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46

 

송건식은 한성모가 도당에 가서 책임비서와 다시 토론해보겠다고 극력 만류했으나 듣지 않고 반발심이 돋쳐 짐을 쌌다.

그는 한성모가 제방작업장에 나간 사이에 세면도구와 감탕에 절은 작업복과 신발따위가 들어있는 짐보따리를 들고 지휘부가설막을 나섰다. 소형뻐스에 상업국의 지원물자를 싣고온 동생 봉숙이가 돌아갈 때 그한테 들리겠다고 한것이였다. 휘발유도 바른데 함흥에서 자기 차를 오라고 할것없이 소형뻐스를 타고 광포를 떠나가면 그만이였다.

지휘부가설막 모퉁이를 돌아선 송건식은 자기를 바래줄 사람이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불시에 쓸쓸한 외로움에 사로잡혔다. 시공일군들과 돌격대와 공장, 기업소 동원책임자들은 그가 함흥에 가서 행정위원회사무실에 들어앉은 저녁때쯤 해서야 광포에서 아주 철수했다는것을 알게 될것이였다. 사업상 인계할것이 없지는 않았으나 쫓겨가는거나 다름없는 신세인데 인계하느라 궁상스레 부산을 피우고싶지도 않았다.

송건식은 둔덕길에 올라섰다.

천막숲너머 사람들이 하얗게 깔려 북적대는 광포호반이 한눈에 안겨들자 불시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난 겨울 맵짠 추위를 무릅쓰고 호반에 가설막과 천막들을 전개하던 일이며 얼음판우로 돌버럭을 실은 눈썰매를 끌던 일들이 어제일처럼 삼삼히 떠오르는것이였다.

얼음판이 녹아 꺼지면서 가설제방이 내려앉고 감탕속에 자꾸만 침하될 때는 얼마나 좌절감에 빠졌던가. 온몸에 게발린 감탕이 마를새없이 지휘부가설막에서 침식을 하며 어려운 고비들을 간신히 넘어왔지만 결국은 자기의 의지로 끝을 보지 못하고 물러가게 된것이였다.

수치스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왜 내부망공사를 도당책임비서가 하라는대로 순응해서 시공조직사업을 하지 못했던가 하는 후회도 들었다. 책임문제도 있었지만 무슨 일에서나 이것저것 속궁냥이 많고 자존심을 꺾으며 상급의 요구에 맹목순응하지 않는 검질긴 성미를 종내 누그리지 못하는 그였다. 누가 뭐라든지 우려되는 할 말은 하는것이 옳다는 당연한 자부심이 사업에서나 생활에서 자주 일을 그르치는것이였다. 가슴아픈것은 자기의 주장이 조건타발로 인정되고 의지박약으로 치부되는것이였다.

상광포를 건너지른 거창한 제방을 보느라니 어쩐지 자신의 그런 결점을 인정해야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러면 그렇게 공들여 쌓은 제방이 무너지겠는가. 수리공학자의 압출식공법을 믿는것이 옳다. 혹시 제방이 무너지면 책임을 져야지만 그러다 무사하면… 그때에 가서 자기가 원료기지에 남긴 성과와 공로는 마다하더라도 시행정위원장을 떼버리고 결패있는 다른 사람에게 공사를 책임지웠더니 성공했다는 여론의 오명을 어떻게 들쓰겠는가.

송건식이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데 먼발치에 다부진 몸집의 룡성기계 직장장이 나타났다.

지휘부가설막쪽으로 가던 직장장은 송건식을 보자 발길을 돌려 그한테로 왔다.

송건식은 일전에 직장장과 싸운 다음에 관계를 풀었지만 별반 가까이 대하지는 않고있었다. 그는 둔덕길에 혼자 쓸쓸히 서있는 자기를 보고 직장장이 무슨 낌새를 차린것 같아서 슬그머니 돌아섰다.

그러나 룡성기계 직장장은 저으기 반가운 낯색을 짓고 말했다.

《행정위원장동지한테 가던 참이였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저녁에… 우리 천막으로 오십시오. 공장에서 지원물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래 행정위원장동지를 좀 대접하려구 합니다.》

《식량이 모자라는데 어느때라구 대접입니까. 공장에서 힘들게 지원물자를 보냈겠는데 아껴먹어야지.》

《아껴먹지요. 그렇지만 공사를 책임지구 수고를 하는 행정위원장동지를 청하는것도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행정위원장동지가 겨울에 룡성기계 지원자들에게 강낭쌀을 더 공급해준걸 우린 잊지 않고있습니다. 돌 나르라고 매생이를 한척 배당해준것도 말입니다.》

《그건 내가 아니라 공사지휘부에서 결정한겁니다.》

《하여튼 저녁에 꼭 우리 천막에 와야 합니다. 안오면 또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직장장동무, 고맙습니다.》

송건식은 어쩐지 눈굽이 찡해서 가설막사이길로 멀어지는 직장장의 뒤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둔덕길에 상업국의 소형뻐스가 와 멎었다.

송건식은 정이 든 광포의 건설자들한테서 배척받은것 같은 허전한 마음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뻐스에 짐보따리를 실었다.

작업장에서 일을 했는지 잠바옷에 감탕이 묻은 봉숙이가 송건식을 한쪽에 데리고가서 조용히 물었다.

《오빠… 정말 함흥에 들어갈래요?… 며칠 있어보지 않겠어요?》

《책임비서동지가 도로 철회할 때까지 광포에 앉아버티라니?! 아니야, 그 사람은 날 숙맥으로 본다.》

송건식이 화를 냈으나 봉숙은 아량을 가지고 말했다.

《오빠… 그렇지 않아요. 도당책임비서동지는 장진에서 감자를 실어내올 때도 그랬구 광포에서도 시행정위원장인 오빠를 믿구 공사를 내밀지 않았는가요. 숙맥이 뭐예요. 〈우국지사〉별명까지 다 털어버렸는데.》

《지난 일은 생각하고싶지도 않다.》

송건식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예요. 오빠는 지내 감정을 앞세워요. 나도 전에 책임비서동지를 몹시 고깝게 생각했드랬어요. 하지만 후에 돌이켜보니 책임비서동지가 옳았거든요.》

《어서 가자는데.》

송건식은 녀동생의 손을 나꿔채며 소형뻐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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