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48

 

새벽녘에 렬차는 함흥역에 도착했다.

주광훈은 서둘러 손가방을 들고 내렸다.

석탄연기내가 섞인 쌀쌀한 랭기가 감도는 홈을 나서니 도당에서 나온 승용차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승용차가 역사마당을 벗어나 곧바로 도당쪽으로 달리자 주광훈은 운전사에게 일렀다.

《광포로 갑시다.》

그는 도당합숙에 가서 밤새 려행길에서 쌓인 피곤을 덜고 아침시간에 책임비서랑 만나보려고 작정했었지만 생각을 달리했다. 새벽시간이 아까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주광훈이 함경북도당에서 여러날 긴장하게 일을 보고 평양으로 돌아올무렵에 전화를 걸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던 길에 함경남도당에 들려보라고, 책임비서가 사업을 독선적으로 하는것 같은데 잘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당부하시였다.

주광훈은 광포원료기지공사장에 도착하자 작업복을 입고 조기작업을 하는 돌격대원들과 같이 질통으로 흙버럭을 져나르기도 하고 감탕논에 발벗고 들어가 곰배질도 하면서 실정을 료해하였다. 그는 돌격대식당에서 강냉이가루를 푼푼히 섞어 만든 수초떡과 갈뿌리나물반찬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서 함흥으로 떠났다.

시행정위원장까지 만나고나니 오전시간이 다 가서야 도당사무실에서 라충연이와 마주앉을수 있었다.

《그새 수고 많았습니다. 난 호수복판을 쭉 건너막은 제방을 보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그 넓은 감탕논을 반년도 못되는 사이에 얻어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주광훈의 말에 라충연은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원료기지를 완성하자면 아직 할일이 많습니다.》

두사람은 침묵속에 담배를 태웠다.

주광훈은 자기가 광포에까지 갔다온 리유를 짐작하고있는 책임비서에게 에돌지 않고 신중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송건식동무를 왜 광포에서 들여보냈습니까?》

《제방의 견고성을 우려하는 시행정위원장의 주장이 일리는 있지만 내부공사를 뒤전에 미뤄놓은것은 타협할수 없었습니다. 그 동무는 공사의 운명보다 제방이 무너지면 후과를 자기가 책임질가봐 겁이 난겁니다. 그런 자기보신적인 나약한 기질이 원료기지건설전반에 미치는 후과는 대단히 나쁩니다. 그래서…》

라충연이 은연중 자기의 처사를 변론했으나 주광훈은 밀막지 않고 들어주었다.

《책임비서동무, 내가 광포에 가서 알아보니 시행정위원장에 대한 반영이 여간 좋지 않습니다. 그 동무는 눈보라치는 광포얼음판에서 단위책임자들이 의기소침해있을 때 제방공사를 자진 맡아나섰다고 합니다. 추운 가설막에서 침식을 하면서 공사를 내밀었고 건설자들의 식량문제, 운반기재를 풀려고 뛰여다녔습니다.》

《사실… 원료기지를 건설하는데서… 어느 일군보다 송건식동무의 역할이 컸습니다.》

《허, 책임비서동무가 인정하는구만요. 그렇게 수고를 많이 한 일군을 공사마감고비에 이르러 좀 우유부단하다고 떼버리는건 잘못되였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앞서고 투지가 약한 행정일군을 믿고 공사를 맡겼으면 끝까지 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광훈의 사리정연한 말에 라충연은 할말이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책임비서동무한테서 일처리를 독선적으로 하는 결함이 또 나타난데 대해 몹시 걱정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불도젤〉동무가 배짱있고 일을 담차게 제끼는 실천가형의 일군인데 사람들을 인정깊이 대하지 못하는게 결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라충연은 자책감에 머리를 들지 못했다.

주광훈은 담담한 어조로 계속했다.

《장군님께서는 불도젤성격이 몰인정한데로 나가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고… 어려운 이때 우리는 더욱 넓은 도량과 후더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주고 묶어세워야 산악같은 힘이 되여 소금밭도, 원료기지도 건설할수 있고 그것을 디딤돌로 함남도가 부강한 래일로 힘차게 나갈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

라충연은 눈시울이 뜨거워올라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그의 귀전에는 언젠가 장군님께서 전화로 하시던 간곡한 말씀이 쟁쟁 울리는듯싶었다.

우리는 엄혹한 난관을 겪고있지만 정신도덕적감정과 인간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뜨겁게 풍부한 사람들이다, 우리한테 이런 정신사상령역의 숭고한 재부가 있기때문에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할수 있다고 강조하시지 않았던가, 왜 그 귀중한 말씀을 심장속에 간직하고 살지 못했는가, 장군님께서 주신 인간사랑의 봄을 안고 살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도의 산들에 풀판을 조성하고 광포원료기지와 소금밭을 끝낼수 있겠는가.

《정말이지… 면목이 없습니다.》

《내 생각엔 책임비서동무가 일이 안되면 짜증을 내고 독선적인 결론을 서두르는 그런 결함을 성격상기질에서만 찾지 말아야 할것 같습니다.》

주광훈의 말에 라충연은 생각깊은 어조로 뉘우쳤다.

《옳습니다.… 인정합니다. 저의 결함은 단순히 작풍상 결함이 아니라 사상관점이 틀렸기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함이 저도 모르게 반복되였습니다. 이〈고난의 행군〉이 점점 힘들어지니 제 머리속에 어떤 사상적변질이 온것 같습니다. 자신을 깊히 검토해보겠습니다.》

《허, 책임비서동무가 그렇게 성근하게 나오니 난 더 할말이 없습니다.》

주광훈은 만족해서 일어났다.

《내 그러면 장군님께 책임비서동무가 이번에는 결함을 시원히 고친다고 말씀올리겠습니다.》

그가 서류가방을 들고 작별인사를 하는 바람에 라충연은 놀라 물었다.

《아니?! 벌써 떠나겠습니까?》

《예, 빨리 평양에 가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함경남도당 책임비서의 사업을 도와준 정형을 보고받으시고 전연부대시찰을 나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

 

×

 

주광훈을 바래주고난 라충연은 가책되는 마음을 누를수 없어 그길로 시행정위원회에 찾아갔다.

송건식은 불도 켜지 않은 어둑시그레한 사무실에 혼자 앉아 구역에서 올라온 문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그는 라충연이 불쑥 들어와 전등을 켜자 엉겁결에 일어났다. 그리고는 라충연의 낯색을 살피면서 걸상을 앞상옆에 가져다놓았다.

라충연은 송건식이 보온병에서 차물을 떠다놓는것을 기다렸다가 앞상 맞은켠에 앉게 했다.

《행정위원장동무는 내게 의견이 많았지요?》

라충연이 밑도 끝도 없이 대뜸 입을 열자 송건식은 도당책임비서의 흥분을 자기나름으로 해석하고는 어두운 낯빛을 지었다.

《책임비서동지는… 제가 무척 밉겠지요. 하지만 저는 속에 맺힌걸…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뿐입니다.》

라충연은 그가 무엇을 념두에 두고 그런다는것을 깨닫자 오래간만에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이보오, 송동무. 당중앙위원회일군에게 자기 의견을 반영하는건 당원의 권리요. 내가 뭐 그런걸 따지자고 온줄 아오?! 이런 참, 난 시행정위원장에게 잘못을 빌자고 찾아왔단 말입니다.》

라충연은 반신반의하는 송건식을 미안쩍은 눈길로 건너다보고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행정위원장동무를 광포에서 떼던진걸 용서하오. 난 광포원료기지건설을 혼자 책임지고 할것처럼 독단을 부렸소. 개간공사가 긴박하다고 당세도를 쓰면서 말이요. 한고향사람도 안중에 두지 않은 날 얼마나 원망했겠소.》

라충연의 두서없으면서도 진정이 우러나오는 자책에 송건식은 그만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책임비서동지는 실상 잘못이 없습니다. 고생스레 제방을 막으면서도 모험이란 생각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위구심만 잔뜩 앞세웠으니… 저같은 동요분자는 광포에서 물러나는게 옳습니다.》

《그러지 마오. 애당초 광포얼음판에 도끼로 구멍을 내고 감탕깊이를 잰 사람은 시행정위원장이 아니요. 난 송동무한테 제방을 떠맡기고 뒤에서 잔소리나 했지 동무가 가설막널판침상에서 자고 건설자들과 같이 수초떡으로 끼니를 때면서 제방을 쌓느라 고생해온건 알려고도 하지 않았소. 이 몰인정한 책임비서가 진심으로 머리숙여 부탁하는데 래일부터 광포에 나와주오. 우리 함께 손잡고 원료기지공사를 다그칩시다.》

《고맙습니다.… 저를 믿어주어…》

송건식은 저으기 목메여 인차 뒤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가에는 알릴듯말듯 물기가 어리고있었다.

《책임비서동지, 래일부터 감탕물이 빠지고 바닥고루기작업을 끝낸 논판에는 먼저 벼모를 내겠습니다.》

《그래주시오. 제방의 안정성을 두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참작하기요. 래일 당장 내부망개간에서 로력을 떼내가지고 제방다짐작업을 단단히 합시다. 제방뚝에 잔디 같은것도 심으면서 말이요.》

《잔디는 물이 불어 잠기면 쓸모없기때문에 제방 맨 웃부분 경사면에나 심어야 합니다.》

《그아래에는 뭘 심자오?》

라충연은 송건식에게 신뢰하는 눈길을 보냈다.

《잔디다음에 부채붓꽃과 왜싸리를 심고 그 아래면에는 억새를 심어야 그것들이 제방흙을 든든히 붙들고있게 됩니다.》

《갈은 어떻소?》

《갈과 왕골, 창포 같은것은 제방의 보조날개뚝과 물에 잠기는 제방기슭을 따라가며 넓은 면적으로 쭉 심어야 합니다. 갈뿌리가 물속에서 감탕흙을 그러잡고있어야 호수의 파도에 제방밑이 덜 패입니다.》

《송동무가 다 계획하고있었구만. 어떻게 그렇게 잘 아오?》

《나한테도 책임비서동지의 후보원사 못지 않은 기술고문이 있습니다.》

송건식이 시틋해서 말하자 라충연은 웃음을 지었다.

《궁금하구만.》

《수리대학의 하천건설학부에 교수, 박사가 한둘인줄 압니까.》

《시샘이 나지만 반가운 일이요. 송동무가 박사기술고문을 두었으니 원료기지는 다 먹은거나 같소.》

라충연은 마당에 세워놓은 승용차에까지 바래주러 따라나온 송건식에게 따뜻이 일렀다.

《그럼 행정위원장동무, 광포에 나가 수고해주시오. 난 당분간 청풍덕염소목장에 올라가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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