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송건식은 저물녘이 돼서야 자기의 빈 질통을 한쪽어깨에 대강 걸치고 건설자들의 뒤를 따라 제방뚝에서 물러났다. 오후 반나절을 청년돌격대원들속에 섞여 쉬염쉬염 질통을 졌는데도 기운이 쭉 빠져 감탕에서 발을 뽑기조차 힘들었다. 그는 장화목까지 진감탕에 묻고 서서 여느때처럼 기발들과 구호판들이 꽂혀 숲을 이룬듯싶은 제방뚝에 책임자다운 관심깊은 눈길을 주었다. 낮동안 숱한 사람들이 붐비며 돌버럭을 져나르고 흙마대를 쏟아부었는데도 그의 눈에는 제방이 별로 올라간것 같지 않았다. 서병만후보원사가 내놓은 압출식공법으로 공사를 내미니 제방이 더 침하되지 않고 쌓아진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는 어쩐지 종래의 견고성에 의혹이 붙었던 그 근심을 덜수 없었다. 그것은 상광포를 까마득히 건너지른 제방이 결국은 아무데도 의지하지 못하고 물렁물렁한 해묵은 감탕우에 기초도 없이 떠있다는데서 오는 불안감이였다. 과학적공법과 대담성이 낳은 제방뚝이였지만 왜그런지 그의 마음속에는 든든히 쌓아지지 못하고있었다. 건설자들은 호반에서 종일 힘겹게 일하던 사람들 같지 않게 벅작 떠들면서 가설막들이 운집해있는 둔덕길로 몰켜가고있었다. 뒤늦은 젊은축들 한패가 맞들이에 삽이며 곡괭이들을 가득 담아가지고 송건식의 옆을 지나 날래게 감탕판을 가로질러 뛰여갔다. 마른 길에 올라서자 그들속에서 누가 선창을 뗐는지 정서깊은 노래소리가 짙은 저녁안개를 뚫고 흘러왔다. 송건식은 하루작업을 마치고 아무런 시름도 없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웃어대며 가설막으로 흩어지는 건설자들이 은연중 부러웠다. 그들은 그저 시공을 맡은 사람들이 하라는대로 제방뚝을 쌓으며 후련히 땀흘리고나서 가설막으로 돌아가면 다였다. 그러나 공사를 책임진 자기는 광포에 나온 수만명의 건설자들과 지원자들이 땀흘려 쌓은 제방뚝의 운명을 두고 항시적으로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였다. 그래서 송건식은 날이 어두워진 지금도 가설막으로 가지 못하고 발길을 기슭쪽의 제방뚝으로 돌렸다. 낮에 설비조립련합기업소가 맡은 그쪽제방토막에서 빚어낸 일이 그의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는것이였다. 공사지휘부모임때 아직은 자동차같은 륜전기재가 제방뚝으로 다녀서는 안된다고 루차 말했는데도 그 기업소의 운수작업반장이 귀담아듣지 않고 사고를 쳤다. 자기네 작업구간이 남보다 뒤떨어지자 그 경망스런 반장은 이젠 그만하면 제방뚝이 든든히 다져졌다고 판단하고 점심시간에 슬그머니 돌버럭을 실은 《자주》호를 제방뚝에 들이몰았다. 그러나 자동차는 얼마 못가서 제방모퉁이가 움쑥 주저앉는바람에 짐을 실은채로 뒤바퀴가 감탕에 빠지고말았다. 황급히 흙가마니들과 쇠바줄을 가져오고 사람들이 하얗게 달라붙어 밀고당기고 하면서 두어시간을 법석대여서야 겨우 자동차를 끄집어내였다. 송건식이 자동차가 빠졌던 자리에 이르니 호반에 안개까지 덮여 사위는 캄캄했다. 그는 땅바닥에서 기름걸레쪼박을 찾아 막대기끝에 걸쳐매고 라이타로 불을 달았다. 두루 살펴보니 제방뚝을 원래대로 일매지게 고쳐쌓아놓은것이 알렸다. 량쪽 날개뚝이 다른데보다 벌어졌으나 그만하면 괜찮은것 같았다. 자기가 운수반장과 설비조립련합기업소에서 온 건설자들을 호되게 욕질하고 닦아세운것이 은을 낸것 같았다. 그러나 불안감은 가셔지지 않았다. 《자주》호자동차의 무게도 감당하지 못하는 제방이 앞으로 큰비가 오고 바다쪽에서 높아지는 막중한 수압을 견뎌내겠는가 하는 위구심이 그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다. 송건식이 지친 다리를 끌고 지휘부가설막에 이르니 마당가에서 불빛을 등지고 서성거리던 사람들이 그를 반겨맞았다. 《인제야 오시누만요.》 그와 동갑나이인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이였다. 그는 서둘러 송건식의 어깨에서 빈 질통을 벗기였다. 《동문 제방뚝에 나가지 않았소?》 침울한 기분을 가시지 못한 송건식은 괜히 몰풍스레 물었다. 《오늘은 몸이 좀 말째서…》 《회상구역이 맡은 구간이 제일 뒤떨어진것 같애.》 송건식은 지휘부식당 취사원처녀가 제때에 떠내온 비닐소랭이의 더운 물에 감탕이 튄 얼굴을 활활 씻었다.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은 취사원처녀한테서 수건을 받아가지고 송건식이한테 공손히 내밀었다. 《그닥 꼬랑지는 아닙니다.… 원래 우리 구역이야 큰 기업소들이 없어놔서…》 《그만큼 제방뚝을 적게 떼줬지.》 《걱정마십시오. 래일부터는 가두로력을 몽땅 동원시키기때문에 부쩍 다그칠수 있습니다.》 엇구수한 생선국냄새가 식당가설막안에 꽉 찼다. 느즈막의 봄추위에 몸이 언 송건식은 뜨끈뜨끈한 아래목에 퍼더앉기 바쁘게 차거운 두손바닥을 엉뎅이밑에 밀어넣었다.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이 제꺽 구석에 있던 키낮은 널판식탁을 방가운데다 놓았다. 《광포에 만날 나와있어도 위원장동지하구 정작 마주앉기가 힘들구만요.》 그는 부엌쪽에 낸 배식구에서 김이 물물 나는 남비를 들여왔다. 《아니, 잉어가 아니요?!》 송건식은 살점이 허옇게 익은 굵은 고기토막우에 파와 고추가루를 듬뿍 친 남비탕을 뜨아한 눈길로 보았다. 《회도 있습니다.》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은 뒤미처 들여온 좀 작은 남비탕은 제앞에 놓고서 흡족스레 두손을 비볐다. 지어내지 않은 그 엷은 웃음이 어쩔수없이 송건식의 얼굴에 옮아갔다. 《위원장동지, 낮에 우리 구역사람들이 뜻밖의 횡재를 했습니다. 글쎄 쉴참에 사람들이 염독내나는 감탕판에서 호반풀섶으루들 나갔지요. 그런데 물이 쪄서 물렁물렁한 기슭쪽의 감탕판에 커다란 바위등거리가 삐죽이 나와있드랍니다. 먼저 나가던 축들은 그걸 피해서 갔는데 맨 마감사람이 어쩐지 이상해서 발로 다쳐보지 않았겠습니까. 순간 바위등거리가 꿈틀하고 움직거리는 바람에 그 사람은 깜짝 놀라서 감탕판에 주저앉았지요. 인츰 정신을 차리고 바위등거리를 찬찬히 살펴본 그 사람은 너무도 기뻐서 냅다 소래기를 질렀습니다. 〈거부기다! 거부기!〉 그렇지만 뒤미처 달려온 사람들은 그 바위등거리가 거부기가 아니라 해묵은 잔등비늘이 꺼멓게 굳어질대로 굳어지고 터갈라진 잉어라는걸 알았습니다. 감탕죽에 박혀 무거운 몸집을 제대로 운신조차 못하는 잉어를 파내서 가마니짝에 담으니 중돼지보담두 컸습니다.》 《이게 그 잉어요?》 《도끼루 한토막 빠개왔지요.》 취사원처녀가 장미빛이 도는 잉어속살고기를 듬뿍 썰어담은 타원형의 큰 접시를 식탁복판에 가져다놓고 물러갔다. 《술잔두 가져와야지.》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은 한마디 이르고 후렁한 작업복바지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냈다. 《아, 술은 그만두오. 야간작업을 해야 될지도 모르는데… 난 얼벌벌한 잉어탕이면 만족하겠소.》 송건식은 손을 내젓고 식탁에 다가앉았다. 《오늘 밤은 좀 쉬십시오. 한고뿌 쭉 하면 종일 속에 밴 감탕내가 싹 제거되구 피곤이 풀립니다. 술이 없이야 무슨 잉어회맛이겠습니까.》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은 부득부득 고집스레 병마개를 땄다. 그리고는 취사원이 가져온 큰 잔에 술을 따랐다. 송건식은 요전날 시당책임비서가 단위책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작업이 힘들다고 일군들부터 술을 자주 마시는 문제를 가지고 비판하던 일이 떠올랐다. 자제하고싶었지만 울적한 심사를 달랠길 없어 더 사양하지 않고 단숨에 잔을 비웠다. 큼직큼직 모나게 썬 잉어속살고기를 저가락으로 집어 초간장에 문질러서 한바탕 맛나게 먹고 매운 잉어탕에 비지땀을 흘리고나서야 문득 자기가 진드기성미인 상대한테 업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상구역이 낸 잉어탕이 결코 공짜는 아닐텐데…》 송건식은 수건으로 벌그스레 상기된 얼굴의 땀을 훔치고나서 경계하듯 눈시울을 쪼프렸다. 《이거 궁해빠진 절 욕하지 마십시오.》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은 면구한 웃음을 띠우고 비위를 내댔다. 《실은… 우리 회상구역이 맡은 제방구간이 너무 뒤떨어져서 며칠전부터 제기하자던겁니다.》 《내 어쩐지 마당에서부터 질통을 벗겨주며 부산을 피운다 했지.… 그래 뭐요?》 송건식은 턱을 쳐들고 상대를 올곧지 않게 보았다. 《두가집니다. 위원장동지… 하나는 우리 회상구역이 차지한 가설막들 뒤켠의 둔덕을 파게 해달라는겁니다. 우린 자동차가 부족한데다가 다른 구역들보다 토량운반거리가 제일 멀지 않습니까.》 《그럼 왜 겨울에 분담했을 때 남들보다 일찌감치 좋은 자릴 잡지 않았소. 회상구역이 잔뜩 꾸물거렸으니까 그런 골탕을 먹지 않소.》 《어찌겠습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은 금시 울기라도 할듯 동정을 자아내는 목소리를 짜내고는 손바닥으로 눈덕을 짚고 괴로이 골머리를 흔들었다. 《이거 든든히 걸렸군.》 송건식은 한숨을 짓고 상대의 진실로 고통스러워하는 연기술이 밑창날 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시당책임비서가 한주일이 멀다하게 구역책임자들을 모여놓고 달궈대니 뒤자리를 차지한 그가 바빠나지 않을수 없는것이였다. 《가설막둔덕은 안되오. 농토를 파제껴 농토를 얻어낼수는 없다고 도당책임비서동지가 공사를 시작할 때 이미 선을 긋지 않았소. 두번째루 제기할건 뭐요?》 《하광포로 돌버럭을 날라오게 배를 두어척만 빌려주십시오.》 《기관선은 한척도 없소.》 송건식은 실망해서 눈길을 처뜨리는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을 보고 너무 매정스레 잘라맨다고 생각되였다. 《매생이를 두척 주겠소.》 《그거야…》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이 씁쓸한 기색을 짓는걸 보니 별로 커하는것 같지 않았다. 《매생이라두 맞교대해서 밤낮 부리면 밥조개산의 알쭌한 돌버럭을 많이 가져올수 있는거요. 싫으면 그만두오. 아직 덜 궁했구만.》 송건식은 야간작업에 나가려고 벙어리장갑을 찾아들고 일어났다. 바빠맞은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은 딸국질을 해대며 그를 뒤쫓아나왔다. 《내가 언제 매생이를 안가지겠다구 했습니까. 당장 주십시오. 밤부터 부리게.》 《따라오오.》 호반의 곳곳에서 타오르는 우등불이 밤하늘에 빨간 불티를 날리며 사위를 대낮같이 밝히고있었다. 둔덕의 가설막숲너머로 군데군데 호수의 물이 찐 검은 감탕판이 불빛에 번들거리고 상광포를 건너지른 제방뚝이 어렴풋이 보였다. 우등불두리에서는 누가 시작했는지 건설자들이 방금 춤판을 벌렸다. 빠르고 랑만에 찬 노래소리가 뒤따랐다.
… 세상은 구름에 덮여도 우리 앞길 희망차라 … 가자 웃으며 가자 미래로 나래쳐가자
춤군들이 북대신 세차게 두드리는 비닐장통소리와 손벽치고 땅이 움씰거리게 발을 굴러대는 소리에 노래소리가 삼키워졌다. 우등불이 얼른거리는데다가 춤군들이 다들 감탕이 게발린 옷들을 입었는지라 누가 남자이고 녀자인지 갈라보기 어려웠다. 《우리가 늦었구만.…》 송건식은 술기운이 퍼진 얼굴을 쓸어만졌다.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이 그의 곁에 바투 따라섰다. 《아니, 저기… 막대기루 도람통을 두드리는 사람이 시당책임비서동지가 아닙니까?! 오후에 회의가 있다구 함흥에 가는걸 봤는데.》 《옳소, 책임비서동지요. 집에 가지 않구 곧바루 광포에 나왔구만.》 송건식은 저으기 가책이 되였다. 그는 눕혀놓은 도람통앞에 퍼더앉아서 장고처럼 가락맞게 두드려대는 한성모를 부럽게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불길이 반사된 그의 얼굴은 젊은이들같은 희열이 넘쳐있었다. 아마도 돌격대원들과 건설자들이 그의 선동으로 우등불을 피우고 춤판을 벌린것 같았다. 사람들이 원료기지공사에 지치고 힘들어할수록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애쓰는 한성모였다. 하긴 광포에 동원된 함흥사람들이 진수렁처럼 빠지는 감탕판에서 질통을 지다가 쉴참을 얻고싶어도 공사책임자인 자기가 아니라 시당책임비서의 얼굴을 먼저 쳐다보군 하니 그로서도 힘을 내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우린 하광포기슭에 가자구.》 송건식은 회상구역행정위원장을 달고 우등불두리를 에돌아가며 일렀다. 《매생이들로 돌버럭을 날라오면 큰 돌들을 골라서 제방안쪽을 보강하오. 내 래일 단위책임자들한테도 강조하겠지만 이 원료기지공사에서는 제방이 기본이요. 큰물이 나서 제방이 무너지면 모든게 수포로 돌아가거던 내부망을 개간하는 사람들도 당분간은 제방다짐작업에 많이 돌려야겠소.》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이 짙은 감탕물비린내를 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