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22

 

송봉숙은 참숯마대를 남자들처럼 어깨에 둘러메고서 마을길을 벗어났다. 눈이 다져진 신작로를 따라 한참 걸어 덕지령기슭에 이르렀는데 눈보라가 터졌다.

살을 에이는듯 한 칼바람이 골짜기에서 눈가루를 하늘높이 말아올려가지고 령길에 덮쳐들었다.

숯마대를 메고오느라 땀발이 홍건히 내밴 봉숙의 목수건 틈새로 찬 눈가루가 산득산득하게 스며들었다.

조금전까지 솜옷주머니를 따끈하게 덥히던 닦은 강냉이는 어느새 온기가 다 빠졌다. 그것은 마을에서 퍼그나 떨어져있는 외딴집인 도로관리원네 부엌에서 몸을 녹이며 닦아넣은 강냉이였다.

봉숙은 목탄차운전사와 자기의 도중식사로 강냉이를 더 닦아넣고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령너머 굽인돌이에서 연료가 떨어진 목탄차를 세워놓은 운전사는 부국장이 참숯을 가져오는가 목이 빠지게 기다릴것이였다. 그래 별반 뜨뜻한 구들에 앉아있지도 못하고 도로관리원이 마을에서 참숯 한마대를 가져다주자 곧 길을 떠난것이다.

봉숙의 목수건과 입주위에 성에와 눈가루가 하얗게 덮였다. 이제 겨우 10리도 못 왔는데 참숯마대는 어깨를 지지누르고 입에서는 겨불내가 났다. 숯마대를 놓고 또 쉬지 않을수 없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니 뽀얀 눈보라에 휩싸인 령마루는 높이를 가늠할수 없었다. 20리는 착실히 될 령너머까지 숯마대를 지고갈 일이 아뜩했다.

옹근 한주일을 목탄차를 타고 산골마을들을 돌아다닌 봉숙의 얼굴은 추위에 퍼렇게 얼어들고 입술은 터갈라졌다. 쌍까풀진 정기도는 눈에는 저도모르게 눈물이 그렁하니 고였다. 너무도 힘이 들어선지 세탁비누와 신발따위의 소비상품을 가지고 강냉이와 바꾸는 이 길을 무었때문에 또다시 떠났던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검찰소의 조사결과로 비판을 받고 권리정지를 당했으면 그만두었어야 할 일이 아닌가?

하지만 봉숙은 인차 도리머리를 저었다. 자기가 이렇게라도 강냉이를 구하지 않으면 탁아유치원공급소들에 넣어줄 사탕과자를 생산할수 없는것이다. 아이들에게 당과류를 공급해야 하는것은 물러설수 없는 상업국의 사업본분이 아닌가.

불현듯 봉숙은 라충연에 대한 야속함과 원망이 가슴을 꽉 채웠다. 라충연이 백화점부정판매사건을 계기로 상업국사업을 다시 검열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부터 그에 대해 좋은 감정을 지니지 못하였다.

정검열원까지 데리고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묵은 장부를 들추는 검찰소의 조사뒤끝에 좋은 결과가 나올리는 만무하지 않는가. 비누 한장이라도 공짜로 가진적이 없는 그 녀자는 지난날 자신의 결백성에는 오점이 없다는 자신감을 가지면서도 연추를 매단것 같은 걱정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백성측면이 결코 부국장의 사업표징으로 될수는 없는것이다.

도당책임비서는 바로 그 녀자의 결함, 상품공급에서 원칙성과 공정성이 결여되여있는 상업국사업을 문제시한것이다. 강냉이바꿈질도 비사회주의라 하면 할 말이 없다. 아직은 비판과 권리정지로 끝났지만 조만간에 다른 조치가 뒤따를지 모른다. 그러나 해임된다 해도 시작한 일은 끝장을 봐야 한다.

그래서 봉숙은 강추위를 무릅쓰고 먼길을 떠났다. 같이 떠난 상업국의 과장도 강냉이를 한자동차 구해오고 자기도 목탄차에 가득 실었으니 그거면 곡산공장에서 사탕과자를 만들어 탁아유치원공급소들에 어느정도 줄수 있는것이였다.

저녁해는 넝마구름을 찢는 눈보라속에 자취를 감췄는지 서산너머로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날은 벌써 골짜기쪽에서부터 어둑침침해왔다. 길에는 인적을 찾아볼수 없었다. 하긴 누가 저물녘에 령을 넘겠다고 이 무인지경길에 나서겠는가.

봉숙은 밤에는 령길에 사나운 산짐승들이 때없이 나타난다고 일러주던 도로관리원의 말이 되새겨져 더럭 겁이 났다. 그 녀자는 서둘러 참숯마대를 메고 길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봉숙은 구배진 미끄러운 령길을 얼마 못 올라가서 또 길섶에 주저앉았다. 이제는 맥이 난데다가 알찬 참숯마대가 무거웠고 부피짐이여서 다루기도 힘들었다. 목수건을 벗어 얼굴의 땀을 씻으니 언제 마대에서 새여나왔는지 까만 숯가루가 묻어났다.

눈보라가 회오리치는 땅거미진 령길굽인돌이에서 승용차의 전조등빛이 얼씬거렸다. 뒤이어 미끄러운 내림받이길에 속력을 죽인 승용차가 발동소리도 없이 조용히 달려왔다.

봉숙은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산기슭쪽에 비켜서서 쉴 잡도리로 참숯마대를 땅에 털썩 내려놓았다.

그 녀자가 눈부시게 비쳐드는 전조등빛을 손으로 가리우며 숨을 돌리는데 승용차가 저만치 지나가 멈춰섰다. 먼길을 달려왔는지 승용차는 웃덮개에 눈이 두텁게 쌓였다.

차문이 열리더니 우렁우렁한 음성이 친절히 들려왔다.

《숯을 가지러갔던 동무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봉숙은 웬일인가싶어 어정쩡해서 대답했다. 다음순간 그 녀자는 차에서 내리는 솜옷을 입으신분을 보고 깜짝 놀라 자기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눈을 슴벅이며 보아도 눈보라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걸어오시는 그분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이시였다.

《상업부국장동무가 추운날에 수고를 하는구만. 내 령너머에서 목탄차운전사를 만났댔습니다.》

그이께서는 너무도 당황해서 어찌할바를 모르고 굳어져있는 봉숙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였다.

《장군님!…》

감격의 환희가 용암처럼 분출한 봉숙은 눈물이 걷잡을수없이 쏟아져내리며 더 말을 못했다.

《숯을 구했구만. 참숯입니까?》

《예…》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를 굽히고 참숯마대를 들어보시였다.

《무겁구만, 무거워. 이걸 메고왔소?… 날까지 어두웠는데 령을 어떻게 넘어가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밖에 나와선 운전사에게 손짓하시였다.

《차를 빨리 돌려가지고 오오. 실어다줘야겠소.》

《장군님.…》

봉숙은 황송해서 말을 떠듬거렸다.

《저는… 일없습니다.… 바쁘신데…》

《아무리 바빠도 혼자 고생하는 동무를 내버려두고 갈수야 없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소탈히 웃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운전사가 승용차를 몰고오자 짐칸에 숯마대를 싣는것을 도와주시였다.

《부국장동무, 어서 타오.》

그이의 후더운 인정에 끌린 봉숙은 목수건을 벗어 눈을 털었다.

그리고는 차안에 조심스레 들어앉는데 솜옷주머니에서 강냉이알들이 주르르 쏟아졌다.

《허, 이거 닦은 강냉이로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안해서 다급히 손으로 주어담는 봉숙에게 롱말을 건늬시였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게 먹음직하구만.》

그이께서는 좌석바닥에 흩어진 강냉이알들을 모아주시였다.

《마을에서 닦았습니까?》

《예. 도로관리원의 집에서…》

봉숙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황망히 대답올렸다.

승용차는 눈보라속을 뚫고 령길을 감돌아오르기 시작했다.

《동무넨 점심도 못먹었다지.… 차에는 숯이 떨어지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저으기 갈린 음성으로 뇌이시며 봉숙에게서 측은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내 아까 목탄차운전사한테서 부국장동무네가 고생한걸 다 들었소. 강냉이를 곡산공장에 넣어 사탕과자를 만들려 한다지?》

《저는… 장군님께서 설이 돼오는데 아이들에게 사탕과자를 만들어 먹이지 못하는게 가슴아프다고… 하신 말씀을 전해듣고 울었습니다. 정말 가책이 컸습니다. 상업국사람들이 이제껏 상품이 없다고 편안히 앉아 놀고먹은것만 같은게…》

《사탕과자를 생산하지 못한게 상업국의 잘못이 아니지. 공장들이 멎어 상품이 부족된거야 어찌겠소. 상업국이 할 일이 아닌데 이렇게 나섰구만.… 이 추운 때 한주일이나 산간마을을 돌아다니자니 얼마나 힘들었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퍼그나 괴로우신듯 전조등빛에 흩날리는 눈발을 묵묵히 바라보시였다.

《상업국에서 이런 바꿈질을 한다고 말을 듣지는 않았습니까?》

송봉숙은 그이의 따뜻한 물으심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봉숙은 자기가 이번 일로 하여 비판을 받았으며 권리정지를 당했다는것을 그이께서 알고 물으시지 않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다음순간 봉숙은 그이께 자기가 당한 일을 죄다 하소연하고싶은 마음이 불같이 타올랐다. 하지만 어째선지 입은 얼어붙었다.

그 녀자는 눈보라치는 령길에서 차를 돌려 숯마대를 실어다주시는 장군님께 자기의 일신상문제까지 꺼내들어 페를 끼쳐서는 안되리라고 여겼다. 당과 국가의 많고많은 일들로 바쁘신 장군님께 한갖 상업일군의 개인적일이 뭐라고 말씀드리겠는가. 이 밤중에도 먼 전선길을 가시는 장군님을 지체시켜드린것만도 죄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리고 이제 어떤 하소연을 한다면 상업국문제를 조금도 융화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처리한 도당책임비서를 원망하고 걸고드는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라충연을 모진 사람이라고 탓해서는 안된다. 잘못은 나한테 있다. 백화점지배인에게 여분의 상품을 준것도 잘못이고 일부 간부들에게 따로 공급해준 책임도 져야 할것이 아닌가. 그것은 사실상 낯내기이고 아첨이라고 해도 변명할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여분의 상품을 만들어가지고 바꿈질을 하는것은 생산경로가 어떻든지간에, 사탕과자를 만드는 결과가 어떻든지간에 소매상업질서에 어긋나는 일이다. 장군님께서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시기때문에 말을 듣지 않았는가고 물으시는것이다.

봉숙이 자기의 탈선하지 않은 처신을 다행스레 여기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녀자의 복잡한 심중을 리해하신듯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부국장동무, 금년부터는… 광포원료기지에서 얻어지는 낟알로 곡산공장을 돌릴수 있을거요. 농사가 잘되면 국가에서도 곡산공장에 원료를 대주게 되겠지. 그러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거요.》

《장군님, 저는 일없습니다. 나라에 부족되는것이 많은 어려운 때인데 상업일군도 앞채를 메고 뛰여야 하지 않습니까.》

《상업일군도 앞채를 메고 뛴다.… 좋은 말이요. 그렇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종전보다 몇배 더 무거운 짐을 지고 뛰여야 하지.》

김정일동지께서는 형상적으로 강조하시고나서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집에는 누가 있습니까?》

《아들애는 작년에 군대에 나가고 과학원 함흥분원에 다니는 세대주가 있습니다.》

《부국장이 나다니니 남편이 혼자 때식을 끓이겠구만. 불편하겠소. 무던한 사람이요?》

《예.… 세대주는 흥남비료공장의 보수작업장에 늘 나가있어 가정일에 불편할새도 없습니다.》

《허, 집을 비워두고 량주가 다 나가있어 탄불도 꺼진지 오래겠구만. 이제 가면 집이 랭방이겠습니다.》

그이께서 걱정하시는데 어느덧 령마루를 넘어선 승용차는 목탄차있는 곳에 다 왔다.

송봉숙은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눈이 하얗게 덮인 목탄차적재함에서 운전사가 환성을 지르며 뛰여내렸다.

장군님을 다시 만나뵈온 목탄차운전사는 기쁨의 충격이 너무 커서 눈물에 젖어가지고 승용차짐칸에서 참숯마대를 부리웠다.

《운전사동무, 서있지 말구 어서 숯을 가스발생로에 쏟아넣으라구.》

《예. 이제… 그렇게 하겠습니다.…》

목탄차운전사는 감격해서 대답올리고는 참숯마대를 적재함에 건둥 올려던지고 자기도 올라갔다.

맵짠 바람이 울부짖으며 나무숲에 쌓인 눈을 휘몰아왔다. 찬 눈가루가 그이의 솜옷자락에 부딪쳐 와스스 흩어져내렸다.

승용차운전사가 차를 돌렸으나 김정일동지께서는 탈념을 안하시고 솜옷주머니에 량손을 찌르신채 목탄차운전사가 마대의 숯을 가스발생로에 넣는것을 지켜보시였다.

송봉숙은 찬바람을 맞으며 어둠속 령길에 서계시는 그이의 숭엄한 모습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장군님… 이젠 됐습니다. 날이 추운데 어서 차에 오르십시오.》

《내 걱정은 마오. 목탄차가 발동이 걸리는가 보고 떠나겠소. 내가 간 다음 발동이 걸리지 않으면 동무들이 이 밤중에 령길에서 어떡하겠소.》

운전사는 참숯을 가스발생로에 넣고 긴 쇠꼬치로 쑤셔다졌다.

봉숙은 운전칸에서 풍구를 가져다가 바람주둥이를 로밑의 불구멍에 대고 돌리기 시작했다.

습기가 그닥 없는 참숯이여서 아구리로 희벗한 연기가 한참 꾸역꾸역 오르더니 인차 불이 당기는것 같았다.

운전사는 가스발생로의 뚜껑을 닫고 내려와 기관을 좀 살피고는 시동돌리개를 힘차게 돌렸다.

발동이 안 걸리면 어찌나 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지켜보았지만 운전사가 시동돌리개를 몇번 더 반복해서 돌리자 자동차는 순조롭게 발동이 걸렸다.

《됐구만! 됐어.》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척 기뻐하시며 운전사가 큰 일이나 한것처럼 어깨를 두드려주시였다.

《자, 그럼 먼길에 무사히들 가라구.》

그이께서는 눈물이 언볼을 적시는 봉숙의 손까지 다정히 잡아주고서 차에 오르시였다.

승용차는 눈보라에 바퀴자리가 메워진지 오랜 령길을 다시 톺아오르기 시작했다.

봉숙이와 운전사는 승용차의 불빛이 굽인돌이에 사라진 다음에도 애오라지 장군님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안고 점도록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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