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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서 라충연은 동흥산중턱의 안침진 곳에 자리잡은 사택울바자밖에서 차문을 열고 내렸다. 마당가에 들어선 그는 사무실에서부터 무거워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잠시 서성거렸다. 발밑에서는 언눈이 밟혀 뽀드득소리를 내였고 검푸른 밤하늘에서는 숨박곡질하는 애들마냥 사방 흩어진 별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의 속궁냥을 가늠해보는것 같았다. 그는 언짢은 기분을 눅잦히지 못해 솜옷주머니에 찌른 손을 빼여 담배를 꺼내물었다. 일부 량정국일군들이 식량을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주민세대들에 나눠준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적지 않게 안면관계와 같은 부정적인 공급을 한 사실이 드러난것이다. 그러나 상업국에 대한 검열자료는 그를 아주 분개시켰다. 함흥백화점에서 여분의 세탁비누와 신발같은 대중소비상품을 개별적인 사람에게 넘겨주어 처분하게 한것이였다. 상품공급의 일반적원칙을 위반한것은 내놓고서라도 국정가격보다 비싸게 팔아서 얻은 리익금의 적지 않은 분량을 백화점지배인과 도상업부국장이 처리했다는 자료에 그는 기분이 저락되였다. 봉숙이가 그런 부정적인 일에 손을 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면서도 혐오감이 왔다. 검열자료는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의 봉숙의 어둡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실망감을 굳혀주었다. 마당 한구석까지 걸어간 그는 현관불빛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눈사람과 마주섰다. 나무꼬챙이로 눈을 삐뚜로 붙여 찌프린 표정을 한 눈사람을 보느라니 마음이 은연중 가벼워났다. 눈사람은 틀림없이 안해가 보살펴주는 아이들이 만들어놓았을것이였다. 그가 유리달린 현관문을 거쳐 안방으로 들어서는데도 안해의 기척은 없었다. 구멍탄을 때여 뜨뜻한 방아래목에 용철이와 그 나이또래의 사내애들이 이불을 차던지고 달게 자고있었다. 충연은 쭈그리고 앉아 거죽에 애기곰과 다람쥐들이 뛰노는 두툼한 나이론솜이불을 덮어주었다. 용철이도 그렇고 함흥역에서 데려온 애들이 그때는 어지러운 옷에 이마를 덥수룩이 가리운 머리칼밑에서 눈만 반짝거리댔는데 지금은 새 내의를 입고 짧은 상고머리를 치고 누워자는게 퍼그나 멀끔하였다. 충연은 솜옷을 벗어 말코지에 걸면서 아이들의 혈색이 좋아진것이 기뻐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래일부터는 좀 일찌기 집에 들어와 애들과 친숙해지고 이름도 외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섯 아이들중에 한명은 소녀애였다. 소영이라고 하는 그 애는 방웃쪽의 침대에서 안해와 같이 자군 했는데 지금은 혼자 누워있었다. 소영이는 영양실조증은 가셨지만 내의속에 드러난 가는 목과 팔에는 아직도 채 낫지 않은 헌데딱지가 군데군데 붙어있었다. 그래도 제비꽁지머리를 한 소영이가 작은 입술이 발깃하게 부풀고 살풋이 감은 눈에 가냘픈 웃음을 짓고 편안히 자는것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집에 갓 데려왔을 때만 해도 밤이면 병적으로 무섬증이 돋쳐 엄마를 부르며 울고 온몸에 퍼진 피부병이 가려워나 긁어대며 잠을 못자던 아이였다. 라충연은 아이들이 깨여날가봐 안해를 소리내여 찾지는 못하고 이상해서 창고삼아 쓰는 북쪽의 뒤방에 가만히 가보았다. 좀전에 분명 그쪽에서 인기척이 나고 무슨 류황 타는 내같은 매캐한 냄새가 흘러오는것이였다. 뒤방 문손잡이를 슬그머니 잡아당긴 그는 저으기 놀라서 굳어졌다. 안해가 어깨죽지까지 걷어올린 두팔을 헌 쇠바께쯔에 드리우고 연기를 쏘이고있는것이 아닌가. 쇠바께쯔안에서는 누르끼래한 솜타래같은 연기가 드러난 팔을 휘감으며 피여오르고있었다. 강렬한 궁금중이 그를 방안으로 끌어당겼다. 《여보, 뭘하오?》 그가 조심히 물었는데도 안해는 무슨 못할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우둘쩍 놀래였다. 《들어오지 말아요. 류황연기가 독해요.》 그제야 충연은 안해가 피부병을 치료하느라고 그런다는것을 짐작했다. 안해가 피부병이 심한 소영이를 자주 목욕시켜주고 약 발라주고 하더니 끝내 팔에 옮은 모양이였다. 불시에 가슴속에서 안해에 대한 동정심과 련민의 정이 불길처럼 뜨겁게 솟아올랐다. 《다른 약이 없다오?》 《약으로 떨어지면 오죽 좋겠어요. … 크레졸이구 페니실린연고구 암만 발라야 소용없는걸요.》 창희의 목소리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리성적으로 굳어진 온정이 깔려있었다. 《팔에 뭘 바르지 않았소?》 《돼지기름이예요. 소영이도 돼지기름을 바르구 류황연기를 쐬였더니 피부병이 숙어들었어요.》 《류황불이 잘 타는구만.》 《미안해요. 연기를 마저 쐬지 않으믄 안돼서…》 《맘놓고 치료하오.》 충연은 고아들을 키우는 안해의 고충이 가슴이 뭉클하도록 미쳐와 문을 닫고 서재방으로 건너갔다. 전화기놓인 책상에 마주앉아 사무실에서 가지고 온 서류가방을 열고 검찰소장이 낸 검열자료를 꺼냈다. 집에 들어가 다시한번 보려고 맘먹었던건데도 정작 자료를 꺼내니 펼치고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기를 진정 반가와하며 눈물짓던 봉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단정하고 말수더구가 적은, 녀성일군의 풍격이 몸에 밴 그 녀자의 리면에 그런 어두운 측면이 있다는것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처녀시절의 그 녀자는 명랑하면서도 마음이 정직했다. 밀가루남새빵이라도 늘 푼푼히 가지고와서 동무들과 나눠먹으면 먹었지 남의것을 넘겨다보는 성미가 아니였다. 하긴 사람을 파악하자면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사실에 립각해야 한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 와서 봉숙의 성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장담할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라충연은 검열자료를 확정적인것으로 단정하기는 싫었다. 도당에서 상업국문제를 보기 전에 검열을 다시 해봐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사업의 신중성을 가하는 측면에서보다 부국장이 진정 자료에 제기된 그런 녀자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사람문제를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런 결심을 내렸다. 그는 검열자료를 서류가방안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얼음덮인 광포호반이 다시금 유혹적으로 떠오르며 실망하고 주저앉은 마음을 든장질했다. 광포의 물얕은쪽을 막아 원료기지를 건설할수 없단 말인가. 흐물흐물한 감탕지반우에 제방을 쌓는 일이 과연 불가능하겠는가? 라충연은 도무지 속이 내려가지 않아 수리동력대학 당비서를 찾았다. 《밤중에 깨워 안됐습니다.》 그는 수화기에서 울려오는 석쉼하고 맥빠진 목소리에 어지간히 화가 났다. 《내 도당책임비서입니다. 대학에 수리공학자들이 있지요?… 물어봐주시오. 광포강을 막을수 없겠는지… 수리공학상으로나 지질학적으로 광포를 막아 곡식을 심을수 있겠는지… 수리계통전문가선생들한테 알아봐주시오. 광포조사자료도 필요합니다.》 그가 송수화기를 놓자 창희가 문을 조용히 열었다. 《저녁밥을 차렸어요.》 나직하고 미안스러운 음성이였다. 《당신한테 피부병이 옮은걸 모르다니…》 충연은 변명하듯 괴롭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안해에 대한 푸수한 애정이 불길처럼 타오르고있었다. 《집에 어쩌다 들어오는 당신이 어떻게 알겠어요.》 창희는 도리여 그를 위안하려 했다.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잖을가?》 《그게 뭐 큰 병이라구 법석을 놓겠어요. 류황연기를 쐬였으니 나을거예요.》 충연은 밥상에 마주앉아서도 인차 수저를 들지 못했다. 《내가 당신을 너무 고생시키지?…》 《오늘따라 별스레 구는군요.… 어서 식사해요. 고아들 몇을 보살피는게 무슨 고생이겠어요.》 창희는 방구석에 놓인 강냉이를 타개던 커다란 망함지에 다가앉았다. 통강냉이알을 집어놓고 수걱수걱 망을 돌렸다. 망돌짬에서 강냉이알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으나 아래목에 나란히 누운 아이들은 이불을 차던지고 달게 자고있었다. 《명구한테는 무슨 소식이 없소? 그 녀석이 꿈쩍 안하는걸 보니 아직 속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군.》 매정한 남편이 령산에 떨궈두고 온 아들을 생각한다는것만으로도 고마운지 창희는 얼핏 충연을 건너다보고는 망자루를 바꿔잡고 돌리기만 하였다. 《전화가… 왔댔어요.》 《그래?!… 어떻게 지낸다오? 합숙생활이 불편할텐데…》 《당신은 뭐 공장합숙형편이 어떤지 모르는 사람같구려.》 창희의 눈가에는 물기가 맺혔다. 《배고파 죽겠대요. 배고프니 일도 힘들구… 합숙에서 하루 두끼 강냉이죽을 늄식기 곯게 준대요. 그나마 없을 때가 있구.》 창희는 망입에 강냉이알을 집어놓던 손으로 눈굽을 닦았다. 충연은 수저가락을 든채 아무 대꾸도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