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40

 

황해북도에서도 그중 산골인 추성리골안으로 깊숙이 뻗어들어간 울퉁불퉁한 달구지길을 따라 굼뜨게 달리던 승용차들은 바위굽이길을 가로막고 사품쳐흐르는 싯누런 산개울과 맞다들렸다.

급작스레 내린 무더기비에 흙탕이 섞인 개울물이 어방없이 불어난것이였다.

앞차에 있던 수행일군들이 달려와 길이 막혔음을 알려드리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차문을 열고 나오시였다.

골짜기 웃쪽에서 밀려내려온 개울물은 가물때 흐르던 길섶홈타기를 넘쳐나가지고 넓다란 쪽으로 드러난 길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방을 둘러보시였으나 안개가 산릉선을 감싸고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골안에서 탕수를 피해 승용차가 에둘러갈 길은 없었다. 모름지기 한나절은 지나야 골짜기 탕수가 숙어들고 개울에 들어설수 있을것 같았다. 저으기 안타까우시였다.

그이께서는 여러날에 걸쳐 량강도와 자강도의 산지대들을 돌아보시고나서 평북도 산간마을을 거쳐 어제 밤에 평양에 도착하시였다.

승용차로 험준한 산발과 령들을 넘어 머나먼 길로 오시다나니 몹시 지쳤는데 뜻밖에도 주광훈이 기쁜 소식을 가져왔다.

청풍덕에 집짐승먹이풀시험포를 차렸던 사람을 찾아낸것이였다. 최인섭이라는 그 연구사는 축산학연구소에 있다가 10년전에 궁벽한 산촌인 추성리로 자원진출하였다. 풀씨연구사업에서 이렇다할 성과가 없어서 축산학연구소에서 나갔다는것으로 평판은 덜 좋았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최인섭이 연구소창고에 쌓여있던 풀씨봉투들을 가지고 산골에 갔으며 풀에 너무 미쳐 여직껏 독신으로 지내고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시였다. 그러자 멀리 백운산줄기의 청풍덕에까지 가서 수확량이 높은 집짐승이풀을 재배한 그의 지극한 소행을 다시금 헤아려보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청풍덕에서 꺾어온, 염소들이 잘먹던 실한 풀가지를 집무탁에 올려놓고 찬찬히 살펴보시였다. 어쩐지 최인섭이라는 연구사를 만나면 영양가있는 이런 집짐먹이풀을 우리 나라 도처의 산지들과 비경지들에 무성하게 재배할수 있는 방도를 찾을것 같으시였다. 10년전에 풀씨봉투들을 가지고 산골에 갔으니 모름지기 풀씨채종이나 풀판조성에서 큰 경험을 가지고있으리라고 생각하시였다.

그리하여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동안 밀린 급한 문건들을 처리하고나서 추성리를 향해 떠나신것이였다.

발밑에서 흙탕을 튕기며 소리쳐 흐르는 개울물을 난감해서 바라보던 수행일군은 그이께 조용히 말씀올렸다.

《장군님.… 아무래도 돌아서야 할것 같습니다.》

《내 그 동무를 만나자고 먼길을 왔는데 돌아선다는게 말이 됩니까?!》

《제가 후에 최인섭동무를…》

《아니, 내가 직접 만나야 합니다. 차로 못 가면 걸어서라도 갑시다. 개울을 건너가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저없이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시였다. 그리고 급해서 어쩔바를 모르는 수행일군에게 이르시였다.

《동문 차에 가서 먹이풀표본을 가지고오라구.》

그이께서는 구두와 양말을 벗고 선참 개울에 들어서시였다.

찬 흙탕물이 대뜸 무릎을 넘어 걷어올린 바지가랭이를 슬쳤다. 생각보다 개울물이 퍼그나 깊어서 바싹 걷고 건너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 시원하고 좋구만.》

그이께서는 호탕히 웃으시며 개울바닥의 미끄러운 돌을 밟는 바람에 몸을 비칠거리는 수행일군을 돌아보시였다.

《그러다 넘어지겠소.》

개울건너편길에서 해볕에 얼굴이 감실감실하게 탄 애젊은 청년이 쇠줄에 꿴 자그마한 치차를 어깨에 걸치고 내려오고있었다.

그는 맞은켠에 서있는 승용차와 개울로 건너오는 손님들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헤덤벼치며 달려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개울을 다 건느시자 저치 길옆에 못박힌듯 굳어져서 어쩔바를 모르는 눈만 슴벅거리는 청년을 향해 손짓하시였다.

청년은 어줍어하면서도 뜻밖에 그이를 만나뵈니 무척 행복한 얼굴로 인사를 올렸다.

《골안에서 삽니까?》

《예.… 저는 유성춘이라고 뜨락또르운전수입니다.》

《음, 저 골안에 최인섭이란 사람이 있지?》

《〈풀박사〉아저씨 말입니까?!》

《축산학연구소에 있다가 진출나온 사람이요.》

《맞습니다. 아저씨가 있습니다. 전 〈풀박사〉아저씨를 잘 압니다.》

《그 집까지 먼가?》

《15리쯤 됩니다. 장군님, 제가 길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마침 잘됐구만. 이야기를 하며 같이 가자구.》

김정일동지께서는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유성춘을 앞세우고 달구지길을 따라 걸으시였다.

《최인섭동무가 박사는 아니지?》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예, 아닙니다. 〈풀박사〉는 그 아저씨가 풀에 대해 하도 박식해서 추성리사람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그렇지만 인섭아저씨는 전에 연구소에 있을 때 박사론문을 썼댔습니다. 자주꽃자리풀재배와 채종에 대한겁니다. 지금도 아저씨네 집 책무지속에 그 론문이 있습니다. 후에 아저씨는 박사학위 받는걸 그만두고 풀씨채종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우리 농장에 진출나왔습니다. 하루는 제가 아저씨더러 학위론문을 과학원에 올려보내라고 하니까… 박사가 되는것보다 나라에 실지 필요한건 좋은 먹이풀씨를 풍토순화시키는것이라고 말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러니 최인섭동무는 지금껏 추성리에서 풀씨연구를 했단 말이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저으기 기쁘시여 혼자 말씀처럼 뇌이시였다. 이 산골에까지 찾아온 기대가 빗나가지 않은것이였다.

《성춘동문 〈풀박사〉에 대해 잘 아는구만.》

그이께서 칭찬하시자 유성춘은 아주 뻐기고싶은 생각에 속이 부풀어올랐다.

《전 그 아저씨의 조수격으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채종포에 풀씨를 심고 가꾸는 일을 다 할줄 압니.》

《채종포가 얼마나 되나?》

《인섭아저씨와 친구간인 이전 리당비서동지가 있을 때는 시험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러해동안 그 풀밭들을 도로 내주다나니 이제는 골짜기 비탈지에 있는 반정보짜리 채종포밖에 없습니다.》

《관리위원회에서는 채종포에 관심이 없구만.》

《해마다 농장알곡생산계획을 못해서 풀씨시험포 같은걸 차리게 할 형편이 못되였다는겁니다. 인섭아저씨가 추성리에 너무 오래 있다나니 시끄러운 사람으로 된것 같습니다. 풀씨 한번시험에 옹근 한해가 걸리고 그걸 풍토순화시키자면 또 여러해가 지나야 된다는걸 리해해주지 않습니다.》

《채종포자리에다는 뭘 심었나?》

《더러는 강냉이를 심구… 공예작물계획을 해야 한다면서 메밀과 녹두를 심었습니다. 그 풀밭은 원래 농장포전도 아니고 인섭아저씨가 10년동안 버림받던 경사지의 묵인 땅을 찾아다니며 한뙈기, 뙈기 잡풀들을 뽑아버리구 고생스레 일군겁니다. 인섭아저씨는 애지중지 풀을 심던 그 채종포들을 내놓을 때마다 제 살점이 뜯기는것처럼 아파하구 울었습니다.》

《동문 〈풀박사〉를 몹시 존경하는구만.》

《장군님… 인섭아저씨는 정말이지 성실하구 탐구심 깊은 식물학자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집짐승이 먹는 좋은 풀씨만 묵묵히 걷어들이는 아저씨한테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인섭아저씨를 도와달라고 군경영위원회에도 찾아갔구 도일보에 원고를 써보내기까지 했습니다.》

유성춘은 안주머니에서 오려낸 접은 신문지를 자랑삼아 꺼냈다.

《어디 보자구.》

김정일동지께서는 통신원기사란에 짤막하게 실린 글을 읽어보시였다.

《추성리의 애국자》라고 제목을 단 기사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지 채종포에서 살면서 집짐승먹이풀을 가꾸는 최인섭의 아름다운 소행을 간단히 소개하고있었다.

《아주 좋은 일을 했구만. 기사제목을 잘 달았어. 애국자라…》

그이께서는 조용히 뇌이시였다.

길섶에서는 개울물이 넘쳐흐르고 짙은 안개구름은 산마루를 감싸며 피여올랐다.

골짜기경사면에 우거진 애잎 돋은 잡관목숲이 비를 맞아 연록색의 청신한 생기를 뿜고있었다.

일행이 어느덧 달구지길에서 벗어져 개울가의 소로길에 이르자 유성춘이 그이께 말씀올렸다.

《장군님, 인섭아저씨의 집에 먼저 가시겠습니까?》

《〈풀박사〉는 어데 있나?》

《채종포에 있을겁니다.》

《그럼 거기부터 가자구.》

소로길을 한참 걸어 비탈지의 풀밭이 보이는 둔덕을 넘어서자 유성춘은 두 팔을 내저으며 바람처럼 앞서 뛰여갔다.

《인섭아저씨!—》

유성춘이 웨치며 풀이 무릎을 치는 밭고랑 경사면을 건둥건둥 넘어 달려가자 꿰진 밀짚모자를 쓰고 낫질을 하던 사람이 허리를 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사람이 자신께서 그렇게 만나보고싶던 최인섭임을 알자 바삐 걸음을 다그치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바지가랭이에 슬치는 주변에 온통 새파랗게 무성한 풀이 청풍덕에서 염소가 잘 먹던 그 풀임을 진작 알아보시였다.

밀짚모를 벗어든 최인섭은 유성춘에게 이끌려 허둥지둥 달려왔다.

《장군님!…》

《인섭동무구만.》

《장군님,… 풀이 비까지 와서… 옷이 젖습니다.…》

《일없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나무껍질처럼 터슬고 딱딱한 최인섭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였다.

해볕에 탈대로 타고 눈비와 바람에 시달린 그의 까무잡잡한 얼굴에는 때이른 실주름이 엉켰고 머리는 반나마 세였다.

《고생이 많았지요?… 내 다 알구왔습니다.》

《장군님…》

최인섭은 그이께 손을 맡긴채 설음을 터쳤다.

《내가 동무를 얼마나 힘들게 찾았는지 압니까? 난 집짐승먹이풀을 재배하는 동무 같은 훌륭한 사람이 있는걸 몰랐소. 온 나라 산지들을 다니다가 청풍덕에서 연구사동무가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청풍덕에 말입니까?!》

《인섭동무가 시험포를 했던 곳에서 염소가 좋아하는 풀이 아직도 잘 자라오. 이 풀들이요. 내 몇가지 꺾어왔습니다.》

그이께서는 무릎을 적시는 잎새가 갤쭉한 풀과 두이랑 건너서 콩이파리처럼 동글동글한 작은 잎이 달린 풀을 가리키시였다.

수행일군이 투명한 비닐속에 풀가지를 표본한것을 최인섭에게 보였다.

《그게 동무가 심은 풀입니다. 이른이여서 다른 풀들은 겨우 싹이 돋는데 그건 왕성하게 자랐더구만.》

그이께서 빙긋이 웃으시였지만 풀가지표본을 받아든 최인섭의 눈은 감동으로 젖어들었다.

저는… 청풍덕을 떠난 다음에는… 여러해 되였지만 가볼 생각조차 안했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이렇게 다녀오실줄은…》

최인섭은 그토록 리해를 받지 못하고 버림받던 자기의 연구사업을 소중히 여겨주시는 그이앞에서 더 말을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 풀이름이 뭡니까?》

《이 길죽한건 오새구 이쪽건 자주꽃자리풀이라고 합니다.》

《음, 그래 어떻습니까. 동무가 청풍덕에 심은 오리새와 자주꽃자리풀이… 거기는 해발 1 000메터가 넘는 산지대지.》

《이걸 보니 청풍덕에 완전히 풍토순화가 됐고 해발고 높은 우리 나라 산지들에 얼마든지 재배할수 있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풍토순화라… 그러니 이 풀들은 원산지가 다른 나라구만.》

《예. 이 오리새와 자주꽃자리풀은 80년대초에 수령님께서 축산업발전을 위해 유럽에서 들여다 주신겁니다. 그때 단백질이 많은 집짐승먹이풀씨들을 많이 사왔는데 참새귀리와 벌노랑이, 기적초, 전동싸리 같은 풀들은 저기 맨 웃이랑들에서 자랍니다.》

《올라가 봅시다. 동무가 재배하는 풀들은 다 보고싶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슬에 바지가랭이를 적시며 최인섭을 따라 비탈밭 웃쪽으로 올라가시였다.

거기 밭이랑에는 생김새가 다른 풀들이 하나같이 검실하게 자라 무릎도리를 치고있었다.

《풀이 잘됐구만. 이게 다 집짐승이 잘 먹는거겠지요?》

《예. 단백질이 많습니다. 비타민 A, B, C…는 남새보다 함유량이 못하지 않습니다. 오리새와 자주꽃자리풀은 닭알과 영양카로리가 맞먹는 풀이여서 여기 사람들은 산에 나무하러 왔다가 제가 없기만 하믄 슬쩍 베여다가 집에 가서 나물로 무쳐먹습니다.》

《허, 대단하구만.》

최인섭은 그이께서 감탄하시며 자기 말을 흥미있게 들어주시자 아주 신이 났다.

《아무리 여윈 염소도 열흘만 여기다 갔다 매면 알도리가 있습니다. 염소가 이 먹이풀들을 실컷 뜯어먹은 다음에 저 밭 변두리의 쑥으로 입가심을 하고나서 한잠 자고나면 인차 살찌고 젖이 나옵니다.》

《수확은 어떻습니까?》

《이 풀들은 벌써 3월초면 눈밑에서 새파랗게 반뽐씩은 자랍니다. 1년에 대여섯번 베거나 방목하고도 서리 오는가을에는 무릎을 넘는 청풀을 건초하거나 절임할수 있습니다. 정보당 사료강냉이에 대비해보면 영양가는 몇십배이고 수확량도 훨씬 높습니다. 다년생이니 이듬해에 씨를 심지 않아도 묵은 더덩구에서 또 자랍니다.》

《비료는 얼마나 줘야 합니까?》

《비료를 주면 좋지만 없을 경우에는 자주꽃자리풀이나 흰토끼풀같은 콩과풀과 오리새와 참새귀리 같은 벼과풀을 섞어 심으면 됩니다. 콩과풀들이 뿌리에서 질소를 고정해서 벼과풀들에 저절로 〈비료〉를 공급합니다.》

《〈풀박사〉동무한테서 배울게 많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꿰진 밀짚모를 쓴 허술한 차림새의 최인섭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수령님께서 귀한 자금을 들여 사다준 풀씨들을 축산부문에서는 천농장의 산경사지들에 심었다가 종자조차 건지지 못하고 실패했는데 인섭동무한테서는 이렇게 잘 자라는구만. 연구소창고에서 쥐가 먹던 풀씨봉투들을 가지고나왔다지요?》

《그때 축산연구소에 종자별로 조금씩 풀씨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아주 없어질번 했습니다.》

《여기 비탈밭이 걸지 않은것 같은데 <풀박사>동무는 어떻게 성공했습니까?》

《유럽에서는 평지대산림에 휘발유 뿌리고 잡관목을 불태우고서는 풀씨를 살포해서 풀밭을 만들었습니다. 외국출판물에 이런 쉬운 방법이 많이 소개되였는데 운천농장에서는 유럽의 평지대풀판조성방법을 그대로 받아들였기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됩니다. 운천에서는 산경사지의 큰 나무들을 뿌리까지 뽑아버리고 잡관목들도 말끔히 불태우고 풀씨를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장마비에 산흙이 풀씨와 함께 씻겨내렸습니다. 저는 거기서 교훈을 찾고 잡관목을 띠처럼 사이사이 남겨두고 풀씨를 심었다가 몇해후에 풀이 더덩구앉은 다음에 잡관목을 마저 베고 풀씨를 심었습니다.》

《그러니 산이 흙과 물을 잡고있게 하면서 풀밭을 늘여나갔구만. 아주 잘했습니다. 토심이 얕은 우리 나라 산지에 알맞는 풀판조성방법인것 같소. 인섭동무는 외국에 가지 않고도 좋은 먹이풀재배경험을 획득했구만.  진짜 풀박사요. 동무한테 집짐승이 잘 먹는 우리 나라 풀을 심은건 없습니까?》

그이의 물으심에 최인섭은 나직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떨구었다.

《없습니다.…》

《아닙니다. 장군님, 있었습니다.》

에 섰던 유성춘이 한걸 나섰다.

《저기 비탈지아래 갈아엎은 큰 밭은 인섭아저씨가 우리 나라 먹이풀을 심어 재배하던 시험포였습니다. 민들레와 달맞이꽃, 사라구, 냉이, 제비쑥, 비름, 말굴레.… 같은 좋은 풀은 다 재배했습니다. 밭변두리에는 싸리와 스무나무, 개암나무, 비슬나무 같은 잎가지먹이도 심었댔습니다.》

《그런걸 갈아엎었단 말이지… 이제 저기다 들깨와 강냉이를 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나직이 물으시였다.

《예, 농장에서 공예작물을 심구 더러는 군경영위원회 부업지로 되였습니다.》

유성춘은 최인섭이 뒤에서 옷자락을 당기는데도 정의감을 움츠리지 않고 덧붙였다.

《이 비탈지채종포도 내놓고 다른 고장에 가서 연구사업을 하라고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분기를 누를수 없어 묵묵히 오리새와 자주꽃자리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채종포를 바라보시였다. 《푸른 금》과 같은 이렇게 좋은 먹이풀을 연구하는 사람을 싫어하다니. 오히려 연구사가 다른 고장에 가겠다면 사정해서라도 농장축산을 위해 붙들어둬야 할것이 아닌가. 산지에 이런 풀판을 조성하여 염소나 소를 기르면 보잘것없는 강냉이수확에 비할바없는 영양가높 축산물을 생산할수 있다는걸 모르는 청맹과니같은 일군들이다. 풀과 고기를 바꾸라는 당의 축산정책의 정당성과 장래성을 인식 못하고 아예 뒤전에 밀어놓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때문에 그 좋은 축산정책이 세월을 거듭하며 지연되고 관철되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인섭동무, 이제는 누구도 동무의 풀밭을 다치지 못할거요. 지난 기간 부치던 채종포들도 다 돌려받으시오. 그리구 땅을 더 주도록 하겠습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저는 그저 경사가 정 급하지 않은 산들과 비탈지, 페경지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심을 풀씨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집에… 저는 풀씨만은 부자입니다.》

《그래?! 그럼 어디 집에 가서 풀씨재산을 보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소박하고 근면한 《풀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다니는것이 무등 기쁘시여 시간이 퍼그나 흘러간것도 느끼지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비탈지 오솔길을 걸어내려오시며 최인섭이 고생스레 풀밭을 일구던 일이며 봄부터 겨울까지 채종포에서 살다싶이하면서 풀을 자래우고 씨를 받던 과정을 진지하게 들으시였다.

그가 설명하는 풀씨파종때의 토양성분과 습도, 싹트는 시기와 비내림량, 흙씻김정도 그리고 풀키조사와 해비침률, 꽃피고 풀이삭맺히는 식물생리과정까지도 다 흥미있었다.

《장군님, 재작년 봄에는 산토끼들이 채종포에 자꾸 들어와서 밤에는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는 쇠줄을 얻어다 옹노를 만들어 밭머리숲에 여러 군데 놓았더니 글쎄 새끼노루가 한마리 걸리지 않았겠습니까.》

《저런, 그래서?…》

《놓아줄가 하다가 고적감을 메꾸려고 노루새끼를 길렀습니다. 그것도 산속에서 맹수한테 쫓기며 사느니 제곁에서 맛좋은 풀을 배불리 뜯어먹고 지내는게 썩 좋은 모양이였습니다. 늦은여름에 가서는 노루가 잔뜩 살이 찌고 송아지만큼 컸댔는데 하루는 숲에 들어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컷이 다 컸으니 짝을 찾아간 모양이였습니다.》

《허 <친구>를 잃은셈이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최인섭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덧 골짜기웃쪽에 있는 그의 집 뜨락에 당도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떨어진 흙벽을 바르고 회칠을 깨끗이 했으나 출입문이 하나밖에 없는 단칸집두리를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마당은 반반히 쓸었고 문창호지도 새것으로 발랐으나 농촌집치고는 볼품없이 작았다.

《여름에 비가 새겠소.》

그이께서는 깨진 기와장들이 드문한 낮은 지붕을 쳐다보시고 최인섭에게 물으시였다.

《이 집에서… 몇년을 살았습니까?》

《10년… 더 됩니다.》

그이께서는 묵묵히 방안에 들어가시였다.

배불룩한 자루와 마대들이 방 절반을 가득채웠고 그우의 당반에는 책들과 원고무지들이 쌓였다. 이불 한채와 벽에 걸린 허름한 옷가지들, 세면수건과 석유등잔밖에는 눈에 띄는것이 없었다.

그이께서는 마대자루들을 손으로 가리키시였다.

《이게 풀씨요?》

《예.…》

《어디 좀 보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최인섭이 마대아구리를 헤치자 안을 들여다보고 감탄하시였다.

연한 갈색의 윤기도는 작은 풀씨가 마대안에 가득찬것이였다. 여느때 풀숲에서는 보기조차 힘든 풀씨를 어쩌면 이렇게 많이 모았을가.

그이께서는 풀씨를 웅큼 집어내여 손바닥에 놓고 만져보시였다. 깨알보다 훨씬 작고 매끈매끈한 가벼운 풀씨들이 뽀얀 황금빛광채를 뿜으며 손가락짬으로 새여내렸다.

《이건 자주꽃자리풀씨고 이건 오새풀씨구만.》

그이께서는 마대곁에 써놓은 글을 소리내여 읽으시고 다른 마대를 또 들여다보시였다.

마대들마다 모양새와 크기와 빛갈이 차이나는 풀씨들이 풀검불하나 없이 정히 담겨있었다.

낟알자루는 눈에 띄지도 않았다.

《동문 정말 풀씨부자구만… 이 풀씨들이 다 풍토순화시킨겁니까?》

《예. 우리 나라 땅엔 어디나 심어도 잘 자라고 높은 수확을 낼수 있습니다.》

《이 많은 풀씨를 채종하느라 얼마나 고생했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더 말씀을 못하시였다. 눈물이 나시였다. 가장집물은 하나도 갖추어놓지 못하면서도 풀씨만은 얼마나 소중히 보관했는가!

《저건 무슨 론문입니까?》

그이께서 당반에 있는 끈으로 묶은 원고를 가리키였다.

《제가 먹이풀재배경험을 사람들에게 알려줄가 해서 쓴겁니다. 초고입니다.》

《보자구.》

최인섭은 면구해하며 누런 종이로 된 원고를 내리워 그이께 드렸다.

〈우리 나라 기후풍토에 적응한 풀판조성의 경험적문제〉라.… 아주 중요한걸 썼구만.

정일동지께서는 옆으로 흘려서 쓴 글을 뜯어보시였다.

판을 조성하면 버림받던 땅에서 많은 축산물을 생산할수 고 국토가 보호되고 아름다와지며 땅이 점점 걸어지게 된다는 유익성면을 해설한 머리글부터 그이의 마음을 끌어잡았다.

문에서는 자연먹이풀은 봄늦게 자라고 여름 한철밖에 리용 못하지만 재배먹이풀은 겨울 강추위시기만을 내놓고는 거의나 사철리용할수 있다는것과 산기슭과 비탈지, 덕지대에서 먹이풀의 씨앗받기와 풀판적지선정, 자연먹이풀판을 재배먹이풀판으로 개량해나가는 기술적문제들을 수자와 시험자료를 안받침하여 구체적으로 서하고있었다.

실용적가치가 큰 론문이구만. 빨리 출판해서 축산부문 사람들이 보게 해야겠습니다.

제가 다시 잘 정리하겠습니다.

인섭은 기뻐서 원고를 받아들다.

당에 나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밀짚모자를 쓴 최인섭을 정겨운 눈길로 보시였다.

내 오늘 이 산골에 와서 나라를 참답게 사랑하는 훌륭한 식물학자를 만났소. 정말 기쁘오. 동무는 과학자이기 전에 애국자요. 나라에 보탬이 되는 큰 일을 했습니다.

장군님,… 저는 그저 우리 나라 산들에 단백질이 많고 수확량이 높은 집짐승먹이풀이 가득 뒤덮이게 하고 싶었을뿐입니다.

《옳소. 내 조국 산에 리로운 풀 한포기라도 정을 바쳐 심고 가꾸는 사람이 진짜 애국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헌신적인 식물연구사에게 애국자라는 말외에 더 훌륭한 칭찬을 해줄수 없는것이 아쉬우시였다.

《집짐승먹이풀 재배경험을 실천으로 체득한 〈풀박사〉가 있으니 됐소. 내 얼마전에 축산전문가들을 우리 나라처럼 산지가 많고 기후풍토가 비슷한 스위스에 보냈습니다. 그 동무들이 풀판을 조성하고 염소를 기르는데서 좋은 경험과 기술을 배워올거요. 이젠 풀과 고기를 바꾸는 축산정책을 본격적으로 밀고나갈수 있게 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국의 산지들에 질좋은 먹이풀을 무성하게 자래워 이르는 곳마다 풀먹는 집짐승을 대대적으로 길러 인민들에게 젖과 고기를 넉넉히 먹이려는 소원이 금시 풀리는것만 같아 기쁘시였다.

그이께서는 부강조국을 위한 축산정책의 관철방도와 확신을 가지게 해준 이 《풀박사》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으면 좋을가 하고 생각하시였다.

식물학계와 축산학계에서는 마땅히 이풀재배리론과 천경험으로 나라에 공헌한 그에게서 《풀박사》별명을 벗기고 진짜박사학위를 줄수 있을것이다. 신문과 텔레비죤에도 크게 소개하고.

최인섭에게는 로력영웅칭호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헌신적이고 소박한 애국자에게는 값높은 영예와 학위의 월계관보다 더 절박한것이 있지 않겠는가. 안해도 없이 10년세월을 이런 초라한 집에서 살면서… 그리고 눈비를 맞으며 채종포를 가꿔오면서 그가 잃어버린 인간적인 모든것을 되돌려줄수 없는것이 안타까우시였다.

풀씨자루들밖에는 아무런 재산도 없이 빈곤하게 사는 그에게 마땅히 이 추성리에 온 나라가 부러워 할 집을 지어주고 가산을 챙겨주고싶으시였다. 그가 안해도 맞아들이고 수십정보의 채종포에서 연구사업을 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도록 해주면 자신의 마음도 편할것 같으시였다.

울바자 뒤길로 싸리바구니를 안은 녀인이 유성춘의 뒤를 따라 종종걸음을 쳐왔다.

금방 뜯은듯 싱싱한 산나물이 담긴 바구니를 급히 내려놓은 녀인은 그이께 인사를 올리고는 부끄러운듯 최인섭의 뒤에 섰다.

《누굽니까?》

《저의…》

최인섭은 열적어서 우물쭈물 대답을 못했다.

그제야 김정일동지께서는 연구사가 새로 안해를 맞아들였음을 알고 기뻐하시였다.

《이리 가까이 오오. 우리 〈풀박사〉의 인생반려자가 된 동무를 자세히 봅시다. 정말 반갑소. 난 여직껏 〈풀박사〉를 보살펴줄 녀성이 없는것 같아 마음에 걸려 떠나지 못하고있었습니다.》

그이께서는 얼굴이 붉어져서 몇걸음 다가오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있는 녀인이 이목구비가 단정히 생긴것이 기쁘시였다.

《추성리 사람입니까?》

《함흥에서 살다가…》

《함흥사람이 어떻게 여길?…》

최인섭은 수줍어하는 안해를 대신해서 그이께 사연을 자세히 말씀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린 아들을 찾아 헤맨 녀인의 고통스럽던 정상이 그대로 가슴에 미쳐와 한동안 비구름이 떠가는 산발너머 먼 하늘가만 바라보시였다.

《용철이라고 했지.…  일곱살…  타고장의 강가에서 죽다니… 그 사람이 잘못 본게 아닐가?》

《장군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미동무가 제 눈으로 보지 못했는데… 그런 말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최인섭은 그이의 말씀에 힘을 얻어 자기 주장을 세웠다.

《그래서 저는 채종포의 김이나 맨 다음에 선미동무와 같이 함흥쪽에 다시 가서 아들을 찾아보자구 합니다.》

《그렇게 하오. 나도 용철이를 찾아보겠소. 아마 꼭 살아있을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심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선미동무는 고생하면서도 나라의 보배같은 이런 인정깊은 사람을 만난걸 보니 운이 여간 좋지 않습니다. 불행이 가셔질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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