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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모가 탄 승용차는 정평기본도로에서 벗어져 광포호수쪽으로 뻗은 좁은 길에 들어서자 더는 속력을 낼수 없었다. 달구지가 겨우 어길수 있는 논벌가운데로 난 길에는 광포제방공사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 꽉 차서 굼뜨게 흘러가고있었다. 함흥에서 첫 새벽에 떠난 군중이였다. 군중행렬에 녀자들이 태반이고 너덧살짜리 어린애들까지 섞인것으로 보면 함흥시 동, 인민반에서 동원된 가두사람들이 분명했다. 바께쯔와 소랭이따위 감탕운반용그릇을 머리에 인 녀자들이 있는가 하면 삽과 괭이를 둘러멘 녀자들이 많았다. 손밀차에 마대들과 바람을 넣은 자동차쥬브, 큰 비닐장통들을 가득 싣고 끌고가는 녀자들도 있었다. 함흥에서 여기까지 40리를 걸어와서 몹시 힘든지 그들은 별로 떠들지도 않고 앞사람의 느린 보폭에 맞춰 걸음을 옮길뿐이였다. 승용차의 정적이 가볍게 울려서야 가두녀자들은 길량옆에 울바자처럼 촘촘히 비켜섰다. 한성모는 녀인들의 지친 눈빛에서 제방공사의 어려움을 가슴 써늘하게 느끼였다. 늦봄에라도 감탕판에 벼모를 내야 할 공사의 절박성이 있기는 했지만 가두녀자들까지 제방공사에 동원시킨것은 함흥시당위원회의 사업능력을 보여주는 측면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시민들을 총동원하여 이 초봄에 광포를 건너 막아야만 했다. 겨울에 얼음판에 쌓은 가설제방이 감탕속에 고스란히 가라앉은것을 토대로 해야 쌓기가 헐하고 한달안팎에 제방을 완성할수 있다. 올봄에 비가 많이 내린다는 기상예보도 있는데 그래서 광포에 흘러드는 강들의 물량이 많아지고 하구가 범람하게 되면 제방공사에 예측할수 없는 장애를 조성할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어제 한성모는 방송차를 직접 타고 시내아빠트거리와 단층사택들이 밀집해있는 골목길들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광포원료기지공사장에 나와달라고 호소했다. 시장에 가서는 방송차꼭대기에 올라서서 메가폰으로 도에서도 함흥시가 대자연개조사업에서 앞장에 서야 하는것만큼 함흥시민은 누구나 떨쳐나서자고 했다. 쌀을 먹고사는 시민중에 광포에 동원되지 않는 사람은 량심이 없는 인간이라고… 함흥에서 살 자격이 없다고 준절히 말하였다. 시장에 앉아있던 녀인들은 책임비서의 선동에 감동되여 자기가 팔던 송편떡과 꽈배기, 지짐, 두부 같은것들을 함지채로 광포공사에 지원했다. 한성모가 그러지 말아달라고 사정하다싶이 했으나 녀인들은 서로 뒤질세라 밀려들어 잠간사이에 방송차안이 발을 옮길수 없이 지원물자로 꽉 찼다. 한성모는 그때의 감동이 지금도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지원물자가 아니라 자기네 원료기지에 바치는 함흥녀인들의 소박하고도 지극한 성의였다. 장사를 하는것 같아도 녀인들의 마음속에는 어떻게든 난관을 함께 이겨내고 사회주의를 지켜내려는 집단주의적생활관이 흔들리지 않고있는것이다. 한성모는 승용차에서 내렸다. 가두녀자들이 아이들을 올망졸망 데리고 손밀차를 끌면서 먼길을 힘들게 걸어가는데 폭신한 승용차좌석에 앉아가는것이 실로 마음에 걸리는것이였다. 그는 질통을 지고 어줍게 선 아낙네의 곁에 있는 사내아이를 덥석 안아 승용차에 태웠다. 《너도 타거라.》 한성모는 손밀차뒤에 서있는 보매 다리가 아프다고 엄마에게 줄창 칭얼거렸을 솜옷모자끈을 턱밑에 졸라맨 아이에게도 일렀다. 그러자 승용차주위는 물론 뒤쪽에서도 녀자들이 서둘러 걷기 힘들어하는 자기 아이들을 데려왔다. 잠간사이에 승용차안이 아이들로 찼다. 애들은 차안에서 엉뎅이를 들썩거리며 좋아했다. 《아이구, 이게 뉘 찬줄 알구 막 덤비오. 책임비서차요.》 성글게 뜬 털실수건을 목에 두른 나이지숙한 녀자가 눈치 무딘 아낙네들을 흘겨보며 수선을 떨었다. 어제 시장에서 뒤늦게 달려와가지고도 드살을 피우며 남새빵소랭이를 한사코 방송차에 실은 녀인이였다. 《아주머니는 차태울 아이가 없어 심술이 나는 모양이구만.》 《심술을 안부리겠으니 날 태워주십시오.》 그 녀자는 비닐장통을 여러개 실은 손밀차채를 잡고서서 비위살좋게 응수했다. 《운전사동문 슬근슬근 먼저 가라구. 광포에 가면 아이들을 아무데나 내려놓지 마오. 호반에 온통 사람천진데 잃어버릴수 있소. 어머니들이 찾으러올 때까지 데리구 있소.》 승용차가 앞서 떠나가자 한성모는 그 녀자에게 다가가 손밀차채를 잡고 끌었다. 《아주머닌 체통이 너무 커서 안되겠소. 광포제방을 다 막은 다음에 나하구 단둘이 한번 산보하기요.》 한성모의 말에 이제껏 힘들어서 낯빛이 어둡던 가두녀자들이 깔깔 웃어댔다. 털실수건의 녀인은 얼굴이 붉어졌으나 익살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구, 그랬다가 책임비서동지네 안사람이 집에서 키우는 고아들까지 몰구와서 날 답새기믄 어찌겠소.》 《차라리 우리 집사람이 광포감탕판에 나왔으면 좋겠소. 솔직히 말해 이렇게 수십리를 걸어온 가두녀성들을 보니 집사람을 데려내오지 못한 가책이 크오. 우리 처는 고아들한테 빙자하구 광포에 못나간다구 하지만… 어렵게 가정살림하는 동무들도 다 그에 못지 않는 사정이 있을게란 말입니다.》 손밀차를 끄는 한성모의 진심어린 말이 가두녀자들의 속마음에 가닿아선지 한동안 말들이 없었다. 손밀차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고르롭지 못한 땅바닥을 옮겨짚는 어지러운 발자국소리만이 길가의 정적을 깨치고있었다. 《… 눈물겨운 사정이 있을텐데…》 한성모는 침묵을 깨뜨리고 말을 이었다. 《남편을 대접하구, 아이들을 배곯리지 않으려구 변변히 먹지도 못하면서 제방공사에 나와주니 광포에 동원된 세대주남자들이 기운을 낼거요.》 털실수건녀인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글쎄 기운을 내겠지요.… 하지만 함흥녀자들은 세대주남정네들을 그닥 신통히 여기지 않습니다.》 《허, 그건 무슨 소리요?》 《함흥사내들이 원래 일을 하는줄 압니까, 아이합니다.》 털실수건녀인은 손밀차주위에 바싹 몰켜서가는 녀자들의 심정을 자기가 대변하기나 하는것처럼 평소에 쌓인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 기간 성천강제방공사도 그래, 사포거리 도로 뽑는것도 그래 다 함흥가두녀자들이 했습니다. 그리구 단천과 룡양에 가서 마그네사립광 수집하는 전투도 우리 녀자들이 집을 떠나가지고 했습니다. 남자들은 그까짓 돌줏는 일을 가지구 지도합네 하구는 괜히 왔다갔다하면서 삐치각질이나 했재이오.》 한성모가 재미있어 껄껄 웃으니 털실수건 쓴 녀인은 부추김이라도 받은듯 아예 꺼림없이 터놓았다. 《광포호수 막는데서… 원료기지를 공짜루 얻구 아이들에게 사탕, 과자를 만들어준대서… 이번엔 함흥사내들이 큰일을 하는가부다, 녀자들과 아이들을 먹여살리는가부다 하면서두 어째 그런지 미심쩍어서 지켜봤습니다. 아일세라 한달두 못가서 얼음이 녹는다, 제방이 감탕속에 주저앉는다, 야단났다 아부재기치면서 또 우리 가두아낙네들을 불러내는게 아이겠습니까.》 《그 말이 옳소. 시당에서는 남자들만 가지구는 아무래도 농사철전까지 광포제방을 막을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소. 그래 하는수없이 함흥에서 아껴두었던 기본주력부대인 가두녀성들에게 호소를 한거요.》 한성모는 능청스레 맞장구를 쳤다. 《에이구, 책임비서동지는 귀맛좋은 말만 하시오. 산전수전 다 겪은 함흥녀자들은 그런데 얼리우잰습니다. 이젠 남정들이 집안에서구 밖에서구 우리 녀자들을 부려만 먹는다는걸 눈치챘습니다. 아이들을 돌봐야지, 물길어야지, 빨랜 해야지, 큰 공사마다 삐쳐야지.… 집안팎에 녀자들이 할 일이 오만가지 가뜩한데 남정들이란건 뭘 하는줄 압니까. 직장에 나가 착실히 일해서 아이들 먹을거라도 벌어들여야젠소. 글쎄 뼈빠지게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오금놀리기 싫어하는 남정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 인민반에서도 보면 그런 알량한 남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직장에 나가 하루종일 말공부질로 시간을 보내구두 저녁에는 자기가 무스거 만들었는지, 어떻게 일했는지 하는 반정두 부끄럼두없이 태연스레 집에 들어옵니다. 그리구는 녀편네한테 위엄을 돋구면서 술을 내라, 안주를 차려라 합니다. 가장이랍시고 종일 농촌지원 갔다 온 애한테 공부를 어떻게 해라 어째라 하지만 애녀석들도 깰대로 깨서 아버지네들이 일을 잘 안해서 자식들이 배곯고 생활이 어려워졌다는걸 알구는 돌아앉지요.… 책임비서동지, 내 말이 틀립니까?》 《아니, 옳소, 거의다 맞소. 더 들어보기요.》 《남정이면 마당히 직장에 나가 건둥건둥 헛시간을 보내지 말구 자개바람나게 오금을 놀려야 한다구 봅니다. 낟알이든 볼트알이든 무시기든지 생산물을 내야 사회주의를 지킬게 아입니까. 그렇지 못한 남편세대주들은 사실상 가정에서조차 〈있으나마나한 존재〉입니다.》 한성모는 주위에 운집해서 걸음을 옮기는 가두녀자들이 이 털실수건 쓴 녀인의 말에 지극히 공감한다는걸 느꼈다. 그들의 웃음어린 진득한 표정과 침묵은 당책임일군의 솔직한 대답을 기다리고있었다. 《함흥 가두녀성동지들… 어찌겠소. 좀 참아주오. 우리 혁명이… 있어본적이 없는 준엄한 시련을 겪는다는걸 남정들이 뼈저리게 깨달았소. 그래 한사람같이 일떠섰소. 그들은 겨울에 썰매와 발구로 돌버럭을 날라다 얼음판에 가설제방을 쌓았소. 호수를 건너 지르는 기본제방과 강안보조제방 해서 5, 300메터나 되오. 남정들이 얼마나 큰일을 했소. 광포를 막는 돌파구를 열어놓은셈이요. 그리고나니 지쳤지. 그들을 도와주오. 옛날부터 드센 녀편네를 얻으면 지옥도 무서워 안한다구 했소. 안해들이 힘껏 도와주면 〈있으나마나한 존재〉들이 기어이 광포강을 막아 원료기지를 건설할거요. 가두녀성들이 이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기 힘들어 남정들을 줴버리면 혼자 배불리 먹구 이부자리에 누운들 잠이 올줄 아오.》 《에이구, 차라리 베개통을 그러안고 자는게 낫습니다. 없어두 돼요.》 녀인이 그냥 천연스레 대꾸하자 가두녀자들은 참지 못하고 사방에서 킬킬 웃어댔다. 《아주머니는 나이가 몇이요?》 한성모는 웃음을 누르고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쉰고개를 방금 넘었제오.》 《그 나이 됐으니까 남편을 괄시하는구만. 다른 녀자들은 젊어서 밤에는 다 남편을 그리워한단 말이요. 안 그렇소?》 한성모가 짐짓 정색해서 주위를 둘러보자 가두녀자들은 왁자지껄 떠들고 웃어댔다. 만시름이 떨어지는 청높은 웃음소리속에 《아입니다. 우리두 필요없습니다.》하는 누구인가 젊은 녀자의 부끄러움에 눌린 입심 약한 목소리는 솟겨지지 못하고 잦아들었다. 가두녀자들의 얼굴에서 지치고 피로한 기색은 씻은듯 사라졌다. 그들은 힘든줄 모르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가두녀인들의 무수한 발길에 짓뭉개진 땅바닥에서 누런 흙먼지가 피여나 옷자락과 얼굴들에 분가루처럼 끼얹고 봄기운이 완연한 연청색하늘로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