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13

 

서기방으로 통한 사이출입문으로 간부들이 책벌이나 받은 사람처럼 어깨가 처져서 줄줄이 빠져나갔다.

긴 양복을 단정하게 입은 중년의 서기가 들어와 앞상에 켜놓은 여러대의 초불을 두대만 남기고 꺼서 거두었다.

시행정위원장동무도 앞상에 나앉으시오.》

충연이 친절하게 손짓하자 송건식은 벽걸상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시당책임비서 한성모의 맞은켠에 사수첩을 펴놓고 앉았다.

창문을 열어놓으랍니까?》

기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건 왜 묻소?》

충연은 서기한테 고개를 돌렸다.

추울가봐서…》

추워도 공기갈이는 해야지. 어지러운 공기는 보이지 않는 오물이나 같거던. 서기동무는 좋은 습관을 가진것 같은데 앞으로는 그러루한걸 가지고 묻지 말라구.》

음가시같은 찬바람이 담배연기와 사람체취로 혼합된 방안의 탁한 공기를 밀어냈다.

사무탁모서리의 꽁다리초불이 꺼질듯 날리고 졸아들었다.

기는 세사람앞에 더운물고뿌를 놓고 앞상둘레의 걸상들을 정돈하고서 동안이 지나서야 창문을 닫고 나갔다.

어떻소, 그만하면 식량문제협의가 잘된것 같습니까?》

라충연은 담배를 한가치 꺼내물고 갑을 두사람쪽에 밀어놓았다.

《제 보기에는 아주 잘된것 같습니다.》

《비상조치가 적절히 취해졌다고 봅니다.

송건식이 시당책임비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충연은 씁쓸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자기가 연 협의회의 귀맛좋은 반영이나 듣고싶어 물은것이 아니였다.

시행정위원장동무가 비상조치라는 말을 옳게 했소. 비상조치는 림시조치라는걸 의미합니다. 마그네샤립광수출과 장진감자운반은 함흥시민들의 식량난을 푸는데서 림시구급대책이요. 그걸 다 먹은 다음엔 어떻게 한다?…》

그것만 실행해도 대단한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로서야 다른 뾰족한 수가 있습니까. 그러느라면 정무원에서 식량을 해결해보내겠지요.》

성모는 라충연이 남으라는 리유를 짐작했지만 반응은 굼떴다.

송건식은 고뿌의 더운물을 마시고 머리를 쳐들었다.

《정무원의 식량해결이란게 별다른겁니까. 도가 농사지은걸 뒀다가 먹는거지요. 책임비서동지, 딴게 없습니다. 봄에 가서 농민들이… 도농촌경리위원회가 농사를 잘 짓도록 달궜다치는겁니다. 식량이야 원체 땅에 곡식을 심는 농민들이 보장하는게 옳지요. 그런데 농촌사람들이 일을 쓰게 못하구 농사를 망쳐놓으니까 도시가 이런 고생을 하는게 아닙니까.

충연은 송건식의 리치바른 푸념을 너그럽게 대했다.

《행정위원장동무는 몇해째 함남도가 입은 자연재해는 셈에 넣지도 않는구만.

원, 모르겠습니다. 내 보니까 한랭전선이 오구 가물들거나 큰물나구 해두 농민들의 부업밭은 그다지 피해가 없습니다.》

그야 터밭이나 부업밭뙈기가 작으니까 그렇겠지. 송동무는 식량난책임을 자꾸 농민들에게 미대는것 같은데 그렇다면 도시사람들은 농촌을 얼마나 도와주었는가?! 공업도시인 함흥시도 농민들에게 뭘 주었소? 시비년도 화학비료도 제대로 생산 못했지, 련결농기계공장에서 모내는 기계는 말고도 써레 하나 똑똑히 만들어보내지 못했소. 뜨락또르용기름도 보장 못해 농민들이 소로 밭을 갈았소. 봄, 가을에 로력지원한것밖에 더 없지 않소. 농촌사람들도 할 말이 있을거요.》

충연은 기분이 저락된 송건식을 일별하고 말을 이었다.

《내가 동무들과 의논하자고 하는건 금년에 함흥사람들의 식생활에 보탬을 줄 큼직한 방도를 세울수 없겠는가 하는거요. 이를테면 원료기지 같은거 말이요. 내 알아보니 지난날 우리 도에서는 사가 잘된 해에도 자급자족을 하지는 못했더구만. 그런데 이즈음에는 랭해나 큰물과 같은 자연재해를 자주 입고있소. 게다가 비료생산은 아직 전망이 어둡소. 그래서 난 지금부터 여유량곡을 얻어낼 대책을 강구하자는거요. 그러지 않고 어정쩡 날을 보내다나면 금년에 함흥시민들의 생활이 또 어렵게 될거요. 곡산공장 하나 돌리지 못해 장군님께서 걱정을 하시게 해서야 우리가 무슨 책임일군이란 말입니까.》

글쎄… 저도 언제부터 생각하는건데 우리 함흥시에도 든든한 료기지가 있어야 합니다. 알곡생산이 많은 협동농장 한개쯤은 겨받으면 좋겠는데…》

건식의 비위좋은 말에 라충연은 이마살을 찌프리고 퉁을 주었다.

제 뼈심을 들이지 않고 국가에 낟알을 공짜로 달라는거구만. 그런 엉큼한 생각은 하지도 마시오.》

건식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각에 잠겨있던 한성모가 느직이 말을 꺼냈다.

함흥사람들한테 그런 방도가 있을수 있다면 주변농촌에 널려있는 공장, 기업소 부업기지밖에 없지요.》

어이쿠, 책임비서동무, 부업기지말은 하지도 마시오.》

건식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난 함흥에 와서 몇십년동안 부업지들에서 강낭되박을 온전히 건졌다는 말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공장, 기업소나 부업지가 멀다보니 종업원들이 두세시간씩 걸어가서는 맥이 나서 노루꼬리만큼 일하구는 어둡기 전에들 집에 오느라구 해가 기울지도 않았는데 벌써 돌아서지요. 온종일 땅에 발을 푹 묻고 하는게 농사인데 그렇게 시간랑비, 로력랑비해가지고 낟알이 맺힙니까. 부업지덕은 못 봅니다.》

《여보, 그렇다고 부업지농사마저 줴버리면 함흥돌바닥에서 배추잎사귀라도 얻어먹소?! 》

성모는 송건식의 입심을 당해낼 재간이 없는지 신경질적으로 반박했다.

비서와 행정위원장이 입을 맞추지 않아가지구 일이 되겠소? 금년에 부업농사도 잘 지어봅시다.》

충연은 화해조로 두사람의 기분을 눅잦히고 말했다.

내 저번때 광포에 갔다가 보니 호수류역의 묵은 땅이 여간 욕심이 나지 않더구만. 감탕물에 쓸모없는 창포와 갈만 무성하더란 말입니다. 어떻소. 우리가 삼광포 얕은쪽을 막으면 굉장히 넓은 땅을 공짜루 얻을수 있잖을가?》

건식은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천정만 올려다보았다.

성모는 라충연이 속에 품은걸 하도 진지하게 터놓는지라 응하지 않을수 없는듯 되물었다.

광포에다 원료기지를 건설한단 말입니까?》

《그렇소. 광포를 막기만 하면 10년쯤은 비료나 거름을 내지 않고도 정당 여섯, 일곱톤은 날거요. 년간 수천톤의 알곡이 어디요! 그걸 강냉이와 바꾸면 곱으로 불어나오. 그 강냉이면 원료가 없어 멎어선 곡산공장을 넉근히 돌릴수 있단 말입니다. 아이들한테 줄 사탕과자를 비롯해서 각종 식료품을 만들구 나머지 부산물로는 간장, 된장을 생산할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소. 함흥사람들 식생활이 한결 나아질거란말이요.》

송건식은 리해심 넓은 웃음을 지었다.

《책임비서동지는 상당히 랑만적으로 문제를 보십다. 옛말에 나오는… 닭알을 가지고 얼음판으로 건너가면서 공상을 굴리는 장사군이야기를 듣는것 같습니다. 닭알이 머리속에서 병아리가 되여 불고 불어나 돼지가 되고 집을 산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거 롱이 지나치구만.》

라충연이 얺잖아서 낯색을 달리하자 송건식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량해하십시오. 실정을 잘 모르는 책임비서동지를 돕자고 한 말입니다. 광포를 막으면야 좋지요. 굉장히 살진 땅을 얻어내지요. 헌데 그걸 어떻게 막는단말입니까?! 광포는 호수가 아니라 실상은 범포천과 흑다리천이 바다물과 합치는 강하류의 작은 만입니다. 비가 어지간히 내리고 바다바람이 세차지면 강물이 광포에서 빠지지 못합니다. 강웃쪽에서는 불어난 물이 내리쏠리고 바다에서는 해일이 올려밀고… 하면 광포는 엄청나게 사정없이 불어납니다. 잔잔한 호수같애도 비만 오면 미쳐나는게 광포입니다. 그래서 광포사람들도 넓을 광자가 아니라 미칠 광자를 써서 광포라고 한답니다.》

아마 수리공학상견지에서 어려운것 같습니다.》

성모는 라충연의 침침한 낯빛을 곁눈질해가며 말소리를 낮추었다.

《왜정때는 광포주변의 신정리논에서 나는 쌀을 천황에게 진상했다고 합니다. 그래 노구찌가 신정리논을 넓혀보려고 상광포를 막으려 했지요. 갈수기철에 썰물지면 그때 흔적이 보입니다. 함형부재 비슷한걸 만들어서 좀 쌓았는데 홍수나고 해일이 올려밀자 단박에 쓸어버리고말았습니다.

그러니… 어방없이 불가능하다는거겠소?》

충연은 흥심이 풀렸다. 그는 은근히 별러온 속궁냥이 물거품처럼 부서지는것이 기분나빴지만 쓸쓸히 통감했다. 자기가 욕망만 앞세우고 수리공학적으로나 지질학적측면에서 너무도 파악이 없었다는것을 인정해야 했다.

성모는 담배가치를 뽑아내여 그루를 박았다.

함흥사람들의 형편이 말이 아닌데… 우선 마그네샤립광수집전투를 끝내고 생각해보는게 어떻습니까.》

충연은 시당책임비서가 광포문제를 주관에 빠진 공뜬 욕망이라고 행정위원장처럼 내놓고 부정하지는 않고 함흥시가 처한 현실적난관을 꺼들어 부드럽게 리해시키는데 은근히 기분상했다. 그러나 불만을 드러낼수는 없어 덜퉁스레 말했다.

그만 돌아들 가십시오.》

충연은 두사람이 나가는것을 눈으로 바래우지 않고 서류에 고개를 숙였다.

검찰소가 도행정위원회 량정국과 상업국사업을 검열하고 낸 자료였다. 량정과 상업이 어려운 도의 실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문이라는걸 알면서도 초저녁부터 본다는것이 못보았다. 시간을 짜내여 미리 보았더라면 검찰소장을 남겨서 제기된 자료를 론의했을것이였다.

페지를 넘기는데 서기가 들어왔다.

상업부국장이 책임비서동지를 만나겠다고 합니다.》

연은 봉숙이가 협의회뒤에 가지 않고 기다린것이 저으기 반가왔다.

들여보내오.》

송봉숙은 조용히 들어와 사이출입문을 등뒤로 닫고 그 자리에 굳어졌다. 밝지 못한 초불빛이 파마한 머리를 탄력있게 꽁진 그 녀자의 긴장한 얼굴을 비쳤다. 어딘가 당황스러움이 비낀 봉숙의 정채도는 눈은 고향마을의 버들방천에서처럼 여전히 정겨움을 던지고있었다. 별빛을 담은것 같은 그 눈은 충연을 보는것 같으면서도 머리우 허공을 더듬고있었다. 처녀시절보다는 몰라보게 변했지만 어찌보면 늙지도 않고 달라진것도 없는것 같았다.

《바쁘시겠는데 저문에…》

《괜찮소. 그러지 않아도 만나려고 했습니다.》

라충연은 팔걸이의자에서 반갑게 몸을 일으켜 마주나왔다.

《부국장동무, 어서 와 앉으시오. 어서.》

그가 먼저 앉아 재삼 권해서야 옹색해하던 봉숙은 긴 쏘파의 구석쪽에 몸을 붙였다.

《정말 잘되셨군요. 이렇게 다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충연이쪽에 반쯤 몸을 돌린 그 녀자의 눈에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빛이 흘렀다.

《협의회때 봉숙동무가 들어오는걸 보면서도 인사를 나누지 못했구만.》 

라충연은 눈앞에서 맴도는 담배연기뭉치를 손으로 휘저었다.

《그래, 어떻소? 국장이 앓아서 사업을 대리한다지. 요즘 생활이 어려운 때이니 상업국이 볶일거요.》

《저는… 일을 쓰게 못합니다.》

《자기를 낮추는건 좋은 성품이요.》

《책임비서동지,… 그래서가 아닙니다. …검찰소검열을 받고보니 부국장인 제가 일을 잘못했구 하는 가책이 큽니다.》

《난 아직 검열자료를 보지 못했소.》

《부끄러워요. 도당에까지 문제가 상정되여…》

《사업을 검열받는건 응당한 일인데 일있소. 결함이 나타나면 고치면 되는거지.》

《저도 그렇지만… 오빠도 시행위원장사업을 잘하지 못해 사람들의 말밥에 올라있습니다.》

라충연은 그 녀자의 어린 심정을 리해하고 호방스레 말했다.

《오빠더러 장진감자운반이랑 일을 잘해달라고 하오. 일부 사람들이 시민들의 생활형편이 악화된 책임을 행정위원장에게 떠미는것 같은데 그건 옳지 않소. 난 송건식동무가 지난날 어떻게 일했든지간에 오늘의 사업을 놓고 그를 평가하겠소.》

《고마와요.》

《송건식동무는 맘에 드오. 책임비서앞에서 위선을 피우고 발라맞추는것보다는 근거를 따지며 겁내지 않고 반발하는게 더 좋았소. 조건타발같은건 있지만 무슨 일에나 실정을 손금처럼 들여다보는구만. 어째서 일이 안되가를 알고 걱정을 하는게 맘에 든단 말이요.》

《책임비서동지가 정확히 보셨어요. 〈우국지사〉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오빠는 사업수완이나 내밀성은 약합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그럽시다. 어려운 때인데 우리 서로 힘을 합해 일을 많이 하기요.》

봉숙은 속이 내려가는지 숨을 가벼이 톺았다.

《창희동무를 만나보고싶습니다.》

《집에 놀러오오. 그러지 않아도 봉숙동무이야기를 했소. 그 사람은 고아를 시중드느라 눈코뜰새 없지.》

《어쩌면 애들을 다섯씩이나 거둘가…》

봉숙은 칭찬과 가책이 엇섞인 탄식조의 말을 뇌이고서 조용히 물었다.

《령산에서 딸만 데려오고 아들은 떨궜다지?》

《어떻게 잘 아는구만.》

회포의 감정이 잦아들고 침묵이 서리자 봉숙은 례절있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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