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33

 

라충연은 공사지휘부일군들과 같이 곡산공장이 맡은 제방구간에서 질통을 졌다. 그 구간이 공사장적으로 제일 뒤떨어진것이였다. 녀자들이 절반가량되는 곡산공장로동자들속에서 두어시간을 질통지고나니 감탕매닥질이 된 옷은 색갈을 가늠할수 없었고 감탕이 게발린 얼굴에서는 눈만 반짝거렸다.

라충연은 질통무게에 눌려 감탕속에 무릎까지 빠지는 발을 힘겹게 뽑아냈다. 그는 멀찌감치에서 돌버럭을 담은 맞들이를 간신히 들고가는 한성모와 송건식을 보면서도 쉬자는 말이 입밖에 나가지 않았다.

기본제방두리와 좌안하천제방 그리고 대형양수기들이 물을 퍼내고있는 상광포의 넓은 감탕판에는 사람들이 새하얗게 덮여 벅작 끓고있었다. 누구 하나 가만히 서있거나 노는 사람은 없었다.

채쌓지 못해 호수물이 넘을듯 출렁거리는 기본제방바깥쪽 하광포로는 밥조개산에서 돌버럭을 실어나르는 수초배와 매생이들이 분주히 오갔다.

상광포의 웃쪽에서는 남자들이 바줄을 늘이고 흙을 담은 수백개의 《다이야배》들을 끌고다녔다.

녀자들도 질통을 지거나 남자들 못지 않게 《마대전》을 하였다. 대다수 가두녀자들은 함지와 버치, 소랭이에 흙을 담아 이고 다니거나 감탕판우로 썰매처럼 끌었다.

공사장에서 붐비는 그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감탕옷》을 입었지만 몸을 씻으려는 사람은 없고 한개의 돌, 한줌의 흙이라도 더 가져다 제방우에 쌓으려고 애썼다.

함흥사람들은 이악하였다.

이 며칠사이에 정평과 함주에서 맡은 강안제방은 말할것 없고 상광포를 건너지른 기본제방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해빙되여 감탕속에 가라앉은 가설제방우에 연방 돌버럭을 부어 이제는 제방이 호수물면보다 한메터는 착실히 되게 높아져 완연한 제방형태를 이루었다.

그러나 물우에 솟아난 제방은 층하가 심했다. 곡산공장과 여러개 단위에서 맡은 구간은 이제 겨우 호수물면에 제방이 드러나기 시작할뿐이였다.

라충연은 가까스로 지고온 질통의 흙을 곡산공장제방뚝에 쏟고나서 큰소리로 물었다.

《이보 부지배인, 아직도 제방이 계속 침하되나?》

며칠째 수염을 깎지 못한 턱주변에 감탕매닥질을 해서 우습강스러워진 곡산공장 부지배인은 제방의 높은 부위에 올라서서 공장사람들을 지휘하다가 책임비서한테로 뛰여왔다.

《이제는 침하가 좀 멎은것 같습니다.》

부지배인은 다행이라는듯 벌씬 웃고 말을 이었다.

《우리 공장이 맡은 구간의 감탕층이 유독 더 깊고 무릅니다. 열흘째 돌흙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계속 침하되는것만 봐두.》

《그건 공장사람들의 노력이 부족한탓이야. 동무네 발밑감탕이라고 왜 더 무르겠나. 김매기 싫으면 밭고랑 탓하는거나 같지.》

라충연이 호수물에 손을 씻으며 웃어넘기자 부지배인은 우겨댔다.

《제가 장대기로 재여봤는걸요. 여기 감탕층이 딴데보다 한발은 더 깊습니다. 우리 공장사람들은 이 열흘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방에 붙어살았습니다. 돌이 제발 감탕밑에 침하되지 말구 제방이 든든해지라구 사람이름까지 붙인걸요.》

《이름을?!…》

《어저께 저의 누이동생이 아들을 낳았다는 기별을 보내오면서… 저더러 조카애이름을 지어달라는게 아니겠습니까. 제방이 올라가지 않아 눈코뜰새 없는데 시끄럽게 군다고 생각하다가 번뜩 좋은 이름이 하나 떠오르는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조카애이름을 〈제방〉이라고 지으라고 인편에 써보냈습니다.》

《음, 〈제방〉이라… 이름을 괜찮게 지은것 같애.》

라충연은 가슴이 쩡해서 뇌이였다.

《이담에 그 애가 자라… 여기 광포원료기지의 알곡으로 만든 사탕과자를 먹을 때 말해주오. 큰아버지와 함흥사람들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얼마나 간고하게 광포호수를 막았는가를 말이요.…》

라충연은 질통을 부지배인에게 넘겨주고 시돌격대가 맡은 제방구간쪽으로 갔다. 거기는 다른 단위의 제방구간들보다 한발은 더 되게 우로 솟았다.

공사건설지휘부에서는 시돌격대가 맡은 제방구간을 앞세워서 기준으로 삼으려고 력량을 많이 투입하고 돌버럭나르는 배도 더 주었다.

그쪽 제방우에서는 시행정위원장 송건식이 공사책임자와 무슨 말인가 열을 내여 주고받고있었다.

라충연이 감탕이 섞여 죽신죽신한 돌버럭우로 걸어가는데 저만치에서 돌을 가뜩 실은 매생이 한척이 제방기슭으로 접근해왔다.

《저런?!…》

라충연의 입에서 억이 찬 소리가 새여나왔다.

차디찬 물속에서 돌격대원청년이 헤염치면서 매생이를 밀고오는것이였다.

돌무지우에 앉았던 처녀는 매생이가 기슭에 닿자 닁큼 뛰여내려 물속의 청년에게 손을 뻗쳤다. 처녀의 손을 잡고 제방뚝에 올라서는 젊은이의 옷에서는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돌격대원청년들 몇이 매생이의 돌을 부리우려고 달려갔다. 그들은 얼음같이 찬 하광포물속에서 배를 밀어온 젊은이를 둘러쌌다.

라충연은 그 장한 젊은이의 젖은 옷자락을 쥐여짜주면서 다심스레 보살피는 처녀가 송옥화인것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어쩐지 그 돌격대원젊은이가 자기 아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것을 허겁게 지나쳐버렸다. 명구가 여기에 있을리 없는것이였다.

《어서 가설막에 가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몸을 녹이세요.… 감기들면 어쩔려고…》

송옥화가 다심하게 알려주었으나 젊은이는 그냥 일하겠다고 도리머리를 하며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몸이 꽛꽛이 얼었는지 욕망뿐이고 발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였다.

《그런데 노대는 어떡하고 배를 밀어왔나? 얼음물에 해수욕하고싶었나?》

라충연은 돌격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오는 젊은이를 시까슬렀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는 아직 옷에서 감탕물이 흐르는 그 돌격대원청년의 해쓱한 얼굴을 보자 놀라서 굳어졌다.

지칠대로 지쳐 동무들에게 쓰러질듯 몸을 의지한 그 청년은 분명 아들 명구였다.

라충연은 너무도 반가와 하마트면 달려들어 아들을 부둥켜안을번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들이 천연스런 표정을 짓고 자기를 모르는 사람처럼 인츰 눈길을 돌리는것을 보고 자제하였다. 가슴이 써늘하게 섭섭했지만 아들의 얼굴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나 랭대의 감정은 찾아볼수 없었다.

그는 명구가 그날밤 집을 떠나서 광포제방공사장에 왔다는 그 사실자체만으로도 기뻤다.

령산에 전화를 걸며 아들의 행방을 찾지 못해 애쓰는 안해에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게 되였는가.

명구가 아버지를 등대지도 않고 돌격대에서 헌신적으로 일하고있다는것을 알면 안해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것이였다.

《명구동무, 인사해요. 도당책임비서동지예요.》

옥화가 튕겨주자 명구는 알은척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멋적은듯 서둘러 지나갔다.

아들이 돌격대원의 부축임을 받아 호반쪽으로 가는것을 한동안 지켜보던 라충연은 옥화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느 공장에서 온 동무냐?》

《함흥사람이 아니예요. 부모랑 없는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광포공사장에 왔나?》

《자원했습니다. 제가 밤중에 길에서 만나 데리고 온걸요. 아버지가 돌격대에 받아줬지요 뭐.》

《그래… 사람이 어떻더냐?》

《참 좋은 동무예요. 돌격대에서 힘든 일은 도맡아해요.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아까도 매생이에 돌을 더 실어오겠다고 자기는 헤염치면서 배를 밀고왔어요.》

라충연은 아들이 대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짐짓 씁쓸히 뇌이였다.

《젊은 혈기니 일이야 잘할수 있겠지.》

《책임비서동지, 돌격대에서 일해보면… 일을 성실하게 잘하는 사람은 다른 품성도 잘 갖췄다는걸 알수 있어요.》

《허, 평가기준이 괜찮은걸. 그렇지만 속단하지 말아. 사람은 두고봐야 알아. 타고장사람이니 일이 정 힘들면 가버릴수도 있어.》

라충연이 웃으며 넌지시 시까스르자 영문을 모르는 처녀는 불만스러워 눈이 올롱해졌다.

제방에서 송건식이 그들쪽으로 부리나케 뛰여오지 않았더라면 라충연은 록록치 않은 옥화한테서 벗어나지 못할번 하였다.

《책임비서동지, 이거 아무래두 사달이 났습니다.》

송건식은 숨가쁘게 말하고나서 라충연이 자기 얼굴을 유심히 보자 턱주변에 말라붙은 감탕을 손으로 문질러 떨궜다.

《무슨 일이요?》

《시돌격대제방이 현재높이에서 더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올라가지 않다니?!》

《어제부터 돌과 흙버럭을 꼭대기에 자꾸 쌓는데도 제방은 올라가지 않고 그만큼 제방옆으로 감탕이 빠져나옵니다. 저것 좀 보십시오.》

라충연은 급히 시돌격대가 맡은 제방구간에 가까이 가보았다. 아닌게아니라 제방의 량쪽 옆구리에 날개처럼 감탕층이 불룩이 솟아나왔다. 단순한 침하현상이 아닌것 같았다.

제방밑이 딴딴한 바닥에 닿지 못했단 말인가?! 아직도 제방을 두어메터 더 높이 쌓아야겠는데 이렇게 자체중량으로 내려앉으면 야단이였다. 불안감을 덜수 없었으나 물러설 길도 없었다.

《비짐이 나온 감탕을 퍼올리면서 돌버럭을 계속 쌓기요.》

《그렇게 했는데도 제방만 넓어지면서 감탕이 빠져나옵니다. 밑빠진 독에 물붓깁니다.》

송건식의 의기소침한 말에 그는 화를 냈다.

《행정위원장동무, 감탕이 아무리 깊어도 바닥이야 있지 않겠소. 돌버럭이 감탕바닥에 닿을 때부터는 제방이 더 침하되지 않을거요.》

《한데 사람들이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시돌격대말구 다른 제방구간에서도 감탕비짐이 나오면서 제방이 올라가지 않으면 다들 맥이 나서 주저앉고말겁니다.》

《제방이 아직 기준높이에로 이르지 못했는데 공사를 책임진 사람이 그렇게 맘 약한 소리를 자꾸 하면 되겠소?!》

라충연은 송건식이 겨울에 얼음판우에 가설제방을 쌓을 때보다 의기소침해지고 적극성도 부족해져간다는것을 느꼈다.

공사를 지휘하는데서 역증이 많아져 사람들과 때없이 충돌하는것만봐도 공사전망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하긴 날이 갈수록 곤난이 겹쳐드는지라 송건식의 의지가 물러지는것도 리해가 가는 일이였다. 하루에 건설자들에게 얼마간의 강낭쌀밖에는 내주는것이 없는데다가 거의나 맨손으로, 등짐으로 돌버럭과 흙을 날라오고 감탕과 싸워야 하는 이 힘겨운 공사를 맡아나가자니 그럴만도 할것이였다.

《책임비서동지, 걸린 문제가 또 있습니다.》

침울해있던 송건식이 고개를 들었다.

《뭡니까?》

《농업위원회에서 광포제방공사를 미뤄달라고 두차례나 전화가 왔습니다. 당장 영농준비를 다그쳐야겠는데 함흥에서는 농촌관계설비와 로력을 광포에 동원한다는겁니다.》

《도농촌경리위원회에서 불만이 크더니 문제를 야기시켰구만. 송동무, 상광포들을 기본적으로 펐으니 대형양수기는 수리해쓰는걸 내놓구는 돌려줍시다. 로력문제는 시비걸지 말라구 하시오. 함흥시민들이 어디 농촌로력이요?! 좌안 물길제방을 맡은 정평과 함주사람들 문젠데 그들도 대다수가 읍내 로동자, 사무원들이요. 그리고 겸해서 주장할건 광포를 막아 옥토를 얻고 알곡을 생산하는 이 원료기지공사가 다름아닌 농업이라는것이요. 그렇지 않소?! 도농촌경리위원회사람들이 인식을 바로가지고 뒤다리를 잡아당기지 않게 송동무가 잘 말해주시오.》

라충연은 언짢은 속을 터놓았으나 마음은 조금도 개운해지지 않았다. 광포공사에 은연중 장애를 조성하는 일들은 그다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도 어떻게 하면 호수감탕우에 제방을 견고하게 쌓겠는가 하는 문제가 지금 그의 온 마음을 사로잡고있었다.

라충연은 드넓은 호수를 가로질러 솟아오르기 시작한 제방에서 걱정스레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는 감탕비짐이 더는 생기지 않고 제방이 침하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하광포의 바다쪽에서 날아온 갈매기들이 머리우에서 떠돌았다. 그것들은 상광포의 얕아진 감탕물에서 주둥이만 내놓고 가쁜숨을 몰아쉬는 물고기들을 노리고 내려꼰지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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