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26

 

오후시간에 라충연의 방으로 도행정위원장이 불쑥 찾아 들어왔다. 침착하고 선량해보이는 인상이 둥그스름한 얼굴에 늘 어려 마주 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도행정위원장은 지금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앞상곁의 걸상을 당겨 앉자 서류가방을 열고 문건을 꺼냈다.

《애육원건물을 얻어냈습니다.》

《원 사람이 느리다구야. 그렇게 반가운 소식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제창 말하구려.》

라충연은 도행정위원장의 손에서 문건을 나꿔채듯 받아들었다.

3층건물인 사포구역행정위원회청사를 애육원에 내주고 구역행정위원회는 다른 기관자리에 옮기겠다는 안이였다.

건물략도을 보니 방이 많고 남향으로 위치해 해빛이 저녁까지 들게 되였다. 앞마당에는 정원이 있고 뒤뜨락은 넓어 아이들이 뽈을 차면서 마음껏 뛰놀수 있을것 같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난 이렇게까지 좋은 건물을 낼줄은 몰랐습니다.》

《정권기관이 응당 장군님의 뜻을 앞장에서 받들어야겠는데 지난 기간 그러지 못했습니다.》

도행정위원장은 칭찬을 반성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라충연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종이장을 들여다보았다.

《장군님께서… 부모없는 애들을 키우기 위해 정권기관일군들이 청사를 내주었다는걸 아시면 대단히 기뻐하실겁니다.》

《애육원을 옮기고 잘 꾸린 다음에 보고올리는게 좋지 않을가요?》

《그럽시다. 그래야지요. 교실과 침실, 뭐라던가… 그렇지. 교양실, 오락실… 애들의 교육과 생활에 필요한것을 다 꾸립시다.》

《원장동무한테 안을 제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도행정위원회와 도급기관들에 과업을 분담시켜 경쟁적으로 잘 꾸리려고 합니다.》

《그때 우리 함께 나가봅시다.》

라충연은 한시름을 덜었다는 기쁨에 팔걸이의자에서 일어나 도행정위원장 옆걸상에 옮겨앉았다. 담배가치를 나누고 라이타로 불을 붙였다.

《광포제방공사에 대한 일군들의 반영은 어떻습니까?》

라충현이 화제를 꺼냈다.

《신심도 있고 우려도 합니다. 이젠 가설제방이 물속감탕에 다 내려앉았는데 거기다 기본제방을 쌓아서 든든하겠는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뭐, 감탕우에 올라앉았다고 제방이 밀려내려가기라도 한답니까?!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라충연이 시큰둥해서 따져묻자 도행정위원장은 대답을 사람좋은 웃음으로 굼땠다.

《담당제방구간을 맡은 기관책임자들중에 아직 그런 떨찌근한 소갈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게 탈이거던.》

라충연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불만을 터뜨렸다.

《감탕우에다 처음 쌓는 제방이니 뒤말들이 생기겠지요. 공사를 힘있게 내밀면 그런 소리들이 잦아들겁니다.》

도행정위원장은 위로삼아 뇌이고나서 말을 이었다.

《그보다도 물이 너무 차서 일하기 힘들어하는것 같습니다.》

《그야 얼음이 갓 녹았으니… 인차 물온도가 올라가겠지요.》

라충연이 담배만 빨자 도행정위원장은 밑도 끝도 없이 물었다.

《저… 송건식동무한테 광포를 맡겨서 일없겠습니까?》

충연은 어쩐지 시행정위원장이 제방의 안전성을 미타해하는 사람들중에 속하지 않는가 하는 불안을 느꼈다.

《함흥시 원료기지를 얻어내는 공사인데 누구한테 맡기겠습니까. 그 사람을 걱정하는 일군들이 더러 있는데… 난 시행정위원장동무의 각오와 투신력을 믿고싶습니다. 토목공사경험이 많은 로동처장을 공사내부책임자로 했으니… 지금처럼 시당과 도당에서 적극 밀어주면 될겁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로력이 딸리는것 같습니다. 시내 공장기업소들에서든 생산에 힘을 넣어야 하니 그 이상 로력은 내지 못하겠답니다. 그래서 송건식동무는 함흥시 가두녀자들도 동원시키자고 제기합니다.》

《광포가 먼데 가두녀자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가?》

《어찌겠습니까. 형편이 그런데…》

도행정위원장은 담배꽁초를 재털이에 비벼끄고 일어났으나 가지는 않고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말을 돌렸다.

《고선화원장이 말입니다. 저한테 제기하기를… 책임비서동지네 집에 있는 고아들을 애육원에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애육원생활조건이 나아졌는데 애들을 한데 모으겠다면서…》

《우리 집 애들은 놔두시오.》

라충연은 별생각없이 말했으나 도행정위원장의 난처해하는 기색을 보고 그가 단순히 책임비서를 념려해서만이 아니라는것을 느꼈다.

《거기선 집에 고아를 몇명 데려왔습니까?》

《한명입니다. 일곱살짜리…》

《사내앤가요?》

《예.》

《애가 말성을 부립니까?》

《집사람이… 좀 애를 먹는것 같습니다. 그녀석이 배불리 먹이고 입혀주는데도 떠돌이생활이 인이 배겨서인지 두어번 집을 뛰쳐나간걸 겨우 붙잡아왔습니다.》

《다른 일군들도 고아를 기르는걸 수월치 않아하지요?》

《애육원건물이 해결되였다니까 좋아들 하면서 말하는걸 보니 다 제나름의 사정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라충연은 도당책임비서인 자기부터 집에서 키우던 아이들을 애육원에 넘겨주면 당적과업으로 고아들을 집에 데려왔던 일군들이 줄레줄레 뒤따를것이라는것을 짐작했다.

《남의 자식을 기르자니 여러모로 힘들고 불편하겠지. 하지만 어찌겠습니까. 나라의 아픔을 돕는 일이니 마음을 넓게 가집시다.》

《그래야지요. 하지만 책임비서동지는 애육원원장의 제기를 받아들여야 할것 같습니다. 조직비서동무도 저한테 말하더구만요. 나이 많은 부인이 제 아들은 령산에 떨궈두고서 고아를 다섯씩이나 키우는데… 행정위원회가 모르쇠를 한다구요.》

《허, 당연한 일을 가지고 그러누만. 장군님께서 아파하시는 문제를 떠맡는데서 책임비서가 뒤전에 서서야 되겠소.》

《그렇지만… 부인이 고아들때문에 책임비서동지의 뒤바라지를 잘못하는것 같습니다. 결국은 도당사업에 지장을…》

《이거 리유를 점점 과장해나가는구만요.》

라충연은 웃고나서 말을 이었다.

《글쎄… 우리 집에서 사는게 애들한테 애육원보담 못하고… 애육원생활이 아이들 성장에 썩 나으면 생각을 달리해야겠지. 그런데 지금은 애육원형편이 집보다 낫진 못합니다. 한데 모으는 문제는 좀더 두고봅시다.》

도행정위원장은 책임비서의 사리있는 설득에 공감하고 약간 면구한 웃음을 띠웠다.

 

라충연은 여느때보다 일찍 퇴근하였다. 날마다 오전에는 광포제방공사장에 나가있다가 한낮이 썩 기울어서야 도당사무실에 와서 밀린 문건을 보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를 하고나면 밤이 깊어서 집에 들어가거나 그럴 틈도 없으면 옷을 입은채로 긴의자에서 자군 하였다.

그는 오늘 어쩌다 차진 시간에 용철이네들과 한바탕 어울릴 생각으로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대문간에 들어서는데 뜻밖에도 아들 명구가 어스름이 깃든 마당을 가로질러 반가이 마중나왔다.

《아버지, 건강하셨어요?》

아들은 어딘가 주눅이 들어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손에서 가방을 받았다.

《어떻게 왔니?》

라충연은 령산에서 헤여질 때와는 달리 얼굴이 퍽 상한 아들을 뜯어보고 가슴이 아파 어깨를 끌어당겼다. 아들이 공장합숙에서 하루 두끼 강냉이죽을 늄식기 곯게 먹고 견딘다던 안해의 말이 새겨졌다. 사업에 부대껴 살같이 흐르는 나날속에 까마득히 잊혀졌던 자식의 일이였다.

《휴가를 받았니?》

《아니예요.》

《지배인이 보내더냐? 나한테 뭘 해결받으러?…》

딱해서 웃음을 짓는 아들의 얼굴이 실그러졌다.

《자재얻으러 오진 않았어요.》

《그럼?》

《아버지… 난 어머니랑 누나랑 같이 살고싶어요. 외로와서 합숙에 못있겠어요.》

한순간 충연은 아들에 대한 련민의 정에 부대껴 잠자코 서있었다. 한편으로 나약한 아들이 불만스럽기도 했다.

《내가 공장을 떠날 때 … 널더러 보이라기능두 높은데 발을 붙인 열동력직장에서 착실히 일하라구 했지. 그런데 석달을 못 참아서 집에 온단 말이냐?! 넌 이젠 응석받이가 아니란걸 알아야 한다.》

《아버지, 난 열동력직장장동지의 승낙을 받고 왔어요.》

명구의 대꾸엔 저으기 반발심이 돋쳐있었다.

《집에 아주 가라구 하더냐?》

《그런걸요. 아니, 내가 보내달라구 했어요. 합숙동무들도 날더러 함흥에 가지 않구 뭣때문에 집과 떨어져있는가구 해요.》

《합숙친구들의 말이 진속이겠지. 부모꽁무니 매달리겠다는걸 보니 어린애궁냥이다. 시라소니같은 녀석.》

현관문이 열리며 창희가 나오고 끈이라도 달린듯 다섯명의 조무래기들이 올망종망 뒤쫓아나왔다.

《큰아버지 왔다!》

야, 큰아버지!》

라충연은 천진스러운 아이들의 밝고 또랑한 부름소리에 기분이 누그러졌다. 그는 무릎을 꺾고 앉아 선참으로 가슴팍에 뛰여든 용철이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용철이 머리를 쓰다듬어줄새없이 뒤미처 안겨드는 사내아이들의 완력에 밀려 눈녹은 물이 꾸득하니 얼어붙은 땅바닥에 주저앉고말았다.

《아이쿠! 기운들이 센데.》

마당에 어른과 아이들이 어울린 웃음판이 터졌다.

《오빠들 미워.》

꽁지머리를 한 소영이는 사내아이들을 밀치고 끙끙 갑자르며 충연의 팔을 잡아 일으켜세우려 했다.

《소영이가 날 구원하는구나.》

라충연은 소영에게 이끌리는척 하며 일어났다. 그러자 다섯명의 아이들이 조롱박처럼 그의 량쪽에서 팔과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현관문을 거쳐 방안에 우르르 들어가 자리를 고 앉자 용철이가 물었다.

《큰아버지, 이젠 명구형님이 우리하구 같이 산다지요?》

《누가 그러던?》

《큰엄마가.》

저녁거리를 들고 방안을 지나가던 창희는 부엌사이문가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명구는 구석쪽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충연은 안해와 아들이 자기가 용철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하는가 하고 긴장해서 귀를 기울이고있음을 알았지만 달리는 말할수 없었다.

《아니다. 명구형은… 며칠 놀다가 공장에 도루 가서 일해야 한다.》

창희는 남편쪽에 눈총을 쏘고는 부엌사이문을 닫아버렸다.

명구는 흘쩍 일어나 건넌방으로 갔다.

조무래기들은 심상치 않은 기미를 알아차렸는지 입을 다물고 눈치만 살폈다.

방안에는 랭랭한 정적이 깃들었다.

라충연은 무거운 마음을 달래지 못해 무릎에 앉힌 소영의 머리만 쓰다듬어주었다. 자기가 명구한테 너무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합숙생활을 힘들어하는 아들을 리해하고 관심을 돌리지 않은것은 잘못이였다. 그러나 아들을 데려오려면 이사올 때 함께 왔어야 했다. 지금은 늦었다. 집에 고아들을 다섯씩이나 기르면서… 다른 일군들에게 당적과업으로 내려먹이기까지 해서 떠돌아다니는 아이들문제를 겨우 수습했는데 제 아들이 배곯는다고 집에 데려온다는것은 아무래도 량심에 걸리는 일이였다.

부모잃은 불쌍한 아이들에 비해보면 자기 아들의 처지는 사실상 아무렇지도 않은것이였다. 부모와 떨어져 외롭게 지내는것이 무슨 큰 일이겠는가. 아들을 부모의 슬하에서 떼내여 고생도 하게 하고 단련도 시키자는것이 애초에 작정한 의도가 아니였던가.

저녁밥상은 명구가 와서인지 그닥 초졸하지는 않았다.

《용철아, 건넌방에 가서 형님 밥먹자고 해라.》

창희는 한마디 던지고나서 식탁맞은쪽에 제비새끼들처럼 쪼로니 앉은 애들쪽에 구운 멸치접시를 놓아주었다.

건넌방에 갔던 용철은 혼자서 덜렁덜렁 왔다.

《형님이 없어요.》

《없다니?!》

놀란 창희의 얼굴에 불안한 예감이 꽉 실렸다. 건넌방으로 달음쳐간 안해는 한참만에 종이장을 손에 들고 맥없이 돌아왔다. 남편한테 종이장을 내미는 창희의 눈에는 원망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충연은 종이장에 휘갈겨쓴 석줄의 글을 보았다.

 

시라소니아들은 아버지처사에 불복하면서도 어린 동생들을 생각해서 령산에 도로 갑니다.

다시는 집에 오지 않겠습니다.

 

종이장을 쥔 그의 손이 경련을 일으킨듯 떨렸다. 가슴아픈 속에서도 괘씸하게 여겨졌다.

어쩔바를 모르고 선 자리에 굳어져 울먹이는 창희의 입에서 금시 원망이 터져나올듯 했으나 용케 참아내더니 조무래기들한테 등을 돌리고 눈물을 닦았다.

숟가락을 쥐고 앉았던 아이들은 줄레줄레 일어나서 창희의 치마자락주위에 모여들었다.

《큰오빠 간?》

걱정이 낀 소영이의 애잔한 물음에 창희는 더 견뎌내지 못하고 흐느낌을 터지고말았다. 한동안 눈물을 삼키더니 곁따라 울먹이며 매달리는 아이들을 밀어젖히고 말코지에서 솜옷을 벗겨 입었다.

충연은 불안이 실린 눈길로 묵묵히 안해의 거동을 지켜보았으나 그는 머리에 털수건을 쓰고는 말한마디 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창희는 저녁을 먹은 애들이 잠에 노그라진 뒤에도 두어시간 실히 지나서야 소침한 낯빛으로 혼자 돌아왔다. 지칠대로 지친 안해는 털수건을 목에 걸친채 장판바닥에 실신한 사람마냥 주저앉았다.

충연은 안해가 아들을 찾으러 역에 나갔다 왔으리라는걸 짐작했다. 역대기실과 주변을 샅샅이 뒤졌을것이다.

《명구가 역에 없습까?》

《…》

《함흥에 친척도 없으니 어디 갈데는 없겠는데.》

《…》

《렬차가 잘 안 다니니 화물차라도 얻어타고 간 모양이구만.》

《…》

창희의 입은 철문처럼 굳게 닫혀있었다. 그 녀자는 제 친아들을 그렇게 몰인정하게 맞아준 남편이란 사람과 한생토록 말을 할것 같지 않았다.

《저녁밥을 좀 드오.》

충연의 나직한 말에 드디여 정신을 차린 창희는 설설 끓어오르는 노염을 터쳤다.

《남자는 쉰이 지나야 속밑굽을 말짱 안다더니… 당신 이제 보니 정말 무서운 사람이구려. 명구를 내가 어데서 벌어온 자식으로 아는게 아니예요?!》

라충연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들이 공장합숙에 떨어져있다가 부모한테 의지하려고 찾아왔는데 따끈한 밥 한그릇도 먹지 못했으니… 분기가 터진 안해를 리해할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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