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곡

 

 

1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이해 겨울은 달리 추웠다.

부전령산줄기를 타고넘은 내륙의 세찬 바람이 울부짖으며 강설이 쌓인 동흥산을 휩쓸고있었다.

성천강을 끼고 앉은 공업도시 함흥은 온통 눈보라의 장막속에 묻혔다. 길거리에 나다니는 사람들은 휘몰아치는 눈가루에 숨이 막히고 앞을 가려보기조차 힘들 지경이였다.

종일 온 도시를 뒤집어엎을듯이 기승을 부리던 눈바람이 저때쯤해서는 맥이 빠졌는지 얼마간 잠잠해지는것 같더니 이번에는 쓸어간 눈가루를 보충이라도 하려는듯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교외의 공장구내길에서 눈을 맞으며 시당책임비서를 기다리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미 동해지구의 한 구분대를 시찰하고 돌아오는 길에 함경남도의 여러곳에 들리시였는데 어데 가나 형편은 몹시 어려웠다.

전력부족과 원료, 자재난으로 도안의 공장, 기업소들이 멎어서다싶이 했고 탄광, 광산들에는 침수된 갱들도 적지 않았다. 거기다 식량난까지 겹치였다.

공장정문쪽에서 승용차 한대가 구내길을 달려와 멈춰섰다.

깃에 인조털을 댄 두툼한 밤색솜옷을 입은 사람이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뛰여왔다. 시당책임비서 한성모였다.

《장군님

털모자를 벗어쥔 그는 당황해서 인사말도 변변히 올리지 못했다.

《오래간만이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성모가 지난날 침착하고 언변이 좋은 선동력있는 당일군이였음을 상기하시였다.

《지금 나이가 몇이오?》

《쉰일곱입니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이구만. 함흥사람들이 극장을 크게 지었을 때 동무는 40대였지. 도당선전비서를 했던가?》

《예… 저는 그때 장군님께서 우리 도를 현지지도하시면서…〈함남제일주의〉를 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던 말씀을 늘 새겨두고있습니다.》

《그래, 그땐 〈함남제일주의〉가 심했지.》

《장군님… 날이 춥구 눈이 오는데 시당에 가시지 않겠습니까?》

《여기도 괜찮소. 시간도 없구. 지나가던 길에 동무를 만나보구싶어 불렀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시려드는 손을 야전솜옷주머니에 찌르고 조용히 물으시였다.

《책임비서동무, 어떻게 지내오. 어렵지?… 》

《장군님, 몹시 어렵습니다. 식량을 주지 못해 시내 공장, 기업소들에서 출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지고있습니다. 시당일군들도 곤궁을 겪습니다.》

《동무도 얼굴색이 좋지 않구만. 위탈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것 같은데…》

그이께서 부드러운 어조로 관심하시자 한성모는 열적은 웃음을 지었다.

《일없습니다. 더러 속이 치밀 때가 있지만 사무실난로에 몸을 덥히면 쑥 내려가군 합니다.》

《시당에서 회의를 하댔소?》

《예, 확대집행위원회를 소집했습니다. 시내 공장, 기업소 초급당비서들과 동당비서들도 다 참가시켰습니다.》

《안건은 뭡니까?》

《고난의 행군시기에 맞게 당원들과 시민들에게 사상교양사업을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동무가 발언했겠소?》

《예.》

《취지를 알고싶구만.》

정일동지께서 흥미를 가지시자 한성모는 시당회의실에서의 흥분이 되살아난듯 별로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초급당일군들에게 본질적인걸 명백히 말해주었습니다.…》

…계속되는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경제봉쇄책동, 모질게 겹쳐드는 자연재해로 하여 우리 당 력사에서 가장 준엄한 시련이 닥쳐왔다, 함흥시의 당원들과 근로자들, 시민들은 어떻게든 난관을 이겨내면서 당과 생사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날에도 당을 믿고 당에서 하라는대로 해서 행복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사람은 좋은 때 백날, 천날보다 어려운 때 하루에 진가를 알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역경이 몰아쳐와도 사회주의신념을 고수하고 꿋꿋이 살아나가면 오래지 않아 고난의 행군도 끝나게 된다, 그러면 경제가 풀리고 생활도 좋아질것이다.…

요약해서 말씀올린 한성모는 스스로도 감동에 젖어 눈굽에 물기가 어렸다.

《나라가 처한 형편은 사실 어렵소. 동무말처럼 적들의 봉쇄는 계속되고 자연재해의 후과는 더 엄중하게 될것 같습니다.》

정일동지께서는 어두운 안색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고난의 행군〉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난관이 겹쌓인다고 참고 가만히 있으면 형편이 저절로 나아지는가? 누가 우리를 구원해주는가?… 책임비서동무, 눈이 많이 내리는데 털모자를 쥐고있지 말고 쓰오. 감기들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성모가 창황중에 돌려쓴 털모자를 바로잡아주고서 저력있는 음성으로 계속하시였다.

《함흥이 중요공업도시이지만 정무원에서도 식량을 따로 공급할 형편이 못되오. 그렇다고 이 엄동설한에 식량문제를 대책하지 않고 동면할수는 없소. 어떻게 하나 시당자체로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시당확대집행위원회는 공뜬 교양사업보다도 눈앞에 들이닥친 난관을 풀수 있는 그런 실천적인 문제를 걸고 분투해야 합니다. 그래서 얼마간이라도 먼저 식량을 해결해서 시민들에게 공급하고 곡산공장을 돌리시오. 양력설이 돼오는데 아이들에게 줄 당과류라도 생산해야 하지 않겠소.》

김정일동지께서 승용차곁에서 걸음을 멈춰섰으나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열린 차문을 도로 닫으시였다.

《책임비서동무, 수도물이 잘 나오지 않는 구역이 있는것 같은데 대책이 없소? 먹는 물이야 다른 나라에서 끌어오는것도 아니고 복잡한 설비가 드는것도 아닌데… 무엇이 걸렸소?

《장군님,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일을 쓰게 못해서

《난 그런 반성을 듣자는게 아닙니다. 원인이 뭐요?

《큰물피해로 해서… 수원지취수구로 흘러드는 성천강바닥에 모래가 가득 쌓였습니다.

《그래서 물량이 적어졌다면 모래를 파내고 물을 몰아와야 할게 아니요?

《예, 대책을 세우고있습니다. 강바닥모래가 엄청난 량이여서 흥남하류쪽에 있는 대형굴착기 2대를 끌어오려고 합니다.》

《언제 옵니까?

《굴착기를 수리해야 하는데 열흘이나 보름은 걸릴것 같습니다.》

《보름이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시당책임비서의 완만한 사무실적대책이 불만스러웠지만 배허벅에 두손을 마주잡고 멋적은 낯빛으로 굳어져있는 그를 띄여보고는 더 견책하지 못하시였다.

이께서는 한성모의 팔소매를 다정히 잡고 누그러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힘들지만 분발합시다. 책임비서가 맥을 놓아서는 안되오. 성천강을 끼고 수도물을 제대로 못먹는다는건 부끄러운 일이요. 함흥사람들이 언제 그렇게 락후해졌소. 지난날 〈함남제일주의〉를 하던 사람들이 쓸데없이 자신과 도를 내세운건 나빴소. 그러나 견실한 일군들은 자기 도와 인민들을 위해 욕심을 내여 일하면서도 뻐기려 들지 않았소. 동무도 그런 사람중에 속했지. 그래서 극장도 요란스레 지었구 검덕에 선광장도 건설했구 사포로동자거리도 멋지게 뽑지 않았소. 당정책을 관철하는데서는 남들한데 뒤떨어져본적이 없는게 함흥사람들이요.》

 

 

×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가 함박눈이 쏟아지는 시내거리를 천천히 달렸다.

그이께서는 공업도시 함흥 로동계급의 생활, 함경남도사업에 대한 걱정으로 하여 마음은 무겁기만 하시였다. 한성모에게 힘으로 될말을 해주었지만 사무실책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가 곤경에 처한 함흥시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킬수 있겠는지. 이런 때에 당일군이 실질적인 문제해결로 사람들을 불러일으켜야 하겠는데 그는 회의장연탁에서 엄혹한 현실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종전의 강연제강식해설교양을 되풀이하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스름이 깃든 차창밖의 걸음길로 눈을 맞으며 바삐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거의가 다 퇴근길에 오른 로동자, 사무원들일것이다. 그들의 차림새는 수수해보여도 얼굴에는 하나같이 고난을 묵새기는 근엄한 표정이 떠돌고있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신작로를 따라 로농적위대의 길다란 대렬이 씩씩하게 행진해오고있다. 배낭을 지고 목청을 맨 로농적위대원들의 어깨와 모자에는 눈이 수북히 쌓였다. 야외훈련을 마치고 먼길을 걸어온 모양이다.

 

력사의 준령을 헤쳐넘으며

승리만을 기폭에 새기여왔다

 

수령님의 한생이 어려있는 백두의 성스러운 붉은 기발을 높이 들고 나가자는 인민의 신념과  의지를 그대로 담은 노래이다. 나온지 얼마 안되는 노래이지만 뜻이 깊은 시구와 심장을 울리는 곡조로 하여 벌써 온 나라에 퍼지였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다 즐겨부르고있다.

얼마나 굳세고 좋은 인민인가. 그토록 좋은 인민이 지금 력사에 있어보지 못한 엄혹한 시련을 겪고있다. 그러나 인민은 나라의 형편을 잘 알고 곤난을 묵묵히 이겨낸다. 인민은 오로지 당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른다. 지난날 우리 혁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외부세력의 그 어떤 위협공갈이나 회유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피로 쟁취한 사회주의제도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떠서군 했던 인민이 아닌가.

 

이 기발 들고서 당을 받들고

이 기발 지키여 내 조국 빛내리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의 좌석등받이에 기대신채 멀어지는 로농적위대원들의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승용차가 시내를 벗어나 동흥산을 옆에 낀 신작로에 들어섰을 때에도 그이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노래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울리고있었다.

내 조국 빛내리…

내 조국! 속으로 가만히 불러만 보아도 얼마나 가슴을 치는 장중한 메아리가 울려오는것인가.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조국, 한생을 바쳐 이끌어오신 인민이 사는 아름다운 내 조국… 이 땅에서 제국주의자들은 붉은기를 내리우려고 한다. 계속되는 경제적봉쇄, 극심한 식량난… 그 어느 나라가 이런 악조건에서 견디겠는가. 운명의 갈림길에 선것만은 부인할수 없다. 그래서 세계의 신문들은 북조선붕괴설을 떠들고있다. 《〈노아의 홍수같은 큰물피해와 경제적제제로 허덕이는 조선,김일성주석의 후계자인 김정일령도자가 과연 기적을 만들고 사회주의를 구원할수 있겠는가?, 세계는 심심한 우려속에 조선반도의 재난을 지켜보고있다!

그래, 지켜보라. 아무리 시련의 강추위가 들이닥치고 재난의 세찬 눈보라가 몰아쳐와도 우리 조국은 저 산발처럼 끄덕없고 눈덮힌 숲처럼 사나운 겨울을 물리치고나서 푸르러질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눈이 발목까지 빠지는 길옆의 공지에서 전화로 부른 군부대장을 만나시였다.

야전군복외투의 혁띠를 병사들처럼 단단히 조여맨 키가 훤칠한 장령은 박력있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오느라 수고했소. 부대장동무에게 한가지 과업을 주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장령이 급히 군복외투주머니에서 첩을 꺼내는것을 보고 손짓하시였다.

쓸것까지는 없소. 함흥시민들이 지금 수도물을 제대로 먹지 못하오. 성천강물이 줄어든데다가 수원지 물길바닥에 모래가 쌓였소. 많은 량이요. 굴착기를 수리해 끌어오는데 보름이 걸린다오. 그것도 예견이지. 부대장, 난 동무네가 물몰이공사를 와닥닥 해서 늦어도 모래부터는 시민들이 물바께쯔를 들고다니지 않았으면 하오.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이제 당장 착수해서 오늘밤과 래일까지 수원지물길 모래를 다 파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장령의 결패있는 대답에 만족하시였지만 걱정어린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병사들이 얼음물에 들어가 일하겠는데 …  불을 많이 피워 자주 몸을 녹이게 하시오.

잠시후에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는 눈길에 깊숙한 바퀴자국을 찍으며 남쪽으로 달렸다. 전조등빛에 장미색으로 물든 함박눈송이들이 비발치듯 날려와 차창에 달라붙군 했다.

그이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의지가 굳세고 실천력이 강한 일군을 선발하여 함경남도당 책임비서자리에 앉혀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나라의 인민경제에서 골간부문인 전력과 기계제작, 화학공업, 광업이 집중된 함경남도가 동면에서 깨여나 일떠서야 경제전반에 활력이 생길수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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