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한낮이 지나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야전승용차는 전선동부의 해발 1,050고지인 오성산의 가파로운 굽이를 돌아내리기 시작했다. 평탄한데는 몇메터도 안되고 경사진 비탈길과 숨가쁜 굽인돌이가 련속 반복되는 험한 산길이였다. 오성산은 오를 때보다 내릴 때가 더 위험했다. 차바퀴가 자칫 반메터라도 잘못 벗어지는 날에는 승용차가 천길 산벼랑으로 굴러떨어지는판이여서 조향륜을 잡은 운전사는 온 얼굴에 땀이 돋힌 초긴장상태에서 시창을 뚫어지게 살피며 차를 몰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심하게 흔들리는 차의 뒤좌석에 몸을 묻으신 채 눈아래에 펼쳐진 한폭의 대형전경화인양 연한 운무에 싸여 파도쳐간 전연의 높고낮은 산발들을 부감하시였다. 《내리면서 보니 오성산이 높긴 높구만. 주변풍치가 볼만 해. 전선동부일대에서는 기상을 뽐낼만 한 산이요.》 《오성산은 령길굽인돌이만 해도 151군데나 됩니다.》 운전사는 산세의 험함과 웅장함을 자기나름으로 표현했다. 《동무가 세여봤나?》 《아닙니다. 오를 땐 산굽이가 너무 숨막히게 들이닥쳐 그럴새도 없었습니다. 고지에 다 올라가서 군부대운전사한테 물어봤습니다.》 《151굽이라… 오성산이 적들과 대치한 최전방고지니 경사급한 굽인돌이가 많을수밖에 없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침에 오성산을 오르려고 할 때 위험하다고 눈물이 글썽해서 앞을 막아서던 군부대장을 상기하시였다. 최전연의 다른 곳에는 다 가실수 있어도 오성산만은 절대로 안된다고, 위험하다고 절절히 말하며 길에서 비켜서지 않던 군부대장이였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최고사령관이 조국의 방선을 지켜선 전사들이 있는 곳에 가지 않고 어데로 가겠는가고, 그들을 만나자고 수천리를 왔다고, 내가 산기슭까지 왔다가 그냥 가면 전사들이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고 하시며 오성산을 오르시였다. 그이께서는 고지정점에 자리잡고있는 전방지휘소에서 포대경으로 군부대의 방어전연을 살펴보시면서 적정과 지형을 상세히 료해하시였다. 그리고 군부대가 적들의 그 어떤 침공도 일격에 격파할수 있는 새로운 작전적과업들을 제시하시였고 군인들의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도 전방지휘소에 도착하시였을 때 《결사옹위!》와 《만세!》를 부르던 지휘관들과 전사들의 격동에 넘친 목소리가 귀전에 들려오는듯 하시였다. 오성산을 내린 승용차는 골짜기사이로 난 산협길을 따라 반시간가량 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가 세포지구의 경사가 완만한 산등판에 이르렀을 때 차를 멈추게 하고 내리시였다. 조금전에 차창으로 내다보니 야산기슭에 길다랗게 지은 낯익은 반토굴집들이 보이는것이였다. 지난해 초겨울에 이곳에 배비변경하여 전개한 사단의 군부대들이 지은 반토굴집들이였다. 그때 김정일동지께서는 최고사령부 작전적방침에 따라 추운 겨울에 갑자기 배비변경한 사단이 어떻게 살림을 펴고 지내는지 몹시 걱정되시였다. 바람과 비와 눈이 어느 하루도 번지지 않고 엇갈려가며 궂은 날씨를 몰아온다고 해서 세포라고 부르는 곳이였다. 초겨울인데도 다른 지방보다 눈이 더 내리고 맵짠 바람이 불어쳤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때 며칠밤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시다가 전선중부일대의 시찰에서 예견이 없었지만 점심마저 건느시며 멀리 에돌아 사단이 자리잡은 이 세포의 산등판에 찾아오시였다. 그런데 사방이 온통 눈천지인 산등판에는 사단의 구분대들이 있음직한 천막이나 가설막 같은 집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바위덩어리같이 든든한 체구에 누에눈섭꼬리가 관자노리로 치켜올라간 사단장과 정치부장의 안내를 받아서야 눈무지사이길로 해서 반토굴집에 당도할수 있으시였다. 산등판의 남쪽경사지를 깎아내여 바닥에는 온돌을 놓고 지붕은 살창대를 건너질러 비닐을 씌우고 그우에는 마른 풀이끼를 덮었는데 반토굴집안에 들어서니 아늑하고 훈훈하였다. 추운 겨울날에 집을 지을 자재도 없고 날자도 없는데 며칠사이에 이렇게 동화속에 나오는 신비한 집같은 반토굴병실들을 지어놓고 근심걱정없이 뜨뜻이 겨울을 나고있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못내 기쁘시여 사단장의 등을 두드려주시며 침실과 식당, 창고와 지휘부반토굴집들을 다 들어가보시였다. 그날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단장이랑 같이 지휘부반토굴식당에서 간소한 점심식사를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께 차례진 줴기밥은 체통이 큰 정치부장에게 밀어놓으시고는 이 고장에서 나는 유명한 평강, 이천무우를 깎아 세쪼각이나 달게 드시였다. 그것은 벌써 석달전 일이였다. 오늘 이렇게 전연시찰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보니 산등판의 경사면을 파고 지은 사단의 인상깊었던 반토굴병실들이 그대로 있는것이였다. 3월의 따스한 해빛은 언땅이 갓 녹은 양지쪽등판에서 파릇파릇 돋아난 풀싹을 어루만지고있었다. 길옆 내가의 버드나무아지들은 물기가 올라 칠칠이 머리를 숙인채 뽀얗게 몽롱한 푸른 꿈속에 잠겨들었다. 산등판아래 벌쪽에서는 투명한 아지랑이불길이 겨울잠에서 깨나지 못하는 메마른 흑갈색대지를 덥히고있었다. 봄은 높은 하늘쪽에서 오면서도 먼 산계곡에 쌓인 눈얼음은 방임해버렸는지 그쪽에서는 이 고장특유의 궂은 바람이 줄곧 겨울랭기를 실어왔다. 야전군복차림에 허리에는 혁띠를 팽팽히 조여맨 사단장이 숨이 차서 달려와 영접보고를 했다. 그의 구리빛얼굴만 보고도 온 겨울 사단의 전투력을 다지는 훈련과 진지굴설에 여념이 없었으리라는것이 알렸다. 《시간이 없어 사단에 들어가보지 못하오. 전사들은 다 건강히 잘 있겠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지휘관들의 안부까지 묻고나서 멀리 보이는 반토굴병실들을 가리키시였다. 《사단장, 저 반토굴집들은 어떻게 하겠소?》 《?》 《봄이 됐는데 자랑거리로 그냥 둬둘셈인가?》 사단장은 그이의 의도를 깨닫지 못해 얼른 대답을 못하였다. 보매 그는 자기가 착상한 반토굴병실에 여전히 만족하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땅이 녹으면 병실들을 새로 지을 나무랑 자재를 마련하지 못했소?》 《…》 사단장은 자기가 무언가 잘못했음을 예감했는지 낯빛이 어두워졌다. 《내가 작년 겨울에 사단장을 칭찬한건 갑자기 배비변경을 해서 빈주먹뿐인데 저런 멋진 반토굴을 짓고 사단이 뜨뜻이 들어배겼기때문이였소. 하지만 인제는 봄이 됐소. 언땅이 녹고 습하오. 반토굴병실들이 습기가 차면 전사들의 건강에 여간 해롭지 않을거요. 끈끈해서 잠을 자도 잔것 같지 않지.》 《최고사령관동지… 제가… 반토굴비닐지붕천정에 물방울이 맺혀 떨어지는것을 보면서도 대책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솔직하고 허심하게 자기를 반성할줄 아는 사단장이였다. 《사단에 떨어진 과업을 수행하는라 바빴겠지. 이제라도 빨리 저기 산기슭의 건조한 땅에 터를 닦고 병실들을 잘 짓소. 목재와 세멘트는 보내주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단장을 데리고 차 있는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리구… 병사들의 식생활문제요. 봄이 됐는데 우에서 공급하는걸로 국한하지 말고 부업농사를 짓소.》 《장군님… 사실 부업지를 얻으려고 이곳 군경영위원회와 교섭을 하는데… 잘되지 않습니다.》 《협동농장더러 알쭌한 부침땅을 달라고 하지는 마시오. 내 오면서 보니 사단주둔구역에 빈땅이 많소. 강기슭을 따라 퇴적지가 몇정보 되게 두둑이 높아졌는데 거기다 이 고장에서 잘되는 무우나 다른 남새를 심으면 온 사단이 먹고도 남을거요. 부업지개간문제를 사단지휘부에서 토의해보시오. 봉래산주변이랑 해서 새초덮인 묵은 땅을 일구면 병사들에게 감자와 풋강냉이 같은것도 얼마든지 배불리 먹일수 있소. 사단장, 서두르시오. 봄이요.》 야전승용차는 전선중부의 높고낮은 령들을 넘고 구배가 심한 산협길을 두어시간나마 착실히 달려서야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산길에서 손에 땀을 쥐고 차를 몰던 운전사는 넓다란 포장길에 들어서자 어지간히 긴장을 풀고 속도를 높였다. 《고속도로에서 천계리로 갈수 있던가?》 뒤자석에서 차가 몹시 들추는데도 줄곧 문건을 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있습니다. 이제 60리쯤 갔다가 고속도로에서 벗어져 산길로 한시간가량 가야 합니다.》 《장군님… 그쪽은 산길이 나빠서 돌아오느라면 밤이 퍽 늦을겁니다.》 《그래도 갔다 와야 하오. 옹근 시간을 낼 틈이 없으니까.… 동무가 오늘 새벽부터 차를 몰아 피곤할테지. 내가 한바탕 몰가?》 《전 일없습니다. 고속도로에선 차가 들추지 않으니 장군님께서 좀 쉬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사가 양보히지 않자 다시 아까 보던 두툼한 문건에 눈길을 주시였다. 밑줄을 그으며 깐깐이 다 보신 다음에야 활달한 필치로 앞장에 짤막한 결론을 쓰고 수표를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 다른 문건을 펼쳐드시였으나 피로가 너무 몰려와 좌석등받이에 기대신채 눈을 감으시였다. 얼마간 쪽잠에 드셨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차가 가볍게 들추어서야 깨나시였다. 승용차가 어느새 고속도로를 벗어나 눈녹은 물기가 축축한 낮은 산경사면을 달리고있었다. 산길은 그닥 좁지 않고 석비레를 깔기는 했으나 겨우내 얼어있다 녹아서인지 고르롭지 못하고 군데군데 패인 곳에는 물이 고여있었다. 승용차는 그런 작은 물웅뎅이를 피하면서 달리자니 자연 속도가 떠졌다. 산골강을 옆에 낀 구릉지대를 지나자 강물도 흐름살이 빨라지고 길 오른쪽으로는 높은 산들이 줄줄이 뻗어갔다. 《수림이 울창하구만. 아호비령산줄기에서 가지친 산들이지?》 《그렇습니다. 천계리는 아호비령산줄기와 적유령산줄기가 어기는 작은 분지마을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사의 대답을 들으시며 천계리에 살고있는 채운로인을 생각하시였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는데도 오래동안 사귀여 친숙해진 로인의 집에 찾아가는것처럼 마음이 후더워나고 빨리 만나보고싶으니 차의 속력이 더딘것만 같으시였다. 텔레비죤화면에서 자신의 얼굴이 축간것을 보고 몸보신에 써달라고 검정염소를 올려보낸 로인… 소박한 농촌로인의 지성은 자신의 건강을 깊이 념려해주는 인민의 아끼는 마음이라고 생각되시였다. 달포전에 그이께서는 서해안 섬방어지대를 맡은 해군부대시찰을 떠나기에 앞서 경리일군으로부터 검정염소가 드디여 쌍둥이새끼를 낳았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너무도 기쁘시여 당장 가보고싶으시였으나 시간이 허락치 않아 전화로만 다심하게 물어보시였다. 새끼염소가 둘 다 암컷인데 한마리는 엄지를 닮아 털은 물론 눈자위까지 새까맣고 다른 한마리는 잔등과 다리에 윤기가 반질거리는 검은 털이 섞인 얼룩이였다. 그것들은 세상에 나오자 벼짚깔개에서 꾸무럭거리더니 엄지가 혀바닥으로 물기젖은 털을 핥아 말리워주자 뒤다리를 벋디디고 일어서서 뒤뚝거리며 걷기 시작한다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세 마리로 불어난 검정염소가족을 며칠전 봄날씨가 따뜻해졌을 때 임자인 천계리의 채운로인한테 돌려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어느덧 야전승용차는 가둑나무숲이 우거진 령을 넘고 산그늘이 짙은 신작로를 따라 골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앞에 산이 막혀 길이 더 없을듯싶었는데 물푸레나무와 쇠스레나무들이 바위산경사면에서 성글게 수림을 이룬 골짜기가 열리며 울퉁불퉁한 신작로는 끝간데없이 산발을 끼고 뻗어갔다. 승용차는 작은 고개를 두어개 넘고 눈녹은 봄물이 흐르는 내물을 가로지른 나무다리를 건너서야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막힌 옴푹한 분지마을인 천계리에 도착했다. 녹다 만 눈이 산홈타기에 드문히 배겨있는 기복이 심한 서켠봉우리에 걸린 저녁해는 하늘폭에 퍼져가는 엷은 봄구름을 채색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에서 내려 거름무지들이 듬성듬성 널려있는 주변의 야산밭들을 둘러보시였다. 메마른 강냉이밭에는 대가 형편없이 가는 강냉이그루터기들이 보였다. 그이께서는 소먹이용사료로 쓰려고 밭가녁에 무져놓은듯싶은 강냉이짚무지에 가시여 아직도 가는 대에 붙어있는 작은 강냉이이삭을 벗겨내시였다. 지난해 봄철에 두 차례의 늦서리가 내리고 가물이 지속된 흔적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뒤늦게 헐레벌떡 뛰여온 중년나이의 리당비서를 만나 농장의 어려운 식량형편을 료해하시였다. 농민들은 서로 돕고, 벌써 돋아나기 시작하는 산나물들을 뜯어 식량보탬을 깐지게 하면서 봄철농사차비를 직심스레 해나가고있었다. 강낭짚무지가 쌓인 둔덕을 넘어서니 길다랗게 지은 축산작업반의 돼지우리가 나졌다. 겉벽은 돌로 쌓았지만 안벽과 바닥은 세멘트미장을 하였고 잠자리칸지붕은 기와를 얹었다. 한때는 축산반을 본때있게 해볼양으로 칸수도 많이 정하고 시공도 잘한 돼지우리지만 지금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통나무를 파낸 마른 구유통들과 칸마다 거의나 텅 빈 돼지우리를 묵묵히 들여다보시였다. 《엄지가 몇마리 안되는구만.》 그이의 걱정어린 말씀에 리당비서는 송구스러워했다. 《새끼받이종자돼지입니다.… 알곡사료가 없어서 지난 겨울에 거의다 페사시켰습니다.》 그이께서는 축사실에 들려보시였으나 쇠가마안에는 돼지의 저녁먹이감이 없었고 뜨물통도 비여있었다. 《사양공은 없습니까?》 《한명이 있는데 풀을 뜯으러 갔을겁니다. 돼지마리수가 적어 축산반원들을 다 농산반에 돌렸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벼짚무데기와 강냉이송치따위들이 너저분히 널린 축사마당을 걸어나오시였다. 채운로인의 집은 마을에서 산기슭쪽으로 좀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있었다. 담장밖에 뿌리를 박은 두그루의 큰 돌배나무가지가 오래된 청석기와지붕을 뒤덮고있었는데 울안에는 꽤 열매가 달릴 여러그루의 추리나무들이 보였다. 강돌을 사선으로 엇바꾸어가며 정히 쌓은 돌담장가운데는 작은 솟을문까지 세워 산골농가의 품위를 돋궈주고있었다. 겉보기에도 살림을 알뜰히 꾸릴줄 아는 집주인의 솜씨가 느껴졌다. 채운로인의 아들과 며느리는 농장강냉이밭에 거름나르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리당비서는 채운로인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락동강도하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으며 협동조합을 꾸리던 시기에는 작업반장을 했고 70년대에는 농장관리위원장사업까지 했다는것을 그이께 말씀드렸다. 《나이는 어떻게 됐소?》 《금년에… 예순아홉살일겁니다.》 리당비서가 대답올리는데 마침 채뚝 저쪽에서 밀짚모자를 쓴 채운로인이 다섯마리의 염소들을 몰고 오고있었다. 손자애들인 모양인지 예닐곱살짜리 사내애 둘이 이쪽저쪽으로 뛰여다니며 새끼염소들을 엄지한테로 몰아세우군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채뚝으로 반가이 마주가시자 채운로인은 손에서 염소고삐를 떨구며 놀라서 우뚝 섰다. 첫 순간에는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슴벅이더니 그만에야 밀짚모자를 벗어들고 엎어질듯이 달려왔다. 《장군님!…》 《로인님…》 그이께서는 오래동안 헤여졌던 막역한 친지를 만난듯 반갑고 가슴이 뜨거워나시여 채운의 나무껍질처럼 터슬고 꽛꽛한 손을 잡아주시였다. 채운의 반백이 된 머리와 꺼칠한 얼굴에 패인 실주름은 일흔고개에 이른 나이를 짐작케 했으나 등이 굽지 않은 건장한 체격과 피줄이 돋은 고동색의 굵은 팔뚝이며 아직도 정기도는 눈에서는 삶의 충만된 힘과 열정이 뿜어나오는것 같았다. 《장군님께서… 이 먼 산골에까지 오실줄은…》 채운은 너무도 큰 기쁨의 충격에 말을 떠듬거리며 눈물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채운의 곁에 와 접이칼처럼 허리를 꺾어 인사를 올리는 사내애들의 볕에 탄 오동통한 볼을 다독여주시였다. 《손자애들입니까?》 《예.…》 《귀엽게 생겼습니다.》 《이녀석들이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새끼염소들이 너무 고와서 종일 쫓아다닙니다.》 《풀이 돋습니까?》 《예, 개울가와 양지쪽비탈지에 풀이 한창 돋아납니다. 지금 자라는 풀들은 아무거나 염소가 잘 먹습니다.》 채운은 손자애들을 비켜세우고 그이께 염소들을 보여드렸다. 《나한테 왔던 검정염소구만요.》 김정일동지께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자 엄지검정염소는 알아보기라도 한듯 앞발굽을 딱딱 소리나게 옮겨딛고 혀바닥으로 그이의 손을 핥았다. 《새끼염소는 튼튼하구만요. 난 겨울난 검정염소가 새끼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도 일이 너무 바빠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이께서는 엄지곁에 딱 붙어있는 깜장이와 얼룩이새끼염소의 이마꼭대기에 돋은 밤알뿔을 만져보시고 반질반질 윤기도는 등허리의 털을 쓸어주시였다. 《장군님…》 채운은 한낱 염소들을 그렇듯 애착을 가지고 대하시는 그이의 소박한 인간미에 인차 말을 잇지 못했다. 《장군님께 올렸던 이 염소가 새끼를 두마리씩이나 달고 집에 척 나타났을 때… 우리 식구들은 말할것 없고 온 마을이 감격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정말 안타까왔습니다. 어쩌면… 도루 보내신단 말입니까.》 《로인님, 나는 검정염소를 받지 않았지만 그대신 로인님을 통해서 우리 인민의 극진한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 마음이 내게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더 힘껏 일할수 있는 귀중한 보약이 되였습니다.》 《장군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그렇지만 건강에 관심을 돌리셔야 합니다. 짐차에 염소를 싣고 온 일군도 말합니다. 장군님께서 끼니를 건느시며 전연시찰을 하시구 어쩌다 드시는것도 줴기밥이라고 말입니다. 인민들은 장군님만 믿고 〈고난의 행군〉을 하는데 장군님께서 귀한 몸을 돌보시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일없습니다. 그전날 항일무장투쟁시기 수령님께서는 남패자에서부터 북대정자에 이르는 엄혹한 고난의 행군시기에 대원들과 한홉밖에 안되는 미시가루를 조금씩 나누어 드시면서 식량난과 강추위를 이겨내고 적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하고 위기에 처했던 조선혁명을 구원하셨습니다. 나도 우리 인민과 생사운명을 같이 해나가면서 기어이 사회주의붉은기를 지키고 오늘의 난관을 뚫고나가려고 합니다. 천계리에 온것도 그래서입니다. 축산을 잘하는 로인님을 만나 경험도 듣고 정책의논을 해보자고 합니다. 자연재해가 계속되고 농사가 안된다고 한탄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일찌기 수령님께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국토의 75프로가 산인 우리 나라의 조건에서 인민들을 잘살게 하기 위한 방도의 하나는 산지를 잘 리용하여 축산을 발전시키는겁니다. 로인님네는 집짐승이 얼마나 됩니까?》 《염소가 다섯마리고 집 뒤울안의 토끼굴에는 겨울나이한 토끼들이 20마립니다. 닭과 오리와 게사니도 있고 돼지는 3마리이지만 이달 중에 암컷 둘 다 새끼를 낳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이것들을 거의 다 풀로 기르고있습니다.》 《식량보탬이 단단히 되겠습니다.》 《작년에 군부대에 원호를 하고도 염소젖과 고기를 넉넉히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손자녀석들이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강냉이도 많이 남아 햇곡식이 날 때까지는 식량걱정이 없습니다.》 《채운로인네는 벌까지 칩니다. 마을에서 그중 잘사는 집이여서 〈산골지주〉라는 별명을 듣습니다.》 잠자코 있던 리당비서가 넌지시 말했으나 채운은 귀맛이 상한듯 그한테 마뜩지 않게 눈총을 쏘고 헛기침을 깇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신중한 낯색으로 리당비서를 돌아보시였다. 《남의 노력을 착취하는것도 아닌데 왜 〈산골지주〉입니까. 우리 농민들은 응당 농사를 잘 짓고 부업을 많이 해서 옛날 산골지주보다 더 잘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소, 리당비서동무?》 《예.… 옳습니다.》 리당비서는 황황히 수긍하며 열적게 웃었다. 그이께서는 기뻐하는 내색을 감추지 못하는 채운에게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집에서 축산하는걸 좀 보여주지 않겠습니까?》 《원 이런 정신봐라. 장군님, 어서 저의 집에 가십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당비서를 데리고 채운의 집뜨락에 들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통풍이 잘되게 지은 염소우리와 돼지우리 그리고 집뒤울안에 있는 토끼굴과 벌통에 이르기까지 로인이 벌려놓은 개인축산정형을 세세히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신 다음에야 퇴마루에 걸터앉으시였다. 《리당비서동무, 농장에 채운로인네처럼 축산을 잘하는 집들이 있소?》 《염소를 한두마리정도 기르는 집은 더러 있습니다. 돼지를 기르는 집들은 적지 않은데 다들 낟알사료가 걸려 60키로쯤만 되면 인차 냅니다. 이 집은 채운로인과 집안사람들이 이악해놔서…》 《이악하다… 리당비서동무는 채운로인네가 제 집안 리익을 위해 이악한것처럼 말하는구만. 집짐승을 남들보다 이악하고 부지런하게 기르는것이 뭐가 나쁘겠소. 농촌에서 협동축산과 개인축산을 다 같이 잘해나가도록 하는것은 우리 당의 축산정책이요. 자연재해로 흉작이 계속되는데 풀먹는 집짐승먹이라도 이악하게 많이 길러 모자라는 식량을 보충하고 고기와 젖을 먹으면서 잘살면 좋지 않소.》 《장군님, 전 사실… 농민들의 리기주의문제때문에… 개인축산을 지내 장려하면 농민들이 협동농장일을 잘하지 않습니다.》 《협동농장일을 제껴놓고 제일만 하는 농민이 있다면 교양해야지. 하지만 우리 농민들중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소. 동무의 말은 설득력이 적구만. 농민들의 정신상태를 신뢰하는것 같지도 않고. 난 사실 채운로인이 검정염소를 보내와서 천계리농민들의 생활이 그래도 괜찮을줄 알았소. 천계리에서는 농사도 되고 축산은 아주 잘하는줄로 짐작했댔는데 와보니 정반대구만.》 뒤울안 우리에 가둬놓은 게사니들이 《께—엑》, 《께—엑》 질러대는 소리가 앞뜰에까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화답이나 하듯 허청칸옆에 잇대지은 염소우리에서 새끼염소들이 연신《매—매—》하고 울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채운에게 고무하는 눈길을 보내시였다. 《로인님은 축산문제를 놓고 생각되는바가 많겠습니다.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채운은 낯색이 컴컴해진 리당비서에게 흘낏 눈길을 던졌다. 로인은 갑자르다가 아무래도 속을 터놓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열었다. 《장군님… 사실 리의 축산이 추서지 못하는것은 농장일군들이 일을 되는대로 하기때문입니다. 축산반 돼지우리랑, 사료저장실, 소우리는 70년대말에 지은건데 낟알사료가 걸려 돼지를 기르기 힘들다면서 돌보지 않아 다 헐어빠졌습니다. 난 축산반일이 해마다 찌그러지는걸 보구 몇번이나 농장간부들한테 맞대놓구 말했습니다. 그런데 노상 하는 말은 알았다, 걱정말라, 참견말라입니다. 70년대보다는 사정이 달라졌다는겁니다.》 채운은 그이께서 자기 말을 신중히 들으시자 여느때 눌리웠던 정의감에 불이 달렸다. 《미국놈들의 고립압살책동이 심해서 뜨락또르용기름같은 영농자재를 못 들여오는데다가 자연재해까지 겹치여 농사가 안된다는겁니다. 이게 사정이라면… 난 반박할 말이 있습니다. 70년대는 뭐 날씨가 기막히게 좋았는줄 압니까. 봄철에 한랭전선의 영향으로 늦서리 치구 가물들구 여름철에 장마나지 않은 해가 거의나 없었습니다. 미국놈들이 못되게 놀지만 제땅을 뚜지고 종자를 박아 농사를 지으면 되는건데 그놈들에게 빙자할것 있습니까. 우리 천계협동농장 망신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한가지 말씀올리겠습니다. 지난해 봄에 군에서는 이제는 기름을 제대로 주지못해 뜨락또르를 충분히 가동시키지 못하니 농장들에서는 소를 잘 관리해서 밭을 갈구 달구지를 쓰라구 했습니다. 시기적절한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협동농장축산에 주인이 없다보니 농장축산반소들은 마리수도 적거니와 앙상하게 여위여 힘꼴을 쓸수가 없습니다. 풀뜯어먹는 축산반소를 역축으로 쓰자면 콩도 삶아먹이고 다래나무줄기같은 매끈한 나무로 꼬뚜레도 정히 만들어 끼워야겠는데 농장일군들은 그저 〈축산반소를 써라.〉하고 지시하면 답니다. 관리위원장의 조카는 허리가 말허리등게만큼은 굵은 앤데 달구지에 짐실었건 안 실었건 노상 달구지채에 앉아다닙니다. 그래 내가 소몰이군은 달구지를 타면 안된다고 타일렀지만 며칠후에 보니 그 녀석이 사람이 없는데서 또 달구지에 가마니깔고 척 올라앉아 가는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분통이 터져 당장 달구지에서 내리라고 소래기를 질렀습니다. 그랬지만 한편으루 가슴이 아프구 우리 늙은 세대가 젊은 애들을 그렇게 만들어놓은것 같아 가책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채운의 절절한 이야기에 무척 감동되시였다. 락동강전선에까지 나갔던 전쟁로병, 제대된 후에는 오래동안 작업반장, 관리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당의 농촌진지를 고수해온 견실하고 강직한 사람만이 말해줄수 있는 진실이였다. 채운이처럼 자기의 피땀을 바쳐 억척같이 사회주의를 건설해온 사람들은 누구보다 사회주의가 소중함을 잘 알고있다. 그래서 사회주의를 지켜야 하겠기때문에 일이 안되는것을 진정으로 가슴아파하면서 꼬물도 분식하지 않고 말하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이 먼 산골에까지 찾아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시였다. 언제나 사랑하는 이 조국땅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중시하고 알고싶은것이 그이의 절절한 마음이시였다. 그이께서는 현실을 외곡하고 무어나 일이 잘된다는 식의 미화분식된 이야기를 곧잘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시였다. 오직 진실만이 천만금을 주고도 살수 없이 귀중한것이고 진실에 튼튼히 의거할 때만이 옳바른 정치를 할수 있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당비서가 자책감으로 얼굴을 들지 못하는것을 띄여보시고 누그러운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동무는 농촌당일군인데 〈양우장농〉이란 말을 알겠지?》 《…》 리당비서는 얼떠름해서 눈길을 떨구었다. 《모른단 말이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못내 유감스러워 인차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48년도 겨울이였소.… 수령님께서는 대소한의 강추위를 무릅쓰고 자강도의 한 농촌마을을 찾으시였소. 농민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수령님께서는 식량이 부족하고 명절때에도 고기를 먹지 못하는 농가들이 수두룩한 이 고장 농민들의 어려운 생활형편을 료해하시였소. 산이 험하고 땅이 척박해서 살림살이가 펴이지 못한 농민들의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며 말씀하시였소. 우리 나라는 어데 가나 산지대이지만 조상들은 탓하지 않고 땅을 걸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왔다, 수천년동안 제고장을 아끼면서 살아가는 철리를 터득한 우리 조상들은 농사를 〈천하지대본〉이라고 하였고 농사를 하는 농군들은 집짐승을 잘 길러야 세간살이가 늘어난다고 해서 〈양우장농〉이란 말을 후손들에게 남겼다고 하시였소. 그 후에 자강도의 그 농촌마을에서는 수령님의 〈양우장농〉뜻을 받들어 농사를 잘 짓고 집집마다 풀먹는 가축을 많이 길러 벌방 부럽지 않게 잘살게 되였소.》 《정말… 부끄럽습니다.》 리당비서는 자기를 질책하지 않고 따뜻이 일깨워주시는 장군님의 고매한 인품에 머리를 숙였다. 《리당비서동무가 이제는 〈양우장농〉을 하려면 산골농민들앞에서 벼슬아치행세를 해서는 안되오. 거름냄새, 집짐승냄새 같은 실농군체취가 물큰물큰 나야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어린 눈길로 리당비서를 건너다보시였다. 《천계리는 〈양우장농〉덕을 입으면 잘살수 있소. 이 고장은 자강도의 그 농촌마을보다 산도 그닥 험하지 않고 땅도 척박하지 않소. 그리고 채운로인처럼 이미전부터 〈양우장농〉의 생활방식을 터득한 농가들을 모범으로 내세우면 한두해사이에 농민들의 생활이 쑥 올라갈거요.》 《장군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꼭 실행하겠습니다.》 리당비서는 신심에 차서 결의다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후 채운의 집을 나서 야전승용차를 세워둔 곳에 이르시였다. 사위는 벌써 땅거미지고 그이께서 넘어가셔야 할 먼 산발들은 희읍스름한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황황히 따라나온 채운은 그이와 헤여지기 서운해서 손등으로 눈물이 개핀 눈귀를 훔치였다. 《장군님… 모처럼 오시였다가 저의 집에서 저녁식사조차 하지 않고 가신단 말입니까?!》 《난 오늘 정말 로인님네 집에 와서 느낀것이 많습니다. 그 이상 대접이 있겠습니까. 농촌실태를 가식없이 솔직하게 말해주는 로인님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에 오를념을 않고 량팔을 가슴에 얹으시였다. 《아까 염소기르는 이야기를 다 나누지 못했는데… 어떻습니까. 이제는 염소가 다섯마리인데 봄철부터 가을까지는 최뚝과 비탈지 같은데서 방목을 시키겠지요? 모자라면 산에 올라가 칡이나 가둑나무같은 잡관목숲을 뜯어먹도록 하고… 그다음에 겨울먹이는 어떡합니까?》 그이께서 집뜨락에서보다 더 자상히 물으시자 채운은 감동하여 손세를 써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닥 어려울건 없습니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됩니다. 여름내 염소가 좋아하는 풀들을 베여다 말려 청초사료를 장만하구 가을에는 강냉이짚이나 콩짚, 무우시레기 같은것들을 닥치는대로 끌어다 뒤울안에 쌓아놓아야 합니다. 그럼 2월말까지는 먹일수 있습니다.》 《강냉이가 밭에서 다 여물 때는 강냉이잎사귀가 노랗게 마르는데 영양가없는 그런 강낭짚이 염소먹이로 되겠습니까. 그리고 농촌에서 콩짚이나 무우시래기량도 제한되여있지요. 풀을 베여온다는데 재배한 먹이풀이 아니고 아무 풀이나 막 베여다가 말리면 염소가 먹습니까?》 《장군님, 사실 농가들에서는 겨울철염소먹이때문에 한두마리밖에는 더 기르지 못합니다. 마른 강낭짚은 할수 없으니 염소한테 먹이지요. 말린 청사료를 장만하자면 풀을 여간 골라 베야 하지 않습니다. 산지와 공한지들판의 야생풀들은 집짐승이 먹을수 있는것보다 먹이지 못하는 아무 쓸모없는 키작은 잡풀들이 더 많이 자라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채운로인과 축산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더 나누시다가 날이 아주 어두워서야 천계리를 떠나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