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34

 

사리원교외의 이모네 집을 떠난 림선미는 도중에 자동차를 얻어 탈 생각조차 않고 해질무렵까지 집없는 길손마냥 내처 걸었다.

한달 가까이 원래 살던 동네와 애육원으로 해서 아들이 있을만한데를 정신없이 찾아다니던 그는 뜻밖에 절망적인 소리에 접했다. 용철이가 고원군의 어느 강얼음판에서 아이들과 같이 놀다가 얼음이 꺼지면서 빠져죽었다는 소식이였다. 림선미네를 아는 사람이 그 고장 친척집에 갔다가 알게 되여 전해주었다.

선미가 그 가슴터지는 소식을 들은것은 그로부터 달포도 지난후였다. 하늘이 무너지는것같아 그날부터 친정집에 드러누웠다.

살고싶은 생각이 없었건만 늙은 어머니의 눈물겨운 극진한 보살피심과 위로에 기운을 얻고 간신이 일어났다.

렬차를 타고 이모네 집에 오면서 선미는 큰 역들마다 내려서는 홈에 떠돌아다니는 아이가 으면 눈여겨보군 하였다. 죽은 애가 살아날리는 만무하겠지만 제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해서인지 금시 아들을 만것만 같은 허망한 기대와 환각이 오는것이였다. 홈에서 헤매는 소년이 용철이가 아님을 알았을 때는 허탈에 빠져 멍하니 굳어져 있다가는 급기야 정신을 차리고 빵이든지 꽈배기든지 몇개 사서 아이의 손에 쥐여주고야 렬차에 오르군 했다.

림선미는 이모네 집에 있는 동안 다소나마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젊은 시절에 도예술선전대의 화술배우로서 재담이나 촌극들에서 인기를 모았던 작은 어머니는 늙어서도 몸에 밴 그 쾌활한 성격과 락관적인 생활관습으로 선미의 가슴속에 짙게 드리운 절망의 그늘을 얼마간 가셔주었다.

철쭉꽃이 모락모락 핀 산너머로 시뻘건 저녁해가 기울고있었다.

저녁깃을 찾는 산새들이 부산스레 우짖었다.

잡관목숲으로 뻗은 질러가는 고개길이 어렴풋이 보였다. 낯익은 고개길에 접어드니 걸음은 자연히 빨라졌다.

어느덧 지난 겨울에 눈속에 쓰러졌던 고개마루에 올라선 선미는 어깨를 움렸다. 가슴속에서 이름할수 없는 쓰라린 감회와 반가움이 뒤설레였다. 풀씨자루들이 가득해서 드러누울 자리조차 비좁던 섶나무연기내나는 《풀박사》 집에 가보고싶었다.

풀을 자래우는것밖에는 다른 아무런 사심도 가도 없는 진실하고 무던한 사람이였다. 그리고 유성춘이랑 마을사람들은 얼마나 순박하고 인정깊었던가.

봄날의 산바람이 싱그러운 애잎향기를 실어왔다.

실안개가 떠도는 산아래마을 상공으로 땅거미가 짙어가고 오붓이 모여앉은 집들의 굴뚝에서 푸릿한 연기가 곧추 피여오르고있었다.

선미는 채종포가 있는 산비탈쪽으로 내려갔다. 비탈지의 풀밭에 이른 그는 눈앞의 광경에 사뭇 놀라 멈춰섰다.

먼길을 오면서 산기슭과 들판에는 이제 싹을 내민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는데 해도 덜 비치는 여기 비탈지에는 한뽐도 더 자란 푸른 풀이 무성한것이였다. 최인섭이 헤여질 때 눈무지를 파헤쳐 보여주던 그 오리새와 자꽃자리풀이였다.

비탈지의 풀들이 고스란히 자랐다는다는것은 연구사가 어데 가지 않고 추성리에 있으며 그의 신상에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다는것을 말해주고도 남았다.

비탈길을 내려가 멀찌감치 최인섭의 작은 집이 어스름속에 보이자 선미는 주춤 서버렸다.

그 녀자는 자기가 왜 《풀박사》를 만나러 왔는가 하는 생각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기를 구원해준 후더운 인정미를 지닌 사람에게 례의를 차리려고 지나는 길에 왔다고 하는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차라리 아들을 데리고 꼭 다시 오라고 하던 당부를 가슴속에 새겨두었고 그런 극진한 사람에게 의지하고싶어서 왔다고 솔직히 터놓는편이 나을것이였다.

그러나 마음속 고백을 하기에는 너무도 용기가 모자랐다.

최인섭이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한것은 선미더러 그저 이 산골에 놀러 오라고 한것이지 다른 어떤 애모쁜 감정을 품어서가 아닐것이다.

선미는 어딘가 몰렴치하고 어리석은 자신을 발견하고는 힘없이 돌아섰다.

그 녀자는 이제 도로 가느라면 날이 어두워지고 길에서 밤을 새야 한다는것을 알면서도 허겁지겁 걸음을 재우쳤다.

멀리 어스름히 비낀 골짜기가녁에 자리잡은 최인섭의 집이 산모퉁이에 가리워 보이지 않을 때에야 선미는 걸음을 늦추었다.

그러자 어데고 의지할데 없는 자신의 처지가 구슬프게 돌이켜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섧디섧어 집잃은 철없는 소녀애처럼 소리내여 울었다. 선미는 한동안 울고나서야 눈물로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달구지길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날이 어둡기 전에 큰길에 나가서 자동차를 얻어타야 했다.

신작로에서 가지친 달구지길로 뜨락또르 한대가 들어서더니 퉁탕거리며 곧바로 달려왔다. 비좁은 길에 물러설라고는 개울가밖에 없었다. 그런데 뜨락또르 그 녀자의 코앞에 와서 떡 멎었다.

《선미아주머니 아니예요?!》

《?!…》

뜨락또르운전칸에서 닁큼 뛰여내리는 사람은 유성춘이였다. 그지없이 반가운 젊은이인데도 그 녀자는 못할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고개를 돌려 부질없이 피하려고 했다.

《선미아주머니, 끝내 왔군요.… 그런데 왜 그래요? 어데 가나요?》

유성춘은 기계기름냄새를 확 풍기며 어리둥절해서 림선미의 앞을 막아섰다.

《〈풀박사아저씨가 있을텐데… 못 만났어요?》

선미는 손으로 눈굽의 물기를 치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럼… 아주머니를 쫓아보내던가요?》

《아니예요.…》

《인섭아저씨가 아주머니를 도로 가게 하던가요?》

유성춘은 리해되지 는듯 따져물었다.

림선미는 자기앞에 버티고 선 젊은이가 눈물나게 고마왔다.

《만나지… 못했어요. 난 그저… 멀찌기 지나온걸요.》

《지나왔다구요?!》

사연을 짐작한듯 유성춘은 대뜸 불만을 터뜨렸다.

《어쩜 그럴수 있어요! 인섭아저씨가 아머니를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아주머니네 친정집주소를 묻지 않은걸 그냥 후회했어요.》

《그랬어요?…》

《그럼요. 인섭아저씨는 어저께 선미아주머니가 아들을 찾아가지고 추성리에 오는 꿈을 꿨다고 했어요.》

《연구사선생님이… 날 정말 기다렸나요?》

림선미가 다시금 애달프게 물었으나 유성춘은 더 말을 않고 무작정 그 녀자를 뜨락또르운전칸으로 잡아끌었다. 운전칸에 선미를 태우자 젊은이는 신이 나서 뜨락또르를 몰았다.

《풀박사》아저씨를 위해 이처럼 좋은 일을 하게 된것이 그를 마냥 즐겁게 한것 같았다.

산골길을 기우뚱거리며 분주히 달린 뜨락또르는 어느새 최인섭의 집앞에 멎었다.

유성춘은 뜨락또르운전칸에서 상반신을 옆으로 쑥 내밀고 집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 연구사아저씨!》

집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유성춘은 운전칸에서 먼저 뛰여내렸다. 젊은이는 선미를 부축해서 내려주고는 최인섭을 찾아 집뒤길쪽으로 갔다.

림선미는 마당가에 오도카니 섰다. 언젠가 자기가 발라놓은 문창호지에 등불조차 비치지 않는 어둑컴컴한 집을 보느라니 마음이 쓸쓸해났다. 이런 집에서 혼자 살고있는 최인섭에 대한 련민의 감정이 가슴가득 차올랐다.

이때 울바자너머 도랑길에서 섶나무단을 등에 진 사람이 걸씬걸씬 오다가 그 녀자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니?! 선미동무 아니요?》

그 사람이 잔등의 섶나무단을 벗어던져서야 림선미는 최인섭을 알아보았다. 저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선생님!…》

《왔구만!》

선미는 너무 반가와 와락 다가서는 최인섭에게서 수줍은듯 한걸음 물러서며 작은 손을 내맡겼다. 장알이 박힌 남자의 손은 딴딴하고 나무껍질처럼 터슬터슬했으나 뜨거운 온기와 억센 힘이 느껴졌다.

뒤뜨락쪽에서 나오다가 이 광경을 띄여본 유성춘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여 뜨락또르운전칸에 올랐다.

급작스레 울리는 뜨락또르발동소리에 두 사람은 당황해서 잡았던 손을 놓았다.

운전칸에서 상반신을 내민 유성춘은 그들을 향해 벌쭉 웃으며 소리쳤다.

《인섭아저씨! 〈신부〉를 데려왔어요.》

뜨락또르가 채찍을 얻어맞은 말처럼 흠칫 떨더니 앞으로 나갔다.

잠간사이에 뜨락또르는 어스름에 싸인 마을길쪽으로 사라지고 발동소리만이 고즈넉이 멀어졌다.

마당가에는 한껏 정적이 깃들었다.

두사람은 어색해서 서로 눈길을 피했다. 성춘이가 던지고 간 《신부》라는 말은 그들의 마음을 굳어지게도 했고 어려운 마음의 장벽을 쉽사리 넘게 해준것으로 해서 다행스럽게도 여겨졌다.

《원, 아직도 배낭을 지고있다니.》

최인섭은 선미의 어에서 배낭을 벗겨내렸다.

《군에서 뜨락또르를 탔소?》

《아니예요.… 고개를 넘어왔어요.》

《고개를?!》

《전…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맘이 죄였어요. 그래 도로 가다가 성춘동무를 만난걸요.》

그 녀자가 자신을 솔직히 내비치자 최인섭은 한동안 묵묵히 서있었다.

《난… 동무가 떠나간 다음…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였소. 동무 생각만 했소. 어데 가서 고생을 하지 않는가, 언제쯤 올가 하구 늘 기다렸소.》

《!…》

최인섭의 진정이 넘치는 말은 그 녀자의 가슴을 뻐근히 메웠다.

《그런데 참, 용철이는 어떻게 됐소? 왜 데리고오지 않았소?!》

《…》

《난 용철이랑 오면 염소젖을 먹이려고 큰 염소를 한마리 얻어놨소. 채종포의 풀사료를 대신 주기로 하구.》

림선미는 터져오르는 슬픔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왜 말이 없소? 아이를… 못 찾은게 아니겠지?》

선미는 알릴듯 고개를 가로젓고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렸다.

가슴을 어대는 구슬픈 흐느낌소리가 마당가의 어둠속 정적을 간간이 깨뜨렸다.

《용철이가… 어떻게 됐다는거요?》

최인섭은 다우쳐물었다. 그는 선미가 눈물속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까스로 입술을 움직여 사연을 설명하는것을 새겨듣고는 의혹에 차서 목청을 돋구었다.

《아니, 그럴수 없소. 그 사람이 다른 앨 잘못 보고 말했는지 모르오. 엄마를 찾아다니는 애가 생소한 고장에 가서 얼음판에서 놀았다는게 믿어지지 않는구만.》

《정말… 그럴가요?!》

선미는 목메여 한가닥 희망의 실마리를 붙잡았다.

《그렇지 않구. 일없소. 우리 서로 의지해서 생활을 꾸리고… 용철이를 다시 찾아보기요.》

최인섭은 설음에 갸날피 떠는 그 녀자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림선미는 눈물이 솟듯 흘러내리는 얼굴을 아무 꺼림없이 최인섭의 널직한 가슴에 묻었다. 여위였으나 바위처럼 든든한 가슴에서는 갈아입지 못한 속내의에 밴 쩝쩔한 땀냄새와 신선한 숲냄새가 풍겼다.

선미는 쌓인 설음을 실컷 쏟고나서야 고개를 젖혀 그때까지 청동상마냥 움직이지 않는 최인섭을 서글픈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자기 어깨를 어루만지던 남자의 손을 따뜻이 부여잡는것으로 고마운 정을 표시했다.

머리우 검푸른 하늘에서는 록보색알갱이같은 무한 별들이 축포마냥 금시 쏟아질듯싶었다.

최인섭은 꺼한 손으로 그 녀자의 볼언저리에서 채 르지 않은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내였다.

《밖에 그냥 이러구있겠소.》

그는 한걸음 앞서 집안에 들어가서 성냥을 찾아내여 석유등잔을 켰다. 조그마한 등불은 끄물끄물 타오르며 방안에 침착하게 서린 어둠을 힘겹게 가셔냈다.

림선미는 보퉁이와 배낭을 들여놓고 낯익은 집안을 둘러보았다. 휑뎅그렁한 방안에서 눈에 띄는것은 풀자루들과 원고뭉테기와 책들 그리고 단출한 이부자리와 옷가지들이 전부였다. 부엌에도 쇠가마와 늄식기 몇개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선미는 조금도 실망을 느끼지 않았다. 그 녀자에게 귀중한것은 가산이 아니라 산과 숲을 그지없이 사랑하는 순박하고 성실한 최인섭이자신이였다. 비록 연구사업은 희망이 별로 없어도 그가 지닌 인간미는 선미를 끌어당기고도 남았다.

《선생님… 오면서 보니 비탈지 풀들이… 오리새와 자주꽃자리풀이 퍽 자랐더군요.》

《아니, 잘될것 같지 않소.…》

최인섭은 무거운 낯빛으로 한숨을 쉬였다.

《관리위원장이 비탈밭을 군경영위회부업지로 정식 넘겨준것 같소.》

《성춘동무의 삼촌덕을 보지 못했군요.》

선미는 쓸쓸히 웃음지었다.

《그새 성춘이가 나때문에 고생을 했소. 군에 몇번 갔지만 경영위원회에서 하는 일에 농장원이 간참한다고 코만 떼웠소. 그러자 이번엔 신문사에 찾아가서 원고를 내달라고 졸랐소. 도일보 편집부에서는 어린 농장원의 열성을 기특히 여기고 4면 아래의 통신원기사란에 내줬소.》

《경영위원장동지가 신문을 보지 못한거지요?》

《글쎄 모르겠소.》

최인섭은 자기보다 오히려 근심이 짙은 선미를 위로하고싶어 그 녀자의 손을 부여잡고 덧붙였다.

《너무 걱정마오. 비탈 채종포를 내주면 그만이요.》

《그럼 한창 자라는 풀을 못쓰게 만들구… 씨도 못 받지 않아요.》

《일없소. 채종가 없다 해도 난 풀씨부자요. 그리구 이제는 내 풀씨를 알아주는 선미동무가 있으니 어데 가서 비탈밭만 한 땅을 일구지 못하겠소?!》

등잔불은 고요히 타오르고 집근처 어디선가 밤새가 처량하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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