를 진 시돌격대원들을 인솔해가지고 왔다. 《우무러든데를 보강했다지? 어떻나? 제방이 무사할것 같아?》 라충연은 물참봉이 된 아들의 어깨를 붙잡고 성난듯 소리쳐 물었다. 기름불망치들이 사방에서 치직치직 소리를 냈고 걸레쪼박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명구는 홰불빛이 너울거리는 아버지의 비물에 흠씬 젖은 얼굴에서 불안과 초조감을 엿보았다. 여느때의 태연하고 강인하던 모습은 자취도 없고 당황과 긴박감에 휩싸여있는것이였다. 그는 아버지가 이 광포원료기지에 대해 얼마나 큰 책임감을 느끼고있는가를 통절히 깨달았다. 그러나 아버지를 안심시키는 말은 할수 없었다. 《제방가운데부위가 또 우무러들었습니다.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하광포가 불어나면서 물결이 제방밑을 파내는것 같습니다.》 《그래서만이 아닐거요. 제방을 잘 다지지 못했던가… 해서 그럴거요.》 불안이 잔뜩 실린 서병만이 주장을 세웠다. 기름불망치를 든 키가 훤칠한 돌격대소대장이 성이 나서 앞으로 빠져나왔다. 《거긴 우리 시돌격대하구 회상구역이 쌓은뎁니다. 다른건 몰라도 다지는것 하나만은 담보할수 있습니다. 혹시 후보원사선생이 제방두께와 경사각계산을 잘못한건 아닙니까?》 《난 조금도 잘못 계산하지 않았소. 동해에서 200년간의 최고해일과 홍수에 대비해서 제방표고를 정하고 안전한 치수와 경사각을 보장했소. 제방가운데부위는 더 두텁소.》 서병만은 학자다운 자존심을 가지고 도고하게 부정했다. 명구가 얼굴의 비물을 훔치고 한걸음 나서서 소리쳤다. 《이러고 시비를 가를새 없습니다. 빨리 흙마대를 날라다 쌓아야 합니다.》 그러자 흙마대를 진 사람들이 와와 소리치며 홰불을 앞세우고 제방을 따라 전진하기 시작했다. 라충연이도 송건식도 무거운 흙마대를 등에 지고 바람을 맞받아 걸었다. 그들이 제방가운데에 이르자 태풍은 더 세지고 바다쪽 해일로 수압이 높아진 호수물결이 한길나마 되는 물마루를 일으켜가지고 연방 제방을 들이쳤다. 서병만후보원사는 기름불망치를 쳐들고 한참 살펴보더니 신음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싸쥐였다. 《책임비서동지, 제방이 위험합니다.》 《그럼 견디지 못한단 말이요?! 대체 원인이 뭐요?》 라충연은 심장이 졸아드는감을 느끼며 다급히 물었다. 《여긴 분명 봄에 얼음이 풀릴 때 언 흙덩이를 그대로 넣고 쌓았습니다. 제방속에서 그 덩어리들이 녹으면서 꺼지고 경사각에도 변형이 갔습니다.》 《그렇단… 말이지요.…》 《다른 원인이 있을수 없습니다.…》 후보원사는 확신있게 대답했다. 《언 흙덩이들때문이라…》 라충연은 심장을 쥐여짜는듯 한 고통을 느꼈다. 후회막급이였다. 봄에 제방을 올려쌓는데만 급급하고 언 흙덩이 같은것들을 말짱 부스러뜨려 착실히 다져야 하는데 대해서는 주의를 덜 돌린것이였다. 시공에서 당연히 해나가는것으로 마음을 놓았다. 그것이 일을 쳤다. 그는 분노로 뒤번져지는 속을 누르느라 입술을 사려물었다. 터진 입술에서 피가 새여나왔다. 그러나 이제와서 제방에 량심을 묻지 않은 사람들을 분개한다고 될일이 아니였다. 너무도 때늦었지만 무슨 방법으로든지 수습해야만 했다. 《흙마대를 덧쌓아주면 안되겠습니까?》 라충연의 절망적인 물음에 서병만은 머리를 가로흔들었다. 《우에서 중량이 내리누르면 감탕밑바닥 제방균형이 잡히지 않아 변형이 더 심해질겁니다.》 《그럼, 제방이 터지는걸 앉아 기다린다는겁니까?!》 라충연은 목안에서 겨불내가 났다. 《비만 더 오지 않아도 견딜수 있겠는데…》 서병만은 하늘을 원망스레 올려다보았다. 《그건 바라지도 마시오. 하루만도 정평일대의 강수량이 240미리메터요. 도기상수문국에서는 래일도 종일 무더기비가 온다고 합니다. 태풍은 밤새 불거요.》 《책임비서동지… 제방에서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합니다.》 얼굴이 비물에 젖어 초췌해진 서병만은 물마루 높은 호수를 침통스레 쳐다보며 목안에서 힘들게 말을 짜냈다. 《저것 보십시요. 해일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넓은 바다물결이 광포하강구의 좁은 곳으로 밀려들면서 수위상승이 급격히 빨라집니다. 저것이 이제 광포에 흘러든 삼도강과 다호천, 흑다리천물을 더 빠지지 못하게 하면서 제방을 올리밀면… 여기 중간의 약한 부위가 터질수 있습니다.》 《후보원사선생, 이제 그런 장황한 분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라충연은 고통스러워 소리질렀으나 바람소리에 삼키웠다. 불망치를 쳐든 사람들은 망연자실해서 굳어져있었다. 송건식이 라충연의 앞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책임비서동지, 어찌겠습니까. 자연의 광란인데… 우리야 할수 있는걸 다하지 않았습니까. 인명피해를 내면 안됩니다.》 명구가 사람들을 비집고 후보원사앞으로 나왔다. 살갗이 검스레 탄 그의 얼굴엔 결연한 빛이 어렸다. 《선생님, 물결에 패이는 제방밑에 흙마대를 쌓아주면 일없지 않을가요?》 《그건 위험하오. 파도가 세차서 빠지면 죽소. 그리구… 제방이 물결에 얼마간 보호는 되겠지만 변형이 간데 미치는 물압력은 견디지 못할거요.》 《저희들은 그렇게라도 해서 제방을 지켜보겠습니다. 다들 물러가주십시요.》 명구가 소리치자 돌격대소대장과 부소대장이 호응해나섰다. 《자, 헤염칠줄 아는 동무들만 나서시오.》 홰불아래서 명구와 열명가량 되는 돌격대원들이 묵묵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이거 왜들 이럽니까?!》 서병만은 두팔을 벌리고 그들을 막아나섰다. 《소용없는짓입니다. 제방에서 이렇게 지체하다가는 다 죽습니다! 보시오. 아까보다 더 꺼져내린걸, 빨리 대피합시다!》 《선생님, 너무 걱정마십시오. 일없습니다.》 명구가 서병만을 안심시키려들자 후보원사는 팔을 홱 나꾸채며 성을 냈다. 《동문 물이란게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걸 모르누만. 물은 사람을 알아보지 않아. 사정이 없다구! 대피해야 한단 말이요!》 그러거나말거나 소대장은 예견성있게 가지고온 바줄사래를 풀었다. 흙마대를 안고 제방아래 물속에 내려가는 사람의 안전성을 기하자면 허리에 바줄을 매주어야 하는것이다. 라충연은 제방을 지켜내려는 명구와 돌격대원들의 불같은 마음을 꺾을수 없음을 알고 서병만의 팔을 잡아당겼다. 《선생, 어쨌든 제방밑이 패이는걸 방지할수 있으니 허락해줍시다. 소대장동무, 그럼 가져온 흙마대들이나 제꺽 쌓아주고 나오라구. 자, 나머지사람들은 다 대피합시다. 빨리 개목동쪽으로 가시오!》 라충연의 호소에 마지못해 응한 사람들은 돌아서 줄레줄레 제방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송건식은 제방 한켠에서 딸이 량손에 불뭉치를 잡고 서있는것을 보자 급히 다가가 누가 듣지 않게 위협적인 말로 속삭였다. 《넌 왜 대피하지 않느냐?》 《나도 돌격대원이예요.》 옥화는 비물이 흘러내리는 눈을 깜빡이며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철딱서니 없다구야. 녀자라는게, 꾸물거리지 말구 썩 가거라.》 《우리 동무들이 불을 비쳐주어야 작업할수 있어요.》 《너더러 그따위 걱정을 하라니?! 물귀신이 되고싶어 그래?! 이리 내라.》 송건식이 딸의 손에서 불뭉치를 뺏으려드는데 명구가 달려왔다. 《옥화동무, 여긴 녀자가 있을데가 아니야. 어서 아버지를 모시고 가.》 《동무가 뭐 소대장이기라도 해요?!》 옥화가 새초롬해서 쏘아붙였으나 명구는 들은둥만둥하고 아귀센 손으로 처녀의 불망치를 잡아뺐고 세차게 등을 밀었다. 송건식은 다짜고짜 딸의 손목을 비틀어잡고 끌고갔다. 어쩌는수없이 아버지의 손에 끌려가던 옥화는 어떻게 떼를 썼는지 잠시후에 어둠속에서 불쑥 다시 나타났다. 처녀는 흙마대를 지려는 명구의 손을 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애원했다. 《날 남게 해줘요.》 《안돼! 정말 가지 않겠어?!》 명구는 흙마대를 집어던지고 처녀를 무섭게 노려보며 다가들었다. 그 서슬푸른 기상에 주눅이 든 옥화는 그만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흐느꼈다. 《동무가… 잘못되기라도 하믄… 어떡해요…》 명구는 가슴이 뜨거워나 옥화의 어깨를 부여잡고 목메이는 소리로 띄염띄염 말했다. 《걱정마… 내가 헤염을 잘 치는걸 알지 않아.》 《그래두 바줄을 매지 않고는 물에 들어가지 말아요.》 《그럴게.》 명구는 울먹이는 처녀의 등을 밀어 쫓다싶이 했다. 그러나 잠시후에 옥화는 되돌아왔다. 처녀의 정채도는 서글픈 눈에서는 비물인지 눈물인지 볼을 타고 줄줄 흐르고있었다. 《명구동무… 이제 돌격대생활이 끝나믄 딴데 가지 말구 함흥에 있자요.》 《그걸 말하자구 또 왔어?》 《응.》 《아니, 가야 돼. 옥화… 내 이제껏… 속여왔어.》 《뭘 속였단 말이예요?!》 《옥화랑… 돌격대동무들이랑… 난 사실 부모가 있는 사람이야. 집두 함흥이구.》 《뭐라구요?! 부모가 살아있어요?》 옥화는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다. 명구는 게면쩍은 웃음을 지었다. 《안됐어.… 거짓말한걸 용서해.》 《정말이예요?》 《응…》 《어쩜, 그런걸 속이다니…》 처녀는 분해서 주먹으로 총각의 둥실한 어깨를 콱 내질렀다. 《부모님이 어데 계신가요?》 《응… 아버지는… 젠장, 도당책임비서를 보면서두…》 《여, 명구! 거기서 뭘 꾸물거려?! 빨리 흙마대를 져오라!》 소대장의 창살같은 웨침이 날아왔다. 정신을 번쩍 차린 명구는 무슨 말인가 더 하고싶어하는 옥화를 사정보지 않고 떠밀었다. 《어서 가봐.》 《흙마대를 쌓구 빨리 철수해요.》 처녀는 간절히 당부했다. 명구는 처녀가 비와 어둠의 장막이 태풍에 찢기는 제방길로 마지못해 가는것을 보고서야 흙마대를 지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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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밤 돌격대원청년들은 바줄을 허리에 매고서 흙마대를 안고 결사적으로 키를 넘는 물속에 뛰여들어 제방쌓기전투를 벌렸다. 흙마대를 다 쌓은 다음에는 서로 손을 잡고 방패가 되여 제방을 들이치는 파도물을 막았다. 그러나 랭혹하고도 엄청난 해일은 청년돌격대원들의 피나는 노력도 온 함흥시민들의 애끓는 소원도 무참히 짓밟고 끝내 제방뚝을 무너뜨리고야말았다. 터진 제방으로 사태처럼 밀려든 하광포물은 벼포기들이 싱싱하게 아지를 치던 드넓은 원료기지를 삽시에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제방을 사이에 두고 량쪽 호수물의 수면이 같아졌을 때에야 성난 물결이 잠잠해졌다. 태풍은 숙어들고 억수로 퍼붓던 무더기비는 보슬비로 변했다. 제방뚝이 터지며 물사태가 질 때 안전바줄이 부족해서 허리에 매지 못한채 필사적으로 물과 싸우던 라명구와 2명의 돌격대원 젊은이들이 거센 물결에 떠밀려 내려갔다. 동무들이 피타게 소리쳤으나 흙마대를 다루느라 이미 기운이 진할대로 진한 세 젊은이들은 태질하는 파도물에 휘말려들었다. 광포하구의 바다쪽에서 발동선을 타고 도우러 올라오던 해병들이 사품치는 물결에 떠내려오는 그들을 발견하고 물에 뛰여들었다. 해병들의 손에 구원된 세 젊은이들은 반주검이 되여 거의나 의식이 없었다. 가까스로 숨이 붙어있는 그들을 병원에 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