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31

 

새벽녘에 일찌감치 광포에 나온 라충연은 정평군과 함주군이 말은 좌안하천제방공사장을 돌아보았다.

좌안제방은 규모가 상광포를 건너지르는 기본제방에는 비할게 못되지만 호수에 흘러드는 여러개의 강줄기를 모아 하구쪽으로 돌리는것으로서 자못 중요하였다. 좌안제방을 든든히 쌓아야 상광포원료기지를 큰물피해로부터 보호할수 있고 강하구의 범람을 최소한 줄일수 있는것이였다.

라충연은 며칠째 좌안제방공사장에서 침식을 하고있는 정평과 함주의 두 책임비서를 데리고 공사구역을 다녔지만 크게 잔소리하지는 않았다.

두 일군이 광포원료기지에 실질적인 리해관계는 없어도 이번 기회에 자기 군관하의 강하천제방을 만년대계로 쌓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공사를 힘있게 내밀고있는것이였다.

그들과 헤여진 라충연이 상광포로 오는데 멀리 호반을 향해 뻗은 길에서 황토먼지타래가 아침안개속으로 구름처럼 피여올랐다.

파아란 하늘을 온통 시뿌옇게 물들인 황토구름타래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무언가 분명치 않은 떠들썩한 소음이 들려오더니 차츰 그속에서 수백개의 손밀차들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녀자들의 웃음소리, 말소리들이 분간되였다.

이어 싯누런 먼지의 장막속을 뚫고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의 선두가 나타났다. 손밀차들을 끄는가 하면 버치같은 큰 그릇을 머리에 이고 들고 진 녀인들의 대부대가 광포호반으로 전진해오고있었다.

어린애를 등에 업은 녀인들까지 있는것을 본 충연은 그들이 함흥시 가두녀자들의 행렬이라는것을 알았다.

맨앞에서는 먼지를 뒤집어써서 녀인들과 좀처럼 구별하기 어렵게 된 한성모가 털수건을 목에 감은 녀인과 같이 손밀차를 끌고왔다. 바퀴축기름이 마른 손밀차는 고르롭지 못한 길바닥을 덜컹거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라충연은 한성모와 눈인사를 나누고 가두녀자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말을 했다.

《먼길을 오느라 수고많았습니다. 가두아주머니들까지 광포에 나온걸 보니… 도당에서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가책이 큽니다.》

《에그, 함흥시원료기지공사인데 함흥녀자들이 나서는게 온당합니다. 너무 늦게 나왔지비.》

털실수건녀인이 가두녀자들을 대변해서 말하자 한성모가 웃으며 점잖게 퉁을 놓았다.

《아까는 함흥남정들이 제구실 못한다구 야단이더니.》

《그랬댔는데… 우린 그만 시당책임비서동지한테 얼리워서 힘든줄 모르고 광포에 왔습니다.》

라충연은 반죽좋은 털실수건녀인이 재미있어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손밀차에 산더미같이 끈을 매여 실은 비닐장통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어데다 쓰자구 합니까?》

《동사무장이 광포에서는 감탕물우로 돌버럭을 나르기때문에 절대로 빈 손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동차쥬브가 없는 우리 아낙네들은 궁리하다가 비닐장통을 여러개씩 한데 묶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장통들우에 널판을 놓고 돌버럭을 실으면 고무배 한가지루 쉽게 나를수 있잖겠습니까.》

라충연은 소박한 가두녀성들의 지혜에 감동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이 아주머니네는 집안이 다 대자연개조전투에 떨쳐나섰습니다. 세대주는 성천강계단식발전소 건설장에 올라가있구 아들은 송전만에 나가있습니다.》

한성모의 말에 라충연은 털실수건녀인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혹시… 아들이 상업관리소에서 소금인수원을 하지 않았습니까?》

《예, 그랬지요. 그러다가 전달에 도당에서 불러서… 제염전문가선생이랑 같이 송전만에…》

《류승빈의 어머니가 옳구만. 이제 보니 아들이 어머니를 신통히 닮았습니다.》

라충연은 기뻐하는 녀인을 향해 말을 이었다.

《내 며칠전에 송전만에 갔댔는데 승빈이가 소금밭기술분과에 속해서 일을 잘하구있습니다. 바다물이 차서 다른 사람들은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갈밭속에 몸을 잠그고 측량을 했구 설계안토론에도 관여했습니다. 승빈이가 소금밭일에는 막히는게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소금쟁이〉라는 별명이 붙었겠습니까. 우리 아들은 제대돼서 몇해를 온천군 소금밭에서 살다싶이 했지요.》

털실수건녀인은 손밀차를 끌면서도 라충연이한테서 고마운 눈길을 떼지 못했다.

한성모는 가두녀자들의 행렬을 이끌고 호반기슭에서 작업분담을 하고있는 시공책임자한테로 갔다.

 

×

 

라충연이 골탄먹인 기름종이를 너덕너덕 덧대서 지붕을 씌운 《광포원료기지건설지휘부》가설막근처에 당도했을 때였다.

지휘부가설막의 널판문짝이 벌컥 열리더니 바지가랭이를 장화목에 밀어넣은 송건식이 얼굴이 푸르딩딩해서 나왔다.

그는 작업현장으로 갈 태세로 벙어리장갑을 손에 끼자 뒤따라 쫓아나온 몸집이 갱핏한 사람에게 시끄럽다는듯 을러메였다.

《난 두말하지 않소. 당장 직장사람들을 끌구 돌아가오.》

《행정위원장동지, 사정 좀 봐주십시오. 우리 직장 사람들은 밤새 걸어오다나니 피곤을 풀지 못해서 그런다지 않습니까.》

《여보 직장장동무, 그것두 말이라구 하오? 가두녀자들은 아침에 도착하자바람에 찬물감탕속에 들어가 일하겠다고 한단 말이요. 그런데 룡성기계동무들은 뭐요?! 밤에 도착해서 한잠 푹 자지 않았소. 그랬으면 강낭타개죽을 먹구 제창 일을 나와야지. 해가 중천에 뜨는데도 천막안에 떡 자빠져서… 그럴바엔 광포에 왜 왔소?! 광포는 휴식장소가 아니란 말이요!》

《뭐라구요?! 룡성기계사람들을 우습게 알아도 분수가 있지.》

직장장은 분격해서 체소한 몸집을 우들우들 떨었다.

《당신이 우리 룡성기계를 그렇게 모욕하구 행정위원장자리에 얼마 붙어있나 봅시다.》

《흠, 좋소. 저녁에 동무문제를 공사지휘부에서 따로 보겠소. 다들 모인 자리에서 발언하오. 룡성기계책임자가 건달군들을 어떻게 비호했는가를.》

송건식은 상대하기를 단념했는지 돌아섰으나 몇걸음 못가서 다시 몸을 홱 돌리고 다짐을 두었다.

《만약 오늘 제방공사에 나가지 않으면 동무네 문제가 더 엄중해진다는걸 아오. 식량만 축내는 건달군들은 당장 똘가보내겠소.》

《행정위원장이 가라 한다구 룡성기계사람들이 갈것 같습니까?! 우리 〈건달군〉들은 건설장의 식량을 축내지 않구두… 호수에서 수초를 건져먹으면서도 룡성기계가 맡은 제방구간을 쌓을테니까요.》

《마음대로 하라구!》

송건식은 분기를 삭이지 못하고 나오다가 도당책임비서와 딱 마주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룡성기계 직장장도 무안해서 고개를 떨구었다.

라충연은 싸움하고난 수닭을 련상시키는 두사람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공사장에서 머리 큰 사람들이 마주붙어 언쟁하는것을 용인할수 없었지만 그는 정작 아무 말도 나가지 않았다.

심기가 사나와진 그들을 보니 불현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이 귀전에 쟁쟁히 울려오는것이였다. 경제는 얼어붙은 겨울이지만 마음속에 봄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그이께서는 전화로 얼마나 절절히 말씀하시였던가.

《직장장, 천막에 가보자구.》

라충연은 룡성기계 직장장의 어깨를 잡아돌려세우고서 송건식한테도 나직이 일렀다.

《행정위원장동무도 따라오오.》

호반가녁을 따라가며 크고작은 가설막들과 천막들이 지붕과 지붕을 잇대고 빼곡이 숲을 이루고있었다.

세사람은 풀빛색갈이 바랜 낡은 천막의 자락을 들치고 안에 들어갔다.

가마니를 깐 바닥에 서른댓명의 로동자들이 량쪽으로 얼기설기 쓰러져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눈을 감고있었고 더러는 눈을 멀거니 뜨고서 간부들을 올려다보면서도 일어날념을 못했다. 천막안은 그들의 거친 숨소리뿐 고요했다.

라충연은 발치에 누워있는 젊은이를 안아일으켰다.

《책임비서동지… 어제밤에 우리 직장사람들은 광포에 가서 제방을 쌓는다니까… 붉은기를 대렬앞에 세우고 밤새 행군해왔습니다. 룡성기계본때를 보여주겠다면서 노래까지 부르며 왔는데… 새벽녘에 글쎄 뜨끈한 타개죽을 한그릇씩 먹자 이렇게 쓰러졌습니다.》

직장장은 억울한듯 울먹이며 목메이는 토설을 했다.

라충연은 속이 뭉클했다. 이들이 《떡 자빠져서 일을 나오지 않는》 진짜리유가 그의 가슴을 아프게 찌른것이다. 자기가 마음을 누그리고 천막에 와본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비서동지… 의사를 데려올가요?》

송건식이 방안의 정상이 말이 아닌데 주눅이 들어 라충연의 옆에 쭈그리고 앉으며 물었다.

《행정위원장동무가 리해를 달리한것 같구만.》

라충연은 송건식이쪽에 고개를 돌리고 말을 이었다.

《이 동무들이 먼길을 힘들게 온데다가 낟알기가 빈속에 들어가니… 쌓였던 허기증이 터진거요.》

《그래도 의사를…》

《아니, 인차 의식을 차릴거요. 이 동무들한테는 다른 단위보다 식량기준을 높여줍시다.》

《책임비서동지…》

직장장은 너무 고마와서 아이들처럼 목이 꺽꺽 메게 울음을 터치고 흐르는 눈물을 주먹등으로 훔치였다.

《사실… 우리들중에는… 광포까지 걸을 맥이 없어서… 도중에 주저앉은 동무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광포에 가면 낟알도 있고… 살아서 제방을 막는것이 사회주의를 지키는 길이라면서… 업구 부축하면서 기어이 왔습니다.》

《직장장동무… 광포에 오면서… 무슨 노래를 불렀소?》

라충연은 눈귀에서 주책없이 자꾸 방울져 솟아나는 눈물을 어떻게 하지 못해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찍어냈다.

《저… 제목은 잘 모르겠는데… 거 있잖습니까. 장군님께서 찬눈길을 걸으시면 안된다는… 그 노래를 다들 좋아했습니다.》

라충연은 아무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곁에 있는 직장장과 송건식을 끌어당겨 자기의 량켠에다 세웠다.

무슨 일인가 해서 주춤거리는 두사람의 팔을 겨드랑이에 꽉 끼여잡고는 송건식에게 물었다.

《그 노래를 아오?》

《가사를… 잘 모릅니다.》

《내가 아오. 우리 셋이 노래를 부르기요.》

라충연은 거의나 명령조로 뇌이였다.

그는 잠시 기침을 톺고는 가슴밑굽에서 거쉬고 웅글면서도 서정이 있는 목소리를 뽑아내였다.

 

눈오는 이 아침 우리 장군님

그 어데 찾아가십니까

 

책임비서의 서툴기는 하나 감정짙은 선창이 울리자 직장장과 행정위원장은 쑥스러워하다 인차 주저없이 목청을 합쳤다.

 

찬눈을 맞으며 가시는 길에

이 마음 따라섭니다

 

세사람의 목소리의 색갈은 다르고 성량은 저마끔이였으며 몸가짐도 어색했지만 감정만은 하나같아 극장무대에서 부르는 가수들의 노래에 비할바없이 심금을 울렸다.

앉아있는 관객은 하나도 없고 다들 쓰러져있었지만 그들은 몽롱한 의식속에서도 심장에 부딪쳐오는 노래의 메아리를 감득하고있었다.

 

이 땅의 눈비는 우리가 다 맞으리니

장군님 장군님 찬눈길 걷지 마시라

 

실성한듯 누워있던 사람들은 차츰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고는 노래소리나는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멀거니 뜨고있으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들중에는 저절로 가마니바닥을 짚고 일어나앉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를 잘 살게 하여주시려

수령님 한생 맞으신 눈

 

노래를 부르는 세사람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조용히 앉아서 듣는 사람들도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라충연이 안았던 어린 청년이 몸을 일으키자 다른 로동자들도 하나, 둘 다 일어나서 책임비서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3중창은 어느덧 서른명이 넘는 의지도 마음도 같은 사람들의 합창으로 되여 천막안을 들었다놓았다.

 

오늘은 장군님 헤쳐가시니

이 가슴 젖어옵니다

충효를 다하여 맡은 일 더 잘하리니

장군님 장군님 눈바람 맞지 마시라

 

노래가 끝나자 룡성기계로동자들은 눈물젖은 핼쑥한 얼굴로 아직 몸가눔을 바로 못하면서도 천막구석에서 삽과 마대를 집어들었다.

송건식은 황황히 두팔을 벌리고 그들의 앞을 막았다.

《일 나가지 마오, 나가지 말라는데… 직장장동무, 오늘은 로동자들을 쉬우오.》

라충연은 송건식의 가책어린 진심의 목소리를 귀전에 들으며 가슴이 찡해서 천막밖으로 나왔다.

그가 제방쌓기전투가 한창인 호반에 이르니 봄볕에 얼굴이 타고 온몸에 감탕을 뒤집어쓰다싶이한 한성모가 질통을 지고 힘겹게 걸어왔다.

《너무 무리하는게 아니요?》

라충연이 걱정하자 한성모는 손으로 얼굴의 감탕을 비벼떨구며 웃음을 지었다.

며칠째 질통을 졌더니 위병이 싹 달아나버렸습니다. 아침을 먹었는데 벌써 허기집니다.》

《거 반가운 일이구만. 뭐니뭐니해도 속병을 떼는것처럼 후련한 일이 없지.》

라충연은 즐겁게 마주 웃고나서 물었다.

《감탕물을 헤집으며 제방을 쌓는게 보통 힘들지 않지요?》

《예, 점점 힘들어집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아질겁니다.》

《나도 그 걱정이요. 어떨가. 건설자들에게 통강냉이를 하루 100그람정도 더 줄가?》

《식량예비가 밑창이 드러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마그네샤립광을 좀 더 팔아야지. 그리고 다른 군들에도 호소해보겠소.》

《식량공급기준을 높이면 건설자들의 기세가 부쩍 오를겁니다.》

《그리구 이젠 공사가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섰는데 왜 아직 사람들을 고무하는 구호를 써붙이지 못했소?》

《제방공사에만 신경을 쓰다나니…》

한성모가 약간 멋적어서 그의 눈길을 피했다.

라충연은 자기가 괜히 시당책임비서를 탓한다고 생각했다. 도당에서 로농적위대비상소집을 하는데만 급급하고 정치사업에 관심을 덜 돌린것이였다.

《사방에 붉은기는 많이 꽂아놓았으니 구호판만 세우면 되겠소. 호반의 온 공사장에서 다 보이게 저 가설막과 천막들의 뒤켠 등성이에다 세웁시다.》

《예. 널판자로 대형구호판을 만들겠습니다. 그런데 구호는 어떤걸로 했으면 좋겠는지…》

한성모가 대답을 기다리자 라충연은 별로 생각지 않고 큰소리로 말했다.

《딴게 있소.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자 이 세상에 없다!〉 이 두가지를 먼저 써붙입시다.》

그들은 수만명의 사람들이 하얗게 붐비는 제방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