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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모는 생활이 극심하게 어려워져서 떠돌아다닌 사람들중에 련결농기계공장 로동자 조문길이 있다는 말을 듣자 당장 자기 사무실에 데려오라고 했다. 그는 오전에 연 시당협의회 뒤끝에 식량이 없어 안착을 못하고 타고장을 떠나갔던 부분적인 사람들의 생활문제를 해결하는데 퍼그나 시간을 바쳤다. 난로에서 석탄불이 피여오르기 시작하였지만 두어달가까이 비워두었던 사무실은 너무 썰렁해서 솜옷을 입고 앉아있어야 했다. 한성모는 정초부터 시민들을 동원하여 단천과 룡양에서 많은 량의 마그네샤립광을 수집했고 화차를 타고다니면서 흥남항까지 실어나르는 수송지휘를 맡아했다. 그다음에는 시당사무실에 별반 앉아보지도 못한채 잇달아 광포원료기지공사에 몸을 잠그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 드바쁜 속에서도 한성모는 칠감공장지배인 조성근의 병세를 호전시키지 못해 애썼고 그가 끝내 사망했을 때는 장례를 잘 치러주었다. 그리고 혼자 남은 아들 문길이를 자기 집에 데려가려고 설복하다못해 그만두었다. 고모네 집에 가 살겠다는 문길이의 고집을 꺾을수 없었던것이다. 인조가죽을 덧댄 책임비서방 출입문을 열고 얼굴이 까맣게 타고 광대뼈가 두드러진 조문길이 게걸음으로 들어섰다. 그가 두어발자국을 떼고는 마치 위험을 감촉하고 달아뺄 궁리를 앞세운 게처럼 문지방어구에 엇비스듬히 서있자 한성모는 버럭 소리질렀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배가 훌쭉한 비닐가방을 바른손에 옮겨진 조문길은 남의 다리로 걷기나 하는듯 지척지척 다가왔다. 한성모는 문길의 누래진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장례식때보다는 퍼그나 여의고 주접이 들었다. 《넌 집을 떠난지 며칠 됐니?》 젊은이는 걸상귀퉁이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았으나 주눅이 들어 선뜻 대답을 못했다. 《한달가까이… 된걸요.》 《어딜 갔댔니?… 주제가 말이 아니다.》 《옹진에 있는 고모네 집에… 갔다가 그렇게… 됐어요.》 죄나 지은듯 고개를 떨구고 띠염띠염 주어섬기는 문길의 말에 한성모는 가슴이 아파 목소리를 낮추었다. 《고모네도 생활이 어렵더냐?》 《그래요…》 《나하구 같이 있자구 그만큼 말했는데 고집을 부리더니… 이제 당장 우리 집에 가거라. 내 집사람한테 전화를 했다.》 《싫어요.… 내 힘으로 살겠습니다.》 조문길의 어리숙한 얼굴에 결연한 빛이 어렸다. 한성모는 인정을 몰라주는 문길이가 야속해서 이마살을 찌프렸다. 《어떻게 산다는거냐?… 원래 살던 집은 동거들었던 제대군관한테 넘겨주지 않았니.》 《합숙생활을 하겠어요.》 《합숙이 다 뭐냐. 련결농기계공장에서는 쌀을 내는 사람만 합숙에 받아준다더라. 그래서 아까 협의회때 너의네 공장 지배인, 당비서를 한바탕 닦아세웠다.》 《나도 모르지 않아요. 그렇지만 식량이 없으니 공장에선들 무슨 용빼는 재간이 있겠어요.》 《그런데도 넌 합숙생활을 한다니… 그저 나한테서 피해 달아날 생각뿐이구나.》 한성모는 송수화기를 들고 련결농기계공장 지배인을 찾았다. 《칠감지배인 아들이 지금 내 방에 있소.》 《문길이 말입니까?! 제가 이제 데리러 가겠습니다.》 지배인은 급해했다. 《아니, 데려가는건 바쁘지 않소. 제 다리도 있으니까. 부모없는 젊은인데 공장에서 돌봐줄 대책이 뭐 없겠는가 하는거요.》 《광포제방공사장에 보내면 어떨가요? 거기 돌격대에서는 식량사정이 그닥 어렵지 않습니다.》 한성모는 송수화기에서 울리는 지배인의 목소리를 듣고 조문길을 쳐다보았다. 몸이 바짝 여윈 그를 광포제방공사장에 내보내면 며칠 못가서 쓰러질것 같았다. 거기서는 지금 비상소집으로 동원된 로농적위대원들이 한달가까이 추위와 눈보라와 기아와 싸우면서 호수얼음판우에 돌버럭제방을 거의다 쌓았다. 그러나 실제상 간고한 전투는 이제부터이다. 기승부리던 겨울이 물러갈 차비를 하자 벌써 호수복판에서 얼음이 꺼지면서 제방이 물속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가설제방이 호수감탕속에 얼마나 깊이 주저앉겠는지 모른다. 이제 3월이래도 얼음같이 찬 물과 감탕속에서 돌격대원들이 제방공사를 마무리하는 힘겨운 전투를 벌려야 한다. 《광포제방공사 말구 딴데 없겠소?》 한성모는 사망한 옛 전우의 아들을 무작정 아끼는 심정에서 물었다. 《그럼 책임비서동지, 문길이를 청풍덕부업지에 올려보내겠습니다.》 지배인의 말에 그는 귀가 좀 띄였다. 《검산령골안 말이요? 거기에 련결농기계부업지가 있던가?》 《몇해전에 공장에서 일군 부대기밭이 있습니다. 감자와 강냉이를 심군 합니다.》 《거긴 식량이 좀 있소?》 《감자를 묻어둔게 퍼그나 있을겁니다. 강냉이도 몇마대 있구요.》 《좋소.》 한성모는 찬성하고나서 문길이더러 청풍덕부업지에 올라갈 준비를 해가지고 지배인한테 가라고 일렀다. 《함흥에서 200리 떨어진 산골이지만 대신 그닥 배곯지는 않을게다. 당분간 올라가있으면서 몸을 추세워라.》 《고마와요.》 《아버지를 닮아 이목구비가 번듯하니 생겼는데 인차 좋은 색시감을 고르자.》 한성모의 진지한 말에 조문길은 벙긋이 웃었다. 《<고난의 행군>이 끝나구 잘살게 될 때 가서 장가들겠어요.》 《허, 그래…》 《아버지는 림종시에 절 불러 앉혀놓고 말했습니다. 조국이 당하는 불행을 자기 불행으로 아프게 여길줄 알아야 한다구요. 저는 부업지에 가서 일을 잘하겠어요. 그래서 공장에 어떻게든 보탬을 줘서 더 많은 농기계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문길이가 괜찮다. 조성근의 아들이 다르구나.》 한성모는 고생하면서도 난관에 굽어들지 않고 뜻을 품고 사는 문길이가 그지없이 대견스러웠다. 그는 방구석에 있는 장문을 열고 작업복 한벌을 꺼냈다. 《이건 내가 좀 입던건데 너한테 맞을것 같다.》 《일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신세를 많이 졌는데…》 문길이는 황급히 물러나려 했지만 인차 책임비서의 손에 붙들리고말았다. 《네가 정말 나를 노엽힐셈이냐?!》 한성모는 문길의 가슴에 작업복을 안겨주고 복도에 나가서는 얼마간의 돈까지 바지주머니에 넣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