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2

 

옷덮개에 풍을 씌운 갱생승용차는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조심 달렸다.

군데군데 패이고 달구지바퀴자리가 얼어붙은 뚝길이여서 조금만 잘못했다가는 옆으로 지치기를 당해 차가 개천바닥에 곤두잡이할수 있는것이였다.

땅이 얼기전에 길을 잘 닦을 노릇이지.

차가 들추는 바람에 머리를 풍천정에 부딪친 운전사는 닭공장사람들을 비난했다.

뒤좌석에 들어앉은 축산관리국장 차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운전사의 말이 틀리지 않는것이였다.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이 산간군에 자리잡은 창서닭공장이 한창 번성할 때인 80년대는 말할것 없고 몇해전 닭알생산이 하강선을 그을 때에도 이 뚝길은 춥기는 해도 포장길처럼 반반했었다. 길이 나빠 차가 들추면 적재함의 닭알이 깨진다고 닭공장사람들이 늘 관심해서 닦아놓았던것이다.

차원중은 눈이 반나마 녹은 큰길에 접어들자 운전사에게 짤막히 일렀다.

창서돼지공장으로 가자구.

운전사는 국장의 침울한 얼굴을 돌아보고는 어깨를 쓱하고 방향을 바꾸었다. 돼지공장에 가본댔자 한심한 형편이 닭공장과 다를바 없으리라는 회의적인 태도였다.

차원중은 개의치 않고 긴 솜옷자락으로 시려드는 무릎을 감쌌다. 차안 어느 틈새기에선지 찬바람이 그칠새없이 스며들었다. 그는 추워서 몸을 웅크렸다. 좀전에 닭공장을 두어시간나마 돌아보면서 몸이 더 얼어든것 같았다. 그는 창서닭공장에서 받은 괴로움, 가슴을 짓누르는 책임감과 좌절감에서 좀처럼 벗어날수 없었다.

천정이 높은 알낳이닭우리들은 창문들마다 성에가 두텁게 불리고 먹이물통의 물이 땅땅 얼어붙어 마치 커다란 랭동고를 련상시켰다. 후보닭우리와 비육닭우리에도 닭이 얼마 없었고 병아리우리의 열풍기는 고장난대로였다.

차원중은 자기를 안내해주는 과묵한 지배인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지만 사실 닭공장이 이렇게 된 잘못은 결코 그한테만 있는것이 아님을 잘 알고있었다.

이 몇해동안 관리국은 닭공장들에 연유와 세멘트, 수리용부속품들, 칠감 같은 공장운영물자들을 거의나 대주지 못했다. 배합사료를 얼마간 주고는 생산되는 닭알과 고기를 가져가기만 했다.

그러나 차원중은 관리국의 사정과 잘못이 어떠했던지간에 닭공장을 이런 빈사지경에 빠뜨린 책임을 지배인에게 따져묻지 않을수 없었다. 과연 공장자체의 힘으로 설비를 보수하고 돌릴수 없었단말인가?

《지배인동문 국에서 내려보내는 배합사료가 뭐 신비한건줄 아오?! 닭을 처음 기르오? 동무네한테 부업지가 4정보나 있지 않소. 거기서 수확한 강냉이를 가루내여 콩깨묵이나 쌀겨를 섞으란 말이요. 거기다 조가비가루같은 광물질을 좀 넣으면 배합먹이사촌은 되지 않겠소. 이건 잔뜩 팔장끼고 앉아서 관리국에다만 손을 내미니… 털어야 먼지밖에 없는 국장의 주머니를 넘겨다보면서 우 소리를 하는 닭공장이 어디 창서뿐인줄 아오?!》

국장의 욕소나기가 다 쏟아질 때까지 근기있게 얻어맞기만 하던 지배인은 종자닭우리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서 걸음을 멈췄다.

《국장동지… 사실 부업지에서 거둔 강냉이는 종자닭먹이에 좀 쓰고… 나머지는 종업원들에게 나눠줬습니다.

《나눠주다니?!》

《우리 공장 종업원들이 굶다싶이하면서 봄여름내껏 부업지를 가꿨지요.》

차원중은 말문이 막혔다. 닭공장로동자들의 식량은 축산관리국이 상관할바는 아니였지만 거기에 할말은 없었다. 군에서도 식량이 없으니 못을것이다. 그런데 공장로동자들, 사람이 먹어야 할 부업지강냉이를 닭들에게 먹이라고 하다니… 닭은 앞으로 사가 보장되면 종란을 가져다 키워내면 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차원중은 실정을 헤아려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지배인을 다불러댄것이 면구스러워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풍과 채광이 잘 되는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길다란 종자닭우리에는 그래도 3백 ~ 4백마리가량의 만경닭들이 있었다.

로 만든 먹이그릇은 씻어낸듯 낟알찌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배곯은 닭들이 낯선 손님을 쳐다보면서 활기없이 서성거렸다. 흰 닭털이 사방 날아다녔다.

배인동무  사료가 이제 얼마쯤 있소?》

차원중은 목갈린 소리로 들었다.

냉이쭉정이가 1톤가량 있습니다.》

들이 겨울을 나자면 그걸루는 어림도 없지. 내가… 창서닭공장에 배합먹이를 2톤은 조절해주겠소.》

장동지  우릴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지배인의 낯빛은 조금도 밝지 몼했다.

차원중은 속구구로도 그 량을 가지고 몇달밖에 넘기지 못하리라는것을 짐작했다. 그전날 하루 20톤의 배합사료를 먹던 닭공장이 2톤이 뭐란 말인가. 지배인의 침중한 기색은 국장이 내려온 기회에 인제는 공장을 살궈낼 케가 글러진 사문제보다도 닭들의 처리문제를 결론싶어하는것이였다.

아무래도 종자닭들을 절반으로 줄여야겠소.

차원중은 별로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지배인은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페사하는 닭들을 어떻게 할가요?

《종업원들에게 한마리씩 나눠주오. 어떻게든 살찌워 잡아먹게스리.》

그렇게 하면… 종자닭을 잡아먹었다구 말썽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축산관리국장이 지시를 했다고 하오.

그가 떠나올 때 지배인은 운전사의 몫까지 여러마리의 닭들을 가져다가 차꽁무니에 실으려 했다. 그러나 차원은 그것을 엄하게 제지시키고 운전사더러 빨리 가자고 소리쳤다. 닭공장이 번성할 때도 판매규정을 어기면서 닭이나 알을 집에 가가본적이 없는 그였다.

차원중은 풍틈새기로 스며드는 바람을 피하느라 솜옷의 인조깃털속에 목을 움츠리고 무거운 생각에 잠겼다. 닭공장지배인이 끈으로 발목을 쳐맨 닭들을 량손에 거머쥔채 떠나가는 차를 멀거니 바래주던 모습이 아직도 삼하다.

창서돼지공장을 20리쯤 앞두고 갑자기 달리던 차의 기관소리가 나빠졌다. 줄기침을 연방 해대더니 끝내 발동이 덜컥 멎어버렸다.

갱생》승용차의 수리를 자주 해온 운전사는 별로 놀라와하지 않고 내려가더니 기관뚜껑을 열어젖혔다. 이윽고 그는 차꽁무니에서 묵직한 쇠공구통을 끌어내였다.

차원중은 추위로 뻣뻣해진 오금을 펼겸 밖으로 나왔다.

단단히 고장났나?

휘발유를 나쁜걸 넣었더니 어디 멘것 같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겠지?》

청정기를 분해해봐야지요.

불을 피울가?

불쪼일 새나 있습니까.      

기관에 새우등을 한 운전사는 여전히 시큰둥한 대답이다.

차원중은 머리를 설레설레 젖고 갱생주위를 오락가락했다. 오금을 놀리니 차안에서보다 한결 몸이 훈훈해나고 발도 시리지 않았다.

겨울해는 한껏 불타건만 하늘은 파아랗게 얼어붙어있고 잔바람에 흩날린 눈가루가 차거운 대기속에서 반짝거리며 떠돌았다.

그닥 넓지 않은 강에는 해빛에 눈이 부실정도로 반들반들한 얼음이 덮있었다.

강너머 눈이 군데군데 녹은 등판 저쪽의 야산에 층층이 들어앉은 창서돼지공장 전경이 바라보였다. 저 아래쪽에 있는 큰 다리로 해서 공장에 가자면 멀지만 직선거리로는 10리 남짓할것 같다.

차원중이 먼저 걸어갈가 하는데 강건너쪽에서 털모자를 눌러쓴 웬 사람이 어정어정 얼음판에 들어섰다. 걸음씨를 보니 나이많은 사람 같았다. 앞가슴에 무언가 껴안은 그는 얼음판이 미끄러워 조심스레 걸음을 내짚었다. 멀찌감치에서도 그 사람이 솜옷을 벗어 싸안았다는것을 알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어린애가 아닌지… 그렇지 않고야 무엇이 귀해서 솜옷속에 정히 안고 오겠는가.

차원중은 그가 미끄러운 얼음판에 넘어지지 말아야겠는데 하고 조마조마해서 지켜보았다.

아닐세라 강을 중간쯤 건너오던 그 사람은 그만에야 을 헛짚고 미끄러져 나자빠지고말았다. 그 서슬에 털모자가 벗겨져 나딩굴고 앞가슴에 안았던것마저 떨궈버렸다.

저런!…

차원중은 자기가 봉변을 당하기라도 한듯 걱정스레 혀를 찼다. 그를 도와주고싶었지만 길에서 강기슭까지는 낭떠러지 눈구뎅이여서 엄두를 낼수 없었다.

얼음판에 엉덩방아를 심하게 찧은 그 사람은 일어날념을 못했다. 머리가 희끗한 늙은이라는것이 알렸다. 그는 동안이 지나서야 굼뜬 동작으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얼음판을 따라 얼마간 지나쳐간 솜옷꿍지가 뜻밖에도 버드럭거리면서 꽥꽥 소리를 내더니 그속에서 알몸뚱이 새기돼지가 잽싸게 뛰쳐나왔다. 자유롭게 된 새끼돼지는 미끄러지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면서 강웃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늙은이는 황급히 새끼돼지를 쫓아가 잡으려고 했으나 욕망뿐이지 댓걸음안팎에 털썩 얼음판에 나자빠졌다.

얼음판에서는 네발가진 작은 동물이 훨씬 유리했다. 새끼돼지는 점점 주인에게서 멀어졌다.

차원중은 앞뒤를 가릴새없이 낭떠러지아래 눈구뎅이에 뛰여내렸다. 그닥 높지 않으니 그렇지 하마트면 거꾸로 처박힐번 했다. 그는 무릎을 치는 풀덤불눈을 헤치면서 숨이 턱에 닿아 강기슭에 다달았다.

마침 새끼돼지는 그가 있는 쪽으로 정신없이 여오고있었다. 그러다가 마주오는 차원을 보고 급한 소리를 지르며 방향을 돌렸으나 옆으로 자빠져서 얼음에 쭉 지쳐내렸다.

차원중은 새끼돼지가 정신을 차리고 달아나기 전에 덮쳐들어 붙잡았다.

이런 고마울데라구야.

뒤미처 달려온 늙은이는 차원의 손에서 버드렁거리는 새끼돼지를 넘겨받으며 연방 치사를 했다.

강기슭에 나오면서 통성을 해보니 채운이라고 하는 로인인데 70리 떨어진 천계리에 살고있었다. 군당책임비서한테 왔다가 출장을 가서 만나지 못하고 속을 태우던중 창서돼지공장에서 장산대백종 새끼돼지를 판다는 소문을 듣게 되였다. 장산대백》종은 빨리 자라고 새끼를 많이 낳는 좋은 품종이였다. 원종은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 앞뒤를 재보지 않고 돼지공장에 달려가 한마 샀던것이다.

차원중은 추위에 파랗게 언 채운이 새끼돼지를 솜옷에 싸안는것을 도와주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무슨 문젤 가지고 군책임비서동지를 만나려댔습니까?》

협동축산문제지요.》

채운은 대뜸 말귀를 잡고 목청을 높였다.

우리 천계리축산을 망쳐먹은 농장간부들을 혼쌀내우지 않고는 어디 참아낼수 있어야지요. 그 사람들이 글쎄 며칠전에는 축산작업반에 여러문마리 남아있던 종자돼지를 다 잡으라는 지시를 떨구지 않았겠습니까. 먹일 사료가 더는 없다는거지요. 평양 어디 건설장에 지원한다구 합디다. 그렇다구 종자돼지들을 잡으면 어떡한다는겁니까. 사람은 굶어도 그것들은 어떻게든 보존해야 봄에 새끼를 받아 농장원들한테 나눠줄게 아닙니까. 내가 축산반에 뛰여갔을 때는 벌써 종자돼지를 몇마리 안남기고 다 잡았습니다.

채운은 종자돼지들을 잡은것이 방금전에 있은 일이기나 한듯 성이 되살아나서 가슴을 풀떡거렸다.

차원중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축산관리국은 이 몇해째 협동축산에 대해서는 명목상지도뿐이였다. 관리국산하 공장들과 목장들에조차 낟알사료와 운영물자들을 제대로 보장 못하는 형편인지라 협동축산은 매 농장들의 자체실정과 결심에 맡겨두는수밖에 다른 대책이 없는것이였다. 물자보장은 조금도 못하면서 가축마리수와 고기수매량만 장악통제를 하려고 하니 협동축산처 일군들이 지방에 내려가도 농장들에서는 불청객으로 대하였다.

아바인 이제 어디로 가겠습니까?

차원중은 큰길에 올라서자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읍에 또 가봐야지요. 경영위원장이라도 만나 실토정을 하겠수다.

새끼돼지를 안구요?

《뭐라우?! 농장축산을 망쳐놓은 그 사람들의 버르장머리를 놓을수 있다면야.》

아바이, 그러지 말고 날도 저무는데 돌아가십시오. 협동축산문제는 우리가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시오?

축산관리국에 있습니다.

채운은 저으기 놀라와서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으나 이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무척 회의적인 표정이였다.

날 나삐 생각마시우. 축산관리국의 조치란걸 별로 믿지 않수다. 기껏해야 협동농장들에서 종자돼지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공문서를 내려보내겠지요. 하지만 그런 지시에 면역이 생길대로 생긴 농장관리일군들이 꿈틀이나 하는줄 압니까.

차원중은 로인의 반발이 싫지 않았고 농장실정을 솔직하게 피력하는 그가 고맙기까지 하였다.

《이번엔 공문서를 내려보내지 않고 도농촌경리위원회에서 천계농장일군들을 혼쌀내우도록 하겠습니다.》

차원중은 웃음을 거두고 각근한 어조로 덧붙였다.

바인 솜옷도 입지 못했는데 이 추운날에 새끼돼지를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다나면 감기 걸립니다. 차에 태워드릴테니 집에 돌아가십시오.》

걱정마시우. 올 때도 걸어는데 반나절이면 갑니다.》

운은 손을 내저으며 물러났으나 차원중은 우격다짐으로 그를 차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러다 길에서 새끼돼지를 얼궈죽입니다. 〈장산대백〉이 귀한건데 잘 길러서 래년엔 마을에 종자를 퍼뜨리십시오.》

금 기관수리를 끝낸 운전사는 낯을 찌프렸으나 국장의 설명을 듣고는 흔연히 응낙했다.

원중은 눈길을 걸어서 돼지공장으로 향했다.

 

x

 

창서돼지공장 지배인은 차원중의 수의축산대학동창생이였다.

대학시절에 수재였고 성미가 쾌활한 편인 그는 진취성이 강한 차원중이와 서로 마음이 잘 통했다.

실정을 알아보러 왔나? 내가 죽는 소리를 치는게 믿어지지 않았던게지.

지배인은 사무실에 들이닥친 차원중을 그닥 반기는 낯색이 못되였다. 몇달전에 낟알사료를 달라고 국장방에서 책상을 치며 싸움질한 어혈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였다.

《창서돼지공장 지배인한테 국장자리를 넘겨줄 없을가 해서 왔네.》

허 참 사료를 달랠가봐 아예 손들고 나오는구만.

롱말이 아니네. 난 축산부문의 숱한 목장지배인들이 두드리는 북이 되고싶지 않아. 사료도 없고 원자재도 못 가진 허울뿐인 내가 무슨 국장인가. 내 머리 흰걸 보게.

원, 국장이 아래단위에 내려왔으면 힘을 줘야지 이게 뭔가. 좋네, 맘놓게. 앞으로 창서돼지공장은 관리국에 일체 손내밀지 않겠네.

잘 생각했네. 이젠 닭공장이나 돼지공장을 다 제힘으로…  운영해야지 별도리가 없을거네.

차원중은 솜옷단추를 끌러놓으며 한숨을 쉬였다. 낟알배합사료에 명줄을 건 공장들이 제힘으로 살아간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였다.

그래도… 창서돼지공장은 종자돼지공장을 다 죽이지 않은것 같아. 〈장산대백〉새끼도 내우고…

차원중이 한마디 하자 지배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벌써 들었나?… 우리한테는 종자돼지가 한 30마리 있네. 종업원들한테 부업지강냉이를 내줬더니 다들 절반씩은 도로 내오지 않겠나. 원종돼지를 보존하지 못하구 공장의 존재를 마친다구 허리띠를 더 졸라매겠다는거네.

차원중은 지배인의 말에 가슴이 쩌릿해나서 난로불을 더 쪼일수 없었다.

몸을 녹였네. 돼지우리에 가보자구.

사무책상의 전화기가 찌르릉 거렸다.

지배인이 송수화기를 들더니 인차 차원중에게 넘겨주었다. 초급당비서 우정석이 걸어온 전화였다.

창서닭공장에 전화했더니 떠났다구 하더구만. 날이 추운데 국장동무가 수고하오.

괜찮습니다.

차원중은 낮은 목소리로 응대했다.

닭공장형편은 어떻습니까?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닭알이야 얼마간 나오겠지?   

창서닭공장은…  종자닭이나 최소한 유지하고있습니다.

차원중이 시름겹게 대답하자 혀를 차는 우정석의 목소리가 수화기 진동판을 긁었다.

돼지공장은?

아직 돌아보지 못했지만… 닭공장보다 형편이 조금도 나은것 같지 않습니다. 〈장산대백〉종자돼지를 얼마간 보유하고있는 정도입니다.

그래 국장동문 어떤 조치를 취하겠소?

저라고 무슨 뾰쪽한 수가 있습니까. 얼마 안되는 배합사료를 쪼개주겠다고…  어떻게든 종자가축을 보존하라고 당부하는거지요.

어떻든… 관리국장이 아래단위 목장들을 유람식으로 돌아다니지는 마시오.

우정석의 위엄기어린 목소리는 차원중을 침울하게 만들었다. 그가 덤덤히 말이 없자 우정석이 딱딱스레 물었다.

언제 돌아오겠소?

몇군데 더 돌아보고 래일 저녁쯤 가겠습니다.

빨리 오도록 하시오. 초급당에서 관리국년간총화를 단단히 지을 결심이요. 국장동무가 아래단위에 직접 내려갔으니…  축산이 왜 그렇게 엉망진창이 됐는지…  총화보고를 잘 준비해가지고 오시오.

알겠… 습니다.

차원중이 송수화기를 놓자 지배인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닦아세울 태세나?

그런것 같네.

차원중은 씁쓸히 뇌이고서 돼지공장을 돌아볼 생각조차 않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찌할수 없는 불만과 절망에 가까운 짙은 걱정이 가슴을 움켜잡았다. 우정석의 말속에 담겨있는 경고가 두려워서가 아니였다. 배합사료와 같은 피치못할 객관적원인들이 있다 해도 목장들이 조락하고 엉망진창이 된 책임은 관리국장인 자신에게 있다는 뼈저린 인식에서였다.

그의 눈앞에는 새끼돼지를 솜옷에 싸안은 천계리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관리위원장이 축산반의 돼지들을 페사시켰다고 분노해서 신고하려고 70리눈길을 달려온 로인… 천계리의 형편은 전반협동축산실태를 말해주는것이다. 그리고 협동축산이 그렇게 된데는 매 협동농장관리일군들과 함께 농업위원회 축산리국을 맡은 국장에게 책임이 있는것이다. 그는 결코 관리국년간총화회의에서 책임회피는 하지 않을것이다. 다만 애꿎게 배합사료부족이라는 어려운 국가적형편에서 초래된 잘못을 몽땅 뒤집어쓰게 된것이 고통스러울뿐이였다.

원중이, 날도 저물었는데 돼지우리는 래일 돌아보구 우리 집에나 가자구.

지배인은 망두석처럼 굳어져있는 차원중의 복잡한 심중을 헤아린듯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난 아무래도 자리를 내놔야 할가봐.

차원중은 어깨가 처져서 지배인에게 끌려 밖으로 나서며 맥없이 중얼거렸다.

맘 약한 소린 그만 두라구. 원중동무가 못하면 국장을 누가 하겠나.

아니, 난 이제 더는 축산동네 북이 되고싶지 않아. 사표를 내겠어.

차원은 결연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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