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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원사 서병만은 아침 첫시간에 도당책임비서방에 불리워왔다. 고깔모자가 달린 물날은 솜옷을 입은 서병만의 숱이 적은 머리에는 환값나이늙은이에 어울리게 흰서리가 푹 내려앉았다. 그는 지렁이같은 힘줄이 얼기설기 내돋은 여윈 손으로 도당책임비서의 손을 잡았다놓고는 힘겹게 걸음을 옮겨 벽걸상에 주저앉았다. 라충연은 피로가 온 얼굴에 드리운 그를 걱정스레 일별하고 물었다. 《후보원사선생, 식량을 공급받았습니까?》 《예…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임비서동지.》 서병만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떴다가 인츰 사라졌다. 그 식량은 마그네샤립광을 수출해서 생긴 돈으로 먼저 사온 강냉이였다. 도량정관리국에서는 그걸로 함흥시민들중에서 영예군인들과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박사, 학사들에게 우선 10일분을 공급하였다. 《감사는 내한테 할것이 아닙니다. 장군님께서 공장은 못 돌려도 과학은 죽어서 안된다고… 책만 들여다보는 학자들이 어데서 식량이 나겠는가고 말씀이 계셔서 공급했습니다.》 라충연은 사무탁 한켠에 놓여있던 두툼한 서류를 끄당겼다. 《수리동력대학에서 제출한 〈광포강지질생태자료〉를 보았습니다. 선생이 작성했겠지요?》 《관계학부 하천건설강좌에서 만들었습니다. 나는 종합이나 했을뿐입니다.》 서병만은 겸손하게 대답했으나 자기들이 낸 기술자료에 대한 확신과 담보가 얼굴에 담담히 씌여있었다. 라충연은 광포를 막을수 있는 기술적방조를 얻어내지 못했지만 다시금 서류를 번지였다. 우리 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강하구의 자연호수인 광포는 신생대무렵에 바다가의 륭기퇴적작용에 의해 생겨났다. 둘레가 30키로메터가 넘는 호수에는 봉대천, 부평천, 다호천 등 수십개의 크고작은 하천들이 흘러든다. 물깊이는 2메터정도이지만 오랜 세월 강의 유기질퇴적물이 쌓인 감탕층깊이는 평균 10메터가 넘는다. 감탕층은 농작물에 좋은 미량원소가 풍부히 포함되여있어 만약 제방을 막고 개간한다면 적어도 10년은 비료를 주지 않고도 높은 수확을 낼수 있다. 개목동조수방지언제를 사이에 두고 상광포를 가로막으면 수백정보의 기름진 땅을 얻을수 있다. 말뚝공법과 우물정자틀공법으로 감탕층에 2,000메터의 기본제방을 쌓고 상류에서 내려오는 강물길을 돌리는 좌안제방까지 쌓자면 공사기일은 5년이상 걸린다.… 라충연은 실험수치와 계절에 따르는 물질변화의 그라프들이 가뜩 그려지고 광포호의 수리공학적문제와 자연생태적특성이 구체적으로 씌여있는 이 기술자료를 여러날에 걸쳐 보았다. 그는 강좌의 수리공학자들을 존경하면서도 그들이 광포강에 대한 이처럼 훌륭한 기술자료를 작성해내고도 실리적인 결과를 추구하는데서는 소심하고 회의적인것이 불만스러웠다. 《난 이 광포강지질자료에서 많은걸 배웠습니다. 우리가 개간하려는 호수가… 감탕바닥이 어떻게 생겨먹었는가를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술자료가 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수리공학자선생들이 지내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립장에서 만들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공사기일과 공법문제때문이겠지요?》 서병만은 눈섭 하나 까닥하지 않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도당에서는 5년이 아니라 넉달동안에 제방을 막고 개간해서 봄에는 벼모를 내자는겁니다. 말뚝공법이나 우물정자틀공법으로 하자면 통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라충연은 기술자료를 건성 뒤졌다. 《감탄층에 적당한 간격으로 통나무를 박자면 20만대나 듭니다. 이건 선생네가 산출해낸 수자입니다. 고원탄광에서는 동발목이 없어 탄을 제대로 캐내지 못하는데 도의 힘으로 어데서 그 많은 통나무를 구한단말입니까.》 《책임비서동지, 수리공학에서는… 암석기반이 없는 감탕층에 제방을 쌓는걸 가장 어려운 일로 보고있습니다. 그러니만치 반드시 제정된 기술공법을 지켜야 합니다. 말뚝공법은 세계적으로 널리 공인된 공법입니다.》 《후보원사선생, 아무리 좋은 기술공법도 사람이 만든것이겠지요. 우리도 새 공법을 만들어봅시다. 돌과 흙을 감탕에 다져넣어 제방을 쌓을수 있지 않을가요?》 《제방을 기슭이 아니라 호수복판을 가로질러 쌓는다는게 욕망처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왜정때 노구찌는 광포호반의 땅이 탐나서 그렇게 버럭쌓기방법과 함부재까지 도입해봤지만 10년을 씨루다가 끝내는 손털고말았습니다.》 《왜놈들이 막지 못했기에 우리도 못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라충연은 불만스러워 기술자료를 소리나게 덮었으나 서병만은 흥분하지 않고 까풀이 튼 입술을 움직여 반박했다. 《책임비서동지, 아실테지만 수리동력대학은 물과 열의 힘을 연구하는 대학입니다. 불보다 물이 더 무섭습니다. 물은 사정을 모릅니다. 기계가 잘못 만들어지면 마사지고 오작나는것으로 끝나지만 수리공학에서는… 제방을 한번 잘못 쌓으면 돌이킬수 없는 파국적후과를 빚어냅니다. 그렇기때문에 물을 연구하고 다루는 사람은 거짓을 모릅니다. 나는 도당책임비서동지가… 요구한다고 해서 돌버럭으로 제방을 쌓을수 있다고 발라맞출수는 없습니다. 수리공학자는 그 누구의 지시에 머리숙이는것이 아니라 물에 량심을 바칩니다.》 라충연은 과학적신념이 확고하고 학자로서의 존엄이 도도한 그의 주장앞에서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글쎄, 수리공학적인 리치를 따지면 선생이 옳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수리공학에서는 나라가 처한 형편을 셈에 두지 않는게 유감입니다. 도당에서는 어떻게든 광포에 원료기지를 건설하겠습니다. 기존공법으로는 안되니까 돌버럭과 사생결단의 각오를 가지고 해보겠습니다. 함흥사람들은 해낼겁니다.》 라충연은 기술자료를 옆에 밀어놓았다. 서병만은 걸상에서 움쭉 일어났다. 분명 앞으로 걸어나오려고 했으나 현기증이 났는지 찌프린 이마에 손을 짚고 한동안 서있었다. 가까스로 기운을 되살리자 마른 나무가지처럼 거뿐한 몸을 힘겹게 움직여 사무탁앞에 오더니 기술자료를 움켜쥐였다. 《책임비서동지… 난 수리공학자가 되기 전에 당원이 된 사람입니다. 함흥은 내 고향입니다. 난 함흥사람들이 어떤 곤경을 겪는지 압니다. 그래서 강좌교원들과 같이 광포에 나가 닦은 강냉이알을 나눠먹으면서 얼음을 까고 감탕층을 조사해서 이 기술자료를 작성했습니다.… 광포를 개간하려고… 만년대계로 제방을 막으려고 했을뿐입니다. 수리공학자는 단순한 계산을 하고 선 한 획을 그어도 엄정한 객관성과 과학적타산을 잃지 않습니다.》 라충연은 울분을 안은 서병만의 토설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과학밖에 모르는 이 학자한테 자기가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뚝공법이 아닌 다른 신통한 방도를 얻어내지 못한다고 그를 노협힐것까지야 없지 않는가. 론쟁은 아퀴짓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시답잖게 헤여질수는 없었다. 그래도 후보원사는 자기한테 광포의 지질생태적특성을 자상히 알게 해주었고 기존공법대로 해서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바칠수없다는것도 깨닫게 해준것이였다. 《선생, 아무튼 수고했습니다. 앞으로 더 도와주시오.》 서병만은 굵은 눈섭을 치켜올리고 그를 도당책임비서가 아니라 시험성적이 나쁜 학생을 대하듯 불만스런 눈길로 응시했다. 《수리공학자는 실천경험으로 확증된 과학적공법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합니다. 미안합니다.》 출입문을 향해 지척지척 걸어가던 서병만은 갑자기 핑 도는지 손에 든 기술자료를 떨어뜨리며 주단을 깐 바닥에 주저앉았다. 라충연은 깜짝 놀라 때마침 들어온 서기와 같이 후보원사의 겨드랑이를 안아 쏘파에 눕혔다. 서병만은 입술을 우물거렸으나 말은 못하고 힘없이 손을 저었다. 피기없는 눈거죽이 가까스로 열리고 초점잃은 뿌연 눈동자가 면구함을 덜려고 허둥거렸다. 《가만 누워있으시오.》 충연이 권했으나 서병만은 팔꿈치로 쏘파를 짚고 겨우 일어나 앉았다. 그는 서기가 떠온 더운물을 한모금 마시고는 미안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창백하고 누르끼레한 얼굴이 잠시 이그러졌을뿐이였다. 《어데 다친데는 없습니까?》 서병만은 황황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거… 정말 미안합니다.》 후보원사는 부축을 받지 않고서 힘겹게 몸을 일궈세우자 출입문을 향해 휘청휘청 걸어갔다. 라충연은 조마조마해서 그의 뒤모습을 살피다가 서기에게 일렀다. 《선생을 차에 태워 집에 모셔가오.》 라충연은 서병만이 몹시 여윈데다가 속이 빈데서 오는 허기증으로 어지럼증세를 일으켰음을 짐작했다. 10일분의 강냉이를 공급한것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되는 그걸 가지고 온 식구들이 나눠먹느라 더욱 아꼈을터이니 가장인 서병만은 죽그릇을 제대로 들지 않았을것이다. 그는 송수화기를 들어 량정관리국장을 찾았다. 국장은 없었으나 마침 관계부서의 과장이 나왔다. 《이번에 준 강냉이배급명단을 가지고 오시오.》 라충연은 자기에게 량정관리국사업까지 일일이 간참할 여유가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어쩌는수없이 과장을 기다렸다. 도에서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가 식량공급문제인것이였다. 이미 그는 도검찰소의 검열결과를 시인한 일부 량정관리국일군들을 단단히 비판하라고 조직부장에게 과업을 주었다. 부정적인 식량공급에 책임이 있는 량정과장은 얼마 안있어 책임비서의 방에 나타났다. 허리를 활등처럼 구부리고 사무탁에 명단을 갖다놓은 과장의 얼굴에는 지난날 량정사업의 과오를 책임비서가 추궁할가봐선지 불안감이 알리게 떠돌았다. 《강냉이가 얼마 남았습니까?》 라충연이 낯색을 달리하지 않고 누그럽게 물어서야 과장은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이번 강냉이공급은 꼬물만큼의 부정도 없이 지정한대로 원만히 한 그였다. 《저… 영예군인들과 영웅들, 전사자, 피살자가족들… 림시합숙… 그리고 과학자들을…》 《남은 수자를 말하시오.》 《예, 그건 50톤가량 됩니다.》 《림시합숙과 영예군인들, 과학자들한테는 먼저 공급하시오. 그다음에는 직위와 공적과 신분에 관계없이 현재 식량사정이 가장 어려운 집들을 조사해서 공급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책임비서동지, 그런데 그렇게 한다는게… 사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 과장동무는 자루안의 강냉이를 그저 슬슬 퍼주면 되는게 량정인줄 아오?!》 《량정이 정치라는건 잘 압니다.》 《남은 강냉이를… 식구수가 많은 과학자들한테 좀더 줘야겠소. 10일분은 공급했으니까 더 줄 량은 과장이 정하오.》 라충연은 강냉이공급명단을 뒤져보다가 물었다. 《시내 과학자들은 이 명단대로 10일분강냉이를 공급했겠지?》 《예, 박사, 학사들까지 줬습니다.》 《그런데 왜 서병만이란 이름은 없소?》 《누군지…》 《동문 수리동력대학에 한명밖에 없는 후보원사를 모르오?》 《후보원사면… 박사, 학사들 뒤줄에 있겠는데…》 량정과장은 책임비서의 손에서 공급명단을 받아가지고 훑어보았다. 마지막장을 번지고 다시 반복해 보고난 그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빠뜨린것 같습니다. 명단을 급히… 작성하다보니…》 별로 당황해하지도 않고 가책을 느끼는것 같지도 않는 량정과장의 태연스런 대답은 충연의 부아를 돋구었다. 《그러니 서병만선생은 10일분강냉이조차 못 받았겠소?!》 과장은 대답이 궁해서 사달을 일으킨 공급명단에 눈길을 떨구었다. 《책임비서동지, 저희들 량정과에서 실책을…》 《여보!》 라충연은 주먹으로 사무탁을 쾅 내리쳤다. 《그걸 어떻게 실책이라는 말로 굼땔수 있소?! 동무가 과학원 함흥분원까지 통털어 몇명 안되는 원사, 후보원사를 명단의 맨 뒤줄에 놓은것부터가 큰 잘못이란 말이요! 관직을 가진 학사들은 앞에다 놓으면서.》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이라구?! 동문 어느 대학을 나왔소?》 《함흥농업대학을 통신으로 졸업했습니다.》 《학부는?》 《농산학부입니다.》 《지금 몇살이요?》 《마흔일곱입니다.》 라충연은 전화로 조직부장을 호출했다. 사업수첩을 손에 쥔 조직부장이 인츰 방안에 들어왔다. 《이 동문 언제부터 량정과장사업을 하오?》 《작년 초봄에… 부원을 하다가 등용되였습니다.》 《동무넨 어째서 대학공부한 사람을 전공부문에 배치하지 않소?》 조직부장은 책임비서의 노기 띤 온당한 질문에 대답이 궁해서 엉거주춤 서있었다. 《이 동문 농대 농산학부출신이요. 아직 40대이니 농업부문에 가서 배운 지식을 써먹을수 있을거요. 조동시키도록 하오.》 해임리유가 타당하니 할 말이 없이 된 조직부장은 사업수첩에 급히 몇자 적기만 했다. 《내 보니까 량정과장동무는 낟알을 주무르는 관점이 틀려먹었소. 명단에 간부등급은 정확히 따져썼지만 학위학직등급은 우습게 알고있소. 해당 학계의 박사들중에서 선출되는 후보원사, 원사가 얼마나 귀중한 인재들인가 하는걸 생각지도 않는단 말이요. 관직에만 눈이 어두운 동무의 그릇된 인식이 이 강냉이공급명단에 다 씌여있소.》 라충연은 얼굴이 그믐밤처럼 컴컴해진 량정과장을 향해 낮으나 랭혹한 어조로 말했다. 《과학기술이 나라의 생사존망을 좌우하기때문에 국가는 학식과 지적능력의 차이를 엄밀히 구분해서 학위학직등급을 정하고 증서를 수여하는것이요. 그런데 동무는 이런 과학계의 신성한 칭호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살아왔소. 나는 지성보다 관직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도의 먹는 문제를… 량정을 관할하라고 맡겨둘수 없소. 과장동무는 서병만후보원사한테 사죄하고 열흘분강냉이를 공급하고서 사업을 인계하시오.》 두 사람은 소리없이 물러갔다. 라충연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 괴로움에 휩싸였다. 자기가 결김에 량정과장문제를 너무 즉흥적으로 처리하지 않았는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지난 기간 식량공급사업에서 부정적처리를 한적이 드문하고 공정하게 일하지 못한 량정과장의 결함을 더는 묵인하지 말아야 했다. 눈앞에는 서병만의 창백하게 여윈 얼굴이 떠올랐다. 후보원사는 곡기가 부족해 입술이 트고 눈동자가 흐릿해가지고도 강냉이를 공급받았다고…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받았다고 했다. 현기증이 나 쓰러지고서도 끝내 아무런 내색을 않고 방에서 나간 그의 지성인다운 인격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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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충연은 오전에 예견된 사업들을 제쳐놓고서 그길로 승용차를 타고 광포로 향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광포호반에 당도해서야 그는 결김에 수리공학자들이나 농업설계일군들을 동반하지 않고 나온것을 후회했다. 희뿌연 눈보라의 장막속에 무연히 펼쳐진 호반의 얼음판기슭에서 어느쪽으로 방향을 잡아가야 할지 알수 없었다. 사방이 온통 눈천지여서 전에 와봤을 때 익혀두었던 지형을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제방을 막아 원료기지를 건설해야 할 호반기슭에 발을 딛고 서보니 은연중 배심이 서기도 했다. 이 두터운 얼음층밑에 호수물이 있지 않고 그대로 습지같은 무른 땅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니 그것은 도저히 바랄수 없는것이다. 그보다 강추위가 덮치는 한겨울이 아니고 얼음이 녹은 봄철이였으면… 그러면 당장이라도 공사를 시작할수 있지 않겠는가. 량쪽호반기슭에서부터 박토로 든든한 제방을 쌓아 마주나가면 말뚝공법이나 함형틀공법 같은 까다로운 제방공법에 매달리지 않고도 일을 성사시킬수 있지 않는가. 반시간가량 지나서야 운전사가 이 고장에서 오래 살아온 늙은이 두사람과 신정리관리위원장을 찾아 데리고 왔다. 라충연은 솜바지를 입지 않은 아래도리가 얼어 걸음을 옮기기가 부자연스러웠지만 그들과 같이 2,000메터 남짓한 상광포 얼음우를 건너가보았다. 로인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광포변두리땅까지 밟아보니 제방위치를 대략 선정해볼수 있었다. 라충연은 신정리관리위원장이 자기 집에 가서 언몸을 녹이면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청하는것을 마다하고 승용차에 올랐다. 사업이 가득 밀렸으므로 오후 첫시간에는 도당사무실에 들어서야 하는것이다. 광포현지에서 받은 인상의 흥분으로 마음이 즐거워진 그는 승용차안에서 여느때없이 운전사에게 롱말까지 던졌다. 차가 성천강다리를 건너올 때 그의 머리속에는 불현듯 광포얼음판우에다 미리 제방을 쌓을수 있지 않을가 하는 궁냥이 떠올랐다. 그러면 이 겨울을 리용하여 제방쌓기를 용이하게 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집게처럼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호수얼음이 녹는 봄까지 기다려가지고는 제방쌓기도 힘들것이고 금년에 원료기지의 덕을 보지도 못할것이다. 그런데 얼음이 풀리면서 제방이 고스란히 주저앉아줄수 있을가?… 사방 터지거나 물이 새면 어쩌겠는가.… 제길, 해보지도 않고 겁부터 앞세우다니… 라충연이 도당사무실에 들어서자 서기가 기다렸다는듯이 일어나며 회의실에 관리위원장들과 리당비서들이 모인지 오래다고 말했다. 《그 동무들이 점심도 못 먹고 나를 기다렸겠구만.》 라충연은 솜신을 갈아신지도 못하고 사무탁에서 도안의 농업부문 실태자료를 집어들었다. 《책임비서동지, 토목공사에 경험이 많은 시행정위원회 로동처장을 불렀습니다. 그 동무는 전에 광포하구의 방파제공사를 맡아한적이 있습니다.》 서기의 말에 충연은 귀가 번쩍 띄였다. 《적임자를 찾아냈구만. 시당책임비서와 행정위원장도 같이 오라고 하오.》 충연은 두어시간에 걸쳐 도당회의실에서 올해농사를 잘 지을데 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관철하기 위한 집행대책을 토론하였다. 도안의 협동농장관리위원장들과 리당비서들을 거의나 빠짐없이 일궈세워놓고 농사차비를 따지고들었으며 다짐을 받느라고 목이 다 쉬였다. 그다음에는 늦은 점심으로 도당합숙에서 강냉이국수를 한그릇 먹고서 제창 사무실에 와 일에 달라붙었다. 《이거 안됐소. 기다리게 해서…》 라충연은 담배갑을 집어들고 앞상에 나앉았다. 얼굴에 살이 빠졌으나 구리빛이고 어깨가 쩍 벌어진 50대의 사나이인 로동처장은 긴장하면서도 궁금한 기색이였다. 이미 광포에다 원료기지를 건설하는 목적과 의의를 실감하고있는 한성모와 송건식은 무겁고 진지한 낯색으로 앞상 맞은켠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달포나마 사무실에 있지 못하고 강추위를 무릅쓰고 마그네샤립광전투와 장진감자운반사업을 맡아 지휘하다나니 퍼그나 지친 기색이였다. 그런데 한숨 돌릴새없이 또 광포원료기지공사에 돌입해야 하는것이다. 라충연은 세사람에게 담배를 권하고나서 자기도 한대 피워물었다. 《누가 말해보오. 제방을 어떻게 쌓았으면 좋겠는가. 수리공학자들이 주장하는 함형틀공법과 말뚝공법으로 하자면 5년나마 걸리오. 게다가 우리한테는 세멘트도 통나무도 없습니다.》 충연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로동처장이 경솔할 정도로 제꺽 입을 열었다. 《제방이야 돌버럭이나 흙으로 쌓으면 되지 무슨 그런 좋은 자재를 들이겠습니까.》 《처장동문 좀 잠자코 있소. 이게 어디 땅땅한 강변에다 제방쌓는건줄 아오?! 호수감탕이란 말이요.》 시행정위원장이 퉁을 주었으나 로동처장은 별로 타내지 않았다. 《내가 광포밑바닥을 몰라서 그러는줄 압니까. 감탕도 다져지면 땅입니다. 신비할게 없습니다. 돌버럭을 처넣어 쌓으면 됩니다.》 라충연은 젊었을 때 민경에서 군사복무를 한 로동처장의 타산을 앞세우지 않는 담찬 주장이 마음에 들었다. 《책임비서동지…》 한성모가 신중히 말을 꺼냈다. 《광포얼음이 녹자면 아직 두어달이 있으니까 좀 더 론의를 깊이 했으면 합니다. 그동안 수리공학자들이 공법연구를 심화시키고 공사준비도 착실히 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아니요. 그래가지구는 봄장마전에 제방을 쌓지도 못하오.》 라충연은 오전에 광포에 나갔다 왔다는것을 구태여 입밖에 내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자기 주장을 폈다. 《우리는 어떻게든 광포가 얼어붙은 이 겨울에 공사를 와닥닥 해제껴야 합니다.》 《겨울에 말입니까?!》 송건식이 눈이 휘둥그래지는데 로동처장이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책임비서동지, 겨울이 작업조건은 나쁘지만 호수제방공사는 유리할수 있습니다. 광포얼음우에다가 미리 제방을 쌓았다가 주저앉히면 됩니다.》 라충연은 자기 생각과 꼭같은 주장을 펴는 로동처장이 껴안아주고싶도록 고마왔다. 토목공사에 경험이 많고 대담하게 잡도리를 하고드는 그에게 벌써부터 공사를 맡겨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로동처장동무가 아주 기발한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나도 찬성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는 송건식과 한성모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길을 보냈다. 《난 그전날 전문학교를 다닐 때 간석지공사에 동원된적이 있었소. 그때도 봄철보다 감탕바닥이 얼어붙은 겨울에 제방쌓기가 한결 쉬웠소. 춥기는 해도 물동량을 끌어오기 쉬워 공사를 빨리 했지. 안 그렇소? 행정위원장동무.》 송건식은 뒤더수기를 긁으며 마지못해 찬동하는 기색을 띠웠다. 《간석지제방쌓는 방법대로 하는거야 어려울게 없지요.》 《얼음이 녹을 때 가설제방이 제대로 내려앉겠는지 걱정되지만… 공사를 빨리 해제끼자면 그 방법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광포는 갈수기가 겨울입니다. 시민들을 총동원합시다.》 한성모는 주저하지 않고 결심을 세웠다. 《그럼 초보적으로 그렇게 락착하고서… 가설제방론의를 좀더 해보기요.…》 라충연은 수리공학상문제를 신중히 다뤄야 한다는 생각에 말머리를 돌렸다. 《로동처장동무는 이제 농업설계사업소에 가서 소장과 유능한 설계원들에게 광포에 원료기지를 건설하는 문제를 전달하오. 다들 달라붙어 연구를 해가지고 밤에 내 방에 데리고오시오. 겨울에 가설제방을 쌓자면 어떤 기술적문제들이 제기되겠는지 구체적으로 토론해봅시다.》 세사람이 나가자 충연은 시계를 보고는 말코지에서 솜옷을 벗겨 팔을 꿰였다. 도행정위원장과 같이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새로 내온 애육원에 나가보기로 한 시간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