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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충연이 탄 렬차는 드디여 고원역에 도착했다. 검사마치로 차바퀴와 스프링을 두드려보던 검차원이 역에 갈아댈 견인기가 없어 북쪽에서 렬차가 내려오기 전에는 언제 떠날지 모른다고 퉁명스레 한 말이 차칸들에 물결처럼 퍼져갔다. 지루감에 잔뜩 신경이 돋친 몇몇 손님들은 철도부를 두고 하늘에 막대기질하는 식으로 불만을 내뱉았지만 애초에 이런 어려운 렬차운행형편을 알고 거기에 익숙해서 띠 풀어놓고 배포유하게 좌석에 들어앉은 손님들은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켜더니 바람이나 쏘이자는식으로 승강대쪽으로 나갔다. 라충연은 선반에서 가방을 내리웠다. 함흥이 멀지 않은 곳에 와가지고 이대로 렬차에서 시간을 허비할수 없었다. 고원군당에라도 찾아가 승용차를 얻어타고 가는편이 나을것 같았다. 《승빈동무…》 그는 소금마대를 깔고앉은채 진때가 짜들짜들한 솜옷깃속에 머리를 틀어박고 곯아떨어진 《함흥내기》청년의 어깨를 건드렸다. 굳잠에 묶이운 류승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연신 고개방아를 찧었다. 털모자는 앞으로 쏠려 이마턱에 겨우 붙어있고 입가녁으로 침이 흘러내렸다. 《〈소금쟁이〉동무, 깨나라구.》 라충연은 승빈의 털모자를 바로 씌워주고 어깨죽지를 흔들었다. 그제야 승빈은 느침을 삼키고 연덩이처럼 드리운 눈까풀을 떴다. 초점잃은 눈이 둥그래졌다. 《아니?! 벌써 함흥인가요?》 《고원이요. 난 내리겠소.》 충연은 가방안에서 남은 한끼분의 김밥꾸레미를 꺼내 승빈에게 주었다. 《뭘 이러십니까. 그러지 않아도 손님걸 얻어먹으며 왔는데.》 승빈은 미안해서 김밥을 받으려 안했다. 《건사해두오. 렬차가 언제 갈지 모른다오.》 《고맙습니다.》 《다시 만나자구.》 《넓다란 함흥땅에서 어떻게 만난다구요.》 《소금문제를 론의할 땐 꼭 〈함흥내기〉동무를 찾겠소.》 류승빈은 의혹을 덜지 못한듯 뜨아해서 응수했다. 《하여간 잘 가십시오.》 라충연은 오는 동안 자기 고장의 실태와 생활형편같은것을 놓고 기탄없는 이야기를 나누어온 여러 손님들에게도 례의를 보이고 길게 트인 통로를 걸어나갔다. 음산한 날씨였다. 홈에 깔린 싸락눈은 북적거리는 손님들의 발에 밟혀 너저분하게 흩어졌다. 한낮의 겨울해빛은 넝마같은 구름틈새로 얼어붙은 대지에 싸늘한 온기를 뿌리는데 아호비령산줄기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역홈에 심술궂게 들이닥쳐서는 사람들에게 마구 눈가루를 휘뿌렸다. 뻐근히 쌓인 무료감을 덜려고 렬차에서 내린 길손들은 추위에 목을 움츠리고 서성거리다가 때마침 판매원처녀가 밀고오는 이동매대에 모여들었다. 바퀴달린 매대가 작아도 건빵과 꽈배기, 곶감, 마른낙지, 남새빵들이 무드기 쌓여있었다. 일곱살이 될가말가해보이는 총각애가 매대에 둘러선 손님들의 뒤에서 기침을 콜록콜록 하면서 서성대고있었다. 언제 세면을 한가싶게 얼굴이 꾀죄죄한 아이였다. 라충연은 개찰구쪽으로 가던 걸음을 멈췄다. 아이를 외면하고 지나칠수 없는 도의감과 책임감이 그의 발길을 멈춰세운것이다. 함경남도에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잘 돌봐주라고 하시던 장군님의 말씀이 귀전에 울려오는듯싶었다. 그는 매대에 가서 빵 두봉지와 낙지 몇마리를 사서 아이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총각애는 갑자기 너무 과분하게 차례져서인지 미타한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기만 하였다. 《얘야, 어서 받아라.》 라충연이 무릎을 꺾고 앉아 재삼 따뜻이 말해서야 아이는 움츠렀던 손을 뻗쳐 빵봉지를 움켜쥐였다. 《이름이 뭐냐?》 《용철이예요.》 《집은?》 《함흥에서 살댔어요.》 《아버지는 없느냐?》 《예.》 《어머니는?》 《엄마도 쌀가지러 외할머니집에 갔는데 돌아오지 않아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엄마가 잘못됐을거래요.》 충연은 어린 소년의 눈귀에 맺히는 눈물을 보고 더 물을수 없었다. 그는 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몹시 뜨거웠다. 《용철아, 나하구 같이 함흥에 가지 않겠니?》 《함흥엔… 먹을게 더 없어요.》 《앞으론 나아질게다. 가자, 내가 어떻게든 돌봐주마. 빨리 가서 감기랑 치료해야겠다.》 그가 아이의 손목을 쥐고 걸음을 옮기는데 침대칸에서 홈에 바람쏘이러 나왔던 송건식이 어정어정 다가왔다. 《그앨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앤 함흥애요.》 라충연이 시행정위원장인 송건식에게 책임이 있기라도 한듯 몰풍스레 대꾸했다. 그러나 충연의 복잡한 심중을 느끼지 못한 송건식은 그저 너그럽게 혀를 찰뿐이였다. 《떠돌아다니는 애가 한둘이라구…》 홈으로 승용차가 달려오더니 렬차침대칸쪽에서 멎었다. 얼굴이 둥실한 사람이 차에서 내려 침대칸에 들어갔다. 누군가를 찾는 모양이였다. 한참만에 그 사람은 침대칸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상급차칸의 창문에 얼굴을 내민 사람을 향해 소리쳐물었다. 《차칸에 함경남도당 책임비서동지가 타지 않았습니까?!》 라충연은 곧장 그 사람한테로 다가갔다. 《동문 누굽니까?》 그 사람은 충연의 친절치 못한 성급한 질문이 맞갖잖은지 대충 훑어보았다. 때국이 흐르는 총각애의 손목을 쥐고 서있는 그의 려행길에 지친 모습에서 간부다운 기품을 별로 느끼지 못한 모양이였다. 《난 당신을 찾는게 아닙니다.》 그 사람은 시답잖게 대꾸하고 차칸쪽으로 돌아섰다. 《동무는 함남도당에서 오지 않았습니까?》 라충연이 엄하게 따져묻자 그는 약간 주눅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내 도당책임비서입니다.》 《동지가?!…》 그 사람은 낯색이 달라지며 급히 솜옷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어지간히 놀라고 못미더워하는 사람은 그보다도 뒤켠에 다가온 송건식이였다. 도당에서 온 사람은 라충연이 내미는 신분증에 놀란 눈길을 박더니 곧 몸가짐을 바로했다. 《책임비서동지, 정말 미안합니다.》 《미안할게 있소, 모르고 그랬는데. 아까부터 난 동무가 누군가를 물었습니다.》 《제 도당조직부장입니다. 책임비서동지가 령산에서 이 렬차에 타셨다는 련락이 왔기에 승용차를 가지고 마중나왔습니다.》 《수고했소. 그런데 난 혼자가 아니요.》 라충연은 바지가랭이에 붙어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웬 아입니까?》 《함흥애요. 감기가 심한것 같은데 데리구 가야겠소.》 눈치빠른 운전사가 승용차를 갖다대였다. 라충연은 용철이를 앞세우고 좌석에 들어앉아서야 홈에 서있는 송건식에게 눈길이 미쳤다. 놀라움과 당혹감이 얼굴에 가뜩 실린 송건식을 보자 충연은 저으기 멋적은감을 느겼다. 한고향사람앞에서 뻐기는것 같은 느낌을 털어버리며 따뜻이 권했다. 《시행정위원장동무도 같이 갑시다.》 송건식은 어리벙해진 얼굴에 급기야 겸손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비좁은데 저는 렬차로 가겠습니다. 인차 떠날겁니다.》 《어서 가서 짐을 가지구 오오. 조여앉으면 되오.》 송건식은 더 마다할수 없어 침대차칸으로 뛰여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