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45

 

장미빛의 저녁노을이 송전만하늘가에 펼쳐진 구름띠를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갈숲에서 배를 불린 물오리들과 백로떼가 멀리 새섬 뒤켠의 소제도와 대제도쪽으로 날아갔다. 송전만의 《큰 돼지》, 《작은 돼지》라고 하는 그 섬들 바깥쪽날바다를 가로막고 소나무숲이 울창한 호도반도가 말그대로 범처럼 태연자약하게 엎드려있었다.

송전만기슭을 따라 전개된 시, 군돌격대들의 가설막들에서 흰띠오리같은 저녁연기가 피여올랐다.

만에 흘러드는 금야강과 범포천물길을 돌리는 수로제방공사장은 돌격대원들이 하루일을 끝냈는지라 기발들만이 간간이 나붓기고 조용하였다.

노부나루등에 뿌리박고 새섬쪽으로 뻗어나오는 해안방조제공사장에서만 버럭을 실은 《자주》호대형화물차들이 드물게 움직이고있었다.

라충연은 여느때처럼 소금밭건설지휘부에 가지 않고 금야강하구의 갈밭삼각주에 이르자 차에서 내렸다. 그는 소금밭공사를 총책임진 도당비서를 데리고 갈밭기슭에서 작은 배를 탔다.

소금밭저류지 뚝쌓기공사를 해야 할 갈밭지대를 직접 밟아보기 위해서였다. 저류지뚝쌓기는 해안방조제공사를 끝내고 대형양수기들로 바다물을 모조리 퍼내면 곧 시작해야 했다. 저류지뚝은 소금밭내부망건설에서 앞세워야 할 공정이였다.

굴양식에 쓰는 원평마을의 작은 부업선은 갈숲을 와스락와스락 헤치면서 힘들게 빠져나갔다. 물에 부풀고 다슬은 노를 익숙한 솜씨로 저어가는 늙은 굴양식공로인은 라충연이 이전에 송전만에 자주 나와 풋낯이나 익힌 사람이였다.

《아바이, 내가 노를 저을가요?》

비서가 도우려고 하자 굴양식공로인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갈밭물에서는 아무나 배를 부리는게 아니우. 물곬을 모르면 갈밭속을 헤매게 된다오.》

배머리에 앉은 라충연은 덮씌워드는 갈대숲을 손으로 밀어제치며 비서에게 물었다.

《해안방조제공사를 빨리 다그쳐야겠는데 무슨 방도가 없을가?》

《어제부터 허천과 신흥군대대에서 몇개 중대를 새섬쪽에 붙였습니다. 량쪽에서 맞받아나가자면 속도가 한참 빨라질겁니다.》

온화한축이면서도 정열이 있고 내밀성이 강한 사람인 비서는 선선히 대꾸했다.

《새섬쪽에야 자동차를 붙이지 못하지.》

라충연은 다시 걱정하자 비서는 불만에 가까운 어조로 터놓았다.

《어디 붙일 자동차나 있습니까. 시군돌격대들에서 가지고나온 차들은 쩍하면 고장인데다가 자기네 후방물자를 나르는데 자주 써야 하기때문에 현장에 동원되기 힘듭니다.》

《어쨌든 해안방조제공사는 륜전기재를 최대한 리용하는데로 사업조직을 하오. 밑바닥이 감탕인 광포제방과는 달리 여기 해안제방은 쌓아나가면 든든하니까 굴착기나 자동차들의 가동률을 높일수록 자리가 푹푹 나는거요. 무거운 자동차들이 오가면서 다지면 굴깍지에 올라앉은 제방이 더 견고해지겠지.》

《정말 사람의 힘이 대단합니다.》

갈숲이 성글어져 그닥 힘들이지 않고 노를 저어가던 굴양식공로인이 한마디 끼여들었다.

《처음에 저 노부나루등에서 바다물속에 맞들이와 질통으로 흙을 쏟아부을 때는 언제 송전만날바다를 막겠는가… 개미역사를 해서 과연 막을수 있겠는지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헌데 벌써 저렇게 해안방조제가 절반나마 뻗어갔단 말입니다. 다 먹은떡이지요. 왜놈들이 알면 분해서 울음을 터칠겝니다.》

《그전에 왜놈들도 이 송전만을 막자구 덤벼들었댔다지요?》

라충연이 물었다.

《왜놈들은 조선땅을 다 먹구두 모자라서 가는 곳마다 노란자위땅을 더 탐내서 덤볐지요. 우리 아버지한테서 들었는데 노구찌는 이 송전만땅에 눈독을 들이구 비행기타고 돌아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저 호도반도의 노부나루등에서 새섬까지의 잘루목에 제방을 쌓으려고 했답니다.》

《그놈들이 송전만을 잘 알고있었구만.》

라충연이 흥심을 나타내자 로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원래 송전만일대는 기후가 온화한데다 금야벌에서 기름진 쌀나고 주변산들에 숲이 울창해서 떌나무걱정 없고 만에는 굴, 해삼, 미역, 참가재미, 숭어, 청어 해서 물고기자원이 풍부해서 예로부터 조선 6부지중의 하나로 소문난 곳입니다. 백어라는 큰 까나리만 한 은빛물고기는 배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데 눈안에 산또닌성분이 들어있어 먹으면 장내기생충들이 싹다 물이 됩니다. 이 진귀한 물고기도 우리 나라 다른 강에는 없고 송전만에 흘러드는 금야강하류에서만 딱 삽니다. 노구찌는 숱한 인부를 동원해서 큰 부재까지 바다물속에 처넣으며 승기가 나서 쌓댔는데 그만 몇십년만에 한번 오는 무서운 해일과 맞다들려서 수포로 돌아갔지요. 1923년 여름에 들이닥친 해일은 바람이 초당 30메터이고 물결높이는 5메터가 넘는 엄청난것이였다고 합니다.》

《앞으로 그보다 더 큰 해일이 몰려와도 우리가 쌓는 해안방조제는 끄덕없을겁니다.》

비서의 웃음띤 말에 굴양식공로인은 제꺽 응수했다.

《나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전날 배를 몰구가면서 살펴보니 제방 밑부분두께만도 30메터는 더 되겠습디다.》

《제방의 크기도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이 쌓는가 하는게 기본이지요.》

저녁노을은 안개낀 강원도쪽의 먼 산발우에서 퇴색해가고 잔바람이 이는 바다우에서는 갈매기들이 떠돌았다.

라충연은 아직 채 쌓지 못했으면서도 해안방조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비서를 신뢰어린 눈길로 건너다보았다. 제방을 다 쌓고도 터질가봐 걱정하는 광포원료기지의 송건식이도 이렇게 담이 큰 공사책임일군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부근에다 저류지뚝을 쌓아야지? 물이 그닥 깊지 않은것 같은데 들어가볼가?》

라충연의 말에 비서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감기들면 어쩔려구 그럽니까. 들어가보나마납니다. 기술분과동무들이 이미 다 조사를 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일할수 있겠는지 들어가보기요.》

비서는 라충연이 물러설 잡도리가 아닌것을 보고 자기도 하는수없이 웃옷과 바지를 벗었다.

굴양식공로인은 혀를 차며 배를 멈춰세웠다.

손이 시리게 차거운 바다물이 배허벅에 닿았다.

두사람은 갈대숲을 헤치며 조심조심 걸어나갔다. 발이 걸죽한 감탕모래에 빠지긴 했지만 광포밑바닥처럼 뽑기 힘든 진감탕이 아니였다.

라충연은 대가 실한 갈을 잡아당겼다. 한동안 안깐힘을 써서야 갈대를 감탕에서 뿌리채 뽑아냈다.

《물을 뺀 다음에 갈뿌리를 뽑는 일도 헐치 않겠소.》

《소금밭을 만들자면 갈이 한대도 없어야 합니다. 그땐 시, 군돌격대들을 총동원해서 갈뿌리를 뽑아도 로력이 모자랄겁니다.》

《로농적위대비상동원을 해야지.》

라충연은 별로 걱정없이 대꾸하고서 물었다.

《감탕성분이 많아서 염판을 꽤 만들어낼가?》

《천연제염학에서는 물이 찌면 염기밴 감탕은 잘 굳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담에 로라로 다지면 일없을겁니다. 제염총국전문가들도 송전만감탕시료를 보고 확신을 가졌습니다.》

라충연은 비서의 자신있는 대답에 만족해서 머리를 끄덕였다.

《대형양수기들을 보내줄테니 물이 찌면 제꺽 저류지뚝을 쌓으면서 소금밭내부망공사를 다그치시오. 광포원료기지에서처럼 늦잡지 말구.》

《알겠습니다.》

바다물에 몸이 점점 뼈속까지 얼어드는듯싶어 견디기 힘들었다.

《책임비서어른, 이젠 그만하구 올라오시우, 감기들겠수다.》

굴양식공로인이 배를 그들에게 바싹 가져다대며 걱정스레 재촉했다. 그는 배전을 잡고 올라오는 두사람을 부축해주고 덧옷을 걸쳐주었다.

배가 금야강하구의 기슭에 당도했을 때는 땅거미가 져 어둑어둑했다.

불을 피우지 않고서는 추워서 승용차를 기다려낼수 없었다. 그들은 주변을 뒤져 마른 나무가지를 한아름 주어다가 모닥불을 피웠다.

라충연은 몸을 덜덜 떨며 젖은 속옷을 쥐여짜 입고 앉아 불을 쬐였다.

《동무도 속옷을 짜입으라구. 빨리 말라.》

컴컴한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기슭의 무성한 갈숲이 설렁거리고 모닥불에서 빨간 불티가 날렸다.

라충연은 모닥불을 쬐여 온몸이 훈훈해오자 차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낮에 광포에서 있었던 일이 되새겨지며 그를 괴롭히는것이였다. 아무래도 광포개간공사를 빨리 끝내려면 송건식을 함흥에 들여보내고 보다 배짱이 세고 투지있는 정열적인 일군에게 공사지휘를 맡기는것이 옳다고 생각되였다.

송건식을 한고향사람이라고 계속 무른 인정으로 대하면 결국 원료기지건설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빚어낼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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