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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충연은 도당사무실에서 밀린 일감을 처리하고 밤 늦어서야 퇴근했다. 집현관문에서 안해가 미안쩍어하는 밝지 못한 낯빛으로 가방을 받았지만 광포제방문제에 골몰해서 마음이 무거워진 그는 별다른 기미를 느끼지 못하고 방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여느때와는 달리 뜨끈한 방아래목에 네활개를 뻗고 자던 용철이와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침대에는 얼굴의 헌데자리가 깨끗이 아물고 말쑥해져 곱던 소영이도 없었다. 《애들은 어데 갔소?》 《서기동무가… 말하지 않습디까?》 창희는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애들 이야기는 없었소.》 《도행정위원장동지가 서기랑 토론하고 애들을 애육원에 보내기로 했대요. 그래 낮에 애육원원장이 차를 가지고와서 애들을 데려갔어요.》 《흠… 끝내 나 모르게 해치웠군.》 라충연은 분이 돋아 중얼거렸다. 모름지기 사람들앞에서 도당책임비서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게 일을 슬쩍 처리한것 같았다. 그는 문지방어귀에 엉거주춤 서있는 안해를 향해 강마른 어조로 따져물었다. 《당신은 그래 애들을 순순히 내주었소?》 창희의 얼굴은 새하얘지고 눈시울이 파르르 떨렸다. 《왜 나한테 큰소리를 치는거예요?! 아무렴 내가 애들을 좋다하고 애육원에 보냈겠어요. 당신은 만날 나가있다나니 다섯이나 되는 애들을 어떻게 길렀는지 모르지요?!》 라충연은 반발하는 안해의 눈가에 물기가 핑 고이는것을 보고는 성이 좀 누그러졌다. 《아무렴, 그 애들은 당신이 맡아 길렀지. 내야 손가락 하나 까딱한게 있소.》 그는 덧옷을 벗으며 솔직히 자인하는것으로 수세에 몰리는것을 피했다. 《집에 애들이 없으니… 섭섭하구만.》 《난 그 애들과 수월히 헤여진줄 아세요?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용철이와 소영이를 붙들고 줄곧 울었어요. 지금도 허전하구 얼이 빠진 녀자같애요.》 창희는 눈물을 삼켰다. 라충연은 안해를 조금도 탓할수 없음을 느끼였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궁리하고 위안해보아도 정들여 키우던 애들을 애육원에 보낸것이 잘된 일로 여겨지지 않고 량심에 걸렸다. 《장군님께서는… 일전에 우리 집에서 부모없는 아이들을 키운다고… 당신이 수고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소.》 그는 안해한테라기보다 장군님을 받드는 자기의 당적량심과 헌신성에 가식의 너울을 씌운것 같았다. 《여보, 제가… 어떻게 장군님의 말씀을 잊을수 있겠어요.》 창희의 목소리는 낮았다. 《나도 처음엔 애들을 보내려 하지 않다가 애육원원장의 설복을 듣고는 생각을 달리했어요. 쉰살이 넘은 내가 집에서 애들을 끼고 있어야 한창 자라고 배워야 할 애들에게 리로울게 뭐 있겠어요. 그렇지만 용철이랑 애욱원에 가면 처녀교양원들의 생신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노래도 배우고 글도 익힐게 아니예요. 그래서 장군님께서 애육원을 설립해주었다고 원장이 말했어요. 부모없는 아이들에게 애육원은 장군님의 품이라고… 자기들이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고 다짐했어요. 원장도 전쟁때 애육원에서 자란 녀자더군요.》 창희의 설득력있는 말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원장의 말이 옳소. 하지만 우린 아직 애육원이 장군님의 품이라고 말할수 있게 충분히 꾸리지 못했소. 건물은 좋은걸 얻었지만 침실과 교양실, 교실들을 아이들의 교육생활조건에 맞게 잘해주지 못했소.》 《도행정위원회에서 거의다 꾸려주었다고 하더군요.》 《친부모하구 사는 집보다 낫게 해주자면 아직 멀었소. 애들을 배불리 먹이는 문제도 그렇구.》 라충연은 어저께 교육부장이 애육원에 나갔다와서 형편을 보고하던것이 생각나서 퉁명스레 말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도행정위원회에서 애육원꾸리는 사업을 부서별로 분담시켜 벌리고있지만 아직 할일이 적지 않은것이였다. 라충연은 자기가 송전만소금밭건설과 광포원료기지공사와 같은 대자연개조사업에 볶이우고 그밖에 도내의 하많은 일들에 묻혀 애육원사업을 방관시했다는 가책이 컸다. 그는 애육원의 교구비품에 이르기까지 원아들의 교육과 생할에 필요한 모든것을 구비해주는 사업을 도행정위원회에만 맡기지 말고 도당에서 힘껏 밀어주어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라충연은 저녁을 먹고나서 서재에 건너갔다. 그가 전화기놓인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머리속에서 하루사업을 정리해보는데 안해가 조용히 들어왔다. 《밤이 깊은데 쉬지 않구…》 창희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시름겨웠다. 충연은 어쩌다 안해와 호젓한 분위기에 마주하건만 애육원에 보낸 아이들과 광포제방문제의 압박감에서 좀처럼 벗어날수 없었다. 《난 좀 혼자 있고싶소.…》 그의 랭담스럽다 할 정도의 말에 창희는 서운한듯 사무책상귀퉁이를 손으로 매만졌다. 《애들때문에 아직도 기분이 좋지 않아요?》 안해의 사려깊은 물음에 끌려들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들이 애육원에 맘 붙을가?》 《울거예요. 그러다 차차 나아지겠지요.》 라충연은 추운 겨울 고원역홈에서 용철이를 데려오던 일이 생각나 무겁게 한숨을 쉬였다. 자기는 애들을 얼마간 맡아 기르는것밖에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는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애육원을 세워주시였는가를… 그리고 도당책임비서인 자기가 애육원문제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왔는가를 다시금 깊이 반성해보았다. 《오늘 광포에 나가있었어요?》 창희가 조용히 물었다. 《나갔댔소.》 《시돌격대에 들려봤어요?》 《응.》 창희는 명구가 광포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부터는 안심하고 진정했으나 노상 궁금해하고 공사장에 나가 아들을 만나보지 못해 안달이나 하고있었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고아들한테 발목을 잡혀 있어 집을 떠나지 못한것이였다. 《명구녀석이 일을 여간 잘하지 않소. 매생이로 하광포건너에서 돌을 날라오는데… 돌 한개라도 더 매생이에 싣겠다고 자기는 물에서 해염치면서 배를 밀고 다니오.》 《저런?! 호수물이 찰텐데… 당신은 돌격대장한테 명구가 그러지 못하게 하라구 말하지 않았어요?》 라충연은 아들칭찬을 한다는게 도리여 창희의 걱정을 돋궈준셈이 되자 머리를 끄덕이며 거짓말을 했다. 《그야 말했지.》 《명구가 당신 아들이란것도 알려줬어요?》 《그럴 필요가 뭐 있소. 그건 명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요. 그 애는 집을 떠날때부터 아버지덕을 입지 않겠다고 단단히 강심을 먹은것 같소.》 《그래두 말할걸 그랬어요.》 《걔가 뭐 어린애요?! 그리구 난 사람들에게 아들자랑을 하구싶지 않소.》 창희도 이쯤되면 남편에게서 더 바라지 못한다는것을 아는지라 한숨을 쉬고 돌아섰으나 문지방에서 홀연 몸을 돌렸다. 《일요일에 나도 광포에 나가겠어요.》 《맨손으로?》 《가두녀자들과 같이 일하지요 뭐.》 《책임비서의 처가 소랭이로 감탕을 날라서야 무슨 보탬이 되겠소. 그러지 말구 금순이 시집보내자구 장만한거 좀 있지 않소. 그걸루 돼지 한마리쯤 마련하오. 도당에서 인차 가족예술선동대를 무어 광포에서 공연하자고 하는데 그때 당신도 나가오. 제방건설자들에게 고기국도 끓여주고 노래도 부르고.》 《정말이예요?!》 《그러지 않구. 내 말해놓겠소. 독창을 하라구. 옛날 협동조합써클원 솜씨를 보이란 말이요.》 《고마워요.…》 어느덧 창희의 얼굴은 밝아지고 실주름마저 반반히 퍼진듯 했다. 라충연은 창희가 눈물이 글썽하도록 기쁨에 떠서 방을 나가자 다시금 번민에 휩싸였다. 그의 눈앞에는 상광포를 건너지른 제방이 괴롭게 떠올랐다. 걸죽한 감탕판에서 진력을 뽑아 지칠대로 지친 단위책임자들의 초췌하고 신경질적인 얼굴들이 되살아났다. 그들은 마치 동요하는 송건식이와 합세하여 공사의 운명을 놓고 무언가 호소하는듯싶었다. 지휘부가설막에서 주장들이 엇갈리기는 했어도 쥐여짜보면 대부분 일군들이 제방을 쉬염쉬염 쌓으면서 침하되는 원인을 찾고 내부망개간은 뒤로 미뤘으면 하는 속심을 가진것 같다. 현재로서는 그것이 가장 온전한 립장일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공사를 완만하게 하고 밀고나가다가는 금년말까지도 원료기지를 끝내지 못한다.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 지치고 락심하고 동요하는 일군들을 일떠세워야 한다. 수리동력대학의 학사들과 의논해보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라도 기준공법대로 제방의 량기슭을 따라가며 말뚝을 박아 삐져나오는 감탕을 견제하자고 할것이다. 그러나 수만대의 통나무를 어데서 구하며 어느 하가에 그것들을 감탕속에 박겠는가. 광포호수략도를 그려놓고 걸상에 앉은채 깜박 잠들었던 그는 전화종소리에 깨여났다. 《책임비서동무입니까?》 뜻밖에도 송수화기에서 울리는 귀에 익은 친근한 목소리에 충연은 벌떡 일어나서 옷매무시를 바로잡았다.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라충연이 전화받습니다.》 《그새 앓지는 않았습니까? 내 함북도에서 전화를 하오. 동해안일대의 산발을 돌아보며 오다나니 동무한테 들리지 못했습니다.》 《뵙고싶었습니다.》 《갈 때도 충연동무를 못 볼것 같습니다. 량강도와 자강도의 덕지대와 산들을 바라보면서 평양으로 가려고 합니다.》 《장군님… 어쩌면 그렇게 먼길을 에돌아다니십니까?》 《우리 나라에서 놀고있는 산들과 비경지들을 리용해서 풀먹는 집짐승을 대대적으로 길러볼 결심입니다. 내 오면서 함경남도의 여러 산지대들을 돌아봤소. 청풍덕같은데는 풀판을 조성하고 조금만 노력하면 훌륭한 염소목장을 일떠세울수 있겠소. 〈푸른 금〉이 될수 있는 나라의 대부분 산지대를 내버려두고 굶주리는것은 용납할수 없는 불행이고 죄악이나 다름없습니다.》 《장군님… 저는 청풍덕엔 한번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앞으로 구체적인 지시문을 떨구겠지만 충연동무가 함경남도에서 풀과 고기를 바꾸려는 당의 의도를 결사관철할 준비를 잘 갖추시오. 함남도 산들도 보면 용재림과 유지림 같은 경제림을 내놓고는 벌거벗은 산들이 적지 않소. 사람들이 땔감이 없으니 나무를 란벌했고 불을 놓고 부대기를 일퀐소. 이제 비가 많이 내리면 흙이 씻기고 나무숲이 없어 물을 잡지 못해 산사태가 날텐데… 가슴아픈 일입니다.》 《장군님, 제가 도의 산들을 다녀보고 그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수종이 좋은 나무들을 심고 경사가 급하지 않은 산들과 비경지들에는 집짐승먹이풀을 심어야 합니다. 어떤 먹이풀을 어떻게 심겠는가는 축산부문 전문가들과 토론하여 좋은 방도를 세우려고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물으시였다. 《광포제방공사는 어떻소? 책임비서동무가 광포호수에 나가 산다는 말을 들었소. 그래 잘 진척됩니까?》 라충연은 갑자기 목이 꽉 메고 대답할 힘을 잃었다. 제방공사실태를 솔직히 말씀올려야겠는데 그러면 장군님께 걱정을 끼친다는 생각에 좀처럼 말이 나가지 않았다. 역경에 처한 혁명, 조국과 인민을 구원하시고 나라의 부강을 떨치기 위하여 엄혹한 《고난의 행군》을 진두에서 이끌어나가시는 장군님께 제방하나 똑바로 쌓지 못해 걱정을 하시게 할수는 없는것이였다. 어떻게 하나 도자체의 힘으로 뚫고나가 원료기지를 완공해서 보고를 올리는것이 전사의 도리인것이다. 《왜 대답이 없소? 무슨 애로가 있는게 아닙니까?》 송수화기에서 울리는 그이의 다정한 음성은 충연의 복잡한 마음속을 꿰뚫고있었다. 《장군님… 원료기지공사는 괜찮게 되여갑니다. 좌안물길제방은 다 쌓았고 상광포제방도 기본적으로 련결되였습니다. 한쪽에서는 양수기들을 동원하여 물을 푸면서 내부망개간작업을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왜 책임비서동무의 목소리가 기운이 없습니까. 실지 그렇다면 상광포의 수백정보 기름진 감탕논을 다 먹은거나 같은건데 나한테도 기뻐서 성과를 자랑해야 될게 아니요.》 라충연은 송수화기를 틀어쥔채 머리를 숙였다. 《장군님, 사실은…》 《어서 말하오, 책임비서동무.》 《상광포기본제방이… 장마철에도 견딜수 있게 더 올려쌓아야겠는데… 왜 그런지 감탕속에 자체중량으로 자꾸 침하됩니다. 초저녁에 광포현장에 나가 긴급회의를 했지만 종시 방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라충연은 괴로운 속을 다 털어놓으니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뿐이고 수리공학의 이런 복잡한 문제까지 그이께 말씀올린 자신의 처사가 못내 불만스레 여겨졌다. 《제방이 내려앉으면 그만큼 감탕이 옆으로 밀려나오겠구만.》 《장군님, 그렇습니다. 그 감탕비짐을 제방에 퍼올리면 또 속감탕이 빠져나오면서 제방이 침하됩니다.》 라충연은 어느덧 자신에 대한 불만도 후회도 삽시에 잊어버렸다. 《수리공학자들과는 의논을 해봤습니까?》 《그 동무들은 감탕에 제방을 쌓자면 말뚝공법이나 함형틀공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기존공법대로 하자면 통나무와 같은 막대한 자재가 들면서도 몇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농업설계기술자들과 의논하고 호수얼음우에 가설제방을 쌓아 주저앉혔습니다.》 《그러니… 결국 수리공학자들에게 든든히 의거하지는 않았단말이지… 로농적위대원들을 비상동원하고 함흥시민들이 떨쳐나서게 한것은 잘했습니다. 그러나 전격적으로 와닥닥 해제끼는 일일수록 면밀한 과학적타산에 기초해야 합니다.》 라충연은 얼굴이 붉어졌다. 《저는 사실… 가설제방에 덧쌓기를 해서 기존공법을 타파할 욕심만 앞세웠습니다. 농업설계기술자들이 지지를 해서 안심했댔는데…》 《충연동무, 물을 다룬다는게 결코 헐한 일이 아닙니다. 호수감탕우에 제방쌓는 공사인데 수리공학과 토질력학의 원리를 소홀히 하면 랑패를 보게 됩니다. 당책임일군은 응당 수리공학자들에게 의거해서 기술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장군님… 가책이 큽니다. 저를 찾아왔던 후보원사를 다시 만나겠습니다.》 《그 후보원사이름이 뭡니까?》 《서병만이라고 합니다.》 《아, 서병만… 서해갑문건설때 기술분과에서 일을 했지. 그 동무가 함흥에 갔구만. 후보원사가 되구. 옳습니다, 수리공학부문에서는 실력자입니다. 사람이 대바르고 정열이 있는 좋은 동무지.》 《그… 렇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의 어려운 시기 공부잘하는 똑똑한 청년들을 널가름대걸상을 놓은 렬차에 태워 외국에 류학을 보냈습니다. 서병만동무는 그때의 류학생이지. 드레즈덴공업종합대학에서 수리공학을 배웠을겁니다. 수령님께서 3화수송방침을 제시하셨을 때 그 동무는 고체와 류체혼상흐름을 연구해서 관수송분야에서 나서는 과학기술문제들을 해결하였습니다. 전국의 수력발전소건설장들은 거의다 다니면서 물량과 언제의 안전정수를 계산해주면서 기술지도를 한 동무입니다. 후보원사가 호수감탕우에 제방을 쌓은 경험은 없지만 충연동무네 공사를 지지해나서기만 하면 기술방조를 크게 줄수 있습니다.》 라충연은 그이께서 몸건강히 잘있으라고, 다시 만나자고 따뜻이 말씀하시는데도 감동으로 송수화기만 꽉 틀어쥐고있을뿐 변변한 인사말조차 올리지 못했다. 탁상시계가 새벽 1시를 알리는 짧은 음악종을 쳤다. 충연은 방금까지 그이의 친근하고도 열정적인 음성이 울리던 전화기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가슴속에서 일렁이던 감격의 파도가 가라앉자 크나큰 가책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사무실에 불려왔던 몸이 여위고 얼굴이 피기없으나 과학적주장을 굽히지 않던 서병만의 담담한 모습이 떠올랐다. 후보원사는 자기들이 고생스레 만든 광포에 관한 수문지질자료를 도로 가지고 도당사무실을 나가면서 이 책임비서를 얼마나 원망했을것인가. 그랬으니 가설제방안을 가지고 전화를 했을 때도 마지못해 대답한것이 아닌가. 라충연은 괴로움에 잠자리에 들수 없었다. 그는 전화를 걸어 승용차를 오게 하고는 말코지의 솜옷을 벗겨 서둘러 입었다. 미구에 그를 태운 승용차는 정전으로 먹물을 부은듯 캄캄한 거리를 달려 광장옆에 있는 아빠트현관앞에 멎었다. 다들 잠에 들었는지 덩지큰 아빠트에서 서너군데 창문에서만 희미한 석유등빛이 흘러나오고있었다. 운전사가 전지를 켜들고 4층에 있는 서병만의 집에 올라갔다. 싸늘한 랭기가 느껴지는 고요한 봄밤이였다. 운전사가 문두드리는 소리가 승용차밖에 나와 서있는 충연에게까지 들렸다. 잠시후에 이빠트층계를 내려온 운전사는 서병만후보원사가 두어시간전에 정전되니까 계산하던걸 마저 하겠다면서 종이와 책들을 가지고 역대합실에 나갔다는것이였다. 《역에 가자구.》 라충연은 운전사에게 짤막히 일렀다. 승용차는 광장에서 얼마쯤 상거한 함흥역으로 달렸다. 역대합실은 전기를 아끼느라고 촉수가 낮은 전등알을 높은 천정에 드문드문 매달아놓아 그닥 밝지 못했다. 맞붙여놓은 길다란 의자에는 길손들이 눕기도 하고 짐보따리를 꿍져안은채 졸기도 하였다. 충연은 대합실 1층을 샅샅이 돌아보았으나 서병만을 찾지 못하고 2층에 올라갔다. 2층은 천정의 전등불이 가까와선지 아래층보다는 퍽 밝았다. 창문쪽구석에 붙여놓은 장의자끝에 가니 물날은 털실쟈케트로 몸을 감싼 체소한 서병만이 등을 구부리고앉아 종이에 무엇인가 열심히 적고있었다. 도수안경을 끼고 계산에 여념이 없던 서병만은 문득 앞에 서있는 라충연에게 눈길을 돌렸다. 《후보원사선생?…》 라충연은 몸을 일으키는 서병만의 손을 반가이 부여잡고 같이 의자에 앉았다. 《렬차를 타시려구요?》 서병만이 뜨아해서 묻자 충연은 웃음을 머금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선생을 찾아 나왔습니다.》 《이 밤중에 저를요?!》 서병만은 별로 반가와하는 기색이 아니였다. 《선생은 광포제방공사가 어떻게 된걸 모르지요?》 《감탕비짐이 나오고 제방이 침하되는걸 알구있습니다.》 서병만의 태연스런 대답에 라충연은 저으기 놀랐다. 《어떻게… 알구있구만요.》 《책임비서동지는 함흥시민들을 총동원하지 않았습니까. 나도 앞으로 원료기지의 덕을 봐야 할텐데 제방이 돼가는걸 모를수 없지요. 난 광포에서 책임비서동지를 자주 봤습니다.》 《원료기지건설지휘부에서는 왜 선생이 나와있는걸 몰랐을가?》 《매일 광포에 수만명의 광포건설자들이 붐비는데 알턱이 없지요.》 서병만의 얼굴표정은 도당사무실에 왔을 때나 별반 다름없이 쌀쌀했지만 라충연은 거기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제방공사가 난관에 부닥치게 되니… 이렇게 선생을 찾아왔다고 탓하지 말아주십시오.》 《내가 왜 탓하겠습니까. 나는 책임비서동지의 대담성을 놀랍게 생각하고있습니다. 탄복했지요. 아무런 기술공법도 없이 통나무 한대 박지 않고 어쨌든 상광포감탕우에 기본제방을 쌓지 않았습니까. 그것두 석달남짓한 기간에…》 《선생은 날 비웃는겁니까?》 《아닙니다. 수리공학부문 력사에 없는 기적을 낳고있는데… 내가 비난할수 있겠습니까. 난 어떻게나 책임비서동지를 도와 제방을 완성하고싶은 생각뿐입니다.》 혼연스레 대답하는 서병만의 얼굴에는 진정이 비꼈다. 라충연은 자기가 이 성실한 학자를 너무도 몰리해했음을 알았다. 《후보원사선생… 기뻐하십시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화로 후보원사선생에 대해 말씀이 계셨습니다.》 《장군님께서요?!》 《그렇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서병만선생이 대바르고 정열이 있는 사람이라고…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류학공부를 한 수리공학분야의 실력자라고 하셨습니다.》 서병만은 너무도 큰 충동에 라충연의 손만 꽉 잡았다. 《장군님께서는 광포제방공사가 처한 형편을 료해하시고 선생네 수리공학자들이 도의 실정에 맞지 않는 기존공법을 주장한다고 해도 등을 돌리지 말고 선생네와 의논해서 공사기술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서병만선생이 지난날 발전소언제와 갑문을 비롯해서 우리 나라 수력구조물들을 쌓는데서 기술적공헌이 컸고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기때문에 이번에도 난관을 타개할수 있는 좋은 공법을 내놓을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라충연의 말이 끝나자 서병만은 눈물이 그렁해있더니 괴로운듯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책임비서동지, 부끄럽습니다.… 장군님께서 저를 그처럼 기억하시구 믿어주시는데… 난 제구실을 못했습니다. 함흥시민들이 모두 떨쳐일어나 제방을 막는데도 여직껏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내가 무슨 수리공학자구 실력자이겠습니까.》 《그건 내 불찰입니다. 내가 선생이 제출한 광포수문지질자료를 홀시하면서 진지한 의논을 하지 않았기때문입니다. 당일군이 과학문제에서는 응당 과학자한테 머리를 숙이구 조언을 들어야겠는데 난 그저 든든한 각오를 가지고 냅다밀면 재방을 쉽게 쌓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내 아까도 말했지만 책임비서동지는 이 수리공학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난 도당에서 로농적위대원들을 동원해서 광포얼음우에 가설제방을 쌓는걸 보구 놀랐습니다. 아주 대담하구 기발한 착상이였습니다. 얼음이 녹으면서 가설제방이 감탕속에 내려앉으니 벌써 상광포 기름진 땅은 다 먹어놓은거나 한가지였습니다.》 《이거 너무 과찬하지 마십시오. 제방이 올라가지 못해 속에 재가 찼는데.》 《그건 걱정마십시오. 수리공학후보원사라는게 시민들이 다 쌓아 놓은 제방을 완성하지 못하겠습니까. 난 가설제방을 주저앉힐 때부터 감탕비짐현상을 연구했습니다. 제방침하에 방도가 없는게 아닙니다.》 《그럼 있단 말입니까?!》 《난 상광포 한구석의 감탕판에다 작은 실험제방을 쌓아놓았습니다. 대합실의자에서 제방중량과 감탕침하수치를 장마때호수물량과 함께 계산해봤는데 가능할것 같습니다.》 서병만은 긴의자에 널려있는 종이장들속에서 자기가 쌓은 실험제방략도와 계산종이를 찾아보였다. 라충연은 복잡한 계산수자는 몰랐으나 새가 날개를 편것처럼 기본제방의 량면에 덧붙은 작은 뚝을 보는 순간 머리속에 번쩍이는것이 있었다. 《선생, 이것은 삐져나온 감탕비짐을 그대로 붙여둔것이 아닙니가?》 《책임비서동지는 대뜸 아시는구만요. 제방량켠에 불룩하게 솟는 감탕비짐을 지금처럼 처올리지 말구 가만 놔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한 열흘쯤 지나서 날개뚝의 감탕이 두부에서 서슬물 빠지듯이 물이 찌면서 제방과 함께 굳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량날개뚝까지 해서 밑폭이 두배로 넓어진 제방은 감탕속에서 평형이 유지되여 더 침하되지 않고 우로 얼마든지 높이 쌓을수 있습니다.》 라충연은 흥분해서 머리를 끄덕였다. 《단순하면서도 기막힌 착상이구만요. 선생은 실험제방을 이 방법으로 쌓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날개뚝물기가 빠지니 실험제방이 끄덕없습니다. 래일 낮에 광포에 가서 직접 보는게 어떻습니까?》 《왜 래일입니까. 이제 당장 광포에 나갑시다.》 《지금 새벽 2시입니다. 광포에 가두 캄캄해서…》 《불망치를 켜고 보면 됩니다. 어서 갑시다.》 라충연은 서병만을 도와 책과 종이장들을 모아가지고 역대합실계단을 내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