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19

 

승용차는 회양거리를 벗어져 좁은 차길을 달리다가 지붕에 세기와를 얹은 ㄷ자형의 단층목조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공지에 멎었다.

건물앞에 난 외통길은 먼저 도착한 2대의 승용차가 차지한데다가 사방에 치우지 않은 먼지낀 눈무지가 찌그러진 널바자에 기대 쌓여있어 차를 세워둘수 없는것이였다.

라충연은 길바닥에 깔린 반들반들한 언 눈껍데기가 미끄러워 넘어질번 하면서 펭긴새걸음을 하여 마당에 들어섰다.

중키에 알맞춤히 몸이 난 도행정위원장과 목대가 실한 도교육부장이 그 맞이하였다.

도행정위원장이 예견성있게 데리고온듯 한 얼굴이 둥실한 남자인 보건국장과 상업부국장이 잇달아 어줍은 인사를 하였다.

한 수박색반외투를 입고 흰 털실로 짠 마후라를 목에 두른 상업부국장의 얼굴에는 어딘가 모르게 그늘이 비껴있었다.

충연은 당장 봉숙이한테 백화점에서 대중소비상품을 부정판매 한 사건을 묻고싶은것을 참았다. 검찰소가 상업국사업을 더 파고들어 조사하라고 지시를 주었으니 조만간에 명백한 자료가 얻어질것이였다. 부정판매사건이 종당에는 사람문제에 귀착되는것만큼 사실자료에 대한 엄격한 객관성과 신중성을 기하지 않을수 없는것이였다. 거기에는 이번 기회에 복잡한 상업국사업을 파악하고 바로잡으려는 의도와 함께 봉숙이가 진정 결백한 녀자이기를 바라는 그의 선의가 깔려있었다.

동무들이 마침 잘 왔소. 애육원에 상업국과 보건국이 도울 일이 많을거요.》

라충연은 호방스레 말했지만 자기를 눈여겨보는 봉숙의 서느러운 눈길에 부딪치자 약간 거북한감을 느꼈다. 검찰소의 조사를 심화시킨데 대한 원망의 눈빛같기도 하였다.

애육원을 봅시다.》

 라충연은 그 녀자를 외면하고서 건물외양을 살펴보았다.

탁아소로 쓰던 건물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너무도 작고 볼품없는데 이마살을 찡그리지 않을수 없었다. 서까래를 떠받치고선 오래된 나무보짱에 함흥애육원》이라고 검은색으로 대충 써붙인 널간판부터 그의 비위에 거슬렸다.

벽은 칠이 낡았고 탁아소애들이 해바라기를 할수 있게 널직히 만든 퇴마루의 나무란간은 볼품이 없었다.

유리대신 비닐박막을 댄 창문이 붙은 날개방과 가운데 방들까지 모두 다섯칸의 출입문들은 뼁끼칠을 한지 오랬다.

《보수를… 좀 해야 할것 같습니다.

행정위원장이 라충연의 언짢은 기분을 알아채고 점잖게 한마디 했다.

도 교육국에 애육원건물을 마련하라고 과업을 주고는 처음 나와보는것 같았다.

마당쪽에서 교육부장이 쉰살가량 됐음직한 몸이 약하면서도 강기있어보이는 녀자를 데리고왔다.

책임비서동지, 애육원원장 고선화동뭅니다.》

육부장이 소개하자 그 녀자는 검댕이가 묻지 않은 손등으로 눈굽의 물기를 닦으며 황황히 허리를 굽혔다.

얼굴에 살이 빠져 그런지 광대뼈가 두드러지고 눈이 작은 원장은 고아들에게 필요한 따뜻한 미소와 상냥함이 별로 있을것 같지 않은 메마르고 딱딱한 표정을 갖춘 녀자였다.

애육원원장을 저마다 안하겠다고 나가자빠져서 네번째만에야 선발했습니다.》

육부장은 고선화를 얻어낸것이 몹시 다행스럽고 안심되는 모양이였다.

녀시절에는 유치원교양원을 했고 후에는 원장사업을 하다가 작년에 몸이 아파 들어갔던 녀자였다. 건강은 회복되였다고 한다.

라충연은 고선화의 경력이 맘에 들었지만 인상이 덜 좋아 말을 건넸다.

《원장사업을 꽤 해내겠소? 부모있는 유치원애들하구는 다르오.

고선화는 자기를 못미더워하는것이 섭섭한지 입술을 감빨기만 할뿐 대답을 못했다.

교육부장이 충연의 곁에 한걸음 다가서 나직이 알려주었다.

《이 동무는 애육원원장을 하겠다고 자진해나섰습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나.》

라충연은 고선화에게 친절한 낯빛을 돌렸다.

《각오가 좋은 동문걸 미처 몰랐구만.》

고선화는 용기가 난듯 입을 열었다.

《힘자라는껏 일해보겠습니다.… 저도 애육원생활을 해놔서…》

《애육원이라니?!》

《전쟁시기… 제가 여섯살때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래 애육원에서 자랐습니까?》

《예…》

《학원생활도 했겠구만?》

《강계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정말 좋은 동무를 만났구만.》

라충연은 불현듯 당중앙위원회집무실에서 고아들이 걱정되여 절절히 말씀하시던 장군님의 모습이 떠오르며 가슴이 쩌릿하였다. 그이의 말씀대로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당이 애육원과 학원에서 키워낸 아이들이 성장하여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는것이였다. 부모없는 설음을 안고 애육원, 학원에서 자라면서 당의 은덕과 조국의 품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실생활로 체득한 녀자이니 고아들을 맡길수 있을것이였다.

《그래 원장동무, 무슨 일을 하댔습니까?》

《애들을 목욕시킬 물을 끓이댔습니다.》

라충연은 고선화를 따라 뒤뜨락으로 갔다.

앞마당보다는 좀 넓은 마당 한켠 구석에 큼직한 돌을 고이고 도람통을 올려놓았다. 장작불이 연기를 피워올리며 도람통의 물을 끓이고있었다.

《고아들을 데려왔습니까?》

《경리원이 림시합숙에 갔습니다. 방이 몇개 안되여 20명만 먼저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교양원이 없어 경리원과 둘이서 쌀을 타오고 화식기재를 구해들이고 하며 콩튀듯 하는데도 일손이 딸립니다.》

라충연은 교육부장에게 돌아섰다.

《왜 아직 사람을 꾸려주지 않았소?》

《처녀교양원을 2명 배치했는데…》

영문을 모르고 뇌이는 교육부장의 말에 고선화는 딱한 표정을 지었으나 책임비서가 기다리니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제가 엊그제 간부과에 가서 교양원으로 배치된 처녀들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들이 조바심나서 어느 유치원인가고 묻기에 대답을 안하다가 애육원에 다 와서야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틑날 처녀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서 문건에 씌여있는 주소를 보고 집에 찾아갔더니… 부모들까지 사정을 하면서 자기 딸을 애육원선생노릇을 시키지 않겠다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더 설복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애육원교양원은 애들을 보육까지 해야 하니 유치원교양원보다 훨씬 힘들것 같아 그러겠지. 잘 타일러보오.》

도행정위원장이 형편을 너그럽게 무마하려고 한마디 끼였으나 고선화는 터진 의분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안됩니다. 그런 처녀들은 고아들을 동정은 해도 제 어린 동생을 위하듯이 팔을 걷고 나서지 못한다고 봅니다. 다른 처녀들을 보내주었으면 좋겠어요.》

교육부장도 립장이 옹색해서 고선화를 힐끔 쳐다보고는 책임비서의 눈치를 살폈다.

라충연은 도에 애육원과 학원을 내오는 사업의 현지집행자로서 열성껏 뛰는 교육부장을 탓하고싶지는 않았다.

《교육부장동무, 원장의 요구를 들어주는게 옳을것 같소, 싫다는 사람은 교양원으로든 직원으로든 애육원에 배치하지 마오. 부모없는 아이들을 친혈육처럼 돌보고 교육하는 일은 마음이 내켜서도 하기 힘든 일이요. 교원대학졸업생이나 유치원교양원들중에서 착실하면서도 어질고 인정이 많은 처녀들을 골라 애육원에 배치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충연은 고선화가 안내하는데로 방들을 돌아보았다.

량쪽날개방은 부엌과 창고였다. 당반을 못 갖춘 창고는 바닥에 속이 훌렁한 마대자루가 몇개 있을뿐이였고 부엌에는 쇠가마 2개와 집에서 내온듯 한 사발과 늄식기들이 여라문개 댕그라니 놓였다.

교실은 없고 침실로 정한 가운데방들은 모포와 베개만 있었다. 장판구들을 짚어보니 얼음장같이 찼다.

《방청소만 하고는 불을 때지 못했습니다.》

원장이 제 잘못인듯 말했다.

《땔나무가 있소?》

《조금 있던걸 목욕물 끓이느라고…》

《애육원이 림시합숙만도 못하구만, 못해.》

라충연은 짤막히 불만을 토했다.

《신살림이니 초라합니다. 이제 꾸려주겠습니다.》

도행정위원장은 아래일군들이 형식적으로 집행한데서 오는 면구함을 덜려고 말을 이었다.

《원장동무, 제기할것이 있으면 하오. 여기 상업국과 보건국에서도 나왔으니까.》

《당장 필요한것이 화목과 탄입니다. 침구와 아이들 옷가지들도 있어야 하구요.》

애육원원장은 기다렸다는듯이 매달렸다.

《내의와 솜옷하고 일반치료약을 보내주십시오. 림시합숙에서 그러는데 소독약과 피부질병약이 많아야 한답니다.…》

상업부국장과 보건국장은 수첩을 꺼내 원장이 요구하는것들을 적었다.

원장의 입에서는 물품명세가 줄줄이 쏟아져나왔다.

상업국이 해결할수 없는것은 쓰지 않는것을 보고 도행정위원장이 튕겨주었다.

《봉숙동무, 화목과 무연탄도 적소. 량정과 급양봉사부문이 도와줄것도 적고… 오늘 밤 위원회국장들을 다 모여놓고 분담하겠소.》

도행정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오니 충연은 울적했던 속이 얼마간 내려갔다.

그러고보면 무슨 일이든지 계단식으로 내리과업이나 주어서는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 직접 현장에 나와 형편을 료해하고 충격을 받고서 강한 조직사업을 해야만 문제를 빨리 풀수 있는것이다.

《행정위원장동무, 우선 애육원건물을 바꿔야 하겠습니다. 건물이 급선무입니다.》

라충연은 고선화가 궁리를 짜내여 요구되는것을 죄다 말해 적게 한 다음에야 자기 속생각을 내비쳤다.

《방이 몇개밖에 안되니 애들을 더 데려올수도 없구 교실로도 못쓰겠습니다.》

《건물이 너무 없어… 림시로 탁아소를 냈습니다.》

충연은 도행정위원장이 변명삼아 하는 말을 묵인할수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헐거운 조치로 애육원을 적당히 내올바에야 아이들을 림시합숙에 그냥 두지 무엇때문에 생활조건이 훨씬 나쁜 이런곳에 데려오겠습니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애육원과 학원을 내오는 목적이 부모없는 아이들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돌봐주는데만 있는것이 아니라 그 애들을 미래의 참다운 역군으로 키우는데 있다고 하시였습니다. 아이들을 교육하고 교양할뿐아리라 문화정서생활에 이르기까지 관심하면서 국가가 책임지고 키워내자고 해서 애육원과 학원을 세우는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보잘것없는 동탁아소자리건물을 꾸려놓고 애육원을 내왔다고 할수 있겠습니까.》

도행정위원장은 가책스러운지 입을 꾹 다물고 잠자코 있었다. 실상 림시건물이라고 했지만 개선할 방도를 가지고있지 못한 그로서는 할말이 없는것이였다.

《잘못은 행정위원회에 맡겨버리고 일이 진척되려니 방임하고있은 나한테 있습니다.》

라충연은 겸손성에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반성을 했다.

《장군님께서는 부모없는 아이들이 걱정되여 밤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고계십니다. 사회주의붉은기를 지키는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행정위원장동무, 우리 어떻게든 조절을 해서 함흥시에서 3층쯤되는 좋은 건물을 내여 애육원에 줍시다. 아이들이 해비치는 교실에서 공부할수 있고 침실도 있고 식당, 악기실 해서 여러가지 생활도 누릴수 있는 큰 건물을 말입니다. 애육원이 큼직해야 도내 림시합숙들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빠짐없이 다 데려올수 있잖겠습니까.》

《제가 애육원문제를 정치적으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도의 사정이 어려운데 빙자해서… 다른 할일도 많아 적당히 집행하려 했다는것을 솔직히 비판합니다. 인차 교육환경과 생활조건을 원만히 구비할수 있는 건물을 마련하겠습니다.》

도행정위원장은 겉보기에 틀을 차리고 점잖을 빼는 사람같아도 잘못을 시원스레 돌이켜보고 받아들이는 좋은 성품을 지니고있었다.

《그럼 우리 번듯한 건물에 애육원을 차려놓은 다음에 또 한번 나와봅시다.》

라충연은 너무 기쁘고 고마워서 눈물이 글썽해있는 고선화에게 롱을 했다.

《원장동무는 또 우는구만. 눈물이 많은걸 보니 애육원원장노릇을 못할것 같다.》

《아까는… 도람통에 젖은 나무를 때느라 그랬습니다.》

얼굴이 붉어진 고선화가 웃으며 변하자 도행정위원장이 역성을 들었다.

《눈물이 많은 녀자는 마음씨 곱고 동정심이 많다는데 애육원원장으로서는 적임자입니다.》

《아닙니다. 원장은 애타는 속눈물을 짜야지 겉눈물이 많으면 안됩니다. 가뜩이나 부모없어 우울한 애육원아이들이 원장얼굴을 보구 어디 즐겁게 뛰놀겠습니까.》

고선화는 책임비서의 의미있는 롱을 받아들였으나 웬일인지 눈물이 걷잡을수없이 솟아 추위에 언 까칠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는… 장군님께서 고아들 문제로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는 말을 들으면서부터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여섯살 잡혀 애육원에 들어갔을 때… 원장어머니는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모없는 아이들때문에 밤잠을 주무시지 못한다고… 조국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들한테만은 부족한것없이 다 보장해주라고 말씀하셨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장군님께서도 꼭같으신 심정입니까.

책임비서동지, 이제는 우리 부모없는 애들이 다 살아났습니다. 그 애들이 애육원에서… 장군님품에서 부럼없이 자랄수 있게 됐다고 생각하니 기쁘구 감격해서… 눈물만 납니다.》

《그래…》

라충연은 목이 메여 손끝으로 눈시울을 문질렀다.

《원장동무가 나까지 울리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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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충연은 이날 밤 11시가 넘어서야 가설제방기술협의회를 뜻대로 끝내였다. 마음이 거뿐해진 그는 서병만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수리공학부문에서 가장 실력있는 학자의 동의를 얻고싶었다. 후보원사는 자지 않고있었다.

《선생, 밤중에 전화를 해서 안됐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까지 도농업설계사업소의 박사소장동무와 설계가, 기술일군들과 같이 광포제방문제를 가지고 진한 토론을 했습니다.》

충연은 호수얼음판우에 미리 가설제방을 쌓아 주저앉혀 공사를 봄철까지 와닥닥 끝내려는 방안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서병만은 몹시 놀라와하는것 같았으나 그닥 긍정하지는 않았다.

《책임비서동지, 가설제방착상은 아주 대담한데… 이렇다할 공법상 기술적담보는 없구만요. 어쨌든 봄에 가봐야 합니다. 나도 연구는 해보겠습니다.》

라충연은 후보원사가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아 회의적으로 나오는것 같이 여겨졌지만 그래도 반승낙이라도 얻은듯싶어 기뻤다.

그는 서기를 불러들였다.

《래일 오전 10시에 광포에서 제방쌓는 문젤 가지구 협의회를 하겠소. 포치하라구.》

《알겠습니다. 장소는… 광포 신정리관리위원회로 정하는게…》

라충연은 대번에 서기의 말허리를 잘랐다.

《관리위원회사무실에서 할바에야 도당에서 하지. 광포얼음판에 모이게 하오. 개목동어구의 얼음판에.》

《참가대상은…》

성모동무와 시행정위원장 그리구 함주와 정평책임비서한테 련락하오. 함흥시내 공장, 기업소 당비서들과 구역당책임비서들을 다 참가시키오.》

퇴근차비로 사무탁의 서류를 한에 쌓던 그는 생각나서 덧붙였다.

《가만, 거 국토건설사업소소장과 로농적위대사업을 맡은 박철동무도 명단에 넣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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